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DS 2/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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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삼국지 DS 2
코에이 테크모사의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인 삼국지 DS 2에 등장하는 무장들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해 놓은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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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코에이 테크모사의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인 삼국지 DS 2에 등장하는 무장들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해 놓은 문서이다.
2. 일반 무장[편집]
- 삼국지 무장의 급 S->A->B->C->D->F 순
- S급의 기준
- 1. 통솔+무력->190이상 ex) 관우, 여포 등
- 2. 지력+정치->190이상 ex) 제갈량 등
- 3. 3항목중 2항목이 95이상, 한항목이 90이상
- 4. 통,무,지가 모두 88이상
- 5. 기능 중에 희귀스킬 장착 귀모,낙뢰등
- A급의 기준
- 1. 통+무-> 184 이상
- 2. 군사, 시중 둘다 가능
- 3. 매력 95 이상, 장군, 시중, 군사 중 하나 가능
2.1. ㄱ[편집]
2.2. ㄴ[편집]
2.3. ㄷ[편집]
2.4. ㅁ [편집]
2.5. ㅂ[편집]
2.6. ㅅ[편집]
2.7. ㅇ[편집]
2.8. ㅈ[편집]
2.9. ㅊ[편집]
2.10. ㅌ[편집]
2.11. ㅍ[편집]
2.12. ㅎ[편집]
3. SP 무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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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의 신하. 간의대부. 조창이 조비와 후계자 자리를 두고 싸우려는 것을 만류했다. 대오전에서 조휴의 참모로서 참진, 주방의 거짓 항복을 간파했다.[2] 공손연의 부하장수. 연왕을 참칭하는 공손연을 충고하여 분노를 사, 처형되었다. 후에 자손은 공손연을 토벌한 사마의로부터 작위를 받았다.[3] 위, 진의 신하. 가규의 아들. 사마소의 심복. 황제 · 조모주살을 지휘했다. 종회의 난 후, 촉에 부임해 선도의 혼란을 수습한다. 오토벌에는 소극적이었다.[4] 위의 신하로, 태위. 이각을 받들지만 소외당해 장수의 참모가 된다. 적절한 헌책으로 조조군을 여러 번 물리친 책사. 후에 주군인 장수와 함께 조조에게 귀순했다.[5] 유비의 신하. 유비와 동향. 의용군때부터 수종하여, 사자와 참모로서 활약. 입촉 후에 소덕장군에 임명된다. 대범한 성격이었다고 한다.[6] 오의 장수. 금범이라는 수적출신. 황조의 밑에서 불우하게 있었지만, 소비의 힘으로 손권에 귀순한다. 황조의 공격, 적벽, 위와의 싸움에서 활약하여, 손권의 신임을 받는다.[7] 손권의 신하. 황개, 주유의 「고육지책」 에 협력. 스스로 사자로서 조조의 진에 나가, 지책을 성공시켰다. 촉한군의 침공에 맞서 젊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추천했다.[A] A B C D E F 열전 없음[8] 촉한의 장수. 위를 받들었지만 제1차 북벌 때, 촉한에 투항했다. 제갈량에게 후계자로 인정받아 병법을 맡게 된다. 9번에 걸친 북벌을 시도하여, 국력의 쇠퇴를 불렀다.[9] 위의 농서태수. 등애의 촉 토벌군에 참가. 면죽성의 공방으로, 왕기와 복병을 이끌고 제갈첨군을 물리친다. 촉평정 후에, 등애에 의해 익주각군의 태수에 임명되었다.[10] 원소의 조카. 병주자사. 관도에서 패한 원소를 구하기 위해 출격한다. 후에 호관에서 반조조군을 일으킨다. 이전, 악진 등 조조 휘하의 명장을 상대로 선전하지만, 패한다.[11] 고옹의 손자. 제갈각 등과 함께 손등의 태자사우가 된다. 손화와 손패가 후계를 다투고 있을 때, 손화를 옹호했다. 손패파의 전기 등의 모략으로 유죄가 되어 분사했다.[12] 원소군의 부하장수. 관도전에서는 조조군의 맹장 · 허저를 상대로 싸운다. 후에 동료인 장합과 함께 조조에게 귀순. 여남의 유비군을 공격해, 유벽을 베었다.[13] 촉한의 장수. 제갈량의 북벌에 종군해 목우, 유마를 이용해 검각에서 기산까지 물자를 수송한다. 제갈량의 책략으로 위군에게 목우, 유마를 일부러 빼앗긴다.[14] 여포의 부하장수. 여포를 따라 각지를 전전한 맹장으로, 「함진영」 이란 이명을 가진다. 여포가 패한 후에는 변명없이 깨끗하게 죽음을 맞았다.[15] 오의 신하. 채융의 문하생. 장굉의 천거로 손권을 받들었다. 손권이 제위에 올랐을 때에는 승상에 임명되었다. 과묵하고,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16] 고간의 사촌동생. 위의 사도. 사마의가 모반을 일으켰을 때, 조상 대신 대장군이 되어 조상의 진영을 점거했다.[17] 촉한의 신하. 월준태수. 옹개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지만 제갈량의 이간책으로 인해 항복한다. 옹개, 주포를 쓰러뜨린 공을 인정받아, 익주태수에 임명되었다.[18] 태산군 평양출신으로, 조조에게 불려 승상부에 들어갔다. 조비에 대에 황태자 · 조예의 방비역이 되고, 학술 천문에 뛰어나 달력의 연구를 명받았다.[19] 유장의 부하장수. 양회와 함께 부수관의 수비를 맡았다. 유비의 암살을 계획하지만, 유비의 참모 · 방통에게 간파되어, 반대로 유인당해 처형당했다.[20] 황건적의 장군. 황건의 난 이후에도 여남에서 도적군을 이끌었다. 원소, 유비에게 협력하여 관도전에서는 조조군의 배후를 공격했지만, 하후연에게 죽음을 당했다.[21] 공손도의 아들. 조조군에게 패해 도망쳐 온 원희, 원상 형제를 죽이고 목을 조조에게 보냈다. 그 공으로 조조로부터 양평후 · 좌장군의 지위를 받았다.[22] 공손강의 동생. 공손강에게 원희 등을 죽여 목을 조조에게 보내도록 진언했다. 형의 사후 작위를 잇고, 차기장군에 임하나 후에 조카인 공손연에게 정도를 빼앗겼다.[23] 후한의 요동태수 · 무위장군. 오환 토벌의 공족이 있다. 중원의 전란에 아랑곳 없이 독립상태를 유지 했다. 공손강의 부친.[24] 공손찬의 사촌동생. 동생 · 월의 복수를 위해 출병한 공손찬을 회유하기 위해, 원소로부터 발해태수를 양도받은 일이 있다. 정사에 등장한다.[25] 공손찬의 아들. 부친과 함께 원소군과 싸우지만 역경의 싸움에서 대패, 불타는 누각 안에서 부모와 함께 자살했다. 정사에 등장한다.[26] 연왕. 공손강의 아들. 위, 오의 소란을 틈타 연왕을 자칭, 위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다. 사마의가 이끄는 토벌군에 패해, 항복도 허락받지 못하고 도망치던 중 죽음을 당한다.[27] 공손찬의 동생. 기주의 분할 교섭을 위해, 사자로서 원소를 방문한다. 그러나 원소는 분할의 뜻이 없었고, 돌아가는 길에 잠복했던 병사에게 암살당했다.[28] 후한의 북평태수. 유비와 함께 동학했다. 백마만으로 편제된 「백마의종」 의 정예부대를 이끌고, 황건 토벌과 이민족 제압에 활약했다.[29] 후한의 예주자사. 군을 이끌고 반동탁 동맹에 참가한다. 정사에 의하면, 인물비평과 청담고론에는 뛰어났지만, 군의 지휘관으로서는 무능했다고 한다.[30] 무릉태수 · 금선의 부하. 금선이 장비에게 공격받았을 때, 항복하나 허락되지 않아 도망쳐 온 금선의 목을 베어 투항. 그 후임인 무릉태수에 임명되었다.[31] 조조의 신하. 뛰어난 지략과 판단력을 가져 신뢰를 얻었다. 하북 평정시에 병에 걸려 38세에 죽는다. 적벽의 패전 후, 조조는 「곽가가 있었더라면」 하고 한탄했다.[32] 원소의 부하신하. 관도전에서 오소를 습격받았을 때 「지금이 바로 조조 본진을 공격할 때」 라고 진언, 패배를 부른다. 원소 사후에는 원담의 참모역이 되었다.[33] 조조의 부하용장. 조조의 거병 당시부터 함께 각지를 전전하여, 장료, 우금, 서황, 장합과 대등한 위의 명장으로서 칭찬받았다.[34] 동탁의 부하장수. 동탁의 사후, 가후의 진언으로 장안을 급습. 왕윤을 죽이고, 이각과 조정을 좌지우지했다. 후에 산적이 되어 부하인 오습에게 살해당했다.[35] 원술의 무장. 원술의 여포 토벌군에서 부대간의 연락을 담당했다. 원술이 대패하고 조조에게 공격당하자 양강, 이풍, 진기와 함께 수춘을 지키다가 죽음을 당했다.[36] 촉한의 신하. 시중. 북벌을 앞두고 제갈량이 상주한 「출사표」 에는 동윤, 비위와 견주어 성실순충한 인물이라하여, 궁중에서의 제건을 모두 맡는다.[37] 촉한의 장수. 곽준의 아들. 건녕태수. 성도 함락 후에도, 건녕에서 저항을 계속했으나, 유선의 신변의 안전을 확인한 후, 부하와 함께 투항했다.[38] 유표의 장수로, 촉한의 장수 · 곽익의 부친. 유비가 형주를 지배하자 유비를 섬긴다. 맹달과 함께 가맹관의 수비에 임했다.[39] 위의 신하. 곽가의 아들. 곽가의 사후, 조조의 거처에 맡겨진다. 후에 위의 태자문학이 된다. 박학했으나, 상대에 따라 태도를 달리했다고 한다.[40] 위의 장수. 행군사마로서 조진, 사마의의 밑에서 일군을 이끈다. 후에 옹주자사에 취임, 위에 반란한 하후패를 추격한다. 철용산에서는 사마소를 구해냈다.[41] 위의 장수. 사마사의 조방폐위에 반대. 양주자사 · 문흠과 함께 위에 반란하지만 실패, 패주하여, 신현현령인 송백을 의지하지만, 속아 살해당했다.[42] 촉한의 장수. 관우의 삼남. 형주가 함락당할 때 부상을 당해, 포가장으로 피해 정양한다. 남정 때에 촉한으로 돌아와 선봉을 맡아, 계락으로 맹획을 잡았다.[43] 촉한의 오호대장의 필두. 유비, 장비와 의형제를 맺는다. 무용이 뛰어나 「병사 일만에 필적한다」 고 평해졌다. 유비의 입촉 후 형주를 지키나, 오군에게 죽음을 당한다.[44] 관흥의 서자. 한수정후. 관흥의 적자인 관통에게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대를 이어 받는다. 종회의 반란 때, 위병에게 살해당했다.[45] 공손찬의 장사. 정사에만 등장한다. 원소군에게 포위당한 공손찬이 자살하자, 뒤를 따라 원소군에게 돌격하여 전사했다.[46] 촉한의 장수. 관흥의 아들이며 관우의 손자. 부친으로부터 한수정후의 지위를 이어받았다. 공주를 처로 맞아 호분중랑장이 되었다. 정사에 등장한다. [47] 유비의 부하장수. 관정의 차남. 관우의 양자가 된다(정사에서 양자의 기술은 없다) 유비의 입촉 후, 부친과 함께 형주를 지키나, 맥성에서 오군에게 죽음을 당한다. [48] 황건적의 장군. 황건의 난 이후, 잔당 수만을 이끌고 북해군을 습격한다. 구원군으로 온 유비군의 관우와 일대일승부를 벌여 수십합의 역전을 펼쳤지만, 전사했다.[49] 촉한의 장수. 관우의 차남. 유비가 오정벌의 군을 일으키자, 참가하여 부친의 원수를 갚는다. 장비의 아들 · 장포와 의형제를 맺어, 함께 북벌전에서 활약했다.[50] 유표의 신하. 괴월의 형. 유표의 보좌역으로서 활약했다. 손견이 형주를 공격했을 때 무장인 여공에게 책략을 전해, 손견을 매복하여 돌과 화살로 공격. 손견을 전사시켰다.[51] 유표의 신하. 괴량의 동생. 조조군의 내습 때, 유표의 후계인 유종에게 항복을 권했다. 조조는 「형주를 얻은 것보다 괴월을 얻은 것에 만족한다」 고 했다.[52] 후한의 동군태수. 군을 인솔해 반동탁 동맹에 참가한다. 동맹결렬 후, 유대로부터 병량차용의 의뢰를 받지만, 이것을 거절한 이유로 살해당했다. 교현의 조카.[53] 원술의 부하장수. 조조가 원술을 공격했을 때, 요격군의 선봉이 된다. 수춘의 경계에서 조조군과 싸우다가, 하후돈에게 베어졌다. 정사에서는 원술에 의해 대장군에 임명되었다.[54] 원소의 부하장수. 계교전에서 중군을 지휘. 공손찬의 장수 · 엄강을 베지만, 적병을 추격 중에, 조운에게 죽음을 당한다. 정사에서는 교만하게 굴다 원소에게 숙청당했다.[55] 조조의 능리. 정현의 군사였으나, 조조에게 불려 사공의 속관이 되었다. 둔전의 사무를 담당하며, 인구통계 등의 정무에 수완을 발휘했다.[56] 촉한의 비서령. 제갈량의 북벌 시에는 내정에 종사한다. 촉한의 멸망 후는 낙양에 보내진다. 나라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연회자리에서 들떠있는 유선에게 간언했다.[57] 무릉태수. 장비가 무릉을 공격해 왔을 때, 부하인 공지의 제지를 듣지 않고 출진한다. 장비에게 패해, 성에 돌아왔을 때 공지의 활을 맞고 사망했다.[58] 금선의 아들. 전한시대부터 대대로 한조를 섬긴 공신. 조조의 전횡을 보다 못해, 시중인 경기와 반란을 꾀하나 계획이 누설되어, 공격을 받아 일족이 몰살당한다.[59] 원술의 부하장수. 삼첨도의 명수. 유비군이 공격해 왔을 때 명장 · 관우를 상대로 삼십합을 겨뤘다. 후에 원술의 명으로 유비를 공격하지만 여포의 중재로 병사를 물린다.[60] 손권의 신하. 회계 오상출신. 의모에게 효를 다하는 청빈한 인물로서 그 명성이 자자했다. 오를 향한 제갈량과 논쟁을 펼치려 했으나, 황개에게 저지당했다.[61] 유장군의 부하장수. 등현과 공동으로, 유비군의 황충, 위연과 싸운다. 잡히지만 투항하는 척하고 도망쳤기 때문에, 다시 잡혔을 때는 처형되었다.[62] 오의 신하. 문무양도의 명사. 주유의 천거로 손권을 받든다. 적벽대전에서는 유비와 연합해 결전하기를 주장했다. 주유의 사후, 도독에 임명되어진다.[63] 후한의 충신. 유비, 공손찬의 학문의 스승. 중랑장으로서 황건적 토벌군을 통솔, 공적을 올렸다. 후에, 상서로서 동탁의 소제폐위를 충고했다.[64] 유장의 장수. 오의 등과 함께 유비군을 막지만, 포위되어 투항했다. 파서의 수비에 임해 위장 · 장합을 상대로 선전하나 복병에게 퇴로를 끊겨 전사했다.[65] 원술의 장수. 제위에 올라 사치를 부리는 원술을 단념하고, 진란과 함께 숭산에 들어가 산적이 된다. 후에 패잔한 원술군을 덮쳐 금품을 강탈했다.[66] 종남산의 은자 · 몽매거사. 위수에서 마초의 공세에 고민하는 조조에게, 얼음성을 짓도록 진언한다. 정사에서는 조조도 감탄하는 책모가였지만, 실언을 하여 처형되었다.[67] 오의 신하. 대사농. 손호의 폭정을 만류하여 처형된 중신의 일인. 정사에 따르면, 청렴한 인격자로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68] 손책의 부하장수. 능통의 부친. 오군의 엄백호를 물리친 후, 손책에게 귀순하여 종정교위에 임명되었다. 황조와의 싸움에서 감녕의 화살을 맞아 전사하였다.[69] 오의 무장. 능조의 아들. 오에 귀순한 감녕을 부친의 원수로서 노린다. 위장 · 악진과의 전투에서, 감녕이 목숨을 구해준 것을 계기로, 친교를 맹세했다.[70] 공손찬의 부하장수. 연주자사에 임명되어 원소 방면의 수비를 담당한다. 원소에게 협력한 조조군에게 패한다. 정사에 등장한다.[71] 오의 장수. 촉한군과의 싸움에서 아군인 이이를 구하기 위해, 장포에게 활을 쏘아 낙마시켰다. 다음날, 관흥에게 생포되어 촉한 진영에서 처형되었다.[72] 요서 오환의 수령. 조조에게 쫓겨 북방으로 도망쳐 온 원소의 아들 · 원희와 원상의 편에 서서 조조군과 싸우지만, 조조의 대장 · 장료에게 죽음을 당했다.[73] 위의 등애의 참모. 263년, 등애가 강유에게 대패했을 때, 촉의 황호에게 뇌물을 보내 강유가 위에 투항하려 한다는 가짜 정보를 흘려, 강유를 퇴각시켰다.[74] 강유의 부장. 263년, 위의 제갈서에게 퇴로를 끊겨 진퇴난양의 강유에게 계책을 진언. 책략을 따른 촉군을 옹주를 공격하여 제갈서를 유인, 무사히 검각으로 퇴진했다.[75] 강유의 부장. 263년, 위의 제갈서에게 퇴로를 끊겨 진퇴난양의 강유에게 계책을 진언. 책략을 따른 촉군을 옹주를 공격하여 제갈서를 유인, 무사히 검각으로 퇴진했다.[76] 오의 장군. 제갈탄이 사마씨에 마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원군으로 파견된다. 패하여 붙잡히자 위에 항복한다. 후에 위에 중용되었다.[77] 유비의 부하. 황충과 함께 유장군과 싸워, 잇달아 유장군을 물리쳤다.[78] 맹획의 처의 동생. 제갈량을 토벌하기 위해 목록대왕을 추천하고, 스스로 구원요청에 향했다. 그리고 목록대왕의 패전 후에는, 오과국의 도움을 청하도록 권했다.[79] 위의 장수. 사마의의 명으로 장합의 부장으로서 제갈량의 진을 덮치지만, 포위당해 장합에게 구출되었다. 제갈량과 사마의의 경쟁이 한창일 때 잡혀, 체면에 먹칠을 당했다.[80] 서주목. 반동탁 동맹에 참가한 제후의 일인. 조조의 공격을 받아 공융, 유비에게 구원을 청한다. 그 후, 병에 걸려, 유비에게 서주의 통치를 간원한다.[81] 오의 장수. 수군으로 진의 침공에 대항하려 하나, 하룻밤 사이에 2만의 병사가 모두 도망가 버려, 싸우지도 못하고 궤멸했다.[82] 촉한의 신하. 제갈량을 따라 남정, 북벌에 종군한다. 위의 침공에 맞서 강유와 함께 검각을 수비한다. 촉한 멸망 후, 마음의 병을 얻어 사망한다.[83] 남만의 왕 · 맹획의 장수. 제이동의 원수. 아회남 등과 함께 맹획의 원군으로 참진하지만, 붙잡힌다. 제갈량에 의해 석방되었다.[84] 동탁의 아우. 형 · 동탁이 헌제를 옹호하여 권력을 쥐게 되자, 좌장군의 지위에 올랐다. 여포의 배신으로 동탁이 살해되자, 같은 죄로 처형되었다.[85] 후한의 신하. 정의랑. 헌제, 조조에게 허창으로의 천도를 권했다. 조조의 위공 즉위 때에는 천거의 상주문을 작성했다.[86] 오의 장수. 손책에게 우번, 화타를 소개했다. 유수방위전에서는 선전하나, 열풍 때문에 배가 전복되어 익사했다. 후에 손권이 시체를 찾게 해 매장했다.[87] 후한의 장군. 거기장군. 헌제의 장인. 헌제로부터 「조조를 암살하라」 는 밀척을 받고, 계획을 세우다 하인 진경동의 밀고로 발각되어, 처형되었다.[88] 촉한의 황문시랑. 겸허하고 공명정대한 성격. 촉의 제갈량, 장완, 비위와 견주어 「사상」 이라 불렸다. 그의 생존 중에는 환관 · 황호도 제멋대로 할 수 없었다.[89] 후한의 병주자사였으나, 하진의 소집에 응해 상경, 혼란을 틈타 권세를 잡는다. 소제폐립, 장안천도, 대사지칭 등 횡포를 다하지만, 왕윤, 여포에게 살해당했다.[90] 위의 7군을 지휘하는 장군. 형주에서의 관우와의 싸움에서는 우금, 방덕을 따라 참전. 관우의 수공으로 패색이 짙어지자 항복하려 했지만, 분노한 방덕에게 베어졌다.[91] 유비의 부하신하. 본래 유장의 부하. 유비군이 침공해 오자, 유장에게 장로의 가세를 요청하도록 진언했다. 유비의 촉 입성 후에, 장굱중랑장으로 임명되었다.[92] 진의 장수. 「춘수좌씨전」 을 애독하여 스스로 「좌전벽」 이 있다고 칭했다. 오토벌전에서는 진남대장군으로서 군을 이끌어, 파죽지세로 오군을 격파했다.[93] 자는 백유. 오군성도의 사람. 촉의 간의대부로서 유선을 섬긴다. 제갈량의 제2차 북벌에 종군하여, 위군에 패한 진무의 구원에 나서나, 때를 맞추지 못했다.[94] 오과국의 장수. 「등갑군」 3만을 이끈 국왕 올돌골을 따라 출진한다. 그러나 연전연승에 자만하여 제갈량의 함정을 눈치채지 못하고, 최후에는 반사곡에서 불타 죽었다.[95] 위의 장수. 사마의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대촉한전에서 활약했다. 종회와 함께 촉한을 멸했지만, 종회와 대립. 붙잡혀 낙양에 호송되던 도중, 암살되었다.[96] 오의 신하. 태상경. 손준과 짜고, 전횡이 과격한 제갈각을 암살했다. 그 공으로 오의 대사마가 된다. 횡포가 극에 달한 손침의 암살을 꾀하지만, 살해당한다.[97] 촉한의 신하. 자용겸비의 명장. 유비의 사후, 사자로서 촉한과 오의 동맹을 성공시켰다. 북벌에서는 조운과 함께 선봉으로서 일군을 이끌었다.[98] 위의 장수. 등애의 아들. 부친을 따라 단곡에서 강유를 격파한다. 장성전에서는 강유와 격돌해, 호각지세로 싸웠다. 종회의 책략에 걸려 부친과 함께 잡혀 살해당했다.[99] 유장의 부하장수. 맹달의 조카. 맹달을 따라 유비, 조비로 주군을 바꾼다. 후에 맹달이 위에 반기를 들었을 때, 이것을 단념하고 사마의가 이끄는 토벌군에 항복했다.[100] 촉한의 평북장군. 사촌인 마초와 함께 유비에게 귀순했다. 남정, 북벌에서는 군을 인솔해 활약. 제갈량의 사후, 반역한 위연을 처벌했다.[101] 후한의 서량태수. 후한 초기의 명장 · 마원의 자손. 동승 등의 조조 암살계획에 참가. 그 후, 조조의 부름으로 수도에 오르고, 다시 계획을 세우지만 발각되어 처형되었다.[102] 촉한의 신하. 백미의 이명을 가진 준재. 동생 마속과 함께 유비를 섬겼다. 형주를 맡은 관우의 내정을 보좌했다. 이릉전에서는 진의 도면을 제갈량에게 보냈다.[103] 촉한의 장수. 강유성을 수비. 궁정의 부패에 실망하여, 촉의 멸망이 필연적인 것임을 예언. 위장 · 등애에게 항복하고 성도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104] 촉한의 무장. 마양의 동생. 유비에게 「대사를 맡길 수 없다」 고 평가되었다. 남정에서는 참모역으로서 활약하지만, 제1차 북벌에서 명령을 거역하고 대패를 불러, 처형되었다.[105] 한수의 부하장수로 「기본팔기」 의 일인. 가후의 이간계에 걸려 공격해온 마초로부터 주군 · 한수를 지키려고 하나, 일격에 쓰러진다.[106] 위의 장수. 천수태수. 강유의 책략으로 촉한군을 격퇴했다. 그러나 제갈량의 계략에 걸린 강유가 배반하고, 부하인 윤상도 문을 열어 호응했기 때문에, 호로 도망쳤다.[107] 마등의 삼남. 부친 · 마등을 따라, 형 마유와 함께 허창으로 향했다. 황규와의 모반계획이 발각, 도망 중에 위병에게 포위되어 응전하나 사망했다.[108] 마등의 장남. 「금마초」 의 이명을 가진다. 부친의 원수 · 조조를 토벌하려고 서량의 병사를 이끌고 장안을 급습하나 실패. 유비에게 귀순해, 오호대장의 일인이 되었다.[109] 촉한의 장수. 남정에 종군하지만, 축융부인과의 일대일승부에 패했다. 후에 북벌에 참진, 일군을 이끌고 복병과 양동군으로 활약했다. 분위장군.[110] 오의 무장. 관우 토벌전에서는 복병을 이용하여 관우를 잡는다. 포상으로 적토마를 받지만, 적토마를 주인을 따르듯 굶어죽었다고 한다.[111] 마등의 차남. 부친 · 마등이 조조의 부름을 받아, 함께 허창으로 향했다. 그러나 모반계획이 들통나 조조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112] 오의 신하. 좌전군. 손화의 아들 · 손호를 황제에 추천한다. 손호의 즉위 후에 승상에 오르나, 손호에게 간언에 분노를 사, 살해당했다.[113] 위의 신하. 관우군에게 번성이 포위당했을 때, 조인에게 성의 사수를 진언. 관우군의 격퇴에 성공한다. 또한, 촉한의 북벌에 호응한 오군의 움직임을 봉쇄해 대승했다.[114] 남만의 왕 · 맹획의 부장. 맹획의 명으로 제갈량의 남정군을 맞아 싸운다. 왕평을 상대로 대패, 이어서 마대와 싸우지만 토벌당했다.[115] 유장, 유비, 조비를 주군으로 섬긴 무장. 유비의 입촉에 공헌하지만, 관우를 버리고 위에 항복한다. 조비가 죽자 촉한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사마의에게 죽음을 당한다.[116] 남만의 왕 · 맹획의 동생. 제갈량의 남정군과 싸워, 패주하는 형에게 타사대왕을 소개해 촉한군에게 대항하도록 진언했다. 후에 형과 함께 촉한에의 귀순을 맹세했다.[117] 오의 중서랑. 손침의 명으로, 무창에 주둔. 손호의 대에 사공이 되었다. 손호의 자인 원종의 「종」 을 피해 맹인으로 개명했다. [118] 남만의 왕. 유비의 사후, 촉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원정해 온 제갈량을 상대로 싸우지만, 일곱 번 잡혀 일곱 번 풀려나게 된다. 그 후, 진심으로 귀순하게 된다.[119] 조조의 신하. 만총의 천거로 조조의 부하게 된다. 내정에 수완을 발휘했고, 농업을 중시하도록 진언했다. 수군도독에 우금과 함께 지명되었다.[120] 팔납동의 주인. 요술에 뛰어나며 흰 코끼리를 탄다. 촉군에 고전하는 맹획을 스스로 구원에 임한다. 서전, 대왕은 조운 · 위연 등을 물리치지만, 제갈량의 책략에 전사한다.[121] 상당태수 · 장양의 부하장수. 호로괁전에서 쳐들어온 여포를 단기로 맞서지만, 일격에 쓰러졌다. 헌제를 모셨던 환관 · 목순과는 다른 인물.[122] 공융의 부하장수. 호로관전에서 과감하게 여포에게 일대일승부를 도전한다. 특기인 철편으로 상대했으나, 팔이 잘려, 철편을 버리고 도망갔다.[123] 유표의 부하장수. 유종과 함께 조조에게 항복하지만, 나라를 지키지 못한 것을 수치로 여겨 출사하지 않았다. 그 태도가 조조의 마음에 들어, 강하태수를 맡게 된다.[124] 본명은 문숙. 어릴적 이름은 아앙이며 문앙은 통칭. 문흠의 아들. 조운에 비교될 만큼 용맹했으며, 관구검의 난에 가세해 사마사를 괴롭혔다. 부친의 사후, 위에 귀순했다.[125] 원소의 부하맹장. 동료 · 안량의 원수를 갚기 위해 연진에 출진. 조조군의 습격을 받지만, 분전한다. 장료, 서황의 이장을 물리치지만. 관우에게 쓰러졌다.[126] 위의 장수. 양주자사. 조방을 폐위한 사마사의 전횡에 격노하여, 관구검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 패하여 오에 망명하지만, 우군인 제갈탄에게 의심받아, 죽음을 당했다.[127] 강족의 왕. 강유가 북벌군을 일으킬 때. 협력을 요청받아 아하소과에게 5만의 병사를 주어 남안을 공격하게 했지만, 진태의 계략에 빠져 붙잡혔다.[128] 유비의 부하장수. 미축의 동생. 관우의 부하로서 형주남군을 지키지만 동료인 부사인에게 설득되어, 관우를 배반하고 오에 항복한다. 후에 촉으로 돌아오지만 처형되었다.[129] 유비의 신하. 본래 서주의 호상. 도겸의 부하 별가종사. 도겸 사후에는 유비의 보좌역이 된다. 유비의 입촉 후에는 제갈량보다 상위인 안한장군에 임명되었다.[130] 기주자사 · 한복의 부하장수. 범수관 전투에서는 대부를 무기로, 화웅을 상대해 일대일승부를 걸었지만, 역량에 미치지 못하고 베어졌다.[131] 오의 장수. 주연과 협력하여 관우를 잡아, 포상으로 관우의 언월도를 받았다. 후에 관우의 아들 · 관흥에게 쫓기던 중, 관우의 망령을 만나, 놀라고 있을 때 베임을 당한다.[132] 관우의 부하신하로, 치중. 내정면에서는 재능이 있지만, 왕보는 「의심이 많고 이익에 움직여, 신용할 수 없다」 고 평가했다. 관우의 출격 중에 오군이 형주를 공격하자 저항없이 항복했다.[133] 위의 장수. 마초의 부하였지만, 마초가 장로의 밑에 있을 때 병에 걸려, 주종의 인연이 끊어진다. 후에 조조를 받들며 관우를 상대로 분투한다.[134] 하내태수 · 왕광의 부하. 반동탁 연합에 참가해 호로관에서 여포에게 싸움을 걸지만, 겨우 오합에 기마에서 밀려 떨어져 죽었다.[135] 유비의 신하. 제갈량과 동문으로 와룡 · 봉추와 견주어 칭해졌다. 유비의 부하가 되어 촉공략의 총지휘를 맡지만, 전장에서 화살에 맞아 무념의 죽음을 당했다.[136] 방덕의 아들. 방덕이 관우와의 싸움에 나갈 때, 눈물을 흘리며 부친과 헤어진다. 후에 종회 등에 의한 촉토벌이 시작되자, 부하의 한사람으로서 원정에 동행했다.[137] 유장의 부하신하. 파서의 태수로서 한중의 장로에 대비하고 있었다. 유비의 입촉 후에 발탁되어 영중사마의 직을 얻었다.[138] 위의 산기상시. 사마소의 신임을 얻어 제갈탄의 반란진압을 수행. 사마소의 후계자로 사마염을 추천해, 사마염이 진왕이 되자, 가충과 함께 조환에게 선양을 강요했다.[139] 황건적의 장수. 황건의 난 이후, 산적의 두목이 되었다. 관우의 적토마를 강탈하려다가, 상대가 관우란 것을 알고 귀순한다. 벗인 주창을 관우에게 소개했다.[140] 촉한의 신하. 문관으로서 남정, 북벌에 참가한다. 촉한 멸망 후에는 유선과 함께 낙양에 보내진다. 사마소에 의해 후작에 봉해진다.[141] 양주사사 · 유요의 부하. 아군인 간미를 잡은 손책을 습격하지만, 도리어 호통에 놀라 낙마. 그대로 머리가 깨져 죽고 만다.[142] 동탁의 부하장수. 동탁이 죽은 후 공격해 온 마등, 한수군을 격파하고 추격했다. 동향인 한수를 도망치게 했다는 이유, 이각에게 모반죄로 처형당했다.[143] 유비의 신하. 본래 유장의 부하. 장송 등과 유비입촉을 획책. 모략에 뛰어나 한중공략전에서는 참모역이 되었다. 법정이 살아있었다면 이릉의 패전은 없었을 거라고 한다.[144] 오과국의 장수. 국왕 올돌골을 따라 등갑군 3만을 이끌고 맹획을 구원했다. 그리고 반달 동안 15전 15승의 활약을 보였지만, 이것은 제갈량의 계략이었다.[145] 오의 신하. 형주공략전에서는, 관우와 조인의 군세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읽고, 오에 승리를 가져왔다. 손권이 제위에 오르자, 표기장군에 임명되었고, 후에 승상이 되었다.[146] 보즐의 아들이자 보협의 동생. 손호에게 무창에의 천도를 상주했다. 272년, 중앙에의 소환명령에 신변의 위협을 느껴 진에 투항. 육항 등에게 공격받아 처형되었다.[147] 보즐의 아들. 보천의 형. 264년, 구촉영내에 침공하여 육항, 유평, 성만 등과 함께 나헌을 지키는 파동을 포위한다.[148] 오의 신하. 승상. 황제 손휴의 유지를 무시하고, 연장인 손호를 황제로 옹립했다. 손호의 폭정을 충고했기 때문에 불흥을 사, 일족 모두 살해당했다.[149] 원소의 신하. 순욱에게 「용맹하나 다른 의견을 듣지 않는다」 고 평가되었다. 대항의식이 강하고, 전풍을 참언해 자살시켰다. 원소의 사후에는 원상을 후계자로 지지했다.[150] 조조의 부하. 손권을 정벌하려는 조조에게 시기상조라고 상서하여, 이것을 단념하게 했다.[151] 촉한의 무장. 중군호위. 이릉으로 패주하는 군의 배후를 맡았다. 오의 대군을 상대로 분투, 「하느이 대장이 오의 개에게 투항할소냐」 라고 호통을 치고 전사했다.[152] 관우의 부하장수. 공안에 주둔해 관우군의 후방을 지켰지만, 오군의 침공을 받고 항복. 이릉에서 다시 촉한에 항복하려 했지만, 용서받지 못하고 처형되었다.[153] 유표의 신하. 유표의 뒤를 이은 유종에게 조조에의 항복을 진언했다. 그 공으로 조조로부터 관내후에 봉해졌다.[154] 손익의 심복. 손익이 암살당하자 미망인 서씨와 동료들과 함께 주모자를 주살하고, 이문장으로 승진했다.[155] 촉한의 장수. 부동의 아들. 위장 · 이붕, 왕진을 격파하는 전공을 세운다. 양평관에서 위군의 침공을 막지만, 부장 · 장서가 투항. 자신은 난군 가운데 전사했다.[156] 촉한의 신하. 유장의 신하였지만, 유비의 입촉 후에는 그의 부하가 된다. 형주의 관우에게 오호대장의 임명소식을 전했다. 제1차 북벌 때는 성도에 잔류했다.[157] 공손연의 부하장수, 공손연 토벌군을 이끈 사마의와 싸웠으나 패한다. 패주 후, 태세를 정비해 위군을 공격하지만, 하후패에게 수합에 쓰러졌다.[158] 위의 장수. 조진을 따라 제갈량의 제2차 북벌군과 싸운다. 강유의 내응을 의심해 조진을 대신해 출진하지만, 매복하고 있던 강유에게 포위되어 자살했다.[159] 촉한의 신하. 북벌 때에는 장완 등과 함께 성도를 지켰다. 제갈량의 사후에는 상서령이 되어, 장완과 함께 촉한의 국정을 담당했다.[160] 오계만의 왕. 적면벽안. 유비의 오토벌에 협력, 오의 맹장 · 감녕을 사살했다. 화공을 받아 도망가던 중, 오장 · 주태에게 죽음을 당했다.[161] 후한의 신하. 사마의의 형. 주부. 사마의 형제는 모두 뛰어나서 「사마팔달」 이라 불리었다. 정사에서는 후한의 사도 · 순상과 더불어 명사 중의 명사로 꼽힌다.[162] 위, 진의 신하. 사마부의 아들이지만 사마랑의 양자가 된다. 등애의 참모역으로서 촉한과 싸운다. 사마염이 왕위에 오르자, 사도에 명해진다. 물욕이 강했다고 한다.[163] 위의 신하. 사마의의 동생. 태부. 위의 신하로서 입장을 지켰다. 조모의 죽음에 슬퍼하여, 사마염의 제위찬탈 후에도, 위의 폐제 · 조환을 섬겼다고 한다.[164] 위의 신하. 사마의의 장남. 부친의 사후, 위의 대장군이 되어 위세를 떨쳤다. 조방을 페위했기 때문에 관구검의 반란을 부른다. 눈의 혹이 악화되어 사망. 경제로 추존되었다.[165] 위의 신하. 사마의의 차남. 형 · 사마사와 함께 권세를 떨쳤다. 형의 사후, 대장군의 자리를 이었다. 263년에 촉한을 평정하고, 진왕이 되지만 병사. 문제로 추존되었다.[166] 진의 초대황제. 진무제. 사마소의 장남. 위의 황제 · 조환에게 양위를 강요해, 제위에 오른다. 양호와 두예의 권유로, 오를 토벌. 오제 · 손호를 항복시켜 대륙을 통일했다.[167] 사마소의 차남. 형 사마사에게 자식이 없었으므로 뒤를 잇게 되었다. 온화한 성격으로 왕위 후계자가 되려 했지만, 장유유서를 어지럽힌다고 하여 선택되지 못했다.[168] 위의 신하. 조씨 사대를 섬겼다. 촉과의 싸움에서는 수비를 일관하여 승리. 후에 조상과 싸워 위의 실권을 장악하고, 진왕조의 토대를 쌓았다. 진 건국 후, 선제로 추존되었다.[169] 사마의의 육남. 진동대장군. 낭야왕. 오의 토벌 때, 5만의 병사를 이끌고 쳐들어가, 오를 항복시킨 용양장군 · 왕준과 합류하여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다.[170] 오의 장수. 이릉전에서는 손환의 부하로서 촉한과 싸운다. 장포와 싸우지만 적수가 못 되어 도망. 다음 날, 진중에 쳐들어온 장포에게 죽음을 당한다.[171] 위의 장전교위. 강유의 북벌 시 등애의 무장으로서 촉군과 싸웠다. 등애의 촉 토벌에서는 등충과 함께 선봉이 된다. 촉 평정 후, 등애로부터 의주자사에 임명된다.[172] 사마휘의 문하생. 격검의 명수. 유비의 군사로서 활약했지만, 모친이 조조에게 볼모로 잡혀, 부득이 조조를 받들게 되었다. 유비에게 「사마팔달」 이라 불리는 제갈량을 추천했다.[173] 오의 장수. 적벽, 합비, 형주공략 등에 종군했다. 조비가 오를 공격했을 때, 안동장군에 임명되어 오군을 지휘했다. 가짜 성벽으로 위군을 혼란시켜 승리를 얻었다.[174] 동탁의 부하장수. 장안에 천도하는 도중, 조조군이 여포의 복병에게 습격당해 패주하는 것을 추격, 조조의 어깨에 화살을 맞힌다. 그러나, 구원에 나온 하후돈에게 쓰러졌다.[175] 위의 장수. 보국장군. 대부의 명수. 사마사에게 무용을 평가받았다. 요화, 장익과 싸워 물리치나, 철룡산에서 강유를 상대로 싸우다 그의 창에 패한다.[176] 위의 평남장군. 양봉의 부하였지만, 만총의 설득으로 조조에게 귀순한다. 자용이 뛰어나 조조군의 주축으로서 각지를 전전했다.[177] 위, 진의 장수. 위에 반란을 일으킨 제갈탄 토벌전에서 복병을 이끌어 활약. 후에 진의 사마염에 의해 표기장군에 임명되었다.[178] 오의 신하. 손권의 보좌가 된다. 민정의 달인이며, 오의 굴지의 문학가이기도 했다. 후에 태자소부로 임명된다. 제갈량과 논전을 펼치지만 설복당한다.[179] 한수의 부하장수. 하후연이 한수 토벌에 나왔을 때, 강족으로 피신을 헌책했다. 한수의 사후에는 조조에게 투항. 조조의 환영으로 군사가 되어, 열후에 봉해졌다.[180] 한수의 부하. 「기본팔기」 의 일인. 마초와 함께 장안을 공략했지만, 비어있던 적진으로 유인당해 하후연에게 참살당했다.[181] 황조의 부하장수. 강하도독. 도적출신이라 중용되지 않는 감녕을, 타국으로 건너가도록 조처했다. 후에 손권군에게 잡히지만, 손권의 막하에 있던 감녕에게 목숨이 구해졌다.[182] 윈희의 부하. 장남과 함꼐, 원희 · 원상에게 반기를 들고, 요서군으로 몰아부쳐 유주자사를 자칭한다. 그 후, 조조에게 귀순한다.[183] 위의 서조연. 종회에게 촉 토벌을 명한 사마소에게, 대망을 품은 종회에게 병권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언하지만, 사마소는 종회의 야심을 간파하고 있었다.[184] 유비의 신하. 도겸이 죽을 때, 보좌역으로서 유비에게 천거되었다. 참모역, 외교관으로서 유랑하는 유비를 도왔다. 유비의 입촉 후, 미축을 잇는 대우를 받았다.[185] 손자의 후예로 여겨진다. 황건 토벌 등에서 활약해, 장사태수가 된다. 반동탁 동맹군에서는 선봉을 맡았다. 원술, 유표와 싸우다 양양에서 전사. 후에 무열제로 추존되었다.[186] 손견의 사남. 부친이 죽은 후, 강남으로 도주했다. 손책과 친분을 맺으려고한 조조의 알선으로, 조조의 사촌동생 · 조인 (정사에서는 조조의 동생) 의 딸을 아내로 삼았다.[187] 오의 초대 황제. 손견의 차남. 형인 손책이 급사해, 그 자리를 이었다. 적벽대전에서는 조조의 대군을 상대로 승리. 229년, 제위에 올라 오를 건국했다.[188] 오의 좌장군. 진을 공격하려는 손호를 육항이 만류, 그로 인해 육항은 병권을 빼앗기고, 대신하여 군의 지휘를 명받았다.[189] 손권의 장남. 손권의 황제 즉위와 더불어 황태자로 봉해졌다. 총명하고 덕망이 높은 인물로서 장래를 촉망받았지만,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190] 손견의 오남으로, 서자 (생모는 오국태) . 손견의 사후에는 강남으로 피해 있었다. 후에 오의 정무중랑장이 되었다.[191] 손권의 삼남 (정사에서는 칠남) . 오의 2대 황제. 총명했으나, 손침의 전횡을 보다 못해 암살을 꾀하려다 실패한다. 폐위되어, 회계왕으로 밀려났다.[192] 위의 장수. 대석산의 몰이사냥 때, 조예의 앞에 나타난 범을 베어 죽인 공이 있다. 조진, 사마의의 부하장수로서 대촉한전에서 활약한다.[193] 손환의 사촌동생으로, 손견이 유가로부터 얻은 양자. 위군을 요격할 때, 서성과 대립해, 독자적으로 병사를 움직여 위군을 혼란시킨다. 정봉의 도움으로 대승을 거둔다.[194] 오의 무장. 손소의 삼남. 위군의 공격당한 촉을 돕기 위해, 정봉을 따라 촉으로 가지만, 때를 맞추지 못한다. 후에 영군장군으로 승진했다.[195] 오의 장수. 손정의 차남이자 손권의 사촌. 주유가 입촉을 구실로 형주를 공격하려 했을 때, 손권의 명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합류했다.[196] 오의 장수. 손견의 삼남. 단양태수. 맏형인 손책을 닮아 용맹했지만, 난폭하여 술에 취하면 부하를 채찍질했다. 그로인해 연회석에서 부하에게 암살당했다.[197] 손견의 동생. 형이 유표를 공격하려는 것을 「원한 때문에 병사를 일으켜서는 안된다」 며 만류했다. 손견의 사후에는 조카인 손책을 보필. 후에 회계를 수비했다.[198] 오의 장수. 손정의 증손. 제갈각에게 어림군의 지휘권을 빼앗긴다. 등윤과 함께, 전횡이 과격했던 제갈각을 연석에서 살해해, 그 공으로 승상 · 대장군이 되었다.[199] 손견의 장남. 원술로부터 삼천의 병사를 빌려 거병한다. 단기간에 강동 일대를 평정하여 「소패왕」 이라고 불렸다. 수렵 중에 습격을 받아, 그 상처가 원인으로 요절했다.[200] 오의 신하. 손준의 종제. 등윤을 암살하고 병권을 장악했다. 손량을 폐위시키고 손휴를 옹립하나, 손휴의 명을 받은 정봉의 책략에 걸려, 일족 모두가 처형당했다.[201] 오의 최후의 황제. 손화의 아들. 즉위 전에는 칭송을 받았으나, 즉위 후에는 잔학한 행동으로 민심을 잃었다. 진의 공격에 항복하고, 귀명후에 봉해졌다.[202] 손권의 차남 (정사에서는 삼남) . 오의 최후의 황제 손호의 부친. 누이인 전공주로부터 이간질을 당해 궁중에서 쫓겨난다. 손준의 책략으로 자살하게 된다.[203] 오의 무장. 손책으로부터 손씨성을 하사 받는다. 이릉전에서는 부하인 이이, 사정을 잃었다. 촉군에 포위된 이릉성에서 버티며 육손의 원군을 기다렸다.[204] 장패와 함께 여포를 따랐지만 여포가 패했기 때문에 장패를 따라 조조에게 투항했다. 손권 정벌 때 맞은 화살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205] 손권의 육남. 오의 3대 황제. 대장군 · 손침이 황제 · 손량을 폐위시킨 후, 황제로 옹립되었다. 즉위 후, 정봉과 함께 손침을 암살했다.[206] 오의 장수. 표기장군. 진군의 오침공에 맞서 군을 이끌고 하구로 향한다. 진장, 주지의 야습을 받고 「진군은 장강을 날아왔단 말인가」 라며 놀란다. 주지에게 베어진다.[207] 손권의 부하무장. 방천화극을 다뤘다. 손권의 합비를 공격했을 때, 손권을 공격한 위장 · 악진을 맞아 싸우지만, 이전에게 사살되었다.[208] 여포의 부하장수. 동료인 후성이 사소한 일로 태형을 받은 것을 보고 후성, 위속과 함께 조조에게 투항했다. 후에 원소군과의 싸움에서 맹장 · 안양에게 죽음을 당했다.[209] 정사에서는 순욱의 동생. 고간과 함께 기주자사인 한복을 설득해, 기주를 원소에게 양보하게 했다. 후에 원소의 부하가 된다. 원소의 조조 토벌에 찬동해, 대조조전에 종군했다.[210] 원소의 부하장수. 본래 원소, 조조와 같은 서원팔교위의 일인. 관도전에서 병량군의 오소를 지키지만, 술에 취해 조조의 화공을 받아, 화가 난 원소에게 살해당했다.[211] 제갈근의 차남. 본래의 자는 중신. 제갈량의 양자가 되어, 자를 백송으로 개명한다. 제갈량의 후계로 주목을 받았지만, 한중출진 중에 25세의 나이로 요절했다.[212] 조조의 신하. 조조에게 「나의 자방 (전한의 명참모 · 장량) 이다」 라고 평가된 현사. 조조의 위공즉위에 반대했던 직후에 병사하나, 자살이라는 설도 있다.[213] 조조의 신하. 순욱의 조카. 군무에 능숙하여, 전장에서는 많은 조언을 했다. 적벽대전에서는 정욱과 함께 참모로서 종군했다.[214] 순욱의 아들. 진태의 장인. 260년, 사마소가 조모를 죽였을 때, 참내를 거부하는 진태를 설득했다. 사공이 된 후 사마소에게 사마염을 세자로 하도록 권했다.[215] 위의 신하. 신평의 동생. 원씨를 섬기며 원담을 보좌했다. 원씨 멸망 후, 조조를 받든다. 오장원에서 제갈량과 대립하고 있던 위군에 칙서를 보내, 출격을 만류했다.[216] 위의 장수. 상용태수. 조조의 한중방폐 후 촉한에 투항했다. 맹달의 밑에서 상용도위가 되지만 맹달을 설득해 위에 항복했다. 후에 맹달이 촉한에 돌아가려는 것을 막았다.[217] 본래 한복의 신하. 한복이 도망친 후에는 원씨를 받들어 원담의 참모로서 활약한다. 사자로서 조조를 만났을 때, 부하가 되라는 권유를 받지만 사양했다.[218] 원소의 부하신하. 순욱에게 「자기 뜻이 강하고 책이 없다」 고 평가된다. 원소 사후에는 원상을 옹립. 조조군에게 주군이 있는 북쪽을 보며 처형당했다.[219] 오의 장수. 좌장군. 장제를 따라, 지느이 침공에 저항을 계속했다. 한번은 장제에게 항복을 권하지만, 결국 장제와 함께 전투에 임한다. 진장 · 주지에게 죽는다.[220] 서강의 승상. 서평관에서는 저돌적으로 나가 결국 마대에게 생포당한다. 그러나 강족에게 은혜를 베풀기로한 제갈량은 아단을 석방해 철리길에의 전언을 맡겼다.[221] 원상의 부하무장으로, 위의 종요의 조카. 하동태수에 임명되어 고간과 함께 평양공략을 도모했지만, 숙부인 종요와 마초의 연합군에 공격당해, 방덕에게 죽었다고 한다.[222] 요동을 지배한 선비의 왕. 조비의 요청으로 강병 10만을 이끌고 서평관을 공격하지만, 촉의 대장으로 마초가 출진하자, 그 위력을 두려워해, 싸우지 않고 도망쳤다.[223] 강의 장수. 위장 진태의 거짓항복을 믿은 강왕 미당의 명으로 곽회의 진을 습격했다. 그러나 함정에 빠져 적의 포위 속에서 할복했다.[224] 남만왕 맹획의 부하장수. 제3동의 수장. 촉한군과 싸워, 포로가 되나 풀려 난다. 재차 출진했다가 「수치도 모르느냐」 라는 욕을 듣고 군대를 퇴각시켰다.[225] 위의 중신. 본래 손견의 부하로, 인질인 황조와 손견의 유해와의 교환사절이 된다. 후에 조조의 권유로 위를 섬기고, 조비의 대에는 헌제에게 선양을 강요했다.[226] 위의 장수. 양주자사. 악진의 아들. 대촉한전에서 활약한다. 제갈탄의 반란 때, 가충의 밀서를 받았다가 제갈탄의 기습을 받고, 망루에서 참살당했다.[227] 고정의 부하장수. 신장 9척으로 방천극의 명수. 고정군의 선봉으로서 위연 등을 상대로 싸우지만 붙잡힌다. 고정과 함께 항복해, 아문장군에 임명되었다.[228] 원소의 부하맹장. 백마 전투에서는 선봉이 되어 송헌, 위속을 물리쳤다. 연이어 맹장 · 서황을 패주시키지만, 당시 조조의 휘하에 있던 관우에게 일합에 베어진다.[229] 원소의 부하무장. 기주를 둘러싼 원소군과 공손찬군의 대립이 격화, 계옹은 공손찬군의 맹공에 투항했고, 원소군에게 배신자로 불리며, 주령의 눈엣가시가 된다.[230] 장로의 부하무장. 양송의 동생. 장로의 부하로서 출진한 마초의 감시역. 마초가 유비에게 귀순했을 때, 귀순의 증거로 살해당하고 만다.[231] 남만의 은야이십일동 두령. 가세한다는 구실로 접근해서 남만왕 · 맹획과 그의 부하 · 타사대왕을 붙잡아 제갈량에게 바친다. 그 공으로 관직을 수여받았다.[232] 후한의 기도위. 이각의 부하였지만 도망쳐 독립한다. 헌제의 장안탈출에 공을 세웠다. 조조와 권세를 다투다 패해, 원술에게로 도주한다.[233] 위의 천수군 공조. 강유의 벗. 제갈량의 계략으로 강유가 촉군에게 투항했기 때문에, 하후무에게 의심을 받는다. 윤상과 함께 성문을 열고 촉에 투항해 천수태수에 임명된다.[234] 장로의 부하막료. 탐욕스럽고, 재물을 밝히는 인물. 적에게 뇌물을 받고, 방덕으로 하여금 마초를 배반하게 한다. 조조에게 주군을 판 죄로 처형되었다.[235] 조조의 신하. 후한의 태위 · 양표의 아들. 재능은 있지만 조조에게 소외당한다. 원술의 조카라는 이유와, 조식에게 책략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236] 장로의 부하장수. 장영을 따라 양평관을 수비하며 조조군과 싸운다. 양임의 만류를 들지 않고 조조의 본대를 쫓다. 안개 속에서 협격당해 장합에게 베어졌다.[237] 촉한의 신하. 장사로서 북벌의 종군한다. 위연과는 사이가 나빠 제갈량의 사후, 대립하여 위연이 반란하는 원인이 된다. 지위의 불만으로 폭언을 토해 서민으로 전락했다.[238] 장로의 부하장수. 장위를 따라 양평관을 수비하며 조조군과 싸운다. 하후연, 장합을 상대로 선전하지만, 양평관의 함락 후, 하후연에게 죽음을 당했다.[239] 진의 관군장군. 사마염의 양황후의 숙부. 279년, 진이 오를 정벌할 때, 두예의 지휘하에 양양에 주둔하며, 각 군을 감독했다. 후에 팔왕의 난으로 사망.[240] 공손연의 장수. 비연과 함꼐 8만의 병사를 이끌고 선봉에 선다. 지구전에서 사마의에게 대항하지만, 역으로 사마의의 책략에 유인당해 대패했다.[241] 황제의 측근. 삼공을 배출한 명문 양씨의 일족. 내통을 의심받아 투옥되었을 때, 공융의 도움으로 추방 처분에 그치게 된다.[242] 진의 형주자사. 오의 보천이 진에 투항하려 할 때, 원군으로 온다. 보천을 토벌하기 위해 진군해 온 육항 등과 서릉에서 교전하나, 퇴각했다.[243] 한수의 부하. 「기본팔기」 의 일인. 조조에의 화친의 사자였지만, 한수가 마초와 불화하자 투항을 위한 사자가 된다. 마초가 패주한 후, 열후에 봉해졌다.[244] 장양의 부하장수. 조조와 여포의 싸움에서 장양이 여포에게 가세하자, 장양을 죽이고 조조의 편이 된다. 장양의 목을 조조에게 바치려했지만, 동료에게 살해당한다.[245] 진의 장수. 도독으로서, 양양에서 대오최전선을 담당했다. 오의 명장 · 육항과는 적아군을 넘어선 우정을 맺고 있었다. 두예를 천거하고, 병사했다.[246] 원술의 막료. 주의 문왕이 천하의 삼분의 이를 가지고도 은에 복종한 고사를 들며, 옥새를 이용해 제위에 오르려는 원술을 만류했다.[247] 유장의 부하장수. 백수관의 수비도독. 동료인 고패와 함께 유비 암살을 계획한다. 그러나 실행 전에 계획이 발각되어 유비에게 처형당했다.[248] 한수의 부하. 「기본팔기」 의 일인. 가후의 이간계에 걸려 진은 공격해온 마초에 응전하나, 순식간에 죽음을 당한다.[249] 원술의 부하장수. 원술이 여포 토벌군을 일으켰을 때, 독전관이 되지만 대패. 후에 조조가 침공해오자, 수춘에 칩거하며 항전하나 붙잡혀 처형되었다.[250] 공손찬의 부하장수. 계교 전투에서는 일군을 이끌고 출진하지만, 원소군의 장수 · 국의와 싸워 패해, 죽음을 당한다.[251] 오군의 도적. 「동오의 덕왕」 을 자칭한다. 손책에게 토벌당해, 회계의 왕랑을 의지하지만, 손책에게 다시 패주. 무사히 도주했으나 동습에게 살해당해, 목이 손책에게 바쳐졌다.[252] 유비의 부하장수. 유장의 부하로서 파군을 수비한다. 장비와 싸우다 잡히지만, 장비의 태도에 감동하여 귀순한다. 한중공략전에서는 황충을 따라 활약했다.[253] 엄백호의 동생. 엄백호가 손책에게 토벌될 때, 화친의 사자가 된다. 교섭의 자리에서 강동의 절반을 제안해, 격분한 손책에게 참살당한다.[254] 손권의 신하. 동맹사절로 방문한 제갈량과 설전을 벌이지만, 도리어 당하고 만다. 손권이 제위에 오르자 위위에 임명되었다. 후에 상서령이 되었다.[255] 원술의 주부. 옥새를 손에 넣은 원술이 제위에 오르려 할 때, 주의 문왕이 천하의 삼분의 이를 가지면서도 은에 복종한 고사를 인용하며 원술을 만류했다.[256] 명문원가의 출신. 반동탁 연합군의 맹주가 된다. 동탁 사후, 중원에 패를 주창하기 위해 조조와 싸운다. 그러나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화가 되어, 관도전에서 대패한다.[257] 후한의 남양태수. 원소의 이복동생. 손책으로부터 병사의 저당으로 옥새를 맡는다. 이것을 들고 스스로 황제를 칭하지만, 악정을 펼쳤기 때문에 멸망했다.[258] 원술의 아들.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자 황태자에 세워졌다. 원술의 사후에는 여강태수인 유훈에게 몸을 의지한다. 손책이 여강을 공격해 얻자 그의 비호를 받는다. 정사에 등장한다.[259] 원술의 조카. 원술의 사후, 원술의 시체와 그 처자를 지켜 여강으로 피했지만, 잡혀 살해당했다. 그때에 빼앗긴 옥새는 조조에게 헌상되었다.[260] 촉한의 초대 황제. 전한의 중산정왕 · 유승의 후예. 의용군을 결성해 황건적 토벌에 참가, 각지를 전전하다, 마침내 삼국의 한 곳을 손에 넣는다. 촉한소열제.[261] 촉한 2대 황제. 범용온후한 인물. 만년은 주색에 빠져, 환관인 황호를 총애. 촉한을 멸하는 요인이 되었다. 아명 「아두」 는 암우의 대명사로 여겨진다.[262] 후한의 형주목. 명사의 대명사 「강하팔준」 의 일인. 중원의 혼란에 아랑곳 없이, 형주를 안정으로 이끌었다.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대륙통일의 기회를 번번히 놓치게 된다.[263] 오의 장수. 육손의 차남. 오의 마지막 명장이라 불려지는 인물. 서릉전에서는 위군과 반란군에 협공되면서도, 이중의 성벽을 쌓아 승리했다.[264] 조비의 아들 (정사에서는 조조의 아들) 로 연왕. 대장군이 되어 조방을 보좌하라는 명을 받지만 거절했다.[265] 위왕. 황건의 난 때, 기도위로서 토벌에 참가해 두각을 나타냈다. 동탁의 사후, 혼란한 대륙을 종횡하여, 대국 · 위의 주춧돌을 쌓았다. 사후에 무제로 추존되었다.[266] 위의 연왕 조우의 아들. 위왕조 최후의 황제. 사마소의 후원으로 즉위하지만, 진왕 · 사마염에게 선양을 강요당하여 퇴위. 진류왕에 봉해졌다.[267] 조조의 장수. 여포 토벌 후 수도로 향하는 유비의 대리로서 서주를 통치했다. 유비 귀환 후, 조조의 명으로 유비를 암살하려 하지만, 관우에게 죽음을 당한다.[268] 도겸을 받들며, 수송 중인 물자를 횡령해 불교의 사원을 건설했다. 후에 유요의 부하장수로서 손책과 싸우지만 패한다. 유요와 함께 유표를 의지해 달아났다.[269] 유표의 부하장수. 형주의 호족출신. 유표의 후처 · 채부인의 동생. 유종을 후계자로 하기 위해 방해자 유비의 암살을 계획하나, 실패로 끝난다. 수군의 지휘에 뛰어났다.[270] 동탁의 부하. 동탁에게 중용되어 승진을 거듭했다. 동탁의 사후, 왕윤에게 살해당한다.[271] 채모의 사촌동생. 채화와 함께 「매복의 독」 으로서 오에 항복. 주유에게 간파당해 조조의 진까지 안내를 하고 결국, 감녕에게 죽음을 당했다.[272] 채모의 사촌동생. 적벽대전 직전에 채중과 함께 오에 항복한다. 그러나 거짓항복임을 간파한 주유의 「고육지계」 에 걸려, 그릇된 정보를 보내게 된다.[273] 서강의 국왕. 조조의 대 이래, 매년 위에 조공했다. 후에 조진의 구조요청에 응해 아단 · 월길에게 강병 15만을 주어 촉의 서평관을 공격하게 했다.[274] 촉한의 신하. 본래 유장의 부하. 천문학에 일가견이 있어, 자주 천문을 보고 공명의 출병을 진언했다. 촉한의 멸망까지 광록대부로서 봉직했다.[275] 유도의 장수. 유비군에게 맞서지만 장비, 조운에게 당하지 못하고 항복했다. 석방된 후에 재차 공격하지만, 조운의 일격을 받고 낙상해 죽었다.[276] 원소의 부하신하. 헌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은둔생활을 했다. 원소의 패배 후, 조조의 부하가 된다. 조조의 위왕 즉위에 반대하다가 투옥되어 옥중에서 죽음을 당했다.[277] 공손찬의 부하. 어양태수. 본래 유려의 부하인 선우보 등이 천거한 염유와 싸운다. 염유가 이끄는 오환, 선비의 연합군에게 어양을 습격당해, 전사했다.[278] 후한의 신하. 황건적에 대항하기 위해 의용병의 모집을 유쥬태수 · 유언에게 진언한다. 모집에 응한 유비 등을 인솔해 황건적 토벌에서 활약했다.[279] 남만의 왕, 맹획의 아내. 전설의 화신 축융의 자손으로 비도를 던지면 백발백중의 솜씨. 촉군과의 싸움에서 장억 · 마충을 생포했지만 위연 · 마대에게 패했다.[280] 남만독용동의 동주. 네 개의 독천의 안쪽에서 농성하며 촉군을 괴롭혔다. 그러나 촉군은 맹철의 도움을 빌려 진군. 양봉의 손으로 타사대왕을 잡게 했다.[281] 오의 장수. 모친의 권유로, 북해 태수 · 공융의 위기를 구한다. 그 후, 유요를 섬기지만 유요가 손책에게 패하여 손책에게 귀순한다. 손권을 따라 합비를 공략하던 중, 전사한다.[282] 오의 장수. 태사자의 아들. 부친의 사후, 손권에게 거두어졌다. 후에 오의 월기교위가 되었다.[283] 조범의 장수. 계양의 관군교위. 머리가 둘 달린 범을 활로 쏘아 죽였다고 한다. 게양군에 쳐들어온 조운에게 거짓항복을 했다가 발각되어 참수당한다.[284] 촉한의 장수. 관우 복수전의 부장으로서 종군한다. 오장 · 손환을 포위하지만, 육손의 화공에 당해 패배. 동료인 장남과 함께 전사하였다.[285] 위의 신하. 조상의 심복. 조예의 사후. 상서가 되지만, 사마의의 정변 때 죽음을 당했다. 정사에 의하면 후한의 대장군 · 하진의 손자로, 자아도취가 강했다고 있다.[286] 하후돈의 조카로 하후상의 형. 천탕산을 수비했다. 촉장 · 엄안의 화공에 당해, 소화작업에 몰두하다가, 엄안에게 죽음을 당했다.[287] 위의 무장. 조조의 친척. 여포와의 싸움에서 조성의 화살을 맞아 왼쪽 눈을 잃는다. 그러나 그 후에도 군을 인솔해 각지를 전전. 조조의 사후, 뒤를 따르듯이 그 역시 병사했다.[288] 위의 장수. 하후연의 아들로 하후돈의 양자가 된다 (정사에서는 돈의 친자). 쳐들어온 촉한의 군세와 맞서 싸우지만 패배했다. 호로 도망쳐, 돌아오지 않았다.[289] 위의 장수. 하후돈의 조카. 정군산 전투에서는 포로가 되었지만, 진식과의 인질교환으로 위로 돌아왔다. 후에 조진의 부하로서 오를 심로에서 공격했지만, 육손군에게 패했다.[290] 위의 장수. 하후돈의 사촌동생. 조조가 거병할 때부터 군의 일익을 담당했다. 급습이 특기인 명장이지만, 정군산 전투에서 촉장 · 법정의 책략에 빠져 황충에게 베어졌다.[291] 위의 장수. 하후연의 차남. 사마의의 천거로 맏형인 하후패와 함께 대촉한전의 선봉이 되어, 제갈량에게 대항했다. 후에 공손연 토벌에 종군했다.[292] 조조의 측근. 조조 소유의 명검 「청공」 을 보관하고 있었다. 장판파에서 약탈을 벌이려 할 때, 조운에게 죽음을 당해 「청공」 마저 빼앗긴다.[293] 위, 촉한을 받든 무장. 하후연의 장남. 조상이 사마의에게 주살당했을 때, 신변의 위협을 느껴 촉한으로 망명한다. 이후, 강유의 북벌에 종군하여 활약한다.[294] 위의 태상경. 하후상의 아들. 중서령 · 이풍 등과 함께 위제 · 조방으로버터 사마사 암살의 혈조를 받는다. 그러나 계획이 발각되어, 처형당했다.[295] 위의 장수. 하후연의 삼남. 어릴 때부터 문재가 뛰어났다. 남동생의 하후화와 함께, 행군사마로서 종군해, 대촉한 최전선에서 활약했다.[296] 위의 장수. 하후연의 사남. 언변가이며 병법에도 뛰어났다. 사마의 곁에서 행군사마로 종군하여, 제갈량이 이끄는 촉한군과 대치했다.[297] 여포의 부하. 조조에 의해 궁지에 몰린 여포의 사신으로 원술에게 보내지나, 돌아오는 길에 잡혀 목숨을 잃었다. 정사에서는 여포를 배반해, 고순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전해진다.[298] 위의 장수. 사마의의 천거로 진서장군에 승격하여 진창성을 지킨다. 방어에 능숙하여, 3천의 병사로, 제갈량이 이끄는 30만의 군을 20일 넘게 막아냈다.[299] 원소의 부하무장. 대장 · 순우경의 밑에서 병량기지가 있는 오소를 수비했다. 하지만 허유로부터 정보를 얻은 조조에게 습격당해, 병량이 모두 불태워지고 만다.[300] 오의 장수. 손씨 삼대를 받는 고참의 무장. 양주침공, 적벽, 관우 정벌전, 이릉 등 많은 싸움에 참진하여, 오 수군의 일익을 담당했다.[301] 후한의 기주목. 군을 인솔해 반동탁 동맹에 참가한다. 동맹 결렬 후, 근거지를 찾고 있던 원소에게 기주를 빼앗겨, 처자를 버리고 장막에게 몸을 의지했다.[302] 하동군 「백파적」 의 대장. 낙양으로 향하는 헌제를 동승, 양봉등과 함께 경호한다. 조조의 위세를 두려워해, 양봉과 함께 조조를 적대한다. 후에 관우, 장비에게 쓰러졌다.[303] 후한의 병주자사. 의형제인 마등이 조조에게 토벌당하자, 마등의 아들 · 마초와 함께 거병한다. 그러나 이간책에 걸려, 조조에게 항복하려하여 마초에게 왼팔이 베어졌다.[304] 유표의 부하신하로, 종샂중랑장. 조조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허창에 정찰을 나가, 조정으로부터 시중, 영능태수에 임명되었다. 귀국 후, 이것에 노한 유표에게 투옥되었다.[305] 원술의 무장. 여포에게 파견되어 원술의 아들과 여포의 딸과의 혼담을 제시했다. 여포가 원술과 절교하자 허창으로 보내져 조조에게 죽음을 당했다.[306] 장사태수로, 성격이 급함. 부하의 황충이 관우를 쏘아 맞히지 못하여, 내통을 의심해 처형하려고 한다. 그러나 직전에, 위연에게 살해되었다.[307] 후한의 북해태수. 공자 20대 자손. 「건안칠자」 의 일인. 반동탁 동맹군에 참가한다. 후에 조조를 받들지만, 유비 토벌을 만류했기 때문에 처형했다.[308] 유비의 부하신하. 향총의 숙부. 유표를 섬기고 있었지만, 유표 사후, 유비에게 귀순했다. 관우의 보좌로서 형주수비를 맡았다.[309] 촉한의 장수. 향랑의 조카. 북벌 때에 제갈량이 주상한 「출세표」 에, 성격과 품행이 공정하고 군무에 밝은 인물로 평가되었다. 북벌 시에는 후방부대의 통솔을 맡았다.[310] 오군태수. 조조에게 「손책을 경계하라」 는 밀서를 보내려다, 손책에게 발각되어 죽음을 당했다. 후에 그의 식객 세 명이 손책을 습격하여 중상을 입혔다.[311] 원소의 부하막료. 관도전에서는 일찍이 친교가 있던 조조에게 투항, 병량기지 · 오소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 정보에 의한 기습으로 패배 직전의 조조군은 대승리를 거두었다.[312] 위의 장군. 허저의 아들. 촉한 토벌에서는 종회의 부하가 되어 길의 정비를 맡았으나, 종회가 통과했을 때 지반이 허물어져, 참수당했다.[313] 위의 장수. 신장 8척의 거구. 전위와 호각으로 싸워 조조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호위역이 된다. 평상시에는 멍하지만 전장에서는 용맹하여 「호치」 의 이명을 가진다.[314] 촉한의 신하. 유비가 유장에게 항복을 권고할 때, 재빨리 귀순했다. 인물비평의 대가로, 형인 허자장에 견주어졌다.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사도에 임명되었다.[315] 왕식의 부하종사. 유비에게 돌아가는 관우에게 화공을 가하라는 명을 받드나, 이를 거역해 관우를 놓친다. 후에 형주로 향해, 유비의 부하가 된다.[316] 진의 장수. 제갈탄의 반란을 진압했다. 평남장군으로서 오토벌에 참진한다. 두에의 급진책에 반대했지만, 「파죽지세를 이용해야 한다」 고 반론당했다.[317] 위의 장수. 호준의 아들이자 호분의 동생. 종회의 촉 토벌전에 원군으로서 참가. 촉 멸망 후, 모반을 꾀한 종회에게 감금당하지만, 아들 호연과 연락하여 종회를 토벌했다.[318] 위의 장군. 정동장군. 공손연 토벌에서는 군의 선봉에 섰다. 관구검의 난에서 등애, 왕기와 함께 군을 지휘. 관구검을 격파하고 회남 땅을 평정했다.[319] 동탁의 무장. 원소 등의 연합군이 동탁을 공격했을 때, 사수관을 지키는 화웅의 부장으로서 참전. 손견군의 정보에게 죽음을 당한다.[320] 위의 무장. 동완태수. 228년, 오의 주방이 거짓 투항해 왔을 때, 만총과 함께 가규의 휘하에 들어가, 오에 대비했다.[321] 동탁의 부하맹장. 신장 9척. 사수관의 싸움에서 손견군을 물리쳐, 기세를 타고 공격하지만, 관우에게 죽음을 당한다. 정사에서는 반대로, 손견에게 패해 죽음을 당했다.[322] 오의 신하. 중서승. 대외적극책을 진행시키는 손호에게 신중책을 진언하지만, 분노를 사고 궁중에서 쫓겨난다. 오의 장래를 걱정하며 은둔했다.[323] 조조의 신하. 위의 상서령. 한신에서 손책, 조조로 주군을 바꾸었다. 연의에서는 헌제를 협박해 조비에게 양위시킨다. 정사와 연의에서 평가가 전혀 다른 인물이다.[324] 위의 신하. 대사농. 조상의 신임을 받았으며, 「지낭」 이라 불렸다. 사마의에게 항복하려는 조상에게 싸울 것을 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325] 오의 장수. 손견의 거병 이래의 숙장. 철편의 명수. 적벽대전에서는 주유와 협력하여 「고육지계」 를 실행, 조조에게 투항을 가장하여 불을 질러, 오를 승리로 이끈다.[326] 촉한, 위를 받든 장수. 유비의 부하로서 오정벌전에서는 수군을 이끌었지만, 본대 패배로 인해 고립, 어쩔수 없이 위에 항복했다. 투항 후에도 유비에의 충절은 변하지 않았다.[327] 후한의 신하. 황건의 난에서는 장량, 장보군을 화공으로 격파, 장각의 무덤을 파헤쳐 목을 꺼내 들었다. 일시 은둔했지만, 동탁의 사후 조정에 복귀. 태위가 된다.[328] 황권의 아들. 황권이 위에 투항했을 때, 촉에 남았다. 등애가 촉에 쳐들어오자, 제갈첨과 함께 면죽관을 지키지만 전사했다.[329] 위의 시중. 후한 말기에 지방관으로서 공을 쌓고, 중앙으로 돌아와 승상주부가 된다. 그 활약이 조조의 눈에 들어, 양주자사 등의 요직을 역임했다.[330] 유표의 부하장수. 강하의 수장. 기재 · 예형을 술자리에서 살해한다. 도적출신인 감녕을 푸대접하여, 오에 내쳐지게 했다. 오의 장수가 된 감녕에게 죽음을 당했다.[331] 촉한의 장수. 유표, 한현을 섬긴다. 한현의 부하로서 관우와 격투를 벌인다. 유비에 귀순 후에도 군을 인솔해 활약. 유비의 한중왕 즉위에 수반하여, 오호대장에 임명되었다.[332] 촉한의 환관. 유선의 총애를 받아 궁중에서 세력을 펼친다. 심복인 염우가 공적을 세우도록, 강유를 좌천시키려 했다. 촉한의 멸망 후, 나라를 혼란시킨 죄로 처형당했다.[333] 한수의 부하무장. 211년에 마초가 거병했을 때, 한수를 따라 조조와 싸웠다. 마초와 한수의 사이가 결렬되자, 한수와 함께 조조에게 항복했다.[334] 여포의 장수. 농성 중에 금주령을 어겼다하여 체벌을 받는다. 이 폭거로 여포를 단념하고 위속, 송헌과 함께 배반을 결의. 적토마를 훔쳐 조조에게 항복했다.[335] 하내태수 · 장양의 부하가 된다. 장양이 양추에게 살해당하자, 양추를 죽이고 원소의 휘하에 들어간다. 주둔처에서 조조군의 공격으로 죽음을 당했다. 정사에서는 본래 흑산적.[336] 한의 명문 · 견가의 딸. 절세의 미녀로 여겨졌다. 원희의 아내였으나, 조조가 업을 함락했을 때, 조비의 아내가 된다. 조예 등을 나히만, 후에 조비로부터 소외당하게 된다.[337] 원소의 부하무장. 원소의 사후에는 원상을 받든다. 원상으로부터 병량수송의 명을 받아, 상당으로 갔지만, 귀환하기 전에 원상이 패했기 때문에 조조군에 귀순했다.[338] 춘추시대의 사상가. 유교의 선조 · 공자로서 알려진다. 노를 받든 후, 제자들과 함께 제국을 방문. 인을 이상으로 하는 덕치정치를 주창해, 군자의 길을 호소했다.[339] 관정의 장남. 관평의 형. 동생과는 다르게 학문에 힘을 썼다. 관우 천리행때는 부친, 동생과 함께 관우에게 협력한다. 관우의 양자가 된 관평과 달리, 자신은 저택에 남았다.[340] 춘추시대의 명재상. 관중의 이름으로 유명. 병원제도의 개혁, 염업 · 농업에 의한 산업진흥, 법치의 기반확립 등, 탁월한 정책을 내세워, 제 · 환공을 패자로 있게 했다.[341] 촉한의 장수. 실권을 잡은 환관 황호에게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동으로 좌천당해 염우의 부장이 된다. 성도 함락 후, 침공해 온 오의 육향을 막았다.[342] 노숙의 서자. 유수를 지키는 장승에게, 언젠가 자신을 대신해 위의 침입을 막을 인재라고 인정받았다. 무창, 하구의 독을 역임했다.[343] 손책의 아내. 교국로의 딸로, 주유의 처 · 소교의 언니. 절세의 미녀로서 알려져, 소교와 함께 「이교」 라고 칭해진다. 손책은 임종 때, 주유에게 뒷일을 부탁하는 유언을 했다.[344] 위의 정치가. 하동태수로, 두서 · 두리 · 두관의 부친이며 두예의 조부. 순욱에게 추천되어 조조를 받들게 된다. 정사에서만 등장한다.[345] 제갈량의 친구. 석광원 (석도) 와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제갈량의 암자를 방문하려고 하던 유비와 만난다. 이후, 위를 받들어 양주자사가 되어, 정동장군까지 승진했다.[346] 유비의 둘째 부인. 미축의 여동생. 여포나 조조에게 잡히면서도, 유비에게 헌신했다. 후에 장판파에서 조조군의 습격을 당하자, 조운에게 유선을 맡기고, 우물에 몸을 던졌다.[347] 전국시대의 진의 명장. 위 · 한 · 초를 차례차례 격파하고, 장평 전쟁에서는 조군의 사십만을 비인도적으로 죽였다. 그러나 후에 소양왕의 역정을 사, 자해했다.[348] 항우의 군사. 항우로부터 「아부」 로 존경받았다. 수많은 헌책을 했지만, 유방 암살 등은 채용되지 않았다. 후에 이간계에 빠져 항우에게 소외당해, 실의하여 병사했다.[349] 위의 서경. 손권의 부보를 받고, 오를 토벌하려는 사마사에 간언한다. 관구검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사를 도와 작전을 세웠다.[350] 제갈량의 친구. 맹공위 (맹건) 와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제갈량의 암자를 방문하려고 하던 유비와 만난다. 이후, 조비의 대에 위를 받들어 군수, 전농교위 등을 역임했다.[351] 주유의 아내. 교국로의 딸로, 손책의 처 · 대교의 여동생. 절세의 미녀로서 알려져, 대교와 함께 「이교」 라고 칭해진다.[352] 한삼걸의 일인. 유방의 거병 때부터의 막료로, 주로 후방통치 · 병참보급면에서 한군을 계속 받들었다. 후에 한조초대 상국이 되어, 탁월한 수완으로 왕조의 기초를 구축했다.[353] 손견의 딸. 모친은 오국태. 손책, 손권의 이복 남매. 손유동맹의 요점으로서 유비와 정략결혼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양호했다. 동맹관계 악화 후, 오로 돌아간다.[354] 위신 · 신비의 딸. 양탐의 아내로, 양호의 숙모. 사마의가 조상으로부터 정권을 빼앗을 때, 그 목적을 적확하게 간파해 동생 · 신창에게 조상을 돕도록 조언해 도리를 다하게 했다.[355] 전국시대의 명장. 고국 · 중산의 멸망까지 싸워낸 후, 연의 명왕의 성심에 감동해 연을 받든다. 부국강병을 추진하며, 5개국 연합군을 이끌고 제를 격파했다.[356] 양주의 참군. 기성에 들어온 마초에 반기를 들어, 하후연의 협력으로 마초를 쫓아낸다. 장마로 조진의 촉공격이 난항을 격자, 철수를 진언. 조예의 궁전축조도 간언했다.[357] 위의 병주자사. 흉노를 복종시켜 변경을 평정, 농업 잠업을 일으켜 공적을 올렸다. 그 통치는 천하제일이라 평을 받아, 후에 중앙에 올라 대사농에 임해졌다.[358] 가공의 인물. 여포의 딸로서, 물려받은 무용을 자랑하는 미녀라는 설정. 연의에 단역으로 등장하는 여포의 딸을 코에이가 독자적으로 각색한 여성으로, 성명도 창작임.[359] 상주혁명 전쟁의 주역. 태공망의 이름으로 유명. 주 · 문왕의 눈에 띄어 군사가 되어, 수많은 뛰어난 계략으로 주 · 무왕을 보좌. 압도적인 국력차를 군략으로 뒤집어, 상을 쓰러뜨렸다.[360] 한수의 사위. 마등과의 싸움에서 마초를 몰아 붙일 정도의 맹장. 한수에게 조조에의 귀순을 진언하지만, 마초와 손을 잡은 한수에게 쫓겨 조조에게로 도망쳤다.[361] 진의 시황제. 한 · 조 · 위 · 초 · 연 · 제의 6국을 멸해, 사상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다. 수많은 뛰어난 정책을 남기는 반면, 강경한 법치전제 정치는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362] 진말한초의 군웅. 이마에 경 (문신) 이 새겨져 있어 경포라고도 함. 당초는 항우를 받들었지만, 해하 전투에서는 유방의 아군이 된다. 회남왕이 되지만, 유방에게 숙청당한다.[363] 천하의 기재. 공융의 추천으로 조조를 받들게 되나, 조조와 그의 부하를 통렬하게 매도하여 분노를 산다. 유표에게 보내졌지만 폭언은 그치지 않고, 황조에게 참살되었다.[364] 전국시대의 명장. 병법가. 대정치가. 오자의 이름으로 유명. 노 · 위 · 초를 받들어 활약하나, 초에 법치개혁을 단행한 끝에 암살당한다. 전장에서는 일생 무패를 자랑했다.[365] 조앙의 아내. 연의에서는 왕씨. 양부 등이 마초를 토벌했을 때, 아들 · 조월을 인질로 뺏겨 망설이는 조묘에게, 옛주군 · 위강의 원수를 갚아야한다고 설득, 마초를 물리쳤다.[366] 사람들을 선동하는 능력이 뛰어난 인물. 종요에게 천거되어 조조를 받든다. 219년, 진위와 함께 반란을 꾀하나, 진위의 밀고에 의해 탄로나, 살해되었다.[367] 한의 고조. 사수의 정장이었지만 진말의 동란에 거병한다. 진 멸망 후는 항우와 천하를 다투어, 패주를 거듭하면서도 해하 전투에서 승리. 한의 천하통일을 완수했다.[368] 위의 양주자사. 둔전이나 관개, 학교창설 등을 행하여, 합비를 요새화했다. 적벽을 앞두고 조조의 시를 불길하다고 지적해, 취한 조조에게 살해된다. 정사에서 살해에 관한 기술은 없다.[369] 조조의 무장. 조조가 장수, 유표와 싸우고 있었을 무렵, 조조를 받든다. 연의에서는 마등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침공해 온 마초와 싸워, 수합에 목숨을 잃었다.[370] 위의 신하. 하후연의 천거로 경도윤에 임명되어 하후연과 함께 장안을 수비했다. 정사에서는, 후에 옹주자사와 양주자사를 역임하여 시정에 업적을 세웠다.[371] 한삼걸의 일인. 박랑사에서 시황제 암살을 계략. 후에 군사로서 유방을 받들며, 전략면에서 한의 천하통일에 공헌했다. 그 용모는 미녀로 잘못 볼 정도라고 전해진다.[372] 오의 장수. 촉의 제갈량이 제5차 북벌을 감행하자, 손권으로부터 , 손소와 함께 광릉에서 회음을 향해 진격하도록 명받았다.[373] 사마의의 아내. 사마사, 소의 모친. 진의 선목 장황후. 어렸을 때부터 박식했고, 동향인 사마의에게 시집간다. 병상의 사마의를 꼼짝 못하게 했던 일 등, 수많은 일화가 남아있다.[374] 위의 장수. 제갈량의 제5차 북벌에 호응해 오군이 북상하자, 조예의 명으로 양양에 가세하러 나간다. 육손의 계략이 실패로 끝나 오군은 퇴각했다.[375] 병주 (연의에서는 형주) 자사. 하진의 요청을 받아, 군을 이끌고 낙양에 들어간다. 솢제 폐립을 주창하는 동탁과 대립. 양자인 여포에게 배신당해 살해당했다.[376] 조조의 아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여 조조에게 사랑 받았다. 13세에 병사하자, 조조는 조비 등에게 「나에게는 불행이나, 너희에게는 행운」 이라며 애석해했다.[377] 오의 장수. 황란을 비롯하여 산월의 이민족 토벌에 활약. 촉이 위에 병탄되었을 때, 무릉군의 이민족을 제압하기 위해 무릉태수가 되어, 여기에서도 공적을 남겼다.[378] 오의 장수. 손권의 딸과 결혼한다. 표기장군이 되지만, 정적인 손패파에게 참언을 당해 좌천된다. 후에 가짜 조서로 자살을 명받았다. 정사에 등장한다.[379] 촉한의 장수. 유비의 예주 때부터 부하가 되어 각지를 전전, 명성 · 관직의 등급 등 항상 조운에 뒤를 잇는 충의의 용사. 유선 즉위 후, 영안도독 · 정서장군이 된다. 정사에서만 등장한다.[380] 촉한의 신하. 초주에게서 역사를 배웠다. 촉한 멸망 후에는 진을 받들며 「삼국지」 를 편찬. 사찬의 책이었지만, 본인의 사후, 정사로서 인정되었다.[381] 여류 시인. 학자 · 채옹의 딸. 동탁 사후의 혼란기에 흉노에게 끌려가, 좌현왕의 측실로 삼아졌다. 후에 하북을 제압한 조조의 도움으로 중원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장서를 복원했다.[382] 후한의 사도 · 왕윤의 양녀로, 가무에 뛰어난 절세의 미녀. 16세 때, 왕윤이 획책하는 「연환지계」 로, 여포에게 동탁을 토벌하게 했다. 그 후는 여포의 측실이 된다.[383] 제갈량의 친구. 서서와 함께 제갈량의 재치를 인정했다. 유비가 처음 융중을 방문했을 때, 제갈량으로 잘못 알아보았다. 배움을 청하는 유비에게 난세의 도리를 말했다.[384] 동탁의 무장 · 장제의 아내. 남편의 사후, 조카인 장수의 거처에 있었지만, 장수가 조조에게 항복했을 때, 조조가 반하게 된다. 이것에 격노한 장수는, 조조를 배반해 급습했다.[385] 「화관색전」 에 등장하는 여성. 포가장의 포원외의 딸. 발군의 무예와 미모를 자랑. 자신을 이긴 관색과 의기투합해 혼인했다. 가공의 인물이지만 여러가지 일화가 남는다.[386] 춘추시대의 제의 명상. 관중과는 「관포지교」 로 맺어진 친구. 자신을 대신해 관중을 재상으로 삼도록 제 · 환공에게 진언하고, 자신은 관중의 밑에서 제의 패업을 받들었다.[387] 후한의 교위. 전횡을 휘두르는 동탁의 배척을 원소와 왕윤에게 진언한다. 반동탁 동맹에는 제9진으로서 참가. 후에 조조와 함께 청주의 황건적과 싸우다 전사했다.[388] 오의 장수. 손책, 손권을 섬겼다. 육손과 함께 산월 토벌에 활약. 호사스러운 성격으로, 고급의 화려한 무기, 방어구, 군선을 곧잘 사용했다고 한다. 정사에 등장한다.[389] 한삼걸의 일인. 항우를 받들었지만 중용되지 않아, 유방군에 참가한다. 국사무쌍의 대원수로서 별동대를 이끌고 각지에서 승리했다. 통일 후, 모반을 의심받아 살해된다.[390] 조조의 부하장수. 연의에서는 장사태수 · 한현의 동생. 원술의 부하였지만, 하후돈의 권유로 조조를 받든다. 조조에게 둔전제의 필요성을 진언했다.[391] 서초의 패왕. 항우의 이름으로 잘 알려진다. 천하무쌍의 무인이며, 초군을 이끌고 진을 멸한다. 하지만 그 후는 제후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유방과의 해하결전에 패배했다.[392] 장수의 부하용병. 이민족 출신으로 장수군 제일의 호걸. 5백근의 짐을 지고, 하루에 7백리를 걸었다고 한다. 대조조전에서 전위의 극을 훔칠 것을 진언하고, 손수 실행했다.[393] 맹획의 딸. 경극에만 등장하는 가공의 여성. 운난에 원정해 온 관색과 싸우다 포로가 되고, 서로에게 이끌린다. 맹획이 촉군에 항복하자, 두 사람은 혼인했다.[394] 황승언의 딸. 제갈량의 아내. 제갈첨의 모친. 용모는 흉했지만, 천문 지리 병법에 통달한 재녀. 제갈량의 아내가 되어, 남편의 학문을 도왔다. 미녀였다고 하는 전승도 있다.[395] 조조의 부하신하. 순욱의 천거로 조조를 받든다. 책략이 뛰어나 중용되지만 요절한다. 그 후, 순욱은 희지재의 후임에 곽가를 천거하게 된다. 정사에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