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마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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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마르소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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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세자르 영화제
파일:cesarawards.png
신인여우상
제7회
(1982년)


제8회
(1983년)


제9회
(1984년)

없음
(다음 해에 해당 부문 신설)

소피 마르소
(라붐 2)


상드린 보네르
(우리의 사랑)


소피 마르소
Sophie Marceau

파일:sophie-marceau-08-26-2022.jpg
본명
소피 다니엘 실비 모퓌
Sophie Danièle Sylvie Maupu
출생
1966년 11월 17일 (57세)
파리
국적
[[프랑스|

프랑스
display: none; display: 프랑스"
행정구
]]

신체
172cm, 56kg, 245mm(US 7.5 /EU 38)
데뷔
1980년 영화 라붐
부모
아버지 브누아 모퓌
어머니 시몬 모리세
파트너
안드레이 줄랍스키(1985년~2001년)
짐 렘리(2001년~2007년)
크리스토퍼 램버트(2007년~2014년)
시릴 리냑(2014년~2016년)
자녀
아들 뱅상 줄랍스키(1995년생)
딸 줄리엣 렘리(2002년생)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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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한국에서의 인기
4. 출연작
4.1. 영화
5. 감독작 / 각본작
6. 저서
7. 여담



1. 개요[편집]


프랑스배우.


2. 생애[편집]


1966년 11월 17일 파리, 가게 종업원인 시몬 모리세(Simone Morisset)와 트럭 운전수인 브누아 모퓌(Benoît Maupu) 사이에서 첫째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마르소 가족은 노동자 계급의 삶을 살았는데, 이것은 그녀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녀는 주중에 가족의 식당 일을 도왔으며, 주말에는 에손(Essonne) 주의 베르르프티(Vert-le-Petit)에 위치한 작은 집인 라카반(La Cabane)에서 지냈다. 그러나 9살 때 부모는 이혼했다.

1980년 2월, 14세였던 마르소와 그녀의 어머니는 10대를 위한 모델 에이전시에 그녀의 사진을 가지고 갔으나 어떠한 연락도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같은 때 클로드 피노토 감독 영화 라붐(La Boum, the party)의 캐스팅 감독이었던 프랑수아즈 메니드레(Françoise Menidrey)는 마르소가 사진을 제출한 모델 에이전시에게 해당 프로젝트를 위한 배우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고 에이전시는 소피 마르소를 추천한다. 이후 그녀는 수많은 카메라 테스트와 면접을 거친 후, 고몽 영화사의 알랭 푸아레(Alain Poiré)와 장기 계약을 맺었다.



영화 《라붐》
데뷔작 영화 《라붐》은 프랑스에서만 450만 관객을,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1,500만 명의 관객을 기록[1]할 정도로 대히트했고, 1981년에는 프랑스 가수 프랑수아 발레리(François Valéry)와 같이 들라노에(Delanoë) 작사의 곡인 "Dream in Blue"로 가수로도 데뷔하였다. 1982년, 16세가 된 마르소는 라붐 2에 출연한 후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개인적으로 100만 프랑[2]을 빌려 고몽과의 독점 계약을 해지했다.

속편격인 《라붐 2》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일대에서 매우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 일본, 중국, 대한민국 등에서도 공식적으로 개봉됐다. 대한민국에서 《라붐 1》은 2013년에 프랑스 측에서 정식 판권을 받아 대한민국의 극장에서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개봉한 게 최초였고, 1989년 금성비디오에서 출시한 라붐 비디오는 해적판이었다. 《라붐 2》는 만들어진 지 4년 만인 1986년에 극장에서 공식 개봉했으나 극장 흥행 자체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대한민국에서는 영화 자체보다 소피 마르소와 영화의 주제가 "Reality"(라붐 1), "Your eyes(라붐 2)"이 더 알려졌다. 참고로 "Reality"와 "Your Eyes", "You call it love", 세 노래 모두 블라디미르 코스마라는 프랑스 음악가가 만들었다.

《라붐 2》의 흥행으로 소피 마르소는 프랑스와 유럽의 국민 아이돌로 떠올랐지만 한편으로는 전문적인 연기 수업을 받지 않고 얼굴로만 뜬 배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마르소는 "아이돌"로 각인된 자신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 라붐 시리즈의 차기작으로 1984년 제라르 드파르디외, 카트린 드뇌브가 공동 주연한 《사강의 요새 (Fort Saganne)》로 대규모 블록버스터[3]에도 진출했고 같은 해 10월에 개봉한 《행복한 부활절 (Joyeuses Paques)》에서는 시크하고 반항적인 불량소녀로 나왔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자 소피 마르소는 1985년, 《격정 (L'Amour Braque)》, 《폴리스 (Police)》, 1986년의 《지옥에 빠진 육체 (Descente aux Enfers)》 등에서 연이어 노출 연기를 선보임으로써 완전한 이미지 변신을 하기 시작한다. 특히 <지옥에 빠진 육체>에서 마르소는 라붐에서 아버지 역으로 나왔던 클로드 브라쇠르와 부부로 출연하여 전신누드가 포함된 정사신을 펼쳐서 그녀의 청순한 모습을 기억하던 팬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L'Etudiante의 주제곡인 'You call it love'
이후 소피 마르소는 1988년, 라붐 감독 클로드 피노토의 신작 《유 콜 잇 러브 (L'Etudiante)》과 사극 《혁명가의 연인 (Chouans!)》에 출연하면서 로맨틱한 여주인공으로 돌아온다. 노르웨이 여가수 카롤리네 크뤼게르(Karoline Krüger)가 부른 'You call it love'가 잔잔히 깔리면서 스키 마스크와 모자를 벗고 아름다운 얼굴선과 함께 깨끗한 피부를 드러내는 영화의 오프닝은 소피 마르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다. 극중에서 마르소가 몰리에르의 《인간혐오자 (Le Misanthrope)》, 알프레드 드 뮈세의 《사랑은 장난으로 하지 마오 (On ne badine pas avec l'amour)》와 같은 희곡 작품들을 언급하는 등 그녀의 지적인 모습 또한 못 남성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사극 《혁명가의 연인 (Chouans!)》에서 맡은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로도 국제 로맨틱 영화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로맨틱한 여배우상을 수상하였다.

1989년부터 소피 마르소는 " 자신보다 무려 26살 연상"인 영화감독, 안드레이 줄랍스키와 동거를 시작하였고 1995년 6월에는 아들 뱅상이 태어났다. 줄랍스키 감독과의 인연은 그가 1985년에 감독한 영화 《격정 (L'Amour Braque)》에 소피 마르소가 출연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줄랍스키 감독이 《사강의 요새 (Fort Saganne)》에 나온 소피 마르소의 연기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그녀의 소속사에게 《격정 (L'Amour Braque)》의 대본을 보냈고 당시 고만고만한 아이돌 영화의 대본만 들어오고 있던 소피 마르소는 자신에게 온 《격정 (L'Amour Braque)》 대본을 읽자마자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990년에는 두 사람이 만든 회사의 3번째 필름인 《고요한 펠리세이드 (Pacific Palisades)》 와 《쇼팽의 푸른 노트 (La Note Bleue)》에 출연했다. 1991년, 마르소는 유리디체(Eurydice) 극장에서 공연된 조지 버나드 쇼의 유명한 희곡 피그말리온에서 주연인 엘자 돌리틀 역으로 출연하여 연극 무대에도 진출, 최고의 신인 여배우를 위한 상인 몰리에르 상을 받았다. 1993년에는 뱅상 페레[4]와 함께 로맨틱 코미디 《팡팡 (Fanfan)》을 통해 못말리는 천방지축 아가씨를 연기하였다.

1994년의 《달타냥의 딸 (La Fille de D'Artagnan)》을 기점으로 다시 덜 로맨틱한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한 소피 마르소는 1995년 멜 깁슨 감독, 주연의 《브레이브 하트》에서 이사벨 공주 역으로 출연 할리우드를 포함한 국제적 인지도를 얻게 되었고 유명한 프랑스 영화감독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빔 벤더스와 함께 영화 《구름 저편에》에서 국제적 배우로서 호흡을 맞췄다.

1997년, 그녀는 영국에서 윌리엄 니컬슨과 영화 《Firelight》를, 프랑스에서 베라 벨몽드와 영화 《마르키스 (Marquise)》을 촬영하고 버나드 로즈와 러시아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찍었다.

1999년 《한여름 밤의 꿈》에서 히폴리타를 연기했으며, 《007 언리미티드》에서 악녀 본드걸인 엘렉트라 킹을 연기했다.[5]

2000년에 안드레이 줄랍스키와 마지막으로 팀을 이룬 영화 《피델리티 (La Fidélité)》를 찍고 2001년 그와 헤어진 마르소는 프로듀서 짐 렘리와 사귀면서 2002년 런던에서 그녀의 두 번째 아이인 줄리엣을 낳았고 2002년 영화 《사랑한다고 말해줘 (Parlez-moi D'amour)》를 감독하여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이후 렘리와 헤어진 그녀는 2007년에 개봉한 자신의 2번째 감독 영화 《트리비알》에 주연으로 출연한 미국계 프랑스인인 동료 배우 크리스토퍼 램버트[6]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교제했다.

이처럼 청순하기만한 얼굴과 달리 직접 영화감독을 맡기도 하고 《거짓말장이》라는 제목의,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반자전적인 소설을 쓰기도 하는 등 지적인 면도 많이 갖추고 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 중에는 영어로 된 작품도 많은데 영어대사를 완벽히 소화해 내는 것으로 보아 영어능력도 수준급인 듯. 2009년에는 크리스챤 디올의 화장품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다.

노동자 계급 가정 출신이라서 그런지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투표에서 노골적으로 백인우월주의를 내건 극우정당 국민전선장 마리 르 펜이 예상을 뒤엎고 결선투표에 진출하자,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에 뛰어들었다.[7]

2002 월드컵을 앞두고 브리지트 바르도의 재단이 한국의 개고기 식용을 반대하는 주프랑스 한국 대사관에 보내는 항의문에 소피 마르소는 나탈리 베이, 장폴 벨몽도, 축구선수 에마뉘엘 프티와 함께 서명했다.#

2014년에는 동거녀와의 결별로 이어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열애 스캔들과 관련해 "올랑드는 비열한 겁쟁이"라는 거침없는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2016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인권 탄압과 관련하여 레지옹 도뇌르 훈장 서훈을 거부했다.

30년 경력 동안 영화제 출품작에도 자주 출연하고 훌륭한 연기를 보였지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이랑 인연이 없었던 편이다. 그러다가 2021년 칸 영화제프랑수아 오종의 《다 잘된 거야》에 주역으로 출연하면서 처음으로 칸 경쟁 레드카펫을 밟았다.


3. 한국에서의 인기[편집]


한국에서는 2000년대 이후로 프랑스 영화는 거의 개봉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인지도는 웬만한 미국 배우 못지않다.


파일:external/thegrandnarrative.files.wordpress.com/sophie-marceau-korean-advertisement-1989.jpg



드봉 광고
1989년 화장품 CF를 위해 처음 방한하였다. CF 촬영 당시 출연료로 한화 2억원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었는데, 당시 2억이면 한국 영화 한 편의 평균 제작비였고, 신흥 부촌으로 떠오르던 강남의 30평짜리 아파트를 네 채나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조용필이 맥콜 광고를 찍으며 받았던 출연료가 소피 마르소와 똑같은 2억원이었으니, 당시 국내에서의 인기와 인지도를 고려해봤을 때 소피 마르소가 과하게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이런 논란의 원인은 1989년 2월 1일, 대한민국의 방송위원회가 외국인은 CF의 주연 및 그에 준하는 역할로 출연할 수 없다는 규정을 삭제했던 것 때문이었는데, 처음으로 외국 연예인을 CF의 주연으로 출연시킬 수 있었으니, 마치 주식시장에 처음으로 상장된 기업처럼 거품이 낀 광고 출연료가 형성됐던 것이다. 몇몇 기업들은 광고의 차별화를 위해 외국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섭외했고, 당시 외국과 한국의 물가 차이, 소득 차이 등을 고려해 광고 출연료를 국내 인지도에 비해 높게 책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외국 연예인에 대한 광고 단가는 얼마 정도가 적당한가에 대한 시장의 기준이 확립되지 않았던 상태였기에, 외국 연예인의 광고 단가에 거품이 과도하게 끼었다는 논란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1989년은 외국인 광고 모델 규제 해제가 첫 적용되는 원년이었기 때문에 주윤발, 소피 마르소와 같은 외국 연예인들을 한국 광고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시기였고, 1990년부터는 시장에서 외국 연예인의 광고 효과를 크게 체감하지 못하여 거품이 많이 빠졌기 때문에 한국 광고에서 외국 연예인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참고로 국내 외국인 광고 모델 1호였던 주윤발왕조현,장국영도 소피 마르소와 똑같은 배경으로 인해 모델로 기용된 것이었고, 1989년 밀키스 광고에 출연했을 때 소피 마르소가 받은 만큼은 아니었지만 광고료로 수천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한국 스태프들과 같이 회식 자리를 갖기도 했다. 스태프들은 소피 마르소가 술을 아예 못하거나 해도 한두 잔이나 할 줄 알았는데, 막상 같이 마셔보니 매실주 한 병을 다 마시고도 소피 마르소에게서 전혀 술기운을 찾아볼 수 없어 놀랐다고 한다. 당시 한국에선 흔했던 재래식 화장실을 보고 기겁했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1991년 《쇼팽의 푸른 노트》가 한국에 개봉하자 소피 마르소는 영화 홍보를 위해 다시금 방한하였다.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방한 때도 마르소가 대통령과 같이 왔다. 당시 마르소를 보기 위해 몰려든 군중을 보고 미테랑은 그 사람들이 다 자기를 보러 왔다고 생각해 최정화 통역사에게 "마드무아젤, 내가 한국에서 이렇게 인기가 있는 줄은 몰랐소."라고 대단히 흡족해했다고 한다.



2015년, 영화 《제일버드》 홍보를 위해 내한하여 연예가중계 등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4. 출연작[편집]



4.1. 영화[편집]


연도
제목
배역
비고
1980
라붐
빅 베레톤

1982
라붐 2

1984
사강의 요새
Madeleine de Saint-Ilette

나이스 줄리
줄리

1985
격정
마리

폴리스
Norya

1986
지옥에 빠진 육체
Lola Kolber

1988
유 콜 잇 러브
발렌틴 에즈퀴라

혁명가의 연인
Céline

1989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Blanche

1990
고요한 펠리세이드
Bernadette

1991
샤샤를 위하여
로라

쇼팽의 푸른 노트
Solange Sand

1993
팡팡
Fanfan

1994
달타냥의 딸
Eloïse d'Artagnan

1995
브레이브 하트
프랑스의 이자벨

구름 저편에
포토폴리오 속 여성

1997
안나 카레니나
안나 카레나나

마르키스
Marquise du Parc

파이어라이트
Élisabeth Laurier

1999
로스트 & 파운드
Lila Dubois

한여름 밤의 꿈
히폴리타

007 언리미티드
엘렉트라 킹

2000
피델리티
Clélia

2001
벨파고
리사

2003
알렉스 & 엠마
Polina Delacroix

내 남편 길들이기
Marie-Dominique Delpire

Les clefs de bagnole
La clapman
[8]
2004
넬리
Nelly

2005
안소니 짐머
키아라 만초니

2007
트리비알
루시 / 빅토리아
감독, 각본
2008
피메일 에이전트
루이 데스폰테인

비밀일기

[9]
체인징사이드: 부부탐구생활
아리안 마르시악
[10]
2009
돌아보지마
Jeanne No. 1

카르타헤나


2010
디어 미
마거릿 벨 마가렛 플로
[11]
2012
해피니스 네버 컴즈 얼론
샬롯
[12]
2013
어레스트미
죄인

2014
어떤 만남


섹스 러브 앤 테라피
주디스 샤브리에

2015
뷰티풀 레이디스
마틸드

A Spiritual Matter
빅토리아

2018
미세스 힐스
헬레네
감독, 각본
2021
다 잘된 거야
엠마뉘엘

2022
I Love America
Lisa



5. 감독작 / 각본작[편집]


연도
제목
비고
1995
L'Aube à l'envers
단편 영화
2002
사랑한다고 말해줘

2007
트리비알
감독, 각본, 출연
2018
미세스 힐스
감독, 각본, 출연


6. 저서[편집]


연도
제목
비고
1996
Menteuse
[13]


7. 여담[편집]



  • 1985년에 Certitude라는 앨범을 내어 잠시 가수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앨범의 작사는 프랑스 가수 줄리엔 클레르 (julien clerc)와의 협업으로 유명한 작사가 에티엔 로다 길(Etienne Roda-Gil)이 맡았고 작곡은 프랑크 랑골프(Franck Langolff)가 담당하였다.[14]


  • 지금은 세월이 흘러 어느새 중년 여배우가 되어 젊은 시절의 청순미는 찾기 어렵지만, 나이에 맞게 기품이 느껴지는 엄청난 미모를 자랑한다. 타고난 몸매는 어디 가지 않아서 2014년 개봉한 "어떤 만남"에서의 베드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 국내에서 2002~2006년 라붐1, 라붐2, 유콜잇러브(암전처리) DVD가 발매되었으나 모두 무판권으로 의심이 되고 있으며, 2015년 12월 이오스엔터를 통해서 라붐1, 라붐2, 유콜잇러브 3작품 모두 블루레이로 정식 발매되었다. 유콜잇러브 블루레이는 무수정판으로 발매되었다.
OST의 경우 1980년대 중반에 라붐1,2편은 서울레코드사에서, 유콜잇러브는 성음레코드에서 LP와 테잎을 발매했다. 2023년 현재 라붐1,2가 한 장에 들어간 OST합본, 유콜잇러브 OST 모두 온라인 상에서 구입할 수 있다.

  • 2023년 10월, 럭비 월드컵을 관람하는 근황이 공개됐다. 사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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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기록은 《제국의 역습》이 개봉하기 전까지 장장 8개월 간 깨지지 않았다.[2] 현재 가치로 추산하면 40억 이상 예상[3] 당시까지 개봉한 프랑스 영화들 중 최대 제작비를 들인 영화였다.[4] 프랑스에서 주로 활약한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명배우. 주로 작가주의 영화에 출연하였지만 《크로우 2》에서는 액션배우로 주연을 맡기도 했다.[5] 이 인연으로 2012년 스카이폴 프랑스 프리미어에 깜짝 등장했다.[6] '하이랜더' 시리즈의 주인공 코너 맥클라우드 역을 맡았던 배우이다. 프랑스 배우인 탓에 크리스토퍼 랑베르라는 프랑스 발음으로 알려져있기도 하다. 그의 부친이 프랑스 외교관으로 미국 뉴욕 주재중에 그를 낳았기 때문에, 미국 국적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은 유엔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보냈으며, 영화는 주로 프랑스에서 찍었다.[7] 르펜이 결선투표에 진출하자 프랑스 전역에서 공화국을 사수하자면서 르펜 반대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고(노무현 탄핵 반대 시위 못지않을 정도였다.), 소피 마르소뿐만 아니라 수많은 연예인, 스포츠스타들도 대놓고 르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지네딘 지단은 부모님이 알제리 출신이라서 그런지(지단 본인은 마르세유 출신이다.) 국민전선을 극구 반대하면서 혹여 르펜이 당선되면 은퇴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우승 당시에도 르펜은 대놓고 아프리카계를 욕했다는 것) 반면 보신탕을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브리지트 바르도는 이런 인종차별적인 정당을 골수적으로 지지한다. 투표 결과는 르펜의 참패였다.[8] 영어제목 The Car Keys.[9] 원제 LOL (Laughing Out Loud)[10] 원제 De l'autre côté du lit[11] 원제 L'âge de raison[12] 원제 Un bonheur n'arrive jamais seul[13] 영제 Telling Lies[14] 두 사람은 바네사 파라디의 데뷔 곡 Joe le taxi를 같이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