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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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한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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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0 시드니 올림픽 로고.svg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종목
동메달

2000

파일: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로고.svg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은메달

2009

파일:NC_Dios_2020_KoreanSeries_Champions.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20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dywc2m8WK1sqk8veo4_r1_540.png
2005 사랑의 골든글러브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5 KBO 리그 MVP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1, 2005 KBO 리그 다승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5 KBO 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1 KBO 리그 승률왕

파일: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구 로고.png2005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선정 올해의 선수

보유 기록
최고령 시즌 10승
만 40세 8개월 9일[1]
포스트시즌 최고령 선발승
만 40세 9개월 19일[2]


손민한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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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61번
윤형배
(1992~1997.6.27.)

손민한
(1998~2011)


허준혁
(2012~2015)
NC 다이노스 등번호 54번
결번

손민한
(2013~2013.5.31.)


윤형배
(2013.6.1.~2014)
NC 다이노스 등번호 61번
윤형배
(2013~2013.5.31.)

손민한
(2013.6.1.~2015)


김선규
(2016)
NC 다이노스 등번호 81번
이도형
(2015~2018)

손민한
(2019~2022)


김건태
(2023~)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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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한
孫敏漢 | Son Min-Han

출생
1975년 1월 2일 (49세)
부산광역시 남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대연초 - 대천중 - 부산고 - 고려대[1]
신체
180cm, 85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7년 1차 지명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7~2011)
NC 다이노스 (2013~2015)
지도자
NC 다이노스 1군 수석·투수코치 (2019)
NC 다이노스 1군 투수코치 (2020~2022)[2]
NC 다이노스 2군 투수코치 (2022)[3]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23~)
경력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2007~2011)
병역
예술체육요원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부문 동메달)
상훈
체육훈장 백마장

1. 개요
3. 지도자 경력
3.1. NC 다이노스 투수코치
3.1.1. 2019 시즌
3.1.2. 2020 시즌
3.1.3. 2021 시즌
3.1.4. 2022 시즌
3.2.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4. 피칭 스타일
5. 수상 내역
6. 연도별 주요 성적
7. 코칭 스타일
8. 사건사고
8.1. 역대 감독들과의 트러블
8.2. 선수협회장 선임 및 사퇴 과정
8.3. 선수협 시절 비리와 선수협의 고소취하
9. 별명
10. 여담
11. 관련 문서
12.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선수였으며 전 NC 다이노스 투수코치. 오랫동안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했다. 후술된 선수협 비리에 연루되어 야구계에서 퇴출될 뻔도 했지만 무혐의 처분 후 2013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며 야구계에 복귀해 오랫동안 활약했다.


2. 선수 경력[편집]




3.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이후에도 현역 시절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NC 다이노스 구단과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비록 정식 코치는 아니지만, NC 구단이 주관하는 유소년 야구 육성 프로그램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


3.1. NC 다이노스 투수코치[편집]


2018년 10월 24일 NC 다이노스의 정식 코치로 선임되었다.# 사실 은퇴 이후 계속해서 NC 다이노스 측에서 손민한에게 코치 권유를 꾸준히 해왔으나 본인의 코칭 방식에 대한 의문 때문에 거절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이동욱 감독이 수석코치 자리를 제의하면서 코치직을 수락했다. # 이동욱 신임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의 역할과 동시에 1군 투수코치도 겸직한다.


3.1.1. 2019 시즌[편집]


시즌 초반을 보면 일단 선발을 길게 끌고 가는 식으로 투수를 운용하고 있다. 4월 6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를 보면, 4실점을 했던 선발 이재학을 6이닝까지 끌고 가면서 대역전극의 발판을 만들어낸 것이 그 예. 그리고 마무리 캠프 때부터 좋은 모습을 보인 신인 김영규를 발굴해냈고, 불펜 자원과 임시 선발로 계획했던 박진우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시즌 초 잦은 등판으로 인해 후반기부터 모습을 감춘 배재환을 또다시 자주 투입한다거나 세이브 상황이라는 이유로 원종현에게 4연투를 시키는 등 불펜 운용 쪽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6일 LG 트윈스전에서는 연장 11회 배재환이 등판했으나 불안한 제구로 5실점을 내주면서 패전투수가 되었는데 17일 연장 12회에 또다시 배재환을 올리는 이해 못할 투수 운용을 보였다. 물론 크리스티안 베탄코트의 어이없는 실책이 실점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나 결국 배재환은 이번에도 2실점을 하고 이틀 연속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당시 NC의 불펜에는 신인 배민서를 제외하면 16일 ⅓이닝만 던진 김진성이나 최근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김건태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6월 들어서는 7일부터 9일까지 이어진 KIA 타이거즈와의 3연전에서 모두 막판까지 1~2점차 상황이었다는 이유로 배재환원종현이 나란히 3연투를 하게 되었다. 3연투 과정에서 배재환은 세 경기 모두 홀드를 올렸으나 원종현은 앞선 두 경기에서 블론 세이브를 저질렀다.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불펜들은 스트라이크를 꽂는 것조차 힘겨워하니 나름 당위성이 있는 3연투라고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다음 경기였다. KIA와의 주말 3연전 이후 11일 화요일부터 키움 히어로즈를 만났는데, 이번에도 2점차로 앞선 상황이라고 단 하루 휴식을 취한 배재환을 또다시 투입시켰다는 것이다. 결국 구위가 떨어진 배재환은 2루타만 세 방을 내주는 등 22경기 만에 실점을 했고, 충격적인 것은 그 뒤를 이은 투수조차 나란히 3연투를 한 원종현이었다는 것이다. 원종현은 나름 위기 상황에서 실점을 하진 않았으나 결국 10회 유원상이 결승점을 내주면서 이 둘을 갈아넣고도 역전패를 했다.

이 과정에서 팬들이 불만을 갖는 것은 비록 앞서고는 있다고 해도 이미 무리한 일정을 소화한 배재환과 원종현을 또다시 소모시켜야 했냐는 것. 6월 들어서는 이 둘이 갖는 비중이 훨씬 커지고 있는데 11일까지 9경기를 치르는 동안 배재환이 6경기, 원종현, 강윤구가 5경기, 장현식이 3경기에 등판했고, 김진성이우석은 단 2경기에 등판했으며 5월 말부터 불펜으로 전환한 김영규는 아예 단 한 차례도 등판하지 않았다. 6월 들어 계속해서 접전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필승조만 갈아댈 거면 저 투수들은 도대체 데리고 다니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특히 11일 경기는 3연투를 한 투수들을 처음부터 구상해서 제외했다면 똑같이 역전패를 당했더라도 내상은 덜했을 상황이다.

후반기 들어서는 크리스천 프리드릭의 가세와 함께 종합적으로 투수진이 안정화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일단 팀내 선발진 중 드류 루친스키 다음으로 많은 이닝을 소화한 박진우를 불펜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뜬금없이 불펜으로 돌리더니 그 빈자리를 이닝 소화가 아쉬운 최성영으로 메웠다. 박진우가 불펜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나 최성영이 예상대로 불안한 투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큰 효과를 보고 있지는 못하다. 느릿느릿 한 박자 씩은 꼭 늦는 투수교체 타이밍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완전히 믿기에는 부족한 임창민김영규를 접전 상황에 내보냈다가 역전패를 당하기도 했다. 다행히 홍성무, 김건태, 강윤구 등의 무실점 경기가 많아지면서 버티고는 있는데 오히려 마무리 원종현이 가장 흔들리고 있다.

8월 25일 롯데 자이언츠전 역시 8회까지 4-3으로 앞선 상황에서 2사를 잡은 배재환이 2루타를 맞자 곧바로 강윤구로 교체했는데, 상대는 좌완에게 딱히 약하지도 않은 허일이었고, 강윤구는 스트라이크조차 못 던지고 볼넷을 내줬다. 문제는 그 다음으로 올린 투수가 원종현이었고, 원종현은 시원하게 초구에 역전 2타점 2루타를 맞았다. 결국 팀은 4-5로 패배.

급기야는 9월 5일 경기를 마치고 퇴근하다가 한 팬과 말다툼을 했다고 한다. 물론 링크대로 먼저 시비를 건 사람이 잘못한 것이지만 팬들은 터질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9월 8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8회초 역전에 성공해 4-2의 스코어를 만들자 배재환을 올려보냈는데,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더라도 배재환의 공이 전혀 제구가 되지 않으면서 선두타자에게 펜스 직격 2루타를 허용하더니 후속 타자에게는 몸에 맞는 공을 내주고도 아무런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이후 안타 - 2루타를 내리 얻어맞으며 동점을 내주자 그때서야 배재환을 내려보냈는데, 대신 올린 투수가 후반기 들어 제일 안좋은 원종현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원종현은 적시타 - 1타점 2루타 - 쓰리런 홈런으로 4-9의 스코어를 만들고 이닝을 끝냈다. 결국 팀은 그대로 패배하고 kt wiz와 공동 5위가 되었다. 이제 130경기가 다 되어가는데 투수 교체 타이밍은 너무나도 한결같고 덕분에 팀은 패배가 늘어가고 있다. 팬들은 이제라도 제발 이동욱 감독과 함께 나가달라며 빌고 있는 상황.

그런데 그 다음주인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깔끔한 투수 운용을 하면서 5연승을 했다! 최성영으로 조쉬 린드블럼이라는 대어를 낚았고, 크리스천 프리드릭이 난조를 보이자 박진우를 조기 투입하면서 가장 중요한 kt wiz와의 2연전을 다 잡았다. 그리고 삼성 라이온즈와의 2연전도 평소보다 투수 교체 타이밍을 빨리 잡으면서 스윕에 성공했다.

그 이후에도 투수들이 안정되면서 팀을 5강에 올렸다. 크리스천 프리드릭김영규가 완봉승을 올리기도 했다.

지도자 첫 해를 보면 김경문 시절 NC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국내 선발진의 기량을 향상시켰다[4]. 선발 평균자책점은 3.72, 최소 3위로 적어도 2019년 NC 팬들은 예년과는 달리 선발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펜 운용에서는 교체시기나 육성 모두에서 영 미덥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나마 후반기 들어 박진우를 선발에서 불펜으로 돌린 게 결과적으론 신의 한 수가 되었고, 김건태강윤구가 안정되는 등 이 부분은 시즌 말로 갈수록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으니 지켜볼 일.

10월 16일 배거슨 라이브 ㅅㅅㅅ에 출연한 임선남 스카우트 팀장이 썰을 풀었는데 드류 루친스키가 시즌 첫 두 경기에서 4사구를 남발하면서 퇴출설까지 나올 정도로 부진하자 루친스키 본인과 같이 투구폼을 교정했다고 한다. 이후 루친스키는 팀의 에이스로 거듭난 걸 보면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무작정 무능력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3.1.2. 2020 시즌[편집]


2019년 10월 11일, 한화 이글스에서 배터리코치로 있었던 강인권이 NC의 신임 수석코치로 부임하면서 2020년부터는 투수코치만 전담하게 되었다. 사실 수석코치와 투수코치를 겸임하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다는 걸 생각하면 나름 괜찮은 선택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5]


하지만 시즌에 들어서자 리그를 폭격하는 구창모를 제외하면 마운드, 특히 불펜진이 하위권에 쳐저 있어 팬들의 반응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필승조 역할을 맡아야 할 박진우강윤구가 모두 부진하고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임정호배재환도 타팀의 필승조의 비하면 너무 오락가락하고 있다. 원종현 정도만이 사람 역할 하는 중. 결국 5월 10일 LG 트윈스전에서는 불펜진이 1이닝 7실점을 하는가 하면 6월 14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는 무려 16실점을 합작했고, 6월 21일에는 최하위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도 1이닝 5실점을 하는 등 점점 더 답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코칭 능력에 대한 의문 부호가 붙고 있다. 이 외에도 투수 교체가 아니라면 마운드 방문을 꺼리는 방관자 모드도 주요 불만 사항. 40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팀은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으나 불펜 ERA는 5.97로 전체 9위까지 떨어졌다.

6월 25일 kt wiz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는 선발 구창모가 4이닝 5실점을 하자 5회부터 불펜을 가동했는데, 각각 10구와 6구로 나란히 삼자범퇴 처리한 송명기박진우를 1이닝 만에 내려버리는 이해 못할 불펜 운영을 했다. 사실 6회까지 1-5로 뒤지고 있었고, 그 상태로 경기가 끝났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타선이 7회 동점을 만들면서 접전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더블헤더 1차전에서 필승조를 소모한 상태라 송명기와 박진우를 길게 끌고 가면서 불펜 소모를 줄일 수 있었지만 판단 미스로 실패. 결국 5-5 상황에서 올려보낸 투수는 최근 제일 부진한 임정호였고, 임정호는 가볍게 역전을 허용했다. 그리고 1사 만루에서 등판한 김영규는 이를 막지 못하고 3점을 더 내줬고, 8회에는 홍성무 혼자 10실점을 했다. 그리고 이틀 전인 23일에는 이동욱 감독에게 밀려 마운드를 방문하거나 그렇게 나온 손민한 코치를 쳐다도 보지 않는 양의지화면에 잡히면서 손민한의 능력에 대한 물음표는 점점 더 커지는 중.

그리고 이틀 뒤인 27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도 송명기가 1이닝을 13구 만에 끝냈지만 3-3 동점이던 8회 배재환에게 3연투를 시켰다가 곧바로 역전을 내줬다. 유망주에게 멀티 이닝을 시키지 않는게 바람직할 수는 있지만 송명기는 2군에서 선발 역할을 해왔고, 등판 간격도 긴 편이라 크게 무리가 될 상황은 아니었는데 정작 배재환에게는 3연투를 시켰으니 팬들은 이해를 못하는 중. 결국 배재환의 뒤를 이은 김영규가 배재환의 책임 주자를 포함해 8실점으로 폭발하면서 이틀 만에 똑같은 운영 미스로 똑같이 완패를 당했다.

7월 5일 KIA 타이거즈전에는 마이크 라이트가 7회초 프레스턴 터커에게 피안타, 최형우에게 볼넷을 내준 뒤 마운드에 올라서긴 했지만 내리진 않았고 나지완에게 맞은 뒤에도 미동도 하지 않은 결과 유민상에게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게 만들었다. 이후의 불펜 기용은 문제가 없는 듯 했으나, 2-1로 뒤진 9회에 임정호가 최형우를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키자 원종현을 투입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원종현은 6월 30일, 7월 2일 각각 2이닝과 1⅔이닝을 소화하고 내려갔기에, 등판 간격을 보면 휴식을 취한 것 같지만 사실은 무리가 있던 상황이었다. 결국 나지완 뜬공 아웃 이후 연속 피안타 - 나주환에게 피홈런으로 4실점하는 최악의 결과를 불러왔다. 팀이 전상현, 문경찬을 상대로 9회말에 6점을 내며 끝내기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 이날 마운드를 방문하여 투수를 독려하는 부분에서 서재응과 비교당하며 팬들에게 미친듯이 까였고 이순철 해설위원도 서재응에게 배울 점이 있을 것이라며 쳐맞을 때만 공 들고 나오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디스했다.

믿을맨 원종현까지 3실점한 7월 5일 시점에서 NC 불펜진의 WAR는 0.05이며, 평균자책점은 6.71로 압도적인 꼴지이다.[6] 애초에 불펜 실력이 모자란데 손민한이 뭘 할 수 있냐는 옹호론도 이제 경기 결과만 보거나 매 경기를 챙겨보진 않는 팬들만 하는 소리가 되어버렸다.

7월 7일 SK 와이번스전에는 또 임정호 - 배재환 - 원종현을 투입해서 하마터면 구창모의 승리를 날려먹을 뻔 했다. 임정호는 이틀 전과 다르게 문제가 없었지만, 방어율은 양호해보여도 25~27일의 3연투 이후 롤러코스터를 제대로 타고 있는 배재환이 2아웃 상황에서 안타 - 볼넷 - 볼넷의 최악의 피칭으로 강판당하고 원종현이 2사 만루 상황을 한 번 막아냈으나, 이 경기 전까지의 등판 상황이 6월 30일(18구) - 7월 2일(28구) - 7월 5일(17구)로 등판 간격은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등판 간격에 비해 평소보다 많은 투구를 하고 있었다. 결국 3피안타 1볼넷 1폭투로 3실점했는데 이런 가운데 마운드에 한 번 올라오지 않으면서 SK팬들까지 경악하게 했다. 세이브를 올리긴 했지만 무려 31구를 던져 7월 2일의 최다투구수를 가뿐히 넘기고 말았고, 이재학최성영이 뛰는 동안에 불펜 선수들이 많이 뛸 것을 대비했다기에는 너무나 원종현을 낭비한 결과가 나왔다. 불펜진 WAR는 드디어 음수대로 접어들어 -0.03, 평균자책점은 6.79로 상승했다.

8일에는 이재학이 6이닝 3실점 퀼리티스타트로 4선발값은 해준 가운데 박진우 - 강윤구 - 송명기가 무실점으로 막아내었다. 9일에는 최성영이 6이닝 2실점의 호투를 보여주고, 팀이 7회에만 노진혁의 커리어 첫 만루홈런에 힘입어 대량득점을 하면서 점수에 여유가 생겼는데도 또 임정호를 투입해서 불안감을 조성했으나 1이닝을 무피안타 11구로 막아냈고, 이어 등판한 강동연도 1이닝을 무피안타 11구로 처리, 마지막 9회에 등판한 김영규제이미 로맥에게 1루타를 내주긴 했지만 13구만에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배재환, 원종현 없이도 불펜진이 방화하지 않는 경기를 오랜만에 이뤄냈다. SK가 가면 갈 수록 처참한 타격을 보여준 것도 있지만. 불펜진 WAR는 0.22, 평균자책점은 6.60이 되었다.

LG와의 경기에서는 강윤구, 김영규, 김진성을 제외한 모든 선수가 무실점 피칭을 선보였다. 14일 키움과의 경기에서도 이재학은 쥐어터졌지만 강동연김진성이 무실점으로 각각 1⅔이닝, 1이닝을 막아내며 점점 안정화되어가는 분위기의 불펜진이었지만.

15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에릭 요키시를 상대로 노진혁이 쓰리런 홈런을 쳐냈는데도 불구하고 투수진 운용 실패로 역전패를 당했다. 우선 5회말 최성영이 2아웃을 잡는 동안 7연속 볼 등 제구 난조로 볼넷 3번 이후에도 내리지 않았고 결국 박동원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아 2실점했다. 여기까진 승투 조건 달성 여부가 달려있으니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6회 배재환 기용 이후 7회 임정호가 1사 이후 볼넷 - 안타로 강판되고 강동연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손민한은 7월 초의 원종현 기용 문제에서도 있었지만 전날 혹은 이틀 전 1.2이닝 ~ 2이닝을 던진 투수를 연투시키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연투를 하게 된 강동연은 박병호를 삼진으로 잡았지만 2사 1,2루 상황에서 제구 난조로 박동원을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켜 2사 만루를 만들고.. 허정협에게 2타점 적시타, 전병우에게 쓰리런 홈런을 내주며 처참하게 무너졌다. 어제 키움 상대로 잘 막았고, 8회에 투입할 박진우송명기를 아껴볼 겸 무리하게 연투를 시켰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7] 제이크 브리검이 살아나고 에릭 요키시가 굳건한 가운데 불펜 WAR(4.93) & 평균자책점(4.57) 1위팀과 만나 불펜이 제대로 얻어터지면서 불펜 WAR(0.58) & 평균자책점(6.40)에서 괜히 꼴지가 아님을 쓸데없는 연투로 보여주었다.

16일 경기는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아낀 송명기를 8회에 투입했으나 루친스키가 7이닝 5피안타 5탈삼진 1볼넷으로 호투해줬고 이미 9:0으로 이기고 있었기에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나마 17일 kt wiz전에서 배재환의 부진과 양팀의 답답한 타선 침체로 12회까지 가는 동안, 송명기가 바로 다음날 연투인데도 1이닝, 박진우가 2이닝을 막아내며 키움전의 필승조 투입 미스를 0.5경기 만회하는 데는 성공했다.

21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나은 투수교체를 선보였다. 선발 최성영을 빨리 내리고 불펜싸움을 했는데, 강동연이 2아웃까지 잘 잡았지만 볼넷을 내주자 가차없이 임정호로 교체했고, 송명기가 2실점하면서 동점을 내줬지만 이후 나온 강윤구를 1이닝이 아닌 1⅓이닝으로 최대한 끌면서 상대 좌타자들을 봉쇄했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서 6-5로 끝내기 승리를 거두었다.

24일 kt wiz전에는 배재환이 2사 만루를 만들자 바로 원종현을 올려 아웃카운트 4개를 잡아내게 하여 터프세이브와 승리를 챙겼으나, 26일에는 배재환양의지의 다그침에도 제구가 안되는 모습을 보이며, 두 번이나 도루 저지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공이 엉망으로 오는 바람에 2사 2,3루 호러쇼를 보이는 동안 마운드에 올라서지 않아 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배재환은 그 직후 장성우에게 결승 2타점 적시타를 맞고 115구나 던져 겨우 승리요건을 만든 구창모의 10승을 날려버렸다. 운용을 24일과 반대로 한 것인데, 팬들은 어차피 수틀리면 원종현 당겨쓰는 거 알고 있는데 왜 갑자기 관리하는 척 안하던 짓을 하냐, 창모등판 경기만 되면 왜 이러냐고 화가 많이 난 상태이다.

8월 5일 한화 이글스전은 NC 불펜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경기였다. 이재학이 무실점 호투하고 6회에 올라온 강윤구는 하주석에게 바로 홈런을 허용하더니 최진행정은원에게 연속안타를 허용하면서 강판된 뒤 눈물을 흘릴 정도의 제구 난조를 보였고 박진우는 최재훈의 땅볼을 3루로 급하게 보내다 이게 빠지면서 1실점, 양의지와 싸인이 맞지 않아 포일로 1실점, 노시환의 희생플라이로 1실점으로 순식간에 4:4 동점을 만들어버렸다. 이제 원아웃을 잡았는데 이용규노수광을 연속해서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키는 호러쇼 이후 브랜든 반즈에게 1타점 2루타를 맞고 송명기가 등판하게 되었다. 물론 송명기라고 다를 건 없었고, 두산전과 다를 것 없이 은퇴를 목전에 둔 김태균에게 2타점 적시타를 바로 허용하면서 아웃카운트 하나 잡는 동안 7실점을 하며 6월 21일 1이닝 5실점을 뛰어넘는 개선이라곤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8월 8일 KIA 타이거즈 전에는 6회까지 노히트를 기록한 마이크 라이트프레스턴 터커에게 홈런 허용 뒤부터 흔들리며 투아웃을 잡고도 나지완김민식에게 연속 안타를 내주는데도 투수 교체를 하지 않았고 유민상에게 2타점 적시 2루타를 허용하면서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 내용을 어디서 본 것 같다면 이 페이지에서 찾기에 유민상을 넣어보자. 7월 5일 경기에도 유민상에게 2타점 적시타를 허용했는데, 한계에 다다른 라이트가 유민상을 상대하게 만든 걸 보면 손민한 투수코치에게 학습 능력과 데이터라는 건 사실상 전무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팬들 사이에서는 홍상삼이 2아웃 1, 2루 상황이 되자 바로 전상현을 올린 서재응과 많이 비교되었다.

하지만 장현식, 김태진 ↔ 문경찬, 박정수 트레이드 이후로 불펜이 안정되면서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갱생이라도 한 모양인지 시리즈 말과 한국시리즈에서는 별다른 잡음없이 깔끔한 투수 운용을 보여주었다. 새로 들어온 문경찬에게도 이런저런 조언을 하면서 자신감을 불어넣게 했다.[8]

그리고 소속팀 NC가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거두면서 선수 시절 인연이 없었던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코치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껴보게 되었다.

게다가 소속팀이 우승을 하면서 코칭 능력에 대하여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는데, 양의지가 우승 후 인터뷰에서 "투수 코치님이 견제 퀵 모션을 잘 잡아 주셔서 도루 저지가 편했다."라고 하기도 했고, 김진성에게 "좀 더 앞 쪽에서 공을 던져보자."고 제안해서 김진성이 부활하는 데 큰 공언을 했다고 한다. 또한 홍성민은 불펜이 혹사나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선수들의 체력 문제였다고 공감 2020에서 밝히기도 했다.


3.1.3. 2021 시즌[편집]


그냥 무난했다. 근데 작년에 비하면 훨씬 좋은 투수코치였다.


3.1.4. 2022 시즌[편집]


시즌 초반 리그 최악의 불펜을 만드는데 일조하면서 팀은 일찌감치 최하위로 추락해버렸고, 결국 5월 12일 이동욱 감독이 경질되고 강인권 대행 체제로 잔여시즌을 치르게 되는 과정에서 오규택 코치와 함께 2군으로 강등되었다. 반대급부로 2군 투수코치였던 김수경 코치가 1군으로 올라왔다.

더군다나 그를 대신해 김수경이 1군 투수코치로 올라온 뒤 팀 투수진이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이자, 손민한 코치에 대한 평가는 더더욱 나빠지는 중.

시즌 종료 후 채종범 타격코치, 용덕한 배터리코치, 김태룡 주루코치와 함께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면서 NC를 떠나게 되었다.


3.2.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편집]


NC 다이노스에서 나온 후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로 부임했다.# 같이 NC에서 코치로 일했던 채종범 신임 감독의 부름을 받고 부경고 코치로 간 걸로 보인다.


4. 피칭 스타일[편집]


아마 시절엔 150Km까지 던질 수 있는 불같은 강속구를 갖고 있었으나 혹사에 기인한 부상으로 인해 빠른 공보다는 코너웍을 바탕으로 하는 스타일로 전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 투구시 최고 148km/h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었다. 물론 2009년 어깨 부상을 당한 이후에는 다소간의 구속 하락은 있었지만 NC에서 불펜으로 활약하던 시절에도 140km대 초중반의 패스트볼 평속은 유지했다.

초창기에는 부상과 팀 성적과 맞물려 좋은 내용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2004년 점차 기량이 만개하더니 2005년에는 방어율 2.46에 18승 7패 1세이브, 방어율과 다승 부문 2관왕 및 MVP, 투수 골든 글러브 등 화려하게 떠오른다. 이 해 롯데의 성적은 5위였다.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음에도 MVP를 수상한 최초의 선수이다. 그 후로도 10승은 보장해주는 활약을 보였으며, 2007년에는 상조회장으로 있으면서도 좋은 성적을 거둬 그간 있던 '롯데 상조회장이 되면 성적이 막장화된다'라는 징크스도 깨버렸다. 최동원-윤학길-주형광을 이은 에이스. 2000년대 롯데 마운드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선수이다.[9]

위 연혁에도 잠깐 언급되었지만 투구 패턴이 정반대로 바뀐 타입의 투수. 아마 시절 활약을 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140km/h 후반대의 포심 패스트볼과 커브, 슬라이더 위주의 투구를 펼쳤다고 한다. 실제로 프로 초창기 및 2001년에만 해도 어느 정도는 패스트볼에 의존하는 투구 패턴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파워피칭이라고 할 지라도 탈삼진 능력이 빼어나지는 않았다. 투구 스타일을 바꾼 후엔 포크볼을 장착하여[10][11][12] 다양한 구종으로 맞춰잡는다. 이 포크볼의 구위는 매우 빼어나며 손민한이 삼진을 잡을 때 주로 던지는 결정구이다.[13] 물론 삼진을 잡아내기보단 내야땅볼 유도를 더 많이 하는 편이다. 투구폼으로 봐도 와인드업을 거의 하지 않은 채 던지기 일쑤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참 성의없이 설렁설렁 던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통해 빠른 타이밍으로 주자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볼 판별 시간을 줄이는 등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 물론 와인드업시 전력투구를 할 때는 147~148km/h 정도의 공을 던질수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대개 와인드업을 생략하고 빠른 타이밍으로 던지면서 140km/h 초반대의 패스트볼과 변화구로 맞춰잡는 투구를 구사하며 많은 재미를 보고 있다.

포수의 사인에 따라서 던지는 것이 아니라,자기가 직접 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만큼 영리하고 뛰어난 운영 능력을 가졌던 투수. 명성과 쌓아놓은 누적 기록에 비해 WHIP이 높은데, 구위와 구속이 뛰어나지 않아 삼진 능력이 뛰어나지 않고 주자는 많이 내보낸 편이다. 대신 그렇게 내보낸 주자들에 비해 실점은 적은데, 주자가 쌓인 상태에서도 운영 능력과 제구력이 대단했던 것을 보여준다. WHIP이 무의미한 이유를 가장 잘 보여주는 투수. 핀포인트 제구되는 느린 패스트볼과 변화구로 카운트 잡아놓고, 허를 찌르는 140km짜리 한가운데 패스트볼로 삼진 잡는 게 전성기의 상징적인 장면. 대신에 노림수에 걸려서 뜬금 홈런은 좀 맞은 편이다.

어쨌든 손민한 최고의 강점은 소위 습관이 분명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원하는 곳에 원하는 구질을 찔러넣어" 상대 타자를 잡아내는 데 있다고 하겠다. 원하는 곳, 원하는 구질임에도 공략이 어려운 이유는 대략 타자가 정확히 노린 곳과 2%의 차이로 요약할 수 있을 손민한의 로케이션 능력. 손민한의 전성기에 주자 있는 상황에 맥없는 투수땅볼로 병살을 엮어내는 장면은 그의 피칭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전성기때는 한이닝에 안타 두개 이상씩 맞고도 이 스킬로 실점은 안하고 꾸역꾸역 무실점 행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줘 타팀 팬들이 뒷목을 잡다가 운민한이라는 별명을 붙이면서 열폭한 적도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냥 보는 입장에서는 금방 털릴것 같은 투수를 못털고 병살타로 자폭해버리니 손민한이 운이 좋아보인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범타 유도를 통한 맞춰잡기는 필연적으로 피안타율을 높일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매 투구가 완벽하게 로케이션될 수 있다면 손민한은 지금쯤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파일:attachment/손민한/son.gif


참고로 역대 투수 중 송진우와 함께 최고의 수비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도 있다. 번트나 내야 땅볼 처리 능력이 탁월하다는 이야기. 그래서 공을 던진 후에는 한 명의 내야수라는 소리도 한다.


5. 수상 내역[편집]


수상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5)
MVP (2005)
승리 1위 2회 (2001, 2005)
평균자책점 1위 (2005)
승률 1위 (2001)


6.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붉은 표시는 1위 입상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7
롯데
9
30
1
3
1
-
0.250
4.80
23
2
21
17
17
16
1.43
1998
1군 기록 없음
1999
10
19⅓
0
0
1
-
0.000
5.59
19
2
7
9
13
12
1.29
2000
28
174⅓
12
7
0
0
0.632
3.20
(3위)
153
16
61
117
68
62
1.19
2001
29
173⅓
15
(1위)
6
0
0
0.714
(1위)
4.21
184
18
73
110
89
81
1.46
2002
23
142⅓
4
9
0
0
0.308
3.67
144
19
34
82
68
58
1.22
2003
18
109⅓
3
11
0
0
0.214
4.86
115
17
43
54
67
59
1.40
2004
42
108⅔
9
2
8
0
0.818
2.73
90
8
31
88
36
33
1.10
2005
28
168⅓
18
(1위)
7
1
0
0.720
(3위)
2.46
(1위)
149
9
40
105
54
46
1.11
2006
25
161⅔
10
8
1
0
0.556
2.78
(3위)
147
4
48
96
54
50
1.15
2007
30
194
(3위)
13
(4위)
10
0
0
0.565
3.34
191
17
50
95
74
72
1.23
2008
26
179
(2위)
12
(4위)
4
0
0
0.750
(4위)
2.97
183
12
41
80
66
59
1.25
2009
14
69⅓
6
5
0
0
0.545
5.19
87
3
32
20
41
40
1.66
2010
1군 기록 없음
201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3
NC
28
60⅓
5
6
9
3
0.455
3.43
56
4
26
22
24
23
1.31
2014
52
48⅓
4
4
1
9
0.500
3.54
56
5
17
23
20
19
1.45
2015
26
105
11
6
0
0
0.647
4.89
122
8
20
50
65
57
1.31
KBO 리그 통산
(18시즌)

388
1743⅓
123
88
22
12
0.583
3.55
1719
144
544
968
756
687
1.27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0년
4완투
(2위)
1완봉
(1위)
2002년
2완투
(5위)
1완봉
(4위)
2003년
1완투
(8위)
0완봉
2005년
1완투
(5위)
0완봉
2006년
2완투
(4위)
1완봉
(3위)
2008년
1완투
(6위)
0완봉
통산
11완투
3완봉

7. 코칭 스타일[편집]


"맞고 있는 투수에게도 웃으면서 올라가겠다. 1패는 1패로 넘어가야지 1패를 안 하려고 발버둥치다가 지면 2~3패 이상의 역효과가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패한 투수에게 다음 등판에 대한 불안감을 주고 싶지 않다"

NC 손민한 코치의 약속 "웃으면서 마운드 올라가겠다"

손민한은 은퇴 당시에도 NC에서 코치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는데, 지도자로서 자신만의 철학을 펼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다 2019 시즌부터 오랜 친구인 이동욱 신임 감독의 요청으로 코치직을 맡아 특유의 프리한 스타일로 코칭을 선보이고 있다.

손민한이 부임하면서 밝힌 자신만의 지도 방식은 '온전히 선수에게만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다.[14] 또다른 인터뷰에서는 믿음의 야구를 주창했다.

코치 커리어가 길지 않아서 팬들은 그의 코칭 방식을 엔튜브 영상이나 선수들의 인터뷰 기사에서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 윤강민송명기에 대한 코칭 영상들##에서 본인의 공을 믿고 자신있게 던지라고 멘탈 코칭을 해 주는 장면
  • 2020년 8월 트레이드로 NC로 이적한 박정수에게 '직구가 좋은데 왜 직구를 던지지 않느냐, 자신있게 던져라'[15]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는 장면#
  • 2020년 한국시리즈양의지의 인터뷰##에서 "올해는 손민한 투수코치님이 투수진의 퀵모션을 잘 준비해주신 덕에 도루저지가 수월했다", "투수들의 상태가 어떤지 대화를 많이 해야 투수코치님도 컨디션이나 구위를 체크할 수 있다. 친한 관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의견이 잘 수용된다"라고 말한 장면
  • 2020 시즌 초 연봉협상 갈등으로 1군 훈련에서 이탈한 김진성이 1군에 복귀하면서 힘들어 할 때 끊임없이 장난을 치면서 선수단과 같이 어울려서 표현할 수 있게끔 도운 장면#
  • 2021 시즌에는 대량실점한 배민서가 마운드를 내려오자 강하게 다그치는 것을 목격한 팬의 후기#
  • 이외에도 상기했다시피 2019 시즌 극초반 루친스키 투구폼 교정 이야기#, 2020 시즌 후반기 반등한 김진성의 투구 포인트를 수정해 준 이야기#
  • 2022 시즌부터 1군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김진호가 인터뷰에서 손민한 코치와 함께 투구폼 수정에 열을 올렸다며 공을 돌린 장면# 등이 있다.

그밖에도 이호준 코치가 은퇴를 고민하면서 방송계 진출을 생각할 때 지도자의 길로 이끌어준 사람이 손민한이라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역 시절 굉장히 후배들이 잘 따랐다고 한다.

'자신감있는 투구'를 강조하는 코칭 스타일에 대해 2020년 7월 구창모의 승리투수 인터뷰 에서 '볼이 좋으니 자신있게 던져라' 라는 말을 한 것이 NC 팬들 사이에서 그냥 던져로 밈화되기도 했다.###

사실 욕도 많이 먹지만 2020 시즌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지면서 NC의 창단 첫 통합우승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투수운용을 투수코치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며, 1군 투수코치는 유망주 육성을 하는 자리라기 보다는 1군에 올라온 자원들을 가지고 경기에서 이길 수 있도록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당장 상단에 기술된 2020 시즌 문단에 팬들이 부럽다고 비교해놓았던 KIA 서재응 코치도 시즌 후반 '과도한 좌우놀이와 이닝 쪼개기', '특정 선수에 대한 과도한 의존', '등판 타이밍' 등의 부분에서 팬들의 호된 비판을 받았고, 2020 시즌 중반까지 노성호를 살려냈고 삼성 불펜진을 부활시켰다며 NC 팬들의 부러움을 샀던 삼성 정현욱 코치 역시 시즌 후반 불펜진 붕괴를 면치 못해 NC 팬들의 삼성 투수코치 부럽다는 소리가 쏙 들어간 것을 보면[16] 손민한이 마냥 무능한 코치라고 혹평만 할 수는 없다. 어쨌든 갖추어진 투수력이 바탕이 되지 않았다면 (특히 단기전에서) 우승은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므로.


8. 사건사고[편집]



8.1. 역대 감독들과의 트러블[편집]


역대 롯데 감독들과 숱한 마찰을 일으켰고, 그때마다 팬들을 이용해 감독만 욕먹게 만드는 짓을 공공연히 했다.

2002년 백인천 감독에 의해 트레이드당할 뻔했을 때 이유가 항명 및 훈련 불성실이었다.

2003년엔 KIA전에서 태업을 해, 격분한 김용철 감독 대행에 의해 2군에서 두어달 썩었다.

양상문 감독 시절 이상목이 영입되며 마무리로 전업했을 때도 태업을 일삼으며 무승부 전문 마무리가 되었다. 그나마 2005년은 선발로 뛰면서 마음을 고쳐먹고 MVP가 되긴 했다. 사실 손민한이 롯데에서 뛰던 시절 유독 양상문 감독 재임 시절에는 트러블이 적었고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MVP까지 수상했는데, 이는 양상문 감독이 손민한의 부산고-고려대 직속 선배인데다가 롯데 구단 내 부산고 파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그랬다는 게 유력하다.

강병철 감독 때는 팬들 모인 자리에서 감독 뒷담화를 하고 다녔다. 강병철 감독 재임 시절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17] 하지만 강병철 감독은 혹사의 대명사로 롯데팬들이라면 언급조차 꺼리는 감독이다.

정치적인 술수나 처세에 능해서 팀 내 부산고 파벌의 핵심으로 꼽힌다. 그러나 아무리 파벌의 중심이어도 성적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는지 코치 연수를 거절하자마자 방출 확정. 거기에 선수협 관련으로 강병규에게 엄청 까이고 회장에서 자진사퇴했으니 손민한에게는 악몽과 수난의 2011년이 되었다.[18]


8.2. 선수협회장 선임 및 사퇴 과정[편집]


2009년 4월 28일,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노조를 설립한다고 파문을 일으켰다. KBO 측에선 거세게 반발하고, 팬들은 쓸데없는 짓 한다고 손먹튀라고 욕했다. 결국 8개 구단 선수들이 노조 설립 입장을 철회하여 사태는 그냥 무마되었다.

이후 시즌 종료 후 다시 선수협 회장에 선임되고, 노조에 대한 주장을 다시 펼치는 중. 선수협 사태 당시 송진우를 따르던 많은 스타 선수들이 있었는데 반해 현재 선수 노조주장에는 손민한의 짐을 나눠질 선수가 없는 것이 현실. 사실 뜬금없는 이야기는 아닌게 2008년 올림픽 기간을 이용해서 일본 측 선수협과 교류를 시작, WBC 때 일본측 상조회장인 아라이 타카히로에게서 법률자문을 포함한 선수협 지지성명을 이끌어내는 성과도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밀어붙였던 것.

노조건은 차치하더라도 전임 회장 이종범에 의해 선수협이 허수아비로 전락한 상황에서 그와 이뤄낸 성과들을 보면 권익신장을 위해 나름대로 많이 노력했고 공도 상당함을 알 수 있다. 그를 싫어하는 팬들도 이러한 공로는 인정하는 편.

하지만 온라인 야구게임 초상권 독점계약 관련하여 선수협간부 로비사건에 연루되고, 게임업체에서 받은 초상권료 관리도 불투명하다는 비판도 받아 급기야 8개구단 선수 대표들의 사퇴요구로 2011년 12월 자진사퇴했다.


8.3. 선수협 시절 비리와 선수협의 고소취하[편집]


2011 시즌 종료 후 선수협 비리의 핵심인물로 추정되면서 이제는 그래도 어려운 시기에 에이스였다는 이유로 선수로서 응원하던 팬들마저 등을 돌렸다. 결국 1월 11일 선수협에서 전임 집행부의 비리 혐의와 배임 혐의로 고소한 상태.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위의 2012년 말의 NC 입단 테스트 기사에 의하면 배임과 비리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선수협에서 고소를 취하하였고 검찰 측에서 무혐의 처분을 하였다. 선수협에서 고소를 취하했다고 하지만 이 경우는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가 고소 취하만으로 무혐의가 되는 게 아니라 검찰 조사 결과를 거친 뒤 증거불충분 혹은 혐의 없음으로 끝난 것이 옳다. 다만 박재홍이 고소 취하를 후회하는 것을 봤을 때 법적으로 손민한이 책임을 질 일은 없게 되었더라도 손민한이 도덕적으로 결백하다는 결론은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

이후 동료 선수들에게 사과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적으로 복귀를 시도하는 한편, 손민한의 복귀를 탐탁치 않게 보는 아구계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려 보려는 듯.

하지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과 선수들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박재홍트위터사죄문도 아니다, 권시형 전 총장 수사 당시 선수협 돈만 몇십 억이 깨졌다, 깔끔하게 사과하라면서 대놓고 깠다.

그 후 2013년 1월 25일 박재홍의 은퇴 기자회견 때 박재홍의 선처로 공식석상에서 사과의 기회를 가졌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복귀할 기회를 열어주겠다는 거지 그간의 잘못을 전부 용서하고 덮어주겠다는 게 아니라는 거다.

2013년 선수협 공식 입장이 나왔는데, 복귀에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 NC 다이노스 신고선수로 계약.


9. 별명[편집]


대표적인 별명은 2001 시즌 꼴찌팀에서 최초로 다승왕과 승률왕 타이틀을 차지하고, 2005 시즌 4위 이하의 팀에서 나온 최초의 MVP를 차지하는 등 롯데의 암흑기를 지탱한 에이스로서 팬들에게 전국구 에이스, 민한신(敏漢信)[19][20], 마에삼[21] 등의 별명으로 불리며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롯데 말년에는 손팝콘, 희대의 먹튀, 팝콘장사, 팝콘알바, 연봉도둑[22]이라는 멸칭으로 불렸다. 선수협 비리 사건 이후에는 언급 자체가 적어졌지만 손횡령이라는 별명이 흥했고 그 외에도 투구내용은 좋지 못한데 타선지원을 잘 받아 운빨로 승을 챙겨먹는다는 운민한, 상대팀 에이스와 맞붙을 때마다 도망간다는 도망민한 등의 별명도 있었다.

주형광의 말에 의하면 선수들 사이에서 독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염종석이나 주형광같은 경우 몸상태 생각하지 않고 훈련하고 우직하게 투구하는 곰같은 스타일이었다면, 손민한은 본인의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 느껴지면 쉬어가는 여우같은 스타일이었다고.

2013년 NC 다이노스 입단 이후에는 최고령 시즌 10승, 포스트시즌 최고령 선발승을 거둔 것 때문에 NC 다이노스 갤러리에서 손할배라고도 불렸다.


10. 여담[편집]


  • 마해영이 2009년 발간한 저서 <야구본색>에서, 마해영이 살면서 지켜봤던 투수들 중 최고재능의 투수를 손민한이라고 평가했다.[23]

일단 마해영은 손민한의 부산고-고려대 직속선배에 1993~94년 국가대표팀에서 함께 뛴 사이이다.[24] 그리고 마해영은 대학시절 당시 최고재능 투수들로 평가받았던 문동환, 임선동, 박찬호와 모두 대결전적이 있고 그들과 대표팀에서 함께 뛴 경력도 있다.[25] 또한 이상훈과는 고려대 동기, 조성민과는 고려대 3년 선후배 지간이다.[26] 마지막으로, 학교는 달랐지만 정민태, 구대성과도 동년배로, 학창시절부터 프로에 들어서까지 수많은 대결전적이 있다.

그런 수많은 재능러 투수들을 모두 겪어보거나 지켜본 마해영이 지목한 최고재능러 투수가 바로 손민한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손민한의 재능을 뒷받침해 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27] 이는 앞서 언급된 피칭스타일 항목에서의 언급, 후술되는 정수근의 관련일화 언급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나 덧붙이자면, 경기운영능력 또한 역대 KBO 투수들 중에서도 최상급이다. 최기문은 '손민한이 등판하는 날에 나는 공만 받아주면 된다. 1회부터 손민한 혼자서 경기를 풀어나간다. 그러나 손민한이 교체되고 난 뒤 머리가 정지될 때가 있는데 손민한이 마운드에서 내려갈 경우를 미리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라고 역시 스톡킹에서 말한 바 있다.[28]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미국전 당시의 일화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몸이 정말 빨리 풀리는 타입으로 보인다. 정수근박명환야구TV에서 풀어낸 비화에 의하면, 선발 경기 전날에 임페리얼을 마셔 술이 깨지 않은 얼굴로 라커룸에 들어오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연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10분 전에 캐치볼만 하고 곧바로 선발 등판하여 완투한 적이 있다고 한다.[29] 최기문이 스톡킹에서 덧붙이길 선발 등판을 앞두고 선발투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러닝을 하거나 실내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는데 손민한은 그것도 귀찮은 나머지 핫팩을 붙이고 누워있었다고 한다.

  • 앓는 소리를 잘 하는 편이다. 최기문스톡킹에서 술회하기를 손민한이 5회까지 잘 막았으나 6회에서 위기상황을 맞으면 양상문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가기 전에 최기문 포수를 먼저 만나서 '민한이 어때?'라고 물어보며 최기문 포수가 '괜찮습니다'라고 확인해 준 뒤 마운드에 간다고 한다. 양상문이 손민한에게 '야! 어때?'라고 물으면 '안 좋습니다~ 피곤합니다~ 못던지겠습니다~' 항상 그렇게 대답하며 본인의 승리에 관심없으니 '더 던지겠습니다'라는 말은 안한다고 했다. 손민한이 그렇게 말을 해도 양상문은 덕아웃으로 돌아가버리고 교체를 바랐던 손민한은 마운드에서 혼잣말 군소리를 계속하면서 끝까지 투구했으며 교체 뒤에 '죽겠다 나 죽겠다'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덧붙였다.

  • 선수시절에 정수근과 같이 바다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정수근이 꼽는 야구 3대 천재 중 한 명이다. 나머지 2명은 이종범과 이병규.

  • 스탯티즈 기준으로 누적 WAR이 40.81로 투수 통산 15위고 우완으로만 한정하면 통산 10위다. 이는 2000년대 초중반 우완 트로이카로 같이 엮인 배영수박명환보다 높다. 처음에 언급한 롯데 에이스 계보 중에서도 최동원, 윤학길 다음으로 높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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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구마구2014에서 2014년 3월 28일 업데이트 후 05 손민한(가명: 김세준)의 엘리트 카드가 추가되었다.(다른 추가 엘리트는 07 이종욱, 90 김태원(가명: 안영준), 12 박희수, 13 최정, 02 장성호) 그리고 2014년 10월 중순 업데이트에서 본명으로 환원되었다. 다만 아프리카TV 버전에서는 가명 그대로 있다.

  • 이동욱과는 절친이다. 초등학교는 서로 달랐지만 야구부 감독끼리 친해서 합동훈련을 자주 했었고, 중학교를 같이 나왔고, 입단 전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도 함께 나갔으며, 롯데와 NC에서도 같은 팀에서 선수와 선수, 코치와 선수, 감독과 코치로 함께 있었다.

  • KIA 타이거즈 수석코치 진갑용과는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 동창이었다. (부산고등학교-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93학번) 같은 학교에 교생실습도 같이 나갔다고 한다.



11. 관련 문서[편집]




12. 둘러보기[편집]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13년 6월 KBO 리그 월간 MVP
옥스프링
(롯데 자이언츠)

손민한
(NC 다이노스)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1] 체육교육과 93학번[2] ~5월 12일[3] 5월 13일~[4] 구창모가 데뷔 첫 10승을 올렸고 이재학도 한 달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10승을 올렸다. 그리고 2019년 NC 히트상품인 박진우가 에이스급의 활약을 했으며, 최성영도 5선발로 가능성을 보였다.[5] 최근 사례로는 2017-18년 롯데에서 수석코치와 투수코치를 겸임한 김원형 SSG 감독이 있다. 그러나 성과는 좋지 않았고 2018년 7월 주형광에게 투수코치를 맡기고 수석코치 역할만 담당했다.[6] 9위 kt wiz가 WAR 1.24, ERA 6.08이다. 그러니까 그 답없는 한화보다도 밑이라는 소리.[7] 게다가 강동연이 한 달간 2군에 있다가 다시 콜업된 후 좋은 구위를 보여주긴 했지만, 대부분 점수차가 큰 상황이었다.[8] 문경찬은 데뷔 때부터 자신의 롤모델은 손민한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래서 더 맞을 수도?[9] 주형광보다 1년 선배지만 대학에 진학해서 데뷔는 더 늦었고 부상 때문에 손민한이 고생한것도 있어 손민한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주형광은 혹사후유증으로 입은 부상 때문에 재활군에 있었고 결국 2007년에 은퇴했다.[10] 본인은 체인지업이라 부른다. 포크볼도 체인지업의 일종으로 분류되기도한다. 본인이 가장 자신있는 구질로 체인지업을 꼽기도 했다.[11] 한때 KBO 최강의 포크볼러였던 조정훈이 바로 손민한의 포크볼 그립을 보고 연습했다고한다.[12] 스플릿 체인지업의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팀 린스컴의 경우도 스플리터 그립으로 체인지업을 던지는데 이 경우 스플릿 체인지업이라고 부른다.[13] 그 유명한 알렉스 로드리게스 삼구삼진 당시 던졌던 공 모두가 바로 이 포크볼이었다.[14] 인터뷰에서 "이동욱 감독님 같은 분과 함께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지도 방식을 두번 다시 해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천운이었다. 파격적인 나만의 스타일로 지도자 생활을 경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선수 위주의 훈련 방식을 취할 것이다. 선수가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최대한 포커스를 맞추려고 한다. 충분한 휴식도 그 중 하나일 것" 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15] 프로 와서 직구가 좋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고 한다. 박정수는 늘 변화구가 좋다는 얘기만 들어왔는데 이 조언을 듣고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고.[16] 시즌 팀 ERA만 봐도 NC가 4.59로 5위, 삼성이 4.78로 7위, KIA가 5.14로 8위이다. 불펜진 ERA로만 한정해도 NC가 4.84로 5위, 삼성이 5.47로 8위, KIA가 5.75로 9위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17] 정수근은 심지어 라커룸 칠판에 '강감독 대범하게 야구 합시다'라고 아예 대놓고 써놓질 않나 강병철의 차량을 손상시킨 적도 있다.[18] 롯데 구단에서 부상에도 불구하고 고액선수 연봉 감액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재활에 충실하라고 연봉 전액을 지급했는데 그 동안 선수협 활동만 하면서 재활을 소홀히 했고 거기다 횡령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이미 구단에서 찍힌 상태였다.[19] 양준혁, 이종범과는 다르게 믿을 신을 쓴다. 손민한이 등판하는 경기는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받은 별명. 비밀번호를 찍던 당시 롯데는 손민한의 선발 로테이션에 맞춰 승패패패패의 룰을 이어갔었다. 이 때문에 손민한의 선발 경기에는 직관하러 오는 팬들이 확연히 많았다고. 다만 본래 기원은 믿을 신이었지만 God이라는 의미의 신도 선수에게 경외심을 표현하는 별명이기에 혼용해서 쓰이곤 한다.[20] 양준혁이 프로야구 최초로 2천안타에 근접하게되며 양신이란는 별명이 등장하고 그 영향으로 비슷한급인 종범신과 당시 전국구급인 민한신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선수협회장시절 비리가 드러나며 민한신이란 별명이 쏙 들어가며 현재 양신, 종범신만 남게 되었다.[21] "마! 에이로드 삼구삼진 잡아봤나?"의 줄임말.[22] 팝콘은 2009 WBC에 선발되었음에도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자 손민한은 사실 펫코 파크에서 팝콘을 튀기고 있다는 말에서 비롯되었고 롯데 자이언츠를 퇴단하기 전까지 그가 2010, 2011 시즌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않으면서 고스란히 받아간 연봉이 6억이나 되었기 때문에 먹튀라 불렸다.[23] <야구본색>에서는 마해영 현역시절 기준 국내선수들의 약물복용 등도 언급이 되어 있었고, 그런 이유로 책 자체가 한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다.[24] 단, 4년 선후배 사이이기 때문에, 학창시절에 두선수는 함께 뛴 적은 없다. 대신, 마해영상무 야구단 소속이던 1993~94년에 대표팀에서 처음으로 함께 뛰게 되고, 이후 손민한이 롯데에 입단하는 1997년부터 4년간 롯데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다.[25] 박찬호와는 1993년 한해 국가대표팀에서 함께 뛰었다.[26] 마해영이 조성민의 3년 선배.[27] 마해영의 야구본색에서는 (손민한 외에도) 실제로 박찬호조성민 등을 지켜본 감상평이 적혀 있다.[28] 최기문은 아마추어 국가대표 시절부터 프로팀 롯데 입단 후까지 줄곧 손민한과 배터리호홉을 맞춘 바 있다.[29] 해당 영상 3:37:00 부근부터[30] 다만 롯데 시절로만 한정하면 최동원-윤학길-염종석에 이은 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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