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제강연합기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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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주체철 공법
3. 기타
4. 참고 자료



1. 개요[편집]


함경북도 김책시에 위치하고 있어 이 공장은 전문 특수강 제조 공장으로써 일본이 불법 점령 하였을 때 이때 성진고주파공장으로 호칭으로 불렀으며 주요생산품목은 특수강과 스테인리스 강판과 규소강판 그리고 구조용 합금강판으로 그외의 레일과 체인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연간 생산 능력은 제선량은 48만 톤으로 회전로를 4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일산 330톤 회전로 4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기로는 10톤급 전기로 10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100톤급 초고전력전기로는 1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30톤급 전기로는 4기를 50톤급 전기로는 2기를 신설하였으며 5톤급은 2기 10톤급은 3기를 신설하여 총 22기의 전기로를 보유하게 되었다.
압연능력은 20만톤의 중판 직장을 운용하다가 신설한 제1중판 직장을 신설하여 연간 10만 톤의 중판을 압연할 수 있으며 제2중판직장을 신설하면서 연간 8만 톤을 압연할 수가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규소 강판 생산 공정과 스테인리스 강판 생산 공정과 박판 생산 기지 등을 건설하게 되었지만 1995년에 결국 국가정지사태가 왔어도 가동 정상화를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설비 개보수 등 모든 생산공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되어 결국 김정일이 성진제강연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게 되면서 철강 생산 정상화와 성강의 봉화를 선포하게 되어 결국 비콕스 제철법을 추진을 하라고 명령을 내리게 된다.
결국 우선 전기로를 새로 증설을 하거나 교체를 하는 작업이 우선시가 되었으며 강철 제1직장에 2호 전기로와 강철 제3직장에 전기로 1기를 새로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을 하였으며 나머지 전기로에 대하여서도 유압화하여 대보수를 진행을 하게 되었다.
2005년 들어서 초고전력제강법을 더욱 완성하여 연속주조기도 새로 제작을 하게 되었으며 원래는 1992년에 이미 컴퓨터를 마련해 통합생산체계를 이미 설치를 하였지만 이미 고난의 행군으로 인하여 이미 업그레이드를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2007년에는 연속주조기와 산소분리기 등을 장착하여 컴퓨터화를 진행하여 결국 통합생산체계를 새로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결국 김정일의 극찬을 받게 되었으며 결국 과학적인 통합생산체계가 구축이 완료가 되었다.
2013년에는 3호 회전로와 4호 회전로에 기술 개건을 추진하게 되었으며 제1조강직장에 고온공기연소압연가열로를 새로 설치해서 성진제강연합기업소에도 설치하는 일을 추진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결국 주체철 사업에 큰힘을 사용하지를 못하게 되었으며 이유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는 것이 핵심적인 이유이다.


2. 주체철 공법[편집]


1998년에 김정일이 방문을 하면서 결국 주체철 공법을 사용한 비콕스 제철법을 마련하라고 하면서 결국에는 삼화철 공법이 아닌 전형적인 산소 분리기를 이용한 제철 공법을 마련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술자들은 처음에는 난감하여 결국 많은 자료를 국가과학원에서 번역을 하면서 많은 연구를 하게 되었으며 그러자 김책공업종합대학의 김종세 박사의 지원으로 인하여 결국 시험 생산을 할 수가 있는 5.17 직장을 개설하였으며 점결제로 팽윤토를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회전로의 용성물을 식히지 않으며 그대로 산소용융로로 들어가서 결국 환원을 하는 제철 공업의 혁신이라고 할 수가 있는 공법이라고 밝히며 세계적으로 상용화가 되고 있는 코렉스 제철 방식이라고 밝혔지만 그 작업과 행정이 완전히 다른 혁신적인 방법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공법은 계속 실패만 거듭하였으며 자체 기술로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계속되었다고 밝히며 한 사람이 폭파되는 것을 방관하고 한 사람이 뛰어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자 그 사람이 스스로 희생을 각오하고 뛰어들었으며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인하여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었다.
이로써 50% 저콕스 제철 방법이 완성이 되었으며 어느정도 만족을 시키는데 성공을 하였지만 결국 실수율이 60%로 감소하면서 고철 사용이 증가하였으며 결국 원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소는 지난시기 산소를 사용하여 삼화철로에서 빌렛을 주조하던 기술 개발에서 아이디어를 찾아서 산소 사용을 택하기로 결정하여 기업소 당위원회는 산소용융에 의한 용선 생산과 정련로에 의한 용강 생산을 통합한 체계로 갈 것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로동당 일꾼부터 주체철연구성원으로 등록하였으며 또한 현장에서 침식하는 24시간 가동 체계를 계획해 과학자 – 행정일꾼 – 당 관료가 단합해 새로운 용융환원법 개발을 시작하였다.
산소용융에 의한 제철제강행정은 산소와 무연탄의 취입으로 항시적인 노의 폭발이 존재하였으며 김책공업종합대학과 국가과학원 흑색금속연구소, 공장 연구진은 폭발 위험을 제거하는 이론적인 가설을 계획하기 위해서 기술협의를 거듭하게 되었다.
200여 차례의 계속된 실험으로 2006년 4월 6kg의 산소를 주입해 2kg의 용선을 생산하였으며 공업로 도입에 착수할 수가 있는 기술경제지표를 얻었으며 세계적으로 상용화되고 있는 산소용융로의 일반적인 공법과 완전히 다른 방식을 택함으로써 용적 확대에 따른 합리적인 노의 행정을 보장하는 공업로 설계에는 확신이 서지 않고 있으며 계속 실험을 진행하게 된다.
결국 4차례의 실패를 연속하며 산소용융로 설계와 제작과 설치를 완성시킬 수가 있었으며 산소용융로가 폭발하면 또다시 시공해서 실험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였으며 공장 관리들은 폭발을 막으려고 노안으로 뛰어드는 희생적인 사투를 치르면서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다.
과학자들은 뜨거운 노의 안을 드나들며 슬래그가 나가야 할 출재구로 용선이 출선되면서 냉각수와 부딪쳐 강한 폭발을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하여 연구집단은 실패도 학문이라는 일념으로 1,000여 일간 12개의 노를 다시 쌓고 실험하는 등 생산시험연구를 계속하였다.
이로써 기술경제지표를 만족하는 산소용융에 의한 용선을 출선하여 산소용융과 정련의 일체화를 보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새로운 용융환원법은 회전로 밑에 산소용융로를 설치해 용융로에서 나오는 1,600℃의 가스를 회전로에 취입하여 1차 환원을 진행시키고 산소용융로에서 최종 환원을 실현하게 된다.
산소와 탄소가스로 환원을 진행시킨다는 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며 산소용융환원법은 삼화철 공법에서 450 ~ 500kg의 코크스 사용을 완전히 제거하고 국내연료를 100%를 사용하며 제선제강행정을 모두 산소로 진행하고 있다.
원료 및 연료의 예비처리와 복잡한 가공공정을 없애면서 생산면적이 대폭 감소해 설비제작비용절감과 동시에 최대의 생산 효율을 보장할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었으며 산소용융환원법은 세계선진철강업체들이 1990년대에 시도한 용융환원제철법이며 임의의 연료를 사용하여 품질 좋은 용선을 생산하는 동시에 환원과정에서 나오는 가스의 재사용으로 환경오염이 적다.
산소용융환원법은 한번 용선을 만들면 제강로까지 용해 상태가 유지되면서 에너지 소비를 대폭 감소하며 또한 슬래그 속의 석탄은 보충 에너지원으로 사용해 많은 석탄이 절약할 수가 있다.
종전에는 용성물을 회전로에서 환원해 선별 작업을 한 뒤에 식혀 다시 전기로에 넣는 방식으로 전력의 소비가 대형으로 산소용융환원은 전기사용이 전혀 없이 산소로 용해하여 제강시간을 단축하고 전극의 소비도 감소해 회전로의 수명이 연장이 되었다.
더군다나 제강 시간이 짧아서 생산성이 높으며 정련이 쉬워서 품질이 아주 그만이며 최근에는 회전로 조업이 혁신을 하며 설비 가동률을 엄청나게 증가해서 시간당 30 ~ 40톤 생산에서 시간당 50톤의 용선을 생산을 하게 되었다.
이를 1일로 환산하면 혁신 전에는 하루 240톤에서 혁신 때는 하루 330톤의 용선 생산으로 엄청나게 증가하였으며 전기로에 대한 용해가 필요없이 산소용융로에서 바로 용융이 되면서 품질이 좋은 용선이 출선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출처
결국 2011년 김정일이 방문을 하였을 때 엄청나게 감격하였으며 특히 성진제강연합기업소에 기술자들을 엄청나게 극찬하고 격려하면서 더욱 3차 핵실험[1] 때보다 더 좋은 사건이라면서 극찬을 하였다고 밝혔다.


3. 기타[편집]


성진제강연합기업소는 전형적인 회전로 방식이지만 결국 엄청난 성공을 이룩함으로 결국 덕현제철소와 청진제강소 그리고 보산제철소에도 성진제강연합기업소와 마찬가지로 주체철 방식을 따르게 된다.
그런만큼 100톤급 초고전력전기로를 운용하게 되면서 엄청난 혁신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 성진제강연합기업소, 보산제철소, 덕현제철소, 2월제강종합기업소, 청진제강소에서 성진제강연합기업소와 같은 주체철 방식을 따르게 되어 있으며 전형적인 100% 비콕스 제철 방식을 동시에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산기반만 따지자면 우리나라 못지 않은 생산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제재로 인한 결국 무리함 때문에 결국 제재만 해결된다면 결국 경제가 되살아날 것은 당연한 일이며 지금 따지자면 현재 방식만 다르지 산소로 제철하는 것은 대부분 채용하고 있는 김책제철연합기업소 혹은 황해제철연합기업소에서도 산소열법용광로로 용선을 생산해 산소전로에서 용강을 생산하게 되었다.


4. 참고 자료[편집]


  • 북한 산업혁신체제 연구 : 철강 및 공작기계산업 중심으로 - 강영실 | 북한대학원대학교 | 2015.06
  • 북한의 기업 - 이석기 | 산업연구원 | 2014.12


[1] 참고로 김정일은 3차 핵실험은 못보고 죽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