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즉군왕 패즉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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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이룰 성
곧 즉
임금 군
임금 왕
패할 패
곧 즉
거스릴 역
도둑 적

1. 개요
2. 상세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찬탈이나 역성혁명에 성공하면 군왕이 되기 때문에 반역이었던 것도 혁명으로 포장되고, 실패하면 죽음이기 때문에 들고 일어난 이유야 어쨌든 반란으로 매도된다는 말이다. 요약하자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뜻이다.

특히 전근대 왕조 시대엔 오늘날처럼 투표로 권력자를 합법적 교체하는 근현대적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결국 정권을 교체하려면 폭력적 행위 외엔 딱히 방법이 없다보니 폭군이라는 전제하에 약간의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고[1],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찬탈자들은 전임 군주를 기승전폭군으로 매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영원한 승자란건 존재하기 힘들어서, 명백한 찬탈 행위는 어떻게 포장해도 결국 후대엔 재평가받을 거리가 된다.


2. 상세[편집]


당장 아래 목록을 봐도 반란 일으킨 행위 자체는 별 차이가 없어도 대체로 성공 사례는 대중에게 긍정적으로, 실패 사례들은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

다만 후세에 다르게 평가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무신정변은 성공하여 그를 통해 이룩한 무신정권도 100년은 갔지만, 무신정권이 무너지자마자 바로 평가가 추락하고 무신정권의 실권자들 역시 역적으로 재평가되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사용함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은, 해당 역사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근거를 제시했을 경우에만 내릴 수 있는 결론이지 무조건 승리자를 까고 실패자를 재평가할 수 있는 논증 자체로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충분한 논증도 없이 이런 논리만 내세우며 인물의 재평가를 요구하는 건 이 논리를 앞세워 아돌프 히틀러를 "히틀러는 서방과 소련, 유대인에게 단지 역사의 패배자여서 매도당했을 뿐"이라며 무작정 미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2]

또한 더불어 역사에서 실패했음에도 오히려 동정을 받거나, 성공했음에도 평가가 그다지 좋지 못했던 경우도 많다. 집권 시기에 권력으로 불만 여론을 찍어 누른다 하더라도, 음지에 남아돌다가 후세에서 다시 표출될 수도 있다. 사실 역사 연구에 있어서 아무리 전형적인 속담이나 고사성어라도 섣부르게 남발하고 적용시키려는 시도는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공동 사항이다.

또한 이것은 전근대 정치에 적용되는 고사성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근대에는 역성혁명에 성공해서 그 왕조가 몇 대 이상 지속되었다면, 그것은 천명이 넘어간 것으로 보고 대체로 순응했다. 다시 말하면, 어쨌든 새 왕조와 체제가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면 그 자체로 이전 왕조가 망할 때가 돼서 망한 것임을 증명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그 시대에는 통하는 것이었으나, 이를 만고불변의 진리로 보고 민주주의가 실현된 현대사회에도 적용된다고 보는 것은 오류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관련된 어록이 있다.

일본에서는 이와 비슷한 속담으로 ''이기면 관군, 지면 역적(勝てば官軍, 負ければ賊軍)"이 있다. 대략 에도 시대부터 내려온 오래된 속담이다.

成王敗寇(성왕패구)라는 4자로 줄인 것도 있는데 이쪽은 중국 쪽에서 쓰는 성자위왕 패자위구(成者爲王 敗者爲寇)의 약자로 賊 대신 寇(도적 구)자를 썼다.

에리히 프롬도 "혁명에 성공하면 정치가가 되고, 실패하면 범죄자가 된다(The successful revolutionary is a statesman, the unsuccessful one a criminal)"라는 비슷한 말을 남긴 바 있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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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맹자도 백성을 위하지 않는 폭군은 쫓아낼 수 있다는 논리를 편 바 있다.[2] 사실 국내에서 무리한 주장을 하고 논파 당할때 쓰는 궤변이다. 예시로 이순신을 모함하고 정작 할수 있다는 부산포 공격을 안하다가 권율에게 왕실기만죄로 곤장맞고 전군 끌고 가라고 하지 않았는데 칠천량 해전에서 전군 끌고 전멸시킨 원균이 사실은 맹장이었으며 칠천량 해전의 패배는 조정과 권율 탓이다. 그럼에도 칠천량 패전이 원균탓으로 기록된 이유는 '승자인 이순신과 권율이 역사조작을 했기 때문이다'식으로 주장한다. 또 불교계에서는 사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아니라 신미(기록에서는 한글창제보다는 민간에 보급을 한 것으로 보고있다.)대사가 창제했으며 숭유억불을 기본으로 하는 조선에서 승려가 국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공식 기록에 남길 수가 없어서 모든 공식문서에는 세종대왕의 단독작업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두 주장 모두 지우개를 쓰지 않는 역사로 알려진 조선왕조실록을 상대하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