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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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유형
3.1. 일본
3.2. 한국
3.3. 서양
4. 평가
4.1. 비판
4.2. 반론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만화애니메이션 장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어. 위키백과에도 '팬 서비스(Fan service)' 문서가 있다.[1] 일본에서는 섹시한 장면을 '섹시씬'이라고 부른다. 사실 섹시씬이 좀 더 맞는 표현이다.


2. 상세[편집]


본래는 작가가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서비스 삼아 등장인물들이 특별한 의상을 입고 있거나 색다른 스타일을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지칭하던 말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노출이나 므흣한 씬을 서비스, 순전히 즐길 거리로 보여주는 것으로 뜻이 바뀌어 갔고 서비스신의 뜻이 야한 장면으로 정착되었다. 하지만 요즘에도 옛날처럼 캐릭터가 평소에 안 입는 의상을 입은 짤을 넣어주는 서비스신도 많다. 따지고보면 일본 방송심의기관이 일 안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역사는 생각보다 깊어서 데즈카 오사무부터가 이런 걸 종종 넣는 사람이었고, 그의 영향을 받아 다른 작가들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나가이 고는 아예 이것으로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용자 라이딘판치라를 유행시켰고, 초전자로보 콤바트라V는 샤워신을 유행시켰다.

만화의 경우 잡지에 연재하지 않았던 서비스신을 단행본에 추가하는 경우도 흔하다. 예를 들면 여캐들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집어넣어서 속옷을 보여준다든지[2], 특정 각도에서 화면을 비춰 여캐들의 속옷을 보여주거나 특정 신체부위를 강조하는 것. 넓게 보면 판치라도 여기에 포함된다.

서비스 신은 맞는데, 왠지 내용이 씁쓸한 사례도 있다. 인크레더블 1편 중 거울 앞에 선 엘라스티걸이라던가...

여하튼 확연히 호불호를 타는 연출이긴 하다. 단지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선호자 층이 있는 반면, 굳이 들어갈 필요 없는 장면까지도 서비스씬으로 채워넣는다느니[3] 성적 대상화가 심하다느니 등의 이유로 불호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다.

3. 유형[편집]



3.1. 일본[편집]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점차 그 수위가 점차 올라가는 중이다. 주로 많이 나오는 건 하렘물이나 러브 코미디물인데,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들어서는 정말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서비스신을 보여준다. 특히 심야 애니메이션의 비중이 높아지며 BD/DVD를 많이 팔아먹기 위해, 텔레비전 방영판에서는 교묘하게 모자이크나 가리개를 해서 서비스신을 가리기도 한다. 당연히 BD/DVD는 무수정으로 나온다는 기대를 품게 하는 것.

일단 만화나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전체적인 비중을 좋은 스토리나 적절한 그림의 퀄리티로 차지하는 것이 아닌 말그대로 야해 빠진 서비스신 따위로 채워놓은 것들이 꽤 많은데, 최근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의 상당수가 스토리나 퀄리티가 아닌 서비스신에 집중한 제목만 그럴듯하고 실상은 알맹이 없는 만화가 상당히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안 그래도 나빴던 오타쿠의 이미지를 더 나쁘게 하는 건, 사람에 따라서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는 이러한 만화들 때문이다.

애초에 시청률이나 판매량을 늘리겠답시고 내용이랑은 상관도 없는 샤워신이나 집어넣거나 치마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컷, 혹은 가슴이나 엉덩이만 화면에 잡는 등의 지극히 비정상적인 구도를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서비스신을 싫어하는 독자들은 "차라리 그냥 내용 없는 19금짜리 만화 및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될 것을 굳이 야한 연출의 컷을 넣어 내용 분위기를 난잡하게 하거나 스토리 진행에 방해된다."라고 의견을 내세우며 자주 이 점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요즘은 일상 치유물마저 서비스신의 마수를 피해가지 못해 일부 일상물 난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도...

다만 반대로 아동용이나 청소년용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90년대까지는 그래도 판치라 장면이 간간히 나오곤 했지만[4] 2000년대 들어 사실상 판치라 장면이 등장하지 않고 잘해 봤자 수영장이나 해변에서의 비키니나 상의 탈의 정도가 전부다.

정리하자면 대중적인 애니메이션은 과거에 비해 더욱 건전해졌고, 반대로 일부 성인용 애니메이션은 과거에 비해 더욱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 즉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3.2. 한국[편집]


한국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레스톨 특수구조대가 8화에서 미아의 수영복 모습을 과감하게 연출하며[5] 본격 서비스신을 시도했지만 방송되기도 전에 수정당한 흑역사가 있다. 이유는 수영복 입은 여성 신체의 과도한 클로즈업과 노출. 애초에 방송시간대와 주 시청대상을 생각하면 이런 서비스신을 내보내는 것은 무리이기도 했다. 15세 이상 시청가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이후 플라워링 하트에서도 수영복 에피소드가 나왔다. 주인공슈엘비키니를, 트럼프상의 탈의 수영복을 입고 나왔다.

소피루비 시즌 1 28화에서는 아띠가 비키니를 입고 나온다.

3.3. 서양[편집]


영어로는 치즈케이크(cheesecake)라는 표현이 이에 해당된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물에서 여성의 신체 일부를 노출함으로써(예를 들어 허벅지)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행위를 가리키는 속어. 여성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근육질의 남성 신체를(예를 들어 복근 등) 노출하는 것은 비프케이크(beefcake)라 부른다. 물론 둘 다 옛날에(1940년대) 만들어진 용어라, 만화/아니메 용어인 서비스 신과는 용도가 좀 다르다(대상물이 2D가 아니라 실제 인간이므로).

4. 평가[편집]



4.1. 비판[편집]


최근들어선 서비스신의 개념이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 최대의 문제점으로 손꼽히고 있다.

서비스신이 적당히 있다면 상관없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이 특정 계층을 노린 지나친 서비스신의 남발을 하고 있단 평이 나오고 있다.[6] 이로 인해 오히려 작품의 내용 등에 집중이 잘 안된다는 평과 '이 장면 굳이 없어도 될 텐데?' 하고 비판하는 시청자들이 늘고 있다. 물론 도라에몽이슬이 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신 도라에몽'부터는 서비스신 등 과격한 장면을 자제하는 추세이고, 서비스신이 나왔다 해도 억지로 다른 장면을 삭제하는 등 서비스신에 치중한 연출을 하지 않는다. 애초에 도라에몽의 주 시청자가 아동이기 때문에 당연할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으로 치면 7세 관람가나 12세 관람가급의 작품에서도 여자 팬티 들춰보기나 가슴 주무르기 같은, 현실에서 그대로 시전했다가 경찰에 입건되거나 고소를 당해도 할말이 없을 수준의 성희롱이나 성추행 행위가 가벼운 개그요소로 쓰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기도 하다. 사실 이런 요소들이 사골처럼 지속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일본 만화와 애니계뿐만 아니라 일본 방송계 등 연예계 전반의 문제점이기는 하다.[7]

결국 희대의 문제작 아키소라까지 나오는 바람에 갈수록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등을 본격적으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어 다른 작품까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규제당하는 사태가 우려된다는 반응이 각지에서 나오고 있다. 또한 과도한 서비스신은 일반인이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흔히 오타쿠로 불리는 팬들의 시선을 곱지 않게 바라보게 만드는 주 원인이 되고 있다.

당장 오타쿠의 시선이 사회적으로 곱지 않은 편견만 봐도 '여자 캐릭터가 벗고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과도하게 좋아한다'는 논리이다. 게다가 스토리나 설정이 나름 괜찮다면 모를까, 오로지 서비스신을 위해 타당한 이유없이 억지로 설정이나 줄거리를 짜내는 작품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지나친 서비스신의 남발이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를 갈라파고스화시키는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당장 요즘 일본 애니 중 전철이나 길에서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신경 안 쓰고 볼 수 있는 작품이 그리 많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이는 어느 정도 현실화되었다.

심지어 대한민국에서는 성인 등급을 받기 위해 쓰는 꼼수로도 사용된다. 즉, 제대로 된 성인 등급 영화나 게임이 아닌 대놓고 성인층만을 노리기 위해 서비스신을 집어넣어 성인 등급을 받는 용도로 쓰인다. 당연히 작품성은 개판이다.

물론 완전히 부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시로 들자면 식극의 소마는 서비스신과 요리, 능력자 배틀물을 적절히 잘 순화시켜서 좋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8] 단, '부정적인 평가만 나오진 않는다'는 말은 서비스신에 대한 수요나 선호가 존재한다는 논거는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본질적으로 작품의 완성도 자체에 플러스가 되진 않는 잉여적인 외삽물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애당초 서비스신이란 말 그대로 서사의 진행[9]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채, 관객의 눈길을 잠시 끌기 위해 삽입된 러닝타임 혹은 컷을 점유하는 요소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소설이든 영화든 만화, 애니메이션이든 허구적 서사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극적 허구에 대한 수용자의 몰입도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극적 맥락에서 벗어남으로서 서사의 일관성을 흐트러뜨리는 일체의 요소는 본질적으로 작품의 완성도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이를 뒤집어 말한다면, 설령 본질적인 목표가 자극적인 요소로 눈길을 끄는 데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서사적 맥락 속에 연계될 수 있도록 좀 더 신경을 쓰거나 창의력을 발휘한다면, '서비스신'적인 묘사라도 작품의 완성도에 별 훼손을 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노력도 별로 없이 '덕후들은 이런 걸 보여주면 무조건 하앍하앍 할 거야'라는 얕은 술수로 투입되는 게 훤히 눈에 보이는 서비스신 사용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는 창작자, 생산자로서의 최소한의 예의조차 무시하고 수용자를 '우중'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어쩌면 그냥 가볍게 애니보는 사람들도 10덕후 등등 이라며 애니 안 보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하는 원흉 중 하나.

에로틱한 묘사이든 무엇이든, 그것이 작품의 서사에 통합된 것이라면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표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이 작품의 완성도를 해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섹스가 주제이거나 중요한 서사요소인 작품에서 '선정적인 장면'은 '서비스신'이 아니듯 말이다.[10] 아니 설령 '에로계열'이 아니라 해도, 얼마든지 서사적 필요에 의해 적절한 방식으로 성적긴장을 조성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다.[11] 다시 말하자면 성적인 요소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성적인 묘사는 일단 눈길을 끈다'는 이유로, 장르와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4.2. 반론[편집]


그러나 이러한 비판들 자체도 사실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작품과 서사구조의 '완성도'[12]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모호한 개념이다. 어떤 인과성을 띄는 '플롯'이라는 것 역시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에 해당되지 않는 작법[13]을 추구하는 창작자들도 있다.

그리고 설령 전통적 인과성에 충실한 서사구조가 완성도 높은 것이라고 본다 치더라도, 그것을 왜 따라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그게 '완성도'가 높다 하더라도 '완성도'가 높은 것을 추구해야만 할 당위도 없고,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나쁜 작품으로 인정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다르게 말하자면 윤리적으로 '비판'[14]받아야 할 근거도 없다. 물론 평론가들의 세계에 있어서는 일정한 자기들만의 기준에 의해 그 기준을 충족하는 작품이 높은 완성도가 있다고 인정받고, 그에 따라 주목받고 추앙받을 수 있다.[15] 그러나 대중들에게 창작물의 목적은 그 작품이 얼마나 만족감(혹은 재미)을 주느냐에 달린 것이다. [16][17] 만족감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창작자들은 그것을 적극 반영하기 마련이며 이러한 과정은 모두의 공리를 향상시킨다. [18] 이것을 마치 우열의 문제나 윤리적 비판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며 단견에 해당할 수 있다.

나무위키(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크게 오해하는 부분이지만, 창작물에 대해서는 비판이 가해져야 하는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는 하나의 기준에 따라 '비평'을 해야 할 뿐이다. [19] 즉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의 관점에 의거했을 때 이런 점이 모자라다고 볼 수 있다" 정도의 평가를 할 수 있을 뿐,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 열등하다" 같은 평가는 할 수 없다. 당연히 그 창작물의 향유자들에 대해서도 비판이나 비하를 할 수가 없다.[20] 이 미묘한 선을 잘 구별하지 못하면, 민주사회에서 필수적인 사상과 예술의 자유와 다양성 존중을 침해하는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 될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창작물은 창작가 향유자를 고려해서 창작한다. 이 창작물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아보거나[21], 스스로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22] 어느 정도의 평가는 가능하지만, 강제로 창작자의 창작 방향을 바꾸려고 하거나 향유자를 비하하는 식의 태도는 명확히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서비스신이 다소 과도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23] 성적인 표현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과도한 성적 보수주의래디컬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나온 비판이다. 게다가 그 둘과 별개로, 수평폭력적인 오타쿠 혐오에서 나온 서비스신 비난 역시 많은데, 포르노[24] 등이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것에 비추어 보면 내로남불격인[25] 비난일 뿐이다. 딱히 오타쿠와 관계가 없는 네이버 웹툰에서도 독자들이 서비스신을 요구하고 또 진짜 나오면 너무 좋아하는 의견들이 많다.

서비스신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나오지만, 다른 장르에서도 존재한다.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아니라 매력어필로 확대한다면 드라마 등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으며, 그게 인기몰이의 비결이 되기도 한다.


5. 관련 문서[편집]


  • 바스트 모핑
  • 샤워신
  • 색기담당
  • 온천신
  • 판치라
  • 팬 서비스
  • 행복잡기
  • 화장실신
  • 힙 어택
  • 뽕빨[26]
  • 서비스맨
  • 트랜스포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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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어 위키백과의 특성상 문서의 내용이 너무 부실하니 문서를 채워주는 것도 좋다.[2] 정 옷 갈아입는 걸 꼭 묘사해야한다 해도, 노출 없이 옷가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등의 묘사로 끝낼 수는 있다. 속옷을 일부러 보여준다는 건 서비스 신이다.[3] 특히 연령대가 낮은 대상들을 타깃으로 하는 작품일수록 서비스신이 심하면 연령대가 더 높은 작품들보다도 욕먹기도 한다.[4] 대표적인 사례는 구(舊) 도라에몽. 판치라는 어쩌다 가끔 나오긴 하지만 이슬이 목욕씬은 잊을만 하면 나온다.[5] 참고로 이게 최초는 아니다. 이미 그 전년도인 1998년 스피드왕 번개에서 하주빈이 수영복을 입은 모습과 남캐들의 상의 탈의 모습이 나왔기 때문.[6] 예로 2019년 1분기 작품인 5등분의 신부 오프닝은 원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노출장면이 나와 비판을 받았다.[7] 이것도 그나마 심의가 강화되어서 그런 것이고 1990년대 중순까지는 심의기준이 한국과 다른 의미로 정말로 막나갔다. 가령 북두의 권은 수위묘사가 지나치게 셌음에도 소년만화로 출간되었는데 이는 한국기준으로 12세급 만화 취급이었고, 황금시간대에 여자 알몸이 대놓고 나온다거나 했다. 방송의 경우에는 이런 요소가 심의강화로 대놓고 벗기기하는 프로그램은 줄어들었지만 (하지만 성희롱을 유머소재로 삼는 등 한국 기준으로 난리날만한 프로그램은 지금도 많다.) 만화의 경우에는 그 이전의 경향이 어느정도 답습되다보니 현재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것.[8] 다만 점점 내용이 진행될 수록 서비스신이 줄어들며, 서비스신이 나오는 장면도 은근히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에 예시로 들기에는 약간 적절하진 않은 편이다.[9] 문자적, 영상적 차원 모두를 포함한다.[10] 한 예로 에로틱 스틸러 같은 장르의 영화에서 선정적인 장면이 툭툭 튀어나온다고 해도 '작품의 완성도'에는 별 영향이 없다. 원래 그런 에로씬이 작품의 메인 요소이기 때문이다.[11] 예를 들어, 전형적인 청춘물 성향 라이트노벨에 속하는 시미즈 마리코의 '침략하는 소녀와 거짓의 정원'에도 남자 주인공의 시점에서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여주인공의 앞섭 사이로 가슴이 살짝 옅보이는 장면이 묘사된다. 사실 이런 식의 묘사는 매우 흔하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를 이성 혹은 성적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심리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구성요소이지 외삽물이 아니다. 반면 서비스신은 주인공의 시점은 상관없이 독자들이나 보라고 만든 것.[12] 문학성, 예술성, 작품성 등등과 유사하게[13] ex) 안티플롯[14] 비판은 원래 윤리학적 개념이다.[15] 그리고 대중들 중에서도 그런 기준에 관심이 많아 참고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16] 학습용 창작물이나 교훈 전달에 치중한 창작물의 경우 직접적 만족감과 관계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그런 작품도 만족감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17] 문학의 가장 오래된 형태 중 하나가 시인데, 시의 경우에도 고대 로마시절부터 흔히 두가지 목적이 있다고 인정받아왔다. 하나는 쾌락을 주는 것, 다른 하나는 정서를 순화하는 것이다. 이 중 전자가 대부분의 창작물의 주된 목적인 재미에 들어가며, 후자가 교육적 목적, 혹은 메시지에 들어간다. 현대에 와서는 모든 창작물에 과도하게 교육적 의미나 메시지를 넣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보지만(도덕주의의 과잉), 메시지가 내용과 잘 섞여들어간다면 명작이자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작품이 된다.[18] 이는 상업작품일 경우 상업성과도 연관이 된다.[19] 비판을 해야 하는 경우는, 창작물의 내용이 과거사나 현실을 왜곡한다든지, 옳지 못한 정치적 구호를 담는다든지, 비윤리적 태도를 정당한 것처럼 오해시킬 수 있다든지 하는 등 직접적으로 윤리적 문제에 관련된 경우에 한한다. 즉 취존자유주의의 논리가 불가능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지금의 논제에는 관계없지만, 서비스신에서 성추행을 과도하게 정당화하는 식의 묘사라면 이런 비판이 가능하다. 물론 창작물일 뿐임은 고려해야 마땅하다.[20] 극단적인 예시지만, 일반인들도 널리 향유하는 매체인 포르노를 보자. 포르노에 매우 빈약한 서사구조가 존재하고 서비스신(?)만 계속 존재한다고 해서 포르노를 가치 없다거나, 잘못 만들어졌다거나, 포르노 창작자와 향유자가 비하되어야 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21] 그러는 과정에서 구매력을 보여준다면 시장의 경향이 바뀔 것이다.[22] 콰아아아는 원칙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23] 분명 과도한 성적 대상화는 숙고해볼 필요가 있는 지적이고, 심각한 성추행 정당화/미화 묘사 같은 경우는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창작물일 뿐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고, 인물 상호간의 관계나 행위자의 선역 악역 여부 등 여러가지 요소를 살펴야 한다.[24] 오히려 포르노의 경우는 스토리나, 배우들의 처우 문제 등에서 애니메이션의 서비스신보다 더 심각하다. 강간 연기 등이 흔하다.[25] 포르노에 대한 차단 시도에 대해 한국의 대중들은 강하게 반발해왔다.[26] 뽕빨은 극단적인 서비스 신의 사례이다. 하지만 서비스신을 넣었다고 다 그런건 아니니 취소선을 그었지만 관련은 없진 않다.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