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송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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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정치인.
2. 생애[편집]
1942년 만주국 지린성 지린시에서 태어나 8.15 광복 후 귀국하였다. 본관은 경주 설씨. 중동고등학교(54회)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으나 1학년 때 제적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60년 4.19 혁명에 참여하여 4.19의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시위 도중 총상을 입기도 했으며 4월 26일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하야를 요구한 시민 대표 6인 중 한 명이다. 이승만은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하겠다"라고 답했고, 경무대를 나온 후 시위대에 하야 소식을 처음으로 전했다고 한다. 이후 박정희 정부 때는 대통령경호실에서 근무하기도 했으며, 사단법인 4.19회 2대 회장을 지냈다.
1987년 신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서정화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할 때 불참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에서 동교동계인 한영애에 밀리자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자유당 서정화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1996년 11월 통합민주당을 탈당했고 1년 후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직전 한나라당에 입당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노리고 불출마했으며[2] 2000년 초 새천년민주당 창당에 합류하여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용산구에서 한나라당 진영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3]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를 비판하며 후보 단일화를 압박하는 행보로 당시 친노 성향 네티즌들 사이에서 역적 취급을 받았는데, 정작 이듬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전격 합류하면서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에는 국민의당의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선언을 했으며 이후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에 입당했었다.관련 뉴스 2018년 바른미래당을 탈당했고 현재는 정계에서 은퇴한 상태이다.
3. 여담[편집]
- 한국사 강사 설민석의 아버지이다. 실제로 아들인 설민석이 4.19 혁명에 관해 인터뷰한 적도 있다. 해당 인터뷰 휴대전화 번호도 0419로 끝나는 등 본인 스스로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 중 하나로 여기는 듯.
- 부인이 연상이다.[4]
4. 선거 이력[편집]
5. 소속 정당[편집]
6. 둘러보기[편집]
[1] 1학년 때 제적당했다고 한다.[2] 사실 이 때 서울 지역의 판세는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에 매우 유리했기 때문에 출마했어도 당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3] 여담으로, 진영은 16년 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진영을 바꿔서 출마해 당선된다.[4] 1938년생이라고 강의할 때 밝혔다.[5] 3당 합당에 대한 반발로 탈당.[6] 신민주연합당과 신설 합당.[7]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8] 개혁신당과 신설 합당.[9] 한나라당 입당을 위한 탈당.[10] 새천년민주당 입당을 위한 탈당.[11]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탈당.[12]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13] 민주당과 신설 합당.[14]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5] 총선 공천 불복으로 인한 탈당.[16] 국민의당 입당을 위한 탈당.[17] 바른정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