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고등학교 야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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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경기·강원 전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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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경기·강원 후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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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고등학교 야구부
(Seorak High School)
창단
1998년
소속 리그
인천·강원권
감독
윤현필
우승 기록[1]
0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
-
-
-
청룡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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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사자기
-
-
-
봉황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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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트배
-
-
-
1. 연혁
2. 출신 선수[2]



1. 연혁[편집]


1998년 지역 내 설악중 야구부원들을 받아들여 창단한 것이 시초다. 당시에는 속초상업고등학교 야구부로 2008년 인문계 전환과 함께 설악고로 이름이 변했다. 전학생도 없이 오로지 설악중 출신의 선수들이 뭉쳐 끈끈한 전력을 만들어 마침내 2000년 고교야구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2000년 대통령배에서 그 대회 우승팀이었던 추신수부산고와 8강에 만나 격전 끝에 속초상고 투수 조형식의 보크로 인한 실점[3]으로 연장 12회 패배를 당하며 탈락했고, 황금사자기에서는 16강에서 역시 그 대회 우승팀 경기고와 만나 난타전 끝에 12:13 패배하는 등 정말 운이 없이 한 점차로 전국대회에서 모두 지면서 4강 이상을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0년 청소년대표에 속초상고 선수가 4명[4] 발탁되는데, 200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는 한국이 우승한 대회[5]니, 속초상고 야구부의 강력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때의 돌풍 이후 속초상고 야구부가 주력이 되는 일은 없었다. 설악중 야구부를 두고 강릉고와 스카우트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데다가 스카우트 싸움이 진정된 후에는 이번에는 선수 부족으로 몇 차례나 해체 위기를 넘겨야 했다. 2011년에는 단 9명만 남아 전국을 돌면서 선수를 모집해서 해체를 막았을 정도. 다행히 2011년 최대 고비를 넘긴 이후로는 전력이 점차 나쁘지 않은 수준까지는 올라왔다. 대구경북권에 좋은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2015년도 1차 지명에 김영한이 지명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 2014년 8월에 운동장 인조잔디 공사까지 완공되며 여건도 개선되었다.

2. 출신 선수[6][편집]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조영훈
내야수
2001년 2차 2라운드
건국대-삼성(2005~2012)-KIA(2012)-NC(2013~2017)
박용근
내야수
2007년 2차 1라운드
영남대-LG(2007~2015)-KT(2015~2017)
양훈
투수
2005년 2차 1라운드
한화(2005~2014)-넥센(2015~2017)
윤동건
투수
2006년 2차 3라운드
LG(2006~2008)-KT(2014)
최영진
내야수
2011년 신고선수
한일장신대-LG(2011~2013)-두산(2014~2016)-삼성(2017~2022)
강혜성[7]
투수
2014년 육성선수
세계사이버대-KT(2014~2015)
김동진
내야수
2021년 2차 5라운드
강릉영동대 중퇴-파주 챌린저스(2019)-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2020)-파주 챌린저스(2020)-삼성(2021~)
김영한
투수
2015년 1차지명
삼성(2015~2018)-고양 위너스(2019~2020)
최성영
투수
2016년 2차 2라운드
NC(2016~)
안광준
투수
2022년 육성선수
동국대-KT(2022)
이강준
투수
2020년 2차 3라운드
KT(2020~2021)-롯데(2021~2022)-키움(2023~)
전다민
외야수
2024년 6라운드
강릉영동대-두산(2024~)
신현수
투수
2022년 2차 9라운드
한화(202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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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2]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3] 3-3으로 맞선 연장 12회초 1사 만루의 찬스에서 결승점을 헌납해 4-3으로 아쉽게 패했다. 속초상고가 말 공격이었으므로 끝내기 패배는 아니다. 부산고 추신수가 마운드에서는 8이닝 9탈삼진 무실점, 타석에서는 3타수 1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심지어 추신수는 3과 1/3이닝을 먼저 막고 동기생 김백만이 4이닝을 던지며 3실점하자 다시 등판하여 4와 2/3이닝을 막았다.[4] 박명옥, 이윤호, 조영훈, 조형식. 박명옥을 제외한 3명은 200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모두 지명됐다.[5] 추신수, 이정호, 이대호, 김태균 등 훗날 한국프로야구의 대스타가 되는 선수들이 많았다. 결승전에서 한국은 연장 13회 2사 2,3루에서 박명옥이 상대 2루수 글러브를 스치는 2타점 중전안타를 때리며 9-7로 앞서나갔다. 선발 이동현에 이어 등판했다가 미국 타선에 난타당하고 3회에 중견수로 옮겼다가 11회에 다시 마운드에 오른 추신수가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승리를 지켰다. 당시 추신수는 공수겸장의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과 달리 투수가 주포지션이었다.[6] 나무위키 등록 선수만. 졸업 연도 순.[7] 대학 재학 중 강명성에서 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