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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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전(失傳)되어 현재는 존재하지 않음.

번외: 현대 역사서
한국사




1. 개요
2. 내용
3. 특징
4. 의의
5. 목차 구성
파일:삼국사절요.jpg


1. 개요[편집]


三國史節要. 조선 세조 4년, 1458년 9월에 편찬이 시작되어 성종 7년, 1476년에 완성된 삼국의 흥망과 고려의 건국까지를 다룬 편년체 역사서. 총 14권.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삼국사절요는 네이버에서 국역된 버전으로 볼수 있다.링크


2. 내용[편집]


1458년 9월에 세조는 문신들에게 동국통감을 편찬할 것을 명하였다. 이 때 세조는 기존 한반도의 역사책들은 내용이 빈약하고 빠진 것이 많으며 체계가 잡히지 않았으므로, 상고사와 삼국사, 고려사를 하나의 편년으로 합쳐 통사로 편찬하되 삼국사기 같은 몇몇 책에만 의지하지 말고 여러 책에서 자료를 보완하라고 명하였다.

1463년에 또다시 명을 내려 양성지가 여러 유생들과 함께 자료를 더 모으게 하고, 신숙주권람은 이 자료들을 감수하게 했으며 이파(李坡)는 그 출납을 맡도록 하였다.

원래 세조가 목표했던 의도는 김부식삼국사기권근동국사략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고대사 서술이 정치적 견해에 따라 탈락된 것이 많고 특정 국가에만 지나치게 기사가 쏠려있는 문제를 보완하려는 것이었다. 때문에 삼국사기에 누락된 많은 설화전설들을 삼국유사, 수이전, 동국이상국집 등의 다른 책에서 채록하고, 세조가 비판하던 동국사략의 사론까지 수록하였으며, 각 국가 간의 분량을 최대한 균형이 잡히게 서술하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세조가 이용하려던 고기류(古記類)는 너무 허무맹랑하고 내용이 잡다해진다는 신하들의 반대로 참고하지 않았고 때문에 최초의 삼국사절요는 세조 때 수사관(修史官)이 완성한 것이지만 세조 자신이 의도하던 원래의 역사책과는 성격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노력으로 인해 이 책은 이전의 사서보다 고대문화를 훨씬 포용하고 있다.

이렇게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 편찬에 대한 세조의 의지는 대단하였지만 결국 세조대에는 완성하지 못했다. 뒤를 이은 예종최숙정 등에게 계속 편찬할 것을 명했으나, 예종이 곧 죽음으로써 편찬사업은 중단되었다. 이후 성종은 신숙주에게 동국통감을, 이파에게 삼국사절요를 완성하라는 명을 내렸고 1476년 12월 삼국사절요가 완성되었다.


3. 특징[편집]


조선 초기 권근이 쓴 삼국사략(三國史略)이 유년칭원법(踰年稱元法)으로 서술한 것과 반대로 삼국사절요는 삼국이 당시에 스스로 칭하였던 그대로 즉위년칭원법을 채택해 서술하고 있다. 또한, 권근이 신라 중심으로 서술한 것을 고쳐 삼국의 역사를 각각 독립적으로 대등하게 다루었으며 연기(年紀) 또한 중국, 신라, 고구려, 백제의 연기를 작은 글자 2행으로 똑같이 서술했다.

단군조선 등 삼국 이전의 상고사 역시 외기(外紀)로서 서술하고 있으나 권수에 넣지는 않았다. 때문에 삼국사절요의 서문이나 표문에는 이 책이 총 14권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 내용은 외기까지 합쳐 1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4. 의의[편집]


한시대 또는 한국가 정도로만 범위를 잡은 기존의 역사서들과는 달리 기원전 단군조선으로부터 고려의 건국까지 한민족사를 통사의 형식으로 편년체로 서술하여 한민족사의 체계를 잡은 첫 역사서로 후에 만들어진 완성체인 동국통감의 뼈대가 되었다.

또한 내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하였고, 기존 삼국사기에 이용되지 않은 자료들도 보완한 점 등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수이전 같은 책은 오늘날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크다.

마지막으로 현존하는 삼국사기 중 가장 오래된 판본은 13세기 후기에 찍어낸 보물 제722호 성암본이지만 권44에서 50까지 7권밖에 남아있지 않다. 완질 풀셋트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삼국사기는 중종 7년, 1512년에 경주에서 만든 보물 제525호 옥산서원본(玉山書院本)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사기의 완전한 내용은 사실상 옥산서원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옥산서원본은 오자가 아주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삼국사절요에서 인용한 삼국사기의 내용은 고려시대 아니면 조선 태조 초년에 찍은 완성도 높은 판본을 이용한 것으로 현재 알려진 삼국사기의 오자들을 바로잡는 데 아주 귀중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5. 목차 구성[편집]


삼국사절요를 올리는 전과 서문을 시작으로 '외기' 라 하여 단군조선부터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이부 삼한이 소개되어 있고, 이후 14권 분량으로 신라가 건국된 기원전 57년부터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936년까지를 다루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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