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석(군인)

덤프버전 :


파일:6군단.png
대한민국 육군
제6군단장


[ 펼치기 · 접기 ]

||<-5><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ff0000> 파일:external/flagspot.net/kr%5Em3.gif ||
|| 초대
이한림 || 2대
백인엽 || 3대
강영훈 || 4대
김웅수 || 5대
최홍희 ||
|| 6대
김계원 || 7대
정래혁 || 8대
한신 || 9대
김희덕 || 10대
이세호 ||
|| 11대
박원근 || 12대
이소동 || 13대
김용휴 || 14대
이재전 || 15대
신현수 ||
|| 16대
강영식 || 17대
김홍한 || 18대
안필준 || 19대
박명철 || 20대
나병선 ||
|| 21대
임인조 || 22대
김재창 || 23대
최경근 || 24대
이재관 || 25대
서경석 ||
|| 26대
김판규 || 27대
서종표 || 28대
김충배 || 29대
류우식 || 30대
송기석 ||
|| 31대
정두근 || 32대
이홍기 || 33대
서길원 || 34대
김학주 || 35대
이범수 ||
|| 36대
박종진 || 37대
김성진 || 38대
김성일 || 39대
박양동 || 40대
강건작 ||
||<-5><bgcolor=#FFFFFF> ※ 초대~현재 : 중장 ||
||<-5><bgcolor=#FFFFFF> ※ 관련 직위 둘러보기 ||




{{{#fff 대한민국 제25대 제6군단장
서경석
徐慶錫 | Seo Kyeongseok


파일:서경석 장군.png

출생
1942년 1월 5일 (82세)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
학력
중앙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 / 학사)
경력
주 동티모르 대한민국 대사
군사 경력
임관
학군사관 (3기)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65년 ~ 1999년
최종 계급
중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국방부 군수차관보
주요 보직
제25보병사단 제72보병연대 제2대대장
제17보병사단 제102보병연대장
육군특수전사령부 제5공수특전여단장
제17보병사단장
제6군단장

1. 개요
2. 생애
3. 베트남 전쟁 시절 활약
4. 사건사고
5. 기타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군인. 베트남 전쟁 때 활약으로 한국의 카를로스 헤스콕[1]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 생애[편집]


파일:external/www.kocus.com/87752144649dc6b3111185_48867991149dc6b3115fa7.jpg
제6군단장 재직 시절

서울중앙고등학교,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ROTC 과정을 통해 학군 3기로 육군 보병소위로 임관, 초급장교 시절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제25보병사단 제72연대 2대대장, 육군대학 전술학처 교관, 제17보병사단 제102보병연대장, 특전사 참모장, 제5공수특전여단장, 제17보병사단장, 제6군단장 등을 지내고 1999년에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으며 고려대학교 객원교수[2]를 역임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주동티모르 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3. 베트남 전쟁 시절 활약[편집]


1968년 베트남에 소대장으로 간 서경석 장군은 맹호부대(수도사단) 1연대 3대대(재구대대) 중대장으로 진급해 26개월간 전투를 수행한 ‘베트남전의 산 증인’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야전지휘관으로써 돋보이는 능력과 훌륭한 인품, 그리고 엄청난 전투 실력으로 월맹군베트콩으로부터 현상금까지 걸렸었다고 한다.

대위로 진급한 서경석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베트남에서 인연을 맺는다. 1969년 초 노태우 중령이 1연대 3대대(재구대대) 대대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노태우의 회고록에 서경석에 대한 회고가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중대장으로 부임해 한 달쯤 지났을까, 야간 매복에서 전과를 내기 시작하는데, 흔한 말로 ‘겁나게’ 잘했다. 부하들을 무척 아끼는 그는 적들에게도 소문이 날 정도로 무서운 장교였다. 내가 대대장을 그만둘 때까지 대대 전과(戰果)의 반 이상을 서 중위가 이끄는 중대에서 올렸다.'


중대전술기지를 구축하고 아군 기지를 급습하려던 적 병력을 매복작전으로 격퇴하던 도중 M16 소총을 휘둘러 적을 사살한 전공이 있다. 백병전에 가까운 거리에서 교전을 펼치던 도중 적을 눈 앞에 두고 탄창을 교환하려 하였으나 탄입대 단추가 걸려버렸고 착검이 되어있던 상황도 아니라서 그대로 총을 돌려잡은 뒤 내려쳤다고 한다. 평소 야구를 좋아해 무언가를 휘두르는것에 익숙했던 탓에 소총을 너무 세게 휘둘러 개머리판이 뚝 하고 부러져버렸다.

이 모습을 옆에 따라오던 무전병이 보고 흥분해서 무전기에 대고 "우리 중대장님이 이겼습니다!"라고 연신 외쳐대었고, 대대장이 직접 이 소총을 구경하려고 중대전술기지까지 왔다고 한다.


4. 사건사고[편집]


베트남 전쟁이후 계속해서 진급하며 군생활을 하다가 제17사단장 재임시절, 17사단 종교시설 무단폐쇄 사건이 발생해 보직해임당하였으나, 17사단 대대장이 서경석의 종교시설 복구 명령을 어기고 독단적으로 행동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큰 문제 없이 중장으로 진급하여 예편했다.

5. 기타[편집]


파일:external/bimage.interpark.com/310084g.jpg
베트남 전쟁 당시의 전장 경험을 <전투감각>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 유준상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등과 함께 고려대 61학번 동기들의 모임인 ‘육일회’ 멤버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3 03:21:27에 나무위키 서경석(군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1942년생 동갑이기도 하다. 다만 그렇게 비교하기는 힘든게 헤스콕은 사병이었고 저격수로서 공을 세운 반면, 서경석 장군은 월남전에서 초급장교로서 전투를 지휘하며 공을 쌓았기에 전장에서 둘의 역할은 많이 다르다.[2] 교수 시절 A폭격기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로 학점을 후하게 주었지만 ROTC 후보생들에게만큼은 굉장히 엄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