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두 케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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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두 케이타의 역임 직책


말리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마하마두 디아라
(2008~2012)

세이두 케이타
(2012~2015)


야쿠바 실라
(2015~2017)


세이두 케이타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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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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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ACL 베스트팀




세이두 케이타의 기타 정보





말리의 前 축구 선수

파일:1000003164.jpg
이름
세이두 케이타
Seydou Keita

출생
1980년 1월 16일 (44세)
말리 바마코
국적
[[말리|

말리
display: none; display: 말리"
행정구
]]
| [[프랑스|

프랑스
display: none; display: 프랑스"
행정구
]]

신체
183cm / 체중 77kg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1] / 은퇴)
주발
왼발
소속
유스
상트르 살리프 케이타 (1995~1997)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 (1997~1999)
선수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 (1999~2000)
FC 로리앙 (2000~2002)
RC 랑스 (2002~2007)
세비야 FC (2007~2008)
FC 바르셀로나 (2008~2012)
다롄 이팡 (2012~2013)
발렌시아 CF (2014)
AS 로마 (2014~2016)
엘 자이시 SC (2016~2017)
국가대표
102경기 25골[2] (말리 / 1998~2015)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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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말리 대표팀 - 12번
FC 로리앙 - 8번
RC 랑스 - 8번
세비야 FC - 21번
FC 바르셀로나 - 15번
다롄 이팡 - 20번
발렌시아 CF - 42번, 11번
AS 로마 - 20번
엘 자이시 SC - 24번
종교
이슬람
후원사
아디다스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말리의 전 축구 선수.


2. 클럽 경력[편집]



2.1.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편집]


파일:external/www.les-transferts.com/seydou-keita.jpg
말리에 바마코 지방에서 태어난 케이타는 17살에 나이에 마르세유에 들어왔고 1999년 데뷔한 케이타는 자신의 데뷔전을 1:0 승리로 장식했다.

이후 5경기를 더 뛴 케이타는 2000년 여름 이적시장 때 마르세유를 떠난다.


2.2. FC 로리앙[편집]


파일:external/mvistatic.com/loSL_1704841_1_px_640_.jpg
그 당시 리그 2에 속해있던 FC 로리앙과 계약을 맺은 케이타는 2001년 팀의 리그 1 승격에 크게 기여했지만 승격 이후 부상으로 경기에 많이 나오지 못했고 팀은 다시 강등되었다.

하지만 같은 시즌 쿠프 드 프랑스에서 로리앙의 유일한 우승컵을 안기는 등 인상깊은 활약을 했다.


2.3. RC 랑스[편집]


파일:external/www.africahit.com/u1_seydou.jpg
2002년 RC 랑스로 이적했다. 케이타는 팀의 주장을 맡아 157경기를 소화했고 2006-07 시즌에는 한 시즌 최고 득점인 11골을 기록했다.


2.4. 세비야 FC[편집]


파일:external/4.bp.blogspot.com/seydou-keita1.jpg
2007년 7월 케이타는 라 리가의 세비야 FC와 4년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후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홈에서 1:0, 원정에서 5:3이라는 스코어로 제압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우승컵을 거머쥐게 된다. 팀의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팀의 리그 5위 달성에 큰 활약을 한 케이타는 시즌 무패 행진 중이었던 아스날을 상대로 챔스에서 득점하며 3:1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2.5. FC 바르셀로나[편집]


파일:external/media3.fcbarcelona.com/29-05-09_KEITA_COPAS_01-Optimized.v1438355442.jpg
2008년 3월 26일 케이타는 바르셀로나와 14M의 4년 계약을 체결한다. 폴란드의 비스와 크라쿠프와의 챔스 경기에서 출전하면서 데뷔전을 치뤘고, 리그에서는 누만시아와의 경기에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교체되어 처음으로 출전했다. 이적 첫 해 46경기를 소화하며 바르샤의 6관왕에 큰 기여를 한 케이타는 다음 시즌 레알 사라고사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자신의 플레이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이후 케이타는 점점 자리를 잃어갔고 결국 2012년 정들었던 바르셀로나를 떠나게 된다.


2.6. 다롄 이팡[편집]


파일:external/images.china.cn/001ec94a1d8b12e6fdcc10.jpg
2012년 7월, 케이타는 바르셀로나와 2년의 연장계약을 취소하고, 스페인 생활을 뒤로 한채 중국 슈퍼리그의 다롄 이팡으로 자유계약신분으로 2년반 계약으로 이적 한다. 연봉이 무려 14m 이었으니, 이적할 이유가 없는게 이상할 정도. 다롄에서 37경기를 뛰고 10골을 넣은 케이타는 1년만에 다시 팀을 떠난다.


2.7. 발렌시아 CF[편집]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0-1B2D9FA100000578-588_634x399.jpg
상호 합의하에 다렌과 계약을 해지하고 자유계약신분이 된 케이타는 겨울이적시장에 다시 라리가로 돌아온다. 발렌시아와의 6개월 단기계약을 채결한 케이타는 발렌시아 에서 11경기를 뛰었고, 알메이라와의 경기에서 8.2초만에 골을 넣는 기록을 수립하기도 한다.[3]


2.8. AS 로마[편집]


파일:external/asroma360.com/SeydouKeita.jpg
발렌시아와의 6개월 단기계약을 마친 케이타는 로마로부터 1년 계약 제의가 들어왔고 이를 수락했다.피야니치, 데 로시, 나잉골란, 스트루트만이 자리잡고 있는 중앙지역에서 노장인 케이타에게 바라는 역할은 적절한 로테이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 케이타는 AS 로마에게 있어서 없으면 안 되는 미드필더 중 하나다. 전성기 때의 모습과 비교할 순 없지만 타고난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공수 부분에서 매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케이타는 바르셀로나 출신 답게 패싱 전개 능력과 탈압박에 상당히 능한 모습을 전반기에 많이 보여준다. 그리고 피지컬이 많이 하락한 상태임에도 많은 활동량을 통해 미들진의 숨을 불어넣어주는 모습을 보면 정말 우리가 상상한 케이타가 맞는가 라고 할 정도로 의심이 될 상황이다.그렇게 전반기의 케이타는 팬분들이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을 받던 선수였지만 로테이션의 역할을 보고온 초반과 달리 챔스, 컵, 리그 거의 모든 경기에 출전을 하게 된 케이타는 역시나 노장이라서 체력의 한계가 온건지.. 후반기엔 좋지 않은 모습만 보여준다. 사실 이는 케이타 만의 문제가 아니라 로마 자체의 문제였기에 케이타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너무 가혹하기도 한 문제였다. 사실상 현재 미들진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하는 케이타에게 로마는 재계약의 뜻을 보내고 있지만, 말년에 쉬러왔다 노예처럼 일만하고 재계약을 하지 않고 떠난 에인세처럼 떠나는건 아닌가 하면서 로마팬들은 불안해 하고있다.

그리고 2016년 팀과의 계약기간을 연장하지 않으면서 FA 신분이 되었다. 확실한 행선지는 알려진 바 없다.


2.9. 엘 자이시 SC[편집]


그후 케이타는 카타르 리그의 축구팀인 엘 자이시 SC에 자유계약 신분으로 이적한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말리 축구 국가대표팀의 정신적인 지주이다. U-20 월드컵 골든볼 수상자였으며 어릴 때부터 엘리트였던 선수였다. 2000년에 국가대표팀 데뷔를 했지만 팀이 워낙 약체라서 그런지 국가대표팀에서의 커리어는 그다지 좋진 못하다. 물론 케이타가 뛰던 시기의 말리에는 스타 플레이들이 꽤 있는 편이었지만 대체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많았다. 레알 마드리드와 리옹에서 뛰었던 마하마두 디아라라던지 발렌시아와 리버풀, 유벤투스 등을 거쳤던 모하메드 시소코 등이 있었으나 공격적으로는 케이타에 비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같은 동포이자 세비야 동료였던 공격수 프레데리크 카누테가 득점을 많이 기록해줬으나, 일단 중앙 미드필더가 25골을 넣은 시점에서 이 양반이 얼마나 혹사당하는지 알 수 있다.[4] 거의 전천후 프리롤로 뛰어다니는 듯.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탄탄한 피지컬과 기술, 축구 지능을 모두 갖춘 공수 겸장의 올라운더였다. 왼발잡이 중앙 미드필더라는 희소성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가나의 마이클 에시엔이 중원에서 다부진 플레이로 눈을 사로 잡았다면, 이 선수는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에서 오랫동안 데리고 있었을 만큼 지능적인 경기 운영이 특징이다. 뭐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다보니 경기에 변주를 주기 유용한 자원이었다. 득점력도 있는 선수여서 프랑스 리그 시절엔 득점도 많이 했으며, 국가대표팀에선 아예 에이스 중 하나였다. 존 오비 미켈의 경우처럼 클럽에선 수비적인 역할을 맡지만 국가대표팀에선 공격적으로 뛰는 케이스였다. 전반적으로 모난 부분이 없이 클래스가 높은 선수였다고 할 수 있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6. 관련 문서[편집]



[1]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2] 말리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장 및 최다 득점자.[3] 이는 호세바 요렌테의 7.8초, 다리오 실바의 8초에 이어 3번째로 빠른 득점[4] 프랭크 램파드가 106경기 29골, 스티븐 제라드가 114경기 21골, 야야 투레가 102경기 19골이다. 심지어 저들처럼 공미에 가까운 중미도 아니고 수미에 가까운 중미인 케이타가 이정도 스탯을 기록했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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