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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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위
: 우승: 준우승 | : 포스트시즌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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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BO 리그 1994 시즌 {{{#FFFFFF }}} 삼성 라이온즈 }}}
순위



승차
승률
5 / 8
60
2
64
20.0
0.484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1.2. 선수 이동
1.3. 신인 지명
2. 전지훈련
3. 정규 시즌
4. 선수별 개인 성적
4.1. 투수
4.2. 타자
5. 수상 및 기록



1. 스토브리그[편집]



1.1. 코칭스태프 이동[편집]


계약이 만료된 이선희 코치가 한화 이글스와 계약했다. 역시 계약이 만료된 김무종 코치와는 재계약을 포기하고 대신 미국 연수에서 돌아온 후 갈 곳 없던 김경문을 배터리코치로 영입했다. 박용진 2군 감독과도 계약이 만료돼 대신 김충 前 MBC 청룡 코치를 2군 감독으로 영입했다.

한편 은퇴한 박승호, 미국 연수에서 돌아온 장태수, 1992년 은퇴한 박정환을 2군 코치로 임명했다.


1.2. 선수 이동[편집]


1993년 시즌 후 박승호, 정윤수 등이 은퇴했다. 한희민도 방출됐다.

1991년 말 현역병으로 입대했던 강종필이 복귀했다.

1993년 12월 28일에는 김용국과 윤용하가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트레이드됐다.

1994년 1월초 대만의 쥔궈 베어스와 자매 결연을 맺었는데, 이때 방출된 한희민이 쥔궈 베어스에 입단했다. 원래 한희민은 쥔궈 구단이 요청을 했기 때문이었는데, 당시 대만 타자들이 언더핸드에 무척이나 약했기 때문에 쥔궈 구단이 한희민을 지목했다고. 때마침 한희민도 방출된 후 불러주는 팀이 없었다. 이후로도 삼성은 간간이 2군 투수들을 연수차 쥔궈 베어스로 보냈다.

한편 재일 한국인으로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활동하다 은퇴 선언을 한 김실을 영입했다. 1군 경험이 있는 선수지만 교타자로 파워도 떨어지는데다, 전년도 영입한 아마야구 출신 재일교포 선수들도 그리 기대만큼 활약을 못했기에 다소 의문이 드는 영입이었다.


1.3. 신인 지명[편집]


  • 포지션은 지명 당시 기준.

이름
포지션
경력
계약금
1차
감병훈
투수
경북고 - 단국대
3000만원
2차
1라운드
김한수
내야수
광영고 - 중앙대
4500만원
2라운드
임채영
포수
현대공고 - 경남대
4000만원
3라운드
김태균
내야수
부산고 - 중앙대
2500만원
4라운드
최찬욱
외야수
경남상고 - 경성대
1200만원
5라운드
이태준
투수
부산공고(중퇴)
1500만원
고졸 연고
고재섭
투수
경북고
2800만원
김동섭
투수
대구상고
800만원
김민우
내야수
대구상고
6000만원
박종호
포수
경북고
6000만원
조문식
투수
경북고
2800만원
최우채
내야수
경주고
700만원
해외교포
최용희
투수
미국 롱비치주립대
20만 달러(약 1억 6000만원)
신고선수
최병국
내야수
대구상고 - 단국대
800만원
최익성
외야수
경주고 - 계명대
1500만원

1993년 9월 1일 재미교포 최용희(다니엘 최)를 계약금 20만 달러, 연봉 3천 5백만원으로 영입했다. 총액이 당시 환율로 1억 9천 5백만원으로, 당시 이상훈 다음으로 가장 많은 금액이었다. 다만 이는 기타 주택 제공등의 부대 조건을 뺀 것이라 실질적으로는 역대 최고 대우였다. 문제는 최용희의 투수 영상[1]과 대학 기록만 보고 영입한 것인데, 실제로 최용희는 1993년 미국 4대 대학리그 중 하나인 웨스턴 컨퍼러스 리그에서 20경기에 등판해 17승 2패 2.4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2]. 하지만 이러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1993년 드래프트에서 15라운드에 지명됐을 정도로, 현지에서 평가가 좋았던 선수는 아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최용희는 만 4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기 때문에 한국어를 전혀 못했다. 미국인이나 다름 없던 최용희는 좀처럼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는데, 삼성에서는 주택만 제공해주고 이밖에 최용희가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없었다.[3][4]


2. 전지훈련[편집]


1993년 말 하와이에서 열린 윈터리그에 최용희, 최한경, 신동주를 파견했다.

1994년 전지훈련은 호주와 일본으로 떠났다. 우용득 감독이 호주를 선택한 것은 미국과 달리 시차 적응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 대신에 LA 다저스 코치들을 인스트럭터로 초빙했다. 그러나 시즌 5위로 밀리며 호주 전지훈련은 삼성에겐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3. 정규 시즌[편집]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이탈했다. 그런 악재로 인해 팀 순위가 좀처럼 오르지 않자, 구단에서는 백인천LG 트윈스 감독을 타격 인스트럭터로 초빙했다. 타격 부진을 타개해보겠다는 게 그 이유였지만, 백인천 인스트럭터를 초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달 간 있기로 했던 백인천의 선임 기간을 시즌 종료까지로 연장했다. 결국 백인천을 영입한 건 감독 교체를 위한 수순이었던 것. 우용득 감독이 이에 반발하면서 감독과 구단간의 갈등만 깊어졌다.

결국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60승 2무 64패로 5위를 차지했다. 창단 이래 최하위 기록. 또한 11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실패했다.

삼성은 창단 초기부터 풍부한 지역팜 덕분에 별다른 노력 없이도 좋은 자원을 모을 수 있었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로 점점 자원이 말라가고 있었다. 구단에서는 나름대로 2군 선수들을 미국이나 일본 교육리그에 파견하는 등 노력을 하긴 했지만, 코칭스태프 차원에서의 제대로 된 선수단 리빌딩은 지지부진하면서 결국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다.


4. 선수별 개인 성적[편집]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 투수는 이닝이 많은 순서대로, 타자들은 타수가 많은 순서대로.

4.1. 투수[편집]


  • 우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7
박충식
32
26
203⅓
(3위)
14
(공동 6위)
8
3
2.35
(2위)
174
38
130
(7위)
12
이태일
21
20
128
6
10
0
3.38
120
42
60
75
최한경
41
(6위)
5
101⅔
6
7
9
(8위)
3.28
84
45
102
77
이상훈
27
2
70⅓
2
2
0
4.48
75
28
35
31
김승남
25
2
60⅔
1
3
1
3.86
54
41
35
60
곽채진
14
8
45⅓
2
2
0
3.57
32
38
28
33
류명선
13
1
38
2
5
4
4.26
42
12
19
52
오봉옥
19
3
33
0
4
3
6.82
46
17
13
67
김인철
13
5
28⅔
0
2
2
5.02
35
16
16
30
김상엽
7
4
24⅔
2
2
0
4.74
23
17
21
39
최용희
6
2
23
1
2
1
5.48
26
15
15
48
손영철
3
0
4
0
0
0
9.00
4
3
5
20
이용철
4
0
3⅓
0
0
0
10.80
7
2
2
39
박종철
2
0
2
0
0
0
0.00
0
1
0
25
김종국
1
0
1⅔
0
0
0
16.20
3
1
1
76
조문식
1
0
0⅓
0
0
0
54.00
2
1
0

  • 좌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8
김태한
30
23
176⅓
10
9
1
2.76
(8위)
146
74
121
(10위)
14
성준
26
24
152⅓
14
(공동 6위)
8
0
3.37
130
68
46
47
박용준
11
1
18⅔
0
0
0
1.93
15
6
7
19
감병훈
3
0
1⅔
0
0
0
0.00
1
0
1


4.2. 타자[편집]


  • 포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3
김성현
101
250
.276
69
10
1
5
30
26
2
22
이만수
109
233
.253
59
14
0
12
37
24
0
2
박선일
96
177
.232
41
8
0
2
16
16
2
49
최형현
18
15
.000
0
0
0
0
0
0
0
44
박종호
8
11
.182
2
0
0
0
2
2
1
38
임채영
5
2
.000
0
0
0
0
0
0
0

  • 내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0
양준혁
123
427
.300
(8위)
128
(6위)
21
(9위)
1
19
(4위)
87
(1위)
62
(10위)
15
6
강기웅
107
332
.244
81
12
3
4
36
35
12
56
정경훈
89
300
.250
75
6
1
1
29
43
29
(5위)
50
김한수
103
279
.272
76
13
2
10
31
41
6
5
김성래
105
276
.246
68
10
1
14
43
39
3
15
김태균
65
139
.245
34
8
0
2
17
10
1
1
류중일
36
131
.328
43
8
3
4
22
22
5
42
김태룡
74
114
0.237
27
2
0
2
17
15
1
57
이동수
6
14
.214
3
0
0
1
1
2
0
54
강두곤
7
9
.222
2
0
0
0
0
0
1
43
최병국
5
7
.143
1
0
0
0
0
0
0

  • 외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0
이종두
126
417
.271
113
15
1
17
(6위)
52
59
12
8
김실
115
337
.273
92
11
5
(3위)
3
33
51
4
46
동봉철
100
319
.254
81
12
2
5
33
44
15
11
정영규
59
127
.236
30
6
2
2
6
14
0
24
강태윤
35
68
.309
21
4
0
1
8
3
0
35
한기철
83
61
.262
16
3
0
1
7
14
7
45
강종필
61
56
.232
13
1
0
1
3
13
4
37
신동주
25
32
.188
6
1
0
0
0
3
0
3
최찬욱
12
16
.000
0
0
0
0
0
2
0
4
최홍주
3
9
.000
0
0
0
0
0
1
0
61
박규대
2
2
.000
0
0
0
0
0
0
0
26
최익성
1
1
.000
0
0
0
0
0
0
0


5. 수상 및 기록[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2 17:10:48에 나무위키 삼성 라이온즈/1994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그것도 최용희의 부친이 직접 준 비디오테이프 1개가 전부였다.[2] 롱비치주립대 역대 단일시즌 다승 1위. 2위는 2004년 15승 1패를 기록했던 제러드 위버. 다만 승리를 제외한 다른 기록은 위버 쪽이 더 낫고, 위버는 2003년에도 13승을 기록했다.[3] 최용희는 입단 후 어깨 부상을 당해 한동안 재활했는데, 재활하는 동안 운동을 마치고는 혼자서 금호강가에 가서 그나마 입에 맞는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이를 본 삼성 팬들은 외국에서 거액을 주고 데려온 선수가 유유자적 강가에서 삼겹살 파티를 즐긴다고 오해했지만, 다행히 어떤 스포츠신문 기자가 이런 최용희의 사연을 취재하면서 오해가 풀렸다.[4] 출처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