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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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colcolor=#af917b> '''23 [[천재환|{{{#315288,#7697ce 천재환}}}]] · 24 [[최우재(야구선수)|{{{#315288,#7697ce 최우재}}}]] · 25 [[김성욱|{{{#315288,#7697ce 김성욱}}}]] · 28 [[박시원(2001)|{{{#315288,#7697ce 박시원}}}]] [br] · 31 [[손아섭|{{{#315288,#7697ce 손아섭}}}]] [[주장|{{{#!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315288; font-size: .8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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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섭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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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회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19
2,416안타[진행중]
2021년
최연소, 최소 경기 2000안타

손아섭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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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4 인천 아시안게임 로고.svg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14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5 프리미어 12
우승반지

2015

파일: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18 자카르타 • 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18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23 KBO 리그 타율 1위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12, 2013, 2017, 2023 KBO 리그 최다안타 1위

보유 기록
통산 최다 최다안타왕
4회
한 시즌 최다 타석
672타석
최연소 1,000득점
만 32세 3개월 17일
최연소 2,000안타
만 33세 3개월 22일
최소 경기 2,000안타
1,631경기
11년 연속 200루타(진행 중)
2013년~2023년
8년 연속 150안타
2016년~2023년


손아섭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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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2번
이승준
(2006.5.17.~2006)

손광민
(2007)


서정호
(2008~2009)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99번
호세
(2006~2007)

손광민
(2008)


오장훈
(2010)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68번
염종석
(1992~2008)

손아섭
(2009)


염종석
(2010~2015)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1번
양성제
(2007~2009)

손아섭
(2010~2021)


나승엽
(2022~2022.5.1.)
NC 다이노스 등번호 31번
안인산
(2021)

손아섭
(2022~)


현역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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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손아섭 다음스포츠.jpg

NC 다이노스 No.31

C

손아섭
孫兒葉[1][2] | Son Ah-Seop

출생
1988년 3월 18일[3] (36세)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양정초 - 개성중 - 부산고 - (영남사이버대)
신체
174cm, 84kg, B형
포지션
우익수[4], 좌익수[5], 지명타자[6]
투타
우투좌타[7][8]
프로입단
2007년 2차 4라운드 (전체 29번,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2007~2021)
NC 다이노스 (2022~)
병역
예술체육요원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
계약
2022 - 2025 / 64억원[9]
연봉
5억원 (FA, 2023년)
등장곡
장미하관 - 《오빠라고 불러다오[10][11]
응원가
구단 자작곡[* 오! 다이노스 손아섭~ NC 승리 위해! 오오오 오오~ 다!이!노!스! 손!아!섭! X2]
[ 이전 응원가 보기 ]
롯데 자이언츠 시절
백스트리트 보이즈 - 《Straight Through My Heart》[가사][1][2]
배드키즈 - 《Babomba》[가사2]
Daniel Boone - 《Beautiful sunday》[가사3][3][4]
Little Eva - 《The Loco-Motion[가사4][5]

본관
밀양 손씨[12]
에이전트
파일:MVP스포츠.png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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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어머니[1], 형

반려견 타이슨
종교
불교
후원사
뉴발란스
MBTI
ESTJ
1. 개요
4. 3000안타 가능성
4.1. 추이
5. 별명
5.1. 오빠 므찌나
5.2. 마 갱기에 집중 안하나
6. 손아섭에 대한 오해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NC 다이노스 소속 우투좌타 외야수.

2007년 데뷔 이래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최연소/최소 경기 2000안타, 최연소 1000득점, 8년 연속 150안타[13], 11년 연속 200루타, 14년 연속 100안타, 9년 연속 3할 타율 등의 기록을 달성했다. 안타 수로는 KBO 역대 통산 2위에 랭크되어 있는 타자[14]이며, KBO를 넘어 모든 리그를 통틀어 한국인 프로야구 선수 중에서 안타 수로 역대 5위에 랭크되어 있다.[15][16]

2023 시즌 종료 기준으로 KBO 역대 3천타석 이상 타자들 중 통산 타율은 4위, 현역 중에서는 3위 타자이다.[17]


2. 선수 경력[편집]




3. 플레이 스타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손아섭/플레이 스타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3000안타 가능성[편집]


KBO 통산 안타 TOP 10(2023 시즌 종료 기준)[18]
순위
선수
통산 안타
손아섭의 기록 동률 일자
비고(경력)
1
박용택
2504

(20년)
2
손아섭
2416

현역 (17년차)
3
최형우
2323

현역 (18년차)
4
양준혁
2318
23.07.04
(18년)
5
김현수
2236

현역 (16년차)
6
김태균
2209
22.09.14
(19년)
7
이대호
2199

(17년)
8
박한이
2174
22.07.28
(19년)
9
정성훈
2159
22.06.19
(20년)
10
이승엽
2156
22.06.15
(15년)

3000안타는 대한민국 KBO 리그에서 꿈의 기록이다. 2023년까지 18명의 2000안타 타자가 탄생했지만[19][20] 아직까지 3000안타는 근처도 향한 선수가 없었다. 현재 KBO 리그의 통산 안타 1위는 박용택의 2504안타이다.

그런데 손아섭은 KBO 리그 최초의 3000안타에 도전할 타자로 기대를 받고 있다. 2021년 7월 10일 역대 최연소 2000안타를 달성했고, 언급한 박용택의 2504안타는 2024시즌에 갱신할 가능성이 높은데[21] 야구팬들의 시선은 이를 넘어 전인미답의 3000안타 고지까지 올라설수 있느냐로 향해있다.[22]

본인 역시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초심 잃지 않고 몸 관리를 잘 해서 매 타석마다 소중하게 기록을 쌓다보면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3000안타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2000안타를 쳤듯이 한국에서도 엄청난 기록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라며 3000안타를 의식하고 있음을 드러낸 바 있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3085안타를 기록한 장훈이 유일한 3000안타 타자로 남아있으며, 메이저리그에서는 피트 로즈, 타이 콥 4000안타 두명을 포함 총 33명의 3000안타 타자가 나왔다.[23] (2023시즌 종료 기준)


4.1. 추이[편집]


손아섭의 연도별 안타 기록
연도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기록
1
66
16
129
144
158
(1위)
172
(1위)
175
(2위)
141
186
(4위)
193
(1위)
182
(2위)
151
190
(3위)
통산
1
67
83
212
356
514
686
861
1002
1188
1381
1563
1714
1904
연도
2021
2022
2023
기록
173
(4위)
152
187
(1위)
통산
2077
2229
2416

손아섭은 2023 시즌까지 통산 2416개의 안타를 때려내었고, 3000안타까지 584개를 남겨두고 있다. 1988년 3월 18일 출생이니 만 35세까지 친 기록이며, 앞으로 만 36~40세 시즌에 5년간 연평균 117안타를 친다면 통산 3000안타가 가능하다.

손아섭은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뛰기 시작한 2010년부터 2023년까지 14년간 연평균 166안타를 치고 있으며, 지금같은 144경기 체제가 시작된 2015년 이후는 연평균 172안타를 치고 있다. 자연스러운 신체 노쇠화를 감안해 30대 후반까지 지금의 실력을 그대로 유지하지는 못하겠지만, 급속도로 무너지지 않고 완만하게 내려오도록 관리할수 있다면 장훈의 3085안타 기록까지도 도전이 가능하다.[24] 워낙 프로 의식이 투철하기로 유명해 사생활에서 야구 외적인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낮기 때문에 건강과 실력 유지가 3000안타 달성의 관건으로 보인다.

다만 KBO 리그의 역대 사례로 볼때, 36세 시즌부터 은퇴할 때까지 584안타 이상을 친 선수는 2023년 기준으로 8명 밖에 없을 만큼 결코 쉬운 기록은 아니다.#

KBO 36세 이후 최다안타(2023 시즌 종료 기준)
순위
선수
통산 안타
비고(경력)
1
이승엽
870
(6년)
2
박용택
789
(7년)
3
이대호
776
(5년)
4
이호준
666
(6년)
5
최형우
659
현역(5년)
6
유한준
772
(6년)
7
이병규
608
(7년)
8
양준혁[25]
600
(6년)
??
손아섭
???
현역(?년)

위 목록의 선수들이 대부분 중장거리 내지 거포 스타일이었고 30대 중반에 접어들 당시에도 파워를 일정이상 유지한 타자들이었단 걸 감안하면, 처음부터 파워 툴이 약했고 최근에는 현저히 줄어들고있는 손아섭[26]의 입장에서는 위 선수들에 비해 컨택과 연관된 성적 지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즉, 많은 안타에서 비롯된 높은 타율과 출루율을 통해 출전 기회를 보장받아 많은 타석에 들어가서 더 많은 안타를 노리는 상황이 되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손아섭이 최소한 현재 수준의 성적에서 급격히 하락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대표적으로 전준호가 35세 시즌부터 은퇴까지 6시즌 동안 2105타석에서 530안타를 기록했는데, 이 기간에 타율 0.291, wRC+ 95.8을 기록하며 어느 정도 1군 레귤러 수준의 모습은 보여주었다. 다만 전준호는 빠른 발을 통해 이 기간에도 정확히 연평균 20도루를 기록하며 1번 타자로서의 메리트를 갖추었으나, 부상 위험으로 인해 도루를 자제하는 손아섭의 경우에는 타율, 안타 등의 스탯이 제일 부각될 수 밖에 없다.[27]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동안 손아섭의 연간 안타가 20개씩 줄어드는 추세로 들어서면서(190개-173개-152개) 에이징 커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아졌다. 하지만 2023년 187안타에 안타왕과 타격왕[28]을 동시에 차지하는 등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팬들의 우려를 말끔히 씻겨주었다. 이 긍정적인 신호에 많은 야구팬은 3000안타를 달성을 다시금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다.


5. 별명[편집]



5.1. 오빠 므찌나[편집]


  • 야구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대표적인 별명은 오빠므찌나. 중학교 시절, 다소 중2병 분위기가 풍기는 진지한 글을 본인의 미니홈피[29]에 남겼는데 당시 닉네임이 '오빠머찌나'였기 때문.[30][31] 그래도 이후 그 다짐대로 야구선수로 크게 성공했으니 대단한 일화이다. 2021년 자이언츠TV에서 이 짤방에 대해 코멘트하기를 저 글을 남긴 시기가 실제로 중학교 2학년 때였으며 야구로 성공하고 싶었는데 노는 걸 너무 좋아했어서, 이렇게 하다가는 안되겠다 싶어 정신차리고 해보겠다는 다짐을 담은 글이었다고 말했다.

파일:external/lh4.googleusercontent.com/c0014566_4fae5088df53f.jpg

  • 이 별명과 관련해서 대체로 매체에서 오빠, 사직 오빠 등으로 불리곤 했으며[32] NC 이적 후에는 구단을 통해 MD 판매가 이뤄지는 등 더 본격적으로 캐릭터를 활용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 2022 시즌부터 타자 등장곡이 부활하면서 그동안 쓰이던 <오빠라고 불러다오> 도 돌아왔다! 전주 부분에 롯데 시절에는 "국가대표 오빠, 사랑해요 오빠, 자이언츠 오빠"를 추임새로 넣었고, NC 이적 후에는 팬들이 "다이노스 오빠"라고 외치고 있다.[33]

}}} ||

  • 2022년 8월 31일 잠실 LG전에서 헛스윙 삼진당하자 '오므찌' 글자를 들고 응원하던 팬들이 '나빠'로 태세전환하는 장면이 야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 ||

  • NC 다이노스 구단 측에서는 이 별명으로 MD 판매도 한다. 2022년 8월에는 NC 다이노스 구단 측에서 이 '오빠' 별명을 마케팅으로 활용하여 홈경기 때 레트로풍 행사를 열고[34] 각종 상품[35]을 출시했다. 특히 티셔츠와 에코백 상품은 수백개의 물량이 출시 20분 만에 완판되면서 손아섭의 이름값을 증명했는데, 이 상품은 엔씨 팬들은 물론 타팀을 응원하는 야구팬들, 또 선수단 사이에서도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가 구단에 빗발치면서 곧바로 추가 생산 및 리오더 공지가 나갈 정도였다. 이렇게 폭발적인 성원에 힘입어 서둘러 2차 판매가 시작된 8월 20일 토요일 정오에는 트래픽이 몰려 한때 판매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결국 2차 판매분 역시 순식간에 동나면서 '완판남' 소리를 듣게 되었다.

}}} ||

  • 이 상품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선풍적인 화제를 모은 비결은 역시 파파라치들에게 둘러싸인 스타의 컨셉으로 제작한 홍보 이미지와 영상에 있다. 이 상품을 기획한 상품 담당 매니저는 "일반적인 상품 출시 형태로는 임팩트가 부족해 파파라치 콘셉트의 화보도 함께 기획했다. 촬영 간 손아섭 선수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모두가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고,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라고 말했고, 직접 모델로 나선 손아섭은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부끄러웠다. 하지만 촬영을 진행할수록 재미있었고, 약간 내 체질인가 싶기도 했다. 야구를 더 잘해서 이런 상황들이 더 많이 일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야구에 대한 동기 부여가 확실히 생긴 것 같다. 재밌는 경험이었고 앞으로 더 많이 경험을 하고 싶다" 고 화답했다.[36]

  • 1차 판매 당시 빠르게 이 상품 구입에 성공SBS Sports이준혁 캐스터가 판매 시작 사흘차인 2022년 8월 20일 토요일 대구 삼성-NC 경기의 중계를 맡게 되었는데, 직접 구매한 이 티셔츠를 입고 경기 전 손아섭과 함께 인증샷을 찍어서 화제가 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손아섭은 이준혁 캐스터에게 "진심으로 잘 어울린다. 디자인이 아주 잘 나왔다"고 말하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으며 "아까 보니까 남자 사이즈는 거의 다 팔렸다. (오늘 추가로 판매되는) 2차 물량도 금방 팔릴 것"이라고 확신에 가득한 어투로 말했다는 후문이 전해져 팬들을 킹받게 했다. 이 기사는 네이버스포츠 <많이 본 기사> 순위권에도 올라갔는데, 다음날 이준혁 캐스터가 손아섭에게 기사 이야기를 하니 "야구를 잘해서 기사가 나야하는데 티셔츠 팔아서 기사가 나왔다"며 웃었다고 한다.[37]

}}} ||
촬영 스케치

  • 2022년 8월 엔튜브에서 '오빠' 별명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손아섭은 본인이 미혼이라 아저씨가 아니므로 좋은 별명인 것 같다고 답했다.


5.2. 마 갱기에 집중 안하나[편집]



  • 2022년 5월 이후 야구 커뮤니티에서 낚시용 짤로 손아섭의 아래 기사 사진[38]이 애용되고 있다. 보통 어그로를 끌만한 제목을 적어놓고 내용에다가 '마 갱기[39]에 집중해라\' 혹은 '마 갱기에 집중 안하나?\'라고 적어놓으면서 이 사진을 붙이는 식이다.[40] 실제로 손아섭이 한 말은 아니나 '왠지 손아섭이라면 저런 소리를 할 것 같다'는 이유로 인기를 끌면서 인터넷 밈이 되었다.[41] 이를 줄여서 손아섭을 마갱집으로 부르며, 마갱집, 갱집이햄[42]이 손아섭의 별명이 되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마 갱기에 집중해라.jpg}}} ||

  • 역낚시를 위해 제목으로 '마, 갱기에 집중 안하나?'를 써 놓고 내용으로는 각종 치어리더 짤을 올려놓기도 한다. 또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나 롤 등 타 종목에도 이 밈이 퍼지고 있다.

  • 2023년 스프링캠프에서 손아섭 본인이 이 짤과 비슷한 동작을 직접 시전했다. 이 장면도 움짤로 만들어져 밈으로 쓰인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 ||


6. 손아섭에 대한 오해[편집]


2차 FA 당시 손아섭이 주로 극성 롯데 팬들에게 비난받았던 몇 가지 오해에 대해 다룬다.

  • 손아섭은 '스찌' 다? 팀 배팅을 안 한다?
지금도 구글에 '스찌' 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자동완성으로 '손아섭 스찌'가 함께 뜰 정도로 일부 롯데 팬들의 부정적 이미지 메이킹은 장기간 지속되었다.[43] 특히 2021 시즌 희생플라이를 단 1개만 기록한 것 때문에[44] 손아섭은 일부 롯데 팬들에게 굉장한 비난을 받았는데, 정작 2021 시즌 손아섭의 무사/1사 3루 상황 OPS는 0.875였다. 이 시즌 전체 OPS가 0.787이므로 손아섭은 희생플라이를 칠 수 있는 상황에서 평소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것이다.[45] 또, 2021 시즌 손아섭의 WPA는 1.98로 리그 전체 18위, wRC+는 리그 전체 28위였다. 손아섭은 타석에서 중요상황에서의 기록이 시즌 기록보다 좋으며, 이는 곧 손아섭이 영양가 없는 타격만을 하는 선수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46] 그러나 손아섭에게만 유독 이렇게 굴레가 씌여진 것은 전술된 일부 롯데 팬들이 이를 으로 만들어 갖고 놀다가 선수의 이미지 자체가 야구 커뮤니티의 팬들 사이에서 부정적으로 굳어져버린 영향이 크다. 이 때문에 손아섭의 타자로서의 가치도 저평가되었는데, 자세한 반론은 스탯관리 문서를 참조 바란다.
  • 극성 팬들이 트집을 잡는 대표적인 레퍼토리가 2011년 플레이오프 1차전 9회 1사 만루 끝내기 상황에서 초구 병살타를 때려 패배한 이른바 '손페베네' 사건이다. 이는 10년이 더 지난 2023년 현재까지도 손아섭 커리어 통산 유일한 포스트시즌 병살타로 남아있는데, 이후 롯데가 우승은 커녕 한국시리즈조차도 진출하지 못하면서 이것이 손아섭을 덮어놓고 까는 소재가 되고 말았다.[47] 결국 팀 성적이 좋지 못하다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로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을 10년이 넘도록 롯데 팬들이 물고 늘어지며 이미지를 망쳤고[48] 손아섭은 잘하든 못하든 일단 까는 것 자체가 밈이 되면서 가끔 비난을 도저히 할 수 없을만큼 맹활약한 날에도 10년 전에 그렇게 쳤어야지 같은 개소리를 시전할 정도로 지금까지 이러한 억지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 손아섭이 '스찌'라 비난하는 롯데 팬들의 대표적인 주장은 "팀이 가을야구가 멀어지는 시점이 되자마자 안타를 몰아치더라", "가을야구를 못 갈 것 같으니 스탯을 쌓는다"는 둥 황당한 이야기들인데, 상기했듯 이는 손아섭이 전성기 커리어 대부분을 롯데에서 보냈기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다. 만약 손아섭이 우승 컨텐더 팀에 소속되었고 순위싸움이 한창인 여름 이후 타격 사이클이 올라와 미친듯이 안타를 친다면 당연히 팀의 영웅이 되었을 텐데, 손아섭이 롯데 소속일 때 롯데 팬들은 전력이 약한 팀의 가을야구 실패 원인을 중심타자 손아섭에게 돌림과 동시에 팀이 하락세를 겪는 동안 팀을 지탱하는 손아섭의 맹활약을 '혼자 스탯관리만 한다'고 물어뜯었다. 즉 손아섭이 잘하든 못하든 가불기처럼 비난만 했다. 앞서 언급된 '손페베네'도 마찬가지로, 2011년 플레이오프 당시에도 손아섭은 시리즈 내내 맹타를 휘둘렀는데 그 한 타석만을 가지고 10년도 훨씬 지난 지금도 물고 늘어지고 있는 것은 1999년 이후 한국시리즈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팀의 문제라고 칭해야 옳다. 실제로 NC 이적 후 팀이 가을야구 진출을 놓고 처절하게 경쟁하던 2023 시즌에는 손아섭이 1번타자 리드오프를 맡아 가장 많은 타석에 들어서면서도 타격왕, 안타왕 경쟁을 이어나가면서 팀에 큰 도움이 되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손아섭2021상황별타격스탯.png}}} ||
2021 시즌 손아섭의 점수차별 타격성적. 상황별로 별 차이가 없다.
굳이 따지면 1점차 이하 상황에서 타율이 가장 좋으므로 클러치 히터라 불러야 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타율TOP5클러치_2022.jpg}}} ||
2022년 기준 현역 타율 TOP5의 7회 이후, 2점차 이내 타율을 살펴보아도
손아섭의 기록은 다른 선수들과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성적이 좋았다.

2013년 당시 일명 '가리나' 사건, 2019 시즌 팀이 부진함에도 개인만 생각하느라 주장직을 내팽개쳤다는 이유 등을 들며 일부 롯데 팬들은 손아섭이 팀에 대한 애정이 없다며 비난해왔다. 그러나 손아섭은 NC 이적 이후 인터뷰에서 "NC의 제안을 받고 사흘이나 고민을 했다, 롯데의 제안에도 감사드린다"라고 언급을 했다.# 계약 발표 이후 다수 매체의 취재에 따르면 롯데의 첫 제시액은 손아섭이 NC와 최종 계약한 금액과 차이가 상당히 컸고[49][50] 롯데가 처음 제안 조건에서 물러서지 않으면서# 손아섭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했으며, 빈틈을 파고든 타 구단들이 이미 손아섭과 깊게 링크된 이후 롯데가 손아섭과 다시 만난 자리에서 6년 계약을 제시했으나[51] 이 역시 손아섭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또 계약 직후 손아섭의 에이전트가 롯데 구단을 변호해주는 기이한 일도 있었다. 손아섭의 에이전트는 "선수가 많은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 머문 친정을 떠나야 한다는 점에서 고심이 컸다. 구체적인 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롯데에서도 좋은 제안을 해주셨다. 그러나 선수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라고 언급하며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지 않으면서 마지막까지 구단을 배려했다.# 또, 팬들에게 남긴 편지NC 유튜브 이적 영상에서도 시종일관 NC보다는 예전 소속팀인 롯데와 롯데 팬들을 언급하며 그동안의 소회를 풀었는데, 이는 이적 팀인 NC 팬들에게도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의 뒷모습이라며 호평받았다.[52] 또 SNS를 이용하지 않는 팬들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어서[53] 부산지역 지역지인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에 작별인사를 담은 지면 광고를 냈다. 구단이 아니라 선수 개인이 신문 지면광고를 내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란 걸 생각하면 손아섭은 롯데 구단과 팬들에게 끝까지 애정을 보이고 떠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손아섭은 2015년 당시 개인사 문제로 아픔을 겪었음에도 원 소속팀에 잔류한 전적이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손아섭신문광고.png}}} ||
전격 이적발표 후 부산 지역지에 낸 지면광고[54]
  • 손아섭은 시장에서 인기가 없을 것이다?
일부 롯데 팬덤에선 '손아섭은 구단에 애정이 없으므로 떠날 것'이라 비난하면서도 정작 '시장에서는 인기가 없을 테니[55] 당연히 싼 값에 잔류할 것'이라는 모순된 주장을 했다.[56] 그러나 실제로는 손아섭에게 3개 구단이 관심을 보였고, 최종 2팀이 경합했다. 이적 후 한 기사에서는 당초 수도권 구단이 손아섭에게 6년 금액을 제시했지만 NC가 4년에 비슷한 규모로 손아섭에게 어필하면서 급속도로 계약이 진행되었다고 명시했다.# 이 후 최종경합한 수도권 구단은 SSG 랜더스로, 샐러리캡 문제 때문에 추가 제안을 포기했음이 밝혀졌다.


7. 여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손아섭/여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관련 문서[편집]




9. 둘러보기[편집]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13년 8월 KBO 리그 월간 MVP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17년 8월 KBO 리그 월간 MVP
양현종
(KIA 타이거즈)
김재환
(두산 베어스)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레일리
(롯데 자이언츠)
[1] 개명 전 이름은 손광민(孫光民). 2009년에 개명하였다.[2] 보통 葉은 '잎 엽'으로 읽으나, 인명 및 지명에 한해 '섭'으로도 읽을 수 있다. '쇠 금/성 김'과 같은 원리.[3] 동료 도태훈과 생일이 같다.[4] 손아섭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포지션. 신인 시절 좌익수로 출전하다가 카림 가르시아가 떠난 2011년부터 우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였고 이후 10년 이상을 우익수로만 뛰었다. 당시 조원우 코치를 만나 수비 실력이 성장했다는 평을 받았고, 커리어 동안 송구 능력과 타구 판단에 있어 최상급은 아니더라도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다 2번째 FA 직전 시즌인 2021년부터 눈에 띄는 실수들이 잦아지며 수비력 평가가 급전직하 하였고 지명타자화 되고있다.[5] 처음 주전 자리를 꿰찬 2010년 당시의 포지션. 이후 2023년 다시 좌익수로 간간히 출장중이다.[6] 데뷔 초 수비 포지션을 잡지 못했을 때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지명타자로 기용한 적이 있으며, NC 이적 후 제이슨 마틴 영입 등 선수단 변동에 따라 2022 시즌에는 우익수로, 2023 시즌에는 지명타자로 많이 출장했다.[7] 원래는 왼손잡이이며, 필기와 수비는 오른손으로 한다. 중학교 때 까지는 양투좌타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8] 프로 경기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진 모르지만 좌투우타도 어느 정도 가능은 하다. 어린 시절 우타 및 스위치 투수로 좌우 3이닝씩 번갈아가며 던진 적도 있고, 유튜브 야신야덕 손아섭, 김강민 편에서 유소년들에게 우타로 펑고를 쳐주는 모습이 나왔다.[9] 계약금 26억원 / 연봉 총액 30억원 / 인센티브 8억원[10] 2014 시즌 전까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사용했으며 팀 내에서 등장곡을 상당히 자주 바꾸는 편이었다. 클래식 시리즈 한정으로는 구 롯데 껌 시그널송을 사용했다.[11] NC에서도 그대로 쓰지만 파트가 약간 다르다. NC에서는 노래 중간마다 '다이노스 오빠'를 외치는데, 여자들이 '다이노스'를 하고 남자들이 '오빠'를 외친다.[12] 본인이 손준성 법조인과 손석희 언론인과 같은 본관이라고 밝혔다.[13] 역대 최초 기록이다[14] KBO 역대 통산 안타 1위는 박용택의 2504안타[15] 2023 시즌 종료 기준 역대 한국 야구선수 최다 안타 TOP 10은 장훈 3085안타, 이대호 2893안타, 이승엽 2842안타, 박용택 2504안타, 손아섭 2416안타(현역), 김현수 2377안타(현역), 김태균 2376안타, 최형우 2323안타(현역), 양준혁 2318안타, 박한이 2174안타 순이다 [16] KBO외에도 '한국 야구 선수로서' 안타 기록이다. 장훈은 본인의 정체성을 한국인으로 여긴다는 인터뷰를 수용하여 NPB 성적을 반영했고, 이대호는 NPB의 622안타와 MLB 74안타가 합쳐진 기록이고, 이승엽은 NPB의 686안타가 포함된 기록이며, 김현수는 MLB의 141안타, 김태균은 NPB의 167안타가 각각 포함된 기록이다.[17] 3천 타석 이상 역대 통산 타율 3, 6위이자, 현역 2, 4위에는 각각 같은 팀 소속인 박건우, 박민우가 있다. 1위는 현역인 이정후. 2022년 박건우와 손아섭이 동시에 NC에 이적하면서 그 시점 기준 현역 통산 타율 2,3,4위 타자들이 모두 NC에서 함께 뛰게 되었다.[18] KBO만이 아닌 한국인 야구선수의 프로리그 안타로 통합해서 따진다면, 장훈의 3085안타가 포함이 되며, 이대호는 2895안타(KBO 2199 +NPB 622 +MLB 74), 이승엽은 2842안타(KBO 2156 +NPB 686)가 된다. [19] 최초로 2000안타를 돌파했던 선수는 2007년의 양준혁이다.[20] 가장 최근 2000안타 달성자는 2023년 9월 5일에 달성한 kt의 황재균이다. 이어 삼성의 강민호(현 1949안타)가 근접해있고 2024시즌 초반에 달성될 가능성이 높다. 그 이후는 전준우(현 1734안타)까지 내려가야 한다.[21] 손아섭 본인은 2021년 인터뷰에서 2505안타를 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KBO리그 역대 최다 안타 기록을 넘기는 걸 1차 목표로 삼은 듯 하다.[22] 한편, 손아섭에 이어서 3000안타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는 현재까지는 김현수이 꼽힌다. 커리어를 일찍 시작했고 '안타 기계' 라는 별명답게 현재도 매 시즌 150 안타 내외를 치는 선수이기 때문에 손아섭 다음으로 3000안타를 기대할만한 선수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손아섭 다음 순위는 최형우인데 나이가 40대인데다 커리어 초반의 무명 기간이 길어서 누적에 불리함이 있었다.[23] 스즈키 이치로는 미일통산 4000안타를 친 바 있다. 일본 1278안타, 미국 3089안타. [24] 박용택의 경우엔 36세 159개, 37세 176개, 38세 175개, 39세 159개를 기록했다.[25] 다만 양준혁의 경우는 144경기 체제 이전인 2010년에 은퇴했다.[26] 커리어에서 20홈런을 넘긴 적이 딱 두번이며, 특히 최근 3년은 5홈런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27] KBO에서 만 36세 이상 타자가 150안타+ 시즌을 기록한 사례는 (2023시즌까지 ) 16번 뿐이고 그 중 144경기 체제인 2015년 이후가 15번인 걸 감안하면, 과거에 비해 그나마 성적을 쌓는 게 수월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그 16번이 인원수로 따지면 8명 뿐이라 그냥 잘 했던 선수가 계속 잘 한다고 봐야 할 듯하다. 이승엽/박용택 4회, 이대호 3회, 최형우/전준우/유한준/이병규/프랑코 각 1회 [28] 놀랍게도 개인 최초의 타격왕이다. 손아섭은 그동안 타격왕을 해본 적이 없었다.[29] 보통 싸이월드로 알려져있지만 정확히는 다모임에서 당시 큰 인기를 끌던 싸이월드 미니홈피 서비스와 제휴해 런칭한 아이스타일(I.Style) 미니홈피이다. 당시 부산지역에는 싸이월드 대신 이 서비스가 대세였다고 하는데 이는 마치 메신저 버디버디MSN, 지니, 세이클럽 타키가 다른 지역에서 각각 유행하던 것과 비슷하다.[30] 아이디를 자세히 보면 오빠"머"찌나 인데 어째서인지 오빠"므"찌나로 알려졌고, 이 별명이 유명해졌다.[31] 당시 사진[32] 손아섭 `오빠 왔다` [MK포토\] 손아섭 '멋진 오빠' [MK포토\] [부산 Live]'오빠 므찌나.' 롯데 손아섭 역전 만루포 작렬 7-6 역전 '오빠 므찌나? 응 최고데이!' 손아섭이 끝냈다 [오!쎈人\] 영원한 '부산 오빠'일 것만 같았던 손아섭이 정든 사직구장에 작별을 고했다.[33] NC 이적 후,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종종 응원단장'여성분들은 다이노스, 남성분들은 오빠!!!' 라고 유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꽤나 재미있다. 남성 팬들이 '오빠!!!' 부분에서 정말 진심을 다해 외쳐주기 때문이다. 손아섭 본인도 이걸 듣고 웃참한적이 있다고 한다. 여성분들의 목소리를 기대했다고...[34] 형님 왔데이 행사공지 랠리다이노스 컨셉[35] 티셔츠 판매예고 에코백 단디 실착사진 상품설명 상세샷[36] 2차 판매분 매진 소식이 들렸던 8월 21일 대구 삼성-NC 경기에서 손아섭은 5타수 3안타 2타점 1득점으로 득점권 상황마다 적시타를 터뜨리며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37] 영상의 2:35:45 부터 언급이 나온다.[38] 2011년경에 인터뷰한 기사의 사진이다.[39] 경기를 경상도 억양으로 읽으면 이렇게 읽힌다.[40] 예시들 ###[41] 이 짤을 변형시켜서 면발로 만든 짤도 있으며 아예 다른 버전의 짤도 있다. 다만 위 짤보다는 사용 빈도가 적은 편으로, 롯데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21시즌 당시 한창 손아섭에 대한 여론이 최악을 달리던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 '내 정말 딴팀 간데이?' 식으로 어그로를 끌거나 드립을 칠 때 종종 쓰였던 짤방이다.[42] 형님의 경상도 사투리이다.[43] 선수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물고 늘어지면서 조롱과 인신모독을 하는 일부 팬들의 악질적인 행태는 손아섭 이전에 강민호도 당했었고, 2019 시즌에는 나균안이 당했으며, 이후로는 기량이 만개하기 전 한동희가 겪었다.[44] 그 희생플라이 1개가 손아섭의 2021 시즌 마지막 타석, 즉 롯데에서의 마지막 타석에서 나왔다.[45] 바꿔 말하면 손아섭의 높은 득점권 OPS는 이 시즌 희생플라이를 1개밖에 기록하지 못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희생플라이만 쳐도 점수를 뽑을 수 있는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섰을 때 평소보다 안타든, 출루든 더 잘 한 것이기 때문이다.[46] 일부 팬들은 여전히 "손아섭의 2022 시즌 및 향후 커리어를 지켜보면 그가 스찌인지 아닌지 알 것"이라면서 또다시 스탯관리 운운하며 비아냥거리고 있다. 그러나 만약 손아섭이 2022 시즌 및 향후 커리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한들 그것은 "'스찌'가 아닌 '탈꼴효과'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정의되지 않을 것이다. 타선을 선수 한 명이 캐리한다 해서 상위권 성적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반례가 성립한다면 타격 7관왕을 차지했던 이대호의 2010 시즌 롯데는 넉넉하게 리그 우승을 했을 것이며, 손아섭이 고군분투했던 2017 포스트시즌에서도 역시 롯데가 우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또, 이적 후의 손아섭이 부진해서 커리어 내리막을 탄다 한들 그것은 '먹튀'가 될 지언정 '스찌'로 폄하당할 것이 아니다. 손아섭의 성적을 조금만 뜯어보면 손아섭이 '스찌'로 폄하당할 타자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동안 조롱에 가려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을 뿐이다.[47] 팀 대표선수의 임팩트있는 병살타구였기 때문에 계속 언급되었는데, 일례로 2번타자인 손아섭에 앞선 무사 1, 3루 끝내기 상황에서 9번 타순에 대타로 나섰다가 투수 땅볼로 기회를 날린 손용석 역시 손아섭과 같은 이유로 이날 경기 패배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이 그 뒤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 하다가 은퇴하면서 손아섭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비슷한 사례로 2018년 한국시리즈 당시 24타수 1안타 타율 0.042 war -0.6으로 시리즈를 망친 박건우도 당시에는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팀도 이듬해 201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박건우 본인도 정규시즌에서 팀을 1위로 올리는 끝내기 안타를 치고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 1할대로 좋지는 못했지만 2차전 끝내기 안타, 3차전 투런 홈런으로 우승에 많은 기여를 했다. 손아섭의 그 병살 이후 2012, 2017시즌을 제외하면 한국시리즈는 커녕 포스트시즌조차 진출하지 못한 팀 때문에 만회할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 손아섭과 달리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도 이듬해 다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두산이었기에 박건우도 작년의 충격적인 부진을 만회할 기회를 얻었고, 실제로 어느정도 만회를 했던것이다.[48] 롯데의 마지막 포스트시즌 시리즈 승리로 남아있는 2012 준플레이오프 마지막 장면은 양의지의 끝내기 포일이었지만 두산팬 중 누구도 이것으로 '여태까지' 양의지를 욕하지는 않는다.[49] 롯데와 NC 담당기자를 맡고 있는 스포츠경향 김하진 기자는 "롯데가 손아섭에게 NC가 제시한 조건의 절반 정도를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그럼에도 손아섭은 부산 지역지인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롯데는 협상 과정 내내 구단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제시했다”,“롯데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리빌딩(Re-Building)인 만큼, 내가 설 자리가 좁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라며 롯데 구단을 변호했다. 손아섭은 또 “롯데에 대한 서운함보다 부산을 떠나야 한다는 서운함이 훨씬 크다” 라고도 말했다.#[50] 손아섭에게 롯데가 제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액을 두고 일부 야구 팬들은 손아섭과 롯데의 협상을 조조에게 빈 반합을 받은 순욱의 최후에 빗대기도 했을 정도니, 롯데가 구단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제안을 했는 지 알 수 있다.그리고 그 순욱은 라이벌 팀인 촉한(NC)로 갔다고...[51] 손아섭은 구단이 이렇게 장기계약 제안을 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한 듯 하다. 즉 본인의 기대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제시받았음에도 원소속팀을 떠나고 싶지 않아 사흘간 고민했다는 것이다. 만약 손아섭이 일부 팬들의 생각처럼 정말로 팀에 애정이 없었다면 고민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팀을 옮겼을 것인데, 그러지 않았다.[52] 특히 NC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나 같은 해에 FA로 팀을 떠난 나성범이 이적 당시 경솔한 행적을 보여 팬들을 크게 실망시킨 바 있어 많은 비교를 당하기도 했다. 이게 친정을 떠나는 프차의 모습이지 엔씨팬들이 실망한게 손아섭과의 차이가 아닐까 시발 아습햄 보고 쓱 보고 하니 꽁밥이 또 빡치네 그러게 다른팀 프차는 후려쳐도 고민하는데 손아섭보니 나성범이랑 행보가 많이 비교되긴하네요 글 등을 참조.[53] 기사 영상[54] 2021년 12월 28일 부산일보 2면, 2021년 12월 29일 국제신문 3면에 각각 5단 광고를 냈다.[55] 글 작성 시점이 손아섭의 NC 이적발표 일주일 전이다. 그 글에서 롯데 팬들은 손아섭이 인기가 없어서 계약이 잘 안된다며 낄낄대고 있다.[56] 이는 아마도 2년 전 전준우가 첫 FA 당시 헐값에 남은 사례를 보면서 1차 FA때 거액을 챙긴 손아섭이 본인의 주제를 알고 으레 싸게 남을거라는 식으로 희망회로를 돌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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