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호(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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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호
孫仁鎬 | Son In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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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손효찬(孫孝贊)
출생
1926년 5월 6일[1]
평안북도 창성군 창성면[2]
사망
2016년 7월 16일 (향년 90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세브란스병원
부모
아버지 손경룡
배우자
이선자
자녀
아들 손동준, 손종식, 손태식, 딸 손경주
종교
개신교(장로회)
데뷔
1954년 '나는 울었네'

1. 개요
2. 생애
3. 대표적인 곡
3.1. "비 내리는 호남선"의 일화
3.2. 영화녹음 활동
4.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가수이자 한국 트로트 1세대의 네임드격 인물.


2. 생애[편집]


어릴 적 수풍댐 건설로 고향이 물에 잠기자 중국 지린성 창춘시로 이주하여 살았다. 해방 후 귀국하였고, 관서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심사위원의 권유로 월남하였다. 이어 KPK 악단에서 가수생활을 했고, 6.25를 전후해 녹음기사로 전업하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군 예대에 입대하여 '군번 없는 용사'로 전쟁터를 누볐다.

1954년 작곡가 박시춘에게 <나는 울었네>, <숨쉬는 거리> 두 곡을 받아 취입, 크게 히트시켰다. 이후 그는 신세기레코드를 거쳐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비 내리는 호남선>을 발표하였고, 계속 <울어라 키타줄> ,<사랑찾아 칠백리>, <하룻밤 풋사랑>, <이별의 성당고개> 등을 히트시켰다.

1957년 말에 도미도레코드로 이전,<한많은 대동강> ,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이별의 부산항>, <청춘등대>, <향수의 블루스>, <남행열차>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었고, 빅토리레코드에서 <해운대 엘레지>를 발표하여 크게 히트시켰다.
1960년대 중반까지도 <돌아가자 남해 고향>, <한 많은 명사십리> 등을 취입하여 히트시켰다. 1980년대 중반까지 영화녹음작업을 했으며, 당시 그는 원로가수거목회, 만나리, 뿌리회 등 가수친목회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였다.

2016년 7월 16일, 지병인 간경화로 오전 6시 39분에 강남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별세하였다. 향년 89세.#


3. 대표적인 곡[편집]




3.1. "비 내리는 호남선"의 일화[편집]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 자유당 후보인 이승만에 맞서 야당인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이 유세 도중 같은 해 5월 5일 호남선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사망하자 국민은 이 노래를 추모곡처럼 애창했다. 당시 이 노래가 민주당 당가로도 활용되고 노랫말을 신익희 선생의 부인이 썼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노래를 부른 손인호와 박춘석 씨, 작사가 손로원씨가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때 경찰이 노래를 만든 배경 등에 대해 집요하게 추궁했으나, 이 곡이 신익희 사망 3개월 전에 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이 '혐의'를 벗고 풀려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수사관 왈, "이 노래를 취입할 때 어떤 감정으로 불렀느냐"고 묻자, 손인호는 "가수는 감정을 가지고 노래를 해야지, 감정없이 노래 부르면 그건 가수가 아니죠"라고 답했다고 한다.


3.2. 영화녹음 활동[편집]



특히, 팔도강산에서는 녹음 중 직접 특별출연하여 가수 박가인 씨와 백마강에서 뱃사공으로 분장해서 밀짚모자를 쓰고 "백마강"을 부르면서 노를 젖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4. 여담[편집]


  • 1950~60년대에 명곡으로 히트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방송무대에는 한번도 출연하지 않아 "얼굴 없는 가수"의 원조로 불렸었는데, 2001년 6월, KBS1 가요무대에 75세의 나이에 첫 출연하였고, 어느날에는 아들 손동준씨와 가요무대에 같이 출연해 "비 내리는 호남선"을 같이 불렀다.
  • 종로구 명륜동 1가 33 - 87에서 20년간 거주하였고, 이후 강남구 역삼동 선릉 부근에서 39년간 살다가 별세하였다.
  • 동화경모공원(이북 5도민 묘원/파주 통일 동산 부근)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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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히 들 1927년생으로 알고 있으나 가요무대에서는 1926년생으로 소개하고 있다.[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