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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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The Vocal Trinity.jpg

세계 3대 디바
셀린 디옹 · 휘트니 휴스턴 · 머라이어 캐리

1990년대에,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이면서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던 3명의[1] 여성 디바를 일컫는 말이다.[2]

대한민국에는 흔히 '가창력휘트니 휴스턴, 기교머라이어 캐리, 음색셀린 디옹'이라는 말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Vocal Trinity'라는 말로 아주 잘 알려져 있다.[3]

전세계 여가수들의 롤모델이자 전설로 현재까지도 저 3명을 뛰어넘은 여가수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 위력이 대단하다. 상업성을 기준으로는 마돈나를 제외하고 3대 디바보다 뛰어난 성과를 거둔 여자 가수가 없고, 가창력을 기준으로는 3대 디바보다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여자 가수를 찾기 힘들다.[4][5] 커리어상으로는 압도적인 전성기의 휘트니 휴스턴,[6] 싱글 차트의 여왕인 머라이어 캐리, 앨범 판매의 여왕인 셀린 디온으로 분류된다.

여담으로, 3대 디바 모두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산하에 소속되어 있었다.[7][8]

또 하나의 여담으로 그녀의 각 대표곡들인 I Will Always Love You,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My Heart Will Go On은 가수는 몰라도 노래는 알 정도고 모두 90년대에 발매된 노래이다.


2. 상세[편집]



2.1. Whitney Houston[편집]


1983년 당시 Arista Records의 수장이었던 클라이브 데이비스 눈에 들어 음반 계약을 하고 1985년에 데뷔했다. 3대 디바 중 가장 데뷔가 빠르며 데뷔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데뷔 음반 《Whitney Houston》은 당대 가장 많이 팔린 데뷔 음반이었으며 연속 7개의 싱글이 모두 빌보드 1위를 기록하는 등 각종 기록을 수립하였다.

1990년대 초중반 《The Bodyguard OST》로 압도적인 전성기를 누렸는데, 《The Bodyguard OST》는 여자 가수 최다 판매 음반이자 세계에서 3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며 "I Will Always Love You"는 여자 가수 최다 판매 싱글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다. 커리어 내내 11개의 빌보드 1위곡, 23개의 빌보드 Top10곡을 만들어냈고 22개의 싱글을 각각 전세계 100만 장 팔아치우는 등 만만찮은 상업적 성과를 기록했다. 평생 6개의 그래미, 22개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를 포함 600개 이상의 상을 수상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여성 아티스트이다.

가창력 면에서, 아레사 프랭클린을 제외하고는 평단, 대중 가릴 것 없이 압도적인 여자 가수 1위로 평가받는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여자 가수에 아레사에 이어 2위를 차지하거나 혹은 1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남자 가수까지 포함해도 역사상 가장 훌륭한 가수, 가장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로 세계 5위권을 다투는 편.#1 멜리스마(melisma)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팝에 도입한 인물이다.

영향력도 어마어마한데, 아래에 서술할 머라이어 캐리셀린 디옹의 데뷔 및 성공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셀린 디옹머라이어 캐리가 진심으로 존경하고 우상으로 여기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뿐만 아니라 자넷 잭슨, 아니타 베이커, 토니 브랙스턴, 브랜디, 비욘세, 앨리샤 키스 등등 후대 흑인 여성 아티스트들의 대중음악계 진출과 상업적 성취의 길을 닦아놓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마이클 잭슨과 함께 인종 간 경계를 넘나들며 사랑받던 흑백 크로스오버 스타였다.#2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컨템퍼러리 R&B 장르의 시조이자 흑인 음악의 두 뿌리인 R&B가스펠을 당대에 맞게 완벽하게 표현해냈던 가수로 인정받았다. 대중음악에 최초로 '디바'라는 단어를 도입한 인물이며 '디바의 원조', '모든 디바를 끝내는 디바', '디바 중의 디바'로 여겨지는 가수로서, 1990년대 '디바 전쟁'을 이끌기도 했다.#3

오늘날 흑인 사회에서 마이클 잭슨과 함께 전설로 추앙받고 있으며 2014년 R&B 역사에 끼친 영향력을 인정받아 R&B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2020년에는 모든 가수의 최고 영예라고 할 수 있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는 입성하지 않았는데, 사실 《The Bodyguard OST》의 대성공 이후인 1995년 협회 측으로부터 입성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휘트니의 올케 Pat Houston에 따르면 휘트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밟고 지나가는 것을 원치 않아서 거절했다고 한다.#4 가수 생활 이외에도 배우와 영화 프로듀서, 모델 일을 하기도 했다.

2012년 2월 12일,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3대 디바 중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마이클 잭슨이 사망했을 때처럼 전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해 보도했으며 특히 미국 흑인 사회의 충격은 대단했다. 머라이어 캐리[9]와 셀린 디옹[10]은 트위터를 통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2.2. Mariah Carey[편집]


미국의 대중음악1990년대를 상징하는 싱어송라이터로, 토미 머톨라가 당시 슈퍼스타였던 휘트니 휴스턴의 아성에 대항할 스타를 찾던 중에 눈에 띄어 1990년에 데뷔하여 셀린 디옹과 동시에, 휘트니 휴스턴보다는 5년 늦게 데뷔했다. 데뷔앨범 《Mariah Carey》가 전세계 1400만 장 이상 팔리고 빌보드 1위 곡만 4개를 배출하는 등, 데뷔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며 당시 휘트니와 라이벌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Music Box》와 《Daydream》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커리어 내내 미국에서만 6750만 장의 음반을 판매하여 여성 아티스트로서 2위를 기록 중이다. 또한 무려 19개의 빌보드 1위곡, 28개의 빌보드 Top10곡을 만들어냈으며 총 87주간 빌보드 1위를 기록하였는데, 1위 곡 개수로는 비틀즈에 이은 2위 기록이고 총합 1위 주간으로는 압도적 1위이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1년 연속으로 빌보드 핫 100 1위곡을 배출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빌보드에 의해 'Artist of the Decade'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신드롬급 인기를 끌었는데,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해외 앨범 1위, 3위, 4위, 7위가 모두 머라이어의 앨범이며, 전성기 시절에는 도쿄 돔 4일치 공연을 단숨에 매진시키기도 했다.

2001년 《Gliter》이후로 한동안 침체기를 겪기도 했으나 2005년 《The Emancipation of Mimi》로 화려하게 부활하여 커리어를 갱신하였고 현재까지도 불멸의 캐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통해 커리어를 갱신해 나가고 있다.

머라이어의 보컬은 극한까지 밀어붙인 기교가 돋보이는데, 이는 굉장히 간드러지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게다가 5옥타브의 음역대로 탈인간적인 음역대를 가지고 있으며 멜리스마, 벨팅 창법, 휘슬 레지스터 등 무수한 창법을 음역대를 넘나들며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이에 아레사 프랭클린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역대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 후보로 많이 꼽히며, 적어도 역대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 순위 Top7 내에 꼽힌다.

현재 대중음악계에 끼친 영향력도 막대한데, "Fantasy"를 시작으로 힙합 아티스트를 피처링으로 전격 기용함으로써 힙합을 주류 장르로 부상시키는데 일조하고 노래 가사와 랩을 결합하는 걸 표준화시켰다. 또한 1990년대 후반부터 R&B와 힙합을 결합한 음악을 꾸준히 시도해 왔는데, "Honey"나 "Heartbreaker", "We Belong Together"이 대표적이다.

앞서 말한 극한의 멜리스마(음절 쪼개기), 벨팅 창법 등 머라이어가 구사한 다양한 창법은 후대 가수들의 보컬 스타일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에 머라이어를 보고 가수의 꿈을 키운 가수들이 현재 대중음악계에 존재한다. 이를 두고 '머라이어 키즈'라고 하는데, 테일러 스위프트, 리아나, 아델[11] 등등이 이에 속한다.

미국 대중음악계에서의 성공과 영향력을 인정받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2015년 입성하였으며,[12] 19개의 빌보드 1위 곡 중 18개를 본인이 작사하면서 작사가로서의 천재성과 후대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받아 작사가 명예의 전당에 2020년부로 헌액되었다.


2.3. Céline Dion[편집]


앞서 언급한 두 디바의 출신과는 다르게 캐나다[13]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디바로, 1980년 유럽 및 캐나다에서만 데뷔하였고 1990년 첫 영어 앨범 《Unison》을 발매하면서 머라이어 캐리와 동시에 월드와이드 데뷔를 하였다. 첫 음반부터 바로 성공을 거둔 휘트니 휴스턴이나 머라이어 캐리와는 달리, 2번째 영어 앨범까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지만[14] 1집에는 "Where Does My Heart beat Now"를 히트시켰고 곧이어 1991년 피보 브라이슨과 함께 부른 미녀와 야수의 OST "Beauty and the Beast"가 빌보드 싱글차트 9위까지 올라가면서 미국에도 점차 이름을 알려나간다. 그러던 와중 3집이 전 세계적인 성공을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성공가도를 걷기 시작한다.

휘트니 휴스턴이 배우 활동에 집중하고 머라이어 캐리도 초히트작을 다 내놓았던 시점인 1996년 4집 《Falling into You》부터 1998년 "My Heart Will Go On"까지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발매한 연달은 4개의 음반을[15] 합한 판매고가 1억 장에 육박하는 등, 만 4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초히트 음반을 연달아 배출시키면서 당시 어떤 가수들 보다도 압도적인 전성기를 누렸다. 한편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휘트니와 머라이어가 침체기였던 2002년에 발매한 《A New Day Has Come》도 성공시키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 3대 디바 중 막강한 인기를 얻곤 했다.

커리어 내내 빌보드 1위곡 4개와 Top10곡 9개를 배출하였는데 앞선 두 디바들에 비해 비교적 매우 적지만, 음반/싱글 판매량을 보면 앞선 두 디바들보다 우위에 있기도 하다.[16][17]셀린 디옹은 전 세계 10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자 여성 아티스트의 싱글로써는 3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My Heart Will Go On"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유럽 한정으로 세 디바 중 가장 먼저 데뷔하였고 불어에 능통[18]해서 유럽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데, 3대 디바 중 유럽 지역에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프랑스어 음반 《D'eux》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셀린의 보컬은 특유의 음색과 함께 절제되고 안정적인 점이 두드러진다. 앞선 두 디바들과의 두드러진 차이점이기도 한데, 셀린은 두 디바들과는 다르게 극한의 기교라거나 압도적인 성량을 앞세우면서 '화려함'을 주 무기로 삼지 않고 노래를 불렀으며, 바로 이 점이 셀린의 목소리를 오래 보존케 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19]물론 노래 난이도는 극악인건, 다 똑같다마약과 흡연으로 원래 목소리를 잃어버린 휘트니나, 지나친 기교와 성대 결절로 컨디션에 따른 보컬 기복이 심해진 머라이어와는 달리, 셀린은 본인의 가창력을 거의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20]

대중들에게 항상 최고의 여성 가수로 꼽히는 인물이며, 아델레오나 루이스, 켈리 클락슨, 리아나 등 현재 대중음악계의 탑급 아티스트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사생활에 관한 여러 구설수가 쏟아졌던 앞선 두 디바에 비하여 어떤 구설수도 나오지 않는 철저한 자기관리로도 유명하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가수로 인정받아 1999년 캐나다 명예의 거리에 입성하였고 2013년 캐나다 최고 훈장을 수상했다. 또한 미국 대중음악계에서의 성공과 영향력을 인정받아 2004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하였다.


3. 관련 문서[편집]


  • 3대
  •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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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대 디바라는 이름값 답게 가창력, 상업성, 유명도, 영향력 이 4가지 부분에서 세 사람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90년대에는 토니 브랙스턴이나 샤니아 트웨인까지 포함해서 '4대 디바'와 같이 불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오롯이 세 가수만이 '3대 디바'로 꼽힌다.[2] 다만 휘트니 휴스턴은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인기를 먼저 누렸다. 1993년 영화 <보디가드> 이후 가수보다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쌓는 데 더 집중하여, 1990년대에는 두 디바보다는 가수로서 활동량이 적었다. 물론 《The Bodyguard OST》와 "I Will Always Love You"가 워낙 레전드급으로 히트했다 보니, 임팩트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exhale도 꽤나 크게 히트했고, 정규 4집도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3] 간혹 세계 3대 디바라는 호칭 자체가 한국에서만 만들고 유효되는 호칭인줄 알지만 이미 그래미에서 저 3명을 두고 앞서 표기한 Vocal Trinity라 했기에 틀린 호칭은 아니다.[4]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아레사 프랭클린, 라라 파비앙, 패티 라벨, 리사 피셔등 훌륭한 가창력을 가진 가수들이 몇몇 있고, 샤니스 윌슨처럼 음역대가 동급인 가수도 있지만, 이들 중 누구도 3대 디바만큼의 성공을 거둔 적은 없다.[5] 후대 가수들 중 3대 디바와 그나마 견줄만 할 정도의 성공를 거둔 가수들은 비욘세, 리아나, 테일러 스위프트, 아델 정도인데, 비욘세를 제외하면 보컬 역량으로는 3대 디바와 비견되지도 못할뿐더러, 본인들부터가 3대 디바들과 비교되는 걸 실례라고 여길만큼 그 위용이 엄청나다. 그리고 애초에 이 4명도 휘트니, 머라이어, 셀린의 엄청난 팬들이다.[6] 휘트니는 전성기인 1990년대에 많은 활동을 하지 않아 뒤의 두 사람에 비해 발매된 싱글과 앨범 수가 매우 적다. 그렇지만 데뷔 후 몇년 안 돼 백악관 공연 및 여러 공연을 단기간 내 이루어진 것을 보아 두 디바에 비해 압도적인 전성기 또한 맞다.[7] 머라이어 캐리는 아예 1990년대에 소니 뮤직(전 컬럼비아 레코드)의 사장이었던 토미 머톨라와 결혼까지 했었다. 2000년 이후엔 여러 소속사로 이적했다가, 2015년에 에픽 레코드로 이적하면서 다시 친정으로 돌아갔다.[8] 셀린 디옹은 아예 1990년 미국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계속 활동중이다. 휘트니 휴스턴(아리스타 레코드)은 원래 베르텔스만 뮤직 그룹(BMG) 소속이었다가, 2004년에 소니 뮤직이 인수합병하면서 소속이 바뀌었다.[9] 세간에 돌았던 사이가 항상 안 좋았다는 말과 달리, 가장 먼저 애도를 표한 사람은 머라이어였다.[10] 셀린 또한 휘트니는 자신의 우상이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고 휘트니 휴스턴 사망 후 그래미 시상식에서 짧게 "Saving All My Love for You"을 불렀으며 후에는 "Greatest Love of All"을 열창하며 휘트니 휴스턴을 추모했다.[11] 이쪽은 셀린 디옹의 팬에 더 가깝다.[12] 사실 좀 많이 늦은 편이다.[13] 미국 출신으로 오해 받는다.[14] 1집《Unison》, 2집 《Celine Dion》[15] 4집《Falling into You》, 5집 《Let's Talk about Love》, 캐럴 음반 《These Are Special Times》, 컴필레이션 《All the Way... A Decade of Song》. 4집이 2,800만, 5집이 3,000만, 캐럴 음반 1,150만, 컴필레이션 2,200만[16] 빌보드가 전체 판매량과는 관련이 없다는 걸 과 더불어 보여준 셈.[17] 셀린 디옹 입장에선 억울할만 한게, 음반 판매량이 너무 잘 나오다 보니 막상 싱글 판매가 잘 안되었다...거기다 본인도 그쪽엔 관심없다 보니, 차트 커리어는 생각보다 약하다.[18] 불어 말고도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등등을 마스터 해 음반을 내거나 해당 국가에서 직접 노래하기도 한다.[19] 사실 셀린은 미국 데뷔 시작인 1990년 Unison부터 후두염이 있었다. 이 때문에 피로했던 스케줄을 시작으로 목을 함부로 했다가는 금방 목소리를 잃을 것 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3주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두 디바보다 혹독한 목소리 관리를 하는것도 저 이유 때문이다.[20] 목관리 하는 방법을 보면 가창력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방법이 있다. 무대에 나가기 전에 말을 하지 않는다는지 산소호흡기를 착용하면서 무대를 준비하면서 운동도 되게 열심히 한다. 무리를 너무 해서 많이 마른 체격이긴 하지만 Courage World Tour의 그녀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21]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3대 디바의 저작권 및 유통권은 소니 뮤직이 전부 가지고 있다. 머라이어 캐리는 중간에 다른 레코드사에 소속되어 있긴 했지만, 2015년에 에픽 레코드(소니 뮤직)에서 발매한 베스트 앨범 "#1's To infinity"에 노래들이 잘만 들어간거 보면 딱히 문제는 없는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