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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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열람, 수정 참고
3. 각국 연호 대차표
5. 본편
5.1. 184년 (광화 7년 ~ 중평 원년) - 황건적의 난
5.2. 185년 (중평 2년) - 변장 · 한수의 난 발발
5.3. 186년 (중평 3년) - 조정의 반란 토벌
5.4. 187년 (중평 4년) - 한수가 조정에 투항하다
5.5. 188년 (중평 5년) - 유언, 익주에 자리를 잡다
5.6. 189년 (중평 6년)[1] - 십상시의 난
5.7. 190년 (초평 원년) - 동탁 토벌전 시작
5.8. 191년 (초평 2년) - 반동탁 연합 와해
5.9. 192년 (초평 3년) - 계교 전투동탁의 죽음
5.10. 193년 (초평 4년) - 손견, 유우의 죽음과 제1차 서주 대학살
5.11. 194년 (흥평 원년) - 제2차 서주대학살. 손책이 원술에게 의탁하다
5.12. 195년 (흥평 2년) - 헌제의 장안 탈출. 손책의 거병.
5.13. 196년 (건안 원년) - 여포의 서주 탈취. 조조의 헌제 보위
5.14. 197년 (건안 2년) - 완에서 조조 대패하다.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다
5.15. 198년 (건안 3년) - 서주 공방전.
5.16. 199년 (건안 4년) - 여포의 죽음. 공손찬, 원술이 멸망하고 유비가 허도를 탈출하다
5.17. 200년 (건안 5년) - 관도대전. 손책의 죽음
5.18. 201년 (건안 6년) - 관도대전 전후 상황
5.19. 202년 (건안 7년) - 원소 사망, 원가 형제의 단결과 박망 전투.
5.20. 203년 (건안 8년) - 원가의 분열
5.21. 204년 (건안 9년) - 원상이 업에서 패배하다. 조조의 기주 평정
5.22. 205년 (건안 10년) - 원담이 최후를 맞이하다. 조조의 청주 평정
5.23. 206년 (건안 11년) - 조조의 병주 평정
5.24. 207년 (건안 12년) - 삼고초려, 원가의 멸망과 조조의 남정
5.25. 208년 (건안 13년) - 유표의 죽음. 적벽대전
5.26. 209년 (건안 14년) - 유비의 형주 남부 획득과 장료합비 공방전
5.27. 210년 (건안 15년) - 주유의 죽음과 방통의 출사
5.28. 211년 (건안 16년) - 유비 입촉
5.29. 212년 (건안 17년) - 조조와 마초의 대립. 유비가 유장(劉璋)에게 이빨을 드러내다
5.30. 213년 (건안 18년) - 조조, 위공에 등극하고, 마초는 다시 봉기하다.
5.31. 214년 (건안 19년) - 유비가 촉(蜀)을 평정하다. 마초가 유비에게 투항하다
5.32. 215년 (건안 20년) - 제2차 합비 공방전 발발. 장로가 조조에게 투항하다
5.33. 216년 (건안 21년) - 조조가 위왕(魏王)에 책봉되다
5.34. 217년 (건안 22년) - 조비가 태자로 임명되다
5.35. 218년 (건안 23년) - 조조의 내환
5.36. 219년 (건안 24년) - 한중 공방전과 번성 공방전
5.36.1. 정군산 전투와 한중 공방전
5.36.2. 유비가 한중왕에 등극하다
5.36.3. 형주 공방전 - 관우가 최후를 맞이하다
5.37. 220년 (황초 원년/건안 25년) - 조조의 죽음과 조비의 황제 등극. 한의 멸망(위의 건국)
5.38. 221년 (황초 2년/장무 원년/건안 26년) - 유비가 황제에 오르고 오 정벌을 준비하다
5.39. 222년 (황초 3년/장무 2년/황무 원년) - 이릉대전
5.40. 223년 (황초 4년/건흥 원년/황무 2년) - 유비의 죽음과 세대교체
5.41. 224년 (황초 5년/건흥 2년/황무 3년) - 조비의 2차 오 공격.
5.42. 225년 (황초 6년/건흥 3년/황무 4년) - 공명의 남만 정벌
5.43. 226년 (황초 7년/건흥 4년/황무 5년) - 조비의 죽음
5.44. 227년 (태화 원년/건흥 5년/황무 6년) - 출사표와 제1차 북벌
5.45. 228년 (태화 2년/건흥 6년/황무 7년) - 석정 전투, 가정의 패배와 제2차 북벌
5.46. 229년 (태화 3년/건흥 7년/황룡 원년) - 세 명의 황제, 제3차 북벌, 조운의 병사
5.47. 230년 (태화 4년/건흥 8년/황룡 2년) - 위의 역습
5.48. 231년 (태화 5년/건흥 9년/황룡 3년) - 제4차 북벌과 장합의 죽음
5.49. 232년 (태화 6년/건흥 10년/가화 원년) - 손권이 가화 개원
5.50. 233년 (청룡 원년/건흥 11년/가화 2년) - 청룡 개원
5.51. 234년 (청룡 2년/건흥 12년/가화 3년) - 오장원에 지는 별, 제갈량과 헌제의 죽음
5.52. 235년 (청룡 3년/건흥 13년/가화 4년) - 장완이 대장군에 임명되다
5.53. 236년 (청룡 4년/건흥 14년/가화 5년) - 사마염 탄생
5.54. 237년 (경초 원년/건흥 15년/가화 6년) - 공손연이 연왕(燕王)을 자칭하다
5.55. 238년 (경초 2년/연희 원년/적오 원년) - 공손연이 토벌되고 촉, 오가 각각 개원하다
5.56. 239년 (경초 3년/연희 2년/적오 2년) - 조예 사망
5.57. 240년 (정시 원년/연희 3년/적오 3년) - 조방 즉위
5.58. 241년 (정시 2년/연희 4년/적오 4년) - 손등(孫登)의 죽음, 오의 재북벌
5.59. 242년 (정시 3년/연희 5년/적오 5년) - 감택이 태사태부를 겸하다. 만총이 사망하다
5.60. 243년 (정시 4년/연희 6년/적오 6년) - 문흠의 패퇴, 고옹, 감택, 설종의 죽음
5.61. 244년 (정시 5년/연희 7년/적오 7년) - 흥세 전투와 오에서의 후계 분쟁
5.62. 245년 (정시 6년/연희 8년/적오 8년) - 육손의 분사
5.63. 246년 (정시 7년/연희 9년/적오 9년) - 장완과 동윤의 죽음
5.64. 247년 (정시 8년/연희 10년/적오 10년) - 전종, 보즐의 죽음
5.65. 248년 (정시 9년/연희 11년/적오 11년) - 왕평 사망
5.66. 249년 (가평 원년/연희 12년/적오 12년) - 고평릉 사변과 강유의 첫 북벌[2]
5.67. 250년 (가평 2년/연희 13년/적오 13년) - 강유의 2차 북벌과 오나라의 막장극
5.68. 251년 (가평 3년/연희 14년/태원 원년) - 왕릉의 역모와 사마의의 죽음
5.69. 252년 (가평 4년/연희 15년/건흥 원년) - 3세들의 전쟁 시작. 손권이 죽자 제갈각이 위를 치고, 비의는 부를 열다
5.70. 253년 (가평 5년/연희 16년/건흥 2년) - 비의, 제갈각 암살되다
5.71. 254년 (정원 원년/연희 17년/오봉 원년) - 조방은 폐위되고 강유는 3차 북벌을 일으키다
5.72. 255년 (정원 2년/연희 18년/오봉 2년) - 관구검의 난과 강유의 4차 북벌
5.73. 256년 (감로 원년/연희 19년/태평 원년) - 강유의 5차 북벌과[3] 손준, 여거의 죽음
5.74. 257년 (감로 2년/연희 20년/태평 2년) - 제갈탄의 난과 강유의 6차 북벌
5.75. 258년 (감로 3년/경요 원년/영안 원년) - 손휴의 즉위와 손침의 죽음
5.76. 259년 (감로 4년/경요 2년/영안 2년) - 조모의 잠룡시
5.77. 260년 (경원 원년/경요 3년/영안 3년) - 고귀향공 조모 참살, 진태의 죽음.
5.78. 261년 (경원 2년/경요 4년/영안 4년) - 설후가 황호의 망국적 전횡을 예견하다
5.79. 262년 (경원 3년/경요 5년/영안 5년) - 강유의 마지막 북벌[4]
5.80. 263년 (경원 4년/염흥 원년/영안 6년) - 촉한멸망전 (촉 멸망)
5.81. 264년 (함희 원년/원흥 원년) - 나헌의 분전, 폭군 손호의 즉위, 성도 대학살
5.82. 265년 (함희 2년/태시 원년/감로 원년) - 사마소의 죽음과 사마염의 황제 등극. 위의 멸망, 진(晉)의 개국
5.83. 266년 (태시 2년/보정 원년) - 손호의 숙청과 진오 단교, 곽익의 교지 원정
5.84. 267년 (태시 3년/보정 2년) - 손호가 다시 건업으로 환도
5.85. 268년 (태시 4년/보정 3년) - 곽익의 교주 원정
5.86. 269년 (태시 5년/건형 원년) - 진주 신설, 설후의 교지 원정
5.87. 270년 (태시 6년/건형 2년) - 선비족 독발수기능의 등장
5.88. 271년 (태시 7년/건형 3년) - 진과 오의 교지 쟁탈전, 독발수기능의 선전
5.89. 272년 (태시 8년/봉황 원년) - 양호와 육항의 형주 공방
5.90. 273년 (태시 9년/봉황 2년) - 대도독 육항
5.91. 274년 (태시 10년/봉황 3년) - 육항의 죽음
5.92. 275년 (함녕 원년/천책 원년) - 누현이 숙청되어 자결하다.
5.93. 276년 (함녕 2년/천새 원년) - 손호의 봉선국산비
5.94. 277년 (함녕 3년/천기 원년) - 무너지는 오나라
5.95. 278년 (함녕 4년/천기 2년) - 세상을 떠난 양호, 오의 명장 장정을 격파한 두예
5.96. 279년 (함녕 5년/천기 3년) - 서진이 오나라 정벌을 개시하다
5.97. 280년 (태강 원년/천기 4년) - 오나라 정벌, 손호의 항복. (오 멸망)
6. 삼국통일 이후 - 팔왕의 난오호십육국시대의 서막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원래 삼국시대는 220년 위나라의 건국부터 280년 오나라의 멸망까지 정확히 60년간의 시대를 말한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는 190년부터 280년까지 90년간의 시기를 다루고 있으며, 삼국지연의와 연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창작물들은 보통 184년 황건적의 난부터 시작한다.


2. 열람, 수정 참고[편집]


  • (검은 점)에 기술된 내용은 주된 사건들입니다.
    • (하얀 점)에 기술된 내용은 사건의 전개에 대한 설명입니다.
  • 사건과 사건 전개는 모두 시간순 정렬입니다.


3. 각국 연호 대차표[편집]


각국 연호 대차표
서기
후한(漢)
조위(魏)
촉한(漢)
손오(吳)
서진(晉)
184년
광화(光和) 7년
중평(中平) 원년

185년
2년

186년
3년

187년
4년

188년
5년

189년
6년

190년
초평(初平) 원년

191년
2년

192년
3년

193년
4년

194년
흥평(興平) 원년

195년
2년

196년
건안(建安) 원년

197년
2년

198년
3년

199년
4년

200년
5년

201년
6년

202년
7년

203년
8년

204년
9년

205년
10년

206년
11년

207년
12년

208년
13년

209년
14년

210년
15년

211년
16년

212년
17년

213년
18년

214년
19년

215년
20년

216년
21년

217년
22년

218년
23년

219년
24년

220년
25년
연강(延康) 원년
황초(黃初) 원년

221년

2년
장무(章武) 원년

222년

3년
2년
황무(黃武) 원년[5]

223년

4년
3년
건흥(建興) 원년
2년

224년

5년
2년
3년

225년

6년
3년
4년

226년

7년
4년
5년

227년

태화(太和) 원년
5년
6년

228년

2년
6년
7년

229년

3년
7년
8년
황룡(黃龍) 원년

230년

4년
8년
2년

231년

5년
9년
3년

232년

6년
10년
가화(嘉禾) 원년

233년

7년
청룡(靑龍) 원년
11년
2년

234년

2년
12년
3년

235년

3년
13년
4년

236년

4년
14년
5년

237년

5년
경초(景初) 원년
15년
6년

238년

2년
연희(延熙) 원년
7년
적오(赤烏) 원년

239년

3년
2년
2년

240년

정시(正始) 원년
3년
3년

241년

2년
4년
4년

242년

3년
5년
5년

243년

4년
6년
6년

244년

5년
7년
7년

245년

6년
8년
8년

246년

7년
9년
9년

247년

8년
10년
10년

248년

9년
11년
11년

249년

10년
가평(嘉平) 원년
12년
12년

250년

2년
13년
13년

251년

3년
14년
14년
태원(太元) 원년

252년

4년
15년
2년
신봉(神鳳) 원년
건흥(建興) 원년

253년

5년
16년
2년

254년

6년
정원(正元) 원년
17년
오봉(五鳳) 원년

255년

2년
18년
2년

256년

3년
감로(甘露) 원년
19년
3년
태평(太平) 원년

257년

2년
20년
2년

258년

3년
경요(景耀) 원년
3년
영안(永安) 원년

259년

4년
2년
2년

260년

5년
경원(景元) 원년
3년
3년

261년

2년
4년
4년

262년

3년
5년
5년

263년

4년
6년
염흥(炎興) 원년
6년

264년

5년
함희(咸熙) 원년

7년
원흥(元興) 원년

265년

2년

2년
감로(甘露) 원년
태시(泰始) 원년
266년

2년
보정(寶鼎) 원년
2년
267년

2년
3년
268년

3년
4년
269년

4년
건형(建衡) 원년
5년
270년

2년
6년
271년

3년
7년
272년

봉황(鳳凰) 원년
8년
273년

2년
9년
274년

3년
10년
275년

천책(天冊) 원년
함녕(咸寧) 원년
276년

2년
천새(天璽) 원년
2년
277년

천기(天紀) 원년
3년
278년

2년
4년
279년

3년
5년
280년

4년
태강(太康) 원년


4. 황건적의 난 이전[편집]


  • 127년 영건(永建) 2년
  • 128년 영건(永建) 3년
  • 129년 영건(永建) 4년
  • 132년 양가(陽嘉) 원년
  • 133년 양가(陽嘉) 2년
  • 136년 영화(永和) 원년
  • 137년 영화(永和) 2년
  • 139년 영화(永和) 4년
  • 140년 영화(永和) 5년
  • 141년 영화(永和) 6년
  • 142년 한안(漢安) 원년
  • 144년 건강(建康) 원년
    • 후한 순제가 재위 18년 만에 사망. 외척이자 권신 양기(梁冀)가 2살 된 순제의 아들 유병(劉炳)을 황제로 옹립. 후한 충제(沖帝).
  • 145년 영희(永憙) 원년
    • 후한 충제가 재위 1년 만에 사망. 외척이자 권신 양기(梁冀)가 8살 된 충제의 삼종형제 유찬(劉纘)을 황제로 옹립. 후한 질제(質帝).
    • 화타 탄생.
  • 146년 본초(本初) 원년
    • 후한 질제가 재위 6개월 만에 권신 양기에 의해 독살. 양기가 16살 된 질제의 삼종조부 유지(劉志)를 황제로 옹립. 후한 환제(桓帝).
    • 이 해 이전 한수 탄생.
  • 147년 건화(建和) 원년
  • 148년 건화(建和) 2년
  • 149년 건화(建和) 3년
  • 150년 화평(和平) 원년
  • 151년 원가(元嘉) 원년
  • 152년 원가(元嘉) 2년
  • 153년 영흥(永興) 원년
  • 154년 영흥(永興) 2년
  • 155년 영수(永壽) 원년
  • 156년 영수(永壽) 2년
  • 157년 영수(永壽) 3년
  • 158년 연희(延熹) 원년
  • 159년 연희(延熹) 2년
    • 후한 환제가 환관 선초 등과 함께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권신 양기를 축출하고 그 일당을 주살.
    • 무열황후 탄생.
  • 160년 연희(延熹) 3년
  • 161년 연희(延熹) 4년
    • 유비 탄생. 여대 탄생. 비슷한 시기 관우 탄생.[6]
  • 162년 연희(延熹) 5년
  • 163년 연희(延熹) 6년
  • 164년 연희(延熹) 7년
  • 165년 연희(延熹) 8년
    • 이 즈음 장비 탄생.[7] 비슷한 시기 하후연 탄생.
  • 166년 연희(延熹) 9년
  • 167년 영강(永康) 원년
    • 후한 환제가 재위 21년 만에 사망.
    • 장예 탄생. 왕랑 탄생.
  • 168년 건녕(建寧) 원년
  • 169년 건녕(建寧) 2년
    • 장료 탄생.[8] 전주 탄생.
    • 제2차 당고의 금, 태후 두묘의 일족을 주살.
  • 170년 건녕(建寧) 3년
  • 171년 건녕(建寧) 4년
  • 172년 희평(熹平) 원년
  • 173년 희평(熹平) 2년
  • 174년 희평(熹平) 3년
  • 175년 희평(熹平) 4년
    • 손책 탄생. 주유(周瑜) 탄생. 양수 탄생. 부간 탄생.
    • 조조가 효렴으로 천거되어 출사.
    • 비슷한 시기 유비가 친척 유원기의 도움을 받아 노식의 문하에 입문.
  • 176년 희평(熹平) 5년
  • 177년 희평(熹平) 6년
  • 178년 광화(光和) 원년
  • 179년 광화(光和) 2년
  • 180년 광화(光和) 3년
  • 181년 광화(光和) 4년
  • 182년 광화(光和) 5년
  • 183년 광화(光和) 6년


5. 본편[편집]



5.1. 184년 (광화 7년 ~ 중평 원년) - 황건적의 난[편집]




5.2. 185년 (중평 2년) - 변장 · 한수의 난 발발[편집]




5.3. 186년 (중평 3년) - 조정의 반란 토벌[편집]


  • 이 즈음 유봉 탄생.
  • 조정이 장온(張溫)을 토벌군 장수로 파견.
  • 하제(賀齊)의 산월 진압.[9]


5.4. 187년 (중평 4년) - 한수가 조정에 투항하다[편집]


  • 조비 탄생. 마량 탄생.
  • 한수, 조정에 투항하다.
  • 도겸의 황건적 격파.
  • 장거 · 장순(張純)의 난 - 유비, 공을 세워 안희현위에 제수됨. 독우를 두들겨 패고 관직을 버림, 이후 도위 관구의와 함께 모병하던 중 하비에서 공을 세워 하밀승이 되었다가 관직을 버림.
  • 구성(區星)의 난. - 손견에 의해 평정됨.


5.5. 188년 (중평 5년) - 유언, 익주에 자리를 잡다[편집]




5.6. 189년 (중평 6년)[10] - 십상시의 난[편집]


  • 조창 탄생. 능통 탄생. 제갈균 탄생. 장춘화 탄생.
  • 순욱, 후한에 임관하다.
  • 영제 붕어. 소제(少帝) 즉위.
  • 4월 소제, 광희(光熹)로 개원.
  • 하진건석을 숙청하자 환관에게 피살됨.(십상시의 난)
  • 8월 소제, 소녕(昭寧)으로 개원. 동탁이 소제를 폐위하여 홍농왕(弘農王)으로 강등시키고 소제의 이복동생인 진류왕(陳留王) 유협(劉協)을 즉위시킴. 헌제(獻帝) 즉위.
  • 9월 헌제, 영한(永漢)으로 개원.
  • 12월 헌제, 중평으로 복원.


5.7. 190년 (초평 원년) - 동탁 토벌전 시작[편집]



  • 헌제, 초평(初平)으로 개원.


  • 낭중령 이유, 홍농왕 유변을 독살하다.


  • 동탁이 태부 원외, 태복 원기를 비롯한 낙양의 원씨 일족을 절멸시키다.[11]

  • 동탁, 칙사를 보내 연합의 해산을 권유하나 원소는 칙사들을 죽여 대항의지를 표명. → 각지의 주군에서 원소의 복수를 명분삼아 조정에 반란을 일으키다.

  • 한복(韓馥), 원소의 인기를 견제해 보급선을 끊다. 원소는 하내에서 고립.

  • 하양진 전투: 동탁(勝) vs. 왕광(敗)

  • 형양 전투: 서영(徐栄)(勝) vs. 조조(敗)

  • 양 전투(1차): 서영(勝) vs. 손견(敗)

5.8. 191년 (초평 2년) - 반동탁 연합 와해[편집]




  • 연합군, 원소와 한복을 중심으로 조정을 비정통으로 규정, 대립황제로 유우를 추대하다. → 유우가 제후들의 추대를 한사코 사양하여 유우의 즉위는 무산됨.

  • 공손찬, 연합에 속해있지 않았으나 유우 추대에 격렬히 반대해 기주 공격.

  • 원술, 원소의 유우 옹립에 격렬히 반대해 낙양 진격 주장.

  • 대곡 전투: 손견(勝) vs. 동탁(敗)

  • 낙양 전투: 손견(勝) vs. 여포(敗)


  • 원소, 원술의 학정을 미워한 주씨 형제(주흔, 주앙, 주우)를 회유해 원술을 견제.
    • 주씨 형제, 예주 일대를 장악해 원술군의 전선을 끊다.


  • 원소공손찬과 밀약하여 공손찬이 기주를 침공하다.
    • 안평 전투: 공손찬(勝) vs. 한복(敗)
      • 한복의 장수 국의, 한복에게 반란을 일으키나 패하자 원소와 결탁.
      • 한복이 패하자 흑산적과 장양, 어부라 등이 기주를 공격하나 원소에게 패하다.
      • 장양, 어부라가 원소에게 투항.

  • 유우가 헌제의 장안 탈출을 돕지만 원술과 공손찬의 방해로 무산되다.
    • 공손찬이 사촌동생 공손월을 보내 원술과 연합.

  • 원소가 한복을 협박하여 기주목의 자리를 양도받다. → 원소가 공손찬에게 발해군을 양도하기로 하나 제대로 지키지 않음.


  • 양성 전투: 주앙(勝) vs. 손견(원술)· 공손월(공손찬)(敗)
    • 공손월이 전사. 이로 인해 공손찬이 원소를 원수로 여기다.
    • 공손찬이 선경을 연주자사, 엄강을 기주자사, 전해를 청주자사에 임명한다.
    • 유비는 별부사마 관직을 받고 전해의 부관이 된다.



5.9. 192년 (초평 3년) - 계교 전투동탁의 죽음[편집]



  • 원소, 발해 태수의 지위를 공손찬의 종제 공손범에게 양도하고 화친을 구하다.
    • 공손찬, 청·서주의 황건적을 대파해 수십만을 포로로 잡다.
    • 공손찬, 크게 위세를 떨쳐 계교에 주둔하며 기주를 공격.
    • 계교 전투: 원소(勝) vs. 공손찬(敗)

  • 업 전투: 원소(勝) vs. 두장(장연 휘하의 흑산적)(敗)

  • 용주 전투: 원소(勝) vs. 공손찬(敗)

  • 흑산 전투: 조조(勝) vs. 우독(장연 휘하의 흑산적) · 흉노(敗)

  • 여포동탁 암살.
    • (5월) 장안 전투: 이각 · 곽사(勝) vs. 여포(敗)



  • 청주병: 조조가 복양의 황건적을 병사로 받아들이다.

  • 북해 전투: 공융 · 유비(勝) vs. 관해(管亥)(황건적) (敗)[12]

  • 채옹 사망. 향년 60세.[13]


5.10. 193년 (초평 4년) - 손견, 유우의 죽음과 제1차 서주 대학살[편집]



  • 양양 전투: 유표(勝) vs. 손견(원술)(敗) → 손견 전사.

  • 태복 조기의 중재로 공손찬과 원소 화친. → 흑산의 장연, 위군의 병사들과 내응해 태수를 죽이고 업을 점령하다.

  • 척구 전투: 원소(勝) vs. 우독(장연 휘하의 흑산적)(敗)

  • 업 전투: 원소(勝) vs. 유석(흑산적)(敗)


  • 거용 전투: 공손찬(勝) vs. 유우(敗) → 공손찬이 유우를 처형함.

  • 진류 전투: 조조 · 원소(勝) vs. 원술(敗)

  • 봉구 전투: 조조(勝) vs. 원술 · 우독 (흑산) · 흉노(敗)

  • 발간 전투: 조조 · 원소(勝) vs. 도겸(敗)

  • 흑산 전투: 원소(勝) vs. 장연(흑산)(敗)

  • 팽성 전투 / 제1차 서주대학살(無): 조조 vs. 도겸 · 유비 · 전해 · 공융

  • 오군태수 성헌(盛憲)이 병 중인 것을 틈타 허공(許貢)이 오를 점거함. 휘하의 고대(高岱)가 성헌을 허소에게 숨겨주고 도겸에게 찾아가 피눈물로 원병을 청함. 성헌과 고대는 강남을 탈출함.



5.11. 194년 (흥평 원년) - 제2차 서주대학살. 손책이 원술에게 의탁하다[편집]



  • 헌제, 흥평(興平)으로 개원.

  • 상산 전투: 원소 · 여포(勝) vs. 장연(흑산적)(敗)


  • 여포, 진궁의 헌책에 따라 복양을 탈취하다.
    • 복양 전투(無): 조조 vs. 여포


  • 유비의 서주(徐州) 장악.
    • 병으로 쓰러진 도겸에게서 서주를 물려받다.


  • 여강 전투: 손책(원술)(勝) vs. 육강(敗)

  • 장안(長安) 전투: 이각, 곽사(勝) vs. 마등, 한수, 유언(敗)[14]

  • 양주(凉州) 동부와 사례 서부가 장안을 중심으로 하는 옹주가 되었다. 이는 이각·곽사가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지키기 위해서 했던 것으로 보인다.


5.12. 195년 (흥평 2년) - 헌제의 장안 탈출. 손책의 거병.[편집]




  • 거야 전투: 조조(勝) vs. 여포(敗)
    • 여포, 패주하여 서주의 유비에게 의탁하다.

  • 옹구 전투: 조조(勝) vs. 장초(張超)(敗)

  • 포구 전투: 원소(勝) vs. 공손찬(敗)


  • 손책의 강동 공격[15]

  • 당리구 · 횡강진 전투: 손책(원술) (勝) vs. 유요(敗)
    • 손책의 휘하로 주유가 참전.[16]

  • 오정 전투: 주치(朱治)(손책) (勝) vs. 허공(敗)[17]
    • 엄백호, 허공을 보호함.


5.13. 196년 (건안 원년) - 여포의 서주 탈취. 조조의 헌제 보위[편집]



  • 무평 전투: 조조(勝) vs. 원사(원술 휘하)(敗)


  • 동군 전투: 원소(勝) vs. 장홍(臧洪)(敗)

  • 우이 전투(無): 유비 vs. 기령(원술)

  • 조조가 순욱의 헌책을 받아들여 헌제를 옹립하고 한호(韓浩)의 헌책을 받아들여 둔전제를 실시함.
    • 낙양 전투: 조조(勝) vs. 이각 · 곽사(敗)
    • 장사 전투: 조조 (勝) vs. 양봉(楊奉) · 한섬(韓暹) (敗)
    • 헌제, 건안(建安)으로 개원. 이후 25~27년간의 건안시대가 열림.

  • 여포서주 탈취.
    • 소패 전투: 여포(勝) vs. 유비(敗)
    • 유비가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다.
    • 조조가 유비를 맞이하여 예주으로 삼다.

  • 회계 전투: 손책(원술)(勝) vs. 왕랑(王朗)(敗)
  • 엄백호, 해서(海西)에서 오군태수를 자칭하는 진우(陳瑀)와 제휴함. 손책이 엄백호를 공격함.[18]

  • 엄백호가 동생 엄여를 보내 손책에게 화친을 청하나 손책이 엄여를 처형함.
    • 오군 전투: 여범(손책군)(勝) vs. 진우(敗)
    • 주성(朱城) 전투: 손책(勝) vs. 주숙렴(엄백호의 사위)(敗)
    • 석성산(石城山) 전투: 여몽(勝) vs. 엄백호(敗)
    • 오정 전투: 손책(勝) vs. 엄백호(敗)
  • 엄백호가 허소에게로 도주함. 그 잔당은 후에 진등에 의해 손책의 후방을 급습했다고 알려짐. 손책은 허소의 의로움을 높게 사 그를 공격하지 않음.

  • 허소유요와 함께 회계에서 방향을 틀음. 유표가 임명한 태수 제갈현(제갈량의 숙부)과 조정의 태수 주호가 대립하는 예강으로 이주함.
    • 유요가 주호를 돕기 위해 착융(작융)을 파견함. 허소가 이를 우려함.
    • 작융이 주호를 돕고 제갈현을 몰아내나 주호를 살해함. 유요와 허소가 예장으로 진군함.
    • 허소가 예장(豫章)에서 향년 45세로 사망.[19]
  • 유요가 작융과 싸워 한 번 패하고 다음 싸움에서 작융을 죽임.


5.14. 197년 (건안 2년) - 완에서 조조 대패하다.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다[편집]



  • 유요가 병으로 사망함. 향년 42세.
    • 손책이 시신을 거두고 후이 장사지내며 식솔을 거둠. 손책의 강동 평정.

  • 완 전투: 장수(친 유표 세력)(勝) vs. 조조(敗)
    • 조조가 장제(張濟)의 아내였던 미망인 추씨를 보고 반해 그녀를 취하다.
    • 모사 가후의 계책으로 인해 조조군이 대패하다. 전위(典韋), 조앙(曹昻)이 조조를 지키고 죽다.

  •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고 '중(仲)'을 건국하다.[20]
    • 서주대전역: 여포(勝) vs. 원술(敗)
    • 손책이 원술과 결별하고 자립하다.
    • 수춘 전투: 조조(勝) vs. 원술(敗)


5.15. 198년 (건안 3년) - 서주 공방전.[편집]



  • 양 전투: 장수(勝) vs. 조조(敗)
  • 조조여포 토벌을 시작.
    • 소패 전투(서주 공방전): 고순(여포)(勝) vs. 하후돈(조조)(敗)
  • 환 전투: 손책(勝) vs. 유훈(劉勳)(敗)


5.16. 199년 (건안 4년) - 여포의 죽음. 공손찬, 원술이 멸망하고 유비가 허도를 탈출하다[편집]


  • 장창포 탄생.
  • 하비(下邳) 전투(서주 공방전): 조조(勝) vs. 여포(敗)
    • 장료가 병사를 보존해 조조에게 투항하다.[21]

  • 여포진궁, 고순의 목이 베이다.
  • 역경 전투: 원소(勝) vs. 공손찬 · 장연(공손찬과 동맹 관계의 흑산적) (敗)
    • 공손찬, 역경의 망루에서 식솔을 베고 자살하다.

  • 견성 전투: 사환(史渙)(조조)(勝) vs. 수고(眭固)(원소)(敗)
  • 헌제, 동승(董承)에게 조조 주살의 밀서를 주다.[22]

  • 유비가 허도(허창(許昌)) 탈출.
    • 서주에서 조조로부터 자립하고 원소와 동맹을 맺다.

  • 손책, 주유와 함께 노강의 환성을 함락시키다. 이때 교국로의 두 딸과 만나 손책은 대교(大橋)를, 주유는 소교(小橋)를 아내로 삼다.

  • 서주 전투: 유비(勝) vs. 원술(敗)
    • 원술원소에게 의탁하러 가던 도중 병사한다.
    • 서구가 자신의 인수와 함께 옥새를 조정에 반납한다.
  • 여강 전투: 손책(勝) vs. 유훈(敗) → 유훈이 조조에게 투항.


5.17. 200년 (건안 5년) - 관도대전. 손책의 죽음[편집]


  • 조조동승을 처형하다. 장수가 조조에게 투항하다.
  • 서주 전투(혹은 소패 전투): 조조(勝) vs. 유비(敗)

  • 관도대전 발발
    • 백마 전투: 조조(勝) vs. 안량(敗)
      • (정사와 연의 공통) 관우가 안량의 목을 베다.
    • 연진 전투 : 조조(勝) vs. 문추(敗)
      • 연의에서 관우가 문추의 목을 베다.

  • 광릉 전투: 진등(조조 휘하)(勝) vs. 손책(敗)
  • 여남 전투: 조인(曹仁)(조조 휘하)(勝) vs. 유벽(劉辟)(원소 휘하)(敗)


  • 손책이 허공의 식객들에게 피살되고 손권이 손책의 뒤를 잇다.
    • 손책, 고대를 죽임.
    • 허공, 손책이 위험하니 조정으로 불러들이라고 조정에 상소했다가 죽음.
    • 허공의 식객들이 손책을 습격하여 손책 사망.
      • 연의에서 우길이 죽은 뒤 우길의 저주와 독화살로 사망

  • 관도 전투: 조조(勝) vs. 원소(敗)
    • 조조가 투항한 허유(許攸)를 통해 오소에 군량고가 있다는 정보를 얻다.
    • 조조가 오소의 군량고를 불태우고 순우경을 목베다.
    • 원소군 내부에서 불거진 책임 문제로 장합, 고람조조에게 투항하다. 원소군, 대혼란에 빠져 궤멸하다. 원소는 간신히 목숨을 건지다.

  • 양산 전투: 조인(勝) vs. 유비(敗)


5.18. 201년 (건안 6년) - 관도대전 전후 상황[편집]


  • 유비가 여남에서 조조에게 패해 형주의 유표에게 의지하다.
  • 창정 전투: 조조(勝) vs. 원소?(참전 여부 불분명)(敗)


5.19. 202년 (건안 7년) - 원소 사망, 원가 형제의 단결과 박망 전투.[편집]


  • 강유 탄생.
  • 원소 병사.
  • 1차 여양 전투(無): 조조 vs. 원상 · 원담
  • 평양 전투: 마초(마등) · 종요(조조)(勝) vs. 곽원(원상)(敗)
  • 박망 전투(연의의 박망파 전투)[23]: 유비(유표)(勝) vs. 하후돈(조조)(敗)


5.20. 203년 (건안 8년) - 원가의 분열[편집]


  • 제갈각 탄생.
  • 2차 여양 전투: 조조(勝) vs. 원상 · 원담(敗)
  • 위군 전투: 원상(勝) vs. 조조(敗)[24]

  • 원담원상의 내분이 발생하다.
  • 원담이 조조에게 항복하다.
  • 강하 전투: 황조(유표) vs. 손권(無)
  • 시상 전투: 서성(손권)(勝) vs. 황역(유표)(敗)


5.21. 204년 (건안 9년) - 원상이 업에서 패배하다. 조조의 기주 평정[편집]




5.22. 205년 (건안 10년) - 원담이 최후를 맞이하다. 조조의 청주 평정[편집]


  • 사마망 탄생. 산도 탄생. 조예 탄생.
  • 남피 전투: 조조(勝) vs. 원담(敗) - 원담 사망.
    • 조조에게 청주(靑州)가 평정되다.
    • 원상, 원희는 오환을 의지해 도주하다.


5.23. 206년 (건안 11년) - 조조의 병주 평정[편집]



  • 호관 전투: 조조(勝) vs. 고간(高幹)(敗)
    • 병주의 고간군 전멸.
      • 조조가 병주를 평정하다.


  • 마둔 전투: 손권(勝) vs. 산월(敗)
    • 태사자가 이 해에 남쪽의 반란을 토벌하러 갔다가 풍토병에 걸려 죽었다.


5.24. 207년 (건안 12년) - 삼고초려, 원가의 멸망과 조조의 남정[편집]



  • 강하 전투: 황조(유표) vs. 손권(無)

  • 유성 전투: 조조(勝) vs. 답돈(오환족. 원가를 지원)(敗)
    • 기습에 운 나쁘게 우두머리인 답돈이 전사하고 오환족이 와해됨.
      • 원상, 원희가 공손강에게 몸을 의탁하고 그의 세력을 흡수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 공손강이 원상원희를 붙잡아 목을 베어 조조에게로 보낸다. 이로써 원가 멸망.
      • 곽가 사망.[25]

  • (연의에서) 강하 전투: 유비(勝) vs. 장무(敗)




5.25. 208년 (건안 13년) - 유표의 죽음. 적벽대전[편집]



  • 주유, 감녕의 천하이분지계.
  • 강하 전투: 손권(勝) vs. 황조(유표)(敗) - 황조 전사.


  • 유표 병사.
    •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다.[26]
      • 왕위, 유종에게 조조 암살을 제안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다.

  • 장판 전투: 조조(勝) vs. 유비(敗)
    • 유비가 하구로 도망치다. 장비장판파에서 길을 막다. (장판파 전투)
    • 조운이 유비의 아들을 구해내다.

  • 조조가 강릉을 점령하고 형주의 내정을 재편하다.
    • 제갈량의 유세 - 손권의 탁자(절단) 결의. 손-유연합이 결성되다.

  • 가후가 장기전을 제안했으나 조조가 이를 거절하다.

  • 조조의 연환계.[27]



5.26. 209년 (건안 14년) - 유비의 형주 남부 획득과 장료합비 공방전[편집]


  • 관로 탄생. 손등 탄생. 하후현 탄생. 부하 탄생.
  • 여강 전투: 하후연(조조) (勝) vs. 뇌서(敗)
    • 뇌서가 유비에게 투항하다.
  • 남군 전투(無): 주유(손권) · 관우(유비) vs. 조인(조조)
  • 이릉 전투(無): 주유(손권) vs. 조인(조조).[28]

  • 유비의 형남 4군 정벌.
    • 전부 항복.

  • 1차 합비 공방전(無): 손권 vs. 장료(조조)
    • 연의에서 태사자가 장료의 꾀에 속아 전사한다. 허나 실제로 태사자는 3년 전인 206년에 풍토병으로 죽었다. 또한 실제로는 이릉대전에서 참가한 송겸이 여기서 화살에 맞아 일찍 죽는다.

  • 강릉 전투: 주유(勝) vs. 조인(敗)
  • 유기(劉琦) 병사하고 유비가 형주자사로 임명되다.

  • 유비와 손권의 이복 여동생 손부인(孫婦人)의 정략결혼.


5.27. 210년 (건안 15년) - 주유의 죽음과 방통의 출사[편집]




5.28. 211년 (건안 16년) - 유비 입촉[편집]



  • 대릉 전투: 하후연(조조) (勝) vs. 상요(敗)

  • 조조가 장로 토벌을 시도하다.[29]
    • 엉뚱하게도 조조가 양주(凉州)를 친다고 판단한 관중 군벌의 반발이 마초/한수의 거병으로 이어짐.


  • 여항 전투: 하제(손권)(勝) vs. 낭치(敗)

  • 손권이 본거지를 오에서 말릉으로 옮기고 건업으로 개명(지금의 난징).


5.29. 212년 (건안 17년) - 조조와 마초의 대립. 유비가 유장(劉璋)에게 이빨을 드러내다[편집]


  • 동관 전투: 조조(勝) vs. 마초 · 한수(敗)

  • 위수 전투: 조조(勝) vs. 마초 · 한수 (敗)
    • 가후의 이간책으로 마초와 한수가 틀어져 서로 관계가 끊어짐.
    • 조조가 옹주를 평정하다.

  • 순욱 사망. 향년 50세.[30]

  • 유비유장(劉璋)의 반목.
    • 백수 전투: 유비(勝) vs. 양회(楊懷) · 고패(유장) (敗)
    • 유비가 중랑장 곽준(霍峻)에게 가맹관을 맡김.
    • 장로가 양로를 보내 곽준의 투항을 꾀하나 곽준이 거절함.
    • 유장 수하의 부금과 상존이 가맹관을 포위함.
    • 부 전투: 유비(勝) vs. 유괴(劉璝)(유장)(敗)
    • 면죽 전투 (無): 유비 vs. 유괴



5.30. 213년 (건안 18년) - 조조, 위공에 등극하고, 마초는 다시 봉기하다.[편집]



  • 유수구 전투 (無): 조조 vs. 손권

  • 조조가 위공(魏公)에 등극하다.


  • 마초가 재거병하여 기성을 함락시키다.
    • 마등 등의 허도에 있던 마씨 일가가 연좌제로 처형됨.[31]

  • 마등의 세력권이 다시 한나라(조조)의 영역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되자, 양주가 옹주로 편입됨.


5.31. 214년 (건안 19년) - 유비가 촉(蜀)을 평정하다. 마초가 유비에게 투항하다[편집]



  • 흥수 전투: 하후연(조조)(勝) vs. 한수(敗)
  • 낙 전투[32]: 유비(勝) vs. 유순(敗)
    • 방통 전사. 마초가 유비에게 투항하다.(정사)
  • 환 전투: 손권(勝) vs. 주광(敗)

  • 유비성도(成都)를 함락시키다.
    • 유비 익주목에 오른 후 익주 전역을 장악, 익주를 안정시키다.

  • 포한 전투: 하후연(조조)(勝) vs. 송건(敗)
  • 순유 병사.


5.32. 215년 (건안 20년) - 제2차 합비 공방전 발발. 장로가 조조에게 투항하다[편집]


  • 조조가 강족 · 저족 정벌을 시작하다.
    • 무도 전투: 장합(조조)(勝) vs. 두무(저족)(敗)
    • 하지 전투: 조조(勝) vs. 두무(저족)(敗)
      • 한수가 서량의 장수 국연(麴演)과 장석(蔣石)에게 피살되다.[33]

  • 양평관 전투: 조조(勝) vs. 장위(장로)(敗)
    • 장로, 파서(파중)로 후퇴하다.

  • 유비와 손권의 형주 분쟁 일어나다.
    • 손권이 형남삼도(장사, 영릉, 계양의 3군)에 태수를 파견하나 관우가 몰아내다.
    • 손권이 육구에 주둔하고 노숙파구에 주둔시키고 여몽으로 3군을 공격하여 장사, 계양을 떨어뜨리다.
      • 영릉의 학보는 항복하지 않음.
      • 유비가 공안에 주둔, 관우가 3군 재탈취를 위해 익양에 주둔.
      • 여몽이 등현지를 이용해 학보를 속여 항복시킨 뒤 영릉을 탈취함.

  • 조조의 한중 침공, 장로의 파서 후퇴를 들은 유비와 손권 화친하다.
    • 유비가 강하, 장사, 계양 3군을 영구히 손권에게 이양하고 손권은 영릉을 영구 반환하여 상수를 경계로 형주 분할, 영토 분쟁이 종결나다.

  • 한중 전투: 조조(勝) vs. 장로(敗)
    • 장로가 조조에게 투항하다.
    • 조조가 방덕(龐德)을 얻다.
    • 유비가 황권을 파견, 파서로 피신한 장로를 회유하려 하나 조조에게 이미 항복한 후라 실패하다.



5.33. 216년 (건안 21년) - 조조가 위왕(魏王)에 책봉되다[편집]



  • 단양 전투: 하제 · 육손(손권)(勝) vs. 우돌(敗)

  • 1차 유수구 전투(無): 조조 vs. 손권
  • 조조가 위왕(魏王)에 봉해지다.[34]


5.34. 217년 (건안 22년) - 조비가 태자로 임명되다[편집]


  • 2차 유수구 전투(無): 조조 vs. 손권
    • 손권과 조조가 강화를 맺다.
  • 가후의 헌책을 받아들인 조조가 조비를 태자로 임명하다.
  • 가규의 장남 가충 탄생.



5.35. 218년 (건안 23년) - 조조의 내환[편집]


  • 허도에 화재가 발생하다.
    • 경기(耿紀), 위황, 김의, 길본 등이 모의해 조조 암살을 계획하나 실패하고 주모자는 모두 참수되다.

  • 무도 전투: 조홍(曹洪)(조조)(勝) vs. 오란(유비) (敗)
  • 양평관 전투(無): 하후연(조조) vs. 유비

  • 오환 · 후음이 조조에게 반역하다.
  • 상곡 전투: 조창(曹彰)(조조)(勝) vs. 무신저(오환)(敗)

  • 자동태수 비장군 곽준이 향년 41세로 사망하다.[35]


5.36. 219년 (건안 24년) - 한중 공방전과 번성 공방전[편집]



5.36.1. 정군산 전투와 한중 공방전[편집]


  • 완 전투: 조인(조조)(勝) vs. 후음(敗)
  • 정군산 전투: 유비(勝) vs. 하후연(조조)(敗)
    • 연의에서, 황충이 하후연을 도발해 꾀어내고, 조운이(趙雲) 퇴로를 막아 하후연군을 격퇴함.

  • 정사에서는, 유비가 하후연을 정군산으로 꾀어낸 다음 장합을 습격해서 하후연이 장합을 지원하도록 유도하고, 그로 인해 약해진 하후연군을 황충에게 기습하게 하여 하후연을 격퇴시킴.
  • 육적 사망. 향년 42세.
  • 손정의 증손자이자, 손호의 손자인 손공의 아들 훗날의 막장남. 손준이 탄생하다.
  • 위풍(魏諷)이 위위, 진의와 난을 일으키나 진압되다(위풍의 난). 위풍을 추천한 종요 등이 면직되다.


5.36.2. 유비가 한중왕에 등극하다[편집]


  • 한중 전투: 유비(勝) vs. 조조(敗)
    • 계륵의 일화가 비롯되다.



5.36.3. 형주 공방전 - 관우가 최후를 맞이하다[편집]


  • 1차 번성 전투: 관우(유비)(勝) vs. 조인, 우금(조조)(敗)
    • 연의에서 관우가 둑을 터뜨려 우금이 이끄는 7군을 수몰시키다.

  • 정사 삼국지에서는 관우가 폭우를 예견하고 7군을 꾀어내 수몰시키다.
    • 우금이 유비에게 투항하고 방덕은 전사하다.
    • 허도 근처에서 관우에 호응하는 세력들이 잇따라 반란을 일으키다.[36] 조조가 천도를 결심하나 사마의 등의 제지로 그만두다.
    • 여몽의 계략.
  • 2차 번성 전투: 조인, 서황(徐晃)(조조)(勝) vs. 관우(敗)
  • 조인이 포위된 상황에서 항복할 마음을 가지나 만총의 설득에 수성을 결심한다.
    • 조조에 의해 파견된 서황의 지원군이 번성의 활로를 열다.
    • 남군이 함락되고 미방(糜芳)과 사인(士仁)이 여몽군에게 투항하다.

  • 맥성 전투: 여몽(손권)(勝) vs. 관우(敗)

  • 손권이 본거지를 일시적으로 공안/무창으로 옮김(혹은 주둔). 여몽 사망.

  • 의도 전투: 이이(李異)·사정(謝旌)(손권)(勝) vs. 첨안 · 진봉(유비)(敗)


5.37. 220년 (황초 원년/건안 25년) - 조조의 죽음과 조비의 황제 등극. 한의 멸망(위의 건국)[편집]


  • 1월, 조조 사망.
    • 조비가 조조의 뒤를 이어 승상, 위왕의 자리에 오르다. 연강(延康) 개원.

  • 서천 전투: 소칙(위)(勝) vs. 황화 · 장진(敗)

  • 기세를 몰았던 손권의 신야 공격을 만총이 막아냄.


  • 10월, 헌제가 조비에게 선양하고 후한이 멸망하다.
    • 조비, 를 건국하여 제위에 오르다. 문제(文帝) 조비, 황초(黃初) 개원. 낙양을 수도로 삼다.
    • 유비와 손권이 연강/황초 연호를 인정하지 않고 건안 연호를 계속 사용하다.
  • 위의 진군(陳羣)이 구품중정제(구품관인법)을 실시하다.
  • 옹주와 양주(凉州)가 재분리되다.



5.38. 221년 (황초 2년/장무 원년/건안 26년) - 유비가 황제에 오르고 오 정벌을 준비하다[편집]


  • 4월, 유비의 황제 등극 · 촉한 건국. 장무(章武) 개원. 성도를 수도로 삼다.
    • 아직 살아있는 헌제에게 민제(愍帝)라는 시호를 올림.


  • 7월,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을 일으키다.
    • 장비가 피살되다.
      • 장비를 살해한 장달 · 범강이 손권에게 투항하다.


  • 무 전투: 오반(吳班)(유비)(勝) vs. 이이(손권)(敗)

  • 8월, 손권이 위의 신하가 되어 왕(吳王)에 봉해지다.[37]

  • 오나라에 의해 풀려난 우금이 위나라에 송환된 후 분사하다.


5.39. 222년 (황초 3년/장무 2년/황무 원년) - 이릉대전[편집]




  • 2월, 유비가 효정으로 진출.
  • 6월, 이릉 전투: 육손(오)(勝) vs. 유비(敗)
    • 육손이 제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후퇴하다.
      • 유비가 강을 사이에 두고 지나치게 넓은 지역에 진을 치다. 육손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촉군의 진들을 화계로 공략한다. 촉군 대패하고 많은 지휘관들이 목숨을 잃다.
      • 연의에서 육손이 제갈량이 고안한 팔진도에 갇혀 곤경을 겪다.


  • 9월, 조비1차 오 공격.[38]
    • 서릉 전투(수륙전): 조진, 하후상(위)(勝) vs. 제갈근(오) (敗)
    • 장합(위)(勝) vs. 손성(오)(敗)
    • 장강 전투: 장료 · 조휴(위)(勝) vs. 여범(전종, 서성)(오)(敗)

  • 10월, 손권로부터 자립하고 황무(黃武)로 개원하여 삼국정립이 이루어지다.


  • 황원이 유비에게 반기를 들다가 패배.


5.40. 223년 (황초 4년/건흥 원년/황무 2년) - 유비의 죽음과 세대교체[편집]


  • 남군 전투: 조진(위)(勝) vs. 제갈근(오)(敗)
    • 하후상의 삼각주를 중심으로 한 부교 계책이 반장(潘璋)에 의해 실패하고, 동소가 예측한 대로 물이 불어나려하자 하후상이 철군하면서 반년 전부터 계속되었던 강릉성의 포위가 풀리다. 이 공로로 주연이 당양후에 봉해진다.

  • 3월, 유수(濡須) 전투: 주환, 낙통(오)(勝) vs. 조인(위나라, 5만 명)(敗)
    • 조인의 마지막 출정으로, 그전 해부터 계획되었던 대규모 성동격서 낚시극이었지만, 주환 역시 분산되고도 여전히 강한 자신의 군대를 약한 것처럼 속이는 데 성공했다.
    • 이때 왕쌍이 포로가 되어 무창(강하)으로 끌려갔으나 곧 풀려나고, 부장 상조(常雕)가 죽음.

  • 임공 전투: 진홀(유비)(勝) vs. 황원(敗)

  • 3월 19일, 대장군 조인 사망. 향년 56세.

  • 4월, 촉한 소열제(昭烈帝) 유비 사망.
    • 유선(劉禪)의 촉한 황제 등극.
    • 후주 유선, 건흥(建興) 개원.[39]
    • 연의에서 사망 직후 서평관 전투 발발.

  • 진종이 손권에게 반기를 들다.


  • 기춘 전투: 하제(오)(勝) vs. 진종(위)(敗)


  • 8월, 촉의 사자로 파견된 등지가 촉오 동맹을 성사시키다.


5.41. 224년 (황초 5년/건흥 2년/황무 3년) - 조비의 2차 오 공격.[편집]


  • 조비의 2차 오 공격 실패.


  • 낙통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상서령 글염이 실각되고 자결함(혹은 주살됨)에 따라 태자태부이자 보의중랑장 장온(張溫)이 손권의 미움을 사서 유배됨.

5.42. 225년 (황초 6년/건흥 3년/황무 4년) - 공명의 남만 정벌[편집]


  • 하후상이 224년 조진(曹眞)의 여동생인 본처 때문에 조비가 애첩을 교살시키자 그 충격으로 죽은 애첩의 무덤을 파헤쳐서 시신을 꺼내볼 정도로 폐인이 되어 다음해 죽다.




5.43. 226년 (황초 7년/건흥 4년/황무 5년) - 조비의 죽음[편집]


  • 5월, 문제(文帝) 조비 사망. 태자인 조예(曹叡)가 계승.
    • 사마의를 옹주/양주의 도독으로 삼음.
  • 손권이 강하, 양양(襄陽)을 공격했으나 실패함.
  • 육항(陸抗) 탄생.
  • , 교주에서 광주(廣州)를 분리함.


5.44. 227년 (태화 원년/건흥 5년/황무 6년) - 출사표와 제1차 북벌[편집]


  • 위의 명제(明帝) 조예, 태화(太和) 개원.
  • 3월 공명출사표를 올리고 한중으로 진군. 제1차 북벌이 개막하다.
    • 공명이 기산으로 진군. 남안, 안정, 천수 3군을 진동시킴. 하후무 패배.
  • 서황이 병사하다.
  • 사마의가 복직되다.
  • 이 해에 사망한 석성후(石城侯) 한당의 아들인 한종이 12월에 한당의 시신이 든 관을 수레에 싣고 위에 투항. 위에서 장군 및 광양후(廣陽侯)에 봉해짐.


5.45. 228년 (태화 2년/건흥 6년/황무 7년) - 석정 전투, 가정의 패배와 제2차 북벌[편집]


  • 1월 맹달 반역 실패 후 참수, 장합마속을 상대로 가정에서 승리를 거두다.

  • 공손연(公孫淵)이 숙부 공손공(公孫恭)을 몰아내고 거기장군직과 요동을 차지함.


  • 9월 석정 전투 - 육손(전종, 주환)(勝) vs. 조휴(敗)
    • 파양태수 주방(周魴)에 조휴가 낚여서 예주자사 가규가 전장군 만총, 동완태수 호질 등과 함께 급히 협석으로 진격, 청주자사 왕릉(王凌)이 포위를 뚫어 구조함(정사).
    • 조휴가 가규를 모함하였으나 황족이라 무고 처벌이 내려지진 않음.
    • 가규 사망, 향년 55세(위략). 시호를 내려 숙후가 됨. 당시 장남 가충의 나이 11세.
    • 조휴 악성 종기로 분사. 시호를 장후라 하고, 아들 조조가 뒤를 이었다.

  • 11월, 위나라의 왕랑이 병사하다.

  • 12월 제2차 북벌. 공명이 진창을 공격했으나 학소가 이를 막아내고 공명을 퇴각시키다.

  • 오나라의 신양정후 낙통 사망. 향년 38세.


5.46. 229년 (태화 3년/건흥 7년/황룡 원년) - 세 명의 황제, 제3차 북벌, 조운의 병사[편집]


  • 제갈량, 제3차 북벌로 무도와 음평을 얻음.[40]
    • 연의에서 공명이 병사 직전의 학소를 공격해 진창을 함락시킴.

  • 정사에서는 학소 그냥 병사.

  • 4월, 오주(오왕) 손권,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황룡(黃龍) 개원.
    • 장소(張昭)가 은퇴를 위해 관위와 통수권을 내놓고 물러남. 손권은 그를 보오장군이자 삼사의 예로 대접함.
    • 전종이 위장군, 좌호군, 서주목에 임명되고 공주(公主) 손노반막장녀과 결혼해 부마(駙馬)가 됨. 이후 손노반을 전(全)부인이라고 칭하게 됨.
    • 주환이 전장군·청주목(靑州牧)에 임명되고 가절을 받음.



5.47. 230년 (태화 4년/건흥 8년/황룡 2년) - 위의 역습[편집]


  • 여름, 위가 촉을 공격하나 장맛비로 철수하다.
  • 7월, 공명, 위연(魏延)으로 하여금 강족을 공격케 하여 후방의 위험을 없애다.
  • 때 맞춘 손권의 합비 공격, 또 실패.
  • 오의 장온 사망. 향년 37세.
  • 위의 상국 종요 사망. 향년 80세.


5.48. 231년 (태화 5년/건흥 9년/황룡 3년) - 제4차 북벌과 장합의 죽음[편집]


  • 2월, 공명, 두 번째 기산 진군(제4차 북벌).
    • 6월, 장합이 난전 중에 화살을 맞아 사망하다.
    • 문산군에서 강족의 반기가 일어났으나 장억, 마충(馬忠)이 토벌함. 장익(張翼)이 내강도독(庲降都督)에 임명됨.

  • 진동장군 만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청주자사 왕릉이 오의 손포의 거짓 투항에 낚여 패하고 도주함.
  • 손정의 증손자이자 손준의 사촌인 손침 탄생.
  • 화흠 사망. 향년 74세.


5.49. 232년 (태화 6년/건흥 10년/가화 원년) - 손권이 가화 개원[편집]


  • 오대제(吳大帝) 손권이 가화(嘉禾) 개원.
  • 손권의 차남 손려(孫慮)가 손권에게서 부절(假節)을 받고 관소를 열었으며 반주(半州)를 다스렸으나 스무살의 나이로 사망함.
  • 설종이 손권의 요동 정벌 계획을 만류하여 계획이 중지됨.
  • 전예를 해로, 왕웅을 육로를 통해 요동을 공격했으나 성과 없이 철수했다가 전예가 오나라로 귀환하는 사신 일행을 공격해 격파함.


5.50. 233년 (청룡 원년/건흥 11년/가화 2년) - 청룡 개원[편집]


  • 2월, 조예가 청룡(靑龍)으로 개원.[41]
    • 조예가 건국의 원훈(공신)들에게 제사함.
    • 가비능의 회유에 넘어간 보도근이 병주에서 반란을 일으키나 진랑이 토벌함. 보도근은 가비능에게 살해됨.

  • 손권이 직접 합비 공격에 나서고 전종이 육안 공격으로 거들었으나 모두 패퇴함.

  • 공손연이 손권에게 투항을 표하자 손권은 이에 낚여 장미, 허안을 보냄.
    • 장미, 허안 모두 공손연에게 주살되고 공손연이 그들의 목을 위나라로 보냄.
    • 장소는 홀로 이 낚시를 간파했고 그 성격답게 격하게 간언했지만 손권은 장미, 허안을 보낸다. 결국 삐진 장소는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 결국 장소가 맞았다는 게 드러나자 손권 역시 장소의 집의 문을 불로 태우는 등의 갖은 방법을 다하나 장소 역시 문 앞에 흙담까지 쌓으면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 치킨게임호종에 의해 둘이 화해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결국 손권은 장소를 수레에 함께 태우고 돌아왔다.

  • 습속이 다른 강족 등 이민족의 특성을 무시한 장익의 정책에 반발한 이민족의 수령 유주(劉冑)의 난이 일어남.
    • 장익이 내강도독에서 물러나고 마충이 대신 부임하여 유주를 베고 감군(監軍), 분위장군(奮威將軍), 박양정후(博陽定侯)에 봉해짐. 건녕 등의 오지의 현에 직접 군을 이끌고 가 월수 등을 회복함.


5.51. 234년 (청룡 2년/건흥 12년/가화 3년) - 오장원에 지는 별, 제갈량과 헌제의 죽음[편집]


  • 2월, 공명이 2년 만에 기산으로 나아가 위수, 북원을 거쳐 오장원 진군.
    • 조예가 사마의의 주전을 경계하여 신비(辛毗)를 대장군군사(大將軍軍師) · 사지절(使持節)에 임명함(마지막 기록).
    • 위수 전투에서 공명이 승리히다.
    • 북원 전투가 사마의의 대승으로 기록되나 모호함.

  • 때맞춰 오군, 양양(본군)/ 신성(손권)/ 광릉-합비(제갈근)의 세 방향으로 공격하나 만총에게 모두 격파당함.

  • 산양공 유협 사망. 헌제(촉한에서는 민제)로 추증됨.

  • 8월, 제갈량 공명이 오장원에서 병사.
    • 정서대장군 위연이 모반을 일으키나 양의(楊儀)가 이를 진압하다.

  • 후주(後主) 유선이 장완을 상서령에 임명하고 도호를 더함. 비의는 후군사에 임명됨.


5.52. 235년 (청룡 3년/건흥 13년/가화 4년) - 장완이 대장군에 임명되다[편집]


  • 후주 유선이 제갈량의 부절과 익주자사 직을 장완에게 맡김.

  • 사마의가 태위로 취임하다.
    • 조예가 궁궐 토목공사를 진행하다.

  • 귀양간 양의가 자살하다.

  • 만총이 군사를 보내 강북에서 밭농사를 짓는 수천 명의 오군을 기습해 격파하고 곡물을 불태우면서 돌아옴.


5.53. 236년 (청룡 4년/건흥 14년/가화 5년) - 사마염 탄생[편집]


  • 훗날 서진(西晉)의 세조 무황제가 되는 사마염(世祖 武皇帝 司馬炎) 탄생.

  • 장소 자포 사망. 향년 81세. 시호는 문후(文侯).

  • 동천왕의 사신 호위(胡衛)의 목을 베어 오나라에 보냄.

  • 사도 동소 공인 사망. 향년 81세.

  • 무도군의 저족왕 부건이 항복을 청했으나 장억은 그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다.
    • 과연 부건은 동생과의 내분으로 반수인 400호가 위나라로 가버렸고, 나머지 400호만 뒤늦게 항복했다.

  • 여릉의 도적 이환, 나려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오찬이 이환, 당자가 나려를 체포함.


5.54. 237년 (경초 원년/건흥 15년/가화 6년) - 공손연이 연왕(燕王)을 자칭하다[편집]


  • 4월, 조예, 경초(景初) 개원.
    • 후임 사도로 진교 취임.

  • 7월, 낙랑공 공손연이 연왕(燕王)을 자칭. 스스로 소한(紹漢) 개원.

  • 10월, 전종이 육안을 공격하나 실패하다.
    • 위의 여강군 주부 여습(呂習)의 투항 낚시에 전종이 걸려들었으나 함께 여강에 간 주환이 구해냄.


5.55. 238년 (경초 2년/연희 원년/적오 원년) - 공손연이 토벌되고 촉, 오가 각각 개원하다[편집]


  • 1월, 촉한 후주 유선이 연희(延熙) 개원. 한중장완에게 독립적인 대장군 부 개설을 명함.[42] 장완이 대사마로 승진하고, 강유가 사마가 됨.
    • 장완한중에서 부현으로 옮겨 한수(漢水)와 위수의 급류를 통한 수상 슬라이딩 상용 급습 작전으로 북벌을 꾀하나 계획단계에서 무산됨.
    • 강유, 이때부터 대위 게릴라에 나섬.


  • 8월, 대제 손권이 적오(赤烏) 개원.

  • 진동장군 만총이 노환으로 소환되어 퇴직함.
  • 주환이 향년 62세로 병사. 차남 주이(朱異)가 사병 등을 계승함.


5.56. 239년 (경초 3년/연희 2년/적오 2년) - 조예 사망[편집]


  • 1월, 조예 사망. 조예의 양자이자 고작 9살인 애제(哀帝) 조방이 뒤를 이음.

  • 장완이 대사마로 승진하면서 부절 등 군사 업무를 비의에게 물려줌.

  • 반준이 병사하자 그 직위를 여거가 이음.
  • 오의 요식(廖植)이 임하태수 엄강(嚴綱)을 죽이고 스스로를 평남장군이라 칭하며 형남/교주를 혼란스럽게 하자 여대(呂岱)가 진압함.


5.57. 240년 (정시 원년/연희 3년/적오 3년) - 조방 즉위[편집]


  • 조방(曹芳)이 뒤늦게 정시(正始) 개원. 조상(曹爽)과 사마의가 후사를 맡음.
  • 청주자사 왕릉이 정동장군 가절을 받고 도독양주제군사에 봉해짐.
  • 한가군의 만족을 정벌하다가 상총이 전사함.
  • 남만(南蠻)의 반역을 장억이 토벌함.


5.58. 241년 (정시 2년/연희 4년/적오 4년) - 손등(孫登)의 죽음, 오의 재북벌[편집]


  • 손권의 장남이자 태자인 손등(孫登)이 사망함. 향년 32세. 손등의 유언에 따라 셋째 손화가 태자가 됨.

  • 4월, 가 세 방향(번성, 수춘 등)으로 를 다시 공격.

  • 주연군이 번성을 공격하다. 주환의 아들 주이여거 등이 번성 공략에 참전하여 외성 공략에 성공하나 위의 형주자사 호질(胡質)과 사마의가 이들을 퇴각시킴.
  • 오의 장휴, 고승수춘을 공격하나 위군의 진격만 저지하고 물러남.
  • 오의 전종이 회남의 제방 작피(芍陂)를 공격하나 왕릉, 손례와 대치하다 서로 물러남.
    • 이때의 전씨 일가와의 논공행상 분란으로 3년 후인 244년에 장휴, 고승, 고승의 형 고담(顧譚) 등이 손홍의 상소로 죽게 됨.
  • 윤6월, 제갈근 사망. 향년 67세. 직위는 셋째 제갈융이 계승.

  • 관녕 유안 사망. 향년 84세.


5.59. 242년 (정시 3년/연희 5년/적오 5년) - 감택이 태사태부를 겸하다. 만총이 사망하다[편집]


  • 중서령 감택이 태사태부를 겸하며 태자 손화, 노왕(魯王) 손패(孫覇)를 가르침.
    • 240년 선조상서에 오른 설종이 태자소부로 봉해지면서 왕자들을 가르침.
  • 주연이 조중을 공격함. 호질의 장수 포충이 저항했지만 주연의 공세로 결국 패퇴함.

  • 만총 백녕 사망. 태위로 추증, 시호는 경후(景侯).

  • 고구려 동천왕이 서안평을 공격하여 점령함.


5.60. 243년 (정시 4년/연희 6년/적오 6년) - 문흠의 패퇴, 고옹, 감택, 설종의 죽음[편집]



  • 오나라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던 문흠주이에게 패퇴하다. 주이는 양무장군에 봉해짐.
  • 정남장군 왕창(王昶), 주둔지를 에서 신야로 더 남하함.
  • 호종 사망. 향년 58세.

  • 11월, 승상에 오른 지 19년 만에 고옹 사망. 향년 75세.
  • 11월, 감택이 중년의 나이로 사망. 이로써 태자의 후견인 격이 두 명 모두 사망.
  • 비의가 장완이 역임했던 대장군에 취임하다.[43]
    • 강유, 진서대장군이자 옹주자사로 승진.


5.61. 244년 (정시 5년/연희 7년/적오 7년) - 흥세 전투와 오에서의 후계 분쟁[편집]



  • 장완이 익주자사의 자리를 비의에게 물려줌.



  • 손화파(육손, 고승 등)와 손패파(손노반, 전종, 전기(全寄))의 대립으로 파국이 일어남.
  • 고승, 고담 등이 교주로 귀양가고 태자태부 오찬이 하옥됨.
  • 양축이 육손을 모함하여 손권이 육손을 질책함. 오찬이 이에 관련되어 주살됨.


5.62. 245년 (정시 6년/연희 8년/적오 8년) - 육손의 분사[편집]


  • 2월, 육손이 후계 갈등에 대한 손권의 질책으로 인해 분사함.
    • 육항이 스무살의 나이로 육손의 휘하 5천 병력을 이음.
  • 마무의 손권 암살이 실패함.

  • 관구검이 고구려를 재차 침입하자 동천왕이 매구루(북옥저)로 파천하다.

  • 유무, 궁준 등이 동쪽의 예를 공격해 불내후를 항복시킴.


5.63. 246년 (정시 7년/연희 9년/적오 9년) - 장완과 동윤의 죽음[편집]


  • 장완 사망.[44] 비의강유(姜維)가 녹상서사 등을 이어받음.
    • 비의의 시중 수(겸직) 상서령의 자리가 동윤에게 넘어감.

  • 육손이 죽어 빈 승상직에 보즐이 임명됨.
  • 주연이 조중을 다시 공격하여 위의 장수 이흥을 물리침.
  • 동윤이 과로로 사망. 시중은 진지가 물려받음.
    • 시중 진지가 황호(黃皓)와 결탁한 것으로 추정.

  • 관구검이 고구려의 밀우의 활약과 유유(紐由)의 현도군 태수 왕기(王頎)의 부장 암살 등으로 후퇴하다. 이때 흩어진 관구검의 우군이었던 말갈옥저에 남았다고 전한다.


5.64. 247년 (정시 8년/연희 10년/적오 10년) - 전종, 보즐의 죽음[편집]


  • 전종 사망.[45] 향년 52세. 아들인 전역(全懌)이 계승함.

  • 가을, 승상 보즐 사망. 아들 보협(서릉(도)독, 무군장군)과 보천(步闡)(소무장군, 서정후)이 계승함.


  • 조상의 전권 장악. 사마의의 일시 은퇴.

  • 강유, 위장군(4대장군)으로 승진. 비의와 함께 녹상서사가 됨.
    • 문산군 평강현의 이족의 반란을 토벌하고 호왕 치무대를 투항시킴. 이 과정에서 농서, 남안 및 금성의 경계에서 곽회, 하후패 등과 조수에서 싸움. (정사의 기록)


5.65. 248년 (정시 9년/연희 11년/적오 11년) - 왕평 사망[편집]



  • 9월, 위의 왕릉이 사공(司空)으로 임명됨.

  • 교지, 구진 등에서 이민족들이 봉기해 교주 여러 지역을 공격함.
    • 육윤이 고량의 황오 등을 항복시킴.
    • 육윤이 조씨정을 격파함.


5.66. 249년 (가평 원년/연희 12년/적오 12년) - 고평릉 사변과 강유의 첫 북벌[46][편집]



  • 4월에 조방이 가평(嘉平)으로 개원.

  • 이 해부터 사공 왕릉연주(沇州)자사 영호우(왕릉의 외조카)가 조조의 막내인 초왕 조표(생몰년도 195년 ~ 251년)를 옹립해 수도를 허창으로 옮기려 계획함.
    • 하지만 12월, 영호우(영준)의 죽음으로 유야무야되고 그해 12월 9일 사마의는 왕릉을 태위에 임명함.

  • 위장군 강유의 첫 북벌이 실패로 돌아감.
    • 국산에 성을 쌓았고 구안(句安), 이흠으로 지키게 하였으나 곽회, 진태의 지시를 받은 등애가 물줄기를 끊어 가정 AGAIN 국산의 촉군을 항복시켰다.
    • 요화를 보내 등애를 상대하게 했으나 등애가 먼저 입성하여 조성(조수)을 공격한 강유의 본대를 물리침.
      • 등애가 토구장군(討寇將軍),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짐.

  • 의 좌대사마 주연 사망. 향년 68세. 주적(朱績)(시적(施積))이 계승함.[47]
  • 촉의 진남대장군, 평상서사 마충, 성도에서 병사.


5.67. 250년 (가평 2년/연희 13년/적오 13년) - 강유의 2차 북벌과 오나라의 막장극[편집]


  • 강유의 서평(西平)을 공격. 위의 중랑장 곽순이 붙잡혀 투항하자 그를 좌장군에 임명함. (2차 북벌. 1차 북벌과 함께 보기도 함.)

  • 정동장군(청주/서주 방면) 호질이 사망.

  • 오나라의 후계 갈등으로 셋째 노왕(魯王) 손패는 자결을 명받고, 태자 손화(26세)는 폐세자 되어 남양왕(南陽王) 임명되고 장사로 귀양 감. 손량이 태자가 됨.

  • 위의 양주자사 문흠이 오에 거짓 투항하나 주이가 이를 간파하여 문흠을 패퇴시킴.

  • 12월, 정남장군 왕창이 오를 공격하여 주연의 아들이자 평위장군/악향독인 시적을 물량으로 대패시키나 강릉 함락은 실패함.


5.68. 251년 (가평 3년/연희 14년/태원 원년) - 왕릉의 역모와 사마의의 죽음[편집]


  • 왕릉의 역모가 발각됨.

  • 오나라가 도수의 물을 막자 왕릉이 군사를 요청하나 사마의가 듣지 않음.

  • 왕릉이 재 반란을 계획하고 후임 연주자사 황화에게 연락함.

  • 하지만 황화가 양홍과 함께 사마의에게 밀고하고, 사마의는 왕릉을 사면하고 군을 몰고 내려옴.

  • 왕릉은 저항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결박하여 인수를 바침. 사마의는 인수를 돌려주고 왕릉을 낙양으로 보냄.

  • 왕릉이 낙양에 도착하기 전에 들킬 것이 두려워 음독자살함. 사마의가 수춘에서 전말을 알게 되자 영호우의 부하로 연락망으로서 활동했던 장식이 자수.
    • 해당 관련자(왕릉, 영호우)들만 부관참시되고 삼족을 멸함. 조표 역시 사사됨.


  • 5월, 대제 손권이 태원(太元) 개원.

  • 상서령 여예가 사망함. 진지는 시중에 상서령을 더함(시중 수守 상서령). 진군장군을 더함.

  • 왕기, 진태가 오를 공격해 격파시켜 수천 명을 항복시킴.


5.69. 252년 (가평 4년/연희 15년/건흥 원년) - 3세들의 전쟁 시작. 손권이 죽자 제갈각이 위를 치고, 비의는 부를 열다[편집]


  • 손권이 2월 신봉(神鳳)으로 연호를 바꾸나 4월 사망. 후사를 제갈각, 손준 등이 맡음.

  • 태자소부/중소령 손홍은 손권 사망 직후 제갈각 암살 계획을 세우나 손준이 막음.
  • 회계왕(會稽王) 손량이 제위를 계승. 건흥(建興) 개원. 제갈각이 보좌.


  • 10월, 제갈각이 동흥에 성을 쌓고 북벌을 준비함.

  • 11~12월, 사마사가 양주자사/진동장군 제갈탄을 보내 오의 동흥을 공격하나 제갈각의 반격으로 실패함.

  • 제갈각이 선봉 정봉(丁奉), 당자와 후발대 여거[48], 전서를[49] 파견해 물리침. 위의 선봉장인 한당의 아들 한종이 붙잡혀 처형됨.
  • 환계의 아들인 낙안태수 환가가 진남장군 주이의 부교 공격으로 얼음물이 깨져 익사함.

  • 제갈탄과 관구검이 직위를 맞바꿈.
    • 양주의 진동장군 제갈탄은 진남장군·도독예주제군사으로 예주자사가 되어 수춘에 부임함.
    • 예주의 진남장군 관구검은 진동장군·가절·도독양주제군사로 양주에 부임함.



5.70. 253년 (가평 5년/연희 16년/건흥 2년) - 비의, 제갈각 암살되다[편집]


  • 1월 1일, 신년 연회 중에 비의가 곽순에게 암살됨.
    • 강유, 여름에 석영을 나와 동정을 지나 남안을 포위했으나, 옹주자사 진태가 낙문에 이르렀고 군량이 다 떨어져 퇴각함.

  • 승전에 교만해진 제갈각이 병력 20만을 일으켜 신성으로 북벌을 시도하나 진동장군 관구검과 장특에 막혀 실패함.
    • 패전하고 돌아온 제갈각이 주요 심복을 갈고 여전히 서주-청주로의 진군을 꾀하자 손준 등이 손량과 손을 잡고 암살을 계획함.

  • 10월, 제갈각이 연회 중에 손준에게 살해당함.
    • 아들 제갈송, 제갈건, 동생 제갈융을 포함한 삼족을 멸함.

  • 그해 말, 손준에 의해 손권의 삼남이자 제갈각의 인척이었던 폐세자 손화가 사사됨.


5.71. 254년 (정원 원년/연희 17년/오봉 원년) - 조방은 폐위되고 강유는 3차 북벌을 일으키다[편집]


  • 손량이 오봉(五鳳) 개원.

  • 독중외군사의 지위를 얹은 강유가 농서로 진군하여 적도현의 이간의 항복을 받고 양무를 포위해 정촉호군을 괴멸시키고 대장 서질(徐質)을 베다(3차 북벌).

  • 이 싸움에서 선봉을 맡은 노장 장억서질에게 전사하다. 향년 60대 중반~70대 중반.[50]

  • 이때 강유는 하관, 적도, 임조의 세현을 얻었으며 그 백성들을 빼앗아 촉으로 이주시켰다고 한다. (정사)

  • 때맞춰 서강왕 미당이 남안으로 출진했으나 옹주자사 진태가 거짓 항복하고 곽회와 협공하여 강군을 궤멸시키고 이 기세를 몰아 철롱산의 포위를 풀었다.[51]

  • 진태하후현(夏侯玄)의 뒤를 이어 정서대장군/가절도독이 되어 옹/양주의 전군을 관할함.

  • 여름의 홍수로 오나라의 민심이 흉흉해짐.

  • 가을, 전사마 환려가 손등의 차남 손영을 옹립하려다가 손준에게 모조리 죽음.

  • 조방이 사마사를 몰아내기 위해 장인 장집, 이풍(李豊), 소삭, 악돈, 유현 등과 반란을 일으켰으나 발각됨.

  • 암살을 계획한 이풍이 사마사에게 살해되고 나머지도 삼족이 멸해졌다.
  • 반란 주동자는 물론 사마사 대신 대장군에 추대되려한 하후상의 아들 하후현장집 등도 처형됨.

  • 10월, 애제 조방이 사마사에 의해 폐위되고 제왕(齊王)으로 강등됨.
    • 명제 조예의 이복동생인 동해정왕 조림의 아들인 고귀향공(高貴鄕公, 후의 폐제(廢帝)) 조모(曹髦) 13살의 나이로 즉위.
    • 조모가 정원(正元) 개원. 사사되었던 초왕 조표의 아들 세자 조가(曹嘉)를 상산진정왕(常山眞定王)에 봉함.


5.72. 255년 (정원 2년/연희 18년/오봉 2년) - 관구검의 난과 강유의 4차 북벌[편집]



  • 연주자사 등애를 공격했던 문흠이 패배함.

  • 1월 30일, 거기장군 곽회가 사망. 이로써 문흠의 계획이 수포가 됨. 곽회가 대장군에 추증됨.

  • 문앙의 활약으로 사마사의 눈밑의 혹이 악화, 진중에서 병사.
    • 조상의 전 심복인 윤대목이 사마사의 죽음을 예감하고 문흠의 항복을 부탁하나 실패.

  • 윤 정월 9일 오의 손준이 표기장군 여거, 좌장군 유찬(留贊)과 함께 문흠의 응원군으로 가세하다.
    • 윤 정월 19일, 문흠과 문앙이 오로 귀순함.

  • 농성하던 관구검의 야반도주에 따라 군이 와해됨. 관구검은 오나라로 도주하다 병졸 장속의 활에 사망.

  • 관구검, 아들 관구전 등의 삼족이 멸해짐. 오로 도주한 동생 관구수, 손자 관구중은 오에 투항. 차남 관구수, 손자 관구오는 은신.

  • 때를 틈탄 손준의 북벌이 실패함.
    • 2월, 손준의 오군은 고파에서 장반에게 패함. 유찬, 손릉, 장수 등 전사.
    • 3월, 손준이 주이로 하여금 안풍을 치게하나 이기지 못함. 손준이 후퇴함.
    • 여거가 추격한 위나라의 장수 조진(曹珍)을[52] 고정(高亭)에서 물리침.

  • 7월, 손교의 아들이자 손정의 손자 손의가 촉의 사신이 온 때를 타 손준을 죽이려했으나 실패하고 일족이 주살됨. 전공주(손노반)의 모함으로 손권의 차녀이자 전공주의 동생인 손노육 역시 사사됨.

  • 강유가 거기장군 하후패[54] 장익과 함께 조수에서 옹주자사 왕경(王經)의 수만 병력을 대패시키고 적도(狄道)를 포위했으나 진태, 등애의 응원군에 의해 후퇴함(4차 북벌).
    • 등애가 안서장군에 봉해짐.
    • 강유가 원정에 앞서 대장군에 봉해짐.[53]


5.73. 256년 (감로 원년/연희 19년/태평 원년) - 강유의 5차 북벌과[55] 손준, 여거의 죽음[편집]


  • 여름, 다시 대장군 강유가 단곡(段谷)을 공격하나, 적도, 농서, 남안(무성산) 및 기산을 미리 방비해둔 등애의 승리로 끝남(5차 북벌).

  • 무성산 전투(無): 등애 vs. 강유

  • 상규전투: 등애 vs. 강유 - 강유가 회전 시도에 실패하자 후퇴함.

  • 단곡전투: 등애(勝) vs. 강유(敗) - 강유 최대의 패전.[56]

  • 한중도독 호제(湖濟/胡濟)는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고(혹은 못했고), 강유는 여기서 20명의 부장을 잃음.

  • 등애가 등후(鄧侯)에 봉해지고 진서장군/도독농우제군사에 임명됨.

  • 강유가 스스로의 직위를 대장군에서 후장군으로 깎음.
    • 하후패가 이 싸움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256~257년 사이에 사망.)

  • 6월, 조모가 감로(甘露) 개원.

  • 8월, 손준이 정북대장군 문흠의 계책을 통해 거기장군 유찬(劉纂), 진남장군 주이, 전장군 당자 등으로 청주, 서주로의 북벌을 계획하나 여거가 따르지 않음.
  • 손준 병사. 향년 38세. 손준의 뒤를 손침이 이어 승상과 대장군을 계승함.
    • 여거가 문흠, 당자 등과 함께 등윤을 승상에 삼게 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등윤도 대사마로 임명되고 무창(강하)에 좌천됨.
    • 여거가 손침을 치려하자 손침이 문흠, 당자, 유찬으로 여거를 잡게 하고 수도에서도 손거(손려), 정봉 등을 보냄. 여거가 붙잡혔으나 그 전에 자결함.
    • 등윤 승사, 주살됨. 향년 54세.

  • 10월, 손량이 태평(太平) 개원.


5.74. 257년 (감로 2년/연희 20년/태평 2년) - 제갈탄의 난과 강유의 6차 북벌[편집]


  • 강유, 때맞춰 진천을 공격하려고 낙곡을 거쳐 장성을 공격하나 등애가 응하지 않아 후퇴했다.[57]

  • 낙곡 전투: 등애(勝) vs. 강유(敗)
  • 강유, 다시 대장군에 오름.



5.75. 258년 (감로 3년/경요 원년/영안 원년) - 손휴의 즉위와 손침의 죽음[편집]


  • 손량의 손침 제거 계획이 실패하여 폐위됨. 손권의 육남이자 낭야왕 손휴 즉위(景帝).

  • 촉한 후주 유선, 경요 개원.
    • 권신인 진지가 사망이 사망하자 유선 애통해 함. 시호는 충후(忠侯).
    • 호제를 한수(漢水)로 물리는 등 강유가 수비전략을 변화시키다.

  • 수춘 함락되고 제갈탄이 전사하다.
    • 사마소가 구석을 받고 진국공(晉國公)에 등극.

  • 12월 8일, 손침이 연회 중에 손휴의 명을 받은 정봉, 장포(張布)에게 살해됨.


5.76. 259년 (감로 4년/경요 2년/영안 2년) - 조모의 잠룡시[편집]


  • 육항이 (일시적으로) 보협의 자리를 물려받아 서릉도독이 됨. 진군장군에 봉해짐.
  • 조모가 잠룡시(濳龍詩)를 써 사마소를 비판함.
  • 울지해, 12월에 고구려를 침입했다가 양맥에서 대파되어 8천 명을 잃고 철수함.


5.77. 260년 (경원 원년/경요 3년/영안 3년) - 고귀향공 조모 참살, 진태의 죽음.[편집]


  • 조모가 사마소를 주살하려하나 시중 왕침, 산기상시 왕업(王業)이 배신하여 사마소에게 보고하여 사마소 주살은 실패하고 조모가 살해됨.
    • 사마소 주살 계획에 가담했던 상서 왕경(王經) 주살됨.
    • 조조의 9남인 연왕(燕王) 조우(曹宇)의 아들 상도향공 조환이 황제 등극. 경원 개원.

  • (연의에서 사마소의 조모 살해를 명분으로 강유의 8차 북벌이 있었으며, 강유가 야곡을 통해 등애와 왕관(王瓘)을 대파한다.)

  • 육항이 가절을 받음.
  • 권신 복양흥의 승상이 됨.

  • 옹주자사 진태가 사망함.

  • 오나라의 소신이 거짓 항복을 시도하자 사마소의 명을 받고 석포가 이를 대비함.


5.78. 261년 (경원 2년/경요 4년/영안 4년) - 설후가 황호의 망국적 전횡을 예견하다[편집]


  • 설종의 아들 오관중랑장 설후손침의 주살을 축하하는 촉나라의 답례 사신으로[58] 성도에 감. 황호가 망국을 일으킬 거라 예언함(연작처당).
  • 오의 등유, 이광 등이 거짓 투항을 시도하자 왕기 등이 이를 의심해 공격하려 했지만, 등유 등이 거짓 항복을 하지 않음.


5.79. 262년 (경원 3년/경요 5년/영안 5년) - 강유의 마지막 북벌[59][편집]


  • 조양 전투: 등애(勝) vs. 강유(敗)[60]

  • 사마소가 촉 정벌 계획을 세움.
    • 사찬을 등애의 사마(부관 격)로 세움. 사찬이 등애에게 촉 정벌의 필요성을 역설함.


5.80. 263년 (경원 4년/염흥 원년/영안 6년) - 촉한멸망전 (촉 멸망)[편집]


  • 후주 유선, 마지막 연호 염흥(炎興) 개원. 불꽃


  • 손휴가 촉을 구원하기 위해 정봉을 면죽관까지 파견하다.

  • 검각 전투: 강유 vs. 종회. 결착이 이뤄지지 않음.


  • 성도에서 유선이 위나라에 투항하여 멸망.
    • 강유도 유선의 투항 소식을 듣고 뒤따라 투항함.
    • 오의 여흥 등이 교지태수 손서등구를 죽이고 위나라에 귀부함.


5.81. 264년 (함희 원년/원흥 원년) - 나헌의 분전, 폭군 손호의 즉위, 성도 대학살[편집]


  • 오의 무군장군 보협이, 나헌이 주둔한 영안성(백제성)을 공격하나 대패함.
    • 보협이 이 즈음 사망한 것으로 추정. 동생 보천이 서릉독을 계승함.
    • 진군장군 육항, 정서장군 유평(留平), 건평태수 성만(盛曼)이 재차 3만 병력으로 공격해서 영안을 포위.
    • 위나라의 호열이 영안에 원군으로 출진해 오군이 철수.

  • 종회가 강유의 차도지계에 따라 등애를 살해함.
    • 사마소가 종회 토벌을 명함.

  • 1월 18일, 강유는 종회의 병사를 이끌어서 최후의 분전을 행함. 5~6명을 손수 죽이는 분전을 펼치나 사망함. 종회는 뒤따라서 처형당함.

  • 후주 유선이 낙양으로 송환됨.
    • 촉의 안남장군 곽익(곽준의 아들)의 귀순. 사마소, 곽익을 남중도독에 봉함.

  • 5월, 조환이 마지막 연호인 함희(咸熙) 개원.

  • 7월, 호열이 나헌을 구원하기 위해서 2만의 보병과 기병으로 서릉을 공격하여 결국 오나라 군사는 철수.[61]

  • 손휴가 위나라의 공격을 두려워한 것이 병이 되어 사망.
    • 승상 복양흥과 좌장군 장포에 의해 손휴의 아들 손완이 아닌 손화의 아들 말제 손호가 즉위하다.
    • 육항이 진군대장군-(형식적인) 익주목이 됨.

  • 사마염이 위나라의 대장군에 봉해짐.

  • 11월, 장포와 복양흥이 실각 후 살해됨.


5.82. 265년 (함희 2년/태시 원년/감로 원년) - 사마소의 죽음과 사마염의 황제 등극. 위의 멸망, 진(晉)의 개국[편집]


  • 진왕 사마소 사망. 향년 54세. 세자 사마염이 왕위를 물려받음.
    • 함희 2년 12월, 진왕 사마염조환을 겁박해 선양을 받음. 위나라가 망하고 이 건국됨.
    • 이 시기, 익주의 동부가 양주(梁州)로 분리된 것으로 추정. 이후, (蜀)의 남부가 영주(寧州)로 분리됨.
  • 오나라의 말제 손호가 보천의 건의에 따라 건업에서 무창(과거 강하)으로 천도함.


5.83. 266년 (태시 2년/보정 원년) - 손호의 숙청과 진오 단교, 곽익의 교지 원정[편집]



  • 진-오의 단교.
    • 곽익이 여흥을 도와 교지, 일남, 구진의 3군을 평정하고 열후에 봉해짐.


5.84. 267년 (태시 3년/보정 2년) - 손호가 다시 건업으로 환도[편집]


  • 손호가 건업으로 환도함.
    • 손호가 수장작대장 설후에게 침전의 건설을 명함.
    • 우승상 만욱이 파구에 주둔함.

  • 여흥이 공조 이통에게 살해됨. 건녕의 찬곡(爨穀)이 뒤를 이음.
    • 찬곡이 사망함. 파서의 마융이 뒤를 이음.
    • 잇달아 마융이 사망함.


5.85. 268년 (태시 4년/보정 3년) - 곽익의 교주 원정[편집]


  • 손호가 양양을 공격하나 공략에 실패함.
    • 정봉이 제갈탄의 아들 제갈정과 합비를 공격하나 여음왕(汝陰王) 사마준(司馬駿)에게 격파당함.

  • 곽익이 건위 사람 양직(楊稷)으로 마융을 대신케 함.
    • 오나라가 다시 교지를 공격하자 곽익은 장군 모경(毛炅), 구진태수 동원(董元) 등을 보내 교지를 치러 온 오나라 군대를 격파함.[62]
    • 오의 교주자사 유준(劉俊)과 전부독 수칙(脩則), 곽익에 의해 처형됨.


5.86. 269년 (태시 5년/건형 원년) - 진주 신설, 설후의 교지 원정[편집]


  • 옹주, 양주(凉州), 양주(梁州)를[63] 잘라내서 진주(秦州)를 설치하고 호열을 자사로 삼았다. 일찍히 등애가 선비족을 옹주와 양주의 주민들과 섞여 살기로 했는데 조정에선 이가 오래되면 문제가 될까봐 걱정하였으나 호열이 서방의 사정이 밝은 것을 알고 이를 가만히 두었다.
  • 비슷한 시기 유주의 일부가 평주(平州)로 분리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 후한 13주에 옹주(雍州), 광주(廣州), 양주(梁州), 영주(寧州), 진주(秦州), 평주(平州)가 추가되면서 은 총 19주가 된다.


  • 양호(羊祜)가 양양에, 사마주가 하비에 주둔함.
    • 정봉이 곡양(穀陽)을 공격하나 공략에 실패함.

  • 위남장군 대도독 설후, 감군 우사(虞汜), 창오태수 도황과 함께 형주 합우에서 출발해 교지의 진나라군을 토벌하러 출정.


5.87. 270년 (태시 6년/건형 2년) - 선비족 독발수기능의 등장[편집]


  • 1월, 오의 대장군 정봉이 진나라의 와구(渦口)를 공격하나 공략에 실패함.
  • 대도독 시적(주적) 사망. 육항이 승계하고 강릉에 주둔하여 형주를 총괄하다.
    • 육항이 시무 17개조를 상소하나 손호는 받아들이지 않음.
  • 6월, 만곡퇴전투: 독발수기능(勝) vs. 호열(敗). 호열 전사.
    • 도독옹양주제군사 사마량은 장군 유기를 보냈으나 유기가 그저 관망하여 호열이 전사하자 사마량은 유기의 참형을 방지하기 위해 책임을 지고 면직되었다.
  • 양주 전투 (無): 두예 vs. 독발수기능[65]
    • 양주 전투[64]: 독발수기능(勝) vs. 석감(敗)
  • 능강장군 나헌 사망. 안남장군으로 추증받고 열후(烈侯)라는 시호를 받음. 아들 나습은 능강장군을 이어받고, 아버지의 부곡을 이끌게된다.


5.88. 271년 (태시 7년/건형 3년) - 진과 오의 교지 쟁탈전, 독발수기능의 선전[편집]


  • 설후의 구진, 교지 쟁탈전.
    • 교지 전투: 교지태수 양직(勝) vs. 도황(敗) - 설후 회군을 검토함.
    • 구진 전투: 도황(오)(勝) vs. 구진 태수 동원(진)(敗) - 도황이 보물을 뺏어오자 설후가 사례함.
    • 곽익, 소선의 사망.
    • 교지 전투: 도황, 우사(勝) vs. 모경(敗)
    • 귀로 중 설후가 병사함.

  • 청산전투: 독발수기능(勝) vs. 견홍(敗). 견홍 전사.
  • 독발수기능의 난으로 진나라가 근심에 빠지자 임개와 유순이 가충을 독발수기능을 토벌하는 역할로 천거하였기에 가충은 도독진량이주제군사로 임명됨.
    • 지방으로 파견되면 권력을 잃을 게 걱정되던 와중 가충이 진주 지역으로 가려고 하니, 순욱(荀勗)한테 기책을 물었는데 풍담과 함께 가남풍사마충의 혼인을 꾀하니 가충은 옛날의 직책을 그대로 맡게 되었음.
  • 유선, 낙양에서 사망. 향년 64세.
  • 오나라의 대장군 정봉(丁奉) 사망.
    • 손호가 정봉의 가족들을 임천으로 낙향보냄.


5.89. 272년 (태시 8년/봉황 원년) - 양호와 육항의 형주 공방[편집]


  • 장홍이 황보안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왕준이 진압함.
  • 왕준의 오 정벌 진언이 받아들여짐.
    • 오나라의 오언(吾彦)이 의 침공을 대비할 것을 진언함.
  • 보천이 진에 투항함. 육항과 서릉에서 격돌하여 전사.
  • 만욱이 자결함.
    • (沇)이 뒤를 이어 오나라의 승상에 오른 것으로 추정.


5.90. 273년 (태시 9년/봉황 2년) - 대도독 육항[편집]


  • 육항이 대사마-형주목에 봉해짐.
  • 오나라에서 위소의 옥사, 진성(陳聲)의 참수가 일어남.


5.91. 274년 (태시 10년/봉황 3년) - 육항의 죽음[편집]


  • 여름, 육항이 사망. 향년 48세. 그의 병사를 아들 육안, 육경, 육헌, 육기, 육운한테 나누어 거느리게 함.
  • 폐제(애제) 조방이 폐위된 지 20년 만에 사망. 향년 43세.


5.92. 275년 (함녕 원년/천책 원년) - 누현이 숙청되어 자결하다.[편집]


  • 광주로 귀양갔던 누현이 귀양지인 교지에서 장군 장혁의 반란 진압군에 종군함.
    • 장혁이 차마 누현을 죽이지 못함. 장혁이 병사하자 누현이 자결함.
    • 하소(賀邵) 역시 주살됨.


5.93. 276년 (함녕 2년/천새 원년) - 손호의 봉선국산비[편집]


  • 손호가 봉선국산비를 세움.
    • "승상 (沇), 태위 구(璆), 대사도 섭(燮)"의 이름이 남겨짐.
  • 양호가 오나라 침공을 진언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음.


5.94. 277년 (함녕 3년/천기 원년) - 무너지는 오나라[편집]


  • 오의 태의, 하상 등이 진에 투항.
  • 오의 하구독 손신이 강하, 여남의 백성들을 몰살시키고 약탈함.
  • 오의 사직중랑장 장숙이 주살됨.


5.95. 278년 (함녕 4년/천기 2년) - 세상을 떠난 양호, 오의 명장 장정을 격파한 두예[편집]


  • 손호가 장상(張尙)을 주살함.
  • 무위 전투: 약라발능(勝) vs. 양흔(敗). 양흔 전사.
  • 왕혼(王渾)이 환성을 격파함.
  • 양호가 사망하면서 두예를 천거함.
  • 서릉 전투[66] 두예(勝) vs. 장정(敗)
    • 오나라의 명장으로 이름난 장정은 이 패배를 수치로 여겨서 보고하지 않음. 이 사실을 두예의 표문으로 알게된 손호는 서릉독 장정을 무창감 유헌으로 교체한다. 계획대로


5.96. 279년 (함녕 5년/천기 3년) - 서진이 오나라 정벌을 개시하다[편집]


  • 장제(張悌)가 승상에 오름.
  • 익주자사 왕준이 재차 오 정벌을 진언하여 서진이 오나라 정벌을 개시하다.
  • 곽마가 교주에서 반란을 일으키다.


5.97. 280년 (태강 원년/천기 4년) - 오나라 정벌, 손호의 항복. (오 멸망)[편집]


  • 서진이 오의 형주를 평정함.
    • 서릉 전투: 왕준(勝) vs. 유헌(敗)
    • 강릉 전투: 왕준(勝) vs. 육경(敗)
    • 판교 전투: 주준(勝) vs. 장제(敗)
      • 오의 승상 장제가 전사함.
    • 왕준이 석두성에 입성.

  • 건업 말제 손호가 왕준에게 항복하여 오 멸망, 서진의 삼국 통일.


6. 삼국통일 이후 - 팔왕의 난오호십육국시대의 서막[편집]




  • 300년 영강 원년
    • 황후 가남풍이 후궁 소생의 태자 사마휼을 모살. 이에 비로소 조왕(趙王) 사마륜과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이 기병하여 가남풍과 그 일당을 주살. 장화, 배의, 석숭(石崇)이 피살. 팔왕의 난의 시작.
    • 익주에서 조흠(趙欽)이 반란을 일으켜 자립. 이후 조흠은 이특에게 살해되고 이특이 반란을 일으킴. 이특이 교전 중 전사하고 그 아들 이웅이 뒤를 이어 성한 건국.

  • 301년 영녕 원년
    • 조왕 사마륜이 황위를 찬탈하자 제왕 사마경이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潁), 하간왕(河間王) 사마옹과 함께 사마륜과 그 일당을 주살하고 사마충을 복위시킴.

  • 302년 태안 원년
    • 제왕 사마경의 전횡에 하간왕 사마옹과 장사왕(長沙王) 사마애(司馬乂)가 사마경을 축출하고 그 일당을 주살.
    • 진류왕 조환 사망.

  • 304년
    • 하간왕 사마옹과 성도왕 사마영이 장사왕 사마애를 주살.

  • 306년
    • 동해효헌왕(東海孝獻王) 사마월(司馬越)이 예장왕 사마치와 함께 사마옹과 사마영을 축출. 사마충을 데리고 낙양으로 환도.
    • 흉노족 유연이 한왕(漢王)을 칭하고 자립, 전조 건국.

  • 307년
    • 혜제 사마충 사망. 태제 예장왕 사마치(司馬熾)가 회제(懐帝)로 즉위.

  • 311년
    • 한의 석륵, 유요, 왕미가 서진 침공 개시.
    • 동해왕 사마월은 온 힘을 다해 국가의 혼란을 수습한 자신을 살해하려 든 회제의 처사에 분노하다가 분사(憤死).
    • 서진 수도 낙양이 한(전조)의 대군에 의해 함락되고 회제 사마치는 붙잡혀 전조로 압송되고 전조 황제 유총에게 살해됨. 이로써 서진은 사실상 멸망.(영가의 난)

  • 313년
    • 장안에서 민제(閔帝) 사마업(司馬鄴)이 임시정부를 수립.

  • 316년
    • 한의 유요가 장안을 함락, 민제 사마업도 전조의 수도 평양으로 압송되어 사마치와 마찬가지로 유총에게 살해되면서 서진은 완전히 멸망. 오호십육국시대 개막.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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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4월은 중평 6년이었고, 영제가 죽고 소제가 즉위한 4월에 광희(光熹)로 개원했고, 다시 8월에 소녕(昭寧)으로 개원했다. 9월에 헌제가 즉위하면서 또 다시 영한(永漢)으로 개헌했다. 12월에 광희, 소녕, 영한을 모두 폐지하고, 중평으로 복구했다. 그러므로 공식 기록에선 이 해는 그냥 중평 6년이 된다.[2] 강유의 1, 2차 북벌은 비의의 적극적이지 않은 반응 때문에 촉이 1만 명가량을 동원한 단순한 소규모 국지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3] 사실상 3,4,5차 북벌은 이어지는 연속적인 전쟁이다.[4] 연의에서 9번째 북벌, 정사에서는 7번째 북벌이다. 연의에서 거론되지 않는 비의가 죽은 해의 전투 없는 출정까지 고려해도 8번째 출정.[5] 1996년에 발굴된 죽간, 이른바 '주마루 오간'에 의해 오가 황무 연호를 독자적으로 쓰기 시작하는 222년까지 계속해서 건안 연호를 사용했음이 밝혀졌다.[6] 관우와 장비의 생몰년은 제각각이며, 보통 관우가 유비와 1년 전후를 기준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7] 장비가 유비보다 4살 연하(즉 165년)라는 기록이 있다.[8] 여포가 서주를 차지한 후 노국상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장료의 나이는 28세였다고 한다. 여포가 서주를 차지한 시기는 196년이고 궤멸된 시기는 198년이므로, 생년은 169년 ~ 171년 중 하나다.[9] 연의에서 손견이 휘하로 진압함.[10] 1~4월은 중평 6년이었고, 영제가 죽고 소제가 즉위한 4월에 광희(光熹)로 개원했고, 다시 8월에 소녕(昭寧)으로 개원했다. 9월에 헌제가 즉위하면서 또 다시 영한(永漢)으로 개헌했다. 12월에 광희, 소녕, 영한을 모두 폐지하고, 중평으로 복구했다. 그러므로 공식 기록에선 이 해는 그냥 중평 6년이 된다.[11] 원기는 원소의 이복형이자 사촌형이며 원술에게는 친형제가 된다. 그 외에도 원소의 생모와 누이가 살해당했다.[12] 태사자가 연의에서 첫 등장하는 부분이다.[13] 동탁의 죽음으로 눈물을 흘려(혹은 탄식을 해) 왕윤에게 죽었다는 것은 후한서의 기록이나 배송지에 의해 반박되었다.[14] 정사에 따르면 마등이 이각과의 동맹을 제안했으나 이각이 거절하자 이들이 손을 잡고 침공을 했다고 전한다. 이각 오오 이각 오오 가장 손해를 본 건 유언으로, 암살을 시도한 유범이 죽고 차남 유탄은 처형당했다.[15] 연의에서 손책이 옥새를 담보로 원술에게 병력을 빌려 강동평정에 나선 것으로 되었다.[16] 연의에서 이때 손책이 태사자를 얻는 것으로 나온다.[17] 주치전을 따르면 194년의 일이나, 자치통감에서는 이 해의 일로 기술했다. 다만 이렇게 하면 허소의 생몰년과 맞지 않게 된다.[18] 연의에서 순서가 반대로 엄백호가 왕랑보다 먼저 공격당한다. 덕왕부터 선빵[19] 허소가 사망한 해를 195년으로 본다면 허소가 엄백호를 숨겨 주었다는 기록과 맞지 않다. 만약 허소가 195년에 죽었다면 주치전의 기록대로 강동정벌이 1년 앞당겨져야 한다.[20] 혹은 충(沖)이라고도 한다. 후한서 집해의 내용으로 연의에서 '성(成)'이라고 되어있다. 물론 연의가 틀린 것이다. 같은 이유로 연의에서 198년에 황제 참칭과 서주 전투(원술 vs. 여포), 199년에 수춘 전투를 벌인다고 나오나 역시 역사와는 다르다.[21] 연의에서 형장에서 관우의 중재로 살아남는다.[22] 견성 전투랑은 어느 쪽이 먼저인지 확실치 않음.[23] 보듯이 시점이 공명이 출사하는 시기인 207년으로 5년이나 미뤄지는 등 차이가 크다.[24]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에서는 조조가 유리한 상황임에도 곽가의 조언으로 형제의 분열을 노리고 철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황 근거상 2차 여양전투 이후 조조군의 기록적인 패전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며, 후한서에서도 이후 원상의 역공을 받아 크게 패했다는 기록이 있다. 곽가의 말은 예언이 아니라 조조의 심기를 불편치 않게 하며 철군하려는 방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25] 연의에서 위의 사건이 곽가의 진언 때문이라고 나오나 정사에는 없는 기록이다.[26] 유표 사후 형주의 후계자인 유종이 조조에게 형주를 양도한 것. 유종은 이에 청주자사가 되어 조조의 총애를 받아 요절한다.[27] 연의에서 방통의 꾀였으나 정사에서는 조조가 직접 지휘한다.[28] 연의에서 208년.[29] 연의의 기록보다 훨씬 먼저 시도된 것.[30] 자살인지 병사인지는 설이 엇갈리나 음독 자살이 더 유력하다.[31] 연의에서 이 선후가 반대되어 나온다. 마등이 조조에게 참살되자 마초가 한번의 봉기를 일으킨 것. 그러나 마초는 적벽대전에서 4년, 6년 후에 두 번의 봉기를 일으켰고 그 때문에 마등 일가가 죽은 것이다.[32] 연의의 낙봉파.[33] 1차 마초의 거병 때 한수가 조조에게 투항했다는 것은 연의의 창작. 게다가 애초에 연의는 1차, 2차 거병조차도 뒤섞었다.[34] 조조가 위왕에 봉해진 시기가 216년인 것은 확실하나, 다른 사건과의 전후가 분명치 않음.[35] 연의에서 계속 살아남아 한중 공방전에서 장합으로부터 맹달(孟達)과 가맹관을 지키며 등장한다.[36] 과거 조조에게 멸망한 세력의 잔당들.[37] 221년인 것은 확실하나 순서가 부정확함.[38] 장료는 여포가 서주를 차지한 후 노국상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장료의 나이는 28세였다고 한다. 여포가 서주를 차지한 시기는 196년이고 궤멸된 시기는 198년이므로, 생년은 169년 ~ 171년 중 하나다. 손권의 자립과 선후가 불분명하다는 말도 있다.[39] (漢)을 계승했다는 의미의 건자 돌림이다.[40] 정확한 시기는 안 알려져 있지만 자치통감에 의하면 봄에 일어났다고 하며, 손권의 칭제 이전에 일어난 일로 서술함으로 최소한 4월 전에 일으킨 것으로 해석된다.[41] 마피(摩陂)의 우물 가운데 청룡이 발견된 것이 유래.[42] 승상부나 막부에 준한다고 보면 된다.[43] 실질적 군사업무는 239년부터 맡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44] 245년 혹은 247년이란 이야기도 있다.[45] 전종전 참고. 오주전에선 249년이라고 보기도 함.[46] 강유의 1, 2차 북벌은 비의의 적극적이지 않은 반응 때문에 촉이 1만 명가량을 동원한 단순한 소규모 국지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47] 주연의 성은 원래 시씨였지만 주치의 양자가 되어 주씨가 되었다. 그래서 주적은 시씨로 성을 바꿨다가 다시 주씨로 성을 바꾸었다.[48] 여범의 아들, 당시 우장군.[49] 전종의 맏아들. 당시 진북장군.[50] 유비의 입촉 때 20대로 추정된다.[51] 연의에서 이때 철롱산에 사마소가 있었다고 한다. 연의에서 이 해를 253년으로 기록하나 장억의 죽음 등으로 보아 이는 연희 17년이 맞는다.[52] 조진(曹眞)과는 동명이인.[53] 혹은 256년.[54] 하후연의 아들로 고평릉 사변 때 촉에 투항했다.[55] 사실상 3,4,5차 북벌은 이어지는 연속적인 전쟁이다.[56] 연의에서 강유가 상규와 기산에서 대패했고 각각 하후패와 장억이 구원하였으며, 그 과정에 구원하러온 장억이 죽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정사의 기록보다 늦게 리타이어한 셈이다. 장수 만세[57] 연의에서 같은 해 다시 북벌을 위해 20만 대군을 일으켜 (7차 북벌) 기산에서 등애를 크게 꺾었으나 황호의 모함으로 돌아왔다는 서술을 하고 있다.[58] 혹은 군마(軍馬)를 구입하기 위해서.[59] 연의에서 9번째 북벌, 정사에서는 7번째 북벌이다. 연의에서 거론되지 않는 비의가 죽은 해의 전투 없는 출정까지 고려해도 8번째 출정.[60] 하후패는 연의에서 이때 전사했다. 이는 정사의 기록보다 늦춰진 것.[61] 이때 육항이 6개월이나 버틴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봐서 최소한 1월부터 오나라의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임.[62] 곽익이 “성이 포위된 지 100일 내에 항복하면 너희의 가족이 주살될 것이다. 그러나 100일을 넘겼는데도 구원하지 않으면, 내가 죄를 받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63] 서량의 양주(량주)나 오나라와 접경한 양주(揚州)가 아닌 제3의 양주. 익주를 동서로 갈라 형주로 접한 동부는 양주라고 한 것이다.[64] 정확한 지명은 불명. 대충 양주안에서 벌여졌으리라 여겨진다.[65] 두예는 도독옹양주제군사 석감의 명령에 따라서 토벌에 나왔는데, 선비족이 풍족한 것을 보고 때를 노려서 공격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도리어 두예는 처벌받았다.[66] 정확한 지명은 알려져 있지 않고, 그저 서릉독 장정을 이겼기에 편의상 서릉으로 적어 뒀음. 아마도 양양에서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