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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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三星 | Sam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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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다국적 기업)
창립일
1938년 3월 1일(86주년)
창업주
이병철
총수
이재용
본사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129[1]
규모
대기업
유형
복합 기업, 기업 집단
종업원 수
267,305명(2022년 기준)[2]
매출
418조 7,681억 원(2022년 기준)
영업 이익
42조 5,510억 원(2022년 기준)
시가 총액
603조 6,338억 원(2022년 3월 20일 기준)[3]
공정 자산 총액
483조 9,190억 원(2022년 기준)[4]

1. 개요
2. 역사
3. 브랜드 아이덴티티
3.1. 사명
3.2. CI
3.3. 사가
3.3.1. 삼성찬가 (1974 ~ 1993)
3.3.2. 우리의 노래 (1993 ~ )
3.4. 슬로건
4. 경영이념과 기업정신
6. 경영진
6.1. 회장급
6.2. 부회장급
6.3. 사장급
6.4. 역대 임원
8. 특징
8.1. 사옥
8.2. 참모 조직
8.2.1. 미래전략실 (명목상 해체)
8.2.2. GSG
8.3. 단점
8.3.1. 엔진, 모터에 취약함
9. 직장 생활
9.2. 신입 연수
9.3. 노동조합
9.3.1. 현재
9.4. 연구원
10. 여담
12. 대중매체에서
13. 참고/관련 문헌



1. 개요[편집]


대한민국대기업. 국내 최대 규모의 다국적 기업이다. 2022년 자본총액 기준 재계서열 1위로 그 외 시가총액, 매출 등 기업 평가 요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2위, 3위 그룹과 압도적 격차를 보이고 있다.


2. 역사[편집]




파일:삼성상회.jpg

주식회사 삼성상회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8년 3월, 협동정미소 주인이었던 이병철대구부 수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5] '삼성상회(三星商會)'를 개업한 게 본 그룹의 시초이다. 당시 29세의 이병철은 경상남도 김해에서 농지 투기에 실패한 후 심기일전을 굳히며 자본금 3만 원[6]으로 삼성상회를 세우게 되었다.[7]

처음에는 농산물 판매와 '별표국수' 판매 등 가볍고 기본적인 것을 판매했다. 훗날의 삼성그룹 형태와 비교하면 차이가 현격히 나는 편이다. 심지어 설탕비료 팔던 시절 전의 얘기다. CJ그룹 전 명예회장이자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당시 삼성상회는 지금의 삼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며, 국수 공장이 매출은 늘었지만 정작 이병철 본인은 그 돈을 모두 공장 설비 투자에 쏟았고 이병철 일가 역시 공장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잤을 정도로 공장 상태가 열악했다고 한다.[8] 그래도 별표 국수가 많이 팔려 매출은 올라갔지만 대구[9]에는 경북에서 1위를 차지하는 소표 국수가 있었고, 2위의 풍국산업도 있었다.[10] 결국 별표 국수는 이들의 아성과 도전을 이기지 못해 폐업했다.

19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해 사업 확장의 발판을 마련한 후 1948년 서울 종로2가에서 조홍제와 함께 삼성물산공사로 재출범했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임시 수도였던 부산으로 피난간 후 삼성물산으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전쟁 이후 국가를 지불보증인으로 세워 차관을 받아오면서 정경유착을 통해 점차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953년 제일제당을 세워 처음으로 제조업을 시작해 국산 설탕을 개발했고, 1954년 제일모직을 세워 국산 양복지 '골덴텍스'를 개발해냈다.

1957년에 한국 재계 사상 최초로 신입사원 공개 채용을 개시한 후 1958년 안국화재한국흥업은행을 인수해[11] 금융업에도 처음 진출하고 이듬해에 한국 재벌 중 최초로 비서실을 설치해 기업집단으로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1963년에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및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을 세트로 인수했다. 1965년 중앙일보를 창간해 언론사업에도 진출하고 신문용지 자체 수급을 위해 새한제지도 인수했다. 이렇게 순조롭게 확장하며 삼성은 50~60년대에 재계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병철은 한국비료를 국가에 반강제로 헌납하고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으나, 1968년쯤 경영 일선에서 복귀한 후[12] 전자산업 진출을 선언하여 수원 공단부지를 매입했고, 이듬해 삼성전자삼성-SANYO전기를 세웠다. 이후 1970년 삼성NEC를 세워 전자사업 확장을 개시하며 1973년 제일합섬, 임피어리얼, 1974년 삼성석유화학 등을 세우며 화학이나 관광분야 등에도 영역을 확장했고, 같은 해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산업에 처음 손을 뻗었다.
1976년 본사를 태평로 신사옥으로 이전하고 1977년 삼성종합건설을 세워 건설업에도 손을 뻗고 1979년에 삼남 이건희가 부회장이 되면서 2세 경영체제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1980년 한국전자통신을 인수한 후 1982년 프로야구단 삼성라이온즈를 창단하며 종합연수원을 열었고, 1983년 한국 최초로 64K D램 개발에도 주도했다. 1985년 삼성데이타시스템을 세워 전산사업에도 진출했고 1987년에 삼성종합기술원도 세웠다. 그해 11월 이병철이 사망하자 이건희가 가업을 이어받아 12월부터 회장이 됐고, 1990년대부터 친족분리를 진행해 1991년 신세계백화점전주제지, 1993년 제일제당을 각각 분리시켰다.
1993년 이른바 '신경영 선언'에 따라 로고와 기업 이념 등을 바꾸고 1995년 한국 대기업으로는 최초로 소그룹 제도를 도입했으며, 동년에 삼성자동차를 세워 자동차 산업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구조조정을 거듭 단행해 2000년에 삼성자동차를 프랑스의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매각했다.

1990~2000년대 반도체TV, 2010년대 스마트폰 시장 등에서 급성장을 거듭하며 국내 대기업 수준에서 글로벌 대기업으로 변신하는 것에 성공한다. 2001년에는 왕자의 난으로 공중분해된 현대그룹을 제치고 다시 재계서열 1위로 다시 올라섰고, 2020년대까지 1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2008년에는 서초 삼성타운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2014년 5월 이건희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아들 이재용이 사실상 지휘봉을 잡아 동년도에 삼성종합화학 등 4개 석유화학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했고, 2015년 (신)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역합병해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켰다. 2016년 삼성정밀화학삼성SDI 케미컬사업부문을 롯데그룹에 팔고 2017년 2월 미래전략실 해체를 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계열사별 독립/자율경영체제 전환 수순을 밟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본사를 삼성타운에서 삼성디지털시티로 이전했으며, 삼성그룹 공식 홈페이지도 문을 닫았다. 기사 라고 공식적으로만 말했을뿐 사실상 미래전략실이라는 명패만 땐거지 현재 삼성그룹의 중추인 삼성전자에서 계열사 경영관리[13]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다.

2017년 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삼성그룹은 그룹의 경영을 총괄하던 미래전략실의 해체 계획을 발표했다. 미래전략실은 삼성의 계열사(관계사)들을 수직적 지배하는 조직으로서, 미래전략실의 해체는 삼성그룹의 해체를 의미한다. 한편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 해체 후엔 계열사들이 각자 자율적으로 경영하는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룹 공채도 2017년을 끝으로 없어지고, 계열사별로 독자적으로 채용하는 체제로 바뀐다고 하였다. 기사 결국 2017년 4월 3일에는 삼성그룹 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가 문을 닫았다. 이보다 앞선 2017년 3월 2일에는 그룹 사내 방송이 종료되었고, 3월 3일에는 그룹 기자실이 폐쇄됐다. 기사

다만, 삼성 관계사간의 지분관계는 여전하기 때문에 그룹이 해체된 것은 아니다. 삼성은 여전히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발표하는 기업집단이며, 그룹 총수 이재용이 실질 지배력을 행사한다.


3. 브랜드 아이덴티티[편집]



3.1. 사명[편집]


삼성은 세개의 별을 뜻한다. 삼성닷컴의 설명에 따르면 이병철 창업주의 비전인 ‘하늘의 별처럼 크고 강력하고 영원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삼성이라는 이름에는 끝없는 확장을 지향한다. 삼()은 크고 많은 것, 강한 것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며, 성()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이 빛난다는 의미'로 삼성이라고 지었다고 한다.[14] 2019년부터 삼성은 사명의 의미를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힘을 상징하는 숫자 3에 꺼지지 않는 의지를 상징하는 별이라고 쉽게 풀어 설명한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글로 읽는 것보다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 로마자로는 'SAMSUNG'이라서 네티즌들이 '샘숭', '삼숭'이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실제 미국인들의 발음은 쌤썽에 가깝다. 본래 '삼성'의 정식 로마자표기는 'SAMSEONG'이다. 서양권 외국인들 사이에서 별명은 'Sammy'[15]이다. same soon이라고 삼성 애플 소송전 관련하여 삼성을 비꼬는 별명도 있다.

  • 러시아에선 Самсунг(삼숭크)[16]라고 칭한다. 러시아에는 경제가 안 좋았던 시절 삼성이 자국한테 보여준 의리로 거의 자국 기업처럼 취급을 받는다.

  • 일본어 공식 표기 및 발음은 사무슨(サムスン)이다.[17] 과거 ㅓ를 オ행으로 표기하는 관례에 따라 사무손(サムソン)이라 표기하기도 했는데 이러면 성서 인물 삼손의 발음과 같아지는지라 삼성 입장에선 이러한 이름으로 쓰이는게 기업 인지도와 삼성에 관한 검색의 용이성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기독교가 비주류인 일본에서는 사실 삼손 하면 성서의 인물보다도 동명의 게이 잡지가 훨씬 인지도가 높기에, 성인물과 관계되는 것도 기업 입장에서 좋은 일이 아니다.
한자로 삼성(三星)이라 표기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으나[18], 이는 일본어로 '미쓰보시'라고 읽히기 때문에 미쓰이 그룹이나 미쓰비시 그룹과 혼동되거나 다른 일본 기업으로 오인될 수 있어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서 '미쓰비시'와 비슷한 '미쓰보시'로 보이려고 '삼성'이라고 지은 것이라는 혐한 루머가 있다. 다만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 외에는 근거가 별로 없고, 지금이라면 모를까 삼성이 처음 생기던 때에 삼성상회는 지방에서 작게 낸 농산물 판매점이었으므로 미쓰비시와 경쟁 관계도 아니고 취급 품목도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삼성' 자체가 한국에서 지명으로 흔하게 쓰이는 말로, 창립 지역인 대구 바로 옆 동네인 경산에 삼성현이 있다. 이병철이 직접 자서전에 밝힌 이름의 유래도 미쓰비시와는 무관하다.

  • 중국어로는 한자 三星을 중국어 독음으로 읽어 '싼싱(Sānxīng)'이라고 발음한다. 중국에 진출하는 한자 문화권 국가의 사명이 마찬가지로 한자로 이루어져 있을 경우 대부분 이런 관례를 따른다.[19]


3.2. CI[편집]


파일:JK_CO_bestinsa_3.png

워드마크는 타원형과 색상, 'SAMSUNG'이란 글자가 유기적으로 작용해서 전체적으로 삼성을 표현하는 아이덴티티가 반영되었다. 또 마크 안의 문자를 영어로 표현하여 세계 어디서나 같은 발음으로 읽혀지고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였다.

타원형의 디자인은 유연성과 단순함을 강조하며, 우주와 세계무대를 상징하는 타원을 비스듬히 처리하여 동적이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나타낸다. 또 S와 G의 터진 부분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기운이 통하게 하여 세계와 호흡하고 인류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으며, A자의 가로 지름을 제거하여 개방성을 나타내었다. 영문 로고의 디자인은 세련되고 정교하게 처리해 기술주의의 고객지향 의지, 첨단기업의 이미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

기본 색상의 경우, 기존에 써 온 청색을 그대로 유지하여 영속성을 지니도록 했다. 그룹 공통색상인 청색(Pantone 286 C : M 80%+C100%)은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는 색으로 고객과 보다 친숙해지려는 세계 제일주의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상징한다.

1993년 6월, 이건희는 그룹 사내방송 SBC의 한 고발 프로그램에서 삼성 세탁기의 라인 작업자가 칼로 불량인 부품을 대충 깎아내서 조립하는 모습으로 삼성 세탁기의 불량률이 높아지는 현상과 후쿠다 다미오가 "삼성그룹은 2류나 다름없다"면서 삼성그룹의 문제점과 경영 방식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개선책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를 읽고 큰 충격을 받은 뒤, "마누라랑 자식 빼고 다 바꾼다"란 신경영을 시작했다. #

이후 삼성의 첫 번째 쇄신은 바로 로고 교체였다. 이전까지 파란 바탕에 사립학교 재단 로고 비스무리했던 그룹 로고가 존재했으나, 삼성전자, 제일모직, 제일기획, 제일합섬, 전주제지, 동방생명, 안국화재, 코리아엔지니어링, 한국안전시스템, 중앙일보, 제일제당 등 대부분의 관계사는 각기 다른 로고를 쓰고 사명도 통일되지 않았는데, 1989년 이후 삼성생명, 안국화재, 한국안전시스템 등 일부 계열사가 그룹 로고를 사용했다. 글씨 로고는 서예가 일중 김충현이 만든 일중체를 썼다.

같은 로고라도 업종에 따라 이니셜을 넣기도 하는데, 제일제당은 로고 중앙에 C, 제일모직은 W, 안국화재는 U, 신세계백화점은 D, 제일합섬은 T, 한국안전시스템은 V를 썼다. 이렇게 다양한 로고들은 1993년 3월부로 새로운 로고로 바뀌게 되었는데 20억의 비용을 들여 미국 L&M에서 직접 디자인했고, 이때 나온 디자인이 바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파란색 타원 속에 S Λ M S U N G 이라 쓰인 로고다. 1993년, 이건희가 신경영을 표방하며 변경한 로고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파란색 로고다. 그러나 새로운 로고에 그룹 내 고위 임직원들은 단체로 최면에 걸렸는지 엄청난 거부감을 표출했다고 했으며, 특히 안국화재, 한국안전시스템 등 대부분의 사명을 삼성으로 통일하여 영업에 차질을 입힐 것이라 걱정했다고 한다. 이 당시에 많은 기업들이 로고와 회사명을 바꾸면서 도색 업체들과 스티커 제작 업체들이 때아닌 호황을 맞았었다고 전해진다.[20]


파일:별표국수 로고.svg

파일:삼성 로고(1965-1993).svg
파일:삼성 로고(1993-2005).svg
파일:삼성 로고.svg
1938년 별표 국수
1965 ~ 1993
1993 ~ 2006
2006 ~ 현재
1938년 이병철이 창업한 삼성상회에서 당시 판매하던 별표 국수에 들어간 상표를 삼성 CI의 기원으로 간주한다. 별표 국수에 들어간 상표는 삼성상회의 로고가 아니라 별표 국수의 상표다. 1949년에 원 3개에 별이 가운데 있는 로고를 사용했다. # 이후 1965년에 그룹 로고가 제정되면서 CI를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위에서도 서술했지만 이 당시 삼성의 몇몇 관계사들은 그룹 로고를 응용한 로고를 사용했다. 신세계백화점[21]이나 삼성 라이온즈[22]가 대표적. 1969년에 설립한 삼성전자의 당시 CI를 삼성그룹의 CI로 오해하는 경우가 매우 많으나 당시에는 지금처럼 그룹 전체가 통일된 CI를 사용한 시기가 아니다. 현재의 CI는 이건희가 회장으로 취임한 후 1993년 신경영 선언과 함께 기업 브랜드 쇄신을 목적으로 변경, 통일한 것으로 오벌(Oval) 마크라고도 한다. 세번째와 네번째의 차이가 뭔지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오벌 마크 안에 들어간 SAMSUNG의 장평이 2006년 이후로 좁아졌다. 한글 서체는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이미지로 만들어진다. 영문 서체는 Universe Condensed Bold를 사용한다.

파일:data_logo_1308567009_222.jpg
파일:삼성 관계사 로고.png
이렇게 CI가 변경되면서 관계사들 대부분이 통일된 CI를 가지게 됐다. CI 통일 당시에는 이런식으로 사명이 오벌 마크 오른쪽 하단에 고정된 형태였다.


파일:ci1_01.gif

파일:ci1_02.gif
삼성생명의 CI 가이드라인
파일:img_ci_ko.png}}}
파일:img_ci_en.png}}}
삼성SDI의 CI 가이드라인
이후 CI 가이드라인이 개정되면서 사명 배치에도 변화가 생겼다.


삼성그룹 로고
삼성전자 마케팅 로고
파일:삼성 로고.svg파일:삼성 로고 화이트.svg
파일:삼성 워드마크.svg파일:삼성 워드마크 화이트.svg
원본 이미지
삼성전자는 2015년 이후로 기존의 CI를 사용하지 않고 워드마크를 CI로 사용한다고 결정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타원형 마크의 짙은 파란색은 경직된 느낌을 줘 혁신을 지향하는 정보기술(IT) 기업에는 맞지 않는다. 워드마크는 특정한 색이나 모양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것은 삼성전자의 마케팅에 국한되며 공식 로고를 바꾼 것은 아니다. 이미 삼성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CI는 예전부터 워드마크만 사용했기 때문인 것도 있고 다른 세계적인 기업들의 로고도 대부분 글자만 있는 형태의 로고를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계열사들의 경우 기존 로고를 계속 사용한다고 한다. # 삼성전자가 워드마크로 로고를 변경하면서 해외에서 삼성그룹 전체의 로고를 워드마크로 변경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의 인식이 대부분 삼성하면 삼성전자를 떠올리기 때문. 이후 삼성전자 CI는 삼성의 고유 컬러인 파란색도 빼버리고 검정색을 사용하면서 이재용 체제에서의 삼성전자는 기존 삼성의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파일:삼성금융네트웍스 로고.svg
2022년 4월에는 금융 관계사 통합 브랜드 삼성금융네트웍스를 발표했으며 이후 단계적으로 교체를 단행해 7월 1일부로 삼성금융네트웍스 산하 5개사(생명, 화재, 카드, 증권, 자산운용)의 CI 변경을 공식 발표했다. # 기존의 오벌 마크는 더이상 사용하지 않으며 폰트도 교체해 금융 관계사에 한해서만 사용한다. 전자에 이어 그룹 핵심 관계사로 분류되는 금융사들마저 오벌 마크를 없애고 독자적인 브랜드를 채택한 것을 봤을때 이재용 체제에서는 오벌 마크가 삼성을 대표하는 상징으로서의 지위에서 점차 그 영향력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오벌 마크는 삼성물산 및 그 주변 계열사만이 기업 로고로 쓰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의 워드마크도 폰트는 여전히 공유하면서 그룹으로써의 정체성을 남겨 두고는 있다.


3.3. 사가[편집]



3.3.1. 삼성찬가 (1974 ~ 1993)[편집]



파일:삼성찬가-미래를 관리하는 사람들.jpg

삼성찬가 - 미래를 관리하는 사람들

(1절)보라 여기 이 땅에 젊은 역군들 / 겨레와 슬기를 한데 뭉쳤다
고난과 시련에서 일어선 우리 / 오늘도 꿈을 안고 힘차게 산다
(2절)너와 나 가슴마다 용솟는 의욕 / 사랑과 성실과 신념으로
큰 사명 다하리라 봉사하리라 / 조국과 인류의 영광을 위해
(후렴)삼성의 깃발아래 모인 동지들 / 새 역사의 바퀴를 떠밀고 나가자

작사는 이은상, 작곡은 이흥렬이 맡았다.


3.3.2. 우리의 노래 (1993 ~ )[편집]






제1회 삼성합창제 15 연합합창단 우리의 노래

우리 모두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인류행복 실현하는 큰 뜻을 품고
지혜와 용기를 한데 모아서
미래의 꿈 펼치자 우리는 한가족
아~ 삼성~ 삼성~ 언제나 높이 솟아 오르자
아~ 삼성~ 삼성~ 온누리 밝히는 빛이 되리라

1993년 제2창업 5주년을 맞이해 사원 공모를 통해 채택되었으며, 작곡은 <그리운 금강산>으로 유명한 최영섭이 맡았다.


3.4. 슬로건[편집]


  • 첨단기술 첨단경영의 상징 (1986~1987)
  • 인재와 첨단기술의 삼성 (1988~1992)
  • 고마움을 아는 마음, 감사할 줄 아는 사회 (1992~1993)
  • 세계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는 삼성 (1992)
  • 새시대를 열어가는 국민기업 삼성 (1993)
  • 국민과 함께 세계로 도약하는 기업 삼성 (1993)
  • 고객과 함께 세계로 미래로 삼성 (1994~1997)
  • 세계일류 (1994~1996)
  • 믿을 수 있는 친구 삼성 (1997~1998)
  • 새 천년, 새 삼성/할 수 있다는 믿음/ (1998~1999)
  • 밀레니엄 프론티어 삼성 (2000)
  • 디지털 프론티어 삼성 (2001~2002)
  • 우리의 대표브랜드 삼성 (2002~2013)
  • 함께가요 희망으로 (2003~2005)
  • 해피투게더 (2006~2007)
  • 고맙습니다 (2007)
  • 더 뛰겠습니다 더 땀흘리겠습니다 국민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2008)
  • 두근두근 Tomorrow (2009~2010)


4. 경영이념과 기업정신[편집]


- 경영이념
  • 1993년 이전

사업보국, 합리추구, 인재제일

  • 1993년 이후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한다.


- 기업정신
  • 1993년 이전 - 삼성정신

창조정신, 도전정신, 제일주의, 완벽주의, 공존공영


  • 1993년 이후 - 삼성인의 정신

고객과 함께한다

세계에 도전한다

미래를 창조한다


- 경영철학과 목표

1.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2.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3. 인류사회에 공헌한다


- 핵심가치

인재제일, 최고지향, 변화선도, 정도경영, 상생추구


- 경영원칙

1. 법과 윤리를 준수한다.

2. 깨끗한 조직문화를 유지한다.

3. 고객, 주주, 종업원을 존중한다.

4. 환경·안전·건강을 중시한다.

5.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6. 근로시간 최대 하루 4시간을 지향합니다.


2017년 2월 28일, 미래전략실을 해체한다고 밝혔다. 미래전략실의 해체는 삼성그룹의 해체를 의미한다. 기사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엔 계열사들이 자율적으로 경영하는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고 밝혔지만,기사 현실은 명패만 뗀거지 그룹차원에서 계열사의 경영관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5. 오너 일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범삼성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경영진[편집]




[ 펼치기 · 접기 ]

||<-3><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034ea2> 회장단 ||
||<-2><rowbgcolor=#fff,#1f2023><width=50%> 삼성전자 회장
공석 (직무대행: 이재용) ||<width=50%> 삼성경제연구소 회장
이수빈 ||
||<-3> 부회장단 ||
||<-2><rowbgcolor=#fff,#1f2023><width=50%>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width=50%> 삼성전자 DS부문장 · 대표이사 부회장
김기남 ||
||<-3> 사장단 ||
||<width=15%> 전자 ||<colbgcolor=#fff,#1f2023><-2>강인엽 · 경계현 · 고동진 · 김상균 · 김영기 · 김현석 · 노태문 · 손영권 · 이동훈 · 이인용 · 전동수 · 전영현 · 정은승 · 정현호 · 진교영 · 최윤호 · 팀 백스터 · 한종희 · 황성우 · 황득규 ||
|| 중공업 ||<-2>남준우 · 이영호 · 최성안 ||
|| 금융 ||<-2>구성훈 · 원기찬 · 전영묵 · 전용배 · 차영수 · 최영무 · 현성철 ||
|| 서비스 ||<-2>고정석 · 고한승 · 김명수 · 김태한 · 유정근 · 육현표 · 이부진 · 정금용 · 한인규 ||
|| 기타 ||<-2>김재열 · 김황식 · 성인희 · 이서현 · 차문중 ||
||<-3> ||



6.1. 회장급[편집]




6.2. 부회장급[편집]




6.3. 사장급[편집]




6.4. 역대 임원[편집]


1998년 이후 그룹 회장 직함은 공식적으로 쓰지 않으며 총수는 삼성전자 회장 직함을 지닌다.

  • 그룹 회장





  • 그룹 비서실장
    • 이서구 (1959~1961/1970~1971)
    • 박태서 (1961~1966)
    • 이민우 (1966~1967)
    • 이보영 (1967)
    • 이진석 (1967~1970)
    • 송세창 (1971~1978)
    • 소병해 (1978~1990)
    • 이수환 (1990~1991)
    • 이수빈 (1991~1993)
    • 현명관 (1993~1996)
    • 이학수 (1997~1998)


  • 전략기획실장
    • 이학수 (2006~2008)

  • 미래전략실장

  • 전자 소그룹장
    • 김광호 (1995~1996)
    • 윤종용 (1997~1998)

  • 기계 소그룹장
    • 경주현 (1995)
    • 이대원 (1996~1997)
    • 이해규 (1998)

  • 자동차 소그룹장
    • 임경춘 (1997)
    • 이대원 (1998)

  • 화학 소그룹장
    • 황선두 (1995~1998)

  • 금융/보험 소그룹장
    • 이수빈 (1995~1998)


7. 그룹[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삼성/그룹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특징[편집]


레드오션의 강자, 패스트팔로우 전략 등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다만 업계 선두 제품을 벤치마킹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이런 이미지는 삼성전자의 삼성 갤럭시의 초기 시절 형성됐다. 그럼에도 본래 삼성의 기업 DNA는 마켓크리에이터와 초격차였기에 주력 사업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기업 출범 초기 IT 볼모지였던 한국에서 남들이 하지않았던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멈추면 도태된다는 위기의식이 삼성을 끊임없이 질주하고 발전하게 스스로를 훈련시켰다.[23] 이러한 삼성의 특징은 20세기 최고의 기업 역전 사례로 손꼽히는 명성의 근원이다.

8.1. 사옥[편집]



8.1.1. 삼성디지털시티 (본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삼성디지털시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1.2. 삼성타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삼성타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1.3. 삼성전자 재팬[편집]


일본법인 사옥은 그 땅값 비싼 도쿄 롯폰기 근처에 있었으나, 일본 법인이 2012년경 핸드폰을 판매하는 SEJ 법인(Samsung Electronincs Japan)과 반도체를 판매하는 SJC 법인(Samsung Japan Corporation)으로 나눠져서 SEJ만 롯폰기 Tcube에 있다가[24] 2015년 이이다바시로 이전했다.


8.1.4. Samsung Japan Corporation[편집]


SJC 법인(Samsung Japan Corporation). SJC법인은 시나가와에 있다.


8.2. 참모 조직[편집]



8.2.1. 미래전략실 (명목상 해체)[편집]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회장 직속의 참모 조직이다.[25]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국내 재벌그룹 중 최초로 세워진 통합 참모 조직으로 다른 그룹에서도 벤치마킹을 시도했다. 실장 밑에 7개의 팀과 150명 정도로 구성되었다. 다만, 실장은 부회장, 실차장은 사장, 팀장은 사장~전무이며, 150여 명 중 전무 이상 직급만 18명이다. 팀원은 대부분 부장 이상이고 최하 직급 과장이라는 무시무시한 직급 구성이 돋보인다. 각 계열사의 에이스급 부장들을 뽑아와 몇년간 근무하다가 임원으로 승진시키면서 돌려보내는 식의 커리어패스를 가지게 된다. 그룹 전체에서 가장 인사고과 잘 받은 사람들이 최소 십수년 이상의 경력까지 갖춰서 150명 가까이 몰려 있으니만큼, 재벌 2~3세 한두 명이 회의를 통해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전략과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승진 속도 외에 연봉도 오른다. 실적 위기가 있는 해가 아니라면 늘 최고 성과급(OPI)을 받으며, 이는 남들보다 연봉 50%를 더 받는 것이다.

  • 전략1팀장: 전략 1팀은 삼성전자 및 전자 관련 계열사의 사업 구조조정이 주 임무다.
  • 전략2팀장: 전략 2팀은 전자 이외 계열사의 사업 구조조정이 주 임무다. 예를 들면 매각(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방위산업과 화학 관련 기업을 한화에 매각), 합병(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상장(삼성SDS, 제일모직)을 주도했다. 하지만, 2015년 초에 단행된 조직 개편과정에서 1팀에 사실상 흡수되는 식으로 통합됐다. 토사구팽
  • 커뮤니케이션팀장: 홍보 및 그룹 대변인 역할. 미래전략실 외에도 삼성전자 등 계열사마다 홍보팀이 따로 있다. 가령 삼성전자의 경우 홍보 담당 임원이 3~4명이다.
  • 기획팀장: 기획.
  • 경영진단팀장: 감사 및 경영컨설팅. 20여명으로 구성되어 각 계열사의 감사팀을 통제한다. 사장급 인사도 감사로 자른 적이 있을 만큼 권한을 줬다. 제일모직의 대구 공장을 감사할 때 연못의 물을 퍼낸 뒤 물고기 숫자를 파악해 문제점을 따졌던 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화제였다고 한다. 감사 시 대상자의 수십년간 업무 이력, 가정생활, 술버릇과 주량, 은행거래, 동창관계, 거래처 인맥, 가족관계 등 개인 사생활에 관련된 소소한 사안까지 샅샅이 파헤친다. 감사 외에 경영진단 기능도 수행한다.
  • 준법경영실장: 법무 및 컴플라이언스(내부통제).
  • 인사지원팀장: 인사.
  • 금융지원팀장: 2013년 신설된 부서.

미래전략실의 8개 팀들은 각기 최소 1~2개에서 3~4개에 이르는 TF를 운용해왔다. 각 팀 산하에서 운영하는 TF는 신사업 추진, 계열사 인수합병(M&A) 등 특정 사안에 따라 해당 계열사 담당 TF를 지휘하거나 협업하는 임무를 맡는다.[26] 이들 TF가 계열사 TF를 지휘하거나 협업하는 경우가 많아, 구성원들의 소속이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2015년 3월에는 계열사 소속 TF 사원의 상당수를 돌려보내기도 했다.

업무 부담이 너무 커서, 5년 정도 미래전략실에서 일하고 본래 소속 계열사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27] 2012년에는 새벽 6시 30분~8시에 삼성전자 본관 42층 회의실에서 벌어진 회의를 소개하였다. 최지성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에 대한 발제를 하고 각 팀장들이 토론에 참여했다. 부사장~부회장에 가까운 고위 임원은 6시 반에 전원 참석해야 한다는 소리다. 이런 '아침회의'는 미래전략실뿐만 아니라 각 계열사 CEO 주재로 거의 전 사업장에서 비슷한 시간에 열리고 있다. 일반 직원들의 출근은 8시 정도다.

과거 구조조정본부(구조본)나 전략기획실(전기실) 시절에는 실장의 지시에 반론은 없이 그 지시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가 결정됐다면, 미래전략실(미전실)로 전환된 이후에는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방향을 찾는 작업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 결과물에는 고졸 공채, 저소득층 채용 할당, 저소득층 중학생 방과 후 교실인 드림클래스 등이 있다.

2016년 12월 6일에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청문회에서 이재용은 "국민 여러분이나 의원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면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없앤다고 완전히 없애는건 아니다. GE와 같은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2017년 2월 28일, 미래전략실을 해체한다고 밝혔다. 미래전략실의 해체는 삼성그룹의 명목상 해체를 의미한다. 기사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엔 계열사들이 자율적으로 경영하는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고 밝혔지만, 기사 현실은 명패만 뗀 것이지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의 경영관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8.2.2. GSG[편집]


Global Strategy Group.

외국인으로 구성된 삼성 내부 경영컨설팅 조직이다. GSG엔 20여개국 출신 1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매년 40~50여 명이 확충되며 비슷한 수가 삼성 계열사 해외법인으로 빠져나간다.

1997년 이건희의 지시로 설립되었다. 신사업에 진출하거나 기존 사업이 정체될 때 외부 시각으로 해결책을 찾는 게 주 업무다. 이들이 2014년까지 수행한 프로젝트로는 그룹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마케팅 지침, 삼성SDI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 전략, 삼성전자의 의료기기 사업부 유통 채널 확보 방안 등이 있다.

MBA 또는 경영학과 박사 학위자로서 3년 이상의 직장 경력을 갖춘 사람을 뽑는다. GSG가 석 달 동안 대학교를 세 차례 찾아 ‘채용설명회 → 집중 면접 → 지원자 사례연구 발표’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뽑는다. 2015년까지는 16군데 대학에서만 뽑았고[28] 2016년 9월부터는 베이징대, 칭화대, CEIBS(상하이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 등 중국 3곳을 추가했다. 어느 사업부로부터도 간섭받지 않고 주어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대우는 파격적이다. MBA 졸의 경우 모든 혜택을 합쳐 수입이 2억쯤이다. 주거비, 의료비, 자녀 학비 등도 대준다. 2~3년 동안 서울에서 핵심 사업에 대한 경영컨설팅을 하다가 삼성 계열사의 해외법인에 간부로 나가게 된다.

한국인이나 재외교포는 무조건 배제한다. 하지만 '미국 명문대 MBA를 다니고 한국에 혈연이 없는 순수 외국인' 입장에서는 서울이나 삼성에 연고가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으므로 GSG는 크게 인기가 있는 직장은 아니다. 그리고 유럽 본토에서 유일하게 뽑는 곳은 INSEAD(프랑스)인데, 2014년 GSG에서 INSEAD의 비중이 가장 높은 이유는 프랑스의 높은 실업률의 탓이 크다.


8.3. 단점[편집]



8.3.1. 엔진, 모터에 취약함[편집]


삼성테크윈이야 방위산업체이니 어쩔 수 없다해도[29] 삼성자동차로 출발한 현 르노코리아자동차는 하필 시장이 과잉공급상태에서 시작해 제반 기술없이 맨 땅에 헤딩을 하는 식으로 시작해서 실패했다. 르노닛산의 기술을 받았다지만, 어차피 남에게서 기술을 사온 것이라 돈이 많이 들었고 그 새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져서 악영향은 가중치로 배가됐다. 그리고 KAI는… 말을 말자.[30]


9. 직장 생활[편집]


스마트폰 경쟁이 심화된 이후 삼성 직원이면 삼성 제품을 강제로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삼성 전체에서 공통적인 것은 아니다. 삼성 안 쓰면 겁나 눈치주는 사업부도 있지만 그게 그룹 전체의 의지는 아니다.[31] 다만 모바일 그룹웨어와 각종 사내용도의 앱이 갤럭시S와 노트 시리즈 대상으로만 지원되므로 사용이 어렵고, 보안구역에 들어갈 때에도 아이폰은 번거롭다.

9.1. 채용[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삼성/채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2. 신입 연수[편집]


삼성그룹 공통 신입연수는 SVP(Samsung Value Program)라고 한다. 그룹 공채에 합격한 직원들은 약 3~4주간 관계사 구분없이 전국 각지에 위치한 삼성 연수소에서 그룹 공통 연수를 받게 된다. 주진행과 각 팀별 지도 선배의 지도 및 안내에 따라 팀 활동, 신체 활동, 과제 수행 등을 한다.

'BP'라는 깜짝 이벤트도 존재하는데, 이건 깜짝 생일파티다. 연수기간 중 생일을 맞은 신입사원 대상. 지도 선배들이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들어 긴장감이 최고조일때 음악이 흐르면서 케익이 등장한다. 그리고는 가족들의 영상편지가 스크린에 뜬다. 이걸 본 생일자들의 반응은 신병 훈련 중 데굴데굴 구르다 연병장에 누워 '어머님의 마음'을 부를 때를 방불케한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과연 지도 선배들이 뭘 꼬투리로 깜짝쇼를 할지가 첨예한 관심사로, 이거 유출 안 시키려는 지도 선배들과 알아내려는 신입사원들 간에 첩보전이 벌어진다. ROTC 전역 장교 신입연수 때, 전쟁나서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고 군용 트럭, 군복, 군장 등을 준비해놓고 대규모의 몰래 카메라를 시전한 적도 있다고 한다. 군복에 지프차까지 동원되어 다들 진짜 전쟁난 줄 알고 말없이 주섬주섬 군복 입고 있었다고 한다.


9.3. 노동조합[편집]


휴렛팩커드, IBM, 월마트, 아마존닷컴 등처럼 다국적기업이면서 노동조합이 없는 특이한 사례인데, 이는 창업주 이병철의 유훈을 충실히 지키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노사 교섭단체는 '노동자협의회'나 '노사협의회', '한마음협의회'와 같은 이름으로 존재한다.

사실 노조 자체가 완전히 없지는 않있는데, 1960년 제일모직[32], 1977년 제일제당 김포공장, 1987~1988년 삼성중공업에서 결성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좌절되었고, 2011년 7월 1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개정되고 시행되기 전까지 복수 노조가 허용되지 않아[33] 1회사당 1노조였기 때문에 회사에서 먼저 유령 노조를 만들어 버리면 실질적으로 노조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34] 게다가 그런 노조조차도 얼마 없었다고 한다. # 그 외 탄압 사례들은 여기서 확인 가능하다.

법적으로 노조 설립이 의무화된 유럽쪽 법인은 이에 반발, 2년 가까운 시시비비 끝에 노조가 설립되었다. 그런데 노조가 그야말로 상층부에 충성을 바쳐 있으나 없으나 그게 그거라고 한다. 삼성이 의도한 게 아니라 현지법을 따르다 보니까 노조가 알아서 현지 법인의 충신이 되었다고 한다.

노조 결성자는 현 노조위원장 김성환으로 1996년 전압기 제조업체 이천전기 매각 문제를 두고 노동조합을 결성하다 해고된 후에 해고자 복직투쟁의장을 통해 2003년 삼성SDI 계열 노조인 삼성일반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노조 결성과 동시에 삼성SDI 측은 2003년 삼성SDI 노동자들의 분신 사건과 관련,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김성환을 고소했다. 재판 결과 법원은 김성환에게 실형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김성환은 집행유예 기간 중인 2004년 삼성SDI 휴대전화 불법 위치추적 의혹 관련,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백서 등을 작성해 노조 탄압 사실 등을 알렸다. 김성환은 다시 삼성 SDI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김성환은 법원으로부터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3년 5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2005년 2월 22일부터 복역하기 시작했다.

복역 도중인 2007년 2월 3일 한국 노동자 최초로 앰네스티 양심수로 선정된 바 있으나, 본인의 말에 따르면 선정만 하고 실천은 없는 앰네스티에 실망했다고 한다.

2007년 12월 31일 특별사면을 받아 출소해 다시 삼성일반노동조합장에 취임, 2009년 2월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삼성SDI 등 이것저것으로부터 서른여 가지 혐의로 또 다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이 중 2가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벌금 300만원형을 받았다.

당시 이러한 삼성 측의 고소는 다시 김성환을 교도소에 넣으려는 계산이 일부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소한 지 3년 내 또 다시 유죄 판결을 받으면 법정 구속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사가 크지 않은 죄로 법정 구속을 하는 건 과하다고 판단하여, 벌금형으로 끝냈다.

이후에도 김성환은 또 삼성으로부터 이것저것 고소, 고발을 당했다. 어용이 아닌 이상 현 삼성 노조들의 숙명인 듯. 주요 간부들은 줄줄히 명예훼손으로 고소, 고발당하거나 해고당해 복직 투쟁을 진행중이다. 그러다 2012년 11월 19일, 공교롭게도 이병철의 기일인 이날 삼성이 지역대책협의회라는 조직을 통해 노조 관계자들에 대해 미행, 감시, 도·감청했다며 이건희 등 삼성그룹 임직원 9명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고소 내용은 삼성이 신세계 이마트의 불법사찰과 같은 방법과 조직으로 노조를 탄압했다는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의 성격과 내용의 민감성을 고려해 밝히지 않으나 김성환의 정보 출처에 따르면 삼성이 일종의 정보기관을 만들어 상부조직은 정보의 해석 및 지시, 하부조직은 현장 정보를 불법 수집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신세계 이마트 불법사찰 체계와 KT 직원 퇴출 프로그램은 이를 벤치마킹한 것 혹은 상호모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담으로 김성환은 이맹희-이건희 상속 소송 소식이 알려졌을 때 CJ 회장 이재현을 미행한 삼성 직원들을 지역대책위라는 일선 하부조직의 일원인 것으로 추정했다.

2013년 10월에 이런 일들을 진두지휘한 문건이 발견되었다. 이후 언론사에 노조 결성을 막기 위해 직원들을 미행 했다고 주장하고, 영상을 제공했다. # 노동청은 증거가 없으며, 그룹에서 한 일이 아닌 실무진 개인의 판단이라는 삼성의 주장을 인정했다.


9.3.1. 현재[편집]


유럽을 제외하곤[35] 방침상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삼성이지만, 찾아보면 은근히 노조가 많다. 사실상 본진인 한국 내에도 노조가 상당수 존재한다.

삼성에게 흡수합병된 회사들이 가진 노조는 기업법상 해체가 불가능해 수용해주는 상황이며, 아무나 다 들어갈 수 있는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을 통해 결성하면 된다. 삼성정밀화학의 경우 원래 삼성이 소유한 한국비료공업이었으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했었는데, 그 사이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다시 찾고보니 노조가 있는 케이스.

2011년 7월 1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에 따라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됐으니, 삼성 경영진 입장에서는 헬게이트가 열릴 전망이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벼르던 노동계가 의외로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는 듯하다.(연합뉴스 기사)

결국 박원우 등 삼성에버랜드 노동자 4명의 주도로 '삼성노동조합(현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부 삼성지회)'이 결성됐으나,# 그날 조장희 부위원장이 '경영기밀 누출'과 '공기호부정 사용' 혐의를 뒤집어써 해고를 당했으며[36] 사측도 조합원을 징계하고 형사고소하는 등으로 대응했다.(참고.) 박근혜 정부 때까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탄압' 등과 같은 노조 탄압이 이어지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점차 균열이 보였고, 2020년 5월 6일 이재용이 "앞으로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란 말이 안 나오게 하겠다"며 노동3권과 노사관계 법령을 준수하겠다고 하여 사실상 '무노조 경영'에 종지부를 찍었다.


9.4. 연구원[편집]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연구직들은 마구 굴린다는 소문이 있다. 이유는 연구직들은 대개 노조가 최소 고용 기간을 커버쳐 주는데 삼성은 노조가 없어서 실적 문제나 비주류 연구로 분류되면 바로 해당팀이 해체되어 실업자로 전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는 말도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 꼭 삼성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연구직들이, 특히 자연계열 연구직들이 받는 대우는 열악하기 그지없기는 한데, 삼성은 노조도 없는데다 업무 강도 등에 있어서도 여러모로 직원에게 피도 눈물도 없기 때문에 보통 짤리기 전에 못 견디고 이직하는 경우도 많다. 또 한국에서 자연계열 연구직의 대우가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연구직들이 교수 다음으로 선호하는 정출연들이 연구원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2년 계약직) 주로 충원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정규직은 그간 들인 노력에 비하면 (비슷하게 공부한 의사 등에 비해) 흡족하진 않지만 대우가 나쁘지 않다. 삼성의 경우 연구개발직은 당연히 모두 정규직으로 뽑으며, 임원이 아닌 직원급의 연구원이 자기팀이 해체되었다고 실업자가 되는 경우는 없다.[37] 대한민국 노동법이 그정도로 막장은 아니다. 물론 석·박사 특히 박사급 연구원들이 자기 팀이 해체되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가 자기가 하던 연구랑 맞지 않거나 마음에 안드는 팀으로 배치되는 경우 이직해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원하는 때 이직할 수 있는 능력자라면 실업자 될 일은 없는터라. 무엇보다 삼성의 대부분의 연구개발조직은 인원 부족에 시달린다.

애초에 R&D직이라는 것이 별게 아니다. 매년 공채할 때 (학·석사급은 매년 신입 공채로, 박사급은 경력 공채나 수시로) 이공계 인력이 채용되어 연구소나 개발부서에서 근무하면 R&D직인 것이다. 연구원들은 스스로를 사무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근무 특성상 총무, 인사나 영업, 마케팅과 같은 타 직군에 비해 복장이나 근태에서 좀 특이하게 근무하는 경우는 있다. 아무래도 회사 바깥의 사람을 대하는 직군이 아니다 보니 복장도 자유롭고 출퇴근 시간도 유동적인 사업장/사업부가 많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2시에 퇴근하는 것이 가능한 곳도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나 대부분의 회사 사규 상으로나 일반 사무직과 비슷한 취급을 받으며, 근무 특성상 근무 강도가 높다는 차이밖에 없다. 가령, 해고를 쉽게 당한다거나, 비정규직 신분이라거나 하는 건 삼성에서는 그런 거 없다.

그나마 영업직이 대부분 컴퓨터를 잘 못해서 이런 곳에 썰을 못 풀어서 그렇지 근무 강도도 사실 웬만한 연구원보다는 영업직들이 더 빡세다.[38]


10. 여담[편집]


과거에는 재벌의 필수요소(?) 중 하나였던 순환출자 구조를 가졌으나, 2018년 이후 삼성의 순환출자 구도는 전부 해소되었고 지주회사 역할은 삼성물산이 담당하고 있다.[39] 현재는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을 지배하고,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이 그룹의 중추격인 삼성전자와 삼성의 금융 계열사를 지배하고 삼성전자가 기타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구조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1대 주주가 아닌 기타 계열사들도 일부 존재한다.

삼성그룹 사업체는 우리은행을 유일한 거래처 은행으로 취급한다.[40] 그룹 전체가 하나의 은행만 취급하는 건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인데, 삼성은 이걸 진짜로 한다. 우리은행의 외환 실력을 쌓는데 결정적인 공로를 하는 중. VVIP 고객 우리은행의 외국 지사 역시 삼성그룹 현지법인의 주거래은행이다. 원래 삼성은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이 1958년 불하과정을 통해 초기 민영화될 때 한일은행을 소유한 적이 있었는데, 군사 쿠데타 이후 다시 정부에 반납되었다. 이후부터 한일은행에 모든 거래처를 몰빵하고 유지한 관계를 지금까지 유지 중이다. 우리은행의 한국 제외 외국 파견지점을 보면 죄다 삼성그룹의 외국지사가 있는 도시에 같이 파견한다.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보니,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 혹은 의존도에 관한 글들도 종종 올라오는데, 前 자본시장연구원장 김형태의 평가도 그것 중 하나다. 제목은 "삼성 없이도 한국 경제는 살 수 있을까?"(Could Korea's Economy Survive Without Samsung?) #[41] 관련 언론 보도. 물론 이에 대해선 삼성 없으면 나라 망한다부터 삼성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까지 양극단을 오가는 여러 평들이 있다.[42]

iPhone의 핵심 부품 중 대다수를 삼성에서 납품하고 있다. 대형고객사이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가 삼성 제품을 까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같은 삼성전자 안이라도, 반도체 총괄에 근무하는 직원과 정보통신 총괄에 근무하는 직원 간에 애플을 바라보는 태도가 매우 상반된다. 반도체 쪽에서는 애플은 메모리와 AP 칩[43]을 가장 많이 팔아주는 우수 고객이지만, 정보통신 입장에서는 철저히 타도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 애플의 실적이 좋으면 반도체 부문의 실적도 덩달아 좋아지지만, 정보통신 부문의 실적은 나빠지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런데 여태껏 삼성이 보인 행보를 생각하면 부품도 덤핑으로 팔았을 가능성도 있다. 이미 아이팟 나노에 들어갈 부품을 애플에만 덤핑으로 팔아[44] 자사 브랜드 YEPP의 경쟁업체 아이리버를 말 그대로 학살한 전례가 있다. 결과적으로 YEPP 역시 시장에서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이후 스마트폰 경쟁 이전까지 삼성은 말 그대로 애플의 가장 친한 파트너였다. 매년 5조원씩 발주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봐야하는데 애플은 꾸준히 최소 그 정도는 삼성과 거래한다. 하지만 결국 애플 삼성 소송전을 계기로 애플이 아이폰에서 삼성 부품을 배제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애플이 삼성에게 덤핑을 요구했다느니 뭐니 말이 나오고 있다는 듯. 그런데 2014년 들어서 다시 삼성 부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는 듯. 삼성의 점유율이 워낙 높은 탓에 삼성을 배제해서는 원활한 부품 수급이 어려운 듯하다. # 특히 2017년 새로 나온 iPhone X의 디스플레이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만든 커브드 OLED다.

창업주 이병철이 제일제당에서 미풍이라는 조미료를 냈지만, 미원의 아성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때문에 이병철은 살아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 중 하나가 미원보다 미풍이 잘 팔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처음부터 미원보다 미풍이 잘 팔렸다. 미원이 장악한 일반소비자층을 뚫기 어렵다고 생각한 판매부가 반찬 제조 공장이나 체인형 식품점, 군납 등을 위주로 납품해서 남기는 이득만큼은 미원을 초월했다. 미풍은 인지도가 없다시피 했으나 수익면에선 미원을 가볍게 넘어섰고, 인지도 문제도 MSG 파동 이후 CJ제일제당에서 생산하는 다시다가 일반 소비자층의 조미료 시장을 휘어잡아 버리며 미원을 듣보잡으로 전락시켜 사실상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룹 주요 관계사나 추후 독립한 범 삼성가 기업들을 보면 제일이라는 이름이 제법 쓰였다.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과거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다가 1993년에 독립한 CJ그룹의 모체 CJ제일제당이 있으며, 2000년에 부도나 존재감이 사라진 새한그룹 또한 삼성에서 독립하기 전의 모체 기업이 바로 제일합섬이다. 삼성그룹 관계사 중에서도 제일모직, 제일기획 등 제일이라는 명칭을 가진 계열사 및 기관들이 남아있다.

삼성그룹이 비판받는 이유는 주로 분식회계 의혹을 비롯한 돈 문제와 경영권 승계 문제, 무노조 경영, 언론 플레이 때문이지, 삼성 제품과 AS의 신뢰도는 좋은 편이다. "삼성이니까 믿을 만하다.", "삼성이니 불량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삼성이니까 안 좋겠지"라는 이미지보다 많았다. 그러나 하드디스크같은 예외도 있다. 컴덕들에게 삼성 하드는 그야말로 폭풍처럼 까인다. 누군가가 '이번 삼성 하드는 좋다. 벤치마크도 좋고 리뷰도 좋고 나도 써봤는데 좋더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은 1기가 시절부터 들었다'고 할 정도. 참고로 1기가 하드는 1995년 전후로 쓰였다. 결국 2011년 삼성 하드 사업은 시게이트에 매각되어 삼성 하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도시바와 합작으로 만든 CD-ROM, DVD-ROM같은 ODD도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대신 하드를 대체하고 있는 SSD를 비롯한 플래시 메모리는 그동안 반도체 만들면서 쌓아온 기술력 덕에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위처럼 좋지 않은 인식이 많긴 하지만, 한국 기업 중 사회에 환원하는 재산이 제일 큰 기업도 삼성이다. 맹인견 사업, 다문화 가정 지원, 각종 교육 지원 프로그램,[45] 기부활동, 아이캔,[46] 사원들이 개별적으로 하는 봉사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물론 규모가 아니라 매출 대비 사회 환원 비율을 보아야 한다.

1994년부터 한국 기업으로서 최초로 삼성전자가 영국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광고판에 광고를 하고 있으며,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광고는 1992년부터 진행해 뉴욕 타임스퀘어를 배경으로 하는 헐리우드 영화에도 종종 노출된다.

2013년에 삼성전자, 삼성SDI, 제일모직, CJ건설, LG디스플레이 등이 산업용 전기를 일반용으로 몰래 돌려쓰다가 걸렸다고 한겨레에서 단독 보도했다. #

외국인 지분에 대한 문제와 다국적 기업에 대한 것과, 한국 기업임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 등으로 논란이 많은데, 일단 한국에 본사가 있기는 하나 외국인 지분이 60%를 넘어가는 다국적 기업이다. 그런데 또 외국 지분이 60%가 넘어간다고 다국적 기업이라 보기엔 무리가 많다. 소니의 경우도 외국 지분이 40%가 넘어갔을 때도 자국내에서 日기업이 아니라는 소리가 많았고, 2014년에는 50%를 이미 넘은 상태. SK 역시 외국 지분이 50% 이상이다. 지분이 국적의 기준이 되면 법적인 기준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외국 지분이 많아도 삼성그룹(정확히는 삼성전자)은 법적으로 대한민국에 상장한 대한민국의 기업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몇몇 대기업도 알고보면 다국적 기업이지만 삼성그룹은 한국의 다른 재벌들과 마찬가지로 개발 독재 시절에 한국 정부와 국민의 힘이 상당히 들어갔고, 한국에서 손꼽히는 기업이기에 다른 기업에 비해 유독 논란이 많다. 엄밀하게 따지면 삼성전자의 문제를 그냥 삼성의 문제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지만, 삼성그룹 관계사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핵심이 삼성전자라서 삼성=삼성전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삼성전자삼성 라이온즈와 관련해서 삼적화라는 신조어가 있다. 해당 문서 참조.

트라이버튼설문조사에 따르면, 2016년 4월 26일, 응답자의 75.2%가 삼성전자 임원의 보수가 직원의 66배인 것이 그 정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삼성그룹이 2018년에 3년간 180조를 투자하고 4만명을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경향

창작물에서는 실제 이름을 약간 변형하여, 오성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많이들 등장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기간에 우크라이나 내 삼성 R&D 지부가 러시아군에 폭격당했다.


11. 비판 및 문제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삼성/비판 및 문제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대중매체에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오성그룹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중매체에서는 삼성이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고 이름을 딴 가상의 거대 기업이 자주 나온다. 물론 이런 작명법은 단순하다보니 작중에서는 가상의 기업이지만 이미 실존 기업의 이름으로 쓰이는 일이 많다.
  • 1983년 MBC 드라마 <야망의 25시>에서 이 그룹을 모티브로 한 거산그룹이 나온다.
  • 1995년에 맹인호가 편저자로 낸 소설 <바벨탑의 제왕>이 해당 그룹을 모티브로 한 듯하며, 1997년에 기아 출신 이신행이 지은 소설 <이씨춘추>에선 오성그룹으로 나온다. 이하 두 책은 발매 후 그룹측이 수거하여 현재는 구하기 힘들다.
  • 2004년 MBC 드라마 영웅시대에서는 기업의 실명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모티브를 딴 대한그룹으로 등장한다.
  •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과 이를 원작으로 하는 2022년 JTBC 드라마에서는 삼성을 모티브로 한 순양그룹이 주무대로 등장한다.
  • 락스타의 게임 Grand Theft Auto V에서 삼성을 모티브로 한 한국 기업인 위왕과 텐션이 나온다 로고와 색상을 비교하면 비슷하다.
  • 게임 사이버펑크 2077에서는 삼성을 모티브로 한 서초 일렉트로닉스라는 메가코프가 존재한다.
  • 게임 라스트오리진에서는 삼성을 모티브로 한 삼안산업이라는 대기업이 존재한다.[47]
  • 게임 어몽어스에서는 삼성을 모티브로 한 심성(SIMSONG)이라는 그룹이 있다.
  • 게임 배틀필드 2042에서는 대송전자라는 대기업이 존재한다.
  • 파라다이스(베르나르 베르베르) 2권 - '상표전쟁'이라는 단편에서는 실존기업들이 국가들을 밀어내고 인류를 이끌어나가는데 삼성도 등장한다.


13. 참고/관련 문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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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본사와 같이 삼성디지털시티로 지정하고 있다. 본래 그룹 단위의 본사는 삼성타운이었으나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로 그룹 단위 본사 역시 이곳으로 지정했다.[2] 이는 애플(약 14만 명), 구글(약 10만 명), 소니(약 14만 명)보다도 2배 가까이 많은 수다.[3] 세계 11위[4] 재계 서열 1위로 2001년부터 한 번도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5] 현재는 일대에 '크레텍책임'이라는 기계공구 및 산업용품 사업장이 있다. 옛 삼성상회 건물은 1997년 노후화로 인해 철거되고 대신 그 자리에는 높이 5.95m, 너비 8.7m의 삼성상회 재현 과 삼성상회 실물을 250분의 1로 축소한 청동 모형으로 구성된 작은 기념관이 세워졌다. 그리고 북구 침산동제일모직 자리에 들어선 대구삼성창조캠퍼스에 삼성상회 건물을 복원해 놓았다. 그 외 이병철이 당시에 살았던 은 현재 북성로 오토바이 골목 내부에 보존되어 있다. 관련 기사.[6] 2010년 기준으로 약 3억원 상당. 부농이었던 부친이 사업 자금을 대줬다고 한다.[7] 일제강점기 당시는 물론이고 그 전 세기부터 굴지의 대기업이던 일본의 미쓰비시사와 비슷하게 들리려고 이름을 지었다는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근거는 희박하다. (삼성을 일본어식로 훈독해 읽으면 "미쓰보시"로 읽을 수도 있다.)[8] 사족으로, 이맹희 왈 이때 건너편 마을의 사실상 빈민촌 비슷한 곳에 전두환 일가가 살았다고 한다. 이때 전씨 일가가 삼성상회에 일하러 오기도 했다고.[9] 1981년 6월 30일까지 대구는 경상북도였다.[10] 여담으로 풍국산업은 이후 석유파동 시기에 제면 사업을 매각하고 영락하고 매각되었다. 하지만 풍국면은 지금도 대구광역시 북구 만평네거리 북쪽 근처에 공장이 있으며, 현재는 범 삼성가신세계그룹의 국수 OEM 회사다.[11] 그러나 한일은행(한국흥업은행)은 1961년 군부정권에 헌납하였다.[12] 정확한 시기에 대해선 이병철과 이맹희의 말이 엇갈리는 편이다. 최대치로 잡으면 1973년에 복귀한 것이니 그동안은 공동 경영으로 볼 수도 있다.[13] 대표적으로 계열사별 한해 실적 집계하여 계열사별 고과를 메긴 후 그 고과별로 계열사간 PS, PI같은 보너스 책정하는 행위[14] 이병철의 자서전 호암자전 34쪽에 홈페이지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아마도 호암자전의 내용을 그대로 홈페이지에 올린 듯 싶다.[15] 'Sammy'는 남자이름 새뮤얼, 여자이름 사만다의 애칭과 같다.[16] 원래 г 발음은 ㄱ과 유사하지만(정확히는 /g/임) 러시아어 발음 원칙에 의거하면 유성음이 단어 맨 뒤에 들어가면 무성음으로 발음하기 때문이다.[17] 가타카나 철자가 하필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주인공인 사무스 아란(Samus Aran, サムス・アラン)의 이름(サムス)과 마지막 한 글자를 빼고 똑같은지라 일본 웹사이트를 번역기로 한국어 번역하면 종종 뜬끔없이 '삼성'이 튀어나오는 일이 있다.[18] J리그 등.[19] '토요타(トヨタ)'도 그 유래가 된 한자 '豊田(とよだ)'를 중국음으로 읽어 '펑톈(Fēngtián,丰田)'으로 부른다. 다만 '마쓰다(マツダ)' 같은 경우 그 유래가 된 한자 '松田(まつだ)'를 중국음으로 읽은 '쑹톈(Sōngtián, 松田)'이 아니라 원음과 비슷하게 음차한 '마쯔다(Mǎzìdá, 马自达)'로 부른다. '쑹톈(Sōngtián, 松田)'은 고인을 하늘로 보낸다는 의미의 '쑹톈(Sòngtiān, 送天)'과 성조를 제외한 발음이 비슷하다.[20] 이때 CI와 더불어 관계사의 사명을 통일했으나 제일 사명이 들어가는 관계사는 그대로 제일 사명을 사용했으며 제일기획, 중앙일보 등 소수 관계사의 경우는 CI도 독자적인 CI를 유지했다.[21] 링크[22]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8).svg[23] 이는 이건희의 신경영 선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불량은 암이라는 인식하에 애니콜 휴대폰 수억대를 망치로 때려부수고 인화제를 끼얹어 태우는 화형식을 거행하면서 품질 경영과 디자인 경영을 선언하고 실천한 것, 이 두 가지가 삼성이 세계화 시대에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24] 롯폰기 1번가 삼거리.[25] 과거에는 회장 비서실 (1959~1998), 구조조정본부 (1998~2006), 전략기획실 (2006~2008)로 불리다 2008년 김용철 폭로 관련 특검을 계기로 전략기획실이 사라졌다. 그러다 2010년 미래전략실로 부활했다.[26] 삼성그룹의 한 계열사 관계자는 “주요 사업 현안은 미래전략실에 보고하고 끊임없는 소통과 협업으로 사업을 추진한다”고 말했다.[27] 물론 삼성그룹의 실세 역할을 오래했던 이학수 전 실장과 김인주 전 차장은 10년 이상 일했다.[28] 2014년에는 INSEAD, 컬럼비아, 듀크, 시카고 부스, 펜실베니아대 와튼, 런던 비즈니스 스쿨 , 다트머스대 터크, 버지니아대 다든, IMD, NYU 스턴, 켈로그, 미시간, 버클리, 하버드, MIT 슬론.[29] 그마저도 한화그룹에 매각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사명이 변경되었다.[30] 여담으로 삼성이 이렇게 엔진 달린 탈 것에 미련이 많은 이유는 이건희가 자동차 덕후라서라고 한다. 이건희가 소유한 1억 이상의 수입차만 124대, 차량의 가격을 모두 합치면 약 477억 원.# 에버랜드 근처에는 자동차 박물관과 레이싱 서킷인 삼성 스피드웨이가 있다.[31] 반면, 스마트폰을 제조했던 LG전자는 자사 스마트폰 사용이 사실상 의무에 가까웠다.[32] 당시 주도자는 노동운동가 나경일(1930~2010)이다.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7년 간 복역함.[33] 1997년 제정 때부터 형식적으로 허용되었으나, 세 차례 유예되었다.[34] 대표적인 예가 1987~1988년 삼성중공업 노조결성 방해 사건이다.[35] 다만 위에서도 서술했듯이 이곳도 어용노조나 다름 없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삼성의 압력이 원인이 아니라 현지법을 따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36] 그러나 전 부위원장 조장희는 2016년 대법원으로부터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았고, 2017년 3월 복직 후 2020년에 근로복지공단은 과거 노조 탄압 과정에서 발생한 적응장애를 산재로 판정했다.[37]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팀이 해체되면 다른곳으로 발령이 나고 일이 없어도 두세 달 놀릴지언정 절대 짜르지는 않는다. 여성들의 육아휴직도 자유로운 편이며 남성도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차장(책임연구원)급 이하로 한정하면 고용 안정성 면에서는 거의 준 공무원급이다.[38] 원래 태스크포스 위주로 연구직을 돌리는 회사의 연구원들은 한가할 때는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여유로운 경우도 있다. 가끔은 '이렇게 일하고 돈 받아도 되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39] 애초에 삼성상회라는 상업으로 시작한 기업인 만큼 삼성물산은 그룹의 모태이기도 하다.[40] 그룹 전체의 정책은 그러할 지 몰라도, 그룹 내 개별 회사들은 복수의 은행과 거래를 하기도 한다.[41] 해당 문서는 미국 소재 한미경제연구소(KEI)의 발표 자료다. 즉, 영어로 작성되었다.[42] 이런 사례의 현실판으로 제법 비교되는게 핀란드노키아다.[43] 초창기에 애플에서 삼성의 허밍버드 AP 칩을 쓴 적이 있었다.[44] 반도체는 구매량에 따라 가격이 천지차이인데, 애플의 구매량이 어마어마해서 애플에 판매하는 가격이 저렴해진 것. 아이리버는 물론이거나와 삼성 자체도 그만한 물량을 소화할 수 없어 애플이 사가는 가격에 살 수 없었다.[45] 대학생 대상 멘토링, 드림 클래스 뿐만 아니라 사회 약자 대상으로 학교를 방문하여 교육 기자재와 재능 봉사를 하는 것도 있다.[46] 전신 마비 장애인을 위해 오픈 소스로 공개하는 개발품; 눈으로로 움직이는 마우스다.[47] 희귀한 조합의 이름은 아닌지라 동명의 실존 기업도 찾을 수 있다. (주)삼안의 경우 한자는 알려지지 않았고, 이름이 완전히 같을 뿐만 아니라 한자도 같은 삼안산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