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룸살롱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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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2-20170926-184405112.jpg

범인 김태화(좌)와 조경수(우)

1. 개요
2. 상세
2.1. 장기간 도주 후 검거
2.2. 연쇄살인
3. 재판
4. 여담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1990년 1월 28일 서울특별시 구로구 샛별룸살롱에서 10대 4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당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 같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범인은 23세[1]였던 조경수, 21세[2]였던 김태화[3]연쇄살인의 첫 발생 시기는 1990년 1월 2일이다.



2. 상세[편집]


2인조의 샛별룸살롱에서의 범행은 1990년 1월 28일에 일어났다.

1990년 1월 29일 새벽 1시경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2동 808-40[4] 지하 1층 샛별룸살롱 안에서 술집 종업원 10대 3명과 인근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하던 10대 한 명(남성 2명, 여성 2명)이 예리한 흉기에 온몸이 난자 당하여 살해된 것이 목격되어 신고가 접수되었다. 신고자인 해당 건물 2층의 원미자에 의하면, 영업을 끝낸 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지하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20분 후 내려가 보니, 지하 출입문 앞, 홀 안, 내실 안에서 3명이 이미 쓰러져 숨져 있었고, 술집 여종업원 한 명은 생존해 신음하는 채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이송 중 사망했다. 피살된 네 명은 모두 온몸이 4~14차례 잔인하게 칼로 찔려 살해당했고, 여종업원 2명은 옷이 모두 벗겨져 있었다.

룸살롱 주인의 증언에 따르면, 28일 밤 9시경 스포츠머리를 한 청년 2명(25세 전후로 추정)이 위에서 마지막으로 생존했던 여종업원 한 명과 1시간 가량 술을 마신 후 나갔다가, 밤 11시 40분경에 다시 룸살롱으로 와 외박을 요구했다고 한다. 해당 여종업원이 애인이 있다고 거절하자, 2명은 해당 여종업원에게 후환이 있을 거라는 협박을 한 후 술집을 나갔다. 29일 0시 30분 경 주인은 귀가한 직후 불안한 예감에 룸살롱에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아, 옆건물에서 당구를 치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에게 확인을 요청했으나, 이 아르바이트생 역시 살해당하고 말았다.

경찰은 서울구로경찰서 오봉파출소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경상도 말씨를 사용하는 조경수와 전라도 말씨를 사용하는 175cm 전후의 김태화를 용의자로 지정하고 추적했다.


2.1. 장기간 도주 후 검거[편집]


범인은 범행 신고 하루만인 1990년 1월 30일에 1990년 1월 2일 광주에서 술집 여종업원을 살해한 조경수, 김태화 2인조로 특정되었다. 하지만 위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도 범인은 한동안 잡히지 않았다. 범행 후 1주일간 수사는 진척되지 않았고, 1990년 2월 1일을 시작으로 택시 기사를 협박하거나 미용실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는 등 도주자금을 벌기 위해 범행을 계속했으며, 이 과정에서 그들을 목격했다는 증언은 계속해서 나왔지만, 경찰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 1990년 2월 10일 조선일보 3면 기사에는 <警察의 한심한 服務자세>[번역]라는 제목으로 '경찰의 수사력'을 비판하는 사설이 게재되기도 했다.

2월 9일 조경수가 부산누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2월 14일에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 의사를 밝혔으나, 실제로 경찰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아, 이들이 부산에 잠입한 게 아니냐는 추정도 나왔다. (1990년 2월 15일 동아일보 12면 기사 <釜山잠입설에 잔뜩 긴장>)

그러다 1990년 2월 27일 샛별룸살롱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카페에 나타났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때도 경찰은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는데, 잠복경찰이 6명이나 있는데 눈치도 못 채고, 신고자인 박양이 조경수의 애인 이모양과 김태화가 차에 타 데리고 간 걸 신고한 이후에야 알았다. 대담해진 이들은 1990년 3월 3일에는 대전 거리를 활보하면서 경찰을 가리켜 '나를 잡으러 왔다'는 농담까지 하기도 해, 경찰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졌다. 그리고 이 사실이 보도된 후 이틀만인 1990년 3월 5일 오후 조경수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3월 10일 나머지 한 명의 범인인 김태화가 조건부 자수를 하겠다고 전화한 것으로 덜미가 잡혀 체포되었다.

김태화는 자신의 범행 이유에 대해 '민주화를 위한 행동'이었다며 개소리를 시전하기도 했다. 그는 체포되기 이전 드라마 수사반장의 실제 모델이었던 당시 서울지방청 최중락 총경에게 직접 전화를 걸기도 했다.

2.2. 연쇄살인[편집]


범인 2인조는 체포된 후 3월 11일에는 특수강도강간 등 총 42건의 범행을 자백했다. 이 과정에서 1990년 1월 2일에 최초의 살인을 저질렀음이 드러나 연쇄살인 사건이 되었고, 김태화는 1990년 1월 27일에 관계를 가진 윤락 여성이 화대를 더 달라고 하자 칼로 찌르는 등 3곳에서 3명을 찔러 중상을 입힌 혐의를 받기도 했다.



3. 재판[편집]


조경수, 김태화는 1991년 2월 26일 사형 확정 판결을 받고, 동년 12월 18일을 기하여 처형되었다.


4. 여담[편집]


이 사건이 일어난 후, 청소년의 생활에 대해서 여러 말이 오갔다. 미성년자들이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건의 피해자 중에 가출 청소년도 있어 "사회가 청소년들을 어떻게 보호하는 거냐", "어린애들이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나 해서 뭘 배우겠느냐" 등 그런 쪽으로도 시끄러워지기도 했다.

2008년에 tvN범죄의 재구성에서 이 사건을 다뤘으며, 대중매체에서 다룬 사례는 이것이 유일하다.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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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6년 7월 29일생[2] 1968년 12월 1일생[3] 전라남도 나주시 출신으로 고향 선후배다.[4] 도로명주소 구로동로 77. 당시의 건물은 2017년경 재건축돼서 사라졌다.[번역] 경찰의 한심한 복무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