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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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聰[1]

? ~ 911년[2]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신라 말기의 승려.


2. 생애[편집]


당대 미륵 신앙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법상종(法相宗)[3]의 고승이었다. 미륵불을 자칭한 태봉국왕 궁예가 비구 200여 명에게 석가를 찬미하는 노래인 범패를 부르면서 자신의 뒤를 따르게 하고 스스로 경전 20권을 지었는데, 궁예가 멋대로 쓴 이 경전이 꽤나 불쏘시개스런 것이어서 석총은 강설에서 궁예에게 그 경전들이 사악하고 괴이한 말로써 백성들에게 교훈이 될 수 없다고 간언을 올렸으나, 분노한 궁예철퇴에 맞는 방식으로 처형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궁예에게 살해당했다는 기록이 역사서에 남아 있는 만큼 당대에 명망 높은 고승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6년 뒤 죽은 형미보다 높은 승려는 아니었다. 하지만 미륵을 자칭한 궁예에게 직언을 하여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꽤 많이 알려져 있으며, 드라마의 영향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사실 드라마에는 후반부 나올때 형미도 제법 중요한 비중으로 나오지만.

석총과 궁예의 의견 대립에 대해, 당시 법상종의 분파 간 견해 차이로 이러한 대립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의견도 있다. #


3. 대중매체에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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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석총(태조 왕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옛날 동아시아 불교의 출가자들은 동진의 고승 석도안(釋道安)이 제안한 이래로 본래의 성씨 대신 석가모니의 정신적 후손을 의미하는 '석'을 성씨로 쓰는 관행이 있었다. 베트남에서는 지금도 이 관행이 남아 있어 틱낫한이나 틱꽝득 같은 승려들 역시 한국식으로 이름을 옮기면 석일행, 석광덕 등이 된다. 석총이 출가하기 이전의 성씨는 전해지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당시에는 성이 없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석총도 본래 성이 없었을 수 있다.[2] 동국통감 권 11권 신라기 참조.[3] 유식론과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성립된 종파. 유명한 고승으로 신라의 원측과 진표가 있다. 의상의 화엄종과 함께 교종의 양대산맥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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