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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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억동




파일:북한 국기.svg 함경북도

김책시
金策市
Kim Chaek City






시소재지
미상
지역
관북
면적
850㎢
행정구역
22동 22리
시간대
UTC+9
인구
207,299명[기준]
인구밀도
243명/km²
구역당위원장
파일:wpk.jpg
미상
인민위원장
파일:wpk.jpg
미상
1. 개요
2. 지리
2.1. 지형
2.2. 기후
3. 역사
4. 경제
5. 교통
6. 남북통일 이후 전망
7. 인근 행정구역
8. 북한 기준 행정구역
8.1. 행정 구역의 변화
9.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9.1. 성진시
9.2. 학성군
10. 출신 인물




1. 개요[편집]


함경북도의 시. 면적 850㎢.[1] 인구 207,699명 (2008년 기준).


2. 지리[편집]



2.1. 지형[편집]


인근에 위치한 단천시와는 마천령산맥을 사이에 두고 있다. 바로 이 마천령산맥 때문에 다른 함경북도의 시/군과 마찬가지로 교통편은 모두 동쪽으로 몰려 있다.


2.2. 기후[편집]


김책시는 북한 내에서도 겨울이 따뜻한 편이다.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3.8℃로 한참 남위도에 있는 동두천, 해주 등과 비슷한데. 그 이유는 백두산개마고원이 북서풍을 막아주는데다 수심이 깊은 동해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위도의 개마고원 지역과 비교하면 온도가 12~13℃ 정도 더 따뜻하다. 심지어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삼지연시, 대홍단군 등과 비교하면 무려 15℃ 이상 더 따뜻하다. 비슷한 위도의 벽동군보다도 10℃ 정도 더 따뜻하다.

물론 같은 위도의 서구권 도시와 비교하면 추운 편이다. 김책시의 위도는 북위 40°40'으로 미국뉴욕, 그리스테살로니키와 비슷하다.[2] 그러나 뉴욕의 1월 평균 기온은 0.4℃로 강릉시, 대구광역시와 비슷하고, 테살로니키의 1월 평균기온은 5.3℃로 제주시의 기온과 비슷하다. 최난월인 8월의 평균기온은 북한 한류의 영향으로 22.2℃로 서늘한 편이다. 비슷한 위도의 테살로니키와 비교하면 여름은 좀 더 서늘하지만 겨울은 혹독하게 춥다고 할 수 있다. 뉴욕과도 비교하면 여름은 비슷하고, 겨울은 약간 더 춥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 북동해안은 동 위도의 미국 내륙과 비슷한 기온대를 띈다[3]. 강수량은 매우 적은 편인데, 연 평균 강수량이 640.8mm로 한반도 내 대표적인 소우지이다.

열대야가 없는 지역이나, 최근 들어 2018년(25.3도), 2021년, 2022년(모두 25.0도)에 연 1회의 열대야가 발생했다.


3. 역사[편집]


역사적으로 길주군의 일부였다가, 1898(광무 2)년 성진군(城津郡)으로 분리되었고 1899(광무 3)년 함북 최초의 개항장으로 지정되면서 성진부(城津府)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길주와 합쳤다 나뉘었다를 수차례 반복했고 이 문제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1903(광무 7)년에 최종 분군 확정. 길주와 합쳐질 때는 길성부(吉城府, 길주와 성진의 앞글자를 따서)로 바뀐 적도 있다. 이 당시의 자세한 역사는 다음과 같다.

* 1898년: 길주군 일부를 성진군으로 분리

* 1899년: 성진군을 성진부로 승격

* 1900년: 성진부와 길주군을 길성부로 통폐합

* 1900년: 길성부를 성진부로 개칭

* 1901년: 성진부를 폐지하고 길주군으로 강등

* 1902년: 길주군을 길주부로 승격

* 1903년: 길주부를 길주군으로 강등

* 1903년: 길주군 일부를 성진군으로 재분리

* 1906년: 성진군을 성진부로 승격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직후인 1910년 성진부에서 성진군으로 강등되었고, 1931년 성진면이 성진읍으로 승격되었다. 1941년 성진읍이 성진부로 승격되면서, 성진군의 잔여지역이 학성군(鶴城郡)으로 개칭됐다. 일제의 대륙 침략 정책에 따라 '일본고주파중공업주식회사 성진공장'[4]을 비롯한 각종 공장이 들어서 공업 도시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해방 이후 성진시로 바뀌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이곳 출신이자 이 때 사망한 김책을 기리기 위해서 성진시와 학성군을 각각 김책시와 김책군으로 개칭했고, 1961년 두 시와 군을 합쳐서 김책시로 만든 것이다. 도농통합 북한의 시/군 단위 광역행정구역 중에서 사람 이름을 딴 곳이 총 다섯 곳인데, 이 김책시와 김형직군, 김정숙군, 김형권군, 문덕군이다. 김책시와 문덕군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곳은 모두 량강도 산하이다. 김형직군, 김정숙군, 김형권군 모두 추운 개마고원 지역이고, 김형직군김정숙군은 아예 압록강을 끼는 한반도 최북단 국경지대인 것을 감안했을 때 어쩌면 김일성은 자기 가족 이상으로 김책을 특별 대우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김일성의 일가나 심복 넷 중에서 북한이 대대적으로 공업 단지를 조성해가며 육성한 곳은 김책시 하나 뿐이다.

어쨌든 상당히 큰 규모의 시로, 북한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큰 도시이다. 출발부터 11시 89군 중의 시 단위로 출발했다. 한때는 라선시보다 인구가 많았던 적도 있었다.[5] 하지만 함경북도의 최초 개항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대도시 자리는 청진시[6]에 빼앗겼으니 일본의 하코다테시삿포로시의 관계와 비슷하다.


4. 경제[편집]


상기 서술했듯이 북한의 중요 공업 단지. 다만 김책제철소('김철', 구 청진제철소)는 여기에 없고 청진시에 있다. 대신 여기엔 '김철'과 쌍벽을 이루는 성진제강연합기업소('성강')이 있다. 왜 이건 또 성진이여 또한 김책의 이름을 딴 학교인 김책공업종합대학은 김책시가 아니라 평양특별시에 위치해 있다.

시 내에는 여러 군데에 온천이 몇 군데 퍼져 있다.

김책수산사업소가 있다. 성진항에 대한 정보 (리브레위키)


5. 교통[편집]


철도
평라선
 만춘역 쌍룡역 김책역 장평역 학성역 송상역 업억역 
 원평역
도로
7번 국도
 온성군 - 길주군 - 탑하리 - 림명리 - 학성동 - 김책시 중심부 - 청학동 -
 장현동 - 단천시 - 부산광역시
76번 국도
 갑산군 - 단천시 - 세천리 - 수동리 - 림명리 
서울에서 동북쪽으로 직선 395km[7], 철도로는 약 580km 거리에 있다. 제일 가까운 남한의 도시인 속초시까지는 뱃길로 약 280km 거리.


6. 남북통일 이후 전망[편집]


명목상 행정구역인 성진시와 학성군은 통일될 때 성진시로 도농통합될 가능성이 높다. 아예 성진-학성-길주 대통합으로 길주시가 될 가능성도 있다.


7. 인근 행정구역[편집]



함경북도 소속  함경남도 소속 


8. 북한 기준 행정구역[편집]


2222리로 이루어져 있다.

김책시의 행정구역

 금천동 련호동 성남동 송령일동 송령이동 송암동 수원동 신평동
 쌍룡동 쌍암일동 쌍암이동 쌍화동 업억동 역전동 장현동 제강일동
 제강이동 청학동 탄소동 학성동 한천동 해안동

 덕인리 동흥리 룡호리 림명리 만춘리 방학리 상평리 석호리
 성상리 세천리 송중리 송흥리 수동리 옥천리 원평리 은호리
 춘동리 탑하리 풍년리 학동리 호통리 흥평리


8.1. 행정 구역의 변화[편집]


기록 순서는 구 시/군 - 구 읍/면 - 현재의 읍/동/리/로동자구 순서. 현 읍/동/리/로동자구의 중심 위치가 어딘지에 따라서 서술하였다.

  • 구 성진시 지역
    • 성진시
      • 연호동
      • 성남동
      • 송령일동
      • 송령이동
      • 송암동
      • 수원동
      • 신평동
      • 쌍암일동
      • 쌍암이동
      • 쌍화동
      • 역전동
      • 제강일동
      • 제강이동
      • 청학동
      • 한천동
      • 해안동
      • 흥평리
  • 구 학성군 지역
    • 학남면
      • 쌍룡동
      • 장현동
      • 만춘리
      • 은호리
    • 학동면
      • 동흥리
      • 용호리
      • 석호리
      • 성상리
      • 탑하리
      • 학동리
    • 학상면
      • 금천동
      • 상평리
      • 송중리
      • 송흥리
      • 옥천리
      • 탄소동
      • 풍년리
      • 호통리
    • 학서면
      • 업억동
      • 덕인리
      • 세천리
      • 원평리
    • 학중면
      • 학성동
      • 임명리
      • 방학리
      • 수동리
      • 춘동리

  • 학성군에서 타 지역으로 이관된 지역


9.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편집]





9.1. 성진시[편집]


파일:함경북도(이북5도위원회) 휘장.svg 함경북도미수복 행정구역


파일:함경북도 성진시 시기.svg

성진시
城津市
Sŏngjin City





시청 소재지
성진시 본동
상위 행정구역
함경북도
하위 행정구역
8
면적
62.75km²
인구
68,045명[8]
인구밀도
1084.38/㎢

파일:함경북도 성진시 시기.svg
城津市 / Sŏngjin City[9]
파일:성진시.jpg

  • 아래 행정동과 법정동은 《이북5도 명예읍·면·동장 위촉에 관한 규정》 제8조 별표2에 규정되어 있다.
  • 성진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관할 법정동이 워낙에 적었기 때문에(11개) 광복 후 별다른 정리를 하지 않았다. 성진시만의 특이한 점이라면 법정동과 행정동이 전혀 다른 명칭을 쓴다는 것.[10] 심지어 행정동은 북한에서 쓰는 명칭을 그대로 쓰기도 한다. 대표적인 곳이 역전동.[11]
  • 본동에 성진시청과 학성군청이 있었다.

행정동
법정동·리
성남동
행동(幸洞)
송암동
송중동(松中洞)
쌍암동
농성동(農城洞)
쌍포동
성현동(城峴洞)·쌍포동(雙浦洞)·흥평동(興坪洞)
역전동
본동(本洞)
청학동
남동(南洞)
해안동
양호동(楊湖洞)[12]
한천동
서동(西洞)·욱동(旭洞)[13]

일본 지명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사이와이(幸), 혼(本), 아사히(旭)가 보일 것이다. 성진 역시 일제강점기의 주요 도시로서 일본식 지명이 붙었다. 애초에 길주군의 일부였다가 성진 개항을 위해 자그마치 1898년에 분리됐고, 1910년 경술국치와 함께 이 이름들을 붙인 것이다. 그만큼 일제가 오랫동안 주시하며 중요하게 취급한 지역이기도 하다.

청학반도(靑鶴半島)는 청학단(靑鶴端)이라고도 하는 경승지로, 공원으로 이용되었다. 한쪽 높은 절벽 위에는 망양정(望洋亭)이 있다고 하며 등대가 있다.

연천군 신서면1974년 자매결연하였다.


9.2. 학성군[편집]


파일:함경북도(이북5도위원회) 휘장.svg 함경북도미수복 행정구역


학성군
鶴城郡
Hakseong-gun





군청 소재지
성진시 본동
상위 행정구역
함경북도
하위 행정구역
5
면적
877.95km²
인구
60,102명[14]
인구밀도
68.46/㎢
파일:학성군.jpg
[15]

파일:학성군기.png

성진군 시절 학성면(鶴城面) 성진본정(城津本町)·성진행정(城津幸町)·성진욱정(城津旭町)이 1917년 성진면으로 분리돼 1931년 읍으로 승격되고, 1939년 학성면이 폐지돼 성진읍, 학남면, 학상면에 분할 편입됐으며, 1941년 성진읍이 부로 승격돼 분리되고 남은 성진군이 학성군으로 개칭됐다.

'학성(鶴城)'이란 이름대로, 모든 면의 이름에 '학(鶴)'자가 들어가는 것이 특징.

  • 학남면(鶴南面)
    • 관할 동 : 일신(日新), 금산(琴山), 달리(達理), 만춘(晩春), 송정(松亭), 예(禮), 용대(龍臺), 용소(龍沼), 은호(恩湖), 이대(梨垈), 풍호(豊湖)
    • 학성군의 남부 해안지역. 북한 행정구역상 단천시에 속해 있다. 1939년에 학성면을 폐지하면서 달리동, 만춘동, 용소동, 은호동(마천령 이남)을 편입했다. 평라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룡대역, 일신역, 만춘역, 쌍룡역이 있다.

  • 학동면(鶴東面)
    • 관할 동 : 동흥(東興), 방(防), 석호(石湖), 성상(城上), 성하(城下), 용암(龍巖), 용연(龍淵), 용포(龍浦), 용호(龍湖), 탑하(塔下), 하천(荷川), 한(閑)
    • 임명천과 남대천 사이에 있는 학성군의 동부 해안지역.

  • 학상면(鶴上面)
    • 관할 동 : 옥천(玉泉), 금천(錦川), 상평(上坪), 송흥(松興), 수사(水使), 왕덕(王德), 용천(龍泉), 장현(將峴), 호양(湖陽), 호통(湖通)
    • 학성군의 서부 산악지역. 1939년에 학성면을 폐지하면서 금천동, 장현동(마천령 이북)을 편입했다. 면의 동쪽 끄트머리에 평라선 학성역(구 농성역)이 있는데, 농성은 옆동네 학중면에 있다(정말 코앞에 있다). 북한 행정구역상 학성군을 개칭해 두었던 김책군의 소재지였다.

  • 학서면(鶴西面)
    • 관할 동 : 업억(業億), 덕인(德仁), 세천(細川), 신흥(新興), 원평(院坪), 차삼(次三), 청학(靑鶴), 탑평(塔坪)
    • 학성군의 북부 산악지역. 평라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업억역, 원평역이 있다. 세천리에 세천온천이 있다.

  • 학중면(鶴中面)
    • 관할 동 : 임명(臨溟), 농성(農城), 송상(松上), 송하(松下), 수(水), 춘(春), 해평(海坪)
    • 임명천 하구에 있는 면. 평라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송상역(구 학중역)이 있다.


10. 출신 인물[편집]


  • 김책
  • 리을설
  • 리종옥
  • 박치우
  • 김기림
  • 최헌
  • 최서해
  • 태현실 : 배우
  • 최용남 : 빅토르 최의 증조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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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2008년[1] 광복 당시 행정구역 상의 성진시(성진+학성)의 면적은 941㎢인데, 이는 1972년 학남면 남부 지역이 단천시로 이관되었기 때문이다.[2] 뉴욕의 위도는 북위 40º 43', 테살로니키의 위도는 북위 40°39'이다.[3] 김책과 동위도인 미국 내륙 도시는 일리노이의 피오리아(북위 40º 44')와 네브래스카의 주도 링컨(북위 40º 49')이 있는데, 1월 평균 기온이 -3.9℃, -4.2℃다.[4] 이게 성진제강연합기업소의 전신이다.[5] 광복 당시 나진시는 3만 명, 성진시는 9만 명이었다. 범 나진권은 12만 명, 범 성진권은 14만 명.[6] 광복 당시 23만 명으로 함흥시(12만 명)보다도 인구가 많았다.[7] 거문도, 만재도와 비슷한 거리에 있다.[8] 1944년 인구총조사[9] 현 로마자 표기법으로는 Seongjin City[10] 특히 성남동과 남동. 나중에 성남·청학동으로 바꾸려나[11] 말 그대로 역 앞이라는 뜻으로, 북한에는 널린 지명이다. 그렇다고 본동으로 쓸 순 없을테니, 이러한 관계로 역전동의 명칭을 남북통일 이후 중앙동(中央洞), 혹은 성중동(城中洞)으로 바꿀 가능성도 있다.[12] 정작 양호동은 내륙에 있어, 행정동 명칭을 양호동 쪽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13] 시행규칙 별표2에는 ‘육동’으로 오타를 냈다.[14] 1944년 인구총조사[15] 위 지도에는 학성면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와 있으나, 이미 1939년 폐지되어 흥평·양호·농성동은 성진읍(당시)에, 은호·달리동은 학남면에, 금천·장현동은 학상면에 분할 편입됐다.[16] 빅토르 최의 출생지는 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