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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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포(白圃)
본관
이천 서씨
출생
1881년 2월 6일
함경도 경원도호부 의동면 김희동
(현 함경북도 경원군 유다섬리)
사망
1921년 8월 28일(향년 41세)
중화민국 만주 밀산현 쾌상봉 벽리
직업
독립운동가, 군인
소속
북로군정서
종교
대종교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한국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2. 생애[편집]


1881년 2월 26일 함경도 경원도호부 의동면 김희동(현 함경북도 경원군 유다섬리)에서 서재운(徐在云)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채씨 부인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종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중광단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나철을 만나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3.1운동 이후 서일은 중광단을 대한정의단으로 개편하였고 대한군정회라는 무장조직을 설치해 무장투쟁을 준비하였다. 이후 서일은 대한정의단과 대한군정회를 통합하여 대한군정서로 개칭하는데, 이 대한군정서가 바로 북로군정서이다. 서일은 북로군정서의 총재가 되었고, 이범석김좌진 등과 함께 청산리 전투를 비롯한 여러 무장투쟁에 참여했다. 무장투쟁 조직에 '서일'이라는 이름이 있다면 무조건 그가 총재일 정도로 그 위상은 대단했다.

허나 이후 만주에서 활동이 어려워지자 서일은 군단을 이끌고 소련으로 가지만 자유시 참변을 겪어 군단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호흡을 멈추는 폐기법(閉氣法)으로 자결하여 생을 마친다.

무장투쟁의 지도자로 능력뿐만 아니라 철학에도 뛰어나 대종교 교리도 정리하여 "오대종지강연(五大宗旨講演)", "삼일신고강의(三一神誥講義)", "회삼경(會三經)" 등의 저술을 남겼고 대종교 3대 교주로 유력하였으나 교단을 지키는 것보다 나라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며 투쟁 노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3. 여담[편집]


  • 독립기념관 내 "조국 광복을 위하여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한 동지들을 모두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살아서 조국과 동포를 대하리오. 차라리 이 목숨 버려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리라."라는 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4. 대중매체에서[편집]


  • 1982년 KBS 드라마 <우둥불>에서는 배우 이동주가 연기했다.

  • 1983년 개봉한 영화 <일송정 푸른 솔은>에서는 배우 박암이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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