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 벨기에영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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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253호

254호

256호[1]
서울 구 러시아공사관
서울 구 벨기에영사관
서울 정동교회


서울 구 벨기에영사관
서울 舊 벨기에公使館


소재지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 2076 (서울 관악구 남현동 1059-13번지)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근대정치국방 / 외교
지정연도
1977년 11월 22일
건축시기
대한제국, 1905년(광무 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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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벨기에 영사관 건물#


문화유산채널에서 제작한 영상
1. 개요
2. 찾아가는 길
3. 역사
4. 건축
5. 여담
6. 매체에서



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에 있는 벨기에 왕국의 옛 영사관 건물이다.


파일:벨기에 민간기.svg
파일:벨기에 국장.svg
벨기에 왕국 국기
벨기에 왕국 국장


2. 찾아가는 길[편집]





3. 역사[편집]


1901년(광무 5년) 한백수호통상조약[2]을 체결하면서 대한제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벨기에 정부에서는 한성에 영사관을 두었다. 처음에는 정동 16-1번지에 있었으나# 총영사였던 레옹 뱅카르(Leon Vincart) 총영사는 새로 영사관 건물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1902년(광무 6년)에 회현동 현재 우리은행 본점 자리를 영사관 부지로 매입하고, 1903년(광무 7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905년(광무 9년)에 완공했다. 그러나 그해 11월에 일제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여 한국과 벨기에국교는 끊겼다.(...) 그래도 국가 대 국가로 주요 외교업무를 상대하는 공사관이 아닌, 정치성이 없는 업무를 담당하는 영사관이었기에 기능은 계속 유지했다.

파일:6.25 후 벨기에영사관.png
회현동 원래 자리에 있던 벨기에 영사관(빨간 원 안). 1953년 이후에 찍은 것이다.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건물은 신세계백화점 본점이다.
그러다 1919년에 벨기에영사관은 충무로로 자리를 옮겼다.# 기존의 건물은 일본 요코하마 생명보험회사 사옥을 거쳐 1944년에는 일본 해군성 무관부 관저가 되었고, 8.15 광복 후 1953년부터는 대한민국 해군 헌병대에서 소유해 사용했다. 그리고 1970년에 한국상업은행(현재 우리은행) 소속으로 넘어갔다.#

한국상업은행에서는 한동안 창고로 사용하다 새 사옥을 짓기 위해 철거하려했다. 그러던 중 1977년 11월 22일에 문화재관리국에서 벨기에영사관 건물을 사적 제254호로 지정하자 섣불리 헐기 어려워졌고#, 한국상업은행 측은 문화재관리국과 협의하여 1981년 10월에 지금의 자리인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부순환도로 근처에 벨기에영사관 건물을 옮겨 지었다. 당시 한국상업은행에서 이전 비용을 짜게 굴지 않고 필요한 만큼 지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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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동 벨기에 영사관 자리에 들어선 한국상업은행(현 우리은행) 사옥
이후 은행 사료관으로 활용하다가 기업의 문화예술지원사업 일환으로 우리은행[A]에서 2004년 5월에 서울특별시에 무상 임대했다. 서울특별시는 공공 미술관으로 꾸며 그해 9월 2일부터 현재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으로 사용 중이다.


4. 건축[편집]




5. 여담[편집]


  • 우리은행 소유이기 때문에 벨기에영사관 건물 동북쪽 바로 옆에 우리은행 사당역금융센터가 있다.
  • 현대의 주한벨기에대사관은 용산구 이태원로 45길 23에 위치해 있다.


6. 매체에서[편집]


일본 총리 관저로 나온 벨기에영사관 건물
[1] 255호는 용산신학교와 원효로성당이었으나 각 건물의 역사성 및 특수성을 고려해 2012년 6월 20일에 해제하고 각각 사적 제520호와 521호로 나눠서 재지정했다.[2] '백(白)'는 벨기에한자로 쓴 '백이의(白耳義)'의 앞글자이다. 즉 한국과 벨기에가 맺은 조약이란 뜻이다.[A] 1998년에 한일은행과 합병하여 한빛은행이 되었고 2002년에 사명을 우리은행으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