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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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청은 명동성당 옆 주교관에 있는 본청과 명동성당 뒷편에 있는 옛 계성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별관이 있다. 예전에는 명동성당 앞에 있는 가톨릭회관(명동성모병원이 사용하던 건물)이 교구청이었다가 2014년 여름 이전했다. 현직 주교들은 명동성당 주교관에서 생활한다. 은퇴한 주교들은 혜화동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의 주교관으로 옮겨간다.
2020년 12월 말 기준으로 신자 수는 153만 4,019명으로 서울 시민의 15.4%, 한국 전체 신자 수의 26.4%를 차지한다. 관할 지역에 황해도가 있지만 황해도의 사목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신자는 전부 서울시민이다. 본당 수는 232개이며 세 지역으로 나누어 교구장 대리주교가 담당한다. 이러한 사항과 위 표의 교구 현황 등에서 알 수 있듯, 한국에서 가장 큰 교구이자 중심 교구이다.
2020년에 신설된 직책이다. 전담 지구장 제도는 2013년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 전체회의 중에서 처음 제안되었다. 이 제도는 교구와 지구와의 긴밀한 연계를 바탕으로 교구와 사목 현장 간 협력을 강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이다. 다른 교구의 지역 지구장과 다르게 본당 사목을 하지 않고 지구장 소임에 전념하면서, 지역 교구장 대리 주교 비서직 사목을 하면서 동시에 담당 주교 의전 사제단 업무도 같이 수행하고 있다. 아직 일부 지역 지구장은 본당 주임신부를 겸직하며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정식 명칭은 주교좌성당 기도 전담 사제이다. 2022년 여름 정기 인사이동 때 명동주교좌성당에서 하루 총 3회 있는 성무일도만 전담하는 주교좌 기도 사제가 신설되어 총 4명의 사제로 시작하여 6명의 사제로 이어 현재는 총 8명의 사제가 소임에 임하고 있다. 교구장 특임 사제이기에 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가 교구에 기도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신자들의 사그라든 신앙 열정을 기도를 통하여 다시금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심혈을 기울여 신설한 직위이기도 하다. 성무일도가 성직자 혹은 수도자만의 전유물이 아닌 전 세계의 가톨릭 교회의 기도이기에 시노드 교회를 살아가는 이 시점에 신자들도 같이 참여하면 좋을 것이라는 의미로 신설된 점도 있다. 기도 소임 뿐만 아니라 교구장 대주교 의전 사제단 업무도 같이 수행하고 있다.
2012년 말부터 적용된 서울대교구 산하 지역은 다음과 같다.
본당은 교적을 관리하는 성당이다. 수도원이나 병원성당은 본당이 아니다. 준본당은 본당에 준한다.
황해도 지역에는 지구에 대응되는 감목대리구가 설정되어 있지만, 2014년 현재는 감목대리구장이 공석인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박해기 조선대목구의 직계 교구로, 한국 가톨릭의 모든 교구들은 서울대교구에서 분리된 것으로 간주한다. 1831년 9월 9일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조선과 간도를 관할하는 조선대목구를 설정한 것을 시작으로 1911년에 조선대목구에서 충청도 이남 지방을 관할하는 대구대목구가 분리되면서 이름이 경성대목구(서울대목구)로 바뀌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원산대목구, 평양지목구, 황해감목대리구가 차례로 분리되었다. 처음 대목구가 설정될 때 조선대목구의 선교를 파리외방전교회가 책임졌기 때문에, 1942년까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사제가 교구장을 역임했다. 그 후에도 두봉 주교와 같은 수많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들이 한국에 파견되었다.
1961년까지는 인천 및 경기도를 포함한 경인지역 전체가 서울대목구 관할이었다. 1960년대에 이 관할지역 일부가 분가한다. 먼저 1961년에 인천대목구가 분리된다. 서울대목구에서 서울대교구가 된 것은 이듬해인 1962년으로, 이때 서울대교구와 함께 대전교구, 인천교구, 춘천교구, 평양교구, 함흥교구라는 교계제도가 확립되며 이들은 서울관구로 묶인다. 1963년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대확장 직후에 한강 이남의 경기도를 관할하는 수원교구가 분리되었다. 이때 서울특별시 영역 중 한강 이남 지역이 수원교구 관할구역으로 넘어가서 영국 가톨릭처럼 될 뻔 했다. 영국의 천주교 웨스트민스터대교구는 템즈강 이북의 런던과 그 북부 교외지역을 관할하고, 켄트주를 관할하는 서더크대교구는 템즈강 이남의 런던까지 관할한다.
이때부터 2004년까지 서울대교구의 관할구역은 서울특별시, 한강 이북의 경기도(경기도 가평군과 포천시 제외), 그리고 황해도였다. 이 기간 서울대교구 관할구역은 큰 폭의 조정이 없었다. 1998년 수원교구 산하 광북성당이 설치되면서, 서울대교구 개봉동 본당 소속 광명시 철산1동, 광명1동 거주자들이 신설된 광북성당으로 편입된 정도에 그쳤다.
2004년 바로 위에서 언급한 한강 이북의 경기도가 의정부교구로 분리 설정됨에 따라 황해도 지역은 월경지가 되었다.
한국 가톨릭의 대표 교구인 만큼 여러가지 것을 제일 먼저 시도해 보는 곳으로 유명하다. 양업시스템이 그러한데, 이는 천주교 신자의 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교적관리시스템이다. 예전에는 종이 교적이어서 관리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지만, 서울대교구에서 만든 양업시스템이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하지만 현재 서울대교구 양업시스템은 가동이 중단되었으며,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작정하고 만든 통합양업시스템이 전국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은행이 주거래 은행이나, 이는 서울대교구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우리은행이 협정을 맺은 것으로, 서울대교구에서 먼저 주거래 은행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서울대목구(경성대목구)를 필두로 한 한국 천주교회는 일제의 침략과 지배에 순응적이었고, 종교 기반의 유지와 선교권의 보장을 위해 친일 행각도 서슴지 않았다. 무단통치기의 8대 교구장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주교는 신민회의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하여 105인 사건의 원흉이 되었다. 그 보상적 대가로 주교좌 명동성당의 부지를 확장했다. 서울대목구는 민족말살통치기에 들어서 더욱 노골적인 친일 행태를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호교적 차원의 허용이란 명분 하에 신자들에게 신사참배를 권고하였으며,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주교좌 명동성당에서 '(황국) 국위선양 평화미사'를 거행하고 황군위문금을 모금하는 등 전시총동원에 협력하였다. 서울대목구는 1938년 중일전쟁 1주년을 맞아 일제가 조직한 관변 전쟁협력단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하 총동원조선연맹)에 가입했으며 이어 1939년 5월 종교단체로는 가장 처음으로 총동원조선연맹 산하 '국민정신총동원 천주교경성교구연맹'을 조직하였고 1940년 11월엔 '국민총력 천주교경성교구연맹'(창설 당시 53개의 본당과 6만 6천여 명의 신자로 구성)을 조직하는 등 일제에 대한 자발적 충성을 보였다. 이 연맹은 매월 첫째 주를 애국주일로 정해 '무운장구기원미사제'를 지냈으며 매월 1일에는 신자들과 함께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에 참배했다.
교구 내 성폭력 전과가 있는 신부들을 별다른 징계 없이 사목 일선에 배치해 버젓이 활동하게 한 정황이 KBS 뉴스에서 보도되어 논란이 되었다.#
서울대교구는 성추문 신부에 대한 공정한 징계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의 성범죄 건수와 관련 징계 내역에 대해선 공개하기를 거절했다.
1. 개요
2. 역대 교구장
3. 부서
3.1. 사무처
3.2. 관리국
3.3. 청소년국
3.3.1. 유아부
3.3.2. 초등부
3.3.3. 중고등부
3.3.4. 학교사목부
3.3.5. 대학교사목부
3.3.6. 청년부
3.3.7. 가톨릭스카우트
3.3.8. 장애인신앙교육부
3.3.9. 가톨릭이동쉼터
3.3.10. 청소년문화공간 JU 동교동
3.3.11. 용문청소년수련장
3.3.12. 화(花)요일아침예술학교
3.4. 해외선교봉사국
3.5. 문화홍보국
3.6. 사목국
3.6.1. 행정지원팀
3.6.2. 기획연구팀
3.6.3. 교육지원팀
3.6.4. 노인사목팀
3.6.5. 직장사목팀
3.6.6. 성서못자리
3.6.7. 가톨릭청년성서모임
3.6.8. 사이버사목
3.6.9. 향심기도
3.6.10. 상설고해
3.6.11. 영성심리상담교육원
3.7. 성소국
3.7.1. 베리따스
3.8. 사회사목국
4. 전담 지구장
5. 주교좌 기도 사제
6. 관할 지역
6.1. 중서울지역
6.1.1. 제1 중-용산지구
6.1.2. 제2 서대문-마포지구
6.1.3. 제3 은평지구
6.1.4. 제4 종로지구
6.1.5. 제4 성북지구
6.1.6. 제5 노원지구
6.1.7. 제6 도봉-강북지구
6.2. 동서울지역
6.3. 서서울지역
6.3.1. 제12 서초지구
6.3.2. 제13 관악지구
6.3.3. 제14 동작지구
6.3.4. 제15 영등포-금천지구
6.3.5. 제16 구로지구
6.3.6. 제17 강서지구
6.3.7. 제18 양천지구
6.4. 황해감목대리구
6.5. 미사 있는 성지
7. 역사
8. 기관 및 단체
9. 교적관리
10. 여담
11. 논란
1. 개요[편집]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와 황해도(남북한 분단 당시의 행정구역 기준)를 관할하는 가톨릭 교구이다.
교구청은 명동성당 옆 주교관에 있는 본청과 명동성당 뒷편에 있는 옛 계성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별관이 있다. 예전에는 명동성당 앞에 있는 가톨릭회관(명동성모병원이 사용하던 건물)이 교구청이었다가 2014년 여름 이전했다. 현직 주교들은 명동성당 주교관에서 생활한다. 은퇴한 주교들은 혜화동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의 주교관으로 옮겨간다.
2020년 12월 말 기준으로 신자 수는 153만 4,019명으로 서울 시민의 15.4%, 한국 전체 신자 수의 26.4%를 차지한다. 관할 지역에 황해도가 있지만 황해도의 사목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신자는 전부 서울시민이다. 본당 수는 232개이며 세 지역으로 나누어 교구장 대리주교가 담당한다. 이러한 사항과 위 표의 교구 현황 등에서 알 수 있듯, 한국에서 가장 큰 교구이자 중심 교구이다.
2. 역대 교구장[편집]
3. 부서[편집]
3.1. 사무처[편집]
3.1.1. 비서실[편집]
3.1.2. 전산정보실[편집]
3.1.3. 통합사목연구소[편집]
3.2. 관리국[편집]
3.3. 청소년국[편집]
3.3.1. 유아부[편집]
3.3.2. 초등부[편집]
3.3.3. 중고등부[편집]
3.3.4. 학교사목부[편집]
3.3.5. 대학교사목부[편집]
3.3.6. 청년부[편집]
3.3.7. 가톨릭스카우트[편집]
3.3.8. 장애인신앙교육부[편집]
3.3.9. 가톨릭이동쉼터[편집]
3.3.10. 청소년문화공간 JU 동교동[편집]
3.3.11. 용문청소년수련장[편집]
3.3.12. 화(花)요일아침예술학교[편집]
3.3.13. 노비따스음악중·고등학교[편집]
3.4. 해외선교봉사국[편집]
3.5. 문화홍보국[편집]
3.6. 사목국[편집]
3.6.1. 행정지원팀[편집]
3.6.2. 기획연구팀[편집]
3.6.3. 교육지원팀[편집]
3.6.4. 노인사목팀[편집]
3.6.5. 직장사목팀[편집]
3.6.6. 성서못자리[편집]
3.6.7. 가톨릭청년성서모임[편집]
3.6.8. 사이버사목[편집]
3.6.9. 향심기도[편집]
3.6.10. 상설고해[편집]
3.6.11. 영성심리상담교육원[편집]
3.7. 성소국[편집]
3.7.1. 베리따스[편집]
3.8. 사회사목국[편집]
3.8.1. 경찰사목위원회[편집]
3.8.2. 노동사목위원회[편집]
3.8.3. 노인복지위원회[편집]
3.8.4. 단중독사목위원회[편집]
3.8.5. 병원사목위원회[편집]
3.8.6. 빈민사목위원회[편집]
3.8.7. 사회교정사목위원회[편집]
3.8.8.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편집]
3.8.9.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편집]
3.8.10. 이주사목위원회[편집]
3.8.11. 한국중독연구재단[편집]
3.8.12. 한마음한몸운동본부[편집]
3.8.13. 환경사목위원회[편집]
4. 전담 지구장[편집]
2020년에 신설된 직책이다. 전담 지구장 제도는 2013년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 전체회의 중에서 처음 제안되었다. 이 제도는 교구와 지구와의 긴밀한 연계를 바탕으로 교구와 사목 현장 간 협력을 강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이다. 다른 교구의 지역 지구장과 다르게 본당 사목을 하지 않고 지구장 소임에 전념하면서, 지역 교구장 대리 주교 비서직 사목을 하면서 동시에 담당 주교 의전 사제단 업무도 같이 수행하고 있다. 아직 일부 지역 지구장은 본당 주임신부를 겸직하며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5. 주교좌 기도 사제[편집]
정식 명칭은 주교좌성당 기도 전담 사제이다. 2022년 여름 정기 인사이동 때 명동주교좌성당에서 하루 총 3회 있는 성무일도만 전담하는 주교좌 기도 사제가 신설되어 총 4명의 사제로 시작하여 6명의 사제로 이어 현재는 총 8명의 사제가 소임에 임하고 있다. 교구장 특임 사제이기에 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가 교구에 기도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신자들의 사그라든 신앙 열정을 기도를 통하여 다시금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심혈을 기울여 신설한 직위이기도 하다. 성무일도가 성직자 혹은 수도자만의 전유물이 아닌 전 세계의 가톨릭 교회의 기도이기에 시노드 교회를 살아가는 이 시점에 신자들도 같이 참여하면 좋을 것이라는 의미로 신설된 점도 있다. 기도 소임 뿐만 아니라 교구장 대주교 의전 사제단 업무도 같이 수행하고 있다.
6. 관할 지역[편집]
2012년 말부터 적용된 서울대교구 산하 지역은 다음과 같다.
본당은 교적을 관리하는 성당이다. 수도원이나 병원성당은 본당이 아니다. 준본당은 본당에 준한다.
6.1. 중서울지역[편집]
6.1.1. 제1 중-용산지구[편집]
6.1.2. 제2 서대문-마포지구[편집]
6.1.3. 제3 은평지구[편집]
6.1.4. 제4 종로지구[편집]
6.1.5. 제4 성북지구[편집]
6.1.6. 제5 노원지구[편집]
6.1.7. 제6 도봉-강북지구[편집]
6.2. 동서울지역[편집]
6.2.1. 제7 동대문-중랑지구[편집]
6.2.2. 제8 성동-광진지구[편집]
6.2.3. 제9 강동지구[편집]
6.2.4. 제10 송파지구[편집]
6.2.5. 제11 강남지구[편집]
6.3. 서서울지역[편집]
6.3.1. 제12 서초지구[편집]
6.3.2. 제13 관악지구[편집]
6.3.3. 제14 동작지구[편집]
6.3.4. 제15 영등포-금천지구[편집]
6.3.5. 제16 구로지구[편집]
6.3.6. 제17 강서지구[편집]
6.3.7. 제18 양천지구[편집]
6.4. 황해감목대리구[편집]
황해도 지역에는 지구에 대응되는 감목대리구가 설정되어 있지만, 2014년 현재는 감목대리구장이 공석인 것으로 보인다.
6.5. 미사 있는 성지[편집]
※ 용산구 왜고개 성지는 천주교 군종교구 관할이다.
7. 역사[편집]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박해기 조선대목구의 직계 교구로, 한국 가톨릭의 모든 교구들은 서울대교구에서 분리된 것으로 간주한다. 1831년 9월 9일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조선과 간도를 관할하는 조선대목구를 설정한 것을 시작으로 1911년에 조선대목구에서 충청도 이남 지방을 관할하는 대구대목구가 분리되면서 이름이 경성대목구(서울대목구)로 바뀌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원산대목구, 평양지목구, 황해감목대리구가 차례로 분리되었다. 처음 대목구가 설정될 때 조선대목구의 선교를 파리외방전교회가 책임졌기 때문에, 1942년까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사제가 교구장을 역임했다. 그 후에도 두봉 주교와 같은 수많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들이 한국에 파견되었다.
1961년까지는 인천 및 경기도를 포함한 경인지역 전체가 서울대목구 관할이었다. 1960년대에 이 관할지역 일부가 분가한다. 먼저 1961년에 인천대목구가 분리된다. 서울대목구에서 서울대교구가 된 것은 이듬해인 1962년으로, 이때 서울대교구와 함께 대전교구, 인천교구, 춘천교구, 평양교구, 함흥교구라는 교계제도가 확립되며 이들은 서울관구로 묶인다. 1963년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대확장 직후에 한강 이남의 경기도를 관할하는 수원교구가 분리되었다. 이때 서울특별시 영역 중 한강 이남 지역이 수원교구 관할구역으로 넘어가서 영국 가톨릭처럼 될 뻔 했다. 영국의 천주교 웨스트민스터대교구는 템즈강 이북의 런던과 그 북부 교외지역을 관할하고, 켄트주를 관할하는 서더크대교구는 템즈강 이남의 런던까지 관할한다.
이때부터 2004년까지 서울대교구의 관할구역은 서울특별시, 한강 이북의 경기도(경기도 가평군과 포천시 제외), 그리고 황해도였다. 이 기간 서울대교구 관할구역은 큰 폭의 조정이 없었다. 1998년 수원교구 산하 광북성당이 설치되면서, 서울대교구 개봉동 본당 소속 광명시 철산1동, 광명1동 거주자들이 신설된 광북성당으로 편입된 정도에 그쳤다.
2004년 바로 위에서 언급한 한강 이북의 경기도가 의정부교구로 분리 설정됨에 따라 황해도 지역은 월경지가 되었다.
8. 기관 및 단체[편집]
-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재산 관리 기구. 서울대교구의 토지나 건물과 같은 모든 부동산은 법률적으로는 이곳 소유로 되어 있다. 법률상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재산을 소유하려면 재단법인을 설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든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의 성당 건물과 부지는 서울대교구 유지재단의 소유이다. 개신교처럼 신자들이 총유하는 형태가 아니다. 다른 교구들도 이 방식으로 재산을 관리한다. 3대 가톨릭 계열 출판사 중 하나(나머지 둘은 생활성서와 바오로딸)인 가톨릭출판사도 이 재단 소유다.
- 가톨릭학원: 항목 참조
- 서울가톨릭청소년회: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에서 운영하는 재단법인이다. 이곳에서 청소년 및 청년에 관련된 모든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시립보라매청소년센터, 시립성동청소년센터, 구립서초유스센터를 위탁운영하고 있고, 용문산과 경기도 용인시에 청소년 수련장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혜화동 가톨릭청소년회관 등이 청소년회 소유다. 그리고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있는 花요일아침예술학교라는 예술대안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8.1. 가톨릭평화방송[편집]
8.2. 가톨릭출판사[편집]
8.3. 민족화해위원회[편집]
8.4. 생명위원회[편집]
8.5. 순교자현양위원회[편집]
8.6. 한국교회사연구소[편집]
8.7. 성앵베르센터[편집]
8.8. 성북동기도의집[편집]
8.9. 햇살사목센터[편집]
9. 교적관리[편집]
한국 가톨릭의 대표 교구인 만큼 여러가지 것을 제일 먼저 시도해 보는 곳으로 유명하다. 양업시스템이 그러한데, 이는 천주교 신자의 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교적관리시스템이다. 예전에는 종이 교적이어서 관리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지만, 서울대교구에서 만든 양업시스템이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하지만 현재 서울대교구 양업시스템은 가동이 중단되었으며,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작정하고 만든 통합양업시스템이 전국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은행이 주거래 은행이나, 이는 서울대교구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우리은행이 협정을 맺은 것으로, 서울대교구에서 먼저 주거래 은행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10. 여담[편집]
- 재정적으로 한국 천주교 내에서 가장 돈이 많다. 그리고 재정적 투명화를 위해 2006년부터 1년 단위로 재무제표를 작성해서 언론에 배포하고 있다. 사실 종교단체가 재무제표를 공개할 의무는 없다.
- 수원교구, 대전교구, 인천교구, 원주교구, 춘천교구, 의정부교구, 평양교구, 함흥교구와 함께 서울관구를 이루지만 서울대교구장이 관구장으로서의 직할권은 없다. 이는 광주관구의 광주대교구와 대구관구의 대구대교구도 마찬가지이다.
- 2015년부터 교구의 모든 성당에서 매일미사 앱과 연동하여 비콘서비스가 시작되었다. # 그러나 2018년 1월 13일부로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 부주임신부와 보좌신부의 보직 주기는 보통 2년이다.
- 인사적체가 심해서 사제서품 받은 뒤 20년 정도 지나야 주임신부가 될 수 있다. 반면에 아랫동네 수원교구에서는 수품 3~6년 만에 주임신부로 보직된다. 수원교구가 관할하는 경기도 남부는 인구 증가추세로 본당들이 신설되고 있어서 본당 주임신부 보직 역시 증가하고 있는 반면에, 서울대교구가 관할하는 서울특별시는 인구와 신규택지조성이 정체(소폭 감소)되고 있으면서 신임 사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배출되고 있다보니 인사적체가 그만큼 심해질 수밖에 없다.
- 서울대교구는 주거지역 뿐 아니라 주요 상업시설에도 성당을 세운다. 대표적으로 남대문시장성당, 동대문시장성당과 고속터미널성당. 일대 주변 상인들을 위한 성당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미사 참례 인원은 많고 그곳에 교적을 둔 인원은 적을 수밖에 없다.
11. 논란[편집]
11.1. 일제강점기 친일 논란[편집]
일제강점기에 서울대목구(경성대목구)를 필두로 한 한국 천주교회는 일제의 침략과 지배에 순응적이었고, 종교 기반의 유지와 선교권의 보장을 위해 친일 행각도 서슴지 않았다. 무단통치기의 8대 교구장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주교는 신민회의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하여 105인 사건의 원흉이 되었다. 그 보상적 대가로 주교좌 명동성당의 부지를 확장했다. 서울대목구는 민족말살통치기에 들어서 더욱 노골적인 친일 행태를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호교적 차원의 허용이란 명분 하에 신자들에게 신사참배를 권고하였으며,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주교좌 명동성당에서 '(황국) 국위선양 평화미사'를 거행하고 황군위문금을 모금하는 등 전시총동원에 협력하였다. 서울대목구는 1938년 중일전쟁 1주년을 맞아 일제가 조직한 관변 전쟁협력단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하 총동원조선연맹)에 가입했으며 이어 1939년 5월 종교단체로는 가장 처음으로 총동원조선연맹 산하 '국민정신총동원 천주교경성교구연맹'을 조직하였고 1940년 11월엔 '국민총력 천주교경성교구연맹'(창설 당시 53개의 본당과 6만 6천여 명의 신자로 구성)을 조직하는 등 일제에 대한 자발적 충성을 보였다. 이 연맹은 매월 첫째 주를 애국주일로 정해 '무운장구기원미사제'를 지냈으며 매월 1일에는 신자들과 함께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에 참배했다.
다만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아일랜드인 사제들(어거스틴 스위니 신부,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신부, 패트릭 도슨 신부 등)은 목포와 춘천을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아예 조선총독부로부터 눈엣가시로 찍혀서 연금당했다. 원산의 베네딕토 수도회 독일인 수도자들도 탄압받았다.“폐하와 제국의 현명한 통치가 없었던들 우리가 오늘날 천주교회 신자로서 교회의 모든 본분을 안온하게 지켜 가고 있었을지가 의문이다. ....대동아 건설의 대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억일심으로 만민익찬의 신체제를 강조하는 이 시기, 천주교 신자로서 국가정책에 적극 호응하기 위해...”
1940년 매월 첫째 주일을 '교회 애국일'로 지정하며 이를 설명한 노기남 신부 발언
11.2. 성범죄 신부 인사 조치 논란[편집]
교구 내 성폭력 전과가 있는 신부들을 별다른 징계 없이 사목 일선에 배치해 버젓이 활동하게 한 정황이 KBS 뉴스에서 보도되어 논란이 되었다.#
KBS 뉴스는 버스에서 여성 신자를 강제 추행하다 벌금형에 처한 신부 와 서울의 어느 청소년 수련관에서 성희롱을 저지른 신부에 대한 사례를 들어 서울대교구의 제식구 감싸기식 인사조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였는데, 가해 당사자에 대해 아무런 징계 없이 자리만 이동시켜 미사 집전과 고해성사를 수행하게 하거나 직함만 교체한 채 같은 업무를 계속 보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쉬쉬하고 넘어간 정황이 취재 결과 드러났다.
"임지만 이동한 것이 징계라고 한다면, 사실 그런 것들을 고발하고 피해사실을 알리는 사람들이 2차 상처인 거 같아요. 상처받는 거를 실제로 보기도 했고." - 천주교 신자의 인터뷰 중
서울대교구는 성추문 신부에 대한 공정한 징계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의 성범죄 건수와 관련 징계 내역에 대해선 공개하기를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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