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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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허난성의 지급시
商丘(Shāngqiū(Shì
상추시 | Shangqiu City

시정부 소재지허난성 상추시 쑤이양구 푸첸루1호
河南省商丘市睢阳区府前路1号
지역화중
면적10,704km²
하위 행정구역2시할구 1현급시 6현
시간대UTC+8 (北京时间)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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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인구7,816,831명 (2020)
인구밀도730.27명/km²
서기리궈성(李国胜)
시장바이샹양(摆向阳)
GRDP전체$459억 744만 (2020)
1인당$5,872 (2020)
상징시화월계
시목회화나무
차량번호豫N
행정구역 약칭
옛 명칭宋州
归德府
행정구역코드411400
지역전화번호0370
우편번호476000
ISO 3166-2CN-HA-14

홈페이지
파일:201410221000055655000_910.jpg
1. 개요
2. 역사
3. 교통
4. 기타




1. 개요[편집]


허난성 동부 산둥성, 안후이성의 경계에 있는 지급시. 인구는 870만 명. 시내 북쪽으로 옛 황허의 물줄기가 흐르는데, 운하를 통해 현재 황허와 연결되어 있고 동쪽으로는 안후이성 쑤저우, 장쑤성 북서부 끄트머리에 위치한 쉬저우와 연결되어 있다.


2. 역사[편집]


전설에 따르면 제순 유우씨상족의 수장 설을 여기에 봉하고 '상구(商丘)'라고 하였다고 한다. 실제 상나라 당시엔 박(亳)이라 불렸는데 (商)의 첫 수도라 상이라는 지명이 정착했고, 춘추시대에는 상을 계승한 (宋)의 수도였다. 주공단삼감의 난을 평정한 후, 주성왕은 상나라의 후예인 미자계를 상구에 봉하여 송나라를 세웠다. 주난왕 29년(기원전 286년)에 송나라가 망한 후 경내의 대부분은 위나라가 차지하였다. 위는 상추에 대송군(大宋郡)을 설치하고 신릉(지금의 닝링현(宁陵县))에 공자 위무기를 봉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신릉군이다.

진나라때는 수양(睢陽)현[1]이 되어 탕군(碭郡)의 치소가 되었다가, 한고제가 이곳에 양(梁)국을 설치했다. 후한조조가 영릉현(寧陵縣)에서 거병했다고 한다. 삼국시대 당시 위나라 문제 황초(黃初) 원년(220년)에 양국을 양군(梁郡)으로 고쳤다. 수당시대에는 양군을 고쳐 옛 송나라의 수도였다 해서 송주(宋州)로 이름 붙였다. 후량 건국 직후인 909년, 송주에 선무군절도사 (宣武軍節度使)가 배치되었고 4개 주를 통솔했다.[2] 후당 시기인 923년, 선무군절도사는 귀덕군절도사 (歸德軍節度使)로 개칭되었다. 후주 시기인 959년, 조광윤이 귀덕군절도사로 봉해졌다.

조광윤이 세운 왕조 이름이 송이 된 것도, 진교의 변 당시 조광윤이 중앙의 직책과 함께 이 송주(귀덕군) 절도사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지방직인 절도사와 중앙직을 겸임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송주는 수도 개봉과 워낙 가까워 겸임이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마치 당 고조 이연에게 있어 태원(타이위안)과 같은 거병의 근거지로서, 왕조가 처음 출범한 곳으로 여겨져 경덕(景德) 3년(1006년) 남경 응천부(應天府)로 격상되어 북송 시대에 존중받았다. 정작 수도는 다른 곳에 두었으면서도 국호는 이 원래 근거지에서 딴 것도 당과 같다.[3] 이 일대가 정강의 변 당시 고종이 이곳에 피신했고 그해 황제로 즉위해 임안(臨安)으로 옮기기 전까지 남송 초기 임시 수도였다.

금나라가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 응천부를 귀덕부로 고쳤는데, 금나라가 멸망한 직후 남송의 단평 원년(1234년)에 남송은 귀덕부를 수복하고 다시 남경 응천부로 회복하였다. 이후 원나라가 들어서면서 다시 귀덕부가 되었으나 명나라에서 홍무제가 즉위하고 바로 강등되어 귀덕주가 되었다가 가정 24년(1545년)에 귀덕부(歸德府)로 다시 승격되어 상추현(商丘縣)을 두었다. 청대 연간에는 주집(朱集)라고 불리며 상업의 발원지이자 물자의 집산지로 유명해졌고 1916년 룽하이 철도가 개통된 후 주집에 역이 설치되었다가 상추 역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중화민국이 들어서면서 점차 현재 지명이 쓰이게 되다가 1948년 중국공산당이 이곳을 점령한 후엔 아예 지명을 이쪽으로 바꾼 현재의 상추시를 설립했다.

사실 현재의 시가지는 과거의 귀덕부에서 동쪽으로 몇 km 떨어져 있는 주집(朱集)이라 불렸던 장터였다. 명나라 시기 동쪽에 대운하가 건설되면서 서서히 몰락했던 상추는 농업생산력과 교통, 석탄 매장량을 앞세워 1990년대 급속히 발전했고 1997년 지급시가 된다.

3. 교통[편집]


상항고속철도, 루차오고속철도, 쉬란고속철도, 룽하이(隴海)철도[4]상추역을 지나간다.


4. 기타[편집]


도가의 학자 장자[5]초한쟁패기 때 한나라의 장군인 관영의 고향이며 한궈위(韓國瑜)의 본적지가 이곳이다. 즉 한궈위는 외성인이다. 또한 화목란 전설 중에는 이곳이 화목란의 고향이라는 버전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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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이름은 오늘날 상추시의 하위 행정구역 쑤이양구(睢阳区)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2] 송주, 박주, 휘주, 영주[3] 당(唐)이 통일왕조인데다 특히 한국사에 끼친 영향이 커서 한국인 입장에서는 떠올리기 힘들지만, 원래 唐은 진(함양의 영성 秦 말고 산서성의 晉=晋)의 별칭으로서 산서성의 별칭이기도 했다. 당 고조의 조부가 북주 때 태원 일대를 당국공이라는 이름으로 분봉받은 것에서부터 시작해, 중국사 역대 국호의 법칙을 따라 당국공 -> 당왕 -> 당제로 급이 올라가면서 唐이 왕조의 이름으로까지 격상된 것이다.[4] 이 철도가 1905년 개통된 이후 주집이 귀덕을 앞질러 현재의 시가지를 형성했다.[5] 정확히는 송(宋)나라 몽(蒙)이란 곳에서 태어났는데 이곳은 현재의 안휘성 몽성 또는 상추시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