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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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성백우(成百愚)
본관
창녕 성씨
생몰
1921년 8월 3일 ~ 1950년 3월 7일
출생지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1]
사망지
서울특별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성백우는 1921년 8월 3일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8년 8월 경기상업학교에 재학중 임형선(林炯善)의 하숙집에서 일본학생에게만 반장을 임명하고 한국학생들은 일본인 교사들로부터 냉대를 받는데 격분하여 조국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한 뒤 급우들에게 민족사상을 고취시키는데 주력했다. 이후 1941년 7월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상룡(金祥龍)·임형선·김용근(金容根) 등 동지들과 회동하여 농민이 생활고를 겪는 것은 조세제도 및 공출 등 일제의 압정 때문이며, 또한 취업한 한국인들과 봉급의 차이가 많아 생활의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그들이 강조하는 내선일체가 거짓이라는 증거이므로 이를 배격하는 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합의하고 활동했다.

그러나 1942년 12월 동지들과 함께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43년 3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 1944년 9월 29일 가출옥했다. 그러나 1944년 11월 말 동대문경찰서에 다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미결수로 옥고를 겪다가 8.15 광복 직후 출옥했다. 그러나 가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다가 1950년 3월 7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성백우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0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창녕 성씨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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