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다이 그룹

덤프버전 :



1. 개요
2. 역사
2.1. 그룹 창설 이전
2.2. 샤다이 그룹
3. 그룹 구성
3.1. 샤다이 팜
3.2. 노던 팜
3.3. 오이와케 팜
3.4. 샤다이 코퍼레이션
4. 주요 소유마
4.1. 샤다이 레이스 호스
4.2. 그린 팜
4.3. 선데이 레이싱
4.4. 실크 레이싱
4.5. 캐럿 팜
4.6. G1 레이싱
4.7. 샤다이 그룹 오너즈
4.7.1. 요시다 테루야
4.7.3. 요시다 하루야
4.8. 요시다 가문 개인 명의
4.8.1. 요시다 젠야
4.8.2. 요시다 카즈코[1]
4.8.3. 요시다 치즈[2]
4.8.4. 요시다 카즈미
4.8.5. 요시다 야스에[3]


社台グループ


1. 개요[편집]


일본의 유명한 경주마 오너 브리더[4] 그룹. 창업자 요시다 젠야(吉田善哉)가 1955년 본가인 홋카이도 시라오이의 샤다이 목장에서 독립하여 치바현에 위치한 치바 토미사토 분장을 기반으로 설립한 샤다이 팜을 시작으로 여러 목장들을 추가로 설립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요시다 젠야가 1993년 사망한 이후 3명의 아들들이 분할상속 받았으며,[5] 그 밑에 여러 클럽 법인들이 존재한다.

요시다 젠야는 해외에서 노던 테이스트, 선데이 사일런스 등의 씨수말을 들여오며 일본 경주마의 질을 높이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이는 샤다이 그룹이 현재까지도 일본 경마계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일본 경마계는 사실상 샤다이가 대부분 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샤다이가 싫든좋든 경마계를 먹고 살리고 있는 1등 공신이라 할수 있다.[6] 비샤다이계도 샤다이 관련 목장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실정.[7]

1980년대부터 이미 샤다이 RH의 말들이 활약을 했으며 많은 착오의 결과와 투자를 통해 이미 노던 테이스트 시절인 1980년대 부터 시작해 1990년대 선데이 사일런스 2000~2020년대 초반 딥 임팩트의 샤다이SS에서의 대성공으로 2010년대 이후 결실을 맞게 되어 2010년대 이후에는 키타산 블랙을 제외하고 전부 다 연도대표마를 배출하거나 소유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주요 일본 G1 경주를 우승한 대부분의 경주마들이 다 샤다이 그룹 산하에 있으며 주로 선데이, 캐럿 팜, 실크 소속 경주마들이다. 2012년 선데이 레이싱의 오르페브르개선문상에서 2년 연속으로 2착을 한 이후로 개선문상에 대한 오기가 생긴 것인지, 최근까지도 1군 급 말을 매년 하나둘씩 보내고 있다. 최근 브리더스컵 디스태프에서 캐럿팜 소속의 마르슈 로렌이 우승을 하며 샤다이 그룹의 진가를 미국에서도 드러냈다.[8]

옛날에는 샤다이, 다이나라는 관명을 사용했다. 현재는 소속 경주마들의 작명에 관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코에이의 경마 게임 위닝 포스트 시리즈에서는 아래의 가명으로 등장한다.
  • 샤다이 레이스 호스 → 샤라이(社来) 레이스 호스 / 아비라(安平) 레이스 호스
  • 선데이 레이싱 → 재팬 레이싱(ジャパンR)
  • G1 서러브레드 클럽 → 더비 클럽(ダービーC)
  • 샤다이 팜 → 요시노(吉野) 샤라이 팜 / 요시노 아비라 팜
  • 노던 팜 → 요시노 노던 팜
  • 시라오이 팜 Yearling → 샤라이 시라오이 목장


1.1.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와의 관계[편집]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팬들에겐 여러가지 의미로 초유의 관심을 받는 목장인데, 이들이 소속 말들의 라이센스를 허가해주지 않음으로써 2000년대 이후의 수많은 유명 경주마들이 대부분 게임에 출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이들의 소유마 중 부에나 비스타, 오르페브르가 등장 예정이었고[9][10] 1차 PV에는 해당 말들의 캐릭터가 등장했으나, 라이센스 허가를 받지 못하면서 결국 강판되고 말았다. 샤다이 말들을 제외하고도 게임은 출시와 동시에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했지만, 장기적으로 게임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선 반드시 이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때문에 사이게임즈의 모회사 사이버 에이전트의 회장 후지타 스스무가 마주 산업에 진출하여 샤다이 그룹의 생산마를 대거 사들인 것이 샤다이의 라이센스를 따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루머가 돌기도 했었다.

2021년 7월 13일 셀렉트 세일에서 샤다이 팜 대표 요시다 테루야가 인터뷰 중 후지타와 우마무스메에 대해 언급했다.# 후지타가 경매에서 거액의 돈을 지른 덕에 전체적으로 경매 매출이 올랐고, 우마무스메 덕에 마주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 샤다이가 곧 라이센스를 내줄거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다만 우마무스메 팬들은 언급한 것 만으로도 고무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침내 2023년 2월, 사이게임즈가 샤다이의 라이센스를 획득하는데 성공했으며, 샤다이 그룹 출신의 첫 우마무스메 실장마로 네오 유니버스가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요시다 카츠미 개인 소유마였던 정글 포켓 역시 우마무스메에 나오게 되었다.[11] 네오 유니버스와 정글 포켓의 등장은 화제가 되어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에 '샤다이 실장', '샤다이 해금'등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후 카츠미 계열 클럽인 선데이 레이싱도 두라멘테가 3기 방영과 동시에 기습 실장되면서 해금되었다.[12] 3화에선 오르페브르와 젠틸돈나의 실명이 나오면서 저 둘도 추가되는 게 확정되었다.


2. 역사[편집]



2.1. 그룹 창설 이전[편집]


  • 1928년 샤다이 목장 설립 - 1920년대부터 요시다 목장[13]에서 서러브레드 생산을 시작한 요시다 곤타로(吉田権太郎)의 영향을 받은 조카 요시다 젠스케(吉田善助)가 홋카이도 시라오이쵸 샤다이 지구에 목장을 설립. 미국에서 서러브레드 말을 수입해 생산 시작
  • 1940년 요시다 젠스케의 3남 요시다 젠야(吉田善哉)가 샤다이 목장 치바 토미사토 분장장에 취임
  • 1945년 1월 요시다 젠스케의 사망, 두 형의 건강문제로 요시다 젠야가 시라오이, 치바 목장 관리를 담당
  • 1945년 종전 후 GHQ의 농지 개혁으로 형 젠이치(善一) 명의의 치바 토미사토 목장 40 ha 중 36 ha가 지주 부재로 몰수. 요시다 젠야가 이의신청을 하고 1953년 환불의 형태로 토지를 되찾음


2.2. 샤다이 그룹[편집]


  • 1955년 치바 샤다이 목장(千葉社台牧場) 독립 - 요시다 젠야가 어머니의 사망 이 후 샤다이 목장 치바 토미사토 분장을 치바 샤다이 목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8마리의 번식 암말로 샤다이 목장에서 독립
  • 1958년 치바 샤다이 목장 샤다이 지장(千葉社台牧場社台支場) 설립 - 독립 이듬해 미국에서 현지의 선진적인 생산,육성 방법에 깊은 감명을 받은 요시다 젠야가 샤다이 목장의 토지의 일부를 매각해 홋카이도의 시라오이 샤다이 지구에 샤다이 지장을 설립
  • 1962년 종마 거샌트[14]도입 - 샤다이 그룹의 초창기에 활약한 종마로 1969년 일본 리딩 사이어에 오름
  • 1962년 치바 샤다이 목장을 샤다이 팜 치바(社台ファーム千葉)로 치바 샤다이 목장 샤다이 지장을 샤다이 팜 시라오이(社台ファーム白老)로 개칭
  • 1967년 홋카이도 하야키타쵸(현 아비라쵸)에 샤다이 팜 하야키타(社台ファーム早来) 설립
  • 1971년 홋카이도 치토세에 샤다이 팜 치토세(社台ファーム千歳) 설립
  • 1973년 홋카이도 우라카와쵸에 샤다이 스탤리온 스테이션 오기후시(社台スタリオンステーション荻伏) 설립
  • 1975년 종마 노던 테이스트 도입
  • 1980년 샤다이 다이너스 서러브레드 클럽(社台ダイナースサラブレッドクラブ - 現 샤다이 서러브레드 클럽) 설립
  • 1983년 종마 리얼 샤다이[15] 도입
  • 1988년 - 일본 다이너스 서러브레드 클럽(日本ダイナースサラブレッドクラブ - 現 선데이 서러브레드 클럽) 설립
  • 1989년 - 종마 토니 빈 도입
  • 1989년 - 주식회사 노던 호스 파크(ノーザンホースパーク) 설립 - 홋카이도 토마코마이 시에 승마, 마차등의 체험 테마 공원인 노던 호스 파크 개장
  • 1991년 - 종마 선데이 사일런스 도입
  • 1993년 8월 13일 - 창업자 요시다 젠야 사망
  • 1994년 1월 - 분할에 의해 샤다이 팜(社台ファーム), 노던 팜(ノーザンファーム), 시라오이 팜(白老ファーム)으로 재편
  • 1996년 - 홋카이도 오이와케쵸 (현 아비라쵸)에 오이와케 팜(追分ファーム) 설립
  • 2007년 샤다이 스탤리온 스테이션 오기후시 폐장
  • 2010년 G1 서러브레드 클럽(G1サラブレッドクラブ) 설립

3. 그룹 구성[편집]



3.1. 샤다이 팜[편집]


샤다이 서러브레드 클럽 홈페이지
그린 팜 애마회 홈페이지

치토세시 소재로 대표는 3형제 중 장남이자 아버지와 함께 미국을 왕복하며 서러브레드 비즈니스를 배웠던 요시다 테루야(吉田照哉). 히다카 샤다이 팜, 샤다이 블루 그래스 팜, 야마모토 트레이닝 센터, 그린우드 트레이닝 등의 시설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산하에 샤다이 레이스 호스 (대표 요시다 테츠야), 그린 팜 (대표 이토 이사오) 등의 클럽 법인이 있다.

샤다이의 적자 혈통이라고 할 수 있는 목장... 이지만 야마모토 트레이닝 센터의 화재로 인한 파손과 2010년대 들어서 밀어주던 근간 수말들의 부진으로 아래의 노던 팜에 주도권을 빼앗긴 상황이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트레이닝 센터의 보수가 완료되고 어느 정도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중.


3.2. 노던 팜[편집]


선데이 서러브레드 클럽 홈페이지
실크 호스 클럽 홈페이지
캐럿 클럽 홈페이지

아비라초(구 하야키타초) 소재로 대표는 3형제 중 차남인 요시다 카츠미(吉田勝己).[16] 노던 팜 공항 목장, 노던 팜 Yearling, 노던 팜 시가라키, 노던 팜 텐에이, 노던 레이싱, 노던 호스 파크 등의 시설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산하에 선데이 레이싱 (대표 요시다 슌스케[17]), 실크 레이싱 (대표 요네모토 마사시), 캐럿 팜 (대표 아키타 히로아키) 등의 클럽 법인이 있다.

요시다 카츠미는 말 다루기를 전문으로 배운 형제들과 달리 젊었을 적부터 회계 담당이었으며, 노던 팜으로 독립한 이후로는 현재 샤다이를 운영하는 시스템을 구축, 압도적인 성과를 내면서 그룹 내 주도권을 쥐고 있다.


3.3. 오이와케 팜[편집]


G1 서러브레드 클럽 홈페이지
아비라초(구 오이와케초) 소재로 대표는 3형제 중 삼남인 요시다 하루야(吉田晴哉). 오이와케 팜 릴리 밸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산하에 클럽 법인 G1 레이싱 (대표 요시다 마사시)이 있다.

세 목장 중 가장 늦게 만들어져서 규모가 제일 작다.


3.4. 샤다이 코퍼레이션[편집]


요시다 3형제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법인.

시라오이 팜[18], 샤다이 스탤리언 스테이션, 샤다이 호스 클리닉, 시라오이 팜 Yearling 등이 있으며, 공동 소유 시스템인 샤다이 그룹 오너즈가 있다.


4. 주요 소유마[편집]


중상 우승마는 너무 많기 때문에, G1급 대회 우승마만 기재한다.


4.1. 샤다이 레이스 호스 [편집]


파일:샤다이 레이스 호스 승부복.png

4.2. 그린 팜[편집]


  • 오너 브리더인 나스노 팜과 제휴. 참고로 나스노 팜은 고노 다로 가문 소유이다.
  • 소유마 한 마리를 200구 계좌로 쪼개서 한입마주를 모집.
파일:그린 팜.png
승부복은 나가타 마사이치[19]의 유족의 허락을 받아 물려받은 것이다.


4.3. 선데이 레이싱[편집]


  • 상속분할 전의 우승마 포함.
  • 노던 팜과 연계하고 있으며, 소유마 한 마리를 40구 계좌로 쪼개서 한입 마주를 모집.
  • 오르페브르와 젠틸돈나 등 여러 소유마들의 활약 덕분에 샤다이 그룹하면 떠오르는 클럽이 되었다.
  • 대표자는 요시다 카츠미의 아들인 요시다 슌스케가 맡고 있다.
파일:선데이 레이싱.png

4.4. 실크 레이싱[편집]


  • 원래는 독자적인 마주 클럽법인으로 초창기에는 샤다이와 대립각을 세웠던 하야타 목장과 연계하던 법인이었으나 하야타 목장 도산 후 회원수의 감소로 인한 경영 악화로 샤다이 그룹과의 제휴하면서[20] 요시다 카츠미의 사위인 요네모토 마사시의 대표 취임으로 요시다 일가와 혈연이 이어진 계열 클럽법인이 되었다. 하단의 목록은 제휴 전 소유 경주마 포함.[21]
  • 노던 팜과 연계하고 있으며, 소유마 한 마리를 500구 계좌로 쪼개서 한입 마주를 모집.
  • 승부복의 모습이 배홍동 볶음면의 포장지 디자인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배홍동 승부복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가슴팍과 그 주위의 6개의 점 때문에 육유두라고 불리기도 한다.(...)
  • 이퀴녹스의 4세 은퇴설 제기로 상당히 미묘한 기류가 흐르던 와중에 소유마 오소리티의 무상 양도 논란까지 제기되면서 클럽에 대한 팬들의 민심이 급격히 나빠졌고 이퀴녹스까지 팬들의 기대를 박살내고 은퇴해 더욱 민심이 악화되었다[22].
파일:실크 레이싱.png


4.5. 캐럿 팜[편집]


  • 원래는 독자적인 마주 클럽법인이었으나 샤다이 그룹과의 제휴 및 노던 팜 목장장이었던 아키타 히로아키의 사장 취임으로 샤다이 계열 클럽법인이 되었다. 카츠미의 사위가 대표직에 있는 실크 레이싱과 마찬가지로 카츠미의 또다른 딸인 쿠로다 마치코의 영향력 하에 있는 클럽이지만 이쪽은 사위가 문구회사 코쿠요의 후계자이자 현 사장이기 때문에 사위 대신 카츠미의 심복인 아키타가 대표 자리에 있다는 차이가 있다.
  • 노던 팜과 연계하고 있으며, 소유마 한 마리를 400구 계좌로 쪼개서 한입 마주를 모집.
파일:캐럿 팜.png

4.6. G1 레이싱[편집]


  • 오이와케 팜과 연계하고 있으며, 소유마 한 마리를 40구 계좌로 쪼개서 한입 마주를 모집.
  • 말을 공급하는 목장의 세력 차이로 인해 선데이 레이싱, 샤다이 레이스 호스, 실크 레이싱, 캐럿 팜에 비해 G1 레이싱은 존재감이 상당히 옅은 편이다. G1 레이싱 측도 그걸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는 중.
  • 대표는 요시다 하루야의 아들인 요시다 마사시(吉田正志)가 맡고 있다.
파일:G1 레이싱.png

4.7. 샤다이 그룹 오너즈[편집]


상기한 클럽법인 이외에 구좌 형식으로 분할 소유가 아니라 한 마리의 지분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거나, 가벼운 신체 결함 혹은 혈통 문제 등으로 샤다이 측에서 상품 가치가 애매하다고 여겨지는 말들을 돌리는 법인. 클럽법인 한입마주와는 달리 요시다 일가 명의로 담보에 가까운 공동 소유 형식으로 소유권을 행사한다. 소유마 한 마리를 중앙 소속이면 10구, 지방 소속이면 20구 계좌로 쪼개서 한입 마주를 모집한다.

자기 소유의 말이 하나도 없이 1년을 보내면 마주 자격을 상실하는데, 이 클럽의 구좌 하나만 갖고 있어도 마주 자격 유지가 가능해서 말의 급작스러운 은퇴나 사망 등으로 마주 자격 유지가 필요해진 일반 마주들이 쏠쏠히 써먹는다.

4.7.1. 요시다 테루야[편집]


파일:요시다 테루야.png
  • 갤런트 댄서[23]
  • Ski Paradise
  • Carling
  • 스팅어
  • 듀랜달
  • Marbye
  • 프렌드십
  • 스크린 히어로
  • Sahpresa
  • 스트롱 리턴
  • 생테밀리옹
  • 마그니피카
  • 에린 코트
  • 로고타입
  • 랄라벨
  • Mind Your Biscuits

4.7.2. 요시다 카츠미[편집]


파일:요시다 카츠미.png
  • 플라워 파크
  • 댄스 파트너
  • 정글 포켓[24]
  • 골드 드림(LEX PRO)

4.7.3. 요시다 하루야[편집]


파일:요시다 하루야.png
아직 소유마 중 G1 우승마는 없다. 현재 소유마 중 가장 성적이 좋은 말은 2021년 G2 스테이어즈 스테이크스를 제패한 디바인 포스다. 그러나 디바인 포스도 2023년 한신대상전을 목표로 훈련 중에 계인대염이 발견되어 은퇴되어 승마로 전직했다.


4.8. 요시다 가문 개인 명의[편집]



4.8.1. 요시다 젠야[편집]


아들이자 샤다이 팜 회장인 요시다 테루야가 요시다 젠야 사망 후에 승부복을 물려 받았다. 관명은 지금의 그룹 이름인 샤다이(シャダイ)였다.
  • 앰버 샤다이
  • 샤다이 소피아
    • 요시다 젠야가 굉장히 아꼈던 애마로 어릴 때부터 이 말은 100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로 마음에 들어한 말이었다. 1983년 오카상 우승마이며, 오카상 승리 이후 통상적인 암말 3관 루트가 아닌 더비에 출전하였는데 이는 그 해 샤다이에 숫말 유력마가 없었던 것에 비해[25] 암말쪽에는 샤다이 소피아 외에도 다이나 칼이라는 유력마가 있었던 것과, 오랜 세월 유독 더비와 인연이 없었던 샤다이의 조급증, 소위 '더비병' 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로 결국 더비에서는 이후의 3관마인 미스터 시비를 상대로 17착이라는 참혹한 성적을 찍고 말았다.[26][27] 이후로는 묘하게 승운이 따르지 않았는지 암말 3관이었던 엘리자베스 여왕배에서도 준우승을 하고 1984년에도 스완 스테이크스 2착 등 선전하지만 우승에는 닿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다 85년 한큐배에서 모처럼만의 중상 승리를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한큐배 우승 직후 출전한 1985년 스완 스테이크스에서 낙마로 예후불량. 안락사되고 말았다.[28] 요시다 젠야는 자신이 아꼈지만 본인의 욕심 때문에 커리어가 망가지고 터프에서 최후를 맞은 애마에 대한 회한이 깊었는지 유언으로 자신의 무덤에 샤다이 소피아의 갈기를 같이 묻어달라는 말을 남겼고 결국 사후 샤다이 소피아의 갈기와 함께 영면에 들었다.


4.8.2. 요시다 카즈코[29][편집]


파일:요시다 카즈코.png


4.8.3. 요시다 치즈[30][편집]




4.8.4. 요시다 카즈미[편집]


요시다 카즈미는 요시다 카츠미의 아내다.한국 경마에서도 개인 마주로 활동을 하고 있다.
파일:요시다 카즈미.png

4.8.5. 요시다 야스에[31][편집]


아직 중상을 우승한 우승마가 없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2 23:02:20에 나무위키 샤다이 그룹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요시다 젠야의 아내.[2] 요시다 테루야의 아내.[3] 요시다 하루야의 아내[4] 생산 목장과 마주를 겸임하는 형태를 말한다.[5] 여담이지만 요시다 가문은 젠야의 조부 대인 메이지 유신 전후부터 낙농업에 종사한 집안이기 때문에 샤다이 그룹 외에도 일족 중에 낙농업에 종사하는 친척들이 많다. 샤다이 목장 본장을 상속받은 젠야의 형과 그 일족이 운영하는 샤다이 목장이나 과거 젠야의 숙조부 요시다 곤타로와 그 후손들이 운영하던 목장이자 명마 텐 포인트를 생산했던 요시다 목장 등이 그 예.[6] 사실 샤다이가 일본 경마계에서 이 정도의 지위를 얻게된 진짜 이유는 양심적인 사업메지로 목장, 심볼리 목장, 하야타 목장 등 경쟁 목장의 자멸, 경쟁 목장의 역대급 삽질 덕분이다.[7] 메지로 목장이 폐업하고 레이크 빌라 팜으로 재설립될 때 요시다 카츠미가 새로운 목장주와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샤다이의 번식 암말과 운영 기술 등을 공유해주었는데, 노하우의 격차를 체감한 전직 메지로 목장 출신 직원들은 메지로 목장이 왜 망했는지 알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8] 마르쉐 로렌과 러브즈 온리 유는 둘 다 선데이 사일런스 직계로서 미국 현지에서는 선데이 사일런스의 복수라는 기사까지 나올 정도이다.[9] 사실 말이 등장 예정이지 샤다이의 허락도 없이 일단 디자인부터 하고 출연 선언까지 한 것이라서 그냥 도용에 가깝다.[10] 2021년에 올라왔던 커뮤니티 글과 유튜브 영상에서 잘못 소개된 오류로 인해 같이 강판되었던 딥 임팩트킹 카메하메하도 샤다이 소유마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더러 존재하는데, 이들의 권리는 생산목장이 아니라 마주인 카네코 마코토에게 있다. 당장 우마무스메 캐릭터들 중에도 샤다이 계열 생산목장 태생의 원본마들이 제법 존재한다.[11] 한때는 선데이 레이싱 소속 경주마가 유독 추가되지 않으면서 정글 포켓은 이전 마주였던 사이토 요모지(후지 키세키의 마주)가 대신 허가했을 뿐 요시다 카츠미는 아직도 허가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루머가 돌았지만, 이후 두라멘테 등이 추가되면서 불식되었다.[12] Febri의 우마무스메 3기 애니메이션 관련, 두라멘테 담당 성우와 진행한 인터뷰에 의하면 담당 성우가 두라멘테 역의 오디션에 붙은 것은 1년 전이라고 한다. 우마무스메 캐릭터 메이킹에 반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1주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선데이 레이싱까지 뚫는 것 자체는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13] 1897년 설립해 경종마 생산을 시작했고 1920년 대부터 서러브레드 생산에 착수했다. 요시다 목장의 주요 생산마로 와카쿠모(ワカクモ,1963 - 1966년 오카상 우승마이자 텐 포인트의 모마), 류즈키(リュウズキ,1964 - 1967년 사츠키상, 1968년 아리마 기념 우승마), 텐 포인트, 프리티 캐스트등이 있다.[14] 거샌트(Guersant,1949)는 프랑스 생산마로 프랑스에서 현역 14전 8승, Poule d'Essai des Poulains(프랑스 2000기니), 포레상 등에서 우승하고 1954년 부터 아일랜드에서 종마로 활동하다 1961년 요시다 젠야가 3200만엔에 구입했다. 프랑스 발음으로는 게르상이지만 아일랜드에서 구입했기 때문에 영국식 발음인 ガーサント로 등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자마로 히로요시(ヒロヨシ,1963 - 1966년 오크스 우승), 니트 에이트(ニットエイト,1964 - 1967년 킷카상,1968년 천황상(가을) 우승), 코유(コウユウ,1965 - 1968 오카상 우승), 샤다이 타킨(シャダイターキン,1966 - 1969 오크스 우승)등이 있다. 1974년에 죽은 후 시라오이 팜의 한적한 지점에 무덤 없이 묻어주었다. 그런데 샤다이 그룹이 발전하면서 매장지 위에 도로를 만들었는데 거샌트를 맡았던 직원이 이를 요시다 젠야에게 묻자 "모두 건강하고 샤다이도 잘 되고 있어, 사람이나 차가 지나갈 때마다 거샌트도 기뻐할 거야"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후에 딕터스가 죽었을 때 무덤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의견에 "종마와 번식암말 그 외의 말들도 모두가 몹시 도움이 되고 있다. 특정 말을 위해 무덤을 세우는 것 하지 마라. 거샌트도 하지 않았으니까." 라고 말했다.[15] 리얼 샤다이(リアルシャダイ,1979)는 미국 생산마로 1살 때 요시다 젠야가 구입해 프랑스에서 8전 2승을 기록했다. 1993년 일본 리딩 사이어에 올랐고 주요 자마로 샤다이 카구라, 이부키 마이카구라(イブキマイカグラ,1988 - 1990년 한신 3세 S 우승), 라이스 샤워등이 있다.[16] 요시다 젠야는 원래 다른 형제처럼 이름을 카츠야로 지으려고 했지만, 그 당시에 哉가 인명용 한자에서 빠져버려서 부득이하게 지금의 이름으로 짓게 되었다.[17] 요시다 카츠미와 함께 한국에서도 마주 자격을 취득하여 몇몇 현역경주마를 소유하고 있다.[18] 샤다이 그룹의 모체인 치바 토미자토 목장 부지가 전부 매각된 2000년대 기준 샤다이 그룹 소속 시설 중 가장 오래된 목장. 샤다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는 홋카이도 시라오이의 샤다이 지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그룹의 근본에 가까운 목장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이 시라오이 팜의 바로 옆에는 창업주 요시다 젠야의 본가이자 현 대표인 요시다 테루야 형제들의 사촌이 운영중인 본가 샤다이 목장이 위치해 있다.[19] 토키노 미노루 등의 마주.[20] 일본 최대의 경주마 트레이닝 시설로 평가되는 텐에이 트레이닝센터도 이 과정에서 노던 팜으로 인수되었다. [21] 샤다이와의 제휴 이후 실크 레이싱이 모집하는 경주마는 노던 팜 생산마가 되었고 그 덕분인지 감소한 회원수가 다시 급증하였다. [22] 아리마 기념까지 승리하면 G1 7승을 부자제패를 하는동시에 티엠 오페라 오에 이어 몇년만에 딸수도 읺는 가을 3관에 현창마는 따놓은 당상이다 근데 전성기에 아리마가 코앞에 있는 상태에 은퇴를 했으니 팬들입장에서 눈앞의 교배료 관련 돈독이 올라 부자 제패 G1 7승과 현창마 그리고 가을 3관등 역사에 남길수 있던 이퀴녹스를 은퇴를 시켜버린 실크 레이싱을 매우 안좋게 볼수있다.[23] ギャラントダンサー - 1975년 미국 생산마. 원래 이름은 에코드 그린(Echoed Green)이었지만 미국 경마 역사에서 손꼽히는 1957년 클래식 세대에서 라운드 테이블, 볼드 룰러와 경쟁했던 명마 갤런트 맨이 부마, BMS는 노던 댄서로 둘의 이름을 합쳐 갤런트 댄서로 이름 지어졌다. 1977년 3세(현 2세) 시즌 아사히배 3세 스테이크스 우승 등 3전 3승을 기록했지만 외산마라 전년도의 지입마 마루젠스키와 마찬가지로 클래식 경주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아예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 클래식 경주에 나가려했다. 그러나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컨디션이 무너져 한 경기도 나가지 못하고 5세가 된 1979년 4월 말에야 복귀, 복귀전은 패했지만 다음 경주에서 7마신 차 승리로 부활했다. 그러나 이 후 조교 중 골절을 일으켰고 어떻게든 살려 종마로 활용해보려 했지만 결국 3개월 후 안락사 되었다.[24] 원래는 후지 키세키의 마주였던 사이토 요묘지 소유마였으나 2002년 11월에 매입했다.[25] 후술할 미래의 G1마 갤럽 다이나가 이 세대 샤다이 목장의 숫말 중 하나이긴 했지만 클래식은 커녕 고마 첫해까지만 해도 조건전을 전전할 정도로 초반 커리어는 신통치 못했고 애초에 더비에 출주할 만큼의 수득상금조차 채우지 못한 상태였다.[26] 다만 반대급부로 샤다이 소피아를 대신해 오크스에 출전한 다른 유력마 다이나 칼은 그 경기에서 접전 끝에 우승을 거머쥐었고 훗날 에어 그루브라는 걸출한 자마를 생산하게 된다.[27] 여담이지만 이 때의 일은 수십년 후 젠야의 장남인 테루야도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일이었으며 샤다이 소피아에게 못할 짓을 한 것이라며 스스로 흑역사임을 인정하기도 했다.[28] 안타까운 건, 같은 날 도쿄에서 열린 천황상(가을)에서 우승 최유력후보로 꼽히던 절대강자 심볼리 루돌프가 우승하는 모습, 그리고 평소 앙숙지간으로 유명했던 심볼리 루돌프의 마주 와다 토모히로가 기뻐하는 꼴을 보기 싫었던 젠야가 도쿄 대신 샤다이 소피아가 출주하는 스완 스테이크스를 관전하기 위해 교토경마장에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꼈던 요시다 젠야가 직접 왔다는 것인데, 이 걸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되었던 것. 젠야는 이 일에 대해 갤럽 다이나는 (루돌프에게) 이겼지만 자신은 지는 것이 두려워 도망쳤고 그 때문에 소피아가 이런 변을 당한 것이라고 자책했다.[29] 요시다 젠야의 아내.[30] 요시다 테루야의 아내.[31] 요시다 하루야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