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네이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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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풍 시호[1]
세이네이 덴노(清寧 天皇, 청녕 천황)
화풍 시호[2]
시라카노타케히로쿠니오시와카야마토네코노스메라미코토
(白髪武広国押稚日本根子天皇)[3]
시라카노오오야마토네코노미코토(白髪大倭根子命)[4]

시라카(白髪)
능호
가와치노사카토노하라능(河内坂門原陵)
생몰
444년 ~ 484년 2월 27일
재위
480년 2월 11일 ~ 484년 2월 27일
황거
이와레노미카쿠리노미야(磐余甕栗宮)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편집]


일본의 제22대 천황. 《고사기》에는 시라카노타케히로쿠니오시와카야마토네코노스메라미코토(白髪武広国押稚日本根子天皇), 시라카노오오야마토네코노미코토(白髪大倭根子命)라는 시호로 나온다.


2. 생애[편집]


제21대 유랴쿠 덴노의 3남으로 어머니는 카츠라기노 카라히메(葛城韓媛)였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하얀색이었는데, 오오키미(대왕)는 이를 상서롭다고 여겨 '시라카'(白髮) 황자로 불렀다고 한다. 유랴쿠 덴노는 시라카 황자를 황태자로 책봉했다.

479년 유랴쿠 덴노가 병이 나자 실권을 황태자에게 넘겼다.

부왕이 재위 23년 만에 붕어했을 때, 기비 씨족을 외가로 두고 있었던 이복형제 호시카와노와카미야 황자(星川稚宮皇子)가 오오쿠라(大蔵)를 점거하고 권세를 떨치자, 오오토모노 무로야(大伴室屋)와 야마토노 아야노 아타이쓰가(東漢直掬) 등이 그를 불태워 죽였고, 이듬해 정월에 시라카 황자가 오오키미(대왕)로 즉위했다.

480년 1월, 세이네이 덴노는 이와레노미카쿠리궁에서 천황으로 즉위했으며 오오토모노 무로야가 오미, 무라지 등을 이끌고 세이네이 덴노에게 삼종신기를 바쳤다.

즉위 이후 선왕 유랴쿠 덴노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오토모노 무라지 무로야를 대련에, 헤구리노 오미 마토리를 대신(大臣)에 임명했다.

궁은 '이와레노미카쿠리노미야'(磐余甕栗宮)라 불리는데, 지금의 나라현(奈良県) 가시하라 시(橿原市) 히가시이케지리초(東池尻町)의 미마야코 신사(御厨子神社)로 전해지고 있다. 세이네이 덴노는 아내가 없어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481년 11월에 이치노헤노오시하 황자(市辺押磐皇子)의 아들로 제17대 리추 덴노의 손자였던 오케 황자(億計王, 제24대 닌켄 덴노)·호케 황자(弘計王, 제23대 켄조 덴노) 형제가 하리마(播磨)에서 발견되자, 칙사를 시켜 그들을 궁중에 불러들이고, 오케노미코를 동궁(東宮), 호케노미코를 황자로 삼았다.

재위 5년 정월에 붕어했다. 《미즈카가미》(水鏡)에는 41세,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에는 39세로 되어 있다.

그의 능은 가와치노사카토노하라능(河内坂門原陵)이라 불리며, 지금의 오사카부(大阪府) 하비키노 시(羽曳野市) 니시우라(西浦) 6정목(丁目)의 니시우라 시라카산 고분(西浦白髪山古墳, 전방후원분, 전체 길이 112m)으로 비정된다.


3. 기타[편집]


시호는 '시라카노오오야마토네코노미코토'(白髪大倭根子命)라고 나오는데, 야마토네코는 7세기 이후 덴노들의 시호에 등장하는 명칭이기 때문에 '야마토네코'나 '타라시'가 나오지 않는 다른 덴노들과 달리 가공의 인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나아가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다는 기록도 실제로는 실존 인물들 사이를 메꾸는 가공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했다고 추측한다. 다만, 자신의 직계가 아닌 제24대 닌켄 덴노를 태자로 책봉한 것과 그의 누나인 이토요아오(飯豊青)가 잠시 동안 섭정을 했다는 점 때문에 실제로는 그녀와 부부관계가 아니었는가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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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식으로 올린 시호이다.[2] (이름)가 아닌 왕이 죽은 뒤 왜국식으로 올린 시호이다.[3]일본서기》.[4]고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