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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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유도 남자 -90kg 금메달
파일:오륜기(여백X).svg

파일:조지아 국기.svg 이라클리 시제키제
(200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송대남
(2012)


파일:일본 국기.svg 베이커 마슈
(2016)


송대남
宋大南|Song Dae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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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9년 4월 5일 (44세)
경기도 화성시[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금오초등학교 (졸업)
경민중학교 (졸업)
경민고등학교 (졸업)
청주대학교 (체육교육학 / 학사)
용인대학교 대학원 (무도체육학 / 박사[2])
종목
유도
체급
-90kg
신체
177cm, 81kg

1. 개요
2. 선수 경력
3. 은퇴 이후
4. 수상 기록
5.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유도 선수 출신 감독이다.

한때는 대한민국 올림픽 도전 역사상 개인 종목 최고령 금메달리스트였다.[3] 그리고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마지막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이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어린 시절~2003년[편집]


전국소년체전 입상 등 유도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던 선수였지만, 경민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슬럼프에 빠지며 별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유도계의 빅 3 대학교인 용인대학교, 한국체육대학교, 한양대학교 등으로부터 부름을 받지 못했다. 이 때 당시 청주대학교 유도부를 이끌던 박종학 감독[4]의 눈에 들어오면서 1998년 청주대학교에 입학했다.

청주대학교에 입학한 후 1999년 춘계전국대학 연맹전(66kg급) 우승, 2000년 전국체전(73kg급) 준우승, 2001년 추계전국대학 유도연맹전 73kg급에서 우승하며 조금씩 다시 이름을 알렸다.

2.2. 2004년[편집]


그러나 번번히 부상과 불운이 겹치며 올림픽에 계속 나가지 못했고, 상무에서 군 복무를 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권영우[5] 에게 밀려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2.3. 2005년~2007년[편집]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해 우승하면서 세계랭킹 1위에도 오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2.4. 2008년[편집]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는 -73kg급의 이원희 VS 왕기춘의 경쟁에서 밀려 81kg급으로 체급을 올린 김재범의 대두로 인해 치열한 선발 경쟁을 벌여야 했다. 결국 연장 접전 끝에 김재범에게 최종 선발전 결승에서 판정패하면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회에서 김재범은 은메달을 차지하면서 동 체급의 강자로 떠올랐고, 이어 2010년과 2011년 세계선수권 우승 등으로 최강자의 입지를 굳히게 되면서 졸지에 송대남의 입지는 묘하게 흔들리게 되었다.

2.5. 2010년[편집]


11월 무릎 부상을 당해 무릎 십자인대를 잇고 연골 봉합 수술을 받아 재활하게 되면서, 4개월 넘게 유도판을 떠났다.

2.6. 2011년[편집]


갑자기 굴러들어온 돌에게 밀려난 송대남은 처음에는 방황했지만, 정훈 감독의 지도 아래 방황을 멈췄다. 대신 동 체급의 강자로 부상한 김재범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90kg으로 또 한 번 체급을 올렸다. 하루에 스테이크를 12개를 먹는 강행군 끝에 증량을 시도해서 자리를 잡는데는 성공했지만, -80kg과는 달리 세계 무대에서 초강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 체급은 대한민국 선수들이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상황이어서 자동 시드 배정자가 없었고, 결국 이규원[6]과의 대표 선발전 끝에 2012 런던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2.7. 2012년[편집]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만 33세의 나이로 일종의 다크호스 정도로 여겨졌지만, 본선에서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경기를 선보이면서 8강에서 당시 세계랭킹 1위의 일본 선수를 누르면서 4강 진출에 성공하더니, 4강에서는 브라질 선수를, 결승에서는 쿠바 선수를 연장 접전 끝에 끝내기 안뒤축 기술로 극적인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선수 생활을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데 성공했다. 은퇴식은 청춘민박에서 감독과 2012 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와 같이 진행했었다.

3. 은퇴 이후[편집]


남자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재직 중이다. 2015 세계선수권에서 대한민국 남자 유도가 금메달 2개를 따내고 곽동한, 안바울, 안창림 등 많은 유망주들이 등장하면서 코치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다.

2016년 8월 용인대학교 대학원에서 무도체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8년부터 2020년 11월까지 유도 중국 국가대표팀 총감독으로 재직했다.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 중국에서 유도 감독직을 권유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한국으로 들어와 사기업 실업 유도단인 KH그룹 필룩스 유도단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2021년부터 한국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재선임되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자신이 지도한 안창림조구함이 각각 동메달과 은메달을 따냈다.

4. 수상 기록[편집]


올림픽
금메달
2012 런던
-90kg
동아시안 게임
금메달
2010 마카오
-73kg
실내 무술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9 방콕
-90kg

5. 여담[편집]


  • 한자는 큰 大에 남녘 南으로 쓰는데, 사실은 사내 男으로 쓰려던 것을 잘못 기록했다고 한다.

  •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인 정훈 감독은 송대남과 동서 사이, 즉 정훈 감독의 처제가 송대남과 결혼했다. 정훈 감독이 사람 좋고 성실한 모습에 처제를 소개해줬다고 한다.

  • 선수 시절 체급 증량을 위해 하루에 스테이크를 12개씩이나 먹는 강행군 때문에 스테이크를 극혐한다고 한다.

  • 은퇴식을 청춘민박을 통해서 했다.


  • 2021년 8월 18일 유 퀴즈 온 더 블럭 안창림 편에 인터뷰 영상으로 출연해 올림픽 당시의 소회를 밝혔다.

  • 2021년 9월 5일 다큐멘터리 3일 과거에서 온 편지 특집편에 후배 안창림과 함께 출연했는데, 이는 2009년 2월 14일 선수 시절 출연 이후 12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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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박사 학위 논문은 유도선수들이 지각한 코치신념과 코칭지식 및 운동행동 간의 구조적 관계(2016. 8)다.[3]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동갑내기 사격 선수 진종오에 의해 깨졌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세는 나이 기준으로 41세인 오진혁이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39세인 김정환이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개인전 최고령 금메달리스트는 여전히 진종오다.[4] 1981년 세계선수권에서 대한민국 유도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했고 2000 시드니 올림픽 남자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사람이다.[5] 1981년생이며, 2번의 유니버시아드에서 연속으로 우승한 유망주였다.[6] 2009 세계선수권 이 체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