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루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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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루 히로시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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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


파일:attachment/Sandro_Hiroshi.jpg

이름
산드루 히로시 파레앙 오이
Sandro Hiroshi Parreão Oi

K리그 등록명
산드로(Sandro)
출생
1979년 11월 19일 (44세) /
아라과이나
국적
[[브라질|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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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74cm
포지션
윙어
프로 입단
1998년 토칸티노폴리스 EC
소속팀
토칸티노폴리스 EC (1998)
리우 브랑쿠 EC (1999)
상파울루 FC (1999~2001)
CR 플라멩구 (2001~2002)
피게이렌시 FC (2003)
알 자지라 (2003)
과라니 FC (2004)
대구 FC (2005)
전남 드래곤즈 (2006~2008)
아메리카 지 나타우 (20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9)
EC 산투 안드레 (2010)
레드불 브라질 (2011)
리우 브랑쿠 EC (2011~2013)

1. 개요
2. 선수 경력




1. 개요[편집]


브라질 출신의 축구 선수로, 일명 산드로(Sandro)라고 한다.[1] 브라질 리그의 리우 브랑쿠 EC에서 공격수로 뛰고 있다. 체격이 크지는 않지만 스피드와 발재간을 갖추었으며, 브라질 선수 특유의 유연함과 드리블 능력을 이용해 오른쪽 측면에서 빠른 드리블로 공격의 활로를 여는 것이 주특기이다. 또한 정확한 슈팅력을 갖추었으며, 크로스 능력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공격형 미드필더도 소화할 수 있으며, 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에도 능하다.

이름인 히로시(Hiroshi, ヒロシ)에서도 드러나지만, 일본브라질인 3세이다.[2] 덕분에 다른 외국인 선수들과는 달리 동양적 이미지가 팬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왔으며, 동양인 특유의 성실함 또한 갖고 있었다고 한다.


2. 선수 경력[편집]


1998년 18세의 나이로 브라질 리그의 토칸티노폴리스 EC에서 데뷔했으며, 1999년 리우 브랑쿠 EC로 팀을 옮겼다. 이후 좋은 활약을 보여 1999년 도도의 대체자를 찾던 상파울루 FC와 계약했으며, 주로 서브로 활약하며 당시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프란사와 호흡을 맞춰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하지만 2000년 나이 사칭 스캔들에 휘말려 180일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아 경기에 뛰지 못했으며, 징계가 풀린 이후에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하다가 2001년 CR 플라멩구로 이적했다. 하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불과 9경기만 출전하는 부진한 활약을 보였고, 결국 2003년 피게이렌세 FC로 팀을 옮긴 뒤 출전 기회를 잡아 원래 폼을 되찾았다. 그 뒤 아랍에미리트의 알 자지라로 이적했으며, 2004년 과라니 FC와 계약해 브라질 무대에 복귀했다. 이적 이후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결국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2005년 노나또훼이종의 빈자리를 메우려던 대구 FC에 입단했으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려 팀의 4:3 승리를 견인해 창단 이후 처음으로 팀이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역사를 썼다.[3] 그리고 전남 드래곤즈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해 팀의 2:0 승리에 공현하며 창단 이후 처음으로 팀이 수원 전남 드래곤즈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역사를 썼다.[4] 시즌 종료 때까지 24경기에 출전해 10골을 득점하며 한 때 득점 단독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막판에 다소 밀리며 두두와 함께 득점 공동 3위로 시즌을 마쳤으며,[5] K리그 컵대회에서는 12경기 7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대구의 전력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의 득점 기록은 대단한 수준이다. 덕분에 이 당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산드로는 거의 묻히다시피 했다.

시즌 종료 후 대구의 열약한 재정으로는 높아질대로 높아진 산드로의 몸값을 감당할 수 없었고, 일본브라질인이라는 이유로 한 때 J리그 진출 이야기도 있었지만 본인은 전남 드래곤즈를 택했다. 이적 이후 저주 이야기로 비어 있었던 등번호 11번을 달게 되었으며,[6] 2006년 시즌 초반에 3경기에서 2골을 득점하며 산뜻한 스타트를 끊었다... 했는데 연습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브라질로 귀국해 수술을 받았다.[7] 이후 무려 8개월간 브라질과 한국을 오가며 치료와 재활에 전념했으며,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FA컵 준결승전에서 교체 투입되어 복귀를 알린 뒤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FA컵 결승전에서 1어시스트를 기록해 팀의 2:0 승리에 일조하며 팀의 대회 우승에 기여하였다. 2007년에도 리그에서 26경기에 출전해 8골을 넣어 득점 공동 7위에 오르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포항 스틸러스와의 FA컵 경승전에서 득점에 성공하는 등 팀의 FA컵 역사상 첫 2연패에 공헌했다.[8]

하지만 2008년에는 시즌 초 멜버른 빅토리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입은 뒤 치료와 재활 방법을 놓고 구단과 갈등을 빚다가 독단적으로 브라질로 귀국해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구단은 산드로와의 잔여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아메리카 FC에 입단했으며, 2009년 6개월동안 연봉 2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계약하며 다시 K리그 무대를 밟았다. 시즌 종료 이후 EC 산투 안드레와의 계약에 합의해 다시 브라질로 돌아갔으며, 2011년 레드 불 브라질로 이적하였다. 한 시즌을 뛴 이후 아라과이나 FR로 이적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결국 리우 브랑쿠 EC에서 뛰기로 합의했다.

1997년 브라질 U-17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고, FIFA 청소년 월드컵에 출전해 팀의 우승에 일조했다.

[1] 물론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법에 의하면 정확한 표기는 산드루이지만, K리그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산드로라는 이름을 등록명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쪽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2] 한국하인스 워드미셸 위를 한국계라고 같이 엮는 것처럼, 일본 또한 산드루 히로시를 일본계라며 같이 엮기도 한다.[3] 대구는 2003년 창단한 이후 해당 경기 전까지 수원을 상대로 2무 6패를 기록했었다.[4] 대구는 2003년 창단한 이후 해당 경기 전까지 전남을 상대로 4무 5패를 기록했었다.[5] 다만 그 당시 13골로 득점왕에 오른 마차도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득점한 3골이 포함되었으며, 챔피언 결정전에서 나온 득점을 제외한다면 산드로는 12골을 기록한 박주영에 이은 득점 공동 2위가 된다.[6] 2005년부터 전남에서 11번을 단 3명의 외국인 선수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방출되었다.[7] 이 기간동안 전남은 수원의 산드로를 임대로 데려왔는데, 덕분에 한 팀에 같은 이름의 외국인 선수 두 명이 소속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구분을 위해 수원에서 데려온 산드로는 등록명을 산드로 C(산드로 카르도소의 줄임말)로 바꾸었다.(...) 그런데 수원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그 이름을 계속 썼다.[8] 일반적으로 심각한 부상으로 거의 한 시즌 가까이 뛰지 못하게 되면 자연스레 몸이 망가지기 일쑤인데, 이러한 점을 생각해보면 매우 좋은 활약을 펼쳐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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