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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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서울특별시자치구


파일:성북구 CI.svg

성북구
城北區
Seongbuk-gu





구청 소재지
보문로 168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하위 행정구역
20[1]
면적
24.58㎢
인구
426,276명[2]
인구 밀도
17,433.16명/㎢
구청장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이승로 (재선)
구의회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12석[3]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10석[4]
시의원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석[5]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석[6]

국회의원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김영배 (초선)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기동민 (재선)
상징
구화
진달래
구목
감나무
구조
참새
지역번호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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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성북구 BI.png

슬로건
파일:성북구청_sb.png}}}
성북구청

1. 개요
1.1. 상징
1.2. 구가(區歌)
2. 역사
2.1. 인구
3. 지역 특징
3.1. '서울 토박이' 이미지
3.2. 생활권의 구분
3.3. 전통과 현대, 부와 중산층 그리고 빈부격차
4. 교통
4.1. 관내 철도 목록
6. 금융
7. 의료기관
9. 하위 행정구역
9.1. 성북동 - 甲
9.2. 삼선동 - 甲
9.3. 동선동 - 甲
9.4. 돈암1동, 돈암2동[7]
9.5. 안암동 - 甲
9.6. 보문동 - 甲
9.8. 종암동 - 乙
9.9. 길음1동, 길음2동[8]
10. 기타
11. 산하 기관
12. 관련 항목



1. 개요[편집]


성북구(城北區)는 서울특별시의 구. 동쪽으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랑구와 접하고[9], 서쪽으로 한양도성을 경계로 서울특별시 종로구와 접한다.[10] 북한산을 경계로[11] 서쪽으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와도 접하며, 남쪽으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와 접하고, 북쪽으로 서울특별시 강북구, 도봉구[12]와 접한다. 고려대학교/서울캠퍼스 (안암동), 성신여자대학교 (돈암동), 국민대학교서경대학교 (정릉동), 동덕여자대학교 (월곡동) 등 대학도시로 유명한 구다.

이름은 한양도성의 북쪽에 있다는 뜻이다. 성동구도 마찬가지. 성북구 내의 성북동도 서울 성곽 바로 북쪽에 있다.

1.1. 상징[편집]


서울특별시 성북구의 휘장
파일:성북구 CI(1994-2009).svg
(알 수 없음)~ 2009년 2월 28일
과거부터 2009년 2월 28일 까지 사용됐던 성북구의 휘장이다.
파일:성북구 CI.svg
2009년 3월 1일~현재
2009년 3월 1일 부터 현재까지 사용중인 성북구의 휘장이다. 100개의 원은 문화재, 명소, 자연 등으로 이뤄진 성북 100경을 뜻한다. 부드러운 곡선은 되살아난 성북천을 표현하며, 방향성을 지닌 역동적인 이미지는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추진력을 나타낸다. 특히 100개의 원은 성북 100경과 함께 구민 한 명 한 명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비록 작은 원이지만 모이면 큰 흐름이 돼 어려운 시대를 해쳐나가는 큰 물결이 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주 색상은 청색과 녹색인데, 청색은 성북천과 청렴한 구정을, 녹색은 성북의 자연경관과 희망을 상징한다. #

서울특별시 성북구의 브랜드
파일:성북구 BI 1.svg
현재 사용중인 성북구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2가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파일:성북구 BI 2.svg
2022~현재


1.2. 구가(區歌)[편집]


그 먼 날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고

겨레가 깃발 아래 들끓어 치닫던 날

성북은 하늘처럼 북한산 떠받들어

지켜온 천년 사직 부둥켜 안았더니

성북구 구가 中, 양만규 작사 / 김영광 작곡


직접 듣고 싶다면 여기를 참고. 중랑구의 구가와 멜로디가 상당히 유사한데, 그 이유는 작곡가가 김영광으로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2. 역사[편집]


성북구 행정구역 변천사
한성부
성저십리 숭신방
(漢城府
崇信坊, 1424)

경성부 숭신면
(京城府 崇信面, 1911)

고양군 숭인면
(高陽郡
崇仁面, 1914)

경성부 동대문구
(東大門區, 1936, 1943)[13]

서울특별자유시 동대문구
(東大門區, 1946)

서울특별시 성북구
(城北區, 1949)

한성부
성저십리 인창방
(漢城府
仁昌坊, 1394)

경성부 인창면
(京城府 仁昌面, 1911)
고양군 숭인면 (高陽郡 崇仁面, 1914)

성북이라는 지명은 한양도성의 성곽 북쪽 지역에서 유래되었으며, 같은 서울의 성동구 역시 한양도성의 성곽 동쪽 지역에서 유래되었다. 이들 지역은 실제로 한양도성의 북쪽과 동쪽 성곽 지역에 속한 지역들이라 지명 역시 성곽의 북쪽을 뜻하는 성북과 동쪽을 뜻하는 성동으로 지어졌다.

1949년 경기도 고양군의 동북방 일부 지역을 서울시로 편입시키면서 이 지역이 한양도성의 성곽 북쪽에 있는 지역이라고 하여서 이 때부터 성북이라는 지명이 사용되었다. 한자 역시 城北으로 표기한다.[14] 즉, 해방 이전에는 크게 쓰이지 않았던 지명인 셈. 실제로 조선 시대에는 한성부 성저십리 숭신방(돈암동, 안암동 등 중서부 지역), 인창방(장위동, 석관동 등 동북부 지역) 지역이었으나, 1914년 일본에 의해 숭인면[15]으로 통합되어 경기도 고양군에 편입되었다. 이후 1936년 경성부 확장 정책에 의해 성북동, 돈암동, 안암동, 종암동이 경성부에 재편입되었고, 나머지 지역은 해방 이후인 1949년 서울특별시로 재편입되었다.

8.15 광복 직전인 1944년 경성부에 7개 가 설치되었을 때 동대문구 관할이었다가, 해방 이후인 1949년 성북구로 분구됨과 동시에 고양군 숭인면의 잔여 지역을 모두 편입하여 숭인출장소[16]를 설치하였다. 1963년에는 양주군 노해면을 편입하여 노해출장소[17]를 설치하였다.

이후 1973년 숭인출장소 중 우이동, 수유동, 미아동, 번동(현재의 강북구 일대)과 노해출장소(현재의 도봉구 및 노원구 일대)를 도봉구로 분구하여 넘겨주고, 1975년 도봉구 및 동대문구와 행정구역을 조정[18]한 이후 현재에 이른다.[19]



2.1. 인구[편집]


파일:성북구 CI.svg 서울특별시 성북구 인구 추이
(1966년~현재)
1966년 519,510명
1970년 979,584명
1973년 7월 1일강북구·도봉구·노원구 일대 → 도봉구 승격 분리
1975년 10월 1일 도봉구 미아동 일부(現 길음동), 동대문구 보문동 편입
1975년 604,359명
1980년 588,347명
1985년 583,281명
1990년 551,017명
1995년 495,737명
2000년 460,862명
2005년 462,879명
2010년 488,932명
2015년 459,275명
2020년 437,153명
2023년 11월 426,276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70만 명
1966-1990: 통계청 인구총조사, 1995-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행정동별 인구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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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암동 38,048명}}}
길음제1동 34,801명}}}
석관동 34,245명}}}
월곡제1동 25,859명}}}
정릉제4동 24,338명}}}
장위제1동 23,732명}}}
돈암제2동 23,528명}}}
정릉제2동 22,675명}}}
삼선동 22,466명}}}
길음제2동 21,844명}}}
월곡제2동 19,169명}}}
정릉제1동 17,861명}}}
보문동 16,305명}}}
성북동 16,091명}}}
장위제3동 15,788명}}}
정릉제3동 15,154명}}}
안암동 15,120명}}}
동선동 15,030명}}}
돈암제1동 14,349명}}}
장위제2동 13,286명}}}
2023년 5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4만 명


현재의 구계가 1975년에 확정된 것을 감안하면 지금보다 약 17만 명이나 더 높은 60만 명의 사람들이 성북구에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지역 특징[편집]



3.1. '서울 토박이' 이미지[편집]


서울 성저십리 지역 중에 주택 조성이 광복 이전에 진행된 지역[20] 중 하나로,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성북구에 산다"고 하면 서울 토박이 내지는 서울에서 장기 거주한 주민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21] 단, 이 이미지에 부합되는 성북구는 미아리고개 남쪽, 즉 성북, 동소문, 삼선, 동선, 보문, 안암동 인근을 말한다. 미아리고개 북쪽 지역[22]은 난개발이 진행되면서,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인 1970~1980년대만 해도 미아리고개를 경계로 빈부차를 비롯 문화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면 남쪽의 부유한 중고등학생들을 노리고 떼로 몰려와 갈취와 폭행을 일삼는 불량배들과 이에 맞서려는 학생들간의 패싸움이 자주 일어났었는데, 영화배우 최민식대일고등학교 재학 시절 휘말렸던 패싸움이 바로 이 시기였다.


3.2. 생활권의 구분[편집]


성북구에서도 본래이자 현재 성북구의 중심지인 삼선동, 동소문동, 성북동, 동선동, 그리고 편입과 분리를 거쳐 재편입이 된 길음 쪽은 상당히 다른 생활권으로, 이 성북동을 포함한 중심 지역은 종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종로 생활권역에 속하고, 안암의 경우 성북구 중심가와도 가깝지만 동대문의 신설동, 제기동과 더 인접한 생활권이며, 길음, 월곡, 종암쪽의 경우에는 강북구의 영향이 강한 미아, 수유쪽 생활권에 속한다. 장위, 석관의 경우 강북구의 미아와 동대문의 이문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미아 - 이문 생활권에 속한다. 성북동에 대사관저가 다수 분포하는 등 외교관들이 많이 거주하고 관내에 있는 대학교들에 다니는 외국 유학생들도 적지 않아 생각보다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국 문화를 주제로 하는 행사가 자주 열리는 편이다. 주로 성북동 큰길과 한성대입구역 인근의 성북천 분수 광장에서 이런 행사가 열린다.

  • 동북 생활권 : 길음동[23], 상월곡동, 하월곡동, 장위동, 석관동, 정릉동[24], 종암동
  • 도심 생활권 : 돈암동, 동소문동, 동선동, 삼선동, 성북동, 보문동, 안암동


3.3. 전통과 현대, 부와 중산층 그리고 빈부격차[편집]


구 전체적으로 보면 성북동 성북로23길 윗부분달동네, 근대 한옥, 선잠로성북로8길, 성북로23가길 등지의 중산층 주택, 성북동 330번지의 부촌 등등 20세기 옛날 풍경과 고층 아파트같은 현대의 첨단적인 도시 풍경이 교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예전부터 한양도성과 가까웠던 관계로 심우장, 간송미술관, 길상사 등등 다양한 문화재와 볼거리가 많다.

북한산, 북악산 같은 서울의 메이저급 산 외에도 여러 산을 끼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녹지가 꽤 많다. 하지만 성북구는 강북구, 동대문구, 성동구와 함께 난개발이 많으며, 이 때문에 대로변을 빼면 구의 서쪽 지역은 동네 전체가 고저차가 심한 언덕과 산이나 다름없다. 서울 강북 지역 중에서도 자비 없는 산악/구릉 지형이 잘 드러나 있는 곳으로 이 때문에 한때는 동네 구석구석에 달동네가 산재해 있었으며 돈암동, 정릉 같은 서부 지역은 따릉이 같은 자전거 이용률이 많이 낮다. 당장 미아리고개, 아리랑고개, 북악스카이웨이라는 서울의 유명한 고갯길이 이곳에 있다. 성북구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길음뉴타운도 엄청난 언덕길에는 예외가 아니다. 그래도 다행히 마을버스가 발달해서 그런 곳에서도 쉽게 밖으로 나가는 건 가능하다. 그나마 동부 지역(장위동, 월곡동, 석관동)은 서부 지역(정릉동, 돈암동, 성북동) 보다 낫다.

위에서 서술한 심한 고저차와 구도심 그리고 무계획적인 도시 개발이라는 특성과 맞물려 대부분의 도로가 실 풀어놓은 것마냥 얽혀있으며, 좁고 복잡해서 도로의 규칙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도 일제 강점기 때 신시가지로 개발된 동선동 지역은 격자형인 도로들이 꽤 많이 보인다.


4. 교통[편집]


서울 지하철 4호선, 서울 지하철 6호선, 서울 경전철 우이신설선이 있다. 4호선과 6호선은 각각 성북구 중심부와 성북구 동쪽 지역을 평행하게 지나간다. 성북구청은 성신여대입구역보문역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두 역 모두 성북구청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2000년에 석계역이 환승이 되었으며, 우이신설선 개통으로 성신여대입구역보문역환승역이 되었다. 그래서 성북구에 오래 사셨던 분들은 3기 지하철 계획이 백지화된 일을 가장 아쉬운 일로 보는 분들이 많다. 좀 무리해서라도 추진했더라면 성북구 지역의 지하철 개판 5분전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25] 현재는 서울 버스 272 등을 이용해서 한성대입구역 - 보문역 사이를 건너가거나 추가로 안암역을 지나는 서울 버스 273, 성신여대입구역 - 보문역 - 안암역 사이를 운행하는 서울 버스 2115, 서울 버스 성북04로 간접환승을 해야 한다.[26] 스크린도어 설치 전 전국 지하철 자살자 최다역 타이틀을 달았었던 한성대입구역도 여기 있다.

그리고 수도권 전철 1호선도 일단 이 구를 지나갔었다. 그러나 성북역은 성북구에 있는 게 아니라 노원구에 있다. 그러다 보니 '이게 뭥미?'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위의 역사에서 설명했듯이 1973년까지는 성북구가 현재의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 일대까지 모두 관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기준으로 성북역이 있던 월계동은 성북구 관할이었다. 1973년 성북구 북부를 도봉구로 분구하고, 1988년 도봉구 동부를 다시 노원구로 분구하면서 성북역은 최종적으로 노원구 월계동 관할이 된 것. 이렇게 되어서 지금의 1호선은 이 구의 동부를 스쳐 지나가기만 하고 해당 구에 정차역을 두고 있지 않다.[27] 결국 2013년 2월 25일자로 성북역 역명이 광운대역으로 변경. 지못미 성북구... 어찌 되었건 지금의 장위동에서도 도보 거리로 광운대역을 갈 수는 있다. (광운대역 주위로는 노원구, 성북구, 동대문구, 중랑구, 강북구의 5개 구가 몰려 있다.)

성북구에서도 삼선동, 동소문동, 성북동을 포함한 성북구의 중심 지역은 종로와의 상호 왕래가 편하고, 길음, 종암, 월곡쪽은 강북구의 미아[28], 수유와의 상호 왕래가 편하다. 석관 - 장위의 경우 성북구 중심가와는 생활권상 연관이 꽤 적은 편이고 미아사거리 - 이문동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강북구의 미아와 동대문구의 이문간의 상호 왕래를 편히 할 수 있다.

성북구 교통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강남에 가기 까다롭다는 점이다. 전철 노선도 엄청 돌아가거나 2번 이상 환승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고, 도로교통을 이용한다면 엄청난 정체에 휘말린다. GTX-C의 정차역이 석계역이면 그나마 좀 나았겠지만, 광운대역이 되어서 어렵다.


4.1. 관내 철도 목록[편집]


성북구의 철도역
파일:Seoulmetro4_icon.svg 수도권 전철 4호선
길음역, 성신여대입구역, 한성대입구역
파일:Seoulmetro6_icon.svg 서울 지하철 6호선
보문역, 안암역, 고려대역, 월곡역, 상월곡역, 돌곶이역, 석계역[29]
파일:UiLine_icon.svg 서울 경전철 우이신설선
북한산보국문역, 정릉역, 성신여대입구역, 보문역
서울 경전철 동북선[30]
종암역(예정), 종암경찰서역(예정), 미아사거리역(예정), 신미아역예정


5. 교육[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성북구/교육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일외국어고등학교가 위치한다. 공부를 상당히 잘 하는 여고로 알려진 성신여자고등학교 및 농구부로 유명한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도 있다.


대학교가 매우 많은 자치구다.[31] 안암동에는 고려대학교가 있는데, 주변 상권은 많이 약한 편이라 바로 산만 넘어가면 있는 성신여자대학교 근처로 놀러간다.[32] 실제로도 성신여대 쪽 돈암동 상권이 더 발달되어 있다. 그나마 안암역이 있기 전에는 막걸리집과 헌책방만 즐비했었다. 87년 민주항쟁 시절 전후로는 북쪽의 고려대학교, 남쪽 동대문구의 한국외국어대학교경희대학교 학생들의 시위와 이를 막는 경찰의 충돌로 중간에 있던 동대문구 이문동안암동, 종암동, 월곡동, 석관동, 장위동 주민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투석과 최루가스에 시달려야 했었다.

돈암동엔 성신여자대학교가 있다. 돈암시장통과 연결돼 있다보니 상권[33]이 일찍부터 발달했었다. 오히려 1985년 4호선이 개통되면서 수유역으로 많이 뺏긴 게 현재 상권이라고. 인근 성신여자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등 성북구 소재 고등학교, 대학교 재학생들이 많이 시간을 보낸다.

정릉동 북한산 자락에는 국민대학교(정릉3동), 서경대학교(정릉4동)가 있다. 원래는 산과 주거지역에 둘러싸여 있어 지하철 사각지대이자 버스종점(차고지)이었는데, 내부순환로도 뚫리고 우이신설선이 생기면서 접근성 자체는 많이 개선됐다. 재단에서 학교에 투자를 좀 하는지 특히 국민대학교는 학교 건물이 많이 생겼다.

보문산 자락에는 한성대학교가 있으며 월곡동 주변에는 동덕여자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있다.[34] 석관동 지역 상권이 조금씩 개발되고 있고, 월곡역 인근이 갑작스러운 상권 조성이 이루어지면서 한예종 학생들도 먹을 데 없다는 소리는 예전보단 덜 하게 되었는데 그냥 그 정도다. 6호선 돌곶이역도 가깝다.

종로구이지만 혜화문을 두고 성북구와 경계에 있는 성균관대학교/인문사회과학캠퍼스,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대학로와도 매우 가까우며[35] 서울대학교/연건캠퍼스한국방송통신대학교도 인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질적으로 방통대 ~ 대학로 ~ 한성대입구 ~ 성신여대입구가 마치 하나의 상권처럼 쭉 이어져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여담으로 경기대학교의 전신인 경기초급대학이 과거 성북구에 있었으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의 전신인 서라벌예술대학 또한 성북구 정릉로에,[36] 경기도 김포시로 이전(2001년)한 중앙승가대학교 또한 고려대 본교, 병원 사이인 개운사에 있었다. 배재대학교는 성북구 하월곡동에 부지를 마련했으나 여러 이유로 대학 설립이 불가능해지자[37][38]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동의 보육초급대학을 인수했다. 서울대학교 종합화 이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이 종암동에 있었다(현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자리).


6. 금융[편집]


성북구에 위치한 금융기관 [괄호]
제1금융권 [괄호]
국가기관
서울우체국 (6)
고려대학교우체국 (1)
국책은행
중소기업은행 (5)
특수은행
수협은행 (1)
농협은행 (5)
시중은행
신한은행 (6)
우리은행 (8)
SC제일은행 (3)
하나은행 (9)
국민은행 (9)
제2금융권(상호금융) [괄호]
농업협동조합
서울축산농협 (2)
한국양계농협 (2)
서울경기양돈농협 (1)
수산업협동조합
근해안강망수협 (1)
포항수협 (1)
새마을금고
성북제일새마을금고 (1)
성북새마을금고 (1)
삼선새마을금고 (8)
길음중앙새마을금고 (1)
동소문새마을금고 (1)
북악새마을금고 (2)
새종암새마을금고 (2)
석관동새마을금고 (1)
성신새마을금고 (1)
안암동새마을금고 (2)
월곡새마을금고 (2)
장위1동새마을금고 (1)
장위2동새마을금고 (3)
정릉새마을금고 (2)
종암동새마을금고 (1)
한양새마을금고 (2)
서울개인택시조합새마을금고 (1)
신용협동조합
성북신용협동조합 (1)
새서울신용협동조합 (2)
장위신용협동조합 (1)
정릉신용협동조합 (1)
강북신용협동조합 (1)
영암교회신용협동조합 (1)
지점이 없는 은행
한국산업은행[국책은행]


7. 의료기관[편집]


상급종합병원고려대학교 안암병원(1,056병상)이 안암동에 있다. 의외로 안암동에 자리잡은 지는 오래되지 않아서, 1991년에 명륜동에서 현 위치로 이전해 왔다. 그래도 서울 동북권에서는 가장 큰 종합병원. 그 외 종합병원은 없고, 일반 병원으로 서울척병원(136병상), 성북중앙병원(109병상)이 있다.

성북구 자체가 오래된 동네이기 때문에, 지역에서 터줏대감같이 자리잡은 의원들이 많다. 과거 1980년대 이전까지는 의과대학 교수들이 개인의원을 겸업할 수 있었는데, 이때 자신이 속한 의과대학(대학병원) 캠퍼스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의원을 차렸다.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 고려대학교 혜화병원, 이대동대문병원, 국립의료원(울지로6가) 등 가까운 번화가 상업지역에 대학병원이 많았던 관계로, 여기에서 가까우면서 당시로는 주거지역이면서 중산층 밀집지역인 동소문로 인근에 병의원들이 많았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몇몇 의원들은 같은 자리에서 2세들(역시 의사)이 물려받아 운영중이다.

한때는 이런 이유로 1차의료기관은 넘쳐나고 3차의료기관(대학병원)도 근처에 수두룩했다. 성북구 경계 500m 거리인 대학로 북쪽 끝에 고려대학교 혜화병원, 이곳에서 700m 남쪽에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 더 남쪽 동대문에 이화여자대학교 동대문병원이 있었다. 서울에 지금보다도 대학병원이 훨씬 더 적은 시절이어서, 이처럼 근거리에 병상 규모가 큰 대학병원이 가까운 곳은 전국에서 거의 유일했다. 결국 고려대학교 혜화병원은 안암동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동대문병원은 목동으로 이전한다.

이러면서도 2차의료기관은 전무한, 좀 독특한 지역이었다. 과거 의료보험 실시 초창기에 불편으로 다가왔었다.


8. 정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성북구/정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하위 행정구역[편집]


파일:성북행정.jpg
파일:성북법정.jpg
성북구의 행정동
성북구의 법정동

9.1. 성북동 - 甲 [편집]


관할 법정동은 동소문동1가·4가·성북동[39]·성북동1가이다. 인구는 16,062명.[P]

성북역과는 하등의 상관 관계가 없는, 그저 저택과 대사관저의 비율이 다른 동네보다 많이 높은 산동네다. 서울 부촌 10선 같은 신문 기사에서 언제나 제일 먼저 나오는 동네가 한남동 아니면 서울역이다. 내로라하는 재벌가[40]의 저택이 여기에 있다. 한용운의 심우장도 이곳에 있다. 성북동에는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듯 진짜 예전부터 부자들이 많이 살아서, 동네 마트에 가면 벤츠 끌고 파, 당근을 사가지고 가는 부잣집 아줌마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가난한 달동네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경비 두고 사는 개인 주택이 나오는 아주 묘한 동네다.

부촌의 이미지는 대로인 성북로 이북 한정이다. 성북로4길성북로8길, 선잠로길, 그리고 성북로23길 초입성북로23가길에 중산층 주택이 즐비하다. 정확한 이야기로 성북03번 마을버스 용광교회 정거장 오른쪽 위부터 달동네, 북정마을이 시작된다.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한 <성북동 비둘기> 라는 시도 존재한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 촬영을 자주 온다. 유동 인구가 적고 사람들이 특별히 촬영에 관심이 없어보이는지 촬영지로 인기를 끄는 모양. 추격자에서 하정우가 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성북동 골목이고 조금만 더 가면 종로구에 있는 교회지만 극 중에서 하정우가 다녔던 교회도 나온다. 그 외에도 드라마 ,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작은 아씨들 등 다양한 작품이 인적 드문 이 동네 골목에서 찍혔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한때 천억대의 고급 요정이었다가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여 만든 것으로 유명한 사찰 길상사가 있다.

유명한 빵집인 나폴레옹과자점이 있다. 본래 삼선동 쪽에 있었으나 성북천 복개 공사 때문에 헐고 한성대입구역 사거리에서 대각선 맞은 편에 빌딩을 짓고 영업 중이다. 원래 자리는 분수대가 됐다.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에서 25,000원 정도면 살 만한 크기의 케이크가 여기선 3만 원이 넘는데, 데코나 맛에서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납득할 수 있는 수준. 무늬만 고급으로 거품 가득한 빵이 아니라 진짜 값어치를 하는 고급 빵집이다. 혹시나 삼선교에 들를 일이 있으면 꼭 한 번 맛보길 추천한다. 참고로 빵 체인점이 없던 시절에는 본의 아니게 서민들도 돈 조금 더 써서 사 먹는 그냥 동네 빵집으로 인식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고정코스로 들렀다 가는 곳이다.

학교는 성북초, 동구여중, 삼선중, 홍익대사대부중, 서울동구고, 홍익대사대부고가 있다.


9.2. 삼선동 - 甲[편집]


관할 법정동은 동소문동2가·3가·5가·삼선동1~5가이다. 인구는 22,399명. 원래 법정동 돈암동의 일부였으나, 1963년 삼선동1~5가로 법정동이 분리되어 현재에 이른다.

한성대학교 하나 가지고 설명이 끝나는 동네는 아니다. 성북구청, 서울성북경찰서성북세무서가 있기 때문. 여러 모로 사실상 성북구의 중심이다. 그리고 한성대 앞 상권은 사실 그렇게 센 편은 아니며, 삼선 푸르지오(864세대) 등 아파트단지가 몇 있기 때문에 생활상권의 느낌도 있다. 한성대 뒤로 낙산이 있으며 서울성곽도 복원되어 있다. 종로구와는 이 성곽을 경계로 삼는다. 성곽 밑에는 장수마을이란 이름의 달동네가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성북동 북정마을과 함께 도심 인근의 달동네. 이곳 또한 오래 전부터 재개발 떡밥이 있었으나 2013년 들어서 주민 참여형 도시 재생 사업으로 바뀌었다. 동소문동2,3,5가는 동소문로와 성북천 사이에 끼인 지역이다. 학교는 삼선초, 한성여중, 경동고, 한성여고가 있다.


9.3. 동선동 - 甲[편집]


관할 법정동은 돈암동(일부)·동선동1~5가·동소문동6가·7가이다. 인구는 15,018명.[*P ] 원래 법정동 돈암동의 일부였으나, 1963년 동선동1~5가로 법정동이 분리되어 현재에 이른다.

성신여자대학교가 있으며, 성신초, 성신여중, 성신여고 등 같은 성신재단 학교와 성신여대입구역 인근 번화가[41] 2개 가지고 설명이 끝난다. 성북구에서 가장 번화한 곳. 동선동을 포함해 이 일대(동소문동, 돈암동 포함)를 '돈암'이라 통칭한다. 돈암초, 정덕초도 이곳에 있다.

즉, 동소문동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한성대입구역성신여대입구역 사이로, 원래 이곳이 과거 성북구의 중심지였다. 사실상 삼선동이나 동소문동이나 모두 삼선교라는 동일 생활권이므로 지금도 중심지라고 볼 수 있다. 1949년 동대문구에서 성북구가 분구될 당시 구청도 여기에 있었다. 지금의 삼선교 버스정류장 맞은편 샘소나이트 판매점 옆옆 건물에 있다. 이 옛 구청 자리이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재는 행정동상 성북동, 삼선동, 동선동에 분할되어 통합된 상태다.


9.4. 돈암1동, 돈암2동[42][편집]


관할 법정동은 돈암동(일부)로 미아리고개 일대이다. 성신여대입구역의 부역명인 돈암도 여기에서 왔다.[43] 동네 이름은 되넘이고개[44]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적도를 보면 법정동 돈암동의 영역이 상당히 괴이한 형태인 것을 알 수 있다.[45] 이렇게 된 이유는 현재의 법정동 동소문동, 동선동, 삼선동이 모두 과거에는 단일 법정동 돈암동 관할이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인구가 급증하며 돈암동,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으로 4분되었고, 1963년 동소문로1~7가, 동선동1~5가, 삼선동1~5가 등 자잘한 법정동으로 분할되면서 남은 돈암동이 현재와 같은 모양이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 돈암1동: 인구는 14,358명. 미아리고개 일대에 해당된다. 길음역내부순환로 남쪽의 개운산 자락(안암동과 종암동으로 넘어가는 지역)이 포함된다. 돈암동 삼성아파트(2,014세대), 돈암현대아파트(619세대), 돈암 동부센트레빌(540세대) 등 아파트단지가 적지 않은 편. 학교는 개운초, 매원초, 개운중, 고명중, 고명외식고[46]가 있다.
  • 돈암2동: 인구는 23,480명. 정릉1동과 동선동 사이에 끼인 아리랑시네미디어센터, 베네딕도 수녀회[47], 흥천사도 돈암2동이다. 성북구 최대 규모의 아파트단지인 돈암 한신한진아파트(4,515세대)가 있으며 그 외 브라운스톤 돈암(1,074세대), 돈암 일신건영 휴먼빌(689세대), 돈암 코오롱하늘채(629세대) 등 동 전반에 아파트단지가 많다. 학교는 우촌초가 있다.


9.5. 안암동 - 甲[편집]


관할 법정동은 안암동1~5가이다. 인구는 15,036명.

한가운데에 고려대학교 자연계 캠퍼스와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이 있으며, 그 양쪽으로 대학가, 래미안 안암아파트(528세대), 안암동 시가지가 있고 동쪽 끝에는 인문계 캠퍼스가 있다. 학교는 안암초, 용문고가 있다.


9.6. 보문동 - 甲[편집]


관할 법정동은 보문동1~7가이다. 인구는 16,290명.

안암동과는 성북천을 경계로 맞대고 있다. 종로와 가깝지만 동망봉이 있고 여기를 관통하는 길이 없다보니 개발에서 다소 뒤쳐졌는데, 그러다보니 한옥이 많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교통망이 확충되면서 조용하던 이 동네도 조금씩 변화하는 중으로 뉴타운 사업으로 보문 파크뷰 자이(1,186세대)가 들어섰다. 학교는 대광초, 동신초가 있다.


9.7. 정릉1동, 정릉2동, 정릉3동, 정릉4동 - 甲[편집]


관할 법정동은 정릉동이다.
  • 정릉1동: 인구는 17,846명. 길음역에서 정릉로를 따라 올라가는 초입이다. 정릉로를 기준으로 북쪽은 길음뉴타운, 남쪽은 돈암동 생활권이다. 길음뉴타운 경남아너스빌(860세대), 정릉우성아파트(823세대), 정릉2차 e편한세상(527세대), 길음뉴타운 데시앙(514세대) 등 아파트단지들이 많이 있다.
  • 정릉2동: 인구는 22,682명. 동명의 유래가 되는 정릉이 있다. 정릉1동처럼 정릉로 북쪽은 길음뉴타운, 남쪽은 돈암동 생활권에 가깝다. 정릉 중앙하이츠 1~2단지(1,178세대), 푸른마을 동아아파트(529세대), 숭덕초, 정수초가 있다.
  • 정릉3동: 인구는 15,112명.북악터널을 통해 평창동과 연결된다. 국민대학교, 고려대학교 정릉캠퍼스가 있다. 내부순환로 진출입 램프가 있다. 학교는 청덕초, 고려사대부중, 북악중, 고려사대부고가 있다.
  • 정릉4동: 인구는 24,273명. 보국문로를 따라 강북구로 넘어가는 동네로, 주변으로 정릉 풍림아이원(2,303세대), 정릉 e편한세상 2차(739세대), 정릉 힐스테이트 3차(522세대) 등 아파트단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북한산 바로 밑에 있는 동네다보니 등산로의 기점 중 하나이다. 서경대학교가 있다. 학교는 정릉초, 대일외고가 있다.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지하철 사각지대었으나 현재는 우이신설선 개통으로 상황이 나아진 상황이다.[48] 그리고 정릉은 아내의 유혹의 배경이 되는 동네 중 하나. (은재의 원래 집이 정릉에 있고, 주소도 확실하게 나오기 때문에.)


9.8. 종암동 - 乙[편집]


법정동과 행정동이 일치한다. 인구는 37,973명[P]으로 성북구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북서쪽의 길음역과 남쪽의 고려대역과 북동쪽의 월곡역 사이에 끼인 동네. 고려대 뒷산의 (개운산)에 있는 바위의 모양새가 종(鐘)처럼 생겼다해서 종암동이라는 지명이 만들어졌다.

한때 김강자 경찰서장의 환락가 단속으로 이름을 날렸던 서울종암경찰서가 여기에 있다.[49] 바로 옆에 성북소방서가 있고, 성북구의회는 개운산에 있는데 관할 지역은 종암동으로 되어 있다. 남쪽에 홀리데이 인 성북이 있었으나[50] 지금은 동덕여대 제2생활관으로 바뀌었다. 또한 고려대학교 인문사회계 캠퍼스 중 일부 동쪽 끝부분 부지(고려대 법대/경영대/사범대/중앙도서관)가 안암동이 아닌 종암동이다.[51]

학교는 숭례초, 일신초[52], 서울대사대부중[53], 종암중[54], 서울대사대부고가 있다. 서울대사대부중/고 부지에는 원래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건물이 있었고, 지금은 서울대사대부중에서 운동장 확보를 위해 90년대 초쯤에 건물 일부를 철거하고 별관으로 이용했고 16년 신관 완공 후에 철거됐다. 체육관은 서울대사대부고에서 이용 중이다.

2000~2010년대에 걸쳐 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된 동네이다. 덕분에 아파트단지들이 꽤 많아서, 종암 SK뷰 1~2차(1,711세대)를 필두로 래미안 크리시엘(1,168세대), 래미안 라센트(1,025세대), 래미안 세네니티(995세대), 종암 아이파크 2차(782세대), 종암 아이파크 1차(513세대) 등 대단지 아파트들이 곳곳에 분포해 있다. 내부순환로 IC가 근처에 있어 월곡동과 함께 성북구 교통의 요충지이고, 월곡역고려대역을 통해 도시철도 접근이 어렵지 않아서인 듯.

2008년 11월에 방영된 무한도전 에어로빅 특집 1부를 여기서 찍었는데, 이곳에 있는 에어로빅 학원이 종암동 할마에로 유명한 염 모 원장님이 운영하고 있다.[55]


9.9. 길음1동, 길음2동[56][편집]


관할 법정동은 길음동이며, 길음2동은 법정동 하월곡동의 일부도 관할한다.[57] 삼양로를 기준으로 서쪽이 길음1동, 동쪽이 길음2동에 해당한다. 원래 길음동 전체가 미아동이었으나, 1975년 도봉구 미아동 일부를 성북구에 편입하면서 길음동이라는 새로운 법정동으로 신설한 것.[58] 인구는 1동 34,810명, 2동 21,867명.[P]

길음역이 있다. 뿐만 아니라 내부순환로, 도봉로, 동소문로, 종암로 등 주요 간선도로가 교차하는 곳이어서 나름 교통의 요지. 정릉동 주민들이 매일 아침마다 길음역으로 가기 위해 여기로 몰려든다. 서경대학교국민대학교 학생들도 마찬가지. 길음뉴타운이 조성되었다. 미아사거리 근처의 이마트 미아점, 현대백화점 미아점도 행정구역상으로는 강북구 미아동이 아닌 성북구 길음동에 있다.

학교는 1동에만 길원초, 길음초, 미아초, 길음중, 계성고이 있다. 2016년에 명동에 있던 계성여고가 남녀공학인 계성고등학교로 전환되면서 이 곳으로 이전하였다. 이로써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석관고등학교와 함께, 성북구의 남녀공학 고등학교는 3개가 되었다.


9.10. 월곡1동, 월곡2동 - 乙[편집]


월곡1동의 관할 법정동은 하월곡동(일부), 월곡2동은 하월곡동(일부)과 상월곡동이다. 인구는 1동 25,820명, 2동 19,103명이다.

원래는 상월곡동, 하월곡1~4동으로 나뉘었으나 재개발을 거치면서 월곡1동과 2동으로 조정되었으며,[59] 행정동 통폐합 과정에서 하월곡1동의 종암로 서쪽 지역[60]이 길음2동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하월곡동이라고 불리는 곳이 면적이나 인구 면에서 월곡동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이 지역 주민들조차도 상월곡동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주요 시설은 다음과 같다.
  • 월곡1동: 월곡 두산위브(2,655세대), 래미안 월곡(1,372세대), 동신아파트(746세대), 꿈의숲 푸르지오(714세대), 오동근린공원[61], 삼양식품 본사
  • 월곡2동: 동아 에코빌(1,531세대), 월곡 래미안 루나밸리(787세대), 월곡역, 상월곡역, 북부간선도로 하월곡IC, 성북구보건소, 서울종암경찰서, 성북정보도서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대한불교진각종 총인원, 동덕여자대학교, 홈플러스 월곡점[62]

학교는 1동에 숭곡초, 숭인초, 숭곡중, 서울도시과학기술고[63], 2동에 월곡중이 있다. 숭인초는 일제강점기였던 고양군 숭인면 시절(1937년)에 개교한 학교로 2009년 오동공원 근처 신교사로 이전했다.[64] 숭인초등학교 옛 건물을 허물고 지은 자리에는 2011년 숭곡중학교가 개교했다.

드라마 "서울의 달"을 찍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9.11. 장위1동, 장위2동, 장위3동 - 乙[편집]


관할 법정동은 장위동이다. 인구는 1동 23,711명, 2동 13,274명, 3동 15,773명.

북쪽의 강북구 번동, 동쪽의 노원구 월계동과의 경계에 자리한다. 1동은 북서울 꿈의 숲의 건너편에, 2동은 화랑로의 북측에, 3동은 우이천의 서측에 있다. 6호선 돌곶이역과 접하는 2동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지하철 사각 지대여서 매일 아침마다 1호선 월계역, 광운대역, 석계역이나 4호선 미아사거리역 등으로 가기 위해 교통 정체가 빚어지는 동네다. 여기로 서울 경전철 동북선이 지나갈 예정이나 한참 멀었다. 노후된 주택들이 많아 재개발 논의가 이루어졌다. 1970년대만 해도 신흥 부촌으로 꼽히던 동네였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동네가 많이 낡아져서 지금은 그저 그런 동네로 전락했다. 하지만 대저택은 아직도 조금 있다. 장위3동의 경우에는 거의 평지지만 서쪽에 있는 장위1,2동은 통째로 동산 위에 있어 좀 고지대다. 따라서 마을버스가 많이 돌아다니는 편. 특히 장위동고개[65]저상버스가 못 들어올 정도로 악명 높다. 예전에 난시청 지역이었다보니 소출력 TV 중계소가 이 동네 근처에 있다.[66] 동별 주요 시설은 아래와 같다.
  • 장위1동: 꿈의숲 아이파크(1,711세대), 장곡시장, 장곡초, 장위중
  • 장위2동: 월곡초, 장위초, 김진흥가옥, 장위시장
  • 장위3동: 래미안 장위 퍼스트하이(1,562세대), 래미안 장위 포레카운티(939세대), 꿈의숲 대명루첸(611세대), 꿈의숲 코오롱하늘채(513세대), 광운초[67], 장월초, 남대문중[68]

동 전체의 재개발이 확정되어 대규모 뉴타운사업인 장위뉴타운이 2013년부터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지지부진하였다. 장위뉴타운은 12,13 구역이 해제되었으며, 나머지 구역은 진행되어 18년부터 입주가 진행되었다.

장위3동은 성북구 내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보수성향이 나타나는 지역이기도 하다.

교회 내에서 설교 중에 한 모종의 발언으로 일명 "빤쓰 먹사"라 불리며 구설수에 오르는 전광훈사랑제일교회가 2동에 자리잡고 있다. 이 사랑제일교회의 영향으로 장위2동은 선거 때마다 보수 후보가 인근 타 지역보다 득표율이 높게 나온다. 교회가 장위뉴타운 10구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서울시 토지수용위원회에서 책정한 82억 원의 보상금에도 불구하고 7배에 달하는 563억 원의 보상금을 요구하며 알박기를 시전하고 있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사랑제일교회/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12. 석관동 - 乙[편집]


법정동과 행정동이 일치한다. 인구는 34,219명.

돌곶이역이 자리잡은 동네이며 석계역의 석 자도 여기서 나왔다. 석계역[69]을 기준으로 성북구와 노원구(월계동)의 진짜 의미의 경계를 이룬다. 남쪽으로는 동대문구 이문동과 경계를 이룬다.

사실 이곳은 행정구역 상으로는 성북구이지만 성북구의 중심지인 돈암동, 삼선교 일대와는 꽤 멀리 떨어져 있으며, 지하철 1호선 역과 가까운 관계로 동대문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70] 또한, 애초에 석계역이 걸쳐 있기도 했고, 지하철 6호선 건설 이후에는 오히려 노원 생활권에 대한 소속감이 더욱 강해졌다. 경원선의 동쪽에 위치한 두산아파트, 석계초등학교 앞을 지나는 도로인 한천로58길에는 대중교통이 지나지 않는다.[71] 여담으로 MBC 뉴스에서 성북구 석관동을 노원구 석관동으로 말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해당 뉴스

주요 시설로 두산아파트(1,998세대), 래미안 아트리치(1,091세대), 래미안 석관(580세대), 서울특별시 민방위교육장, 의릉,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석계초, 석관초, 석관중, 석관고가 있다. 두산아파트의 경우 경원선 동쪽에 있기 때문에 석관동 타 지역과는 분리되어 있어서 교류도 거의 없고 그냥 석계역에 의존한다. 이문차량사업소의 북쪽 절반은 석관동에 해당된다.

참고로, 예전에는 현 국가정보원의 전신,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가 있던 곳이다. 지금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남아 있는 경내 안의 강당에서는 1972년 안기부의 전신인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부지는 현재 이곳의 캠퍼스로 사용되고 있다.


10. 기타[편집]


2007년 출퇴근 지문 입력기를 이용해서 시간외수당을 조작질한 게 YTN 돌발영상에게 제대로 걸려서 여론의 비난을 맞은 적이 있다. 돌발영상 이 정도면 거의 만성. 제목부터 하루 2번 출근하는 구청이라고 깐다. 당시 네티즌 반응[72]

강동구와는 면적이 거의 같다.

서울 지진 역사 중 가장 지진이 많이 일어난 곳이다.

11. 산하 기관[편집]




12. 관련 항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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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9개 법정동, 20개 행정동[2] 2023년 11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3] 성북구 가선거구 (성북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2동, 안암동, 보문동): 소형준, 김육영, 임태근
성북구 나선거구 (정릉1동, 정릉2동, 정릉3동, 정릉4동, 길음1동): 정윤주, 양순임, 이용진
성북구 다선거구 (돈암1동, 종암동): 오중균
성북구 라선거구 (길음2동, 월곡1동, 월곡2동): 이인순, 정해숙
성북구 마선거구 (장위1동, 장위2동): 김경이
성북구 바선거구 (장위3동, 석관동): 이호건
비례대표: 경수현
[4] 성북구 가선거구 (성북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2동, 안암동, 보문동): 이관우, 정병기
성북구 나선거구 (정릉1동, 정릉2동, 정릉3동, 정릉4동, 길음1동): 임현주, 박영섭
성북구 다선거구 (돈암1동, 종암동): 권영애
성북구 라선거구 (길음2동, 월곡1동, 월곡2동): 이일준
성북구 마선거구 (장위1동, 장위2동): 진선아
성북구 바선거구 (장위3동, 석관동): 정기혁
비례대표: 강수진, 고영옥
[5] 성북구 제2선거구 (정릉1동, 정릉2동, 정릉3동, 정릉4동, 길음1동): 김원중 (초선)
성북구 제4선거구 (장위1동, 장위2동, 장위3동, 석관동): 김태수 (초선)
[6] 성북구 제1선거구 (성북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2동, 안암동, 보문동): 한신 (초선)
성북구 제3선거구 (돈암제1동, 길음제2동, 종암동, 월곡제1동, 월곡제2동): 강동길 (재선)
[7] 돈암1동 = 乙 / 돈암2동 = 甲[8] 길음1동 = 甲 / 길음2동 = 乙[9] 노원구, 중랑구와 접하긴 하지만 실제로 성북구의 중심가와는 멀리 떨어져 있으며, 성북구의 미아리고개 너머 지역하고도 인접해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석관동에서만 중랑천을 끼고 살짝 인접한다. 노원구의 경우 장위동, 석관동과 인접해서 중랑구에 비해 조금 가깝지만 여기도 미아사거리에서 그렇게 가깝지는 않으며 성북구의 중심가와는 한참 떨어져 있다. 애초에 장위, 석관, 월곡은 동대문구의 이문동 생활권이며 가장 인접한 지역이 미아 지역으로, 이문 - 미아 생활권이다.[10] 정릉 일대에서는 사실상 서대문구 - 은평구 생활권인 평창동(원래 서대문구에 속했다.)과 인접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는 서대문구 홍제, 홍은이나 은평구 불광 일대와도 접점이 있다. 교통 상황이 원활할 때 7211을 타면 은평구 불광역에서 국민대학교까지 15분이면 도착한다.[11] 즉, 북한산을 넘어가야 한다.[12] 여기 역시 성북구 중심가와는 좀 떨어져있다. 미아사거리 - 쌍문 기준으로는 노원구중랑구보다는 약간 가까운 편이다.[13] 하지만 정릉동, 길음동은 이때 경성부에 편입되지 못했다. 고양군 숭인면의 일부로 잔류하다가 1949년에 서울시에 편입.[14] 유사한 지명인 경기도 성남시의 경우 이쪽은 남한산성의 성곽 남쪽에서 유래된 지명이라 한양도성과는 관련이 없다.[15]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의 '숭'신과 '인'창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16] 우이동, 수유동, 미아동, 번동, 정릉동, 하월곡동, 상월곡동, 장위동, 석관동 관할.[17] 도봉동, 방학동, 창동, 쌍문동,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 월계동, 공릉동 관할.[18] 도봉구 미아동 일부와 동대문구 보문동이 성북구로 편입되었고, 편입된 미아동 일부는 길음동으로 개칭되었다. 또한 고려대 앞 도로를 기준으로 자잘한 경계 조정이 이루어졌다.[19] 1990년대 후반에 강북구 번동 월경지 일부 지역이 성북구 장위동으로 편입된 일이 있다. 현 장위동 참누리아파트 부지.[20] 성저십리 지역 자연 촌락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1930년대 도성 외곽 신도시 조성 지역 중 하나였으며 일제 패망 이전에 완료된 2군데 중 하나다. 위치는 지금의 한성대입구역, 성신여대입구역, 보문역 인근 지역. 지금도 삼선교에서 성북구청으로 가는 2차선 도로변에는 그 시절 심은 가로수가 지금은 아름드리 나무가 된 채로 존재한다.[21] 출처: <뿌리깊은 나무> 서울 편.[22] 이 지역은 크게보면 현재의 강북구 미아동(삼양동)과 성북구 길음동, 정릉4동, 하월곡동으로 구성된다. 현재는 각각 뉴타운 재개발이 되었으나 아직 낙후된 지역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다. 지금은 여러모로 다양하게 개선되어 개발되고 있는 중이다.[23] 길음뉴타운 개발로 인해 도심권으로 출퇴근하는 중산층이 늘어났으나 이 지역은 여전히 동북권이다. 도심권 출퇴근자들이 많이 거주한다고 해서 도심권이라는 논리는 말이 안되는 것이다. 바로 인근의 미아뉴타운에도 4호선 미아사거리역을 이용하는 도심권 출퇴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그곳을 도심권이라고는 부르지 않음을 참고해야한다.[24] 정릉동 지역은 같은 행정동 내에서도 동서로 흐르는 정릉천(내부순환도로)를 경계로 북쪽과 남쪽의 생활권이 갈리는데 정릉2동 중 남쪽 지역은 완전히 돈암동 생활권이며 전체가 북쪽에 위치한 정릉3, 4동은 성북구의 중심부로부터 고립되어 있으나 이 지역 내의 아파트촌에는 길음뉴타운과 마찬가지로 도심권 출퇴근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정릉1동은 인근의 길음동이 대규모 재개발이 되면서 길음역 주변의 생활권으로 흡수되었다.[25] 6호선 고려대역과 4호선 길음역이 종암동 행정복지센터 기준으로 1.4km로 멀지 않은 데도 4호선과 6호선은 삼각지역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 지하철 6호선 참고. 6호선 고려대역과 4호선 길음역은 엄청나게 멀다. 굳이 지하철로 가려면 보문역에서 우이신설선으로 갈아탄 뒤 성신여대입구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을 해 2번을 갈아타야 된다. 종암동에서 길음역까지 거리는 2.5km이나 지하철로는 4.3km를 가야해 멀고 시간이 더 걸린다. 월곡역이면 몰라도 고려대 - 길음 거리는 버스로도 5 정거장은 된다.[26] 가는 길에 성북구청 경유. 한성대입구나 성신여대입구나 두 역 모두에서 건너가기 애매한 자리에 성북구청이 있다.[27] 그나마 석계역 일부가 성북구에 걸쳐있기는 하다. 근데 6호선 석계역은 성북구에 있다! (다만 대표주소는 6호선도 노원구 월계3동 주소를 쓴다.)[28] 정릉 또한 미아와의 상호 왕래가 편하다.[29] 1호선은 행정상 노원구 월계3동에 있으며, 6호선의 경우 시설물은 성북구 석관동에 있으나 대표주소는 1호선처럼 노원구 월계3동 주소를 쓴다.[30] 미개통[31] 이것 때문에 성북구는 1970년대 당시 서울의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 핫플레이스로 통했다. 하기야 여자대학이 둘이나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32] 성신여자대학교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은 철책담장으로 둘러싸인 각자의 캠퍼스들 사이에 오솔길 하나를 두고 서로 등을 대고 있는 구조라서 도보로 산을 넘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33] 여기서 상권이라 함은 옷가게, 헤어숍 등과 먹자골목을 말한다.[34] 노원구의 핵심지역이 중랑천 동측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이고 월계동은 그쪽과 생활권이 다르므로 광운대학교도 사실상 성북구(정확히는 석계역) 생활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참고로 같은 노원구인 서울여자대학교, 삼육대학교 또한 최근까지도 석계역 생활권이었다.[35] 종로구청에서 대학로까지 거리보다 성북구청에서 대학로까지의 거리가 더 가깝다.[36] 길음역 옆 현 돈암동부센트레빌 아파트 부지[37] 1950년대 배재학당 출신인 이승만 대통령이 대학을 세우라고 하월곡동에 부지를 무상 제공했으나, 5.16 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이 다시 회수, 국유지가 되었다.[38] 참고로 이곳(월곡동 산 2-11)의 일부는 국유지로 회수하고도 관리를 허술하게 해 판자집들이 난립했고 1981년 5공 정부가 민심을 얻기 위해 무허가 주택 양성화 조치로 판자집들을 철거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재개발이 추진, 국유지를 민간(재개발 조합)에 불하하여 아파트가 들어선다. 현재 하월곡동 대우아파트 부지.[괄호] A B C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국책은행] 종로지점이 가장 가까운 지점이다.[39] 원래 법정동 성북동 2가였으나, 1975년 '2가'를 떼고 그냥 성북동으로 개칭되었다.[P] A B C 2023년 6월 주민등록인구통계[40] 특히 범 현대가.[41] 2019년 11월 현재는 e스퀘어로 바뀌었으며 씨네큐도 생겼다.[42] 돈암1동 = 乙 / 돈암2동 = 甲[43] 그러나 성신여대입구역의 주소는 동소문동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된 이유 및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돈암동' 항목 및 성신여대입구역 해당 항목 참조.[44] 되놈과 같은 어원. 중국인을 비하하는 그 단어 맞다.[45] 동소문동과 동선동이 마치 돈암동의 가운데를 파먹은 듯한 형상이다. 브라운스톤 아파트를 기준으로 서쪽은 2동, 동쪽은 1동에 해당한다.[46] 구 고명상고, 고명정보산업고, 고명경영고. 2020년에 교명을 변경했다.[47] 명동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 교육을 받으면 꼭 가게 되는 상지 피정의 집이 이곳에 있다.[48] 우이신설선이 개통되기 전까지 그 어떠한 방향으로 가더라도 지하철이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가까운 게 길음역이라고는 하나, 걸어서는 최소 30분 이상 가야될 정도로 먼 편이다.[49] 환락가가 있던 몇몇 지역들(하월곡동 88번지)이 이 경찰서의 관할 구역이다. 또한 성북경찰서와 함께 치안 구역을 반띵하고 있을 정도로 커버구역이 넓다. 종암동 - 월곡동 - 석관동 - 장위동 - 길음동 - 돈암동 일부까지가 종암경찰서 치안 권역 참고로 안암동은 성북경찰서 관할 구역으로, 고려대 캠퍼스 내에서 일어난 사건 대부분은 종암경찰서가 아닌 성북경찰서가 맡는다.[50] 고려대 수시철이라도 되면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수시 시험 전날 부모님과 함께 묵고는 해서 수시 시험 당일 호텔 식당에 가보면 죄다 학생들과 학부모님들로 북적북적했다. 게다가 호텔 측은 이들을 위해 고려대까지 가는 셔틀을 운행해주기도 했다.[51] 고려대역의 부역명이 종암역인 이유도 이것. 게다가 3기 지하철 계획 당시엔 고려대역이 아닌 종암역으로 하려고 했었다가, 역사부지가 고려대학교에 딱 붙으면서 역명이 바뀐 역사가 있다. 지금 고려대역 한쪽 출구는 고려대학교 라이시움 건물에 붙어있다. 단 고려대 부지쪽은 행정동 안암동 관할이다.[52] 학교 운동장이 꽤 좁고 삼각형 형태라는 다소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과거 일신초등학교가 위치한 곳은 쓰레기처리장이였고, 쓰레기처리장을 타 지역으로 옮기면서 생긴 부지에 학교를 세운 것이다. 당시 인근에 월곡동 대림아파트가 세워지면서 이쪽 학생들을 받을 학교를 만들게 된 것. 또한 숭례초등학교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구 종암2동 주민들을 일부 분산시킬 목적도 있었다. 그래서 한때 일신초등학교의 가칭이 월암초등학교였었다. 월곡 + 종암 이라는 의미로. "일신" 이라는 의미도 월곡동과 종암동의 학생들이 합쳐져서 공부한다는 의미를 띄고 있기도 하다.[53] 1969년에 남중, 여중으로 분리되었으며, 여중은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해 있다. 또한 그 옆에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초등학교가 있다. 서울대학교/연건캠퍼스 건너편이다.[54] 과거는 종암여중이었으나, 남녀공학으로 변경. 물론 이렇게 바뀌게 된 과정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고등학교의 이전 떡밥 때문이긴 했으나, 여러 이유로 흐지부지 됐다.[55] 2009년에 방영된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와 2016년에 방영된 무도리 GO에서도 출연하였다.[56] 길음1동 = 甲 / 길음2동 = 乙[57] 길음역, 미아사거리, 종암경찰서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 여기에 해당한다.[58] 이와 비슷한 사례로 관악구의 남현동이 있는데, 동작구가 분구되기 전에는 사당동의 일부였다. 이 밖에도 서울 시내에서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법정동이 두 토막난 사례로는 신도림동 - 대림동, (구)포이동 - 양재동 / 개포동, 성수동 - (구)노유동, 가리봉동 - 가산동 등의 사례가 있다.[59] 월곡1동 행정복지센터는 구 하월곡1동 동사무소, 월곡2동 행정복지센터는 구 상월곡동 동사무소였다.[60] 성북우체국, 이마트 하월곡점이 있다.[61] KBS 드라마 착한남자 촬영[62] 성북구 지역 유일한 홈플러스 매장. SBS 룸메이트에서 자주 촬영을 하였다. 생기기 이전에는 홈플러스 동대문점을 이용한 사람들도 있었다.[63] 구 서울북공업고등학교였으며, 2015년에 마이스터고로 개교 예정이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2016년도에 개교했다.[64] 하월곡 삼성, 대우아파트가 래미안, 푸르지오로 재개발되면서 학교 부지를 기부 체납했다.[65] 동네 주민들은 주로 장위동고개가 아닌 동방고개라고 부른다.[66] 오동공원 혹은 장위동 돌산으로 알려진 곳으로, 실제로는 월곡동에 해당한다.[67]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법인 광운학원이 재단으로 있다. 광운초 옆의 남대문중학교(남중), 우이천 건너편(노원구 월계동)의 광운중학교(역시 남중),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 광운대학교 역시 광운학원 소속이다.[68] 1934년에 개교했으며 원래는 숭례문 근처에 위치했으나 1969년 장위동으로 이전했다. 교복 하의가 청바지인 것으로 유명하며 몇 년 전만 해도 체벌로 악명이 높았고 완장을 패용한 선도부원 제도 같은 옛날의 잔재가 짙게 남아있는 학교이기도 하다. 교복과 완장은 대체되었다. 그러나 체벌은 어느 정도 남아있으며, 최근에 자유 학기제 지원 자금 횡령으로 SBS 뉴스에도 나왔다.[69] 1~3번 출구가 월계동, 4~7번 출구가 석관동이다.[70]돈암동, 삼선교나 길음역, 미아사거리 생활권이 아닌 청량리역, 신이문역 생활권. 지하철 6호선 건설 이전에도 석관동에서 성북구 메인인 지하철 4호선 라인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없었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6-1번 시절부터 이어진 오래된 노선인 120번은 애초에 주 수요지가 다르다.[71] 이문동 현대아파트앞 정류장에 가서야 대중교통이 다닌다.[72] 이 쪽의 동영상은 삭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