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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單雄信
(581 ~ 621)

수나라 말기의 반란자. 單은 보통 '단'이라고 읽기에 한글로 된 관련 자료에서는 '단웅신'이라고 표기된 경우가 더 많다.

위성 사람으로 용맹하고 건정하면서 말과 창을 잘 다뤄 비장이라 불렸으며, 616년에 적양이 군사를 일으키자 그의 부하가 되었다. 617년에 이밀이 위공으로 추대되자 좌무후대장군이 되었으며, 적양이 이밀에게 살해당하자 이세적이 밖으로 달아나자 문을 지키는 사람이 이세적을 죽이려 하자 선웅신은 머리를 조아려 이세적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해 이밀이 이세적을 석방하게 했다.

618년에 왕세충이 공격하자 군사를 이끌고 싸워 배행엄, 정지절 등이 이를 도왔으며, 선웅신은 날래고 민첩해 말에서 긴 창을 잘 사용해 명성이 여러 군사들 중에서 으뜸이었다. 군중에서 비장(飛將)이라 했고 방언조가 선웅신의 거취가 가볍다고 해서 그를 죽이라 했는데, 이밀은 선웅신의 재주를 아껴 죽이지 않았고 선웅신은 이밀이 불리하자 618년에 왕세충에게 항복했다.

이게 웃긴게 당시 왕세충은 낙양에 갇힌 상태에서 군량문제에 허덕이고 있었고, 이밀은 얼마 전에 우문화급과 큰 싸움을 벌여 병사들은 지쳐있었지만 낙구창을 점거한상태라 군량은 넉넉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이밀, 위징, 배인기 등은 왕세충과 정면싸움을 피하면서 지치게 만든 뒤 치자는 신중론을 주장했지만 선웅신을 포함한 여러 장수들이 여론을 등에 업고 정면승부를 주장하며 위징에게 면박을 주어 이밀이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된 것이다. 결국 당시 최고의 기세를 자랑하던 이밀은 여기서 대패를 당하여 단 한번의 싸움으로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620년에는 당나라의 군사와 싸워 9월 21일에 달려와서 이세민을 공격하려 했다가 울지경덕이 나타나 옆으로 찌르자 선웅신은 말에서 떨어졌으며, 621년 2월 24일에 배효달과 함께 낙구에서 당나라의 왕군곽과 대치하고 있다가 이세민이 환원에 도착하자 숨어서 도망갔지만 왕군곽의 추격을 받아 패배했다. 4월 15일에 양공경과 함께 이원길을 공격하기도 했지만 승리하지 못했으며, 왕세충의 세력이 당나라의 군대에게 멸망하자 참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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