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사진/정치·외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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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1.1. 한반도
1.1.1. 대한민국 내
1.1.2. 남한&북한
1.1.3. 북한
1.1.4. 대한민국과 그 외 국가
1.2. 그 외 국가
2. 역사
2.1. 한반도 내
2.2. 그 외


1. 현대[편집]



1.1. 한반도[편집]



1.1.1. 대한민국 내[편집]


  • 김대중/김영삼
    파일:external/www.kgnews.co.kr/208184_32055_4218.jpg
    제13대 대통령 선거 이후의 둘의 관계를 미리 암시하는 사진이라고 할 수가 있다[1]. 그나마 2009년 여름, 김대중이 죽기 직전 김영삼김대중을 병문안하면서 극적인 화해가 성사되었다.

  • 노태우/최규하/김대중/전두환/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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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국민의 정부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고견을 듣기 위해 처음 마련한 자리로, 여기에 김종필만 추가된다면 가히 '한국 근현대사 한장 요약' 수준인 라인업이다. 김종필을 빼더라도 이 5인을 잘 보면 어색하지 않은 관계가 단 한 군데도 없다. 쿠데타, 독재vs민주, 3차례에 걸친 정치보복, 합당과 분당, 동지에서 정적으로, 2차례의 사형 선고, 측근 배신 등등 나올 수 있는 건 다 나온 수준. 당시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는 활발히 자신의 생각을 밝혔으나 YS는 DJ가 전 - 노를 사면조치한 것도 모자라 청와대에 초청까지 했다는 것에 굉장히 비판적인 입장인지라 입을 닫았다고... 확실히 저 사진에서도 독재과거 청산을 외쳤던 YS가 특히 유독 붕 떠 보인다. 게다가 하필 자리도 최대 앙숙인 전두환 옆이라...[2].

  • 김영삼/노태우/전두환/최규하
    파일:kws21_100447_1[20].jpg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식에서 찍힌 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재밌는 점은 후임자가 전임자를 정치적으로 공격했다는 것인데, 전두환은 최규하를 5.17 내란으로 하야시켰고, 노태우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 5공청산을 명분으로 군과 정계에서 전두환 라인을 숙청하고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내버렸다[3]. 그리고 김영삼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구속시켜 교도소로 보냈다.

  • 김대중/김영삼/전두환/노무현
    파일:external/www.koreadaily.com/235044546.jpg
    상호간의 관계가 전부 어색한 그야말로 희대의 사진. 먼저 전두환과 나머지 셋이야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고, 노무현도 본래는 민주계에 속했다가 김영삼행보에 실망하여 김대중으로 갈아탄 뒤로는 관계가 서먹서먹해졌다[4]. 게다가 대북송금 사건 이후로는 노무현김대중의 관계도 서먹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김대중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풀어졌다[5][6].

  • 김영삼/전두환
    파일:external/static.news.zum.com/388410_article.jpg
    그나마 김대중전두환을 용서하기라도 했지만, 김영삼전두환에 대해서 아예 대놓고 "대통령도 아니다!"라며 분노하는 모습은 사망 때까지 여전했다. 이렇게 상호 간의 관계는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앙숙이었지만, 2015년 가을, 김영삼의 장례식에 전두환이 조문을 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해당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전 대통령이 참석한 장면을 찍은 사진인데, 역대 순서대로 앉았던 건지 전두환의 옆자리에 김영삼이 걸린 것이다. 원래 전두환 옆에 노태우가 와서 앉아야 했겠지만, 정작 노태우는 건강 문제로 불참한 상태였다. 또한 이날 김영삼은 취임식에 아픈 몸을 이끌고 와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본인렘수면을 전국에 생중계 하였다고 한다[7].

  • 노무현/김영삼
    파일:1111038852.jpg
    원래 노무현 前 대통령의 발굴, 정계 입문은 김영삼 前 대통령이 추진했으나, 통일민주당의 3당 합당 이후로 노무현김영삼에게 반발해 탈당하면서 크게 관계가 틀어졌다. 이러한 두 사람의 악연은 노무현의 장례식 때 김영삼이 노무현의 장례식 방식을 두고 비판한 것에서도 봤듯이 마지막까지 풀어지지 못했다[8].



  • 김영삼/박근혜
    파일:external/archivenew.vop.co.kr/22110516_YOON3802.jpg
    김영삼박근혜에게 그 유명한 칠푼이라는 독설을 날린 적이 있을 정도로 사이가 상당히 나쁘다. 더불어서,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와도 사이가 상당히 나빴으며[9],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온 세상에 까발려지면서 칠푼이 발언이 재평가 받았다. 참고로, 해당 사진은 2012년 박근혜 후보에게 독설을 날린 이후 시점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무렵의 YS는 할 말 다 할 만큼 정신은 또렷하였지만, 고령[10]으로 웃는 표정을 담당하는 근육이 약해져 맘 편히 참가하는 행사에서도 잘 웃지는 못한 상태였다. 참고로 뇌졸중 증세가 본격적으로 심해진 건 2013년부터이다.

  • 박근혜/노무현
    파일:external/pbs.twimg.com/Cw9QZVXVEAAlryr.jpg
    2004년 8월, 청와대에서 열린 영수회담에서 찍힌 사진. 노무현이 대통령에서 쫓겨날 위기에 몰렸을 때 박근혜는 노무현을 대통령에서 퇴출시키려고 몹시 애썼으나 실패했다. 헌데 역사가 요상한 쪽으로 반복되어 정확히 12년 후 이번에는 박근혜 본인이 대통령에서 쫓겨날 위기에 몰렸는데, 노무현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대통령에 복직한 것과는 달리 박근혜는 아예 대통령에서 최초로 탄핵되는 기록을 남겼다[11].

  • 김병준/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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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정부 당시 문재인은 청와대 비서실장, 김병준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두 사람은 노무현 前 대통령 밑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이었다. 하지만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두 사람 간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12] 김병준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직전 국무총리로 지명되었다가 철회되고, 문재인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김병준이 야당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이상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 이명박/노무현
    파일:external/i3.ruliweb.com/15bf3880d603a04a7.jpg
    2008년 2월 25일,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찍힌 사진이다. 이후 노무현이명박에 의해 박연차 게이트 사건에 포괄적 뇌물죄로 자주 소환조사를 받다 자살했고, 노무현이 세상을 떠난지 8년 10개월 후인 2018년 3월 이명박 역시 검찰에 불려가면서 완전한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가 되었다. 친노친문 세력의 정치인, 시민들 역시 이명박이라는 이름 석자만 들어도 박박 이를 가는 상황이다. 정작 노무현은 죽기 직전 유서로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고 한 걸 생각한다면 씁쓸한 현실이다.

  • 노무현/추미애
    파일:노추.jpg
    한때 친했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이게 엄청나게 어색한 사진이 되고 말았다. 다만, 노무현 본인은 이후에 자신과 대립했던 추미애를 용서하고 종종 안부를 묻기도 하고 세 번씩이나 환경부 장관으로 입각제의까지 했다고 한다. 정작 추미애 본인은 탄핵참가라는 역대급 통수를 친 사람이 장관으로 입각되기엔 인간적으로 염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고사하였지만...


  • 이명박/노회찬
    파일:2MB-NHC.jpg
    이명박이 17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에는 의외로 상호간에 친분이 있는 사이었다. 노회찬심상정진보신당을 창당했을 때 이명박이 직접 기념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에는 전혀 어색한 사진이 아니었다. 다만, 현재는 예전에 비해서는 다소 관계가 멀어진 상황이고, 이명박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노회찬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렇게 둘 다 마무리는 비참했다.


  • 이명박/노회찬/손학규
    파일:03972197_20070302.jpg
    이명박과 노회찬의 관계는 이미 상술했고, 손학규의 경우는 본래 이명박과 같이 학생운동을 했었고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명박, 박근혜 다음 가는 3인자로도 군림했었으나, 이후 2007년 탈당한 이후로 민주당계에 몸을 담으면서 많이 어색해졌다. 그나마 손학규는 2018년 8월부터 중도보수 정당이자 일부 친이계 인사[13]가 몸 담고 있는 바른미래당 대표를 맡고 있기는 하다.

  • 이명박/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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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external/www.dailymail.kr/art_1359454540.jpg
    첫번째 사진은 노무현 정부 당시 사학법 반대를 외치며 한나라당 의원들과 함께 시위하는 사진이며, 두번째 사진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의 사진이다. 의외로 이 둘은 오래 전부터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1970년대 최태민의 뇌물 사건 때부터 악연이 있었으며, 이명박 정부 시절 친이친박을 공천학살했고, 박근혜 정부 당시 이명박박근혜의 비밀을 쥐고 있기 때문에[14] 박근혜이명박 본인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공천학살로 보복했다. 그러자 박근혜 탄핵 당시 이명박은 탄핵을 도왔다.

  • 정두언/이명박
    파일:정두언과 이명박.jpg
    원래 정두언은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이명박을 도와 이명박의 서울시장 당선의 1등 공신이자 원조 친이였고, 제17대 대통령 선거한나라당 경선과 본선에서는 참모 역도 맡았으며,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이명박 정부의 개국 공신이 되었고, 이후로도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역임할 정도로 이명박과는 한때는 상당히 가까웠다. 그러나 이상득과의 갈등[15]시발점으로 해서 친이계 내에서 입지가 상당히 좁아졌고, 이후 이명박에게 버림받음과 동시에 완전히 반 이명박으로 돌아섰다. 반 이명박으로 돌아선 이후로는 계속 '이명박 저격수'로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정두언은 2019년 여름자살했는데, 이후 이명박은 10년 만에 뒤늦은 화해의 악수를 청하면서 안타깝다고 하였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이제 와서 무슨 짓거리냐며 욕하는 중. 참고로, 이명박도 정두언의 사망 당시에 빈소에 조문하려고 하였지만, 재판 중인데다 허가부터 받아야 하는데 워낙 절차가 복잡해서 못 가게 되었다고 한다. 대신 조화만 보냈다.

  • 이상득/정두언
    파일:이상득과 정두언.jpg
    위에 쓴 것처럼 정두언이 이상득과의 갈등을 기점으로 먼저 사이가 틀어져 버리면서 이후로 이명박과도 틀어졌다.


  • 심상정/이재오
    파일:NISI20121112_0007322884_web.jpg
    원래 둘 모두 운동권에서 정치로 입문했지만[16], 이재오는 보수정당으로 본격적인 정치생활을 시작해서 친이계의 2인자가 됐고, 심상정은 노동권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다만, 노회찬심상정 모두 이재오와의 개인적인 친분은 다소 유지되고 있다. 일단 이재오 본인은 과거 독재정부에 맞선 이력이 화려하고 그에 대한 자부심이 남아있기 때문.


  • 서청원/이재오
    파일:서청원과 이재오.jpg
    2006년 이전까지는 친했으나, 2007년 이후로는 틀어졌다. 원래 서청원은 이명박, 이재오, 손학규와 마찬가지로 6.3 항쟁에 참여했던 인물이었고, 이 덕분인지 이명박과도 인연이 있는 사이었으나, 2007년 이후로 친박/친이로 갈리면서 사이가 크게 나빠졌다고 한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부터 이명박이 서청원을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친이계와 친이계의 중진인 이재오가 당권을 잡았을 때, 서청원은 2008년 한나라당 공천에서 바로 광탈했다. 참고로, 저 뒤에는 정병국남경필도 깨알같이 나오는데, 서청원은 이들과도 사이가 영 좋지 않다.

  • 이상득/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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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이상득정세균은 상호간에 친분이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이 사진은 한일기독의원연맹 창립 때 찍은 사진이다.



  • 홍준표/박근혜/이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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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의 머리 스타일로 보아 대략 2005년 경의 사진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이 사진은 2017년 12월,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이다. 당시 이혜훈은 초선 친박의원이었고, 홍준표는 당 혁신위원장직을 맡고 있었다. 허나, 박근혜와 홍준표도 상호간의 정치관이 달라서 그런지 당시에도 양자간의 관계는 좋지 못했던 편. #






  • 박근혜/황진하
    파일:박근혜와 황진하.jpg
    황진하는 소위 말하는 원조친박인사였으나, 박근혜의 독단적인 행보에 반발하여 친무로 전향했다.


  • 박지만/신동욱
    파일:박지만과 신동욱.jpg
    박씨 남매들의 육영재단을 둘러싼 제2차 육영재단의 난을 불러일으킨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박지만과 둘째 누나 박근령의 재혼한 남편 신동욱과의 갈등에서 기인되었다. 게다가 박지만은 작은누나가 신동욱과 결혼하는 것도 격하게 반대했던 적까지 있었다. 이랬던 두 사람은 2018년 가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재회해 눈길을 끌었다. 이 사진이 바로 박지만과 신동욱의 재회로 화제가 된 그 사진이다.

  • 박근령/김종필
    파일:박근령과 김종필.jpg
    자신의 보스이자 처숙부였던 박정희의 딸이지만, 육영수, 박정희 피살 이후 정치적으로 대립하며 사이가 나빠졌다. 아예 박근혜, 박근령 이 두 자매에 대해서 김종필은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의 나쁜 점만 골라 닮았다고 혹평까지 가했을 정도였다. 허나 김종필은 박근혜와 박근령의 남동생인 박지만에 대해서는 범법자이긴 하지만 다소 안타까워 하는 듯한 발언을 보였다.

  • 김종필/박근혜
    파일:김종필과 박근혜.jpg
    바로 위와 같다. 사이가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구속재판을 받는 중이긴 했지만, 김종필의 장례식에 조화도 보내지 않았다.[17]

  • 이명박/문재인
    파일:2MB-MJI.jpg
    해당 사진은 김영삼의 사망일에 (김영삼의) 빈소에서 만나서 악수를 나눈 사진으로, 사진이 이렇게 나와서 그렇지 실제로는 만나도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기는 한다고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MB 정부 시절의 오만가지의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더 이상 두 사람의 사이가 좋기는 힘들다고 봐야 할 듯 하다. 게다가 2018년 1월, 이명박의 성명을 두고 문재인이 분노하기까지 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더 멀어지는 것은 사실상 기정사실화인 셈이다. 이후 동년 , 문재인에 의해 이명박이 구속되면서 제대로 확인사살. 애초에 두 사람은 사실 노무현 하나 때문에 그 이전부터 친해질래야 친해질 수가 없는 사이었다.



  • 유시민/이정희/심상정
    파일:external/archivenew.vop.co.kr/05110327_CHUL9988.jpg
    통합진보당 창당 당시 찍은 사진이다. 사실, 저 당시에는 저 장면이 딱히 문제가 될 사진이 아니었으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 뒤로는 관계가 완전히 망가졌다.[18]

  • 김문수/119 대원
    파일:external/cdnweb01.wikitree.co.kr/img_20111230153819_86a66a06.jpg
    야, 빨리 웃어! 웃으라고! 도지삽니다 문서 참고. 양 옆 소방관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사실 이 항목의 다른 대부분의 사진들은 앙숙이거나 라이벌일 뿐이지만, 이 사진은 일방적 가해자와 일방적 피해자들이, 그것도 압도적 강자인 도지사 김문수의 압박에 억지로 사진을 찍은 것이기 때문에 어색하기보다는 안타까운 사진이다.

  • 박원순/정몽준
    파일:external/blog.donga.com/8554205341400388847.jpg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등록하고 만난 모습이다. 촬영 직후에는 박원순이 "얼굴이 많이 좋아 보이시네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정몽준이 "얼굴 좋아 보이는 게 기분 나빠요?"라며 되지도 않는 핀잔을 줘서 "아니 그 얼굴이 좋다는 건 좋은 의미인데..."라며 당황해 하는 영상이 찍혔고, 당연히 정몽준의 표는 그만큼 깎였다.



  • 문재인/김무성
    파일:external/newsroom.etomato.com/NISI20150902_0005849885.jpg
    양대 주류 정당 대표 간의 포옹. 둘이 경남중 동문인지라 이런 사진이 찍힐 수 있었다. 사실, 대한민국정치가들은 서로 추구하는 뜻과 이념이 달라도 친하게 지내는 사례가 많긴 하다. 실제로 두 사람은 상당히 친한 편이라고 한다. 사실, 정치계에서는 사이가 안 좋아봐야 좋을 것이 없다.[19] 일례로 김무성 본인이 둘째 딸 결혼식에는 같은 당의 동료 정치인들도 일부러 초대하지 않았는데, 문재인이 결혼식장을 방문하자 와줘서 고맙다며 맞이했단다.


  • 정진석/현기환
    파일:계파분열.png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 새누리당친박-비박 계파 갈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박근혜정부 시절 여당인 새누리당의 정진석 원내대표와 청와대의 현기환 정무수석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을 위하여 광주행 KTX를 탔는데 우연히 앞뒤에 앉게 된 사진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바로 전날 새누리당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자신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비박계 김용태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계획을 강행했으나 친박계의 보이콧으로 무산됐다...[20] 이걸 현 수석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막았다는 설이 파다했는데... 하필 바로 다음날 KTX에서, 그것도 바로 앞 뒤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2시간 동안 인사도 안 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날 정의화 국회의장도 같은 객차에 탔는데, 정진석과만 악수를 했다고 한다.[21]

  • 정세균/서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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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국회의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정세균이 선출된 뒤. 본래 서청원은 오래 전부터 국회의장직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었고[22], 만약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면 원내 1당+현역 최다선 의원이란 위치 때문에 실제로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해서 결국 국회의장 자리를 더불어민주당정세균 의원에게 양보해야 했다. 게다가 서청원은 그 국회의장을 선출하는 본회의의 임시 의장 역할을 맡은 뒤에 바로 정세균에게 넘겨줘야 했으니 서청원으로서는 정말 감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 문희상과 똑같은 구도의 사진이 하나 더 나오게 된다.

  • 장제원/표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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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2월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누리당 장제원 의원(왼쪽)과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악수하며 서로 사과하고 있다. 장 의원과 표 의원은 지난 1일,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표 의원의 탄핵 반대 명단 SNS 공개 여부를 두고 언쟁을 벌였었다. 사실 이와는 별개로 둘은 절친이라고 한다.

  • 정병국/원희룡/남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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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시절부터 보수정당의 소장파 겸 개혁파로 유명했던 속칭 남원정 트리오이다. 이들은 이 때 바른정당을 창당하여 2017년 중후반까지는 크게 문제가 있던 사진은 아니었고 오히려 당연한 사진이었다. 그러나 2017년 말, 당의 정체성 문제로 세 사람의 견해가 달라지면서[23], 2018년 초 남경필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면서 사실상 갈라지게 된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친분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원희룡제주도 선거에서 이겼지만 남경필은 수많은 논란이 있던 더불어민주당이재명에게 패배한다.



  • 박범계/김진태
    파일:박범계와 김진태.jpg
    같은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박범계의 경우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강성 친문 성향인 탓에 둘은 사이가 안 좋다. 법사위에서 정책안을 놓고 티격태격 말로 싸우는 모습도 포착된다. 참고로, 둘 다 법대 출신에 크리스천들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박범계는 하태경과도 정치적으로 이래저래 작은 투닥거림을 하긴 하지만, 사석에서는 매우 친하다고 한다.

  • 홍준표/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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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준표는 알다시피 문재인을 친북 좌파라고 비판했고, 문재인을 비판할 때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엮어서 "즈그 대장이 뇌물먹고 자살했다. 비서실장이 그걸 모르면 안된다."라고 비판한데다가 "내가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으면 노무현 대통령처럼 자살을 할게요." 같은 고인드립을 유세에서 한 바람에 사이가 좋지 못하다.

  • 유승민/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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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사진은 2011년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 당시의 모습이다. 홍준표 당대표 체제가 반 년 만에 몰락하게 된 원인이 유승민을 필두로 한 최고위원직들의 단체 사퇴 때문이었다.[24] 두 번째 사진은 이로부터 6년 후인 2017년 , 제19대 대통령 선거 토론회에서의 상호간의 어색한 모습이다.


  • 황교안/문재인
    파일:SSI_20170426161213.jpg
    파일:external/img.seoul.co.kr/SSI_20170510144848_V.jpg
    첫 번째 사진은 제19대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2017년 4월 26일,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과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가 경기도 포천시에서 열린 통합화력격멸훈련에 참석하여 서로 악수를 나누던 사진이다. 그리고 첫 번째 사진으로부터 정확히 보름 후, 대한민국 대통령국무총리로서 각각 재회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아직 국무총리로 재직 중이던 황교안과 오찬 자리를 가졌을 때의 사진이다. 단순한 정치 계파로서의 적대관계 정도가 아니라,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 밑에 공안검사 출신의 총리가 있는 모양새이기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황 총리는 3일도 안 돼서 사표 쓰고 나가 버렸고, 이후 야당 대표로서 반문의 선봉장이 되어 버렸다.



  • 김무성/유승민
    파일:2017091002208_0.jpg
    2017년 9월 이후 바른정당 내부에서 자유한국당과의 통합론을 주장하는 친무계와 자강론을 주장하는 친유계 사이 갈등이 격화되자 긴급 최고위원 간담회를 개최한 뒤 만찬 자리에서 당이 화합하고 있다는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찍은 장면이다. 우리는~ 귀염둥이~ 뽀뽀뽀 친구~ # 그러나 이러한 사진까지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내 갈등은 이후에도 더욱 격화되었으며, 같은 해 11월에 김무성과 통합파 세력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면서 결국 불구대천의 관계가 되고 말았다. 후에 유승민은 이 때를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라고 밝혔다. #

  • 주호영/정운천/하태경
    파일:0002957963_001_20170921173319099.jpg
    주호영은 통합파와 자강파의 중재파였으나 자유한국당 연대파로 입장을 바꿨고[27] 정운천과 하태경국민의당 연대파거나 자강파다 보니 사이가 많이 어색해졌다. 특히 김명수 표결 직후부터는 더 어색함이 강해졌다. 주호영은 결국 탈당했다.


  • 홍준표/김태흠
    파일:어색한 사진_홍준표-김태흠.jpg
    홍준표가 당 대표가 된 이후 신당권파인 친홍과 구 친박 간의 영 좋지 않은 관계를 알려주는 짤방. 어색하게 천장만 쳐다보는 김태흠의 표정이 참으로 압권이다.

  • 홍준표/류여해
    파일:0003064022_002_20170703183944819.jpg
    본래 류여해는 원외 신분으로 최고위원에 깜짝 당선되었다는 점에서 친홍으로 분류되었고 실제로 홍준표의 신임을 받았으나 어느 순간 두 사람 간 갈등이 깊어졌고 결국 홍준표가 류여해를 당협위원장직 박탈 및 제명시키면서 극에 달한다. 그러자 류여해홍준표/논란/여성비하 문제를 1건 터트려버린다.


  • 안철수/조배숙
    파일:0002238781_001_20180207131241619.jpg
    이 사진을 찍기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같은 국민의당 소속이었지만 분당 과정에서 엄청난 갈등을 겪는다. 이 사진이 찍힌 당시에도 매우 어색해했다고 한다.

  • 홍준표/추미애/문재인/유승민/조배숙/이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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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3월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대표와의 오찬 회동 당시 모습이다. 청와대와 야당 간은 물론이고 야당 간에도 서로 입장이 충돌하는 사안이 많았기에 이 사진 자체가 너무 어색해 보인다는 의견이 많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홍준표 혼자 멀찍이 떨어져 있다.

  • 홍준표/안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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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 다 스타검사로 주목을 받아 김영삼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지만[28], 둘의 사이는 2010년 한나라당 당대표 자리를 두고 전당대회에서 맞붙은 후 안상수가 승리해 대표가 되고 홍준표가 최고위원이 되면서 사사건건 대립했다. 특히 홍준표가 전당대회 마지막 TV토론회에서 안상수의 개소송을 문제 삼았던 일이 유명한 일화로 남았다[29]. 악연은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둘이 각각 창원시장 - 경남도지사로 재직 중일 당시 창원시장이던 안상수는 통합 창원시의 여세를 몰아 광역시로 승격을 추진했다. 이때 안상수를 향해 홍준표는 “과거에는 중앙에서 같이 정치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기초단체장과 광역단체장.”이라며 “기초단체장이 광역단체장한테 반역하고 대드는 것이 잘못이다.”라고 비난했다. 이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2018년 3월 30일, 별도의 경선 과정 없이 홍준표의 측근인 조진래 전 경남 정무부지사가 창원시장 후보로 공천되자 안상수는 공정한 경선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국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신분으로 출마했고, 결국 자신도 당선되진 못했지만 조진래 후보를 떨어뜨리는 데에는 성공[30] 홍준표한테 엿을 제대로 먹였다. 그리고 안상수는 정계 은퇴를 한다.

  • 노동당 - 민중당 - 정의당 울산시당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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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울산 지역에서의 진보단일화를 이뤄냈을 때 각 당의 시당위원장이 모인 모습이다. 단일화를 위해 모이긴 했다만 각 당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생각해보면 참으로 껄끄러운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불편한 관계라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는지 저 사진이 찍힌 뒤 며칠 후 민중당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북구청장과 재보궐선거 울산 북구의 단일화 협상이 중단된 상황.


  • 권선택/염홍철
    파일:권선택과 염홍철.jpg
    염홍철이 후임자 권선택을 위해준다고 기를 써서 예타 통과시켜놨더니 그걸 뒤엎어서 거하게 통수를 쳐버렸다.

  • 박성효/권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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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네거티브를 심하게 해대다 보니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31]임에도 험악해졌다. 게다가 박성효는 염홍철 밑에서 부시장을 하던 사람인데다 염홍철과 같은 당이었기에 염홍철의 정책을 엎어버린 권선택에 대한 반감이 심했을 듯 하다.

  • 박성효/염홍철
    파일:박성효와 염홍철.jpg
    권선택이 전전임자와 전임자와 워낙 사이가 앙숙인 탓에 잘 부각이 안 되는 사실이지만, 사실 박성효와 염홍철도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다. 박성효는 본래 염홍철에 의하여 대전광역시청 국장과 기획관리실장을 임명 받은 바 있고, 2005년에는 대전광역시 정무부시장으로까지 임명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박성효가 대전광역시장 출마를 선언하는 과정에서 염홍철을 배신하고 친박으로 전향하면서 박성효와 염홍철도 사이가 나빠졌고, 이 과정에서 유세를 하다가 서로 언쟁을 벌이기도 했으며[32], 이후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각각 한나라당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재대결을 펼친 것을 보면[33] 확실히 이 두 사람도 사이가 좋은 편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가 있다.


  • 여영국/손석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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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두 후보가 3월 26일 민주노총 경남본부 정기대의원대회에 참석한 모습. 진보단일화를 두고 계속해서 갈등을 벌이고 있는데다가, 손석형 측의 노회찬 전 의원에 대한 고인드립성 발언에 여영국 측은 자유한국당과 민중당 사이의 정신적 단일화라고 강하게 대응하느라 더욱 어색해보인다. 더군다사 저 자리가 진보단일화를 촉구하는 자리였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 우근민/원희룡
    파일:우근민과 원희룡.jpg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원희룡의 제주도지사 출마 가능성이 지역에서 서서히 거론되기 시작하자 당시 무소속이었던 우근민은 지지자 1만 7천여명을 이끌고 새누리당에 동반 입당하였다. 이는 대의원 20%+당원 30%+일반국민 30%+여론조사 20%의 비율로 치르도록 되어 있는 새누리당 경선룰 상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시도였으나, 박근혜대통령 당선 후의 새누리당 지도부 또한 당내 개혁파 인사였던 원희룡의 원내 진입에 난색을 표하던 입장이라 당헌·당규상 예외규정을 적용하여 여론조사 100% 방식으로 경선룰을 확정짓게 되었고, 결국 우근민은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불출마를 하게 되었고, 이 때부터 우근민과 원희룡은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원희룡이 신구범, 김태환 등 전직 제주도지사들과 오찬을 갖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있는데, 우근민만은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을 정도다.



1.1.2. 남한&북한[편집]


  • 박근혜/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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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유명한 2002년 방북 당시 사진이다. 다만, 이 방문 자체가 불법 방북 논란이 있으며[34], 박근혜 편지 사태로 인해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것과는 달리 둘의 사이가 아주 긴밀하지 않았느냐는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 김장수/김정일
    파일:2016121433208554.jpg
    2007 남북정상회담
    당시 찍힌 사진으로, 김장수 당시 국방부 장관이 김정일을 만났을 때 목례를 하며 악수를 한 다른 참모들과 달리 고개를 뻣뻣이 간지폭풍스럽게 들며 악수를 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북괴놈 참교육 시전. 이 사진으로 대영웅 김장수 장관은 '꼿꼿장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그러나 당시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였지만 카메라 메모리 용량이 다 차서(...) 찍지 못했다는 당시 청와대 사진사의 증언도 있다. #



  • 이정미/이해찬/김영남/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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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당시 사진이다. 당초 이해찬, 정동영, 이정미 등 남한 여야 대표는 방북 첫날인 9월 18일에 김영남을 만날 예정이었지만 세 사람이 당일 면담 자리에 나타나지 않아 논란이 있었지만 다음날인 9월 19일에 우여곡절 끝에 면담이 이루어졌다.


1.1.3. 북한[편집]






1.1.4. 대한민국과 그 외 국가[편집]


  • 고이즈미 준이치로/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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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간의 관계가 심히 악화될 당시 한일정상회담 사진이다.

  • 박근혜/버락 오바마/아베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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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당시 오바마가 한 발언인 "Poor President Park doesn’t even remember what the other question was.", 직역하자면 '불쌍한 박 대통령은 지금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무슨 질문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것이 박근혜의 지적인 부분에 대해 저격한 것처럼 해석한 경우가 있는데 우선 이런 말을 자기 나라 의회도 아니고 직접 동맹국 대통령 면전에다 대고 말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외교적 결례이다.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라도 이런 짓은 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이 발언이 나온 전후사정은 오바마가 이 말을 하기 전에 오랫동안 말을 한 탓에 박근혜가 질문에 버벅거리자 단순히 유머로써 "(내가 너무 떠든 탓에) 박근혜 대통령이 질문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네요?" 정도의 의미이다.

  • 박근혜/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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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제11차 G20 정상회의에서 46분 동안의 한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찍은 기념 사진. 박근혜는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시진핑은 무척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밀월이었던 한중관계사드 배치 논란으로 갑자기 틀어진 정국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사진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이 G20 정상회담(9월 4-5일) 직후에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9월 9일)했고, 한 달 반 후에는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최악의 정치 스캔들이 터지면서(10월[35]) 임기 내내 말이 많았던, 정치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해외로 도피하듯 떠났던 박근혜의 마지막 해외 순방이 되어버렸다. 박근혜는 이 사진이 찍힌 지 3개월 후 탄핵안이 통과되며 사실상 대통령직을 잃는다. 여러가지로 박근혜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수반으로서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사진이라고 보아도 될 듯하다.

    참고로 정상 회담이 아니라 해외 순방이라고 하는 이유는 박근혜는 2016년 10월 24일의 JTBC의 태블릿 PC 보도 다음날 아침인 10월 25일에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직후 오후 4시에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최순실의 존재를 인정하며 사실상 정치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고, 이후에는 여야의 대통령의 2선 후퇴와 거국내각을 이끌 총리 임명 요구, 탄핵안 발의와 촛불 집회로 이어지는 정치적 혼란 등으로 사실상 대통령으로서의 외교 업무는 끝났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라스무센 총리와의 만남이 마지막 정상회담이다.

  • 기시다 후미오/윤병세/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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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당시 동북아 3국 외교의 수장들. 그러나 윤병세, 기시다의 어색한 웃음과 왕이의 어울리지 않는 손놀림은 정말이지 놀랍도록 어색하다.

  • 황교안/다른 APEC 회원국 정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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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루에서 APEC 정상회담은 2016년 11월 중순에 열렸다. 당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불거져 인해 국민들의 하야 요구가 거셌기 때문에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신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 사진은 정상들의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찍혔다. 황교안은 정상이 아닌 국무총리급이었기 때문에 푸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한일관계는 일련의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사건, 한일 무역 분쟁,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 등의 사건 등으로 사실상 광복 이래 최악의 상황이고, 한미관계 역시 트럼프가 꽤나 정성을 기울였던 북미정상회담을 필두로한 북미관계에서 이렇다할 성과도 없었거니와 지소미아 파기 논란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그다지 매끄러운 상황은 아니다. 이렇듯 각각의 이익이 상충함에 따라 동반자적 구도가 많이 옅여진 시점임에, 이 사진은 '각자 갈길을 간다.' 라는 구도의 의미로도 해석될 만 하다.

  • 김영남/김여정/문재인/김정숙/캐런 펜스/마이크 펜스/아베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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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당시 사진이다. 한국 측은 북한과 미국 측의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펜스 부통령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자리까지 서로 마주 보도록 하였으나 미국의 펜스 부통령이 이를 거부하며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불과 몇 달 뒤에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줄은 아무도 몰랐지.


1.2. 그 외 국가[편집]



  • 도널드 트럼프/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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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당선인 신분으로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다. 정권 인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지만, 서로를 가열차게 디스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런 어색한 만남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으니 그럭저럭 기분이 나쁘지는 않겠지만 오바마는...

  • 아베 신조/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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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명 높은 트럼프의 악수를 대표하는 사진. 트럼프가 아베의 손을 너무 세게 잡아 아베가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36] 실제로 이후 트럼프의 보호무역에 시달리다 못한 일본은 급기야 중국하고 화해 스탠드를 보여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

  • 앙겔라 메르켈/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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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켈이 트럼프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으나 트럼프가 악수를 거부하면서 서먹한 관계가 되었다. 다만, 몇 달 후 G20 정상회의에서 다시 만나 악수를 나누긴 했다.


  • 김정은/도널드 트럼프
    파일:1538297754641.jpg파일:PYH2019022818470001300_P2_20190228193526231.jpg
    첫번째 사진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2018년 북미정상회담에서 찍힌 사진, 두번째 사진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019년 북미정상회담에서 찍힌 사진이다. 불과 몇 개월 전 까지 두 사람은 서로를 "로켓맨", "늙다리 미치광이" 등으로 비난했고 심지어 회담 몇 주 전까지도 회담을 취소했다가 번복하는 등 날카로운 관계를 유지했다가 회담이 진행된 후에는 서로를 칭찬해주는 등 화기에애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하지만 이듬해 열린 2차 정상회담에서는 북미 간의 의견차 조율에 실패해 협상이 결렬되면서 정말로 어색한 사진이 되어버렸다.

  • 블라디미르 푸틴/앙겔라 메르켈
    파일:external/i2.wp.com/MAS_ANGELA.jpg
    사진은 이렇게 나왔지만 외교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서로 사이 좋기로 유명하다. 메르켈 총리는 러시아어를 잘하고 푸틴 대통령 역시 독일어를 잘하고[37] 사석에서나 공석에서나 친분 관계를 서로 과시하기도 한다. 2012년 러시아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있어서도 러시아의 가입에 대해 거부권을 가진 미국을 설득하는 데 메르켈의 영향력이 컸다는 후문이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로 사적인 친분에 앞서 제쳐두고 서로 꼬장을 부리는 경우가 늘고는 있다.

  • 블라디미르 푸틴/버락 오바마
    파일:external/ugc.kn3.net/obama-y-putin.jpg


  • 시진핑/보시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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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같은 태자당 파벌 출신으로 둘은 결코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2012년 터진 왕뤼쥔 사건으로 인해 보시라이는 숙청되었다. 보시라이 문서 참고.

  • 아베 신조/시진핑
    파일:external/www.pressian.com/art_1415608087.jpg
    중일 정상회담 사진. 아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38]



  • 마잉주/천수이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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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rRdU5ba.jpg
    위의 사진은 1998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 당시, 아래 사진은 2008년 5월 마잉주의 총통 취임 당시. 얼마 지나지 않아 천수이볜은 부패 범죄로 감옥에 가게 된다(...).

  • 마잉주/차이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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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5월 차이잉원의 총통 취임 당시. 떨떠름한 표정의 마잉주의 모습을 주목.


  • 마다가스카르 전현직 대통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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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현직 대통령인 헤리 라자오나리맘피아니나, 전직 대통령들인 알베르 자피, 디디에 라치라카,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그리고 안드리 라조엘리나. 서로 어색하게 손을 마주 잡고 웃는데 라치라카 혼자서만 입을 굳게 다물고 웃지도 않는다(...). 이 중에서 라자오나리맘피아니나, 라조엘리나, 라치라카만 사이가 괜찮은 편이고 라치라카는 독재를 하다가 자피가 민주화운동을 하여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재선했지만 라발로마나나가 당선되어 다시 대통령 자리에 물러났다가 쿠데타를 일으키다가 프랑스망명하기도 하여 자피와 라발로마나나와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고, 라발로마나나는 라조엘리나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났다(...). 자세한 내용은 마다가스카르 혁명 문서 참고.

  • 케말 클르츠다르오울루/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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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주의, 반케말주의 정당(으로 알려진) 정의개발당 출신의 대통령 에르도안 VS 터키 제1 야당이자 세속주의 정당인 공화인민당의 대표이자, 스스로가 알레비파자자혈통인 케말 클르츠다르오울루. 참고로 이 사진은 클르츠다르오울루가 에르도안에 대해 "독재자" 운운한 것에 데에 에르도안이 고소미를 먹여, 대략 2만 리라를 뜯어낸 뒤에 찍힌 사진이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PKK의 준동으로 인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에르도안이 먼저 클르츠다르오울루를 초대했다는데, 결국 이 사진만 남기고 성과 없이 끝났다.

  • 케말 클르츠다르오울루/데블렛 바흐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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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인민당과 민족주의행동당은 공통적으로 케말 아타튀르크를 근간으로 하는 케말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민족주의행동당은 보다 우파에 가까운 성향이며 과거 군부와 연계된 바 있다. 극단적인 튀르크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민족주의행동당 입장에선 순니파도 아닌 알레비파에다가, 자자족 출신인 케말 클르츠다르오울루는 이질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 셀라하틴 데미르타쉬/데블렛 바흐첼리[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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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애초에 각각 쿠르드 VS 튀르크 민족주의당이라 분위기가 좋을 수가 없는 자리였다(...). 참고로 이 자리에서 데미르타쉬는 바흐첼리에게 대놓고 "명예도 없는 새끼"라고 욕설을 했다.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것은 터키에서도 수준급 욕이다.

  • 셀라하텐 데미르타쉬/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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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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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아마디네자드가 보수파의 일원으로서 하메네이의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재선 이후로는 하메네이와 관계가 크게 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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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아르헨티나 주교였던 시절부터 앙숙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정작 프란치스코는 마크리와도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다. 자세한 사진은 프란치스코 교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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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와 고이즈미는 한때는 정치적 사제지간으로써 아베가 제90대 내각총리대신(제1차 아베 내각)으로 처음 취임했던 2006년에 직전 내각이었던 고이즈미 정권에서 관방장관을 맡았으며, 그 당시의 총리 지명 역시 현직이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루어지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서 아베는 원자력을 중요시하고, 고이즈미는 탈원전을 주장하면서 현재 두 사람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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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8일, 아베 신조 총리가 주도하여 일본 내각이 정부 행사로 격상한 '주권 회복의 날'(主権回復の日)에 참여한 아키히토 상황(당시 천황), 주권 회복을 기념하기도 했지만 미군정 때 만들어진 현행 일본국 헌법도 개정해야 한다는 분위기 조성을 위한 행사이기도 한데, 평화주의자이자 극우를 극구 반대하는 아키히토 천황에게 실권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참석하였는데, 행사 내내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사 폐막 직후 퇴장하는 도중 참석자들이 '덴노 헤이카 반자이(天皇陛下万歳, 천황 폐하 만세)!'라고 외치자 사뭇 당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아키히토 입장에서는 자기를 내세워 본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간신배들인지라 불편하지 않으면 이상할 것이다. 이외에도 아키히토 상황은 아베 신조 총리와 원만하지 않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2. 역사[편집]



2.1. 한반도 내[편집]


  • 이토 히로부미/영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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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는 어렸지만 영친왕표정당시 조선의 상황 그 자체였고, 이토 히로부미도 그 속내를 모를 리가 없다(...). 어색함은 둘째치고 아예 대놓고 기분 나쁜 표정들을 짓고들 있다.[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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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해방 직후까지도 이승만김구사이는 매우 두터운 관계였다. 주변인들의 기록이나 증언을 보면 서로 호형호제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묘사된다. 특히, 김구는 이승만의 호를 써서 "우남이 형"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그러나 1946년 장덕수 피살 이후 이승만암살의 배후 세력으로 김구지목하면서 둘은 사실상 결별하고 만다. 위 두 사진1946년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 김영삼/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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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위의 김영삼과 박근혜 부분의 어색한 사진 부분에도 썼듯이 김영삼은 박정희와도 살아생전에 불구대천이었다. 김영삼은 정치 초창기 시절부터 박정희에게 오만 수난을 많이 당했으며, 2009년 인터뷰 당시에도 김영삼이 박정희를 향해 "김대중과는 화해했지만 박정희는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까지 발언했을 정도로 김영삼은 이렇게 마지막까지 박정희를 엄청나게 증오했다.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 등도 참조. 나아가 김영삼은 맨 위의 김영삼과 박근혜 부분에서도 선술했듯이 박근혜와도 사이가 매우 나빴다.


2.2. 그 외[편집]


  • 네빌 체임벌린/에두아르 달라디에[42]/아돌프 히틀러/베니토 무솔리니/갈레아초 치아노[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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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사진은 뮌헨 협정 당시 찍힌 사진. 표정도 표정이지만 각 사람들 사이에 거리가 상당히 어색하다[44]. 두번째 사진은 네빌 체임벌린과 아돌프 히틀러 둘이서 사이좋게 찍은 사진. 어색함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 더글러스 맥아더/쇼와 덴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carthur_hirohito.jpg
    새로운 막부쇼군덴노.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히로히토가 제 발로 맥아더를 찾아가서 찍은 사진으로, 이쪽에서는 레전설에 속하는 장면이다. 검은색 연미복을 갖춰 입고 차렷 자세로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히로히토와, 넥타이를 매고 정복을 입은 것도 아닌 헐렁한 흰색 근무복 차림에 뒷짐지고 짝다리로 서 있는 맥아더의 모습이 대조적. 이 항목의 다른 사진들과는 달리, 이 어색한 모습은 당시 일본 사회를 심리적으로 굴복시키기 위하여 맥아더가 연출한 것이다. 맥아더의 의도대로 그 동안 현인신(現人神), 즉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이라 떠받들던 덴노가 외국의 일개 군인 앞에서 루저가 된 모습을 지켜본 일본인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건 일본의 입장에서는 역대급 굴욕샷인데 안그래도 키부터 맥아더(183cm)가 쇼와(165cm)보다 훨씬 커서 같은 옷을 입고 서 있어도 굴욕인 판국에 복장도 자세도 맥아더는 대충 입고 껄렁하게 서 있는 반면 쇼와는 최대한 잘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 있어서 더 굴욕이다.

  • 장제스/마오쩌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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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8월, 중일전쟁 종료 직후 충칭에서 함께 찍은 사진. 중국에서도 많이 인용되고, 세계적으로도 아주 유명한 사진 중 하나. 두 사람의 표정과 미묘한 서로의 거리맨들맨들한 머리가 정말 어색하다(...). 이 때 쌍십협정(雙十協定)이 체결되어 평화가 오는 듯 했으나, 둘 다 추스르는 시간을 벌기 위한 기만술이었을 따름이다. 물론 선빵은 전력이 유리했던 장제스가 날렸으나... 참고로,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동아시아사 18번 문제인 쌍십협정의 시기를 묻는 문제에 이 사진이 사료로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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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궈타오/마오쩌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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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장궈타오가 마오쩌둥을 체포해 처형하려고 하였다.

파일:attachment/오사카 고스톱 사건/01.jpg
파일:세상에서가장어색한사진.jpg
첫번째는 해당 사건을 수습한 높으신 분들의 사진, 두번째는 일을 벌린 당사자들의 사진이다.

  •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찰스 로버트 젱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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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 문서에서 확인 가능하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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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6월, 갓 국방장관에 임명된 피노체트가 대통령궁을 방문해서 아옌데와 만난 모습. 그로부터 3개월도 채 안 되어서 피노체트는 미국의 도움을 얻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았고, 아옌데는 저항하다가 자살했다.

  • 엘리자베스 2세/마가렛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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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영국판 태종정도전. 태어난 년도는 다르지만 학년은 같은 두 친구 신자유주의포클랜드 전쟁으로 사이가 상당히 멀어졌다. 무엇보다도 포클랜드 전쟁은 대처가 왜 전쟁을 하자고 했는지 엘리자베스 2세는 잘 알고 있었다.[46] 엘리자베스 2세는 그 전쟁에 자기 아들을 참전시켜야 했기 때문엘리자베스 2세의 속을 타들어가게 한 대처엘리자베스 2세가 정말로 멀리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대외적으로는 국왕총리의 관계이니 서로 친한 척을 해야 했다. 그래도 미운 정이라도 들었는지 후에 엘리자베스 2세는 대처가 사망했을 때 2013년 4월 17일 엄수된 장례식에 처칠 이후 처음으로 왕실자격으로 참석했다.





[1] 이 사진이 찍힌 1987년 10월 고려대 시국대토론회 바로 다음 날 김대중은 탈당과 독자출마를 선언하면서 김영삼과 결별한다. 그리고 이 분열로 인해 당시 대선은 노태우가 승리하는 등 뻘짓이 되었다.[2] 최규하, 김영삼, 김대중은 전두환과 노태우의 쿠데타 때문에 온갖 수모를 당했다. 최규하는 대통령이지만 쿠데타로 인해 바지사장으로 전락했고, 야당을 견제하던 전두환이 김대중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조작된 근거를 들이대며 투옥시킨 것도 모자라 김영삼을 계속 가택연금을 시키는 바람에 세 사람 다 신군부 때문에 험한 꼴을 당했다.[3] 심지어 서울 올림픽에 전두환이 참석하는 것도 막았다.[4] 사실은 화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당시 노무현이 대선 당시에 지역감정 청산을 목표로 두고 있었기에 이루지 못했다. 대선 와중에 노무현이 김영삼과 화해하려고 만났고, 이 와중에 노무현이 아직 김영삼 정당에 있었을 시절에 시계를 꺼내들며 "이걸 볼 때마다 총재님이 생각난다."라고 말했다가 지지율 하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척을 지었다. 물론, 김영삼도 삐져서 또 사이가 나빠지긴 했다.[5] 사실 노무현의 장례식에서 김대중이 오열했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두 사람의 관계는 다른 둘과의 관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정적이나 진짜 적이 아닌 동지 의식이 강하지만, 서운한 게 있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6] 다만, 김대중노무현하방 조직 간의 아직도 여전한 듯 하다. 뭐, 위에 나온 김영삼 - 김대중조차 원래 동지에서 시작했으나 이후 정적으로 변한 것을 보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7] 사실 김영삼 전 대통령 본인도 아픈 몸을 이끌고 온 것이라고 한다.[8] 하지만, 생전에 화해하려고 불렀지만 노무현 측근들이 비난하는 바람에 김영삼 전 대통령도 화가 나서 물러가버려 물거품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상 화해 분위기가 만들어질 뻔했는데, '03시계 파동'이라는 사건이 터지면서 지지율이 떨어지자 측근들이 방해한 것.[9] 두 사람 간의 어색한 모습은 밑에 후술.[10] 당시 한국 나이로 86세.[11] 물론 이승만이 있어서 아주 최초는 아니지만, 이승만의 경우에는 하야 선언을 한 뒤에 물러났지만, 박근혜는 하야도 안 하고 버티다가 결국은 쫓겨나 버렸으니 사실상 박근혜가 최초나 마찬가지다.[12] 사실 참여정부 시절에도 데면데면한 사이었다. 언쟁하거나 다툰 적은 없었지만 정치관도 달랐고, 김병준은 정책적인 것에 문재인은 정무에만 일을 분담해서 서로 거리를 뒀다. 김병준 본인은 보수적인 색채를 가진 자신을 '친노우파'로 분류했는데, 이와 대조적으로 문재인이나 전재수, 김경수 같이 진보적인 색채를 가진 인물들은 '친노좌파'로 분류했다.[13] 이태규 등.[14] 최순실 게이트.[15] 2008년에 이상득에게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불출마함으로써 정계에서 은퇴할 것을 요구했다. 정태근, 남경필 또한 이에 동참했다.[16] 다만, 이재오는 독재 항쟁같은 화이트칼라계에 속하는 운동권이었고, 심상정은 소위 노동운동권이었다는 차이가 있었다. 10여년 사이에 트렌드가 아예 바뀌면서 생긴 일.[17] 반면에 사촌처제인 박근령은 박지만 내외와 함께 빈소를 조문했다.[18]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게 유시민심상정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는데, 심상정이 늦게 사퇴하는 바람에 무효표가 속출하여 김문수 당시 도지사의 당선에 영향을 끼쳤다.[19] 사실 강용석(확인 바람)이 말했듯이 다른 당끼린 공천경쟁을 안 하기 때문에 사석에서 싸울 이유가 별로 없고 같은 당보다 더 사이가 좋을 수도 있다.[20] 정진석 원내대표는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서 원내대표에 선출되었지만 친박과 셈법이 달랐다. 충청권 의원으로서 반기문 UN사무총장을 영입할 기반을 닦고자 했던 것이다.[21] 정의화 국회의장은 대표적인 친이 - 비박계 인사였다.[22] 2000년에 5선을 하고 국회의장직에 도전했으나, 의장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9선의 이만섭 전 국회의장에게 패하였다.[23] 세 사람 모두 초창기에는 자강파였으나, 남경필은 보수통합파로 선회했으며, 정병국친유계 겸 중도통합파, 원희룡은 둘 다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24] 이후 홍준표는 여러 논란이 겹쳐서 정치적으로 몰락해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로 복귀하고 박근혜 탄핵으로 대부분의 정계인사가 몰락하자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거치고 당대표를 맡으면서 복귀하게 된다. 탄핵소동 당시 유승민바른정당으로 갔고, 이후에 바른미래당을 창당하게 된다.[25] 1차 탈당사태 때는 김무성의 측근인 친무계가 대거 자유한국당으로 이적했고, 2차 때는 김무성 본인과 친이계 대부분, 통합파들이 대거 자유한국당으로 이적했다.[26] 17대 대선부터 이미 친이었으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첫 특임장관으로 임명되었다.[27]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더불어민주당정의당을 중심으로 적폐청산과 이명박 수사에 대한 의견이 강하게 나타났는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얼마 후 바른정당 2차 탈당사태가 일어났고, 이때 친이계로 분류되던 인물들이 자유한국당으로 대거 이적했다.[25] 주호영은 원래 통합론 - 자강론 중재파였고 친이계에 속하는 인물인데[26], 자유한국당행을 선택한 것도 주호영의 이명박의 측근인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28] 안상수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홍준표는 슬롯머신 사건.[29] 당시 홍준표는 안상수가 이웃집 개가 짖는다고 소송을 건 것으로 자질 시비를 걸었고, 안상수는 “옆집에서 를 10마리 키웠고, 우리 아들이 고3인데 시끄럽고 냄새가 나서 공부를 못할 지경이었다”고 반박했다.[30] 안상수가 창원시장으로서는 제법 실적이 있는 편이라 표가 분산되어 민주당 허성무 후보가 당선되었다. 사실 창원 빨갱이 운운 등 홍준표가 병크를 터트린 것도 있었지만.[31] 둘 다 1955년 생들이지만, 박성효가 빠른 55년 생이라서 초등학교는 7살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대학교는 1년 재수를 하여서 권선택과 학번이 같아졌다.[32] 제4회 지선 당선자는 박성효.[33] 제5회 지선 당선자는 염홍철.[34] 불쏘시개인 통일미주신문은 이 사진을 두고 박근혜가 북한에서 몰카를 당하고 북한은 그것을 빌미로 협박해 강제로 이런 사진을 찍었다는 기사를 냈다가 새누리당에서 그딴 헛소리 또 지껄인다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분노하기도 했다. 참고로 여긴 남침땅굴을 찾는 사람들같은 노답들이 받드는 찌라시답게 아주 수꼴 성향에 엉터리 정보가 수두룩한 곳이다. 무엇보다 연예인 백지연 사생활을 들먹이다가 백지연 본인에게 고소당할 때 사장인 배 모 씨는 그야말로 도게자하듯이 빌었던 인물이다.[35]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포문이 터진 JTBC의 태블릿PC 보도는 10월 24일에 나왔다.[36] 트럼프는 비즈니스에 매우 능통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고, 그렇기에 비즈니스 상의 바디랭귀지는 어릴 적부터 철저하게 몸에 배여있다. 대개 중요한 자리에서 악수를 하며 사진을 찍히는 순간은 상호 간의 주도권을 구분 짓는 순간인데, 트럼프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은 것. 이 사진 이외에도 트럼프는 실제 악수나 사진 위치 선점에서 주도권을 선점하고, 대중들에게 그렇게 보이도록 사진을 찍히는 순간을 잘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37] 메르켈은 독일 통일 이전 동독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푸틴은 KGB 시절 동독에서 근무했다.[38] 그리고 미국과 한국 방문 때 지은 표정과 대조해 보면...[39] 얼굴 보이는 쪽이 데미르타쉬[40] 첨언하면 사진은 이런 표정이지만, 정작 이토 히로부미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영친왕을 극진하게 모셨다고 한다. 메이지 천황이 영친왕을 일본의 황태자와 동급으로 대접하라는 명을 내렸던 것도 있고, 앞으로의 조선 병합에 있어 영친왕은 주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41] 그 때문에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당했을 당시, 영친왕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42] 당시 프랑스 총리.[43] 당시 이탈리아 왕국 외무장관. 무솔리니의 사위이자, 나중에 자기 장인에게 총살당한 인물(...).[44] 히틀러의 선 채로 두 손을 모은 자세는 '어색해서'가 아니라 일종의 버릇이다. 비단 이 사진 뿐만 아니라 다른 사진이나 영상에서도 두 손을 모은 모습을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ex. 프랑스 침공 항목 에펠탑 배경으로 찍은 사진), 서구권에서는 이 자세가 나름 나폴레옹의 '주머니 손' 같은 트레이드 마크로 인식되는 듯. 일설에는 히틀러가 유전적 결함으로 고환이 하나였기에 손으로 가렸다는 주장이 있지만, 확인된 얘기는 아니다. 현재 뿐만 아니라 전간기와 전쟁 당시에도 히틀러의 손모으는 버릇은 유명했으며 당시 사람들이 남긴 기록 중에 그가 독신인 점을 들어 "언제나 쓰지도 않는 걸 가린다."라는 조롱도 있었다.[45] 둘 다 월북 미군이지만 드레스녹북한에 안정적으로 정착해 잘 살고있는 반면 젱킨스는 거기서도 적응을 못해서 다시 탈북했다. 게다가 당시 계급으로 누르려는 젱킨스와 완력으로 누르려는 드레스녹 사이에 알력이 굉장히 심했다.[46] 포클랜드 전쟁은 해외 속령도 영국의 영토이니 지켜야 된다는 말도 안되는 명분이었고, 이 전쟁 자체도 대처 개인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한 지지율 상승을 노리고 진행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