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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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역사
3.1. 2017년 이전
3.2. 손학규의 정계 복귀
3.3. 극적인 부활, 그러나...
3.4. 당권 포기
3.5. 공중분해
4. 소속 인원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손학규를 지지하는 정치 세력을 일컫는다. 김대중 대통령을 따르는 정치인들을 동교동계, 이명박 대통령을 따르던 사람들을 MB계라고 불렀던 것과는 다르게, 본인 이름을 따서, 과거 언론에서도 주로, 손학규계라는 말을 사용했다.


2. 상세[편집]


손학규 계파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 손학규의 민주화 운동 이력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당시 손학규는 김근태, 조영래등과 함께 경기고-서울대 KS민주화 3인방으로 이름을 올렸었다. 그러나 민주당행을 택한 김근태나, 재야로 남은 조영래와는 다르게 손학규는 보수정당인 민주자유당으로 입당했고, 이후 당의 이름이 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바뀌는 동안, 3선 국회의원, 최연소 장관, 경기도지사 등을 거치며 대선주자로까지 거론되었으나 당시 한나라당의 최대 계파인, MB계와의 싸움에서 밀리고 이명박이 대놓고 '손학규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라고 발언하자. 한나라당에서 탈당하면서, 김근태의 권유로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하게 된다. 대통합 밀알 김근태, 친구 손학규 대통합호에 합류시켜

이때 같이 탈당한 인사들과[1] 민주당계의 인물 일부를 흡수하여 손학규계가 이루어지게 된다.[2] 손학규계와 손학규

한때 민주당계 정당에서도 대권주자로 거론이 되었지만, 아무리 민주화 운동 인사 출신이라고 해도 민주화 운동 최대 계파인 민평련의 수장으로는 김근태 등이 있었고[3], 결국 조직 싸움에서 밀려 호남계를 대표하는 정동영에 이어 2위로 밀려나 대선주자가 되지 못한다. 이후 손학규계는 비주류 계파로 당내에서 친노-호남계-민평련 등에 밀리고 계파 수장인 손학규 역시 험지로 내몰리는 등[4] 묘하게 대우가 좋지 않았다. 이후 손학규 계파는 원내대표 선거 등에서 줄줄히 낙방하면서 비주류로 밀려난다. 손학규계·486·호남 일부 결집… ‘비주류 반란’ 성공할까

그리고 이후 당이 위급할 때 구원 투수 역할을 하면서 복귀하려고 했던 계획이 틀어지면서,[5] 더불어민주당 시절에는 손학규계가 사실상 와해되고, 손학규가 탈당 후 국민의당으로 가면서 따라간 인물은 이찬열 의원 1명에 지나지 않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과거 손학규계 였던 인물들은 지금은 대부분 이재명계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대표적인 손학규계 인사들이 바로 이낙연 국무총리, 조정식 의원과, 양승조, 전혜숙, 정춘숙, 오제세, 강창일, 김병욱, 고용진, 강훈식, 이종걸, 박찬대, 임종성, 정성호, 이찬열 등이다. 손학규 일부 측근 민주당 탈당 움직임...당내 손학규계 꼽아보니 이재명 선대위 핵심으로 떠오른 '손학규의 남자들'…강훈식·김영진·김병욱 등 손학규계와 이재명계


3. 역사[편집]



3.1. 2017년 이전[편집]


2012년의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2등으로 패배한 손학규가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지도부 책임론의 일환으로 경기도 수원시 병에 전략 공천되나 김용남 의원에게 밀려 낙선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라남도 강진으로 내려간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이 4.29 재보궐 선거에서 전패해 문재인 당시 대표의 지도력이 손상되자, 친노계에 대응하는 야권 리더로서 차기 대선 주자로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이 일어나기 시작해 손학규를 다시 불러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그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6] 아무래도 더 큰 건에서 정계 복귀를 시도하려 한 듯 했으나... 20대 총선에서 김종인 - 문재인의 시너지와 박근혜 정권의 실책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의 과반을 저지하고 원내 1당이 된 데다, 실패할 것이라 점쳐졌던 국민의당이 당당히 원내 3당으로 입성하며 야권은 최고의 호재를 맞는다.

이렇게 되며 손학규계 의원들은 원내 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나 안전하게 원내 3당으로 정착한 국민의당의 머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손학규계는 점차 계파의 색을 잃게 된다.


3.2. 손학규의 정계 복귀[편집]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손학규는 정계 복귀를 하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버린다. 뒤늦게 이찬열 의원이 그에게 합류하고 국민주권개혁회의를 만드나, 손학규계 의원 중 이찬열 의원과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 누구도 탈당하지 않았다. 그후 이들은 국민의당에 입당해 경선을 치르나 손학규가 패배하며 끝난다.


3.3. 극적인 부활, 그러나...[편집]


이렇게 손학규가 국민의당 대선 경선에서 패배하며 이들의 정치 생명은 끝난 듯 싶었으나, 2018년 9월 손학규가 바른미래당 대표로 당선되어 당권을 잡으면서 다시 부활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친안-친유 연합전선으로 대표되는 비당권파와 사사건건 대립한다. 특히 전당대회에서 손학규가 당대표로 당선되었지만 선출직 최고위원에는 모두 바른정당 출신 하태경, 이준석과 같은 국민의당 출신이지만 극히 사이가 안 좋은 권은희가 선출되고, 원내대표에도 김관영의 후임으로 바른정당 출신의 오신환이 선출되면서 위태로운 입지에 놓였다.

결국 연동형 비례대표제 패스트트랙 문제와 2019년 보궐선거 참패로 손학규의 리더십 문제가 불거나오면서 2019년에 이르러서는 비당권파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3.4. 당권 포기[편집]


바른정당계안철수계의 퇴진 요구를 견뎌내며 2019년 말,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패스트트랙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에 일조하면서 손학규 대표의 당내 장악력은 높아졌다. 이에 2020년 초, 바른정당계는 탈당해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해 나갔다. 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정계복귀를 선언, 손학규가 이에 화답하며 당내 분란을 정리하고 총선을 위한 제3지대 규합이 시작...되는 듯했다....

안철수는 손학규의 퇴진과 비대위 체제 전환을 요구했으나 손학규는 이를 거부했고, 안철수는 탈당해 국민의당의 창당에 돌입한다.


3.5. 공중분해[편집]


안철수 전 대표의 탈당으로 손학규와 바른미래당에게 제3지대 통합 압력이 가해졌다. 바른미래당은 당시 20석으로 교섭단체 하한선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1석이라도 잃으면 교섭단체가 무너져 소속 의원들의 분열에 대한 원심력이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컸다.

특히 최측근인 이찬열 의원마저 자유한국당으로 떠나고 말았고 임재훈 역시 미래통합당에 합류하며 사실상 계파가 와해되버렸다.

그 후 그나마 남은 손학규계는 대부분 민생당으로 합류하였으나 이후 수장 손학규가 선대위원장을 맡은 민생당이 제21대 총선에서 0석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음과 동시에 사실상 재기 불능에 빠져버리며 손학규계 역시 처음 계파가 발족된 2003년 이래 약 17년간의 질긴 생존의 역사를 뒤로 하고 해체되고 말았다.

4. 소속 인원[편집]


현재는 계파가 와해되었다고 봐야 한다. 다만 과거 손학규계파 대다수는 현재 이재명계로 이어지고 있다. 손학규계 vs MB계... 여야 선대위는 비주류대책위?

과거 손학규계를 구성하는 인사로는, 먼저 한나라당계 인사들이 있다.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 같이 탈당하여 민주당에 입당한 인물들이다. 대표적으로 이찬열, 조정식 의원 등이 있다. 특히 조정식 의원은 과거 손학규계 핵심 인물이었다. 조 의원은 초선 때부터 손 전 대표와 함께했다. 손 전 대표가 대선 출마 선언 등을 할 때 외부에 알리는 등 정치적 동반자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찬열 의원은 손학규가 국민의당으로 갈 때도, 함께 따라갔다. [7]

김영진 의원도 현재 대표적 이재명계로 분류되지만,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의 2014년 7월 재·보궐선거에서 당시 자신의 지역구를 내주고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역임했다.

강훈식 의원도 한때 '손학규의 남자'로 불렸다. 2004년 손학규 경기지사 시절 경기도 혁신분권보좌관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손 전 대표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며 중앙 정치권에 지역 민심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손 전 대표가 통합민주당 대표가 되면서 당 대표 정무특보를 맡았고, 손학규 대선후보 선대위 전략기획실장 등을 지냈다.

김병욱 의원 역시 '손학규의 사람'으로 불린 인물이다. 자신이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하던 분당 을 지역구를 2011년 4·27 보궐선거에서 손 전 대표에게 내줬다. 손 전 대표는 분당을에서 승리했다. 김 의원은 손 전 대표의 정책특보와 손 전 대표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임종성 의원은 손 전 대표의 수행을 맡으면서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박찬대 의원은 동아시아미래재단으로 손 전 대표와 인연을 맺고 손학규계로 꼽혀왔다.

고용진 의원은 2012년 대선 때 손학규 캠프에서 활동했다.

이낙연도 2012년 대선 때 손학규 캠프에서 활동했다.

그외에 비주류 의원으로는 정성호 의원이 있다.

이재명 선대위 핵심으로 떠오른 '손학규의 남자들'…강훈식·김영진·김병욱 등손학규계와 이재명계

그외에도 양승조, 전혜숙, 정춘숙, 오제세, 강창일, 고용진, 이종걸등도 손학규계로 분류하기도 한다. 손학규 일부 측근 민주당 탈당 움직임...당내 손학규계 꼽아보니

손학규가 바른미래당 대표로 취임한 이후 당내 계파가 재편되며 손학규의 영원한 충신이라 불리는 이낙연 국무총리, 이찬열 의원을 비롯해 김성식, 임재훈, 이상돈 의원과 원외 인사로는 문병호, 한광원, 장성철, 김영환, 주대환 등이 손학규계로 분류되었으나[8] 2020년 2월 기준으로 새롭게 당직을 맡은 김정화, 황한웅, 이해성, 김경민, 백금산, 고연호, 강신업 등 원외 인사들이 현재 손학규계 인사로 분류된다. 하지만 황한웅, 백금산은 국민의힘에 입당했고 이해성은 현재 국민의힘 입당이 유력하다. 민생당 초대 공동대표였던 김정화와 손학규의 인재 영입으로 정계에 입문한 강신업도 탈당 이후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 김정화는 현재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 중이다. 고연호는 더불어민주당에서 활동 중이다.

이낙연도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총리로 임명되기 전에는 손학규계로 분류되었다. 그래서인지 손학규 전 대표도 국민의당에 이낙연 총리를 인준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한때 안철수계로 분류되던 장진영 변호사도 손학규가 바른미래당의 당대표를 맡은 뒤 손학규계로 분류되었지만 역시나 당대표 비서실장 직에서 해임되며 멀어졌다. 바른정당 출신인 강석구도 손학규계에 속했으나 21대 총선 참패 이후 손학규와 점점 멀어지다가 2020년 9월 15일 민생당을 탈당하면서 국민의힘에 복당해버렸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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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정식, 이찬열 의원이 대표적이다.[2] 대표적으로 같은 경기고 출신인 이종걸이 있다. 이종걸은 이후 손학규 탈당 회동에도 참석했고, 대표적인 반문 박영선과 함께 민주당 탈당후 국민의당행이 유력했지만 결국 탈당하지 않고, 이찬열만 탈당한다.[3] 다만 우상호를 비롯한 민평련 계파와는 우호 관계 였다.[4] 경기도의 강남으로 불리는 분당과 당시 남씨 부자가 수십년 동안 세습하고 있는 수원 등으로 공천을 받았다.[5] 이때 얻은 별명이 만덕산이다.[6] 당시 당이 위험해지니까 손학규를 다시 장작으로 쓰려한다는 비판도 많았다.[7] 이찬열은 이후 다시 친정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으로 복귀하고 정계은퇴를 하게 된다.[8] 주대환을 제외하고 현재는 국민의힘 소속인데 주대환도 사실상 국민의힘 인사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