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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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균주의로써 복국(復國)과 건국을 통해 일관한 최고공리인 정치·경제·교육의 균등과 독립·자주·균치(均治)를 동시에 실시할 것 - 임시정부 건국 강령[1]
1. 개요[편집]
三均主義
조소앙이 핵심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41년 발표한 독립운동의 기본 방안으로, 쑨원이 주창한 삼민주의와 함께 당대 세계를 휩쓸었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1919년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계기가 된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단군민족주의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2. 상세[편집]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균등과 정치적 균등, 경제적 균등, 교육적 균등의 균등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삼균주의라는 명칭이 붙었다. 여기서 말하는 균등은 현대적 의미의 평등에 가깝다.
기존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한국식으로 해석하여 적절하게 배합하되 민족주의의 기조를 받아 세계문명표준에 맞는 열린 민족주의와 함께 균권(均權), 균부(均富), 균학(均學, 均知)의 '한국식' 균등론를 강조하고 있다.
앞서 말하였듯 삼균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개인 간, 민족 간, 국가 간의 균등이며 다른 하나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이다.
- 개인 간의 균등 - 보통선거 · 국유화 · 의무교육[2] 을 통하여 각각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달성할 것.
- 민족 간의 균등 - 민족자결주의의 보편적 적용.
- 국가 간의 균등 - 식민지와 제국주의 철폐. 침략전쟁 반대.
기존의 쑨원의 삼민주의를 한국식으로 발전시키며 경제적인 평등주의적 요소가 두드러졌기에 사회주의적 이념으로 볼 수 있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이념이였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일정 영향을 주었다.[3]
3. 역사[편집]
3.1 운동 이후 사회주의 및 아나키즘의 유입 등으로 인하여, 독립운동계 내부에는 다양한 사상들이 혼재하였으며 이로 인한 정파들간 충돌도 심한 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주의 계열에서는 다양한 사상들을 하나로 정리하는 한편, 이들 사상이 외부에서 유입된 만큼 한국의 특수한 정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한계로 들면서 한국의 고유한 정치사상을 탄생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커졌고, 삼균주의는 이런 주장이 현실화된 대표적인 사례이다.[4] 3.1 운동 무렵부터 조소앙은 삼균주의를 주창했지만, 이 시기 삼균주의는 평등주의를 표방한 정도에 그친 기초적인 단계였고 1920년대를 거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해 마침내 1941년 발표된 임정의 건국강령에 기본 이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허나 광복 이후 남북분단과 냉전이 도래하고 임시정부의 여당 역할을 한 한국독립당과 조소앙이 직접 세운 사회당도 주요 인물들의 암살과 납북 등으로 해체되면서, 독재정권 시기 등을 거치며 한국에서 삼균주의는 관념론적 이데올로기 수준에 그치게 된다. 여담으로 참고한 삼민주의도 쑨원이 죽고 난 뒤 국민당은 삼민주의를 잇겠다고 말만 하고[5] 장제스 집권기엔 사실상 장제스주의 비슷하게 굴러갔으며, 결국 중국 대륙을 지배하는 중국공산당이야 애초에 마르크스, 레닌 등을 추종하다 한동안은 마오주의를 내세운다.[6] 쑨원 생전에도 중화민국 군벌시대의 몇몇 인사들이 삼민주의에 반발했다는 말이 있는거 보면, 구상은 좋았지만 결국 실권이 없는 한 어쩔 수 없는 한계도 있었다.
4. 관련 인물 및 단체[편집]
5. 기타[편집]
대체역사소설 대통령 각하 만세에서는 주인공 조지원이 제창한 사상이자 작중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으로 등장한다. 물론 원 역사의 삼균주의와는 이름만 같은 사상으로, 이 소설에서 삼균주의는 원 역사의 나치즘과 같은 파시즘 사상이다. 자세한 내용은 대통령 각하 만세/설정을 참조.
6. 같이 보기[편집]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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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담으로 임정은 이 건국 강령에서 삼균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추후 한국이 독립정부를 수립하고 선거를 진행할 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모두 박탈한다고 명시했다.[2] 특히 교육에서 파격적인 것은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주장했다는 점이다.[3] 보수 진영은 이후 가부장적 보수주의, 협동조합주의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났다고 보기도 한다.[4] 실제로 삼균주의는 사회주의 계열도 포옹하기 위해서 고려 시대 만적의 난을 비롯한 봉기까지 연구하면서 삼균주의의 논리적 기초로 삼았다.[5] 중화민국 헌법에 아예 박혀있다.[6] 물론 그럼에도 쑨원은 중국 공산당 쪽에서도 찬양하는 인물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