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학교/사건 및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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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7년 학원자주화투쟁
2. 1997년 장산곶매탑 일방적 철거
3. 2004년 총학생회 총장실 점거 농성
4. 2005년 교비 113억 부정지출 적발
5. 2008년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명칭 사용 논란
6. 2010년 교표 락카칠 사건
7. 2011년 신입생 OT 환영식 사건
8. 2013년 충무관 삼브롬화붕소 가스 누출
9. 2013년 영실관 황산 유출
10. 기타 사건 및 사고
11. 2020년 세종대 종합감사 결과 학사,회계비리 적발
12. 윤지선 강사 세종대학교 초빙교원 발탁
12.1.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 유저의 화상수업 방해 사건
13. 세종대학교 홍보댓글 사건



1. 1987년 학원자주화투쟁[편집]


세종대학교 학원자주화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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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주체[1]
사건 경과
1987.06.10 - 1987.09.18
학생
6월 항쟁에서 연행된 학생들의 석방 요구 및 학원(學園) 자주화를 위한 농성
-
학교
학생
학생 측의 요구사항(63개항)에 합의 및 공증
1988.10.10
학교
합의사항 미이행
학생
학원 자주화[2]를 위한 총장실 점거 및 철야 농성
-
주영하[3]
전체교수회의에서 총장직선제 약속
주명건[4]
모든 보직에서 사퇴
학교
학생
총장선출 여론수렴위, 총장직선제[5] 등 '정상화 방안' 16개항 합의
1988.11.30
교수
학생
총장선출 여론수렴위, 총장직선제를 통해 이중출(李鍾出) 교수협의회장을 전체교수회의에서 총장으로 선출
1989.02.15
문교부
이중출 교수협의회장에 대한 총장승인 거부
1989.08
보직교수 전원
대학당국이 겪고 있던 재정압박 및 대학 측의 교직원에 대한 임금체불을 사유로 사표 제출
문교부
학내 자치기구[6] 해체 및 총장직무대리 등 보직교수 해임 지시
1989.09.16 - 1989.09.19
대양학원
문교부 지시대로 이중출 교수협의회장의 사표를 수리한 후 사흘 뒤에 박홍구(朴洪球) 교수를 총장으로 임명
1989.10.06
교수
오영숙(吳英淑) 교수협의회장을 총장으로 선출 (‘한 대학 두 총장’ 체제)[7]
1989.11.07
학생
박홍구 총장 해임과 오총장 임명을 요구하며 총장실과 본관을 점거
1989.11.24
학교
임시 휴업조처
1990.04.14 - 1990.04.25
학교
학생 51명을 기물파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 학내 공권력 투입 요청, 무기한 임시휴업, 오영숙 교수[8] 해임
1990.06.02
경찰[9]
학내에 난입 후 학원자주화투쟁 중이던 학생들을 강제 연행
서총련 동부지구소속 대학생[10]
한양대 교내에 모여 세종대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는 규탄대회 개최
1990.06.08
학교
학생 20여 명 징계
1990.06.20
학교
박홍구 총장의 후임으로 이중화 교수 선출
1990.06.25
경찰
세종대학교에서 철수
학교
학내 공권력 철수 후 휴업 70여일만에 수업정상화 발표
학생
15개 요구조건[11]을 내걸고 연일 집회 개최
1990.06.29
문교부
'1990년 7월 10일까지 수업정상화가 되지 않으면 세종대학교 학생 전원을 유급시키겠다'고 발표
1990.07.10
-
문교부가 밝힌 전원유급시한이 끝났으나 수업 정상화에 실패
1990.07.16
문교부
새로운 세종대 이사진을 통해 사태 해결 시도
새 이사진
농성 중인 학생 4,600명 중 4,000명이 넘는 학생들의 대량유급조치 확정 및 유급 대상자 명단 발표
1990.09.26
총학생회
167일 간의 투쟁 철회


서울의 봄이었던 1980년 3월과 4월, 대학가에서는 학원(學園)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다. 대학생들은 대학 측에 학원 민주화를 거부하는 총학장 퇴진, 어용 교수 퇴진, 재단 비리 척결, 학생회 인정, 학내 언론의 자유 등을 요구하였다. 세종대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종대 학생들과 교수들이 맨 먼저 터뜨린 불만은 ‘족벌 체제의 전횡’이었다. 설립자 주영하(朱永夏), 최옥자(崔玉子) 부부의 장남이자 1978년 부임한 교수인 주명건(당시 31세)이 학교 운영에 개입하는 등 학원이 파행적인 족벌 체제로 운영됐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반발은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인해 묵살되었다.

학원자주화투쟁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1987년의 6월 항쟁이었다. 6월 항쟁 중 경찰에 연행된 학생들의 석방과 학원(學園) 자주화를 요구하며 1987년 6월 10일에 시작된 학원자주화투쟁은 1987년 9월 18일까지 약 100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당시 학교당국과 학생들은 농성을 해제하기 전에 학생 요구사항 63개항에 합의하였으며, 양쪽 대표인 정병선 학장과 황동열 총학생회장 이름으로 합의 사항을 법률 사무소에서 공증하기까지 했다.[1]

세종대학이 세종대학교로 승격된 뒤인 1988년 2학기, 세종대학교 총학생회는 공증까지 마친 합의 사항이 이행되었는지 확인하였다. 확인 결과 학교당국이 학생들과의 합의사항을 거의 이행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즉 합의 후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대부분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학생들은 이 원인이 '임명총장체제’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임명총장체제란 재단이 교수나 학생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총장을 임명하는 제도였다. 학생들은 임명총장체제를 '재단이 총장을 통해 학교를 하수인처럼 부릴 수 있게 하는 비민주적인 제도'라고 생각했다.[2]

1988년 9월 8일, 학생들은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학내 의견을 수렴한 후 ‘원흥균(元興均) 총장 퇴진, 민주적 총장선출방식 채택, 족벌타도’라는 마스터 플랜을 짰다. 1988년 10월 10일 학생들은 비학생총회를 소집하여 '어용, 무능총장 퇴진을 통한 학원 자주화'를 결의하였으며, 그날로 총장실을 점거하여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학생들의 투쟁은 43일 동안 계속되었으며, 학생들의 투쟁에 힘입은 교수들도 교수협의회를 결성한 후 학생들 쪽에 가세하고 직원들도 직원 노조를 만들어 제 목소리를 내는 등 전반적인 학내 분위기가 재단을 비난하는 쪽으로 기울었다.[3]

이러한 대세에 밀린 주명건 교수(당시 경영대학원장)는 모든 보직에서 사퇴하였으며, 주영하 당시 재단이사장은 전체교수회의에서 '총장직선제'를 약속하였다. 총장직선제란 교수 5인 이상의 추천과 여론수렴위원회[4]의 동의를 얻은 후보 중 한 명을 전체교수회의에서 직선으로 선출하고 재단은 이를 승인하는 제도였다. 총장직선제는 학교당국과 학생 측이 합의한 ‘정상화 방안’ 16개항 중 핵심적인 사항이었다. 이 제도는 “학생이 교수를 심사한다”는 비난과 함께 “대학의 각 구성원들이 학사운영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모범적 선례”라는 찬사를 받는 등 대학가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실제로 원흥균 총장이 물러난 뒤, 여론수렴위의 동의를 얻은 이중출(李鍾出) 교수협의회장이 1988년 11월 30일 전체교수회의에서 총장으로 선출됨으로써 이른바 ‘세종대식 총장선출방법’이 타대학의 ‘연구사례’가 되기도 했다.[5]

그러나 이러한 세종대식 총장선출방법이 타 대학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문교부[6]가 총장 승인을 요청한 지 두 달이 넘은 1989년 2월 15일에서야 총장직선제로 선출된 이중출 교수협의회장에 대한 총장 승인을 거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결국 선출된 지 8개월이 넘도록 문교부의 총장 승인을 받지 못한 이중출 교수협의회장과 보직교수 전원이 학교 측이 겪고 있던 재정압박과 학교 측의 교직원에 대한 임금체불[7] 등을 사유로 1989년 8월에 사표를 제출하였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89년 8월부터 세종대, 조선대 등 5개 대학에 대해 감사했던 문교부가 감사 결과를 통보하면서 “정관에 없는 대학발전위 등 자치기구를 해체하고 총장직무대리 등 보직교수를 해임하라”고 처분 명령을 지시했다. 이중출 교수협의회장의 사표수리를 한 달 동안 보류한 채 눈치만 살피던 재단은 1989년 9월 16일 문교부 지시대로 사표를 수리하고 사흘만인 1989년 9월 19일 박홍구(朴洪球) 교수를 총장으로 임명하였으며, 그날 문교부로부터 박홍구 교수를 총장으로 임명하는 것에 대한 승인을 받아냈다.[8]

교수들은 1989년 9월 20일 전체교수회의를 소집하여 재단이 일방적으로 임명한 박 총장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의한 데 이어 1989년 10월 6일 오영숙(吳英淑) 영문과 교수(교수협의회장)를 총장으로 선출하여 이른바 ‘한 대학 두 총장’ 체제가 시작되었다. 즉 세종대학교라는 하나의 대학 내에 비민주적 제도인 임명총장체제로 선출된 박홍구 총장과 민주적 제도인 총장직선제로 선출된 오영숙 총장, 총 두 명의 총장이 있게 된 것이다. 학생들은 1989년 11월 7일부터 재단 측에 박 총장 해임과 오 총장 임명을 요구하며 총장실과 본관을 점거하였으며, 이로 인해 학사업무가 마비되었다.[9]

합의사항에 대한 일방적 파기가 발단이 된 세종대 사태는 여러 기이한 장면을 연출했다. 세종대학교에서는 재학생들이 “우리가 겪는 고통을 더 이상 후배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고등학생이 세종대학교에 입학원서를 접수하는 걸 방해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1989년 11월 24일, 학교당국은 학생들이 신입생 원서접수를 조직적으로 방해할 움직임을 보이자 임시 휴업조처를 내렸다. 또한 박홍구는 총장임에도 불구하고 취임할 때부터 사퇴할 때까지 학생들의 거부로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채 재단 수익사업체인 세종호텔에서 결재도장을 찍어야만 했다. 이 때문에 박홍구는 ‘호텔총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10]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1990년 4월 14일, 학교 측은 단과대 학생회장 등 학생 51명을 기물파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무더기 고발하였다. 1990년 4월 15일, 학교 측은 정부에 학내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였으며[11] 그와 함께 '학사일정 마비와 학생들의 극한행동 우려'를 명분으로 무기한 임시휴업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또한 1990년 4월 25일, 학교 측은 세종호텔에서 열린 징계위에서 직선 총장인 오영숙 교수 해임을 결정하는 등 강경일변도로 나갔다. 그러나 그럴수록 학생들의 대응방법도 강경해져 거의 날마다 집회와 시위가 계속되었다.[12]


1990년 6월 2일 MBC 뉴스


1990년 6월 2일 새벽 4시, 경찰 11개 중대 1,300명이 세종대 군자관 옥상에 소방호스와 최루가스를 난사한 후 유리창을 깨고 건물 안으로 난입해 농성 중이던 학생 116명을 연행하고 홍성수 총학생회장 등 5명을 구속하였다.[13] 같은 날 오후 2시, 서총련 동부지구소속 건국대, 세종대, 한양대 학생 1,000여 명은 한양대 교내에 모여 세종대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는 규탄대회를 가졌다. 규탄대회를 갖던 학생들은 오후 3시부터 한양대 교문 밖으로 진출하였으며, 이를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화염병 300여 개와 돌 등을 던지며 1시간 30분 동안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이다 자진해산했다. 학생들은 집회에서 '세종대 학원자주화투쟁을 공권력을 앞세워 분쇄한 것은 명백한 학원 탄압이므로 세종대의 학원 자주화가 쟁취되는 날까지 연대 투쟁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연행 학생 즉각 석방, 재단 비리를 비호하는 민자당 해체' 등을 주장했다.[14]

1990년 6월 8일, 공권력이 학원을 ‘평정’한 뒤로도 전경 3개 중대가 교내를 지키는 가운데 비로소 학교에 들어온 박 총장은 홍성수 등 4명을 제적하고 이수형 자연과학대 학생회장 등 9명을 무기정학시키는 등 학생 20여 명을 징계했다.[15] 그리고 1990년 6월 20일, 학교 측은 사표를 제출한 박홍구 총장의 후임으로 이중화 교수를 선출했다. 1990년 6월 25일 공권력이 세종대학교에서 철수하면서 학교 측은 휴업 70여 일만에 수업 정상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정상화될 분위기가 조성되었기에 내린 조처는 아니었다. 1990년 6월 25일, 건국대에서 농성을 하다가 세종대학교에 돌아온 세종대학교 학생들은 다시 ‘2대 불법총장’부터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재무장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수업 참여에 안간힘을 썼지만 학생들은 불법총장 퇴진과 민주총장 인정, 총장직선제의 학칙명시와 정관 삽입, 대학발전위원회의 인정과 학칙 및 정관 명시 등을 골자로 한 15개 요구조건을 내걸고 날마다 집회를 개최하였다.[16]

이와 같이 세종대학교에서는 법인·학교와 교수·학생 간의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었다. 문교부는 학내 분규로 인한 수업 파행이 지속된다면 한 학기 이수를 위해 필요한 수업일수를 충족시킬 수 없으므로 세종대학교 학생 전원을 유급시키겠다고 경고하였다. 이에 학교 측은 수업기간을 2주 단축하되, 한 학기 이수를 위해 필요한 수업일수는 충족시킬 수 있도록 단축된 수업기간 내에 수업을 집약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지 문교부에 문의하였다. 정원식(鄭元埴) 당시 문교부장관은 1990년 6월 29일 기자회견에서 “학교 측의 수업기간 2주 단축신청을 승인하되 만약 수업단축 최대기한인 1990년 7월 10일까지 수업이 정상화 되지 않으면 세종대학교 학생 전원을 유급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차례의 공권력 투입과 징계조처 등 잦은 극한처방으로 오히려 적개심과 내성만 길러온 학생들은 문교부의 ‘전원유급’이라는 최후통첩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전국대학생협회(전대협)는 “세종대 사태는 백만학도의 대리전”이라고 규정하여 전대협과 문교부 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소지마저 보였다.[17]


1990년 7월 10일 MBC 뉴스


1990년 7월 10일, 문교부가 밝힌 전원유급시한이 끝났으나 수업은 끝내 정상화되지 않았다. 이처럼 세종대 사태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자 1990년 7월 16일 문교부는 새로운 세종대 이사진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려 했지만, 새 이사진 또한 농성 중인 학생 4,600명 중 4,000명이 넘는 학생들의 대량유급조치를 확정하고 유급 대상자 명단을 발표해 사태를 더욱 확산시켰다. 1990년 9월 26일, 결국 세종대 총학생회는 전체 총학생회를 열어 167일 간의 투쟁을 철회했다.[18]

세종대 학원자주화투쟁과 관련된 사진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사진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2. 1997년 장산곶매탑 일방적 철거[편집]


장산곶매탑
파일:L22bXs1.gif

1989~90년 세종대 학생들은 공권력 투입에도 불구하고 재단비리를 파헤쳐 재단을 실무에서 몰아냈다. 그 성과를 기념하고자 2년간 모금으로 세운 것이 바로 장산곶매탑이었다. 그런데 1997년 2월 18일(화)~20일(목) 신입생 OT 기간에 총무과 직원들이 학생들이 없는 틈을 타 새벽에 탑을 철거했다. 이에 1997년 2월 20일(목) 총학생회는 총장실로 곧장 찾아가 항의했다. 학생들이 학교 측에 담당직원의 공개사과와 탑의 원상복구를 요구했으나 총장은 단순히 "미안하다"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총학생회는 이에 반발하여 학교 측과 지속적인 선전전을 벌였다.[19]

3. 2004년 총학생회 총장실 점거 농성[편집]


2004년 3월 9일 오후 3시경, 세종대학교 총학생회는 오후 2시부터 시작된 '합리적인 등록금 책정과 대학 민주화를 위한 등록금 납부 거부자 권리 찾기 대회'를 마친 후 총장실과 회의실 등이 위치한 세종대 집현관 2층 전부를 점거하여 농성에 들어갔다. 총학생회가 총장실을 점거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재단 이사장과 설립자 내외 사이에 벌어진 재단 경영권 쟁탈전에 항의하기 위함이었다. 설립자인 주영하, 최옥자 내외는 학교법인 대양학원의 경영권을 두고 아들이자 재단 이사장인 주명건과 상호비방을 하였으며, 주명건을 '패륜아'라고 지칭하기까지 하였다. 결국 주영하는 주명건을 동부지검에 비리 혐의로 직접 고발하였다. 이에 대해 총학생회는 '교육자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 이들이 오히려 천륜(天倫)을 저버렸다'고 비판하였다.[20]

두 번째 이유는 과도하게 높은 등록금과 부당한 교비 지출에 대해 항의하기 위함이었다. 2004년 당시 세종대학교의 등록금은 국내 최고 수준으로 높았으며,[21] 학교 당국은 7차례의 등록금조절위원회에서 학생들에게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을 더한 등록금 7.2%의 인상을 요구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고지하였다. 또한 학교 당국이 파주출판단지에 '서부캠퍼스' 신축을 명목으로 교비 43억원을 지출한 사실이 학교 사무처의 신·증축 공사내역에서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 당국이 부당 해임 당하는 교수들에게 퇴직금을 제외한 권고사직에 대한 위로금으로 교비 8,000만원을 불법 지출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대해 총학생회는 '대양재단이 학생들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비판하였다.[22]

총학생회는 학교 당국에게 1. 합리적인 등록금 책정 전까지 세종인의 등록금 납부 연기를 보장할 것, 2. 합리적인 등록금 책정을 위한 2003년 추경예산, 가결산안 및 2004년 예산안을 공개할 것, 3. 서부 캠퍼스를 포함한 최근 5년 간의 토지 매입과 대학 결산안 내역을 공개할 것, 4. 민주적인 세종대를 만들기 위한 '대학운영위원회'를 구성할 것, 5. 재단의 재정 운영 공개와 재단 전입금을 확충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총학생회의 요구 사항을 학교 측이 수용할 때까지 총장실 등 집현관 2층에서 농성을 계속하겠다고 합리적인 등록금 책정과 대학 민주화를 위한 등록금 납부 거부자 권리 찾기 대회에서 밝혔다.[23]

학생들은 등록금 납부 거부 집회를 마치고 집현관 2층의 총장실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김철수 총장에게 학생들의 요구 사항을 말하고 총장실을 비워줄 것을 요구하였으며, 결국 총장은 총장실을 학생들에게 내어주었다. 집현관 2층을 점거한 총학생회는 학교 측이 학생들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농성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총학생회장은 김철수 총장을 교비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다.[24]

2004년 3월 10일 오전, 세종대 김철수 총장은 '총장실 점거사태에 대한 학교의 입장'이라는 유인물을 통해 '총학생회에 적정한 수준의 등록금 인상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총학생회가) 학교 측의 요구를 무시하고 등록금 동결만을 주장하다 총장실 점거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총학생회장은 학교의 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위해 이뤄졌던 파주출판단지에 대한 투자를 교비횡령으로 몰아 총장을 검찰에 고발하였다'며 '과거 학교와 투쟁을 벌인 경력이 있는 일부 외부 인사들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밝혔다.[25]

이에 대해 총학생회는 반박의 글을 통하여 '적정한 수준의 등록금 인상이라는 주장은 2004년 현재 이미 최고 수준의 등록금을 내고 있는 세종대의 현실과는 맞지 않다. 총학생회는 이미 21대 총학생회 선거 때 합리적인 등록금 책정을 위하여 학생들의 서명을 받아 기본 자료의 공개를 학교 측에 요구하였으며, 학생회 측의 등록금 책정 목표는 '동결'이 아닌 민주적인 논의를 통한 합리적인 등록금 책정이었다'고 밝혔다.[26]

또한 '학교 측은 개강한 지 열흘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2003년 추경예산안, 2003년 가결산안, 2004년 예산안, 서부 캠퍼스를 포함한 최근 5년 간의 토지 매입과 대학 결산안 내역을 악용의 소지가 있기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학의 재정이 깨끗하고 건강하게 운영되고 있다면 재정현황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악용을 우려하는 학교 측의 입장조차도 비리의 의혹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27]

그뿐만 아니라 '파주출판단지 현지에서는 '세종대학교 출판부 사옥(공장)' 이라고 설명된 장소가 어찌 학생들에게는 캠퍼스라는 명목으로 소개되고 있는지 오히려 궁금하다.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사용될 수 없는 건물 신축을 위해 당당하게 43억원을 지출하겠다는 학교 당국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부모님이 피땀 흘려 내주신 우리 등록금으로 벌어들인 그 많은 돈을 학교 측이 제대로 투자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28]


4. 2005년 교비 113억 부정지출 적발[편집]


파일:113억.jpg

2003년 11월, 세종대학교와 학교법인 대양학원의 설립자인 주영하-최옥자 부부는 세종대학교 구성원들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다. 공개 서한에는 친자(親子)이자 대양학원 이사장인 주명건이 학력위조 및 횡령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한 주영하-최옥자 부부는 2003년 12월 주명건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다. 2004년 6월,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주명건 이사장을 재단 산하 수익사업체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이후 교육부는 1990년 세종대 재학생 대량 유급사태 이후 15년만인 2004년 10월 18일부터 11월 3일까지 대양학원에 대한 종합감사를 시행하였다. 2005년 2월, 교육부는 대양학원에 대한 종합감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학교법인 대양학원에 대한 교육인적자원부의 특별감사 결과 중 일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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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교법인 대양학원에서는 세종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세종투자개발(주)에 100% 출자한 형태로 수익사업을 함에 있어, 세종투자개발(주)의 배당가능 이익금이 매년 발생하고 있는데도 학교법인으로의 배당실적은 전혀 없는 등 법인의 수익금 증대를 위한 직무를 태만히 한 반면, 법인 이사장·설립자 등은 세종투자개발(주) 및 출자회사의 회장 등으로 근무하면서 37억9800만원의 보수를 지급받았다. 배당가능 이익잉여금은 1998년 8억여원, 2003년 35억여원 등 지난 6년 동안 108억2500만원에 이른다.
2. 이사장은 정관에서 정한 상근하는 임원이 아님에도 그에게 3년 동안 6억9300만원의 보수를 지급하였다. 또한 대학 직원으로 하여금 법인 업무를 전담케 하고 교비에서 인건비(4명에게 1억6760만원)를 지급하였다.
3. 학교법인의 기본재산인 토지를 처분하면서 처분 허가조건을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법인과 대학에 50억7300만원의 손실을 끼쳤다.
4. 교육용재산(토지 및 건물)을 매입함에 있어서도 토지의 교육환경적합 여부, 활용계획 등을 사전 검토 없이 매입함으로써 대부분의 토지를 교육용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으며, 예산 확보 없이 제3자에게 매입하도록 요청하여 자금 차용에 따른 이자 지출로 6900만원의 재정상 손실을 초래하였다. 운영방법에 따라 수익은 증가되지 않고 있는 반면, 근무한 사실도 없는 설립자에게 1년여 사이에 4500만원의 보수를 지급하였다. 특히 대학출판부 사옥 건축을 위하여 분양받은 파주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내 부지는 산업시설내 공장시설 부지로서 교육용시설은 입주가 불가한데도, 대학출판부 파주사옥 부지매입 및 건축비로 교비에서 54억8600만원을 부당하게 집행하였다.
5. 업무추진비, 연구비, 회의비, 장학금 등 각종 경비의 회계처리도 투명하지 못하거나 목적외로 집행하였고, 선 집행후 사후 품의하거나(3억여원) 구체적인 사용내역 없이 업무추진비로 품의하여 현금으로 집행하였다(2억여원). 또 장학금을 조교 인건비, 입시수당, 세종 청소년 만화대전 진행비 등으로 사용하면서(55억여원) 대학 평가를 위하여 조교 인건비를 장학금에 포함시켜 실제 장학금 비율이 10% 미만임에도 10% 이상 지급한 것으로 보고하였고, 교내 연구비와 회의비를 직원 수당 및 격려금, 연구자 인센티브 등으로 집행하였다(15억여원).
6. 대학 평가를 높게 받기 위하여 대학시설 사용료, 임대료, 기부금 등을 법인회계로 수입조치 한 후 학교회계로 전출하거나(41억6400만원) 교육목적으로 활용이 불가능한 시설 및 기자재를 대학에 전출(8억8300만원) 처리하는 등 편법으로 법인 전출 실적을 확대하였다.
7. 일반경쟁입찰 대상 공사 대부분을 부당하게 수의계약으로 체결하고, 특히 종합강의동 외 4개동 신·증축공사(계약금액 443억원)에 있어서는 설계용역도 변칙 현상설계 방법에 의하여 부당하게 수의계약으로 체결하고, 공사계약에 있어서도 학교공사가 아닌 세종호텔 공사와 함께 입찰함으로써 낙찰자가 없어 유찰시킨 후 임의로 5개 업체를 선정하여 그 중 최저가격 제출자는 제외시키고 특정업체와 부당하게 수의계약을 체결하였다.
8. 법인 직원을 사기업체에 종사(세종투자개발(주)) 이사 등 8개 사기업체 대표이사, 이사, 감사 등 임원)하도록 하는 등 영리업무 금지규정을 위반하였다.
9. 전공심사시 심사기준 미전달로 연구실적물이 없어 탈락되어야 할 지원자를 합격시키고, 자원·교통경제 분야로 채용공고하고서는 국제경제 전공자를 선발·임용하는 등 교원 신규채용에서도 부당한 조치를 취하였다.


교육부는 이 감사에서 세종대학교와 대양학원이 저지른 편법 행위를 밝혀냈으며, 두 기관에 대해 113억원 환수조치 등 150여 개의 신분·행정·재정상 조치를 내렸다. 또한 법인 사무총장 등 2명을 해임하고 총장 등 15명에 대해선 징계 처분을 내리도록 지시했다.[30] 세종대학교 교수, 학생 등 세종대학교 구성원들은 학교와 법인이 부정지출한 금액이 과소 측정됐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교육부가 주명건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교육부의 조치가 '솜방망이 조치'라고 비판하였다.

부모 자식 간의 폭로로 드러난 교비 113억 부정지출 사건은 결국 재단 이사장이 사퇴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2005년 5월 14일에 열린 이사회에서 세종대를 운영하는 대양학원의 주명건 이사장과 이사 등 7명이 사퇴했다. 즉 주명건 이사장을 비롯해 고원증, 김두호, 김명호, 유승필, 주영하 이사가 물러나고 송병락 이사가 뒤따라 사퇴함에 따라 9명의 대양학원 이사진 중 7명이 공석으로 남게 됐다.[31]

2007년 3월 29일, 대법원 1부(주심 고현철 대법관)는 재단 산하 수익사업체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세종대 전 이사장 주명건(당시 60세)에 대해 무죄를 최종 확정했다. 재판부는 '(주명건의 혐의와 관련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이 신빙성이 없고 공소 사실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주명건의 동생 주장건(당시 53세)에 대해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32]

2011년 6월, 주명건은 명예이사장에서 실제 재단 이사로 복귀하려 하였다. 그러나 학내 반발이 거셌고, 주명건의 전면 복귀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6개월간 승인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전면 복귀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복귀를 시도했고, 결국 2013년 6월 교육부의 승인으로 재단 이사 자리에 앉게 됐다. 대신 이사장에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임명됐다.

유명환 전 정관은 이사장 취임 후, 평균 주 1회 가량 TV에 출연하는 등 개인 활동에는 활발했다. 그러나 대양학원 이사장으로서의 활동은 소홀했다. 세종대에 출근도 하지 않았으며, 취임 이후 3개월 동안 재단 이사회에 두 번 참석한 게 전부였다. 또한 세종대 학내 언론인 세종대신문의 인터뷰 요청에는 답변도 주지 않았다. 이에 세종대신문은 이사장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달라고 유명환 이사장을 비판했다.


5. 2008년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명칭 사용 논란[편집]


2008년 고려대학교 서창캠퍼스가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로 개명하려고 했을 때, 세종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대양학원이 이에 대해 고려대학교 측에 항의하였다. 대양학원이 '세종'이라는 명칭이 들어가는 여러 교육기관[33]과 회사들[34]을 운영하고 있으므로 '세종'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브랜드라는 것과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라는 교명과 '세종대학교'라는 교명이 혼동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2008년 3월 10일, 대양학원은 이러한 주장을 토대로 고려대학교에 대한 표장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35]

그러나 2008년 3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세종'은 조선시대 4대 임금의 칭호로 '세종'과 결합된 상표가 700여개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세종'을 세종대가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표장으로 보기 어렵다', "캠퍼스'라는 단어는 대학의 교정이나 대학의 다른 지방 분교를 칭하는 표현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세종캠퍼스'가 '세종대학교'와 동일하다거나 유사하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유로 고려대학교의 '세종'이라는 명칭 사용은 정당하다고 판결을 내렸다.[36] 세종대학교 측은 판결 이후인 2008년 5월 1일부터 9일까지 '고려대 세종캠퍼스' 명칭을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진행하였다.[37] 또한 2009년 4월 2일에는 교내 대양홀 앞에서 '고려대의 세종캠퍼스 명칭사용 저지 및 세종대 정상화 촉구 총궐기대회'를 주최하였다.[38]


6. 2010년 교표 락카칠 사건[편집]


스퀘어 UI
라틴어 UI
파일:sejongui123.png
파일:세종대학교 교표.svg

2010년 10월, 전상진[39]을 비롯한 세종대생 5명은 세종대의 상징이었던 '스퀘어 UI'를 락카로 학교 건물과 도로 곳곳에 그려넣었다. 2004년 교육부 감사결과 113억원 환수 조치를 받고 자진 사퇴한 주명건 전 이사장이 2010년 8월 명예이사장으로 임명되어 정이사 자격으로 학교에 복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이와 함께 학교 측이 세종대의 상징을 스퀘어 UI에서 라틴어 UI로 바꾸자 이를 알리기 위해서 학내 여러 장소에 스퀘어 UI를 그려넣었다는 게 전씨의 설명이다.[40]

전씨가 락카로 그려넣은 '스퀘어 UI'는 주명건 전 이사장이 113억 횡령 의혹으로 물러난 뒤 세종대학교의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의미로 세종대학교 교직원, 학생 등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새로 만들어진 교표였다. 그러나 주명건 전 이사장이 명예이사장으로 복귀하는 것을 앞둔 2010년 4월, 세종대 이사회에서 해당 UI는 대학의 창학이념과 정통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기되었으며, 이로 인해 학교의 상징이 스퀘어 UI에서 주 전 이사장이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 UI로 바뀌었다. 이에 총학생회가 반발하여 총학생회는 스퀘어 UI를, 학교 측은 라틴어 UI를 학교의 상징으로서 사용하는 일이 벌어졌다.[41]

이에 대해 세종대 관계자는 2011년 10월 7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원래 학교의 상징은 라틴어 UI였으며, 정통성 유지 차원에서 스퀘어 UI를 라틴어 UI로 되돌린 것이다. 학교 측이 UI를 원래대로 되돌린 것에 대해 2010년 5월 이미 공지하였다"고 답했다. 이어 "오히려 행정부서가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에 따라 기존의 라틴어 UI를 스퀘어 UI로 바꾼 게 학교법인으로의 보고나 결재 없이 진행됐다"고 반박했다. 주명건 전 이사장이 갖고 있다는 라틴어 UI 특허권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부에서 주명건 전 이사장이 113억을 횡령해서 쫓겨났다고 하는데, 이는 틀린 말"이라며 "교비 집행이 부적절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게 세종대, 학교 법인 다 포함해서 113억인 것이지 주명건 전 이사장의 횡령은 아니"라며 "주명건 전 이사장은 문제가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정이사로 선임된 것"이라고 덧붙였다.[42]

학교 측은 학교 곳곳에 스퀘어 UI를 락카로 그려넣은 학생들에 대해 자체징계로 반성문을 쓰게 하고 무기정학 조치를 취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검찰에 이들을 고발했다. 학교 측은 당초 입은 피해가 3,000여 만 원에 달한다고 했으나, 검찰은 100만 원에 이들을 약식기소했고 1심 재판부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학교가 다시 항소해 지난 9월 29일에 2차 공판이 벌어졌으나, 학교 측의 항소는 기각되었다.[43]


7. 2011년 신입생 OT 환영식 사건[편집]


세종대의 한 학과[44]는 2011년 2월 21일부터 23일까지 강원도 양양에서 ‘새내기 배움터’라는 신입생 환영회[45]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실시된 선후배간의 게임을 찍은 망측한 모습의 사진이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2011년 2월 26일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대학교 OT, 이래도 되는 건가요?’라는 글에 따르면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안겨주는 게임을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학생을 바닥에 눕혀놓고 남학생이 그 위에서 여학생의 입에 물린 과자를 나눠먹는 모습과 남녀학생으로 구성된 커플게임에서 서로 부둥켜 안은 채 한 몸이 되어 오래도록 버티는 게임을 하는 등 공개된 사진에는 민망한 모습이 연출돼 있었다. 여학생들 뿐만 아니라 남학생들도 “당시 그 자리에서 행하기 어려운 역겨운 게임이었으나 선배들의 강요에 할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막장 신입생 환영회’를 두고 인터넷상에서 일파만파 파문이 커지는 가운데 사과문마저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았다. 사태가 커지자 세종대 02학번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사과문을 올렸다. “이번 신입생 환영회에서 행해진 게임을 만들고 기획했다”고 밝힌 이 학생은 고개숙여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 “누가 그랬는가는 중요하지 않으며 모두들 누가 그랬는지 찾지 말아달라. 누군가를 찾아내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지금 중요한 것은 10학번 후배와 11학번 새내기들이 동요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 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이 사과문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02학번이면 나이도 꽤 됐는데 명확한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애매한 발언으로 물타기하는 수준이 상식 이하”라면서 “말도 안되는 논리로 되려 학교 이미지만 실추시키지 말고 신입생들에게 명백히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과문마저 문제가 되자 해당 학생은 올렸던 글을 삭제했다. 하지만 이미 사과문 전문은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들로 옮겨졌고, 이에 대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결국 2011년 3월 10일, 세종대학교(당시 총장 박우희)측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당 학과 교수들을 직위 해제·경고 조치하는 중징계[46]를 내렸다. 또한 학생회가 주관하는 신입생 교외 O.T는 불허하고, 모든 학생활동 진행에 대해서도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학 본부가 철저히 지도·감독하기로 했다.

이후 복학왕 프롤로그에서 패러디되었다.


8. 2013년 충무관 삼브롬화붕소 가스 누출[편집]


2013년 5월 29일 16시 21분, 충무관 5층 연구실에서 삼브롬화붕소 가스[47]가 누출되었다. 실험실 내 태양전지 실험을 위한 별도의 작은 실험실 안에 있던 대학원생 이모(26)씨가 태양전지판과 관련된 실험을 위해 삼브롬화붕소 용기를 다루던 중 용기에 금이 가면서 삼브롬화붕소가 누출[48]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소방당국은 제독팀을 포함한 30여 명을 현장으로 출동시켜 주변 반경 30m를 차단하고 해당 건물과 인접 건물들[49]에 있던 2,000여명을 대피시킨 후 제독과 환기 작업을 벌였다.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22화학대대 병력 15명도 현장에 파견돼 제독 작업을 진행하였다. 세종대 측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안전수칙에 따라 실험실 내 모든 가스밸브를 잠그고 창문을 열어 환기시킨 후 대피했으며 즉각 건물 내에 대피방송을 내보내도록 해 인명·재산 피해가 없었다"고 밝혔다.[50]


9. 2013년 영실관 황산 유출[편집]


2013년 7월 19일 17시 15분, 영실관 건물 3층 307호 식품공학과 연구실에서 황산 용기가 폭발하면서 황산 0.5ℓ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식품 분해 실험을 하기 위해 식품을 황산에 넣어 끓이던 중 황산 용기가 폭발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사고 당시 연구실에는 전임 연구원 1명, 대학원생과 대학원·학부 연계 과정생 등 학생 6명이 있었으며, 이 사고로 연구실에 있던 학생 서모(23)씨 등 7명이 2·3도 화상을 입어 인근 건국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부상자 가운데 조모(23·여)·박모(26·여) 씨와 중국인 M(26)씨 등 3명은 상반신에 심한 화상을 입어 다시 화상전문병원으로 이송됐다.[51]

10. 기타 사건 및 사고[편집]


  • 2008-2009년 겨울방학에 누군가가 세종관에 방화를 시도하였으나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 2014년, 대양홀에서 열린 한 행사 때문에 어버이연합이 학교 정문을 봉쇄하는 사건이 있었다.
  • 2016년 대동제 당시 아이오아이를 보려고 몰린 많은 인파 때문에 엠뷸런스까지 오는 사태가 벌어졌다.
  • 생활협동조합 사업종료
    • 생활협동조합(생협)은 학교에서 열람실 사물함 배정이나 매점 포인트카드 등 학생 편의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던 복지단체였으며, 본부는 율곡관 지하 1층에 있었다. 생협은 세종대의 매점, 자판기와 학생회관 푸드코트를 제외한 모든 식당을 운영하였으며, 봉사활동 행사, 만남의 장을 진행하거나 김치를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했다. 세종대는 전국 대학 중에서 생협이 설립된 4번째 대학이었으며, 세종대 생협은 타학교에 본보기가 될 정도로 준수하게 운영됐다.
    • 2011년 5월, 세종대학교 대학본부가 '생협이 대학의 수익성이나 복지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생협에게 사업권을 돌려달라고 요청하면서 세종대학교와 생협 간에 소송전이 벌어졌다.[52] 사업권 회수를 주도한 건 역시나 주 모 이사장이었다. 이 소송에서 학교 측이 승소하였으며, 생협은 이에 반발해 항소하였다. 2012년 6월 중순의 항소심에서조차 학교가 승소하였으며, 학교 측은 생협에게 학교에서 나가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러나 학교 측은 갑자기 입장을 바꿔 자판기 운영권과 군자관, 진관홀 식당 운영권을 학교 측이 가져가는 대신 생협을 유지시키기로 하였다. 결국 자판기는 2012년 12월 1일부터 외부업체가 운영하게 됐으며, 진관홀과 군자관 식당도 2012년 12월 15일부터 외부업체가 운영하게 됐다.
    • 2014년 11월 10일 세종대학교 생활협동조합은 운영여건 악화로 인한 사업종료를 공시하였다.[53]
  • 대학본부의 운영과 행정 등 일처리가 전반적으로 악명이 높다. 신입생, 재학생, 편입생, 졸업생 누구나 할 것 없이 대학본부의 일처리에 이를 가는 중이다. 겨울계절학기 기간에 난방비 절감을 한답시고 오전 9~12시에 수업이 있는 광개토관 강의실의 난방을 10시부터 차단했던 것, 시험기간에 서버 DB(Data Base) 이전작업을 해서 학사정보시스템을 3일간 사용할 수 없게 했던 것, 학생이 전산망에서 엉뚱한 학과로 지정되어 있는데도 학과나 수업과나 학적과는 서로에게 책임을 미뤘던 것, 강남의 모 주차장 부지에 호텔을 지을 사업을 구상했던 것, 학기 중 화단에 쓸데없이 비료들을 뿌려대서 화단 옆을 지나가는 학생들이 악취에 고통 받았던 것 등 학교행정의 문제점은 수없이 많다. 오죽하면 학교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세종대신문에서도 학교의 늑장 행정, 불친절한 서비스 등을 비판했을 정도다.
  • 2012년 8월 31일, 예체능계 학과의 낮은 취업률 때문에 서울소재 대학 중에선 국민대와 함께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지정되었으나, 이로부터 1년 후인 2013년에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서 해제되었다.
    •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이란 수치화된 평가 기준에 미달되는 대학에 정부의 재정지원 및 학자금 대출을 제한하는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다. 간혹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과 '부실대'라는 단어를 혼동하거나 동일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이 아닌 경영부실대학이 바로 부실대다. 교과부와 대학구조개혁위에서도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과 경영부실대학(=부실대)는 완전히 다른 단어임을 공표한 바 있다. 따라서 세종대는 1년 동안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이었던 적은 있으나, 부실대였던 적은 없다.
    •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1년간 지정됐던 이유는 예체능계 학과 취업률과 지리적 위치 두 가지다.
      • 세종대학교의 재학생 중 예체능계 학과 재학생이 상당수인데, 어느 학교나 그렇듯 예체능계 학과 특성상 취업률이 높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세종대와 국민대 두 대학이나 그 전년도(2011년~2012년)에 지정됐던 상명대 모두 예체능이 강세인 대학이란 공통점이 있다.
      •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시 수도권 대학교끼리 순위를 매겨 선정한터라 세종대보다 재정도나 취업률이 훨씬 낮은 지방대학들이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교에 선정되지 않는 상황도 발생했다.
    • 다행히도 2013년도부터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시 인문/예체능 계열 출신의 취업률이 제외돼서 국민대와 세종대 모두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서 2013년에 해제됐다. 2015년 세종대와 국민대는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최우수 A등급을 받음으로써 2012년 8월 31일의 굴욕을 만회하였다.
    • 2012년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이 발표됐을 당시 동일한 상황이었던 국민대는 즉시 학교 홈페이지에 해명공지를 올리고 교수진을 긴급소집하는 등 기민하게 움직였으나, 세종대의 경우 발표 후 3일이 지난 저녁에서야 짤막한 해명글을 올려 재학생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이후 학교 측에서 국가장학금2를 나라에서 지원받을 수 없게 된 13학번 신입생들에게 교내 장학금을 추가지원하겠다고 발표하였으나 늦장대처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 2013년, 등록금은 겨우 8만원 가량 내린 반면에[54] 여러 교내장학 혜택이 축소되었다. 학과내 성적상위 4등에게 주는 장학금을 100만원에서 50만원으로 깎고, 심지어 국가장학금과 다른 교내장학금이 겹쳐도 차액 같은 건 안 줬다. 교내장학금을 우선적으로 수여하고 나머지만 국가장학금으로 메워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국가장학금을 우선적으로 수여하고 나머지 부분만 교내장학금으로 메웠다. 그리고 메우고 남은 교내장학금[55]은 재단이 차지해서 많은 학생들이 재단을 비난했다.
  • 2013년 5월 27일, 학교 측은 국가장학금2와 에델바이스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의 민감한 개인정보[56]를 세종대학교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에서 아무나 볼 수 있게 해 놓았다.[57]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일자 결국 하루만에 학번 검색 방식으로 바뀌었으나, 이 방식 또한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제기됐다. 학교 측은 이 사건에 대한 국민일보 기사가 나온지 다음 날인 2013년 5월 29일이 돼서야 짤막한 해명글을 홈페이지에 띄워 놓아 많은 학생들의 비난을 받았다.
  • 1학기 수강신청기간인 2016년 2월 16일에 전산망 장애로 인해 수강신청 시작 전 수강신청 서버가 터져버렸다. 웃긴 건 누군 수강신청 서버가 터졌고 누군 안 터져서 정상적으로 수강신청을 진행한 학우와 진행하지 못한 학우가 반반이라는 점이다. 하필이면 수강신청 서버가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는 4학년 이상이 수강신청하는 날에 터져버려 정상적인 수강신청을 진행하지 못한 고학번들의 멘탈도 같이 터져버렸다. 수습책으로 학교 측에서는 18일 목요일날 1, 2학년 수강신청이 끝난 후 4학년 이상 학생들에게만 추가 여석을 주고 19시부터 22시까지 3시간동안 추가신청을 하게 했으나, 학교 측의 늦장대처와 불량한 태도에 대한 학생들의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 2015년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 역량 인증평가에서 탈락하였다. 이로 인해 세종대로 유학 오려는 외국인은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 역량 인증평가를 통과한 대학에 유학 오려는 외국인에 비해서 1년간 상대적으로 복잡한 비자절차를 거쳐야 했다.[58]


11. 2020년 세종대 종합감사 결과 학사,회계비리 적발[편집]


학교법인 및 대학 종합감사 결과
교육부2020년 6월 30일, 2020년 5월 20일부터 31일까지 약 10일간 세종대에 대해 종합감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총 44건을 지적받았다.

연번
지적사항
기관
처분
1
수당 지급 부적정
학교법인
경고(5), 시정(회수)
2
무허가 건축 이행강제금 납부
학교법인
경고(3)
3
수익용 부동산 임대보증금 관리 부적정
학교법인
기관주의, 통보
4
재산 부당관리 등 임원 직무 태만
학교법인
통보(문책, 4), 고등교육정책실 별도조치(11)
5
수익용기본재산(XX부지) 특수관계법인 계약 및 저가(低價)임대
학교법인
통보[59](문책, 5), 고등교육정책실 별도조치(2), 수사의뢰
6
교직원 임면 관련 소송비용 교비회계 집행
세종대학교
경고(4)
7
B 개인 차량 기사 일당 법인회계 집행
학교법인
경고(6), 시정(회수)
8
업무추진비 집행 부당
학교법인
고등교육정책실 별도조치(1), 통보(문책, 4), 시정(회수), 고발
9
예정가격 미결정 입찰 실시
학교법인
경고(1), 통보(문책, 2)
10
일반경쟁 입찰대상 용역 수의계약 체결
학교법인
경고(4)
11
예산안 제출 및 심의,확정 기한 미준수
학교법인
기관경고
12
교원 채용과정 법인이사 참석 부당
학교법인, 세종대학교
고등교육정책실 별도조치(1), 경고(6), 통보
13
총장 징계절차 미이행
학교법인
경고(8), 통보
14
교원 신규채용 공고 부적정
세종대학교
경고(4), 통보
15
산학협력단 소관 연구원 4대보험 기관부담금 교비회계 집행
세종대학교
경고(3), 시정
16
교비회계 예산 초과집행
세종대학교
경고(9)
17
일반경쟁 입찰대상 수의계약 체결
세종대학교
경징계(2), 경고(5), 통보(문책, 3), 수사의뢰
18
기술지주회사 자회사 관리 부적정
세종대학교
경고(1), 통보
19
관리업무수당 지급 부당
세종대학교
경고(1), 통보(문책, 1), 시정(회수)
20
세출예산 목적외 사용
세종대학교
경고(7), 통보
21
자기 소관 업무 관련 회의 참석자 회의수당 지급
세종대학교
기관경고, 시정(회수)
22
외국인유학생 모집 부적정
세종대학교
경고(5)
23
창업지원센터 입주기업 임대료 미징수
세종대학교
주의(2), 시정(회수)
24
교수창업기업 인력 지원 부적정
세종대학교
경고(2)
25
연구비 집행 부적정
세종대학교
경고(1)
26
법인카드 사용 부당
세종대학교
경징계(1), 시정(회수)
27
연구결과물 미제출 및 지연제출
세종대학교
경고(10), 주의(13), 통보
28
직무발명 개인명의 특허 출원,등록 부적정
세종대학교
경고(1), 통보
29
연구노트 관리 소홀
세종대학교
기관경고, 통보
30
AA 분향소 설치 교비회계 지출 부적정
세종대학교
경고(2), 시정
31
연구비 부당 집행
세종대학교
중징계(1), 시정(회수), 고발, 통보[60]
32
연구기자재 구입 부적정
세종대학교
중징계
33
장학금 편법 지원
세종대학교
경고(3), 통보(문책, 1)
34
계약학과 전임교원 수업담당 비율 미준수
세종대학교
경고(2)
35
평생교육원 교육과정 개설 미보고
세종대학교
주의(3)
36
교외학습장 운영
세종대학교
경고(8), 통보
37
시험 답안지 미보관
세종대학교
기관경고, 개선
38
현장실습 현장지도 관련 규정 미마련 등
세종대학교
경고(6), 통보
39
출석 미달자 학점 부여 등
세종대학교
경고(3), 통보
40
보강 미실시 등
세종대학교
경징계(1), 주의(4), 시정(회수)
41
봉사장학금 부당 지급
세종대학교
경징계(4), 경고(5), 시정(회수)
42
신축공사 미분리 발주
세종대학교
경고(6), 주의(1), 고발
43
신축공사 시공 부적정
세종대학교
경고(2), 통보
44
시설공사 제경비 정산 부적정
세종대학교
경고(2), 시정(회수)


12. 윤지선 강사 세종대학교 초빙교원 발탁[편집]


윤지선이 초빙교원으로 발탁되었는데 윤지선은 과거 남성혐오 논문 게재로 논란이 되었던 인물이라 온라인상에서 윤지선의 초빙교원 발탁에 대해 비판 의견들이 잇따랐다.

12.1.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 유저의 화상수업 방해 사건[편집]



13. 세종대학교 홍보댓글 사건[편집]


[단독] 장학금 미끼로…세종대, 학생들에게 ‘홍보 댓글’ 쓰게 했다

한겨레 단독 보도로 드러난 논란으로 세종대학교가 2015년부터 ‘학교 홍보 기자’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모집해 연간 최대 수천건의 학교 홍보 댓글을 수험생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에 조직적으로 작성했었던 것이 폭로된 사건.

한겨레가 입수한 ‘댓글 실적 현황’ 학교 내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13개월간 세종대 홍보 기자단 학생 10여명을 포함해 교수, 교직원 등은 네이버 지식인과 수만휘(국내 최대 입시 커뮤니티)에 총 4,200여개의 댓글을 작성했으며 학생들은 개인 아이디로 글을 달았다고 한다.

이는 입시전문기업 ‘유웨이’의 컨설팅에 따른 것이라고 하며 세종대는 유웨이 컨설팅 뒤 곧바로 관련 내용을 시행했으며 분기별로 10명 안팎의 학생들을 홍보 기자단으로 뽑아 홍보실 차원에서 댓글 작성 지침을 전달했다. 이에 학생들은 커뮤니티에 들어가 ‘세종대’, ‘세종대학교’를 검색한 뒤 ‘답변을 기다리는 질문’ 중 가장 최근에 등록된 질문 또는 대학·학과별 비교를 묻는 질문에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실제로 홍보 기자단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해당 학생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학교 비교 질문을 놓고 입시 결과표나 ‘인서울’ 등 학교의 지리적 위치 등을 앞세워 비교 학교보다 낫다는 취지로 댓글을 쓰라는 게 학교가 원하는 방향이었다”며 “댓글 한 개에 0.5시간을 인정해 장학금을 받다 보니 압박으로 느껴졌다”라고 했다.

이에 세종대 측에서는 “온라인상에서 학교와 관련한 문의가 수천건씩 올라온다. 홍보 기자들이 자신이 속한 학과와 관련된 질문에 알아서 답변하고 있지만, 강제적으로 (답변을 달라고) 시킨 적은 없다”, “홍보실 직원, 대학 교직원, 담당 교수들도 답변을 해서 (댓글 실적은) 실제 학생들이 단 것보다 과장됐다. 같은 취지로 기자단을 운영하는 다른 대학들도 많다”라고 하면서 댓글 작성 자체에 대해서는 시인했지만 결코 강제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유웨이 관계자는 “2015년 당시 담당자들이 퇴사해서 (문건 내용과 관련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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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사저널 - 세종대 위기, 발단은 재단 전횡[2] 시사저널 - 세종대 위기, 발단은 재단 전횡[3] 시사저널 - 세종대 위기, 발단은 재단 전횡[4] 여론수렴위원회는 학생 대표 5인 및 노조 대표 5인으로 구성된 학내 자치기구였다.[5] 시사저널 - 세종대 위기, 발단은 재단 전횡[6] 문교부(文敎部)는 교육·과학·기술·예술·체육·기타 문화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이었다. 1948년 7월 17일 정부 수립과 함께 발족하였으며 1990년 12월 26일 교육부로 개편되면서 폐지되었다.[7] 세종대는 당시 학교예산 고갈로 1989년 7월 25일에 교직원 280명의 7월분 봉급을 지급하지 못 했다.[8] 시사저널 - 세종대 위기, 발단은 재단 전횡[9] 시사저널 - 세종대 위기, 발단은 재단 전횡[10] 시사저널 - 세종대 위기, 발단은 재단 전횡[11] 이 요청으로 인해 1960년 6월 2일 학내에 공권력이 투입되었다.[12] 시사저널 - 세종대 위기, 발단은 재단 전횡[13] 이대학보 - 세종대 공권력 투입을 규탄한다[14] 중앙일보 - 대학생 1천여명 화염병 가두시위/세종대 경찰투입 항의[15] 이대학보 - 세종대 공권력 투입을 규탄한다[16] 시사저널 - 세종대 위기, 발단은 재단 전횡[17] 시사저널 - 세종대 위기, 발단은 재단 전횡[18] 한국대학신문 - '한 대학 두 총장' 사건[19] 이대학보 - 대학가 소묘[20] 오마이뉴스 - 세종대 총학생회 총장실 점거 농성[21] 세종대학교/학사제도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세종대학교의 등록금은 동결되었으며 2017년 현재 세종대학교의 등록금은 서울 소재 사립대학 평균 등록금과 같거나 더 낮은 수준이다. 즉 2017년 현재 세종대학교의 등록금은 2004년의 등록금과는 달리 정상화된 상태이다.[22] 오마이뉴스 - 세종대 총학생회 총장실 점거 농성[23] 오마이뉴스 - 세종대 총학생회 총장실 점거 농성[24] 오마이뉴스 - 세종대 총학생회 총장실 점거 농성[25] 오마이뉴스 - 세종대 총학생회 총장실 점거 농성[26] 오마이뉴스 - 세종대 총학생회 총장실 점거 농성[27] 오마이뉴스 - 세종대 총학생회 총장실 점거 농성[28] 오마이뉴스 - 세종대 총학생회 총장실 점거 농성[29] 오마이뉴스 - 세종대 사태는 '사학비리 종합선물세트'[30] 한겨레 - 세종대 113억 부당지출 적발[31] 한국대학신문 - 부모-자식 싸움 세종대 이사장 사퇴[32] 조선일보 - 주명건 전 세종대 이사장 무죄[33] 세종대, 세종사이버대학교, 세종고등학교, 세종초등학교 등[34] 세종호텔, 춘천세종호텔, 세종서적 등[35] 아시아경제 - 세종대, 高大에 표장금지 가처분 신청[36] 국가법령정보센터 - 표장사용금지가처분 [서울중앙지법 2008.3.25, 자, 2008카합799, 결정 : 항고] [37] YTN - 세종대, '고려대 세종캠퍼스' 반대 서명운동[38] 뉴시스 - 세종대, 오늘 '高大≠세종캠퍼스' 궐기대회[39] 전상진은 前 세종대학교 총학생회 집행국장이며, 퇴진했던 주명건 前 대양학원 이사장의 정이사 복귀를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 왔다.[40] 오마이뉴스 - "세종대 '강제 졸업' 이전에 회유 받았다"[41] 오마이뉴스 - "세종대 '강제 졸업' 이전에 회유 받았다"[42] 오마이뉴스 - "세종대 '강제 졸업' 이전에 회유 받았다"[43] 오마이뉴스 - "세종대 '강제 졸업' 이전에 회유 받았다"[44] 사회과학대학 경제통상학과의 10학번(선배)와 11학번(새내기). 이 사건 이후로 사회대 내에 존재했던 악습들이 완전히 없어졌으므로 해당 단과대학 및 학과 신입생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45] 당시에 사회대와 같이 OT를 갔던 자연대 학생들은 사회대의 말도 안되는 악습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46] 해당 학과의 학과장과 단과대학장을 모두 직위 해제 처리하면서 보직 해임에 따라 보직 교수를 교체했다. 학과 소속 교수들에게는 경고 조치를 내렸다.[47] 삼브롬화붕소 가스는 무색 기체로 불쾌하고 자극적인 냄새가 난다. 흡입할 경우 폐렴과 폐부종 등 증상을 유발하며 발병 후 산소가 부족하면 수 시간 내로 사망할 수 있다. 섭취할 경우엔 실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48] 누출된 삼브롬화붕소는 액체 1.5㎏으로 공기와 접촉해 가스 형태로 유출되었다.[49] 영실관, 율곡관, 학술정보원(동천관)[50] 연합뉴스 - 세종대서 삼브롬화붕소 가스 누출…2천명 대피[51] 연합뉴스 - 세종대 실험실서 황산 용기 폭발…7명 부상[52] 학교 측의 주장과는 달리 생협은 물건을 대량으로 구입해 운영하고, 수익 창출을 중점으로 두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됐던 단체였다는 게 세종대학교 학생들의 주된 평가이다. 생협이 학내 자판기를 운영했을 때 학내 자판기의 음료수 가격은 서울 소재 일반적인 슈퍼의 음료수 가격보다도 100~200원 정도 저렴했다.[53] 세종대학교 생활협동조합 사업종료 안내[54] 2013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4년 동안 등록금이 동결되었다.[55] 어떻게 보면 학생들에게 줘야 할 장학금을 한국장학재단에게서 뜯은 것이다.[56] 학자금 대출내역, 소득분위, 수혜금액 등[57] 국민일보 - 가계곤란 학생들 울린 세종대… 복지장학금 3959명 개인 정보 학교 홈피 노출[58] 그러나 세종대 외에도 수많은 대학이 이 평가에서 탈락했으며, 이러한 조치와 상관 없이 세종대에 재학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QS, THE 등 대표적인 세계대학평가에서의 국제화지표 상승을 위해 전체 재학생 중 외국인 유학생/교환학생 비중을 점차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전체 유학생 중 중국인 유학생의 비중이 90%에 달하는 타 대학과는 달리 세종대는 전체 유학생 중 단 60%만이 중국인 유학생이다.[59] 국세청[60] 한국연구재단, 과기정통부, 산업기술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