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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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명준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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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2004





전주 KCC 이지스 등번호 1번
허중
(2001~2003)

석명준
(2003~2004)


이동준
(2004~2005)
부산 KTF 매직윙스 등번호 2번
이홍수
(2001~2002)

석명준
(2004~2005)


마크 샐리어스
(2005)
부산 KTF 매직윙스 등번호 13번
윤훈원
(2004~2005)

석명준
(2005)


김도수
(2005~2007)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등번호 11번
김도수
(2004~2005)

석명준
(2005~2006)


김택훈
(2006~2007)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등번호 10번
문경은
(2001~2006)

석명준
(2006~2007)


백주익
(2007~2008)
창원 LG 세이커스 등번호 3번
김훈
(2004~2007)

석명준
(2007)


한정훈
(2008)
창원 LG 세이커스 등번호 13번
임영훈
(2005~2006)

석명준
(2007~2008)


김현중
(2009~2010)
창원 LG 세이커스 등번호 1번
김현중
(2005~2006)

석명준
(2008~2009)


이지운
(2009~2010)
대구 오리온스 등번호 11번
김용우
(2008~2009)

석명준
(2009~2011)


조상현
(2011~2013)
원주 동부 프로미 등번호 6번
표명일
(2007~2010)

석명준
(2011~2012)


박병우
(2014~2015)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파일:프로미 석명준 코치.jpg
석명준
昔命俊[1]

출생
1979년 12월 29일 (44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경주 석씨[2]
신체
신장 194cm|체중 84kg
포지션
농구 선수 (스몰 포워드/ 은퇴)
학력
김천초등학교 (졸업)
상주중학교 (졸업)
상산전자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사회체육학 / 학사)
프로 입단
2003년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 SK 빅스)
현역 시절 등번호
1[3], 2[4], 13[5], 11[6], 10[7], 3[8], 6[9], 23[10]
소속
전주 KCC 이지스 (2003~2004)
부산 KTF 매직윙스 (2004~2005)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5~2007)
창원 LG 세이커스 (2007~2009)
대구 오리온스 (2009~2011)
원주 동부 프로미 (2011~2013)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기
2.2. 프로 시기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현재 같은 농구 선수 출신인 김중길과 함께 용인 JJ CLAN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원주 DB 프로미의 산하 유소년 구단인 주니어프로미 용인지부에서 코치를 지도하고 있다. 내외곽에 상관없이 뛰어난 탄력과 운동 능력으로 올스타전 덩크슛 콘테스트에서 2년 연속으로 덩크왕에 오르기도 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기[편집]


중학교 시절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본 계기로 농구를 시작하였으며 상산전자고등학교에서는 슈터로서의 명성을 크게 떨쳤다. 이후 중앙대학교에서는 김주성, 송영진, 임재현, 황진원등과 함께 트윈타워를 앞세우며 팀을 이끌어 나갔지만 졸업을 앞둔 2003년 농구대잔치에서 발목을 다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2.2. 프로 시기[편집]


파일:전주 KCC 시절의 석명준.jpg
2003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인천 SK 빅스(이후 전자랜드 블랙슬래머)에 지명되었지만 그 해 여름에 터진 김훈 FA 보상선수 파동으로 인해 유니폼을 입기도 전에 안양 SBS 스타즈에 보상선수로 지명되자마자 KCC에 지명된 전병석과 트레이드되어서 전주 KCC 이지스의 유니폼을 입고 프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11] 그러나 작년 대학 시절 때 다친 발목 부상 후유증으로 21경기를 뛰었지만, 득점력을 인정받았을 만큼이나 슈팅이 뛰어났고 2003~2004 챔피언결정전에서 부상 후유증을 회복한 기미를 보인 사실을 구단측에 인정했다며 2004-05시즌 개막을 앞두고 변청운과 1:1 맞트레이드로 부산 KTF 매직윙스로 가게 되었다.

파일:KTF 석명준 2005년 덩크.jpg
특히 화제가 되었던 2005년 2월 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 2004~2005 프로농구 올스타전 덩크슛 경연대회에서 팀 동료였던 게이브 미나케가 띄운 앨리웁 패스를 고난이도로 꽂으며 토종 덩크왕에 올랐다.[12][13]

파일:2005-2006 KBL 올스타전 덩크왕 석명준.jpg
2005~2006 KBL 올스타전 덩크슛 대회에서 백핸드 앨리웁 덩크에 성공한 석명준.

파일:창원 LG 세이커스 시절의 석명준 올스타전에서 덩크.jpg
2005년 12월 2일, 김도수와 1:1 맞트레이드로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로 가게 되면서 드래프트 지명 이후 오랜만에 친정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꼴찌 순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2005~2006 프로농구 올스타전 덩크슛 콘테스트에서 또 한번 백핸드 앨리웁 덩크를 꽂으며 2년 연속으로 덩크왕 자리에 올랐고, 2년차에 들어선 이후에도 팀의 암흑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코트에서의 두각은 드러나지 못하면서 결국 2007년 2월 2일, 부상을 당한 현주엽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창원 LG 세이커스와 8천만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하면서 KCC 시절 은사였던 신선우 감독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LG에서는 주로 식스맨급 활약을 펼쳐 팀을 3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2006~2007 올스타전 덩크슛 콘테스트에도 출전하여 한쪽 팔로 눈을 가린 채 덩크를 선보였지만 김효범에게 우승을 넘기며 3연패는 달성하지 못했다.

시즌이 끝난 후, 백인선-이현준과의 2:2 트레이드로 LG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박광재와 함께 대구 오리온스로 옮겨 주전과 식스맨을 오가며 팀의 주장을 맡았으나, 부상의 악재가 겹치면서 2군으로 강등되었다.

파일:석명준동부_2011-12시즌.jpg
2011-12시즌에는 원주 동부 프로미로 이적해 백업맨으로 뛰었으나, 김주성이나 윤호영 등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고, 그 후 구단과 상의 끝에 현역 생활을 마쳤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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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1 세원텔레콤배 전국대학농구연맹전 가이드 북에서 성이 돌 석(石)자가 아닌 예 석(昔)자로 표기된 것이 확인됐다. #[2] 45세손 준(俊) 항렬[3] KCC, 2008-2009 시즌 LG시절[4] 2004-2005 시즌 KTF 시절[5] 트레이드 이전 KTF, 2007-2008 시즌 LG 시절[6] 트레이드 이후 전자랜드, 오리온스 시절[7] 트레이드 이전 전자랜드 시절[8] 트레이드 이후 LG 시절[9] 2011-2012 시즌 동부 시절[10] 현역 마지막 시즌 동부 시절[11] 이렇게 된 원인은 당시 FA 보상선수 규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서였다. 바로 김훈이 SBS와의 FA 협상 결렬 이후 SK빅스의 후신인 전자랜드와 FA 계약을 하게 되어서 SBS가 김훈의 보상선수를 지명해야했었는데, 이 과정에서 SBS가 보상선수로 KCC와 SK빅스가 전병석과 석명준의 트레이드를 추진한다는 것을 알고 보상선수로 당시까지만 해도 KCC의 지명을 받아서 빅스 소속이 아닌 KCC 소속이던 전병석을 원하는 촌극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에는 드래프트가 1월 말에서 2월 초에 열림과 동시에 실제 선수 등록은 그 다음 시즌에서야 가능했었고 당시에만 해도 KCC가 반발을 하면서 들고 왔던 규정이었던, '신인선수는 보상선수에 포함시킬 수 없다' 에서 신인선수의 기준이 그 다음 시즌에 선수 등록이 된 1년차 신인만으로 한정되어서 지명만 받았던 상태의 선수를 편법으로 보상선수로 지명을 할 수 있었던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결국 KBL의 이사회 결과 보상선수 규정의 미비를 직접 인정하고 SBS가 석명준을 보상선수로 지명하게 한 뒤 KCC에 지명되었던 전병석과 트레이드를 하는 형태로 이 문제를 해결했고, 이 사태 이후 2월에 지명을 받고 선수 등록을 대기하고 있는 신인도 함께 보상선수로 지명할 수 없도록 규정을 손질했다가 2012-13 시즌부터는 지명 직후 바로 선수 등록이 가능하도록 시즌 개막 직전 9월로 드래프트 주기를 바꾸게 된다.#[12] 덩크왕이 되기 전, 처음엔 무난하게 원핸드 덩크를 꽂은 뒤 갑자기 코트 밖으로 나가며 팀 관계자에게 핸드폰을 받아들고 나와 통화를 시도해 보았다. 그러던 순간 벤치에서 미나케가 핸드폰으로 통화하면서 나타난 모습에 장내 아나운서는 누가 KTF 선수 아니랄까봐 핸드폰 광고를 한다고 드립을 치며 관중들을 웃게 만들었다. 과연 KTF 홍보대사[13] 그 덕분인지 KTF 구단 측에서 병역 면제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