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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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삼성궁의 무예
3. 아리랑검의 구성과 체계
4. 현재의 삼성궁



1. 개요[편집]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삼성궁길 86-15 (묵계리)의 청학동에 위치한 선원(仙院)으로 '배달성전 삼성궁' 이라고 불린다. 단군 이래의 홍익인간 정신을 계승하는 한국 선도(仙道)를 계승한다고 주장하며 여러 돌탑을 쌓고 솟대를 세우는 등 한민족 특유의 옛 모습을 재현한다.

한풀선사가 이끄는 단체로 한풀선사와 삼성궁의 약력은 삼성궁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황해도 구월산에 있는 삼성사[1]를 남쪽에 재건했다고 주장한다. 이곳에서는 선도수련을 주로 하며[2] 선도라고 표방하지만, 종교적인 색체가 강하며 그 근간은 대종교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서의 공부는 대종교의 경전을 토대로 삼일신고, 참전계경, 천부경을 기본으로 하여 명상 및 삼법수행을 한다. 삼법수행이란 지감, 조식, 금촉을(性.命.精) 단련하기를 주로 하는데, 아리랑검의 완성을 위한 기초이자 마지막 공부이다.

삼법 수련외에도 무술로서 본국검, 택견, 국궁을 하기도 한다.


2. 삼성궁의 무예[편집]


흔히 알려진 바로는 본국검, 택견, 국궁 등 몇 가지 무술을 한다고 하지만, 원래 삼성궁에서 하던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된 무술이다. 또한 이곳에서 말하는 본국검이란 무예도보통지의 본국검이 아니라 그저 "우리나라 고유의 검술"을 뜻한다. (무예도보통지의 본국검도 나름 재해석을 하여 창작한 게 있기는 하다.) 그리고 택견은 이곳 삼성궁 근방 진주에 경상대학교에 청학 동아리(삼성궁의 수행을 배우는 동아리)가 있는데, 이곳 학생들이 방학 중에 잠시 들어와 공부할 때, 다른 곳에서 택견을 개인적으로 배운 사람이나 경상대학교 택견동아리에서 운동하던 학생들 혹은 대한택견 사범 출신들이 개인적으로 삼성궁과 인연이 있는 관계로 삼성궁에서 대한택견협회의 택견을 일시적으로 배운 것이다.

국궁은 한풀선사가 서울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황학정에서 배운 궁술이다. 치마(말타기)도 과거 초창기엔 잠시 했었으나 마장의 확보와 사료 등 말을 사육하고 관리하기가 어려워 하지 않은 지 오래이다.

외부의 무술 외에 이곳 본원의 무술로는 아리랑 검법이라는 검법이 있는데, 아리랑 검법이란 명칭은 정식은 아니다. 6.25 때 남하해 청학동에 자리잡은 낙천선사 이후에 붙은 이름이며 청학검무(靑鶴劍舞)라고도 부른다. 또한 여기서의 아리랑도 우리가 흔히 아는 민요 아리랑이 아니다. 이 검법은 양날검을 사용하며 왼손에는 검집을 쥔 채로 검무를 춘다.

이 검법이 제령(귀신 쫓기)을 위한 의식이기 때문에, 동작이 사람을 살상하기 위한 기술보단 상징적인 것이 많다.(접근방식이 일반 무술과는 좀 다르다. 즉, 진지하게 상대와 싸우기 위한 무술이 아니라 검무라는 것.)

여담으로 이러한 주술적인 검무는 아리랑검 외에도 월광검[3] 등 여러 개가 존재하고, 그중 극소수가 현재까지 전승되는데, 1910년대까지만 해도 전승이 활발했지만 6.25 전쟁을 거치면서 몇몇의 전승자들이 남한으로 내려와 식객으로 신세진 몇몇 집안의 자제들에게 전승을 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원형이 흐려지고 상당수 맥이 많이 끊겼다.


3. 아리랑검의 구성과 체계[편집]


삼성궁의 무예수련은 주로 검법이다. 한풀선사의 여러 스승 중 한 사람인 "낙천선사" [4]에게 주로 무예를 전해받았는데 이것이 아리랑검(大神劍)이며, 80년대 삼성궁 초기에 수련하는 무예라고는 오로지 아리랑검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초창기 수자들은 아리랑검만 배웠지만, 90년대 들어 외부의 무술도 들어오고 아리랑검을 단계적으로 크게 3단계, 세부적으로 9단계로 구분하였으며, 수련의 정도는 3단계로 나누었다 [5]

초급과정-아시검(아시엇기,아시뗴,아시부림) [6]
중급과정-아린검(아린엇기,아린떼,아린부림)
완성과정-心想,大明,大神

주로 삼성궁에 들어온 수행자는 맨 처음 몸풀기로 선무(仙武)와 춤, 권법[7]을 어느 정도 익힌 후, 아시엇기,아시떼를 배우고 아린삼태검(아린떼)을 익힌다. 아리랑검을 익힐 자는 (삼성궁의 맥을 이을) 후보 중 선별해서 익히게 하는데, 현재 확인된 사람만 4-5명 정도 된다. 후보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인 이유는 삼성궁에서 어느 정도 공부한 뒤에 모두 하산했기 때문이다.

아리랑검은 조선 백산파 선도의 고유 무예 체계인 3무(武, 舞, 巫) 체계를 따른다고 설명한다. 이 3가지 요소가 하나로 어우러졌기에 검무의 형태라고 한다.[8] 검법의 보법 및 신법은 8가지, 검의 체계는 크게 4가지(청룡, 백호, 주작, 현무)로 구성되며. 각 카테고리의 세부기술은 보통 6-7가지로 이루어졌다.

이외에 심법과 주술적인 수련 과정이 있는데, 대종교의 종교적 성향이 제법 강하다. 월광검 [9]이 12역법의 도서상수를 검법으로 풀어낸 것이라면, 아리랑검은 각 방위에 대한 상징성을 표현한다.

1) 청룡의 技는 주로 회전을 통한 기술로 올려치기와 내려치기를 기반으로 한 미르오름(龍騰勢), 미르내림(龍降勢)이 있고, 땅거리로는 뱀(이무기) 찾기가 있다.

2) 백호의 技는 직선적 공격과 진퇴의 신법 및 자세를 다루었다. 숨은호랑이, 산 밀기, 범짓기, 징검다리 등이 있다.

3) 주작의 技는 비연수(飛燕手)라는 뜀, 도약기술을 기반으로 한 거류짓기, 따오기의 날개짓, 학 나래펼치기 등이 있다.

4) 현무의 技는 주로 회피와 방어기술로 가세질, 상투치기, 뒤감추기 등이 있고

5) 마지막에 "황룡"의 技法 단계가 있으며

아리랑검은 바로 이 5방위의 상징적인 기운을 다루는 검법으로 각 기법마다 짓고 틀고 내리는 3단계 순서와 춘하추동 4계절이 변하는 흐름을 반영한다.


4. 현재의 삼성궁[편집]


삼성궁은 80년대에는 나름 진지하게 수련을 해왔으나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국유 관광지로 되어 수행을 하는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이곳은 알려진 바와 달리 대중적으로 무예를 전수하기 위한 무예도장이나 수련터가 아니다. 삼성궁을 중국 소림사처럼 무예의 메카처럼 생각하는 것은 부풀려진 소문일 뿐이다.

무예를 배우겠다고 삼성궁에 갔다가 힘들게 행선중노동만 하다가 못 견디고 하산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곳의 무예가 온전히 전해지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거니와, 무예도 하루에 몇 시간씩 시간내어 운동 삼아 하기에는 그 체계가 현대인들 생활과 너무 동떨어졌다는 점도 있다.

검술수련을 한다면 짧게는 100일, 길게는 몇 년을 세상을 등지고 해야 이룰 수 있다고 하니 류(캡콤)처럼 자신은 무도에 평생을 바치겠다는 사람이 아닌 이상 현시대에 온전히 전승되기 어려움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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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종교를 창시한 나철이 자결한 장소기도 하다.[2] 돌탑 쌓기 등도 행선(行仙)이라고 칭한다.[3] 넷상에선 月光12劍法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원래 명칭은 月影12劍法이며 근대에 와선 전수과정의 혼란으로 "달빛자르기" "月輪劍" 등 여러 명칭으로 전해진다.[4] 속명은 김봉운으로(1902~1984) 출생과 사망시기는 실제 기록보다 15년 차이가 있다는(1917~1997)설이 있다. 좌익 인텔리였던 김봉운은 반공국가인 대한민국의 정세 때문에 반평생을 음지에서 살았다고 한다.[5] 세간에 어떤 이들은 한풀선사가 이 검법들을 창시하는 과정을 지켜본 지인이나 무술가들을 안다고 말하는데, 이 말의 정확한 뜻은 "창작"이 아니라 바로 이 체계화와 세분화 및 재구성을 하여 새롭게 만든 과정을 뜻한다. 이때 한풀선사의 나이가 20대 중반~후반이었다.[6] 여기서 사용된 언어는 한국의 고어라고 한다. 아시(처음,시작) 아린(중간,숙성) 엇기(씨를 뿌리다) 떼(숙성하다) 부림(열매를 맺다) 아리랑(수확하다,완성하다)라고 설명한다.[7] 택견이 아니라 고유의 격투기술.[8] 흔히 넷상에 알려진 바론 月影12검법(넷상에선 월광검법)과 아리랑검법이 흡사하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외형적인 부분이 아니라 수련법의 메카니즘이 동류라는 얘기다. [9] 1910년 이전까지의 정식명은 월영검무(月影劍舞). 실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월광(달빛)이 아니라 주기에 따른 달의 변화와 그 상징성과 관계가 있다. 삼성궁의 설명으로는 같은 백산파의 무예 중 하나로 여자들만으로 이룬 공부모임 월궁(月宮)의 상징적 핵심수련 3가지 중 하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