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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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사교계 문화
2. 프랑스 정부가 후원했던 공식 미술전람회
3. 미국의 살롱


1.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사교계 문화[편집]


Saloon.[1]

근세 시대 서유럽의 사교계 문화. 주로 귀족인 호스트(주최자)가 자신의 저택에서 주최한 문예를 중심으로 하는 교류회였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그 초기형이 나타나 프랑스에서 17~18세기 동안 유행하였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19세기까지도 살롱 문화가 활발하였다.

살롱 문화가 없었던, 커피하우스 문화 조차 없었던 아시아에서는 이것을 강연 따위(심지어는 고상한 토크쇼나 미용과 관련된 무언가)로 오해하곤 하지만 잘라 말해서 전혀 그렇지 않다.

르네상스로 촉발된 다양한 이념들이나 철학, 예술, 경제행위들이 시끄러운 술집이나 적막한 책에서만 이야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 평지로 가득한 유럽에서 다양한 성이나 호텔 등을 지으면서 모임을 성장시키도 했지만, 사람들은 좀 더 근사하고 사교에 최적화된 형태를 원했다. 그래서 살롱은 한편으로는 종종 근대 사상가들의 토론의 장이 되기도 했다.

무대에서는 누군가가 열의로 가득 차서 말을 혹은 연주를 하는 한 편, 그것을 배경 삼아 참여자들은 옆의 낯선 이와 의견을 나누거나 자기 할 것을 했다. 마치 식당에 켜진 TV처럼 보고 싶을 때 보고, 별로일 때는 무관심했다가, 한편으로는 참여자 전원이 기립하며 찬사 할 수도 있었다.

커피하우스, 카바레와도 그 역사적 역할이 유사하지만 기원이나 발전 양상, 방식, 주제 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 같은 것이나 영향을 준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중 매체에서는 문명 4에서 프랑스 문명의 고유 건물로 나온 적이 있다. 천문대를 대체하며 무료 예술가 1명을 제공하는데, 전문가와 시너지가 있는 요소를 활용하기 좋으며 문화 승리를 노리거나 문화력 싸움을 할 때 도움이 된다며 고평가하는 견해도 있고 전문가를 무료로 준다는 건 좋은데 하필이면 기술자나 과학자가 아니라 예술가냐는 이유로 저평가하기도 한다.


2. 프랑스 정부가 후원했던 공식 미술전람회[편집]


Le Salon

1667년 루이 14세에 의해 시작됐으며, 루브르궁의 살롱에서 열렸기 때문에 이름이 붙었다. 간헐적으로 열리다 1737년 이후에는 연례 행사가 되었다. 아카데미 회원들만이 참가하는 관전(官展)이었다가, 1881년 프랑스 정부가 공식 후원을 중단하고 미술아카데미로 관할을 이관하였다. 보수적인 심사 때문에 반발이 이어져 '낙선자 미술전시회(Salon des Refusés, 낙선전)', '앙데팡당(salon des indépendants)전', '인상파 미술전' 등이 생겨났다.

일본제국에서도 이걸 받아들여 1907년 '문부성 미술전람회'(文展)[2]를 열었으며, 우리나라에도 조선총독부 치하에서 '조선미술전람회'(鮮展, 1922~1944)로 들어왔다. 이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대한민국미술전람회'(國展, 1949~1981), 이후 민전(民展) 형식의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3. 미국의 살롱[편집]


미국의 살롱은 위의 사교공간과는 영 딴판인데,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바(술집)의 이명이다.

서부극을 보면 무조건 나오는 곳으로, 미국의 바들 중 서부개척시대, 늦어도 황금광 시대부터 영업한 바들 또는 시골 일부 바들은 높은 확률로 가게명에 대놓고 "SALOON"이라고 적어놓고 있으며, 이들은 주로 마을의 하나뿐인 식당, 술집, 사교공간 기능을 동시에 하고있다.

한국에서는 왠지 살롱이라고 하면 이런 거부터 주로 떠올린다. 온라인 스팸광고부터 오프라인 지라시 성인광고까지 온갖 곳에 등장하다 보니(...) 성매매 없는 살롱은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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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O를 1개만 쓰기도 한다.[2] 이후 여러 번 개편되어 현재는 '개조 신 일본미술전람회'(改組新日展)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