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당(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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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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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당


120석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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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당


77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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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GA!


12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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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이니셔티브


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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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6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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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연합


5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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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동물-자연

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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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1석

재적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23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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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do Social Democrata
약칭
PPD/PSD
한글명칭
사회민주당
슬로건
Paz, Pão, Povo e Liberdade
상징색
주황색
창당일
1974년 5월 6일
이념
보수주의
자유보수주의
우파공동체주의
기독교 민주주의
신보수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친유럽주의

역사적 :
사회민주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우파

역사적 :
중도 ~ 중도좌파
주소
Rua de S. Caetano à Lapa, 9
1249-087, 리스본
당수
후이 히우
당원 수
108,437명(2020년 기준)
국제 조직




청년 조직
젊은 사회민주(JSD)
기관지
Povo Livre
유럽 정당
유럽 인민당
유럽의회 정당
유럽 인민당 그룹
공화국의회 의석 수

77석 / 230석

유럽의회 의석 수

6석 / 21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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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1. 개요[편집]


포르투갈의 정당으로, 사회당과 함께 양당제를 구성하고 있는 거대 정당이다.

명칭과는 달리 서서히 우경화되어 지금은 자유보수주의를 내세우는 중도우파 정당이다. 이유는 후술.


2. 역사[편집]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직후 "민주인민당(Partido Popular Democrático, 약칭 PPD)"으로 창당되었으나, 2년 후 지금의 당명으로 개명하였다. 다만 현재도 민주인민당 시절의 유산을 남겨두는 차원(?)으로, 공식 약칭은 PPD-PSD이다.

초기에는 중도~중도좌파[1] 성향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창당되었으나, 좌파내 우파 컨셉이다 보니 당시 노동계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던 사회당과 마찰을 빚었다. 이런 가운데 특히 사회민주당이 우경화된 결정적인 계기는, 카네이션 혁명으로 우익 독재정권이 붕괴되고 당시 보수층이 갈 곳이 없었는데, 둘 다 사민주의를 내세울 경우 자칫 보수층을 위시로 한 친독재 정당이 부활할 우려가 있었다. 이에 사민당은 1979년 총선 때 기타 중도우파 정당과 연대하는 등 서서히 우경화하기 시작했고, 1985년 새 대표로 취임한 아니발 카바쿠 실바[2] 밑에서 중도우파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후에 극우 독재의 망령이 부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화+갈 곳 없는 보수층의 표를 끌어들이며 성공한 사민당은,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79년 정권을 차지한 이후 1995년까지 16년 동안 장기집권을 이루게 된다. 특히 당을 성공적으로 이끈 실바 대표 치하에서, 사민당은 1987년과 1991년 총선에서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해, 타 정당의 도움 없이 단독정부를 무난하게 구성할 정도였다. 하지만 장기집권으로 유권자들의 피로감이 유발되었고, 결정적으로 경기침체에 봉착하면서, 실바는 1995년 1월 대표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이후 페르난두 노게이라가 새 대표로 취임했지만, 230석 중 88석 밖에 얻지 못해 원내 2당으로 추락했으며, 사회당에 정권을 넘겨주게 된다.[3]

이후 사민당은 조제 마누엘 두랑 바호주를 새 대표로 선출했고 1999년 총선에서 재집권을 꾀하지만, 오히려 7석이 줄면서 앞날에 먹구름이 낀 듯 보였다. 그러다 2002년 인민당과의 연정으로 재집권에 성공하지만, 이는 바꿔 말하자면 단독 과반에 실패할 정도로 기반이 약해졌음을 의미했다. 이후 2005년 다시 패배하고, 2011년까지 야당으로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당이 재집권한 뒤 2008년 ~ 2009년 세계 금융위기를 피하지 못했고, 이 여세를 몰아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 대표를 앞세워 2011년 인민당과의 연정으로 재집권하게 된다. 코엘류는 임기 초반 지지율이 좋았으나, 곧바로 지지를 잃더니 2012년 후반기에 사회당에 도로 1위를 내주게 된다. 그렇게 20%의 지지율에서 허덕이면서 2014년 유럽의회 선거마저 패하게 되고, 사회당이 리스본 시장으로 인기를 얻은 안토니우 코스타를 앞세우자 이에 대한 반격으로 인민당과 연합해 포르투갈 전진당(이하 전진당)을 결성한다.

그렇게 2015년 총선에서 전진당은 230석 중 102석을 차지해 1위에 오르게 되었으며, 사민당도 그 중 89석[4]으로 원내 1당이 되어 86석의 사회당을 앞서게 되었다. 이 때만 해도 언론들은 총선에서 "여당연합이 승리했다"는 식으로 보도했고, 사회당은 총선 패배로 코스타 대표가 사임할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연합에도 불구하고 과반 의석(116석)에 미달했고(...), 단순 좌우 스펙트럼으로만 보자면 좌파[5]가 이미 과반을 넘겨 실질적으로는 에러가 발생한 꼴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 구성에 난항을 겪게 되었고, 일각에서는 재총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쳤다. 그럼에도 전진당은 일단 단독으로 소수정부 출범을 강행했으나, 어떻게든 코엘류를 끌어내리려고 애를 썼던 좌파 3당(사회당+좌파연합+통일민주연합)이 손을 잡고 불신임을 가결했으며, 이후 코스타가 이끄는 사회당 소수정부가 출범하면서 야당으로 복귀한다.

이후 코스타가 이끄는 사회당의 인기가 좋아진 탓에 사민당은 지지율 20% 대에서 허덕이게 되었으며, 심지어 2019년에는 지지율이 단 20%밖에 나오지 못해 창당 후 최악의 성적까지도 예상되었다. 다만 후이 히우 신임 대표가 토론에서 선방한 덕택에 최악의 성적까지는 막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탈당파가 CHEGA!를 결성했고, 오랜 연대 파트너인 인민당이 역대급으로 몰락해 원외정당으로 전락하면서 전망은 밝지 않은 편. 게다가 사회당이 중도 보수층 입맛에도 맞는 정책을 제법 내놓아 보수층 표도 흩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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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당 당시에도 같은 사민주의 정당인 사회당보단 우측에 있었기 때문에 유럽식 사민주의 정당보단 북미식 리버럴 정당 느낌이 더 강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이시기 사회민주당은 중도~중도좌파/사회민주주의 성향이였다고 나온다.[2] 후일 대통령이 된다.[3] 참고로 이 때 새로 취임한 사회당 총리가 훗날 UN 사무총장이 되는 안토니우 구테흐스이다.[4] 독자명부로 선거에 나선 마데이라아소르스의 사민당 지역당은 이와 별도로 5석을 확보했다.[5] 사회당(86석), 좌파연합(19석), 통일민주연합(17석), 사람-동물-자연(1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