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럿 브론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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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브론테
Charlotte Brontë
파일:Charlotte-Bronte.jpg
필명
찰스 알버트 플로리안 경 / 웰슬리 / 커러 벨
Lord Charles Albert Florian / Wellesley / Currer Bell
출생
1816년 4월 21일
영국 웨스트요크셔 손턴
사망
1855년 3월 31일 (향년 38세)
영국 웨스트요크셔 하워스
국적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직업
소설가, 시인, 가정교사
서명
파일:Charlotte_Bronte_Signatur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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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St Michael and All Angels' Church
장르
픽션,
부모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 (1777~1861)
어머니 마리아 브랜월 (1782~1821)
배우자
아서 벨 니컬스 (1854년 결혼)
형제자매
마리아 브론테 (1814~1825)
엘리자베스 브론테 (1815~1825)
브란웰 브론테 (1817~1848)
에밀리 브론테 (1818~1848)
앤 브론테 (1820~1849)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영국의 소설가이자, 브론테 자매 중 맏언니.


2. 생애[편집]


성공회 사제인 패트릭 브론테와 마리아 브란웰의 셋째 딸로 태어났으나 언니들이 일찍 죽어서 어렸을 때 부터 집안의 맏이로 자랐고,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신 탓에 동생들의 어머니 역할을 해야했다. 그 때문에 동생들에게 매우 엄격했다고. 이에 에밀리는 샬럿을 골려주며 반항했지만 막내인 앤은 얌전히 순응했다고 한다.

브론테 자매들의 생존 당시 그들중 가장 높은 인기를 끌었던 작가로 제인 에어가 특히 출간 당시부터 높은 인기를 끈 명작으로 평가되며 아직까지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으나, 사후에는 당대에는 엄청난 비난과 혹평을 면치 못 했던 폭풍의 언덕의 작가인 동생 에밀리 브론테 쪽이 문학적으로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1]

글을 쓰기 전에 브뤼셀에서 영어 교사로 일한 적이 있다. 때문에 샬럿의 소설에는 교사인 등장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제인 에어도 그렇고 제인 에어를 집필하기 전 썼던 '교수'와 마지막 작품 '빌레트'에도 교사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2] 세 작품 다 샬럿의 자전적 소설이다.

동생들이 다 사망한 후 동생들의 유품을 정리하고 그들을 회상하는 글을 쓰기도 하면서 브론테 자매에 관한 자료들을 남겼다. 이후 아버지와 단 둘이 목사관에 살면서 셜리와 빌레트 등 몇 권의 책을 더 집필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후임 목사로 수련중이던 3살 연하인 아더 벨 니콜스(1819~1906)[3]의 열렬한 구애를 받고 당시의 기준으로도 꽤나 늦은 나이인 만 38세에 결혼했으나 1년도 안 지난 그 이듬해에 임신한 몸으로 사망했다. 임신중에 여러 병이 겹쳤다는데 정확한 사인은 불명이다. 다만 샬럿의 체구가 굉장히 왜소한 데다 그녀의 형제자매들처럼 병약한 편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딸의 결혼을 말렸다는 얘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좋지 못한 몸이 임신하면서 더 약해져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샬럿의 동료 문인인 엘리자베스 개스킬의 기록에 따르면 샬럿은 임신을 확인한 직후부터 극심한 구토와 현기증으로 고생하느라 식사를 거의 못 했다고 한다. 따라서 입덧으로 고생하다 영양실조로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겨우 38살밖에 못 살았지만 형제자매들에 비하면 가장 장수했다. 씁쓸하게도 어머니도 똑같이 38세로 죽었고 남동생 브란웰이 31살, 에밀리가 30살, 앤이 29살 젊은 나이에 숨졌으며 위로 태어난 언니 둘은 겨우 10살 남짓한 무렵에 숨져서 유년기에 삶을 마감.. 6남매나 되었지만 모두들 일찍 죽어서 샬롯이 죽고 난 다음에는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만 홀로 남았는데 패트릭은 다른 식구들과 달리 1861년 84살로 세상을 떠나며 장수했다.[4] 그러나, 아내와 자식 모두가 죽는 걸 다 지켜보고 몇 년이나 더 살다 갔으니 달갑지 않은 장수였을 것이다. 심지어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 모두 자녀를 낳지 못 하고 요절했기 때문에 임종 당시에 곁을 지켜줄 손자녀조차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샬럿의 남편이며 사위이자 성공회 교구 후임 목사인 아서 벨 니콜스(1819~1906)가 샬럿이 죽고 난 뒤 장인인 패트릭을 돌봐서 패트릭이 세상을 떠날 때 그 곁을 지켜줬다. 니콜스는 패트릭이 죽고 나서 1864년에 메리 안나 벨(1830~1915)이란 친척 여자와 재혼했는데, 그도 당시에는 엄청나게 장수한 만 87살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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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폭풍의 언덕은 당시 시대를 너무 앞서 갔고, 거기에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이 더해져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영국 예술은 전통적으로 산문에 크게 꾸준히 뛰어났는데, 그 중에 손가락으로 작품 열 개를 꼽으라면 폭풍의 언덕을 아니 꼽을 수 없다. 더 나아가 폭풍의 언덕은 '리어왕','모비딕'과 함께 영문학 최고걸작 비극으로 꼽히고 있으며 현재 인류 역사상 최고의 문학 작품중 하나로 찬사를 받고 있다. 거꾸로 '폭풍의 언덕'이 높은 평가를 받자 자연스레 '제인 에어'와 비교되고, 그 동안 '폭풍의 언덕'에 매겨져왔던 부당한 평가 탓에 오히려 '제인 에어'가 낮은 평가를 받게 되었으나 '제인 에어' 역시 무척이나 뛰어난 작품이다. 시대적 한계와 그에 상응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말이다.[2] 첫 작품의 경우 왜 교사임에도 제목이 교수냐하면 브뤼셀에서는 중고등학교 선생도 교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샬럿의 첫 작품인 이 소설은 출판사의 동의를 얻지 못해서 샬럿이 죽고 난 후 남편이 대신 출판한 것이다.[3] 세 자매의 필명에 들어가는 '벨'이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4] 아무래도 제인 에어에 묘사된 대로 자식들을 제대로 먹이지 않고 추운 곳에서 난방 등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다들 건강이 좋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다. 19세기 영국은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 현대 기준으로 영양을 제대로 공급해 주면 버릇과 정신력이 나빠지니 그러지 말라는 엄청난 교육설이 대세였던 시대라고 하지만 당시 의료 기술이 좋지 않아 많은 아이들이 일찍 죽어나가던 건 전세계적으로 똑같았다. 당장 프란츠 슈베르트만 해도 16남매나 되었지만 나이 30 넘긴 게 겨우 5명뿐이었듯이.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조차도 서구에서 이상하게 보았고 지금과 다르게 오히려 먼저 식사 전에 손을 씻던 중국이나 인도를 야만스럽다고 비웃던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