사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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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2.1. 작사/작곡
2.2. 공연
2.3. 음반 발매
3. 기타
4. 가사
4.1. 내 고향을 이별하고[1]
4.2. 사향가
5. 해당 곡 영상
5.1. 원곡
5.2. 기악작품 편곡
6. 관련 문서


파일:attachment/사향가/sae.png

사향가
(내 고향을 이별하고)
(추색)
작사
김일성[2] 정사인(1881 ~ 1951)
작곡
편곡
관현악
김영규
바이올린 협주곡
박민혁


1. 개요[편집]


① 1916년대에 만들어진 가곡으로 홍난파가 편찬한 "통속창가집"을 통하여 발표된 추색(秋色)
② '추색'의 가락에 다른 노랫말이 붙은 내 고향을 이별하고
③ '내 고향을 이별하고'를 북한에서 개작한 사향가.

이 항목에는 추색, 내 고향을 이별하고, 사향가의 설명이 혼재되어있다. 혼란을 막기 위해 본래의 사향가는 내 고향을 이별하고로, 북한에서 개작한 사향가는 사향가로 칭한다.


2. 상세[편집]


본래 추색은 '가을 정취'라는 제목 그대로 가을의 정취를 노래한 서정적인 곡이며, 원곡보다 원곡의 선율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만든 내 고향을 이별하고가 더 많이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가장 많이 불린 곡이기도 하며, 슬픈 이별의 노래라서 그런지 옛날에는 죽은 사람을 위한 장송곡으로도 많이 연주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광복된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노랫말을 추가한 것이 북한에서 부르는 사향가이다.


2.1. 작사/작곡[편집]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이 노래를 직접 만들었다고 주장을 하며 "불후의 고전적 명작"으로 둔갑해 격상을 시켜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한제국 군악대 시위연대에서 플루트를 연주한 정사인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애초에 1916년이면 김일성이 4~5세 밖에 되지 않는다.

내 고향을 이별하고의 노랫말은 구전된 것으로 작사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2.2. 공연[편집]


사향가는 2000년에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서울 KBS 홀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했을 때 이 노래를 주제로 한 박민혁 편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바이올린 독주가인 정현희의 독주 및 협연으로 연주되기도 했다.


2.3. 음반 발매[편집]


내 고향을 이별하고는 1990년에 내 고향이라는 제목으로 겨레의 노래 1집[3]에 수록되었다.

북한에서 개작한 사향가는 2005년에 사이비 종교 아가동산 계열 음반사 신나라레코드의 북한 관현악 작품집 CD '임진강'에도 이 곡을 주제로 한 바이올린 협주곡의 연주가 수록되었으며, 금강산가극단 남성성악곡집 기쁨의 노래 안고 함께 가리라 4번 트랙에 남성 합창 형식으로도 수록이 되어있다.


3. 기타[편집]


  • 실제로 북한에서 불리는 사향가에서는 원곡에는 없는 만경대 같은 단어가 들어가 김일성이 지은 것처럼 왜곡된 형태로 되어 있다.[4]

  • 특히 이 곡은 김일성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이 어린 김정일을 재울 때 불러 준 노래라고 선전하고 있다. 가끔 TV를 통해, 만경대라고 하는 초가집으로 된 김일성 생가를 볼 수 있는데, 만경대가 방영될 때 언제나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곡이 바로 이 곡이다.

  • 김일성1992년에 직접 부른 것을 북한에서 직접 공개하기도 하였다(#). 이 영상은 채널A를 통해 방송된 것이라 안심해도 된다.


4. 가사[편집]



4.1. 내 고향을 이별하고[5][편집]


내 고향을 이별하고 타관에 와서
적적한 밤 홀로 앉아서 생각을 하니
답답한 마음 아-... 누가 위로해
우리 집을 떠나올 때
내 어머님이 문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너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들린다
우리 집서 머지 않아 조금 나가면
작은 시내 졸졸 흐르며
어린 동생들 놀던 그 모양
아-... 눈에 암암해
중천으로 날아가는 저 기러기 기러기 떼야
너 가는 길 그리 바쁘냐
나의 회포를 우리 부모께
아-... 전해 주렴아
아-... 전해 주렴아


4.2. 사향가[편집]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우리 집에서 멀지 않게 조금 나가면
작은 시내 돌돌 흐르고
어린 동생들 뛰노는 모양
아-... 눈에 삼삼해
아-... 아-...
어린 동생들 뛰노는 모양
아-... 눈에 삼삼해
아-... 아-...
꿈결에도 잊지못할 내 고향이여
대동강물 아름다운 만경대의 봄
꿈결에도 잊을수 없네
그리운 산천 광복의 그날
아-... 돌아 가리라
아-...
대동강물 아름다운 만경대의 봄
꿈결에도 잊을수 없네
그리운 산천 광복의 그날
아-... 돌아 가리라
돌아 가리라 돌아 가리라
돌아 가리라 내 고향아


5. 해당 곡 영상[편집]


여기서 소개하는 영상은 모두 북한에서 개작한 사향가이다.


5.1. 원곡[편집]




5.2. 기악작품 편곡[편집]


  • 김영규 편곡 관현악 버전 - (공연:조선국립교향악단, 지휘:김주혁)#
  • 박민혁 편곡 바이올린 협주곡 버전 (연주:뉴욕 우륵 교향악단, 지휘:리준무) - #
  • 박민혁 편곡 바이올린 협주곡 버전(연주:미상) - #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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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겨레의 노래에 수록된 버전이다.[2] 하단 참조[3] 1990년에 김민기가 총감독한 겨레의 노래 사업단에서 만든 프로젝트 음반. '노래를 찾는 사람들'처럼 여러 편을 낼 계획으로 제목에 1집을 붙였으나, 1집만 내고 끝났다. 내 고향은 작사자 미상에 정사인 작곡으로 되어있으며 노래는 김소정 할머니와 가수 서인석이 불렀다. 음반에 첨부한 안내문에는 북한에서 이 노래를 의도적으로 개작하여 '대동강물 아름다운 만경대의 봄'이라는 노랫말을 넣었다는 내용도 있다.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내 고향은 28분 5초부터.[4] 북한에서 지난 90년대 발간된 북한의 음악잡지에는 김일성 주석의 부인인 김정숙이 사향가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다.[5] 겨레의 노래에 수록된 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