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무염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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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성모 마리아 4대 믿을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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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라틴어: Mater Dei, Dei Genetrix, Deipara
그리스어: Θεοτόκος(Theotokos)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라틴어: Perpetua virginitas Mariae
그리스어: Αειπάρθενο(Aeiparthenos)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라틴어: Immaculata Conceptio
한자어: 무염시태(無染始胎)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
라틴어: Assumptio Beatae Mariae Virginis
한자어: 몽소승천(蒙召昇天)





1. 개요
2. 가톨릭의 입장
3. 정교회의 입장
4. 개신교의 입장


1. 개요[편집]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 뒤에 숨은 목적은, 성모님은 인간 아버지를 두셨지만 하느님께서 성모님이 잉태되었을 순간에 기적적으로 개입해 원죄가 전달되는 것을 차단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아마 잉태 순간부터 이미 하느님은 자신의 외아들을 낳게 할 어머니로서 성모를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에 이런 신학적 발전은 꽤 근사한 상상력의 소산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 이상이다. 이런 교리적 발전은 인류사에 굳건하고 실질적인 영향을 준다. 결국 바오로가 예수의 정체성을 두 번째 아담으로 이해했듯이, 후대에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성모의 정체성을 두 번째 하와로 파악했고, 영원히 동정성을 지닌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결국 여기서 여성은 남성이 존경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한 여성의 모성은 성적 매력이나 특성 등과는 완전히 분리되기에 이른다. 이 교리야말로 신학의 뿌리를 건드리는 것이고 십수 억의 로마 가톨릭 교회를 27년이나 다스리고 2005년에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펼친, 성과 관련된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온갖 잡다한 신학적 분파가 아니라 바로 이 교리가 우리 시대의 수많은 여성들의 삶에 심원한 영향을 준다고 말할 수 있다.

리처드 할로웨이Richard holloway(성공회 에든버러 교구장), 《HOW TO READ 성경》HOW TO READ THE BIBLE, 주원준 번역, 웅진씽크빅, [ebook]

성모무염시태(聖母無染始胎, Immaculate Conception)는 그리스도교 전승 중 하나로,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태어날 때 원죄로부터 보호받았다는 내용이다. 이것을 믿을 교리로 확정한 교파는 가톨릭 뿐이며, 이외의 교파에서는 임의의 영역으로 열어놓거나 무염시태 자체를 부인한다.


2. 가톨릭의 입장[편집]


78. 우리의 연구결과로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는 아래의 합의문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이 합의문이 마리아에 관한 우리의 합의를 크게 앞당겼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다음과 같이 단언합니다. ... 성모 승천과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에 나타난 마리아에 관한 가르침은 성경에 나타난 은총과 희망적 경륜의 유형 안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성경의 가르침과 초대 교회의 공통된 전통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다.[1]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 공동 문헌,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과 희망이신 마리아〉(Mary: Grace and Hope in Christ)[2]

, 2005

성모 마리아구세주를 낳을 몸으로 일찍부터 예비되었기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원죄없이 태어나는 특은을 받았다는 교리로서 가톨릭에서 1854년 확정적으로 선포되었다.


2.1. 역사[편집]


무염시태 교리는 하느님의 어머니 이론과 평생동정 이론보다 늦게 대두되었지만 초기교회부터 중요하게 믿어져 왔다. 그리스도교 서방교부 중의 하나인 아우구스티누스도 이 교리에 대하여 말한적이 있을 정도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잉태와 자손생식으로 인하여 원죄가 이어진다고 하는 원죄 교리를 주장하였다.[3]

한편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 이론을 수용하여 마리아에게 원죄가 없다면, 그녀에게 예수의 구원이 필요 없는 것이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의 자손인 마리아가 잉태되었을 때, 이미 원죄에 아래에 있게되는것이다. 물론,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후에 동정녀가 된다고 보았다. 즉, 마리아의 육체에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감 후에 성화(聖化)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죄에서 자유롭게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선행 구속론'을 주장한 둔스 스코투스가 있다. 스코투스는 성모무염시태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성과 대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창세 이전에 계획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으로 인하여 성자(聖子)가 보내졌고, 그러한 절대적 중재자인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하여 마리아는 미리 보호되었다고 하였다. 마리아가 원죄없이 태어남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부정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인간에 상황에 하느님이 조건지어지는 것으로 모순이 된다고 여겼다.

더하여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개념을 차용하는데 가장 먼저 의도한 것이 가장 마지막에 실행(성취)된다'는 이론이다. 즉, 완벽한 결과(그리스도)를 위해 완벽한 상태(무원죄)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 중심주의가 스코투스의 선행 구속론의 골자이다. 중재자인 그리스도는 마리아가 원죄에 사로잡히지 않게 할 수 있었고, 그것을 하고자 하면,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마리아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받은것이 아니라 원죄로 부터 보호(선행은총)를 입은 것이다.

성모께서는 원죄로부터 구원받을 필요가 있기 이전에 이미 원죄로부터 보호받았으며, 이는 한 사람이 죄를 짓고 나서 용서하는것보다 처음부터 죄에서 보호함으로써 사람을 구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이라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ㅡ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무염시태에 관한 질문들』(Quaestiones disputatae de immaculata conceptione beatae mariae virginis)에서

그리고 이 이론은 후일 교황 무류성으로 믿을교리로 선포되는 비오 9세의 『형용할 수 없는 신』(Ineffabilis deus)에 등장하는 무염시태 교리에 토대가 되었다.

스코투스는 당시 논쟁에서 세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결코 한 순간도 원죄의 지배하에 있지 않게 하실 수 있다.

둘째, 마리아를 어느 한순간만 원죄로부터 성화하실 수 있다.

셋째, 어느시기가 지난 다음 마리아를 원죄로부터 성화하실 수 있다.

스코투스는 세가지 가설중 하느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하셨을거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론에서 신의 의지(voluntas)는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원하기만 하면 행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신은 마리아가 원죄 없이 태어나게 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렇게 행한 것이다. 이렇게 스코투스는 신의 의지를 내세워 마리아의 무염시태가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는 하실수 있었고 원하셨으며 따라서 하셨다.

이러한 역사젹 배경에 따라, 가톨릭 교회사에서 무염시태의 옹호측은 주로 프란치스코회, 반대측은 도미니코회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도미니코회측에서도 무염시태를 받아들이는 등 교회의 일치된 의견이 나타나면서 마침내 1854년 12월 8일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에서 교의가 명시적으로 선포되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를 교황의 무류한 선포라고 본다.

이 선포와 훗날의 성모몽소승천 선포가 교황의 무류성과 엮여있기에 일각에서는 마치 교회에서 논쟁적인 사안을 교황이 억지로 밀어붙여서 통과시킨 것 처럼 오해하는 경우도 많으나, 이 선포들은 당시 가톨릭 교회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오히려 교황들이야말로 매우 신중하게 유보적인 입장이었고, 소위 말하는 '교회의 하부 구조'에서 아래로부터 치고 올라와서 교의로 선포된 것이 진실에 가깝다. 물론 이걸 모든 가톨릭 신자의 개개인의 예외 없는 만장일치라 하긴 어렵겠지만, 당시 정황을 보면 '일치된 의견'이라 하기엔 무리가 없었음은 분명하다.

1884년 10명의 프랑스 대주교들이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게 공동 서한을 보내 성모의 원죄 없는 잉태를 선포해 주기를 요청한다. 또한 1843년에는 당시 교황청 국무원장인 람브루스키니(Luigi Lamburschini, 十 1854) 추기경이 성모의 원죄 없는 잉태에 유리한 성서 구절, 전승, 교황청 문헌들을 다수 수집하여 논문을 발간하였고, 이 책은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상당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전통적으로 성모의 원죄 없는 잉태를 반대하던 도미니코회원들도 성모 신심 미사의 감사송에 “원죄 없는”(immaculata)이란 표현을 삽입하려고 노력하였다.

... 교황 비오 9세는 1852년 20명의 신학자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소집하여 이 문제를 검토하게 하였다. 여기서 교의 결정의 근거로 삼을 만한 기준들이 논의되었는데, 당시 주교단의 일치된 의견과 교회의 전례 실천도 교의 결정을 위한 긍정적인 기준으로 제시되었다. 1854년 3월 22일 21명의 추기경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가 소집되어 회칙의 제4차 초안이 검토되었다. 같은 해 12월 2일 교황은 회칙의 최종 편집을 추기경단에 넘겨서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 낸다. 마침내 1854년 12월 8일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이 발표되어 ‘성모의 원죄 없는 잉태’가 교의로 선포되기에 이른다.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 『주님의 어머니 신앙인의 어머니 – 어제와 오늘의 성모 마리아』, 서울가톨릭대학출판부, 2014, pp.171-173


많은 주교, 신부들, 그리고 신자들은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할 것을 지속적으로 청원하였다. 교황 비오 10세(Pius X, 十 1914)는 계속되는 청원에 대해 교의 선포 이전에 진지하고도 많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 1863년부터 1920년까지 19개 국가에서 1,615,000명의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교황청에 성모 승천의 교의 선포를 청원하였고, 1921년부터 1940년 사이에 청원자 숫자는 6,471,000명으로 늘어났다. 청원자들이 내세운 군거는 다양했다. 일부는 성모 승천이 성경에 증언된 분명한 계시 진리임을 내세웠고, 다른 이들은 성모 승천을 사도들로부터 현재의 교회까지 끊이지 않고 전해져 내려 온 구전 사도전승으로 간주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모 승천이 현재 교회의 일치된 신앙이라는 점을 근거로 교의 결정을 요청하였다.

...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교의 선포 청원이 줄을 이었다. 로마는 더 이상 유보적인 자세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하기 위해 어느 교황들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우선 1869년부터 1940년까지 3018건의 청원을 분석하게 하고, 그 결과 96%가 성모 승천의 교의 선포를 염원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또한 교황은 교황 비오 9세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 대해 주교들, 신학자들, 신자들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추기경단에게 의견을 묻고 광범위한 동의를 얻어 낸다. 마침내 교황은 1950년 11월 1일에 회칙 「지극히 자애로우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을 통해서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한다.

같은 책, pp.175-178


1854년과 1950년에 선포한 것은[4]

어떤 논쟁에 대한 대응으로 내려진 것이 아니라, 교황과 친교를 이루는 모든 신자의 신앙에 대한 일치된 의견을 반영한 것입니다.[5]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과 희망이신 마리아〉(Mary: Grace and Hope in Christ), 2005[6]

, 제62항



2.1.1. 성모몽소승천성모무염시태에 대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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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wiki style="text-align:center"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 성모 마리아는 성부의 딸, 성자의 어머니, 성령의 짝이라는 교리를 반영한다.}}}


수많은 교부신학자가 엄격한 성경 해석을 근거로 조사하고, 교회에 의해 진리로 선포된 교리이다.

저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비록 공식적인 의견 표명은 아니었지만, 요한 복음서 14장 3절을 성모승천에 대한 교의적 근거로 인용하였다. 성모승천 교의 역사의 끝자락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는 사도헌장《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을 통해 교황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거룩한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모든 입증과 확신은 거룩한 전승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성모승천은 교회의 초창기부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믿어져 오던 전승이었다.

여기서 전승(傳承)의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하는데, 전승이란 "넓은 의미에서 한처음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하느님 말씀과 행적, 교회 가르침과 활동에 관한 모든 것, 곧 성전(聖傳)과 성경(聖經) 모두"를 말한다.

교회의 초창기부터 수많은 교부와 신학자의 치열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확립되고, 교회에 의해 권위를 지닌 진리와 가르침으로 선포됐으며, 또한 구세사(救世史)에 있어서 성모 마리아의 역할,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관계, 교회 안에서의 성모 마리아의 지위에 대한 의미를 내포한다.

우선 성모 마리아 이전에 최소한 2명 이상의 사람이 이미 승천, 즉 육신과 영혼이 하늘나라로 들어 올림을 받은 사례가 있다.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하늘에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로 들어 올려지기 전에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인정받았습니다. (히브 11:5)
  • 모세[7]
그러나 미카엘 대천사도 모세의 주검을 놓고 악마와 다투며 논쟁할 때, 감히 모독적인 판단을 내놓지 않고, “주님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바란다.”하고 말하였을 뿐입니다. (유다 1:9)
주님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실어 하늘로 들어 올리실 때였다. …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사는 그 광경을 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기병이시여!” (2열왕 2:1-5)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례를 봤을 때, 성모 마리아 역시 그러한 들어올림의 대상이었다고 보는 것이 그렇게 큰 무리라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가톨릭교회는 다음의 구절을 보고 이미 성모승천이 예정된 일이었다고 보고 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이 모두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졌다고 가르치고 있다. 마리아에게 죄가 없다면, 죽음이 그녀를 구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생각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하며 지냈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여 낳았으며, 그를 양육하였으며, 십자가 밑에서 그의 수난과 죽음을 지켜보며 곁을 지켜주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자기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를 각별히 여겨 에녹과 엘리야 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 어머니의 육신도 하늘나라로 들어 올렸을 것이다.

우리 그분 거처로 들어가 그분의 발판 앞에 엎드리세. 주님, 일어나시어 당신의 안식처로 드소서. 당신께서, 당신 권능의 궤와 함께 드소서. (시 132:7-8)


성모 마리아는 새로운 언약궤이다. 다윗 왕이 예루살렘 백성들을 이끌고 피난처로 이끌었듯이, 그리스도 역시 하늘로 승천하여 자신의 거처로 백성들을 이끈다.

요한묵시록 12장을 보면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12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등장한다. 이 여인은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을 다스릴 사내아이를 출산하였다.

여자와 용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는데, 한 여자가 해를 둘러 걸치고, 달을 그 발 밑에 밟고, 열두 별이 박힌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아이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서 나타났습니다. 머리 일곱 개와 뿔 열 개가 달린 커다란 붉은 용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머리에는 왕관을 일곱 개 쓰고 있었습니다.

그 용은 그 꼬리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서,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막 해산하려고 하는 그 여자 앞에 서서, 그 여자가 아기를 낳기만 하면 삼켜 버리려고 노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 여자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기는 장차 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리실 분이었습니다.

별안간 그 아기는 하느님께로, 곧 그분의 보좌로 이끌려 올라갔고, 그 여자는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거기에는 천이백육십 일 동안 사람들이 그 여자를 먹여 살리도록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곳이 있었습니다. (묵시 12:1-6)


그리고 일부에서 제기하는 "성모몽소승천 교리는 1950년에 새로 생긴 것이다"라는 비판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가톨릭과 밀접한 성미술(聖美術)의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는데, 성모승천을 주제로 그려진 성화는 비오 12세교황무류성의 이름으로 믿을 교리로 선포한 20세기를 훌쩍 넘은 14세기에도 등장하고(심지어 16세기 종교개혁 이전이다.)[8], 이탈리아에 정말 널리고 널린 성모승천이라는 의미의 산타 마리아 아순타(Santa Maria Assunta)라는 이름을 지닌 성당은 르네상스 이전 시대부터 버젓이 지어지고 있었다. 개신교 측 입장 문단에서 성모승천이 가톨릭 내부에서 상당한 논쟁을 불렀다는 언급이 있었으나, 성모승천은 고대에도 확인되는 교회 전승이다. 근대에 교의 확정 과정에서 가톨릭 신학계 내부에 논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 논쟁은 전승의 유무나 성모승천 명제의 가톨릭적 참거짓 유무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타 교단과의 대화 과정에서 반발을 부를 것이라는 사목적 배려의 문제였다.[9]

당장 몽소승천 교의가 교황무류성을 통해 확정(1950년)되기 이전의 교리서에서도 몽소승천은 교리로서 가르쳐지고 있다.

[문] 어떤 사람의 몸이 죽음에서 일으켜지고 천상으로 받아들여진 적이 있습니까?[10]

[답] 원죄 없는 혼과 결합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몸은 몽소승천의 특권으로 천상으로 드높여지고 받아들여졌습니다.[11]

『볼티모어 교리문답』Baltimore Cathechism 1941년판 178항

교회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예수가 묵시록에 나오는 이 사내아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내아이를 낳은 여인은 다름 아닌 동정 마리아를 뜻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수세기에 걸쳐 발생한 성모 발현, 즉 가르멜 산의 성모, 과달루페의 성모, 뤼뒤박의 성모, 파티마의 성모 등을 살펴보면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서 태양 내지는 발밑에 달을 두고 있다는 점, 머리에 12개의 별로 된 관을 썼다는 점 등 묵시록에서 언급된 여인의 모습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점이다.

요한묵시록 12장에서 여인이 낳은 사내아이는 하느님에게로, 그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다고 나온다. 여기서 들어 올려져 하느님에게로 갔다는 뜻은 십자가상에서 죽은 예수부활하여 하늘에 올라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내아이가 하늘로 올라가자 은 그 사내아이를 낳은 여인을 쫓아갔다. 그러나 그 여인에게 큰 독수리의 두 날개가 주어졌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광야에 있는 자기 처소로 날아가, 그 뱀을 피하여 그곳에서 일 년과 이 년과 반 년 동안 보살핌을 받았다. (묵시 12:13-14)

여기서 ‘큰 독수리의 두 날개’라는 말을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휘저으며 새끼들 위를 맴돌다가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들어 올려 깃털 위에 얹어 나르듯…. (신명 32:11)

위의 말씀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때, 독수리는 하느님을 상징하는 것이며 두 날개는 하느님의 두 천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고 자기 처소로 날아가 뱀을 피하여 피신했다는 구절은 곧 성모 마리아가 천사들에 의해서 하늘나라에 들어 올려졌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해 묵시록의 여인은 '메시아의 백성'을 의미한다는 반론이 있으나, 이는 허수아비 치기의 오류이다. 이 여인이 '메시아의 백성'을 의미한다는 건 당연 가톨릭도 인정하며, 다만 '메시아의 백성'과 '메시아의 어머니'가 상호배제하는 의미가 아니라고 보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개신교 주석에서도 두 의미가 상호 중첩되어 있는 건 부정하지 않는다.[12] 즉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이 부분에서 '메시아의 어머니'가 '메시아의 백성'을 표상한다는 건 당연 인정한다. 그리고 성경은 어떤 구체적 인물이 더 거대한 개념을 표상한다고 해서 그 인물의 구체성과 의미를 희석하지 않는다.[13] 그렇기에, 개신교 성서학자 Ben Witherington 3세는 다음과 같이 옳게 말하였다:

[
요한묵시록 12장의 여인
]
은 문자 그대로 사내아이 예수님의 어머니를 지칭하는 동시에 하느님 백성을 가리키는 여성상이라고 보아야 한다.[14]


이밖에도 교부들은 창세기를 검토하면서 성모승천을 확신하였다. 창세기 3장 15절을 보면 동정 마리아는 아들 예수의 인류 구원 사업에서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며, 아들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공동 운명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창세 3:15)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사탄과 마리아 사이에, 타락한 천사들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적개심이 형성되리라는 것은 하느님에 의해 결정되었다.

성모승천 교의를 입증하는 모든 논리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는, 인류에게 죄를 가져다 주었던 첫 인간인 아담하와와 달리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 주는 두 번째 아담인 예수에 이어, 그의 구원 사업에 최초로 동참하게 된 두 번째 하와로서 마리아가 원죄의 모든 흔적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야 한다는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다. 8세기의 교부 성 제르마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정 마리아가 원죄의 모든 흔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잉태된 순간 받게 되는 육신과 정신 그리고 영혼의 세 요소가 태중에서부터 이미 완전무결해져야만 한다. 마리아는 하느님에 의해 제2의 하와로서, 즉 티 없이 깨끗한 상태로 창조되어야만 했다. 그녀의 정신과 영혼 그리고 육신은 원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만 했다.


아담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의 뜻에 불복종했을 때, 하느님에게서 받은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아담 이래 모든 인간은 때가 되면 영혼과 정신 그리고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의 세례를 통해서만 새로운 마음과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구원의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요한 3:5)

그런데 성경이나 교회의 전승 그 어디에서도 마리아가 여느 인간처럼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은 마리아가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이미 새로운 몸과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녀는 원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세례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마리아는 원죄에 전혀 물듦 없이 잉태되도록 하느님에 의해 예정되어 있었다.[15]

마리아가 육신과 정신, 영혼이 하느님에 의해 온전히 불멸의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지지하는 성경상의 증거는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하와가 죄를 범한 후 그녀에게 한 말에서 엿볼 수 있다. 하느님은 하와에게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창세 3:16)

라고 예고하였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원죄를 물려받지 않고 흠 없는 상태에서 예수를 낳을 때는 원죄의 산물로 나타나는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았으리라는 논리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성경에도 고통 없이 아이를 출산하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진통을 겪기 전에 해산하고 산고가 오기 전에 사내아이를 출산한다. 누가 이런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누가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느냐? 한 나라가 단 한 번 만에 태어날 수 있느냐? 한 민족이 단 한 번 만에 태어날 수 있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이 오자마자 자식들을 낳는다. (이사 66:7-8)


앞서 언급된 내용들은 구체적으론 예형론(豫形論, Typologia)에 기반한다. (1코린 10:6.11; 히브 10:1; 1베드 3:21.)

우선 가장 중요한 사실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마리아를 평범한 여인으로 보는 데 반해 고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대 교회에는 하와와 마리아의 유사점이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와가 인류의 타락에 고유한 역할을 했듯이 마리아도 인류의 구원에 고유한 역할을 했다고 믿었습니다. (...)

(...)

이처럼 고대 교부들의 진술은 놀랍게도 일치합니다. 위에 언급된 문헌들은 특정 장소나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아프리카, 소아시아, 유럽에서 살던 교부들이 그리스어, 라틴어, 시리아어로 쓴 작품입니다. 19세기의 저명한 학자이며 교부 전문가인 존 헨리 뉴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리아에 관한 “가장 오래된 초기부터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그녀가 바로 두 번째 하와라는 것이다.”

마리아가 두 번째 하와라는 것을 이해하면 마리아도 하와처럼 죄 없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교리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마리아가 실제로 새 하와라면, 마리아는 하와보다 더 위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깐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형론의 관점에서 보면 구약의 ‘예형’은 신약에서 성취되는 인물보다 위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아담은 예수님의 예형이지만, 아담의 타락에서 보다시피 아담이 예수님보다 위대하지는 않습니다. 다윗 임금도 참된 이스라엘의 임금이신 예수님의 예형이지만, 밧 세바와 간음한 다윗 임금이 그리스도보다 위대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와가 마리아의 예형이라면 하와는 마리아보다 위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창세기에서 하와가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하시도록 창조되었다는 말은 죄 없이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창세 1,27-31) 그러므로 두 번째 하와인 마리아 역시 죄 없이 창조되었다는 것이 이해됩니다. 하와―마리아 예형론에 따르면 마리아는 어떤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만일 마리아가 죄를 지었다면 첫 번째 하와가 두 번째 하와보다 위대한 것이 됩니다.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이 죄 없이 태어나시고 죄 없이 사셨다면, 두 번째 하와인 마리아도 죄가 없으셔야 합니다. 고대 교부 시리아의 에프렘과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을 봅시다.

오직 예수님 당신과 당신의 어머니께서

모든 것보다 더 아름다우십니다.

오 주님, 당신께는 어떠한 흠결도 없고

당신의 어머니께는 어떠한 오점도 없나이다.

에프렘, 「니시비스 시가」 27.8 [4세기]

죄라는 주제를 다룰 때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예외로 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으로부터 모든 면에서 죄를 극복할 수 있는 넘치는 은총이 마리아에게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주님의 공로로, 의심의 여지 없이 죄 없으신 분[주님]을 잉태하시고 낳으셨다.

아우구스티누스, 「본성과 은총」 42 [4-5세기]

에프렘과 아우구스티누스는 타락 이후 모든 사람이 죄의 권세 아래에서 태어난다는 성경의 가르침에서(시편 51,5; 로마 3,23; 5,12-17)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오직 마리아만이 예외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리아가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죄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마리아가 얻어낸 것이 아니라 하느님 ‘은총’의 순수한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어떻게 고대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죄가 없으셨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히브 4,15) 그런데 마리아도 죄가 없으셨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요? 마리아가 죄 없이 창조되었다는 말이 마리아가 뭔가 온전히 인간적이지 않다는 뜻은 아닌가요? 이 주장은 타락 이전 아담과 하와가 ‘온전히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미주 1]

이 점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과 마리아를 구약성경의 눈으로 보려 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죄의 상태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 하시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아담과 하와를 죄가 없이 태어나도록 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 신약성경

1. 아담: 죄 없이 창조됨 ― 1. 예수님: 죄 없이 잉태되심

2. 하와: 죄 없이 창조됨 ― 2. 마리아: 죄 없이 잉태되심

아담이 죄 없이 창조되었고 하와 역시 죄 없이 창조되었다면, 예수님과 마리아 두 분 다 죄 없이 잉태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예수님이 새 아담이며 마리아가 새 하와라면, 두 분 다 죄로부터 자유로웠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분들이 죄가 없다고 말한다 해서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미주 2]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 언급하듯이, 예수님과 마리아를 새 아담과 새 하와로 여기는 것은 마리아가 죄 없이 잉태되셨고 죄 없이 사셨다는 교리의 성경적 근거가 됩니다. 창세 3,15의 ‘원복음(Protoevangelium)'을 다루면서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교 전승은 이 대목[창세 3,15]을 “새로운 아담”의 예고라고 본다. 그분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필리 2,8) 아담의 불순종을 넘치게 보상한다. 한편 많은 교부들과 교회 학자들은 이 ‘원복음’에서 예고된 ‘여인’을 “새로운 하와”인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로 생각한다. 마리아는 최초로 그리고 특별한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 거두신 죄에 대한 승리의 은혜를 입은 분이다. 그분은 원죄에 전혀 물들지 않았고, 지상 생애 동안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그 어떤 죄도 범하지 않으셨다. 「가톨릭교회교리서」 411항

원죄로부터 보호되었다는 가르침, 곧 ‘원죄 없이 잉태되심’이란 의미는 흔히 오해되듯 마리아의 부모님이 죄가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개신교 학자가 주장하듯이 ‘아들에게 죄스러운 본성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죄를 씻은 것’도 [미주 3] 아닙니다.

(...)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죄를 이기신 승리에서 흘러나온 ‘특별한 은총’으로 마리아는 죄로부터 자유로웠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리아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에 관한 교의를 믿을 교리로 반포했습니다. 교황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믿음을 따라, 마리아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특전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공로를 미리 입으시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게 보호되셨다고 강조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마리아는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 정확히는 모든 죄에서 보호되었기 때문에 “나의 구원자 하느님”(루카 1,47)이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하와인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이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에게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예입니다. 마리아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가져온 것을 되돌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2코린 5,17)이 되게 하는 것임을 알게 해줍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죄 없이 사셨다는 것과 우리 역시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부활할 때에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리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바로 이것이 신약성경에서 하늘에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히브 12,23)이 있다고 표현한 까닭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까닭은 하느님께 우리를 의인처럼 보이게 하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당신 은총의 능력으로 실제로 우리를 ‘의롭게 만드셨습니다.’(로마 5,19 참조) 새 하와인 마리아는 죄 없이 창조되어, 새 창조의 의로운 삶을 가리키는 ‘살아있는 표징’이 되셨습니다. 이 새로운 창조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묵시록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미주 1] : Mary Cunningham, Gateway of Life, 182-184 참조. Cunningham은 정교회는 가톨릭교회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의 교의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심의 교의는 마리아를 다른 인류와 분리하며, 필멸의 존재와는 다른 신체적 특징을 갖게 만들고, 마리아의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는 죄 없이 창조되었지만, 그들은 온전히 인간적이었고 온전히 자유로웠다. 비슷한 방식으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은 그녀의 자유나 온전한 인성을 박탈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교리서」 374-379항 참조. McKnight, The Real Mary, 121과 비교. McKnight는 가톨릭 교의에 대해 옳게 논평하고 있다. “마리아의 죄 없음은 그녀가 신적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다. 공식적인 가르침에서 마리아의 죄 없음은 하느님 은총의 산물일 뿐이다.”

[미주 2] : 이 점에 관련하여 John Henry Newman의 말을 참조하라. “만일 하와가 창조된 순간부터 초자연적 내적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면, 마리아도 잉태된 순간부터 이런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추론에 어떻게 반론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것이 원죄 없이 잉태되심 교의의 단순하고 문자적인 의미다. 원죄 없이 잉태되심 교의의 본질이 더도 덜도 말고 바로 여기에 있다. … 이 교의는 교부들의 가르침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곧 마리아가 두 번째 하와라는 사실이다.” Boyce, Mary, 225에서 재인용. 원문의 출처 Reverend Pusey에게 보낸 편지는, John Henry Newman, Certain Difficulties Felt by Anglicans in Catholic Teaching (2 vols,; London: 1908, 1910), 2:44-50 참조.

[미주 3] : McKnight, The Real Mary, 130-131. McKnight는 원죄 없이 잉태되심의 교의는 마리아가 어떻게 자신의 죄스러운 본성을 예수님께 물려주지 않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그릇된 주장을 하고 있다. McKnight는 「가톨릭교회교리서」와 같은 가르침을 인용한 것은 아닌데, 사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교리는 없다.

-브랜드 피트리, 《마리아의 신비를 풀다》, 바오로딸


위에서 언급한 논리들로 볼 때 마리아의 육신은 여느 인간처럼 땅속에 묻혀 의미없이 소멸될 수 없으며 살아있는 상태에서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졌거나 죽은 상태에서 부활하여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졌다는 신학적 논리로 도출된다. 이 2가지 논리 가운데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교회는 유보적인 상태다. 어쨌든 새로운 하와이자 세상의 어머니로서 티 없이 깨끗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육신과 정신, 영혼은 때가 되자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져 영광스러운 빛의 존재로 변화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보통 인간은 지금의 육신은 결국 소멸하며, 소멸하지 않는 불사의 몸을 갖기 위해서는 최후의 심판 날이 도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만 마리아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창세기, 이사야서, 요한묵시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이들 성경 구절을 전부 종합해 보면 동정 마리아의 몽소승천 교의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내용이라 본다.

3. 정교회의 입장[편집]


정교회에서는 가톨릭 교회와 달리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인사를 건넬 때 성령에 의해 바로 죄로 인한 부정함으로부터 정화되어 풀려났다고 가르친다. 가톨릭이나 개신교 교리와 달리 정교회에서는 원죄를 아담하와의 죄로서만 볼 뿐 후대의 인류 전부에게 원죄가 있다고 보지 않고 다만 원죄로 인해 인간 본성이 망가진 결과가 후대까지 전해지는 것으로 보는데, 이런 점에서 성모 역시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태어났다고 본 것이다. 철학자이자 정교회 사제 콘스탄틴 카바르노스(Constantine Cavarnos)는 1854년의 성모무염시태 교리를 후대의 창작(innovation)이라고 표현하며 정교회는 이를 받아들인 적이 없다고 서술하였다.[16] 정교회 대주교 다마스키노스 파판드레우(Damaskinos Papandreou)는 요한 바오로 2세의 1987년 마리아론에 대한 정교회의 입장을 밝히면서 성모무염시태 교리가 교회 분열 이전의 교부적(patristic) 전통과 일관적이라고 볼 수 없으며, 아우구스티누스토마스 아퀴나스 등도 무염시태를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지적하였다.[17]

원죄를 면제받은 시점의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 성모는 원죄로부터 보호받았고 죄없이 예수를 낳았음은 시사한다.

4. 개신교의 입장[편집]


대부분의 경우 적극적으로 부정한다.

성공회의 경우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가 2005년 가톨릭과의 합의문에서 무염시태와 몽소승천이 '성경의 가르침과 초대 교회의 공통된 전통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다(can be said to be consonant with the teaching of the Scriptures and the ancient common traditions)'고 표현하였다.

루터교회는 가톨릭과의 공동 성명 중 The One Mediator, the Saints, and Mary(1990)에서 무염시태와 몽소승천, 성인 공경 등에 대한 입장에서 가톨릭과 의견 차이가 있으며 교회 일치에 장애물로 남아 있다고 명시하였다.

1971년 감리회Methodist-Catholic Report에서 가톨릭 마리아론을 가톨릭과의 급진적 불일치(radical disagreement)를 일으키는 세 가지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꼽았다. 비슷하게, 미국 가톨릭-침례회 대화에서 침례회는 가톨릭의 마리아 교의가 예수의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지위를 흔들리게 하며, 성경적 근거가 거의 없는 무염시태와 몽소승천을 무오류(infallible)의, 반드시 믿어야 할 교리로 규정했다고 지적하였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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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s a result of our study, the Commission offers the following agreements, which we believe significantly advance our consensus regarding Mary. We affirm together ... that the teaching about Mary in the two definitions of the Assumption and the Immaculate Conception, understood within the biblical pattern of the economy of hope and grace, can be said to be consonant with the teaching of the Scriptures and the ancient common traditions[2] 번역 출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회일치문헌》 제2권, 2009, p.298.[3]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원죄가 남성의 정액을 통해 유전된다고 주장했다.[4] 발췌자 주석: 1854년에 선포된 교의는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1950년에 선포된 교의는 '성모 승천'이다.[5] The definitions of 1854 and 1950 were not made in response to controversy, but gave voice to the consensus of faith among believers in communion with the Bishop of Rome.[6] 번역 출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회일치문헌》 제2권, 2009, pp.298-300.[7] 사후에 그의 주검이 하늘로 들어 올려진 것으로 전한다.[8] 위키미디어 공용 참조.[9] 가령 '성모승천 교의 선포'를 반대했던 카를 라너(Karl Rahne) 신부의 경우, 성모승천이라는 명제를 반대한 게 아니라 '선포'를 반대한 것이다. 「라너가 보기에 성모승천은 교리로 선포되지 않고도 단순히 교회의 믿을 내용으로도 충분히 유지될 수 있었다. 이는 라너가 마리아론을 현대인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 인간학적ㆍ종말론적 관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라너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주목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자 십자가 위로 어둠이 덮치고 지진이 일어났다고 증언하는데 이것은 바로 죄와 죽음의 옛 세상이 몰락했음을 뜻한다고 라너는 말한다. 그와 동시에 무덤이 열리면서 잠들었던 많은 성인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성경의 증언은 새로운 세상이 들어섰음을 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옛 세상의 종말이자, 인간 영육의 완성이 이뤄지는 세상의 새로운 창조다. 성모 마리아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모승천을 인간학적ㆍ그리스도론적ㆍ종말론적 관점에서 볼 때 다른 인간들의 종말론적 구원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라너의 견해였다. 그는 성모승천에 관한 믿음을 교리로 선포할 정도로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라너는 이에 대해 393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논문 〈오늘날 마리아론의 문제들〉을 작성했다.」 #[10] Has the body of any human person ever been raised from the dead and taken into heaven?[11] By the special privilege of her Assumption, the body of the Blessed Virgin Mary, united to her immaculate soul, was glorified and taken into heaven.[12] "앵커바이블 요한계시록 2", 크레이그 R. 쾨스터[13] 가령 창세기의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명명백백하게 이스라엘 백성과 12지파를 표상한다. 그러나 더 거대한 개념을 표상한다고 해서, 야곱과 아들들의 구체성과 의미를 창세기가 희석하는 건 아니다. 즉 요한묵시록에서 '메시아의 어머니'가 '메시아의 백성'을 표상한다는 게, '메시아의 어머니'의 구체성과 의미를 지워버리는 건 아니다.[14] Ben Witherington III, What Have Done with Jesus? Beyond Strange Theories and Bad History - Why We Can Trust the Bible (San Francisco: HapperOne, 2006), 130[15] 개신교는 세례가 중요하긴 하지만, 세례 안 받으면 구원 못받는다고 하면 그냥 너 이단 취급한다. 개신교는 오직 믿음, 오직 은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례와 마리아 무염시태와 연관짓지 않는다.[16] Constantine Cavarnos, The Question of Union: A Forthright Discussion of the Possibility of Union of the Eastern Orthodox Church and Roman Catholicism, trans. Patrick Barker (Etna, Calif.: Center for Traditionalist Orthodox Studies, 1992), 26[17] Kimball, Virginia M. (2004) "The Immaculate Conception in the Ecumenical Dialogue with Orthodoxy: How the Term Theosis Can Inform Convergence," Marian Studies: Vol. 55, Article 1, 218[18] Thompson, Thomas A. (2004) "The Immaculate Conception in the Catholic-Protestant Ecumenical Dialogue," Marian Studies: Vol. 55, Article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