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행 여자농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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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서울은행 여자농구단
창단
1972년
해체
1998년


1. 개요[편집]


과거에 존재한 여자 농구 실업 구단으로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해체한 구단 중 하나다.


2. 역사[편집]


1972년 신탁은행 여자 농구단으로 출발했다.

1976년 8월 한국신탁은행서울은행과 합병되어 서울신탁은행이 되면서 흔히 서울신탁은행으로 불렀고, 1995년 6월 1일 서울신탁은행이 서울은행으로 개칭하면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그래서 팀이 사라질 무렵에는 최종적으로 서울은행이라고 불렸다. 물론 2002년 12월 1일에 서울은행 자체가 하나은행과 합병하여 행명 자체가 사라졌다.[1]

정미경이라는 좋은 가드를 앞세워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강호로 군림했다. 그 뒤로도 농구대잔치 4강 안에 가끔 드는, 만만치 않은 전력을 보여 줬다. 다만, 결승에 가거나 우승권에 근접한 적이 없다는 점은 좀 아쉬웠지만, 투자한 것에 비하면 성적을 잘 내는 편이었다. 정미경도 고교 시절에 그렇게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명의 선수를 잘 키워서 좋은 선수로 바꾸는 데 일가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팀의 감독을 1983년부터 1998년 해체 당시까지 맡았던 김재웅 감독(2013년 작고)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세 차례 오르기도 했다. 다만 맡을 때마다 이상하게 꼬여서 다 실패했다는 슬픈 기억만 남았을 뿐.

이 팀을 최강으로 만들 수도 있던 기회가 한 차례 있었는데, 바로 박찬숙의 지명과 관련해서였다. 박찬숙이 나왔던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얻는 데 성공한 것. 그러나 서울신탁은행으로 걸려 온 고위층 이 모의 전화로 인해 눈물을 머금고 지명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박찬숙은 태평양화학에 입단한다.

꾸준히 매번 국가대표팀에 선수를 보낼 정도로 괜찮은 선수들이 많았던 팀이었지만, 1997년 외환 위기 와중에 부실화되어 버린 서울은행의 경영이 흔들리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농구단만은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1998년 SK증권이 해체되는 것을 보고 최종적으로 팀 해체가 결정됐다. 1998년 2월 19일의 일이었다.

당시 활약하던 주축 선수들 중 이은영은 국민은행으로, 권은정[2]현대산업개발로, 양정옥상업은행으로 각각 둥지를 옮겼다. 그 중 권은정은 2003년에, 이은영은 2004년에 은퇴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서울은행 출신 선수인 양정옥이 2013년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후 40세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서울은행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3]

이후 해외 매각을 시도했다가 번번히 무산된 서울은행은 2002년 12월 1일에 하나은행과 합병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하나금융지주외환은행을 인수하여 자회사에 편입한 뒤 신세계 쿨캣을 인수한 부천 하나외환 여자농구단을 창단하면서 사실상 농구판에 다시 들어오게 된다. 물론 현재의 부천 하나원큐가 계승한 팀은 신세계 인수 이전의 태평양화학 실업 여자 농구단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다르다. 아이러니하게도 태평양화학은 서울은행이 전화 한 통에 놓쳐 버린 그 박찬숙이 뛰었던 팀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김영주가 한 때 선수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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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서울은행이 존속 법인으로서 하나은행을 인수하고 그 신법인의 이름을 하나은행으로 변경하는 역합병 방식이었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는 남아 있는 회사였다. 그런데 십여 년 후 외환은행마저 역합병으로 먹어서 현재의 하나은행은 서류상 존속법인이 외환은행이기 때문에 이때를 기하여 서울은행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2] 부천 하나원큐 이환우 前 감독의 부인이다.[3] 재미있는 점은, 양정옥이 마지막으로 뛴 팀이 하나외환이었다는 것. 양정옥은 은퇴 후 하나외환의 유소녀 농구클럽 코치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