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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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중세 스콜라 철학의 사회계약론
3. 토머스 홉스의 사회계약론
4. 존 로크의 사회계약론
5.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1. 개요[편집]


社會契約論 / Theory of Social Contract

정치학, 사회학 이론의 하나이자, 그 기원이 된 도서의 제목. '사회는 실체가 없이, 오로지 개별 구성원들의 계약에 의해 유지되는 인공적인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즉, 각 구성원의 동의 없이는 사회 체제가 구성되지 않으며, 나아가 구성원 사이에 체결된 합리적인 계약으로 사회의 모습을 바꾸면 빈부격차 등 다양한 사회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사회학에서는 사회명목론의 선구적 관점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사회명목론을 설명하기 위해 드는 가장 흔한 예시 중 하나이다.

당시 들불처럼 번지던 민주주의 혁명의 동력원으로서 근대 여러나라 혁명가들의 사상의 기초가 되었고, 더 나아가 미국 독립 혁명의 정신적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이론.

물론 이후로 철학적으로 비판이 좀 되었고, 장 자크 루소는 당시에는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대치되기도 했다.[1] (하지만 사실 사회계약설의 시작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으로 보는게 일반적이다. 홉스 항목 참조)

중학교 사회, 도덕 그리고 고등학교 통합사회, 윤리(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 일반사회(사회문화, 정치와 법), 세계사 교과에 나오는 이론이다.

2. 중세 스콜라 철학의 사회계약론[편집]


비록 현대에는 여러 신분들이 있지만,

태초에 모든 인간은 똑같은 자유를 가진 자유인이었다.

우리 모두가 한쌍의 남자와 여자의 후손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고, 오늘날에도 그렇듯이 지나친 자만심과 질투로 인해 원한과 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위대한 군주라고 생각한다면 평화롭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들 가운데서 왕을 선출해서 군주로 삼았다. 그리고 법을 만들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그에게 잘못을 저지른 자를 처벌할 권력을 주었다.

또한 왕이 공동체의 적들과 사악한 관료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자신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강하고, 현명한 자들을 선출해서 봉신으로서 왕을 도우며 평화를 지키는 영주들로 삼았다.

그렇게 해서 귀족이라고 불리는 신분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전해진 것이다.

자신들 가운데서 귀족을 선출한 사람들 중 남은 이들은 비귀족 자유민이 되었다.

농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런 예속인 신분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전쟁에서 포로로 잡힘으로써, 몸값 대신이거나 감옥에서 풀려나는 대가로 농노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재정적 이익을 얻거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팔아서 농노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왕이 왕국의 방어를 위해 외국인들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무장을 한 채 같이 전장에 나갈 의무가 있는 자들을 전부 소집했을 때 안전한 후방에 남은 대가로 농노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전장에서 도망친 죄로 농노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 교회가 설립된 시기에 경건한 의도로 성인들에게 자신을 바침으로써 농노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부당하게 예속을 강요하는 영주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농노가 되었다.

어떻게 해서 농노가 되었든, 농노들에게 자유를 주고 예속인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영주들이 할 수 있는 선행 중에서도 훌륭한 것이다.

그리스도교인이라면 누구도 예속된 상태에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어]

보마누아르(Beaumanoir), 보베 지방 관습법(Coutumes de Beauvaisis, 1283), 45장 1453절 #(1900년도 출간본, 오른쪽 페이지)


사람의 통치보다는 법의 통치가 더 고귀하다고 주장하며 공동체의 이익을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는 군주를 폭군으로 규정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사상은, 서유럽의 봉건제가 쇠퇴하고 초기 근대국가가 형성되어가던 과도기인 13세기에, 강력한 중앙 정부가 가져오는 안정과 질서를 바라지만 동시에 국왕 개인의 권력 남용을 우려하기 시작한 후기 중세인들의 구미에 맞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대학 강단에서 처음 번역되고 논의된 이래로 문학과 대중설교를 통해 민간으로 퍼져나가면서 중세 사회에서 급속도로 대중화되었다.

하지만 신분의 차별과 노예제도를 불변의 자연적 정의로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은 그리스도교의 교리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체로 무시되었으며, 이 중세식으로 재해석된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을 기반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만인의 합의를 기초로 하는 근대적인 사회계약이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중세 후기인 13-15세기는 서유럽 곳곳에서 대의제의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기였다. 마그나 카르타를 계기로 만들어진 영국의 의회는 초기에는 남작들이 중심이 되었으나 에드워드 1세 시기부터 기사 74명(각 샤이어 당 2명), 부르주아 80명(각 도시 당 2명), 하급 성직자 148명으로 구성된 하원이 정기적으로 소집되기 시작했고, 1275년 웨스트민스터 법령은 '왕국 공동체community of the land의 조언counsel과 승인assent으로' 공포되었다. 1297년 에드워드 1세는 마그나 카르타를 최종적으로 인정했고 의회의 동의 없이는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했다. 1320년경에 쓰인 <의회를 여는 방법Modus Tenendi Parliamentum>이라는 책은 '왕국 공동체'를 대표하는 기사와 부르주아들이 이미 위대한 백작들보다 왕국에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시기인 1302년 프랑스에서도 필리프 4세가 최초로 총신분회의를 소집했고 자신의 왕권이 왕국 공동체의 '선출'에서 기원한 것임을 강조하며 모든 계층의 지지를 구했다. 이때부터 프랑스 왕은 단순한 봉건적 대군주가 아닌 영토국가의 주권자로, 즉 '왕국 내 황제'로 인정은 받았지만, 이론상 어디까지나 인민의 동의를 받았을 경우에만 그러했다. 프랑스 민중들이 이때 주어진 명목상의 권리를 실제로 행사하는 것은 500년 뒤의 일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무수히 반복되었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권력이 국왕에게 집중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정치권력의 근원은 남작과 젠트리 등 지주들에게 있었다. 상공업으로 부를 쌓은 부르주아들도 벌어들인 돈의 상당수를 토지에 투자하거나 아예 스스로 지주 귀족 계층에 편입되었다. 이 지주들의 권력은 토지 소유에 기반했고, 따라서 토지 소유권의 안전을 보장하는 왕의 법은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을 가졌다. 즉, 지주들은 지주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법이 필요했다. 현대의 공장 화재와 달리 전쟁으로 황폐화된 중세 경작지의 손실은 보험금으로 만회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법이라는 더 나은 대안이 있는 한 스스로의 무력으로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지주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모든 지주들은 질서가 무너져 무정부 상태가 조성되었을 때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았다. 따라서 권력을 남용해서 지주들을 착취하는 폭군도 위험하지만 권력이 약해서 모든 당파 위에 두려움 없이 설 수 없는 왕은 폭군보다 더 위험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13-15세기 정치의 주요 담론이었던 '공동체에 대한 봉사'는 장미전쟁위그노 전쟁의 혼란을 거친 뒤 절대주의 시대에 와서 '국왕에 대한 복종'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후 계몽주의 시대의 정치학자들이 반계몽주의를 '중세 봉건주의'로 규정하고 중세의 정치사상을 왕권신수설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으면서 중세와 근대 사상의 관계성은 잊혀지게 된다. 이러한 근대적 정치이론의 기조는 언제나 중세의 정신을 비하하면서 자신들의 혁신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3. 토머스 홉스의 사회계약론[편집]


홉스의 사회계약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고실험을 통한 전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것이다.[2]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라는 것, 인간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최우선의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인간은 합리적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협력이나 복종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은 자기 욕구충족 및 보호를 위해 서로가 서로를 빼앗고 죽이는 공멸만이 존재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The war of all against all)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합리적이므로 이것을 막을 방법을 찾게 되고, 그로 인해서 사람들은 특정한 사람 혹은 집단(assembly)에게 권력을 몰아주게 되는데, 그가 바로 왕이 되는 것이고, 비로소 갈등상태를 강제적으로 해결할 (Force)를 지니게 된다.

여기서 홉스가 당대의 주요 관점이었던 왕권신수설을 부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 계약의 목적을 다하기 위해서 권력은 절대적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는 신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게 된다. 즉, 분란을 일으키더라도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사회 계약을 이루고 있는 상태가 더 낫기 때문에 지도자를 함부로 바꾼다던지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백성을 보호할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교체돼야 한다는 단서를 두었다.

4. 존 로크의 사회계약론[편집]


로크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완벽한 자유를 누린다.[3]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위해를 가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4] 문제는 그 분쟁을 공정히 판단하여 공격자를 처벌하고 무고한 이를 지켜줄 판결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이성적이고 자연법을 따라가기에 그러한 분쟁에 대해 판단을 할 수 있지만, 인간은 감정과 이해관계, 편견 등의 영향으로 완전히 공정하게 판결을 못 한다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재산(생명, 신체, 재물 등)을 더욱 잘 보장받기 위하여 적당하다고 판단이 되는 존재에게 자신들의 자연적인 권리, 즉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더불어서 분쟁을 판결할 권리까지 위임한다. 이것이 인간이 자연상태를 벗어나 사회를 이루게 되는 계기이다. 따라서, 개인들의 자연적인 권리를 위임받은 정부는 그 구성원들의 재산을 지키고 그것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이러한 계약이 이루어지면 구성원은 그 사회의 규칙과 법률에 복종해야 하지만, 그것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구성원의 재산을 지키지 않고 그것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그 정부는 해체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 상태에서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그에게 위해를 가하는 경우나 정부가 그 구성원의 재산을 침해하고, 잘못 사용하는 것은 같은 경우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회의 형성 목적에 어긋나게 행동하면 그 정부는 해체될 수 있다고 말했다.

로크의 사회계약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간의 권리는 다름아닌 재산권이다. 이 재산에는 '신체의 소유'도 포함된다. 또한 간접 민주제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 형태라고 보았다. 이는 로크가 명예 혁명 이전 망명을 떠났다가 명예 혁명으로 복귀했다는 점에서 기인하게 된다.

5.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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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위키미디어 커먼즈.

프랑스어 : 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
영어 : Of The Social Contract, Or Principles of Political Right

장 자크 루소의 저서. 이론으로서의 사회계약설의 뿌리가 되었다.

1760년 1월 루소의 또 다른 저작 에밀과 함께 해당 책을 집필하고 1762년 4월 출판하였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당시 프랑스 국왕이던 루이 16세가 루소와 볼테르의 글을 읽고 "나의 왕국을 쓰러뜨린 것은 바로 이 두 사람이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주 내용은 자유, 평등, 박애를 다루고 있으며 당시의 만연한 가난과 사회적 부패, 부도덕은 운명이 아니라고 서사한 책이다. 당시 혁명가들의 필수 지침서였으며, '선언시 이 책 인용문을 많이 따왔다'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간혹 자유주의적 서적으로 오해되는 경우가 있는데, 루소와 이 책은 자유주의 진영이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자유는 공화주의적 자유로서, 개인에 대한 예속의 반대 개념을 의미한다. 즉 군주 개인이 아니라, 공민들의 일반의지에 의해 제정된 법에게 복종하는 것은 결코 자유와 모순되지 않는다는게 루소적 관점이다. 구체적 예시를 들자면, '착한 주인을 만나서 간섭을 받지 않는 노예'와 '법에 복종하되 개인에게 예속되지 않은 시민' 중 누가 더 자유롭냐고 물을 경우, 후자가 훨씬 자유롭다는게 루소적 자유관인 것이다. 이는 자유주의적 자유관이 아니라 공화주의적 자유관이다.

한편 평등은 모든 사회구성원이 동일한 법에 종속됨으로써 당연히 달성된다. 박애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으로, 조건 없는 사랑보다는 전우애에 가까운 개념이어서 사회계약과는 무관하다. 루소가 추구하던 사회가 외적의 공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정신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는 사회계약론 자체의 범위를 벗어난다. 사회적 부패와 부도덕은 크게 봐서는 루소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루소가 평가한 당대의 문제는 <인간불평등기원론> 에서 제기된 소유의 불평등에서 출발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소유가 존재하지 않는 자연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사회계약론>이라고 할 수 있다. 자발적 사회계약에 모두가 동등하게 복종함으로써 자유와 평등을 충족하는 것이다.

...나는 사람이 저마다 자연 상태에 머무르기 위해 쓸 수 있는 힘보다, 인간의 생존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의 저항력이 더 커진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새로운 힘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다만 이미 있는 힘들을 결합하여 방향을 정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힘들을 하나로 모아서, 저항에 이겨낼 수 있는 단결된 힘을 자신들이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단 하나의 원동력에 따라 함께 움직이게 해야 한다...

...이 어려움은 다음과 같은 말로 나타낼 수 있다. 구성원 하나하나의 신체와 재산을 공동의 힘을 다하여 지킬 수 있는 결합 형식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저마다 모든 사람과 결합을 맺으며 자기 자신 이외에는 복종하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자유로울 것. 이것이야말로 사회 계약이 해결해 주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다시 말해 구성원 하나하나를 그 모든 권리와 더불어 공동체 전체에 대해 전면적으로 양도하는 것이다...

...만일 특정한 사람들 손에 얼마간의 권리가 남는다면... 자연 상태가 존속할 것이고, 또 결합은 필연적으로 압제적이게 되거나 허무한 것이 될 것이다. 요컨대 사람마다 자신을 공동체 전체에게 양도하는 것이지, 특정한 개인에게 자신을 양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자기가 양도하는 것과 같은 권리를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받으므로, 사람은 자신이 잃는 모든 것과 같은 가치를 손에 넣고, 또 자신이 소유한 것을 보존하기 위해 좀 더 많은 힘을 키울 수 있다...

... 우리는 저마다 신체와 모든 힘을 공동의 것으로 삼아 일반 의지의 최고 지도 아래에 둔다. 그리고 우리는 구성원 하나하나를 전체와 나누어질 수 없는 일부로서 받아들인다. 이 결합 행위는 곧바로 특정한 계약자 하나하나를 대신하여 하나의 정신적이고 집합적인 단체를 만들어 낸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의 결합으로 형성되는 이 공적인 인격은, 예전에는 '도시 국가' 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공화국' 또는 '정치체'라고 불린다.

-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 제 6장 中

루소에 따르면, 본디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평화롭고 공상적이며, 독자적이고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산다. 경쟁이나 갈등은 없고, 모두가 내면에 감성과 양심을 갖추어 도덕적이다. 그러나 인구가 늘면서 점차 공동체가 형성되고, 노동의 분업화가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서로를 비교하게 된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질투 또는 자만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사유 재산의 개념으로 인해 단순하고 순수했던 인간들이 탐욕스럽고 경쟁적으로 변하며, 결국 불평등이 야기되어 누군가는 재산을 소유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들을 위해 일하는 계급으로서 등장하게 된다. 그리하여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의 평등과 보호를 보장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사회 계약을 맺게 된다. 그러나 실상은 오히려 재산을 만들어내는 불평등을 강화하게 되고, 결국 이런 사회 계약은 갈등과 경쟁을 부추기게 된다.[5]

루소는 "인간은 모두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사슬에 매여 있다."고 했으며,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촉구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리이므로,[6] 사회 계약의 목적은 대신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개인의 의지 중 공동선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들이 모여 보편 의지(일반 의지)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주권은 항상 국민에게 속하며, 양도될 수 없다. 국가는 대리인으로서 법을 집행할 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런 방식은 작은 사회에서는 가능하지만 국가 수준의 큰 단위로 넘어가면 실현되기 어렵다. 한편 개인은 일반 의지를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고, 법은 일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므로 개인은 법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루소는 이 보편 의지의 실현을 위해 강력한 직접 민주주의를 제시하였다.
[1] 둘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둘이 자연인을 어떻게 정의했는지 알 필요가 있다. 당대 홉스는 계약이 인간의 발달에 유익하여 결론적으로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고 보았으나, 루소는 계약을 인간의 발달을 억제하여 강제로 자연인 상태로 되돌리는 것으로 보았다.[프랑스어] Comment que pluseur estat de gens soient maintenant,
voirs est qu’au commencement tuit furent franc et d’une meisme franchise,
car chascuns set que nous descendismes tuit d’un pere et d’une mere.

Mes quant li pueples commença a croistre et guerres et mautalent furent commencié par orgeuil et par envie, qui plus regnoit lors et fet encore que mestiers ne fust,
la communetés du pueple, cil qui avoient talent de vivre en pes, regarderent qu’il ne pourroient vivre en pes tant comme chascuns cuideroit ester aussi grans sires l’uns comme l’autres: si eslurent roi et le firent seigneur d’aus et li donnerent le pouoir d’aus justicier de leur mesfés, de fere commandemens et establissemens seur aus;
et pour ce qu’il peust le pueple garantir contre les anemis et les mauvès justiciers, il regarderent entre aus ceus qui estoit plus bel, plus fort et plus sage, et leur donnerent seignourie seur aus en tel maniere qu’il aidassent a aus tenir en pes et qu’il aideroit au roi,
et seroient si sougiet pour aus aidier a garantir.

Et de ceus sont venu cil que l'en apele gentius hommes, et des autres qui ainsi les eslurent sont venucil qui sont franc sans gentillece.

Et li serf si sont venu par moût de manieres d'aquiaicions.
Car li aucun sont venu par estre pris de guerre: si donnoient servitude seur aus et seur leur oirs pour raençon ou pour issir de prison;
et li autre sont venu parce qu'il se vendoient, ou par povrete, ou par convoitise d'avoir;
et li autre sont venu quant li rois avoit a fere et il aloit pour combatre contre estrange gent et il commandoit que tuit cil qui pourroieot armes porter li alassent aidier, et qui demourroit, il et si oir seroient de serve condicion;
et li autre sont venu de eus qui s'en fuioient des batailles;
et li aucun sont venu de ceus qui se donnerent as sains et as saintes par devocion puis que la fois crestienne commenca a venir;
et li autre sont venu parce qu'il n'ont eu pouoir d'aus defendre des seigneurs qui a tort et par force les ont atres a servitude.

Et par quelconques manieres qu'il soient venus nous pouons entendre que grant aumosne fet li sires qui les oste de servitude et les met en franchise,
car c'est grans maus guant nus crestiens est de serve condicion.
[2] 여기서 평등하다는 것은 누구든지 타인을 죽일 기회가 있다는 뜻에서의 평등에 가깝다.[3] 이 부분에서 홉스와 로크의 사상이 갈린다. 홉스는 인간이 이기적이라고 보았지만 로크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백지 상태라고 보았다.[4] 로크는 그와 같은 범죄자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는 순간, 자신의 생명을 내놓고 타인과 전쟁 상태에 돌입하였다고 보았다. 또한 범죄자는 인간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신이 내려주신 이성과 자연법을 버리고 다른 규칙을 따르기로 했으므로 범죄자를 야수와 같은 존재라고 보았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야수에게서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바로 그러한 야수처럼 범죄자를 다루어야 한다고 보았다.[5] 이 부분은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Discourse on origins of Human Inequality)에 나오는 이야기다.[6] 현대 사회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자연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관점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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