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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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338)

(338~347)

303년~347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서진
동진
별칭
성한(成漢), 대성(大成), 후촉(後蜀)
위치
중국 쓰촨
수도
성도
정치 체제
군주제
국성
이(李)
국가원수
황제(306년 이후)
주요 황제
무제 이웅(304~334)
언어
중세 중국어, 저어, 파촉어
문자
한자
종교
유교, 도교, 불교
종족
저족, 한족, 파촉인
통화
한흥전(漢興錢)[1]
현재 국가
중국
1. 개요
2. 역사
3. 촉한과의 관계
4. 역대 황제



1. 개요[편집]


중국의 이민족 국가인 오호십육국의 하나로 302년 실질적인 건국자 저족의 족장 이특이 유민들에 의해 지도자로 추대되어 세력을 형성했고, 이특의 아들 이웅이 즉위해 304년 청두를 함락한 뒤 왕(王)을 칭하고 나라 이름을 '대성(大成)', 연호를 '건흥(建興)'[2]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306년에 이웅(李雄)이 익주, 삼국시대촉한 지역을 중심으로 자립하여 세운 나라다. 촉한처럼 성도에 도읍했는데 처음에 국호를 성(成)[3]으로 했다가 338년 한(漢)으로 고쳤다.[4] 후촉(後蜀) 또는 성촉(成蜀), 호촉(胡蜀), 북촉(北蜀), 저촉(氐蜀), 이촉(李蜀)이라고도 한다. 그 밖에 호성(胡成), 북성(北成), 저성(氐成), 이성(李成), 촉성(蜀成), 이한(李漢), 저한(氐漢) 등으로도 불리며 역사에서는 통칭 성한(成漢)이라고 불린다.


2. 역사[편집]


초대 황제였던 이웅이 명군이라 옛 촉한의 현자 범장생(范長生)을 승상으로 삼고 법을 간소화하고 현명한 정치를 펼쳐 30년 가까운 재위 기간 동안 안정된 평화를 누렸다. 이웅 사후 골육상쟁 끝에 나라가 혼란스러워졌고, 이수가 군림하면서 다시 안정을 되찾는가 싶었지만 말년에 흑화하여 폭정을 일삼아 촉땅의 민심이 이씨를 떠났다. 이세가 즉위했을 때는 촉의 산악 지대에 살던 요족(獠族)[5]이 평지로 옮겨와 분쟁을 일으키는 등 이민족까지 들고 일어났다. 나라가 막장에 치닫자 그틈을 타고 동진환온이 정벌하여 347년에 멸망했다.

이 당시 환온의 병력이 적었는데 위서 열전 84권과 손성의 진양추에 따르면 환온은 불과 7천명의 군사만 가자고 천자에게 아뢰는 문서를 올리고 촉을 정벌했다고 한다. 80여년전 사마소가 16~18만의 대군으로 공격해 정말 아슬아슬하게 간신히 촉한을 정벌하고 곧이어 촉한의 옛 장수인 나헌이 불과 2천으로 보협을 대파하고 오나라 명장 육항의 3만 대군을 막아낸 걸 생각하면 성한은 촉한만큼의 분전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멸망한 셈이다.

여담으로 화양국지의 저자 상거가 이 나라의 역사서인 한지서(漢之書)를 지었다고 하나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나라의 역사는 화양국지진서 재기로 밖에 파악할 수 밖에 없다.

3. 촉한과의 관계[편집]


익주 지방에 들어섰던 이전 왕조인 촉한보다 강역이 좀 작았다. 한중을 차지하긴 했지만 촉한이 멸망하면서 남중 지역도 여전히 진나라가 통치하다가 333년에야 성한의 소유가 될 정도로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음평과 무도도 북조 국가가 차지했다. 촉한과 달리 딱히 북벌이나 대외 원정은 안했지만 후조의 석호와 동진 협공을 계획하다가 그만뒀던 적은 있다. 촉한의 한 세대 뒤에 세워진 사천 일대 왕조라서 촉한과의 관계가 꽤 깊은 편이다. 여담으로 익주를 차지하기도 전에 이특이 '이런 땅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유지를 못 한 유선이 한심하다'라고 깐 일화도 있었다.

다만 정작 성한은 촉한만큼도 유지를 못 했다. 촉한유비가 익주에 입촉한 것 기준으로 50년은 갔는데, 성한은 익주에 들어온지 40여 년 좀 넘고 망했다. 다만 성한의 초대 황제에 오른 이웅은 상술되어 있듯 제법 정치를 잘해서 과거 촉한의 신하였던 범장생을 승상에 올리며 30년 가까운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웅의 사후 후손들이 골육상쟁을 벌여 얼마 못 가 망했다.

한편, 성한 왕조는 촉한의 신하였던 범장생을 승상에 올리고 제갈량의 사당인 무후사성도에 세운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과거 촉한에 향수가 있었던 익주 주민들을 회유하려 했는데, 성한 멸망 이후에도 기록들을 보면 촉한 사람들은 아직도 제갈량을 그리워하고, 강유가 촉을 회복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촉한서한동한을 이었다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조위를 찬탈한 서진에게 멸망당한지 한 세대밖에 안 되었으니 촉한 출신 사람들이 서진에 정신적으로 동화되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촉한을 이은 성한은 촉한과 같은 사마씨 세력에 의해 멸망하였다.


4. 역대 황제[편집]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
-
파군환공(巴郡桓公)
이호(李虎)
-
-
-
-
-
농서양왕(隴西襄王)
이모(李慕)
-
-
-
-
시조(始祖)
경황제(景皇帝)
이특(李特)
건초(建初) 303년 ~ 304년
303년
-
-
-
진문왕(秦文王)
이류(李流)
-
303년 ~ 304년
-
-
-
성도왕(成都王)
이웅(李雄)
건흥(建興) 304년 ~ 306년
304년 ~ 306년
안도릉(安都陵)
1대
태종(太宗)
무황제(武皇帝)
안평(晏平) 306년 ~ 310년
옥형(玉衡) 311년 ~ 334년
306년 ~ 334년
2대
-
애황제(哀皇帝)
이반(李班)
-
334년
-
3대
-
폐제(廢帝)
유공(幽公)
이기(李期)
옥항(玉恒) 335년 ~ 338년
334년 ~ 338년
-
-
-
헌황제(獻皇帝)
이양(李驤)
-
-
-
4대
중종(中宗)
소문황제(昭文皇帝)
이수(李壽)
한흥(漢興) 338년 ~ 343년
338년 ~ 343년
안창릉(安昌陵)
5대
-
-
이세(李勢)
태화(太和) 344년 ~ 346년
가녕(嘉寧) 346년 ~ 347년
343년 ~ 347년
-
-
-
말제(末帝)
범분(范賁)[6]
가녕(嘉寧) 347년 ~ 349년
-
  • 소문제가 국호를 성(成)에서 한(漢)으로 변경.

[1] 소문제 이수의 연호를 화폐 이름에 붙였다.[2] 딱 보면 알겠지만 촉한 제갈량 시절 연호이다.[3] 군벌 공손술이 썼던 성나라랑 국호가 같다. 공손술과 이웅의 성나라 모두 성도에서 나라 이름이 나왔다.[4] 이를 한나라 계승이라는 의미로 추측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소문제 이수의 작위인 한왕(漢王)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일단 이수부터가 이웅 등의 선조들을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해 이특 때부터 이씨를 따르던 관중 유민 세력을 성한 조정에서 쫓아냈고 그들이 정한 국호인 '성' 또한 그대로 쓰고 싶어하지 않았다.[5] 현대 중국 서남부에 거주하는 요족(瑤族)과 다름[6] 성의 승상이었던 범장생의 아들이라고 자칭하고 성한의 남은 세력들을 갖고 2년간 저항하다가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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