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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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 데이비스 주니어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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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 데이비스 주니어
Sammy Davis Jr.


파일:sammydavisjr..jpg

본명
새뮤얼 조지 데이비스 주니어
Samuel George Davis Jr.
출생
1925년 12월 8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할렘
사망
1990년 5월 16일 (향년 64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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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직업
가수, 댄서, 배우,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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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포리스트 론 공원묘지
신장
165cm
학력
무학[1]
장르
전통 팝, 빅 밴드, 재즈, 이지 리스닝, 스윙
악기
보컬, 피아노, 드럼
활동
1928년 ~ 1990년
데뷔
영화: 1933년 'Rufus Jones for President'
가수: 1950년 싱글 'Inka Dinka Doo'
배우자
로리 와이트 (1958년 ~ 1959년, 이혼)
마이 브릿 (1960년 ~ 1968년, 이혼)
앨토비스 고어 (1970년 결혼)
자녀
3남 1녀
종교
기독교유대교사탄교유대교[2]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
2. 상세
3. 대표곡
4. 주요 출연작



1. 개요[편집]


미국의 가수 및 배우.


2. 상세[편집]


주로 트레디셔널 팝 곡들을 불렀다. 여러 악기들도 다룰 줄 안다. 전성기 시절 영상들에서 실로폰이나 드럼, 기타 등을 연주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1925년 뉴욕 할렘에서 태어난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는 3살 때 유명 보드빌 댄서였던 아버지 새미 데이비스 시니어를 따라 전국 투어를 했고, 1933년 어린 나이에 영화계에 데뷔를 했다.

18세에 군에 입대했는데[1] 백인병사들에게 수없이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한 번은 코뼈가 부러질 정도로 얻어터졌다. 데이비스는 군대에서 겪은 경험과 악몽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1952년 Ciro's(시로스)라는 나이트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벼락 스타가 되었다. 29살이던 1954년 교통사고로 인해 왼쪽 눈을 잃었다. 몇 년 후 유대교로 개종했는데, 흑인이 겪는 차별과 유대인이 겪는 차별에서 공통점을 찾아냈다.

데이비스는 뛰어난 노래실력과 춤솜씨, 그리고 유머감각으로 20여년 동안 미국 연예계를 지배했다. 클럽 무대, 방송, 영화, 브로드웨이 등에서 활약했다. 흑인과 백인의 연애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던 시절 미녀 여배우 킴 노백과 연애해 당시 미국사회를 경악시켰고 곧 이어 1960년 스웨덴 출신의 금발 여배우 마이 브릿과 결혼까지 했다.

프랭크 시나트러, 딘 마틴, 피터 로퍼드, 조이 비셥과 함께 '랫 팩'을 결성해 활동했다. 시나트러와는 1940년대 초 처음 만나 수많은 공연과 영화를 함께 하며 절친으로 지냈다. 당시는 백인들이 쓰는 화장실에 흑인은 출입이 금지될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나트러는 극장주들에게 데이비스를 자신과 동등하게 대우해 주지 않으면 공연자체를 취소하겠다고 엄포를 놓을 정도로 그를 아꼈다.

냇 킹 콜과 같은 흑인 크루너(Crooner)이다. 콜은 재즈 기반이지만, 데이비스는 트레디셔널 팝 기반이라는 차이가 있다. 또한 콜은 4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초반까지 긴 전성기를 가졌으나 데이비스는 콜이 주춤할 때인 1960년대 초중반부터 전성기를 누렸으며[2], 70년대에 경력 정점을 찍는다. 나이는 비슷하지만 전성기가 이렇게 어긋난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

데이비스는 미국 흑인 커뮤니티와 복잡한 관계를 가졌는데, 존 F. 케네디를 지지하는 민주당원인데,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렸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후에 새미는 닉슨을 지지한 걸 후회했으며, 그가 약속한 시민권을 지키지 않아서 비난했다. 어느 날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엔터테이너 잭 베니가 골프 도중 새미에게 "새미, 당신의 골프 핸디캡은 뭡니까?" 라고 물었는데, 새미는 "핸디캡에 대해 얘기하자면, 저는 유대인인 애꾸눈의 흑인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는 그의 대표적인 어록으로 남아있다.

본인 이름만 타이틀 위로 올라간 단독 주연 영화 <A Man Called Adam>(1966)이 있다. 원래는 냇 킹 콜을 위한 기획이었으나 콜이 사망하면서 넘겨받았다. 리오 펜[3]이 연출하고 여자친구의 할아버지 역으로 루이 암스트롱, 에이전트 역으로 피터 로퍼드, 절친 넬슨(Nelson) 역에 아시 데이비스, 파티 초대가수로 멜 토메이가 등장한다.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데이비스가 연기한 재즈 코넷 연주자 애덤 잔슨(Adam Johnson)은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으로 불화를 일으킨 끝에 퀸텟에서 나와버린다. 무리한 구속을 당하는 등 인종차별 당하는 게 일상인 애덤에게 공연 에이전트 매니(Manny, 피터 로퍼드 분)는 인종차별을 무조건 견디며 서부에서 순회 공연을 돌라고 강요한다. 애덤은 매니를 위협하고 전 여자친구에게 폭행을 휘두르는 등 점점 자기파괴적으로 변해간다.
스포일러 ▼
사실 애덤은 경찰관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하고 만취한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일으켜 아내와 자녀들을 모두 죽게 만든 과거가 있었다는 게 밝혀진다. 애덤은 흑인인권운동가 클로디어 퍼거슨(Claudia Ferguson, 시설리 타이슨 분)과 재즈 트럼펫 연주자인 클로디어의 할아버지 윌리(Willie, 루이 암스트롱 분)를 알게 되는데, 클로디어 역시 애덤에게 지나친 전투 태세를 바꿀 것을 종용한다. 애덤은 옛 그룹 멤버들과 재결합하지만 경찰은 클럽 주인을 협박해 애덤을 출입 금지 시키게 한다. 애덤은 결국 매니가 제안했던 서부 순회 공연을 받아들이는데, 백인 트럼펫 연주자 빈선트(Vincent, 프랭크 시나트러 주니어 분)와 애덤이 포옹한 모습을 본 관객들이 분노해 빈선트를 폭행한다. 얼어붙은 애덤은 도망친다. 클로디어는 자신이 애덤에게서 남성성을 앗아갔다고 느껴 후회한다. 애덤은 다시 클럽에 나타나 공연을 하던 중 지인들 앞에서 사망한다.


3. 대표곡[편집]




4. 주요 출연작[편집]


  • 포기와 베스 (1959)[4]
  • 오션스 11 (1960)
  • 로빈 후드 (1964)[5]
  • A Man Called Adam (1966)
  • 스위트 채리티 (1969)[6]
  • 캐논볼 (1981)[7]
  • 캐논볼 2 (1984)[8]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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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은 1973년까지 징병제를 유지했다.[2] 이미 영화 쪽에서는 스타였지만, 가수로서의 전성기는 이때가 시작이었다.[3] 숀 펜, 크리스 펜의 아버지다.[4] 오토 프레밍어 연출. 시드니 푸아티에이, 도로시 댄드리지 출연.[5] 프랭크 시나트러, 딘 마틴 출연.[6] 셜리 맥클레인 출연.[7] 버트 레널즈, 로저 무어 출연.[8] 셜리 맥클레인, 딘 마틴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