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 그레이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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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그레이싱어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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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07, 2008 센트럴 리그 다승왕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번호 50번
팀 퓨
(1997)

세스 그레이싱어
(1998~2002)


앤디 밴 헤켄
(2002)
미네소타 트윈스 등번호 58번
토드 시어스
(2002~2003)

세스 그레이싱어
(2004)


호세 모랄레스
(2007~2009)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48번
러스 오티즈
(2003~2004)

세스 그레이싱어
(2005)


대니스 바에즈
(2006)
KIA 타이거즈 등번호 59번
리오스
(2002~2005.7.9.)

그레이싱어
(2005.7.11.~2006)


에서튼
(2007~2007.5.10.)


파일:2012050804464278909_13.jpg
미네소타 트윈스 시절.
파일:/image/003/2006/08/15/2006-08-15T185207Z_01_NOOTR_NISIDSP_2_120060815182906755.jpg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KIA 타이거즈 시절.
파일:10000001914.jpg
요미우리 자이언츠 에이스 시절.
파일:2014110100382_0.jpg
베테랑의 힘을 보여줬던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이름
세스 애덤 그레이싱어(Seth Adam Greisinger)
생년월일
1975년 7월 29일 (48세)
국적
미국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소속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1998~2002)
미네소타 트윈스 (2004)
애틀랜타 브레이브스(2005)
KIA 타이거즈 (2005~2006)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7)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8~2011)
치바 롯데 마린즈 (2012~2014)

1. 개요
2. 선수 생활
2.1. 메이저리그 시절
2.2. 한국프로야구 시절
2.3. 일본프로야구 시절
3. 연도별 성적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 국적의 우완 투수로,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를 거쳐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활약한, 한-미-일 3대 프로리그를 모두 거쳐간 외국인 선수. 메이저리그에서는 실패한 유망주로 그쳤지만, 동양 야구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KBO리그 KIA 타이거즈 시절의 좋은 활약으로 한국의 야구팬들에게는 회색가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별명의 유래는 그레이싱어를 gray+singer로 풀어서 회색가수라고 한 것. 본래 유대계 성(姓)이기 때문에 ESPN 홈페이지를 보면 그의 이름은 Gri-sing-er라고 발음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일본프로야구 등록명은 그라이싱가(グライシンガー).[1] 일본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에는 세스사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2. 선수 생활[편집]



2.1. 메이저리그 시절[편집]


버지니아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애틀랜타 올림픽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3경기에 선발로 뛰며 대회 공동 다승왕 에 해당하는 3승을 거두어, 미국 대표팀이 동메달을 획득하는데 기여했다. 당시 한국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해 승리투수가 되기도 했다. 미국 국가대표팀에 자주 뽑히며 짐 애보트 등이 갖고 있던 당시 미국 야구 국대 다승 기록(8승)을 뛰어넘는 9승을 기록하는 등 빛나는 대학 시절을 보냈다. 1996년 MLB 신인 드래프트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1라운드 전체 6순위 지명을 받으며 입단했고, 구단은 그레이싱어를 루키리그가 아닌 더블A로 바로 보내며 기대감을 드러낼 정도로 거물 유망주였다. 드래프트되자마자 마이너에서 공 한 번 안 던진 그레이싱어를 베이스볼 아메리카 지가 디트로이트 팀내 2위 유망주로 선정했을 정도.

1998년 처음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21경기에 선발 등판, 6승 9패 평균자책점 5.12의 성적을 냈는데, 특히 후반기에 갈 수록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스테로이드 시대의 한가운데인 타고투저의 시대였던데다 디트로이트가 약체 팀이었던 만큼 저 정도로도 로테이션 한 자리는 차지할 수 있었고 충분히 장래성이 기대되었지만...

대학 시절부터 쉼 없이 던졌던 그의 팔꿈치는 곧바로 탈이 났고, 토미존 서저리와 어깨 수술을 2번이나 받으며 그 시즌 이후 2001년까지 12.1이닝을 던지는데 그쳤다.

재활 후 2002년 다시 복귀하여 그해 5월 13일,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이었던 박찬호와 선발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이긴 쪽은 5이닝 1실점의 박찬호.

2004년에는 미네소타 트윈스로, 2005년에는 워싱턴 내셔널스 스프링 캠프에 초청선수 자격으로 참가했지만 메이저리그 진입에 실패,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산하 트리플A 팀에서 잠시 뛰게 된다.


2.2. 한국프로야구 시절[편집]


그에게 손을 뻗친 구단은 KIA 타이거즈였다. 해태 시절을 포함해 창단 첫 꼴찌를 달리고 있던 KIA는 기존 외국인 투수 다니엘 리오스두산 베어스에 보내고 전병두를 받아오는 대신 그 용병 슬롯을 그레이싱어를 영입하는 데 쓰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한다.[2] KBO 등록명은 그레이싱어이지만 당시 KIA에서 유니폼에 5글자 이름을 적는 것이 어색했는지 그레이라고 표기된 유니폼을 받아 입고 뛰었다.

2005년 시즌 도중에 합류하여[3] 기복 있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점차 안정을 찾으며 14경기 6승 6패 3.93을 기록, 2006년 시즌을 앞두고 재계약을 체결하며 다시 뛰게 되었다. 2006 시즌 이용규, 김원섭, 장성호, 이재주 이외 부진을 겪고 있던 KIA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며 많은 패전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팀의 에이스로 14승 12패 평균자책점 3.02의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금액 차이로 인해 재계약 협상이 결렬됐고, 때마침 들어온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계약 오퍼를 받고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비록 한 시즌 반밖에 뛰지 않았으나, 그래도 마크 키퍼, 다니엘 리오스, 아킬리노 로페즈, 헥터 노에시와 함께 타이거즈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투수 중 하나로 언급된다.


2.3. 일본프로야구 시절[편집]


일본 진출 첫 시즌인 2007년에 16승 8패 평균자책점 2.84로 센트럴리그 다승왕을 따낸다. WAR도 센트럴리그 투수 부문 1위. 그런 그레이싱어를 노리고 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는 시즌이 끝나자 돈지랄을 시전, 알렉스 라미레스와 함께 그레이싱어를 데려간다.[4][5]

2008년에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17승 9패 평균자책점 3.06으로 다승왕과 베스트나인을 차지한다. 다만 일본시리즈에서 좋지 않았던 게 흠. 세이부의 키시 타카유키 투수가 MVP

2009년에는 요미우리 사상 두 번째[6]가 되는 외국인 개막전 선발투수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5월말까지 ERA 5점대의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6월부터는 안정을 찾으며 평균자책점 3.47에 13승을 올린다.

그러나 결국 위태위태했던 팔꿈치가 시즌 막판에 탈이 나면서 팀이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걸 밖에서 지켜봐야만 했고, 팔꿈치 수술로 인해 2010년까지 거의 날려먹게 된다.

2011년에도 1군 9경기 등판에 그치면서 요미우리에서 방출되어 치바 롯데 마린즈로 팀을 옮긴다. 사실상 전성기는 끝난 선수로 여겨진지라 치바 롯데가 그를 영입한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돈이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영입한 거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고 큰 활약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

하지만 저반발 통일구로 인한 극도의 투고타저 도래 + 광활한 파울그라운드의 치바 마린 스타디움으로 옮긴 호재를 만나 12승 8패 평균자책점 2.24[7]로 부활하며, 팀의 원래 에이스인 나루세 요시히사보다 높은 WAR를 기록했다. 정작 나루세는 위의 호재들은 어디 갔는지 홈런공장장이 되었고 야쿠르트로 FA 이적한 후에는 먹튀. 8월 14일에 열린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외국인 투수 최초로 양대리그 12개 전 구단 상대 승리투수가 되기도 했다.

2013년은 부상에 시달리며 등판경기와 이닝 등이 반토막이 났다. 71.1이닝 5승 4패 평균자책점 4.54. 2014년에는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재활에 매진했으나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하며 치바 롯데에서 재계약을 포기하였고, 현역을 은퇴하였다. 이후로는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 고향에서 살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근황은 알려진 것이 없다.


3.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성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1998
DET
21
6
9
0
0
130
5.12
142
17
48
6
66
1.462
92
0.5
-0.8
2002
8
2
2
0
0
37⅔
6.21
46
4
13
3
14
1.566
69
0.0
-0.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04
MIN
12
2
5
0
0
51
6.18
68
12
15
3
36
1.627
77
-0.5
-1.0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05
ATL
1
0
0
0
0
5
3.60
7
1
1
0
2
1.600
126
0.1
0.0
MLB 통산
(4시즌)
42
10
16
0
0
223⅔
5.51
263
34
77
12
118
1.520
84
0.0
-2.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5
KIA
14
75⅔
6
6
0
0
3.93
72
6
16
8
58
1.16
2006
29
188
14
12
0
0
3.02
151
10
47
12
164
1.05
KBO 통산
(2시즌)
43
263⅔
20
18
0
0
3.28
223
16
63
20
222
1.09


4. 관련 문서[편집]



[1] 슈퍼로봇을 연상시키는 듯한 이름 때문에 '초마신 그라이싱가' 등의 별명도 나왔다[2] 원래 리오스는 웨이버 공시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비슷한 시기 마찬가지로 외국인 투수가 빠진 두산 베어스김경문 당시 감독의 요청으로 리오스를 달라고 부탁했고 양 팀간 트레이드가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두산으로 가서 보란듯이 재기했고 2007년 22승을 달성한다.그러면 뭐해 약쟁인데[3] 이전 외국인 선수였던 다니엘 리오스가 KIA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기 때문에, 처음 그레이싱어를 바라보는 팬들의 눈은 곱지 않았다.[4] 그레이싱어 영입으로 KBO 출신 선수를 데려와 재미를 본 야쿠르트는 2008년 외국인 선수로 전년도 한국에서 맹활약한 다니엘 리오스를 영입한다. 그런데 그 결과는...대신 같은 해 또다른 KBO 출신이자 기대하지 않고 값싸게 영입한 외국인 선수가 대박이 터졌는데, 그 선수는 바로 임창용.[5] 반대로 야쿠르트에서 검증된 용병 둘을 데려가 재미를 본 요미우리는 다음 해에도 야쿠르트에서 04~08년까지 뛰며 그레이싱어, 라미레스의 팀메이트였던 우완투수 디키 곤잘레스도 데려온다. 이쪽도 이적 첫해인 2009년 2.11 ERA에 15승을 거두며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이후로는 부진했다.[6] 최초는 1999년의 발비노 갈베스였다. 2017년 마일스 미콜라스가 세 번째.[7] 그럼에도 평균자책점 5위이다. 얼마나 투고타저가 강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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