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간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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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주요 인물들
3. 용어 비판론

三奸四愚

1. 개요[편집]


도조 히데키의 최측근 7인을 이렇게 부른다.

여기서 삼간(三奸)이란 말 그대로 세 명의 간신배를 말하며 사우(四愚) 역시 네 명의 어리석은 놈을 가리킨다. 즉 세 간신과 네 멍청이.

이들은 도조 히데키의 최측근이었으며, 전후 당시부터 패전의 원흉으로 여러가지 의미로 지탄 받았던 인물들이다.

흔히 일컬어지는 삼대오물의 구성원에 비하여는 임팩트(?)가 덜했고, 대개 전쟁에서 패전으로 일본의 패배에 일조하기보다 도조 히데키의 측근으로서 관료, 참모, 일본 본토 주재 부대장 등으로 일했던 인물들이 많기에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1]

원전이 불분명한 삼대오물에 비하여는 전후 당시에도 이들을 묶어서 삼간사우로 칭한 자료가 남아있으며, 많지는 않지만 이들을 '삼간사우'라는 단어로 묶어 표현하는 관련 문헌이 존재한다. 링크 다만 삼간사우를 언급한 서적들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않는 학술적인 서적이 많고, 구글 고급검색 기준으로 '三奸四愚'를 검색하였을 때 5천여건 정도만 검색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을 패전으로 이끌었으니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이들이 전후 일본사회에서 멸시당했다고 보기는 어려움이 있다. 이들 중 몇 명은 전후 직후에 사망(교수형, 옥사)하였으나, 생존한 이들은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었을수도 있지만) 표면상으로 전쟁기 여타 고위 관료들과 비슷하게 평탄한 삶을 살았다. 예를 들어서 스즈키 데이이치는 전후 산업계획회의위원으로 종사하였고 자유민주당의 참의원 선거 출마 요청을 받기도 하였다. 사토 겐료는 도쿄관재의 사장으로 근무하기도 하였고 베트남전 시기에 반전운동 활동을 하였다. 사나다 조이치로는 전후에도 제1복원성(구 육군성)에서 근무하였고 사후 부하에 의해 전기가 쓰여졌다. 가토 하쿠지로는 전후 은둔생활을 하였으나 매달 도조 히데키의 가족을 방문하였고, 아카마츠 사다오만이 전후 공직추방 가지정이 되었을 뿐이다.


2. 주요 인물들[편집]


  • 삼간: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스즈키 데이이치와 가토 하쿠지로는 고정된 상황에서, 시카타 료지와 호시노 나오키[2]가 나머지 한 명으로 이름이 올랐다고 한다. 그 중에서 시카타 료지가 삼간의 멤버로 더 많이 언급된 모양.
  • 사우

적잖은 우리말 문헌에서 무타구치 렌야를 삼간사우로 다루지만 무타구치는 삼대오물이다. 참고로, 삼대오물은 무타구치를 포함해서 스기야마 하지메, 도미나가 교지 등으로 구성된 클럽이다. 츠지 마사노부가 두 범주에 모두 포함되지 않은 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이쪽은 (븅)신이라서 포함될 수 없다


3. 용어 비판론[편집]


이들이 간신배자 멍청이라 쳐도 다른 작자들이 훌륭했던 것도 아니다. 일본군이 결국 전쟁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핵공격을 당하는 지경까지 가서 참패한 것은 일본군 자체의 문제이며, 따라서 그 일본군의 수뇌들인 고위 장교진과 정치인들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삼대오물'과 '삼간사우'는 마치 '특정 집단 내에서 꼬투리를 잡아서 특정 소수를 괴롭히는' 이지메와 거의 비슷한 논리로 당대의 미군 등에 비하면 총체적으로 부진했고, 결국 처참하게 패전한 일본군 내의 일부 소수에게만 멸칭을 붙이고 조롱함으로서 일본군 전체적으로 비판 받아야 할 점을 가리는 일종의 훈제 청어와 책임 가리기용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일본의 총리이자,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다는 멍청한 결정을 함으로서 참혹하게 박살나는 결과를 가져온 진짜 멍청이들고노에 후미마로도조 히데키같은 인물들이 '삼간사우'나 '삼대오물' 같은 별명을 받지 않은 것만 봐도 이 단어들이 뭔가 이상한 게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렇게 이들에게만 책임 전가를 하는 이유는, 이들이 무능했던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에게 책임 전가를 하자니 일본 우익 입장에서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이다. 일단 일본 우익에서는 전쟁 범죄를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수뇌부의 인물이나 악랄하기 그지 없는 사람을 넣는다면 일본군의 전쟁 범죄를 사실 상 인정하는 꼴이 되므로 일본 우익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일 것이다. 그렇다고 무능하면서 악랄하기까지 한 사람을 해당 항목에 넣는다는 것도 문제인 것이 결국 흔히 말하는 악행이라는 게 우익 입장에서는 부인 하거나 나름대로 영웅적인 행위로 인식될 것이고, 그러면 일본 우익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잘한 것도 있는데, 왜 얘네가 오물임?"하면서 역시 납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1)일본 우익은 전쟁 범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전쟁 범죄를 지은 악귀들의 행위를 부인하거나 혹은 악행으로 보지 않고 영웅적인 행동으로 보는 데다가, 2)그에 따라 그런 인물을 간신이니 멍청이니 내세웠다가는 결국 전쟁 범죄를 자인한 꼴이 되니 내세울 수 없고, 3)그렇다고 수뇌부를 찍어 넣자니 이 역시 자폭이며, 4)결국 딱히 꼬투리 잡힐 여지가 없는 그저 무능하기만 한 인물들을 타겟으로 삼아야 일본군의 전범 행위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당장 저 자들중에서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쟤네가 남들보다 더 욕을 먹냐 라고 물어본다면 기무라 헤이타로를 제외하면 어지간한 일본군 전문가들도 답변하기가 힘들 정도로 별 게 없었다[3]. 도조 히데키 측근으로 주로 본토에서 근무하거나 관료적인 일을 하거나 했던 사람들이라 직접적인 전쟁범죄에도 크게 관여한 바 없고[4], 실패한 작전을 입안하거나 지휘할 만한 위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일본 우익 관점에서 이들을 타겟 삼는 게 가장 만만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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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쉽게 비유하자면 삼대오물은 직접 뛰며 말아먹은 놈들, 삼간사우는 말아먹는 것을 지휘한 놈들이다. 그게 그거다[2] 만주국에서 국무원총재장관등의 요직을 맡았으며,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 내각서기장관(내각관방장관)을 맡은 인물.[3] 참고로 기무라 헤이타로는 중일전쟁태평양 전쟁의 개전을 모두 조력했던 인물이었다.[4] 기무라 헤이타로의 경우는 버마 방면군 사령관으로 재직할 당시 버마의 민간인 100만 명을 학살했다는 말이 있으나, 이는 후에 루머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