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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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92년 12월 8일
경상도 밀양도호부 단장면 안포동리
(현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안법리)[1]
사망
1971년 12월 26일
본관
일직 손씨[2]#
이명
손기성(孫基聖)
일본식 이름
마쓰히라 기이쿠
松平基郁
서훈
건국포장 추서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9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손종헌은 1889년 1월 12일 경상도 밀양도호부 단장면 안포동리(현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안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 당시 손종헌과 함께 단장면 태룡리의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체포되어 3개월간 구금당했다.#

석방된 후 1920년 말 밀양군에서 만주 길림성 군정서 부속 흥업단 단장 김호의 명령으로 군자금 모집 차 귀국한 이만준(李萬俊)과 친족 손경헌의 권유로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였다. 그후 숙부뻘인 손종헌에게 가입을 권유해 동지로 포섭하고 군자금 모집을 위해 진력하다가 체포되었다.

[3]

1923년 8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강도·상해 등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언도받고 출옥하였다.# 그러나 미결수로서 1년 6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출옥 후 고향 마을에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에 진력하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71년 12월 26일 별세하였다.

201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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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립유공자 손경헌손종헌도 이 마을 출신이다.[2] 24세손 기(基) 항렬.[3] 이 사이 각각 1921년 11월 2일 마산지검 밀양지청에서#, 1923년 1월 15일 대구지검 등에서 모종의 사건에 연루된 혐의에 대해서는 기소중지로 불기소처분이 내려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