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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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만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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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만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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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agles_Champion_v1.png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9
2004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0 KBO 리그 장타율왕




송지만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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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등번호 61번
팀 창단

송지만
(1996~1998)


김대원
(2001~2002)
한화 이글스 등번호 16번
김민태
(1997~1998)

송지만
(1999~2003)


문동환
(2004~2009)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17번
신동민
(2003)

송지만
(2004~2006)


강정호
(2007)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5번
강정호
(2006)

송지만
(2007)


팀 해체
{{{#fff [[우리 히어로즈|우리]]
/
[[서울 히어로즈|
서울]]
/
[[넥센 히어로즈|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25번}}}
팀 창단

송지만
(2008~2014)


스나이더
(2015)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75번
서한규
(2011~2014)

송지만
(2015~2018)


권도영
(2019~2022)
KIA 타이거즈 등번호 79번
강상수
(2019)

송지만
(2020~2022)


이정호
(2023~)
NC 다이노스 등번호 77번
용덕한
(2017~2022)

송지만
(2023~)


현역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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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송지만2023프로필.png
NC 다이노스 No.77
송지만
宋志晩 | Song Ji-Man

출생
1973년 4월 4일[1] (51세)
전라북도 전주시[2]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서흥초 - 동산중 - 동산고 - 인하대
포지션
외야수[3]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2차 3라운드 (전체 20번,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1996~2003)
현대 유니콘스 (2004~2007)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2008~2014)

지도자
화성 히어로즈 타격코치 (2015~2016)
화성 히어로즈 외야수비·주루코치 (2017)
넥센 히어로즈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 (2018)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4] (2020~2021)
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 (2022)
NC 다이노스 1군 타격코치 (2023~)
등장곡
패션 70's - Main title
응원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5]링크
구단 자작곡[가사]
종교
개신교
MBTI
INTJ
1. 개요
2.1. 꾸준함의 대명사
3. 은퇴 이후
3.2. 야인 생활
4. 연도별 성적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NC 다이노스 1군 타격코치.

한화 이글스,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의 외야수로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강타자였다.


2. 선수 경력[편집]




2.1. 꾸준함의 대명사[편집]


송지만은 선수 시절 KBO 리그의 대표적인 5툴 플레이어로, 그야말로 꾸준함의 대명사로 불려도 손색없는 기록들을 남겼다. 언제나 일정 이상의 성적을 보장한다는 것이 타자 송지만의 장점으로, 홈런왕을 차지하거나 40홈런 이상을 넘긴 적은 없지만 20홈런 이상을 7번이나 기록했고 부상으로 74경기 출장에 그쳤던 2003년을 제외하면 2010년까지 데뷔 이래 매 시즌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6] 또한 부상과 부진으로 1할대 타율을 기록한 2012년 딱 한 시즌을 제외하고 데뷔 시즌부터 은퇴 시즌까지 wRC+가 100 이하로 내려갔던 시즌이 단 한 시즌도 없다. 이렇게 꾸준한 활약을 통해 도루를 제외하면 통산 안타나 홈런 갯수 등에서 마찬가지로 호타준족인 박재홍보다 더 좋은 통산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2010년 5월 19일 역대 5번째로 통산 1700번째 안타를 기록했다.[7] 그리고 2010년 8월 20일 8회초 팀이 3:4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역전 투런 홈런으로 통산 3,000루타를 달성했다.[8] 2010년 9월 24일 잠실 두산전에서 시즌 종료를 두 경기 남기고 드디어 대망의 300홈런이 터졌다. 리그 통산 6번째 기록임에도 이날 팀이 패배하는 바람에 대서특필되지 못했다.

사실 송지만의 대단한 점은 콩라인에도 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300홈런을 달성했다는 점이다. 한 시즌 홈런 2위는 커녕 홈런 5위 안에 들었던 시즌이 단 2번 뿐이기 때문이다. 늘 20홈런을 기본으로 치는 타자였음에도 순위가 높지 않았던 이유는 KBO 리그 역대 최악의 타고투저 기간 동안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송지만보다 홈런 순위가 높았던 타자들을 살펴보면 이승엽, 양준혁, 마해영, 심정수, 박재홍, 박경완 같은 누구나 인정하는 레전드들을 제외하면 외국인 타자거나 한두시즌 반짝하고 급격히 줄어든 선수들이 주였다.

2011년 7월 21일 목동 LG전에서 상대 선발투수 벤자민 주키치를 상대로 통산 1800번째 안타를 때려냈다. 이는 KBO 역사상
4번째 기록이다.[9] 열흘 뒤인 2011년 7월 31일 광주 KIA전 1회초 상대 선발 양현종의 공을 받아쳐 3점 홈런을 터뜨리면서 역대 7번째로 통산 1000타점을 기록하며 300홈런-1000타점 고지에 올랐고,[10] 9월 6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통산 1,000득점을 달성하였다.

은퇴 시점에서 송지만이 달성한 통산기록은 다음과 같다. 6,620타수(4위), 1,870안타(5위), 327 2루타(8위), 311홈런(6위), 3,186루타(3위), 1,019득점(8위), 1,030타점(6위).

정리하자면 한두시즌 반짝하고 사라지는 선수가 즐비한 KBO 리그에서 철저한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1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꾸준히 훌륭한 성적을 기록한 선수였다. 불혹의 나이에도 주전 외야수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기라성같은 타자들 사이에 어깨를 나란히 하며 커리어 내내 그 입지를 단단히 했다.


3. 은퇴 이후[편집]



3.1. 넥센 히어로즈 코치[편집]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0160808173144_DSC_7781_99_20161101152007.jpg


2015년부터 화성 히어로즈의 타격코치로 선임되었다.

2016년 6월 24일 1군 타격코치인 심재학이 급성 맹장염으로 입원하게 되자 임시로 1군 타격코치를 맡았으며, 심재학이 돌아온 후 다시 화성 코치로 내려갔다.

2017년부터는 화성 히어로즈의 외야 수비코치 겸 주루코치로 보직이 변경된다.

2018년부터 1군 외야수비 및 1루코치를 맡게 되었으나, 시즌 종료 후 사임하면서 약 10년만에 히어로즈 유니폼을 벗게 됐다.


3.2. 야인 생활[편집]


넥센 히어로즈 코치직을 사임한 후, 공석인 친정 팀 한화 이글스의 1군 타격코치로 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며 많은 한화 팬들을 설레게 했으나 타나베 노리오가 선임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2019년에는 LG U+가 자체 앱을 통해 제작하는 AR중계 해설위원으로 김용수와 번갈아 나왔다.


3.3. KIA 타이거즈 코치[편집]


2019년 10월 23일 2020년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로 선임되었다. KIA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코치진 개편에 따라 우타자 전담 타격코치로 활약한다. 참고로 좌타자 전담 타격코치는 최희섭.

그가 코치로 오고 나서 타자들이 단체로 작년만도 못한 타격을 보여주면서 비판 여론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최근 타자들이 상승세를 타면서 비판 여론이 수그러든 추세다. 하지만 잠잠해진 여론도 7월 까지의 얘기고 8월 부터는 타자들이 단체로 식물타선화 되면서 최희섭과 함께 송지만 코치의 선임은 실패가 되었다는 걸 증명하고 말았다. 9월, 10월에도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무능력하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2021년에는 타격이 더 나락으로 떨어지며 무능함만 더욱 부각되어가고 있다.

2022 시즌에는 퓨처스 타격 코치로 이동했다가 시즌이 끝나고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3.4. NC 다이노스 코치[편집]


젊은 타선 위한 '창단 첫 외부인사', 송지만 코치가 그리는 NC 타선은?
'NC 첫 인사' 송지만 코치 "양의지-박민우 같은 타자 발굴해내겠다" [★인터뷰\]

2022년 NC 마무리캠프에 1군 타격코치로 합류하면서 NC와 처음 연을 맺게 되었다. 강인권 감독은 취임식 기자회견에서 "젊은 선수들의 육성과 성장이 필요할 것 같았다. 젊은 선수들의 루틴을 확립하고 확신을 주면서 보완이 필요할 거라고 판단해 확실한 타격 이론을 갖고 있는 송지만 코치를 선임했다"라며 선임 배경을 밝혔다.

송지만 코치는 인터뷰에서 "내 주관적인 생각이 아닌 선수와 구단을 중심으로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 코치론이다. 밖에서 본 NC는 콘셉트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스카우트 파트부터 전력분석 파트까지 시스템이 잘 정착됐다. 선수들 스스로도 건강한 경쟁을 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또 "NC의 젊은 타자들이 배트 스피드가 빠른 유형이 많이 있다는 인상이 있다. 운동능력이 인상적인 선수들이 있었다"면서 "기본 프레임은 건드릴 생각은 없고, 그 안에서 선수들의 능력을 끌어내겠다"고 예고했다.[11]

시즌 초 젋은 선수들의 타격감이 오르는 등 전임자인 채종범 보다는 확실히 낫다는 평. 표면적으로는 답답해보인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어떻게 보면 2023 시즌에 가장 심하게 저평가를 당하고 있는 코치라고 볼 수 있는데, 막상 팬들의 선입견이나 볼멘소리와는 다르게 2022년에 비해 지표상으로는 확실히 팀의 타격 성적이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다수의 타자들이 새 얼굴인 것을 감안해도 5월 20일을 기준으로 팀의 OPS와 wRC+는 107.3으로 리그 전체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리그 평균 대비 득점 생산 지표인 wRAA를 기준으로 봐도 NC 다이노스는 5월 20일을 기준으로 리그 전체 2위를 마크하고 있는 등, 잦은 타격 사이클 변동에도 그럴대로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KIA 타이거즈 시절이 역으로 본인의 코칭 이론을 거의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전년도에 비해 타선을 준수하게 재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12][13] 음수의 WPA나 득점권 타율 등을 근거로 애매한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14] 2023 시즌은 5월까지 리그 펑균 OPS가 0.7이 안 될 정도로 처참한 데다가 리그 평균 타자 WPA 또한 -7에 육박하는 근래 최악의 투고타저 시즌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다만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타선의 기복이 지나치게 심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이는 지난 2년동안 나성범, 애런 알테어, 양의지, 노진혁 등 팀의 장타를 책임지던 타자들이 줄줄이 나가면서 팀 내에 확실하게 장타를 칠 수 있는 타자는 거의 없고 최대 2루타까지만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라 소위 말하는 똑딱이소총타선의 명백한 한계라고 볼 수도 있다.[15][16] 장타가 부족하다는 단점을 보강하기 위해 닉 마티니 대신 데려온 것이 제이슨 마틴이지만, 시즌 초반부터 부상으로 한 달 가까이 이탈한데다 복귀 후에도 심하게 부진하고 있는지라 타선에 도움이 전혀 되지 못 하고 있다. 또한 1군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저연차 선수들이 많다는 한계점도 이러한 기복있는 타선에 한몫을 한지라, 결국에는 이 선수들에게 1군 경험치를 최대한 잘 먹이는 것이 관건이 되었다.

사실 NC의 타격코치가 2년 연속으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이유는 하필 전임자가 그 이호준인 점도 매우 크다. 한 때 강력한 타격을 자랑하던 NC의 타선이 그때만큼의 위엄을 발휘하지 못 하는 것은 전력 유출 문제가 제일 크지만 타격 코치를 담당하던 이호준의 이탈 역시 굉장히 컸다. 물론 이호준이 나간 과정 자체야 본인이 다른 도전을 하고 싶다는 의사가 가장 컸기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컸지만 이호준이 LG의 타격코치가 된 후 완성이 될듯 될듯 안 되던 LG의 타선이 전체적으로 완성이 되면서 NC와 심하게 비교되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는 것. 2022 시즌에도 전체적으로 타선이 완성된 모양새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강력한 축에 들었지만 2023 시즌 기준으로는 LG의 타선이 전년도보다 더 강력해진 엄청난 불빠따를 자랑하고 있는데,[17] 체감상으로도 압도적인 포스를 자랑하고 있다.[18][19] 차라리 이호준이 NC에서 나간 후 다른 파트를 맡고 있다면 그립다 정도로 끝났을 문제지만 바로 다른 팀에서 타격코치를 맡으며 그 팀의 타선이 이호준의 영입과 동시에 엄청난 불빠따로 변해버렸으니 NC 팬들은 그야말로 피눈물만 흘리는 상황이 되었다. 쉽게 말해 이미 삼진을 많이 먹더라도 최대한 닥공으로 나가는 강력한 불빠따에 익숙해져 있던 팬들이 현재 컨택형 플라이볼 히터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타선에 만족할 수가 없어진 것이다. 다만 2023 시즌에 NC의 타선이 전체적으로 대 놓고 다운 스윙 위주로 타격을 가져간 적은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2023 시즌에 팀 홈런 갯수에서 중상위권을 꼬박꼬박 유지한 반면 최하위는 단 한 번도 기록하지 않았다.[20]

6월 들어서는 타선이 득점권 BABIP이 어느 정도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득점권 타율조차도 제법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승률도 좋아지고 있다. 특히 위에서 언급된 불같은 타선을 자랑하는 LG 상대로 스윕승을 거두었다는게 상당히 고무적인 부분.[21] 그리고 전반적으로 특정 발사각도를 고집하지 않고 높은 타구속도의 하드 히트를 꾸준히 뽑아내도록 주문하는 코칭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확실히 5월까지와 비교하면 타선의 답답한 모습이 상당히 많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평가가 더 올라갔다. 이 시기까지의 모습을 보면 선수 시절 본인의 타격 지론과 코칭 스타일이 꽤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6월까지는 대체적으로 선수들의 지지도도 꽤 높은 모습인데, 야구를 즐겁게 하면서 자기 관리에 뛰어난 선수로는 서호철을 꼽았다.

이후 타선이 처참해지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등 전술한 타선의 기복이 심하다는 단점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이러한 장단점은 사실 어느 팀에나 다 있는 단점이기도 하며, 결과적으로 후반기에도 대체적으로는 타선이 어느 정도 정착하는 데에 성공하고 그 LG를 상대로 타선의 힘으로 또 스윕승에 성공하며 시즌 초에 비하면 비판이 많이 없어지기도 했다. 다만 선수가 홈런을 쳤을 때에도 코칭에 집중하느라 그러는 와중에도 다음 타자로 나갈 선수에게 맞춤분석을 해 주고 하는 모습으로 많이 잡히고 있고, 그러면서 홈런 세레모니에 함께하지 못하는 일이 많은 터라 인간미가 덜 보인다는 아쉬움은 나오는 편.[22]

시즌 말미에 강인권 감독을 포함 대부분의 코칭스태프가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와중에 송지만은 그나마 안 까이는 축에 들어간다. 타격코치에 상관없이 거포 타입이 없는 중장거리 타자 위주의 타선의 근본적 한계가 보인다는 시선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저연차 선수들의 장타력이 시즌을 거듭하면 할수록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송지만 본인이 은퇴 이후에도 지속적인 자기 관리를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부터 선수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자들에게 꾸준히 상대 투수들을 위한 맞춤분석 자료를 선수들에게 보여주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많이 잡힐 정도로 데이터 피드백도 빠른 편인데, 이는 2023년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주고 있는 타선의 활약을 통해 그 성과가 드러나고 있다.

4.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6
한화
122
394
.287
113
30
(3위)
4
18
53
58
10
52
.520
(5위)
.368
1997
117
414
.266
110
26
1
14
45
46
12
42
.435
.332
1998
126
432
.269
116
20
0
16
49
66
25
(6위)
64
.426
.361
1999
132
476
.311
148
24
11
(1위)
22
74
76
20
32
.546
.362
2000
120
468
.338
(4위)
158
(4위)
33
(2위)
2
32
90
93
20
(8위)
59
.622
(1위)
.409
2001
108
344
.285
98
19
0
22
69
55
5
40
.532
.357
2002
131
488
.291
142
18
2
38
(4위)
104
(5위)
84
8
67
.570
(5위)
.375
2003
74
273
.253
69
16
3
9
34
41
8
42
.432
.35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4
현대
132
486
.265
129
21
0
22
74
80
6
72
.444
.360
2005
123
436
.271
118
22
0
24
(4위)
74
70
3
67
.486
.366
2006
119
441
.270
119
16
0
16
53
76
(3위)
8
56
.415
.351
2007
120
413
.281
116
25
0
15
64
54
10
50
.450
.35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8
우리-서울-넥센
118
414
.280
116
18
0
13
62
48
4
33
.418
.330
2009
115
374
.289
108
15
3
22
67
69
10
60
.521
.384
2010
127
375
.291
109
15
1
17
63
52
5
49
.472
.367
2011
106
301
.266
80
8
1
9
43
43
9
41
.389
.351
2012
14
40
.175
7
0
0
0
4
2
2
5
.175
.261
2013
34
51
.275
14
1
0
2
8
6
0
5
.412
.339
2014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9시즌)
1938
6620
.282
1870
(6위)
329
(9위)
28
311
(10위)
1030
(8위)
1019
(7위)
165
836
.481
.361


5. 여담[편집]


  •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오랫동안 꾸준히 활약해온 대타자. 불행히도 이승엽, 심정수, 박재홍, 그리고 펠릭스 호세, 타이론 우즈, 제이 데이비스 등 용병타자들의 시대에 활약해 온 탓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았다. 게다가 송지만보다 더 꾸준하고 더 화려했던 양준혁이 동시대에 존재했다. 타율이 약간 떨어지는 것도 아쉬운 점. 15시즌 동안 3할을 넘긴 게 단 2번 뿐이다. 어쩌면 숨겨진 레전드라 불러야 할 지도.

  • 한때는 공수주 삼박자를 두루 갖춘 중장거리 타자로 2년 연속 20-20을 기록하기도 했다.[23] 그러나 앞서 서술했던 시드니 올림픽 연습경기에서의 발목 부상 후유증으로 2001년부터 주루 능력이 뚝 떨어졌다. 그래서 2012시즌 들어 후배들과 당당히 경쟁하기 위해 주루훈련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 어깨도 크보에서는 강견으로 손꼽히는데, 이 역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크보의 대표 강견이었던 심정수, 심재학, 심성보 즉 '3심'에 비해 저평가 되는 면이 없지않아 있었다. 하지만 전성기를 지난 이후에도 그의 강한 어깨는 상대팀의 주자들이 1루나 2루에 있을 때 다음 베이스로 태그업을 쉽게 하지 못하도록 묶어뒀다. 1999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공필성을 잡은 홈 송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또한 2013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보여준 혼이 실린 송구는 아직도 송지만의 어깨는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 현대 시절에는 초구 타격을 좋아하고 득점권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강해서 현대 팬들 사이에서 '스텔스기'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통산 득점권 타율은 0.275로 평균인 0.282와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며, 초구 통산 타율이 무려 0.380에 초구 홈런만 70개이다.

  • 2000년에 특이한 타격자세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른바 기마자세라 불리는 폼으로 MLB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레전드 제프 배그웰과 유사한 타격폼. 이 타격폼으로 송지만은 처음으로 30홈런을 넘어선다. (32홈런) 덕분에 당시 야구소년들이 박정태의 폼과 더불어 가끔씩 송지만의 폼을 흉내내곤 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이 자세만을 고집하지 않고, 꾸준히 타격폼을 교정해가며 선수생활 내내 변화를 시도하는 자세를 보여 줬다.

  • 이만수, 한상훈, 모창민 등과 더불어 KBO 리그에서 유독 돋보일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 선수로 알려져 있다. "송집사"라는 별명이 그 증거.[24][25] 팔에 익투스 문신, 몸에 예수 문신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2010년 7월 20일, SK 와이번스 구원투수 정대현의 시즌 평균자책점 제로를 깨뜨리는 적시타를 치면서 별명 '교회오빠'[26]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팬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신인 시절 선배들에게 도날드 덕 혹은 오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구강구조가 약간 튀어나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

  • 한화 이글스 소속으로 뛰던 1999년 4월 21일 청주구장에서 쌍방울을 상대로 홈런을 치고도 홈을 밟지 않아 홈런을 날려버린 일도 있었다. 이는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홈런 누의 공과. KBS 뉴스 장면이외 사례로는 2003년 LG의 이지 알칸트라가 한 차례 기록한 게 전부이다. 게다가 같은 해 프로야구 10,000호 홈런을 롯데의 펠릭스 호세 선수가 기록하는데, 송지만의 누의 공과가 없었다면 10,000호 홈런의 주인은 양준혁이 차지할 수 있었기에 나중에 송지만이 양준혁 선배에게 제일 미안하다는 인터뷰를 했다. 여담으로 다들 홈런이구나...하면서 딴 데 신경쓰는 사이에 유일하게 송지만이 홈플레이트를 안 밟은 걸 캐치해낸 사람이 바로 상대팀 前 쌍방울 감독인 김성근이었다.[27]

  • 송진우의 2,000 탈삼진을 허용했다. 2006년 안영명-김동수 간 빈볼시비에서 송진우에게 날라차기를 얻어맞기도 했다. 여러모로 송진우의 피해자.

  • 1999년 한화 이글스의 한국시리즈 우승멤버 중 가장 늦게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두 선수 중 한 명이다. 다른 한 명은 LG의 이상열.[28] 인상깊은 장면은 상기됐듯 5차전 때의 홈송구. 주자였던 공필성이 3루로 돌아가려다 되려 견제사당했었다.

  • 파일:attachment/송지만/2013110701000725900041571_59_20131107113402.jpg
몸매를 보면 알겠지만, 자타 공인 크보의 헬스덕후. 이걸 불암콩콩이 써먹기도 했다. 은퇴 직전까지 당당하게 주전경쟁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꾸준한 체력 관리는 후배들에게 모범이 됐다. 실제로 체력 검사 결과 20대 체력으로 나온다고 한다. 이래서 붙은 별명이 한국형 테임즈. 은퇴를 하고 나서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KBS N 스포츠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본인의 차를 몰고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항상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임해 왔다고 말하는 것만 보아도 자기관리가 꽤 철저한 선수였다.

  • 2004년 쯤, 브로커로부터 약물 권유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인터뷰를 했었다. 애초에 KBO약물 문제는 쉬쉬하고 덮는 분위기라 별 반향없이 묻혔지만 분명히 있었던 사실. 많은 이들이 약물을 써서 손쉽게 스타가 되던 시절에[29] 소신있게 거부의사를 밝히고 폭로까지 했던 스포츠맨십은 존경받을 만하다. 과연 그 전화를 받은 사람이 송지만 한 명이었을까.[30]

  • 이도형과 나눈 인터뷰가 올라왔다. 상당히 길지만 내용이 좋으니 송지만 선수의 팬이라면 읽어보자.

  • 인성이 훌륭한 선수로도 유명하다. 동영상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에 같이 뽑혔던 박찬호와 같은 92학번 동기이나, 친분이 없어[31] 서로 존칭을 쓰다 주장 이종범에게 지적을 받았다.기사 이종범이 무릎팍도사에 출연 당시에도 이 일화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이는 선수들이 박찬호를 특별하게 취급하여 선수단에 위화감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사실 박찬호는 한참 후배인 봉중근에게 존칭을 쓴 적도 있다.

  • 한화 시절에는 후배 김태균과의 사이클이 매우 안 맞았다. 2001년 송지만이 전년도 부상 여파로 부진[32]할 때 김태균이 혜성같이 나타나 신인왕을 타며 주포로 군림했다. 2002년에는 김태균이 2년차 징크스로 거하게 폭망할 때 송지만은 홈런 레이스에 발을 걸칠 정도로 부활에 성공, 03년에는 김태균이 31홈런 치며 활약할 동안 송지만은 또 부상으로 부진. 결국 이 때문에 송지만이 현대로 트레이드되며 이런 불편한 사이클은 끝나게 된다.

  • 무한도전 타인의 삶 특집에서 정준하이숭용과 역할을 바꿔 넥센 연습경기에 참여했는데, 송지만은 잔뜩 긴장한 정준하에게 다가가 살갑게 농담을 던지는 등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팀 내에서 왕고는 이숭용이었고 그 다음 서열이 송지만이었다.


6. 관련 문서[편집]


[1] 음력 3월 2일.[2] 전주시 태생일 뿐 초등학교부터 대학 시절까지 모두 인천에서 보냈다.[3] 주 포지션은 우익수로 한화 시절에는 거의 우익수로 출장했고, 히어로즈 시절에도 우익수를 봤다. 그 외에도 커리어 내내 외야 전 포지션에 모두 볼 수 있었는데 현대 시절이던 2004년에는 주전 중견수, 2007년에는 주전 좌익수로 출전한 바 있으며 2006년에는 좌-중-우 포지션에 고루 출장했다.[4] 우타자 전담[5] 히어로즈 송지만 오오오오오~ x4[가사] 워우워어~ 날려버려 송지만~ x4[6] 송지만의 은퇴시점 기준으로 두자릿수 홈런 기록은 양준혁박경완이 16시즌으로 공동 1위, 장종훈이 2위(15시즌), 그 다음이 송지만이었다.(14시즌) 단, 장종훈을 제외하면 연속 시즌 기록이 아니며, 이후 이 기록들은 2022 시즌 최정이 리그 최초 18시즌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며 깨진다.[7] 그보다 더 많은 안타를 친 선수는 양준혁, 전준호, 장성호, 장종훈, 박용택뿐이다.[8] 이는 장종훈, 양준혁에 이은 3번째 기록이었다.[9] 장종훈은 넘어섰고 위로는 양준혁, 전준호, 장성호뿐.[10] 역대 1,000타점을 넘긴 타자는 양준혁, 이승엽, 장종훈, 박재홍, 심정수, 마해영뿐이며, 송지만 뒤에는 994타점의 박경완, 986타점의 김동주, 911타점의 장성호뿐이었다.[11] 한편, 진지하게 코치 이론을 설명하다가도 특유의 유쾌한 입담으로 FA 선수들을 꼭 잡아달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12] KIA에서는 사실상 성공하기가 힘들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유는 전술되어있듯이 당시 구단에서 타격코치에게도 좌우놀이를 시전해버린 것. 일반적으로 타격코치가 두 명인 경우에는 메인 코치와 보조코치로 구성해서 같은 코칭 이론을 가지고 역할을 분업을 하는 경우가 보통인데, 이 당시 KIA의 경우 그런 것을 아예 고려하지 않고 타격코치를 가지고도 좌우놀이를 시전해서 두 코치의 코칭 이론이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팀들이 이런 식으로 타격코치를 가지고도 좌우놀이를 하지 않는 이유가 이런 이유에서인데, 이렇게 될 경우에는 선수 입장에서도 쉽게 혼란이 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13] 볼넷율이 상대적으로 타 구단에 비해 좀 낮은 것이 흠인 데다가 적은 샘플이긴 해도 만루에서 지독하게 안 터지고 있는 것이 흠인데, 문제는 5월 20일을 기준으로 만루에서의 팀 BABIP.150으로 그야말로 운에게 버림받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만루 상황에서의 볼넷율이 리그 2위인데다가 순장타율과 순출루율은 1할을 부쩍 넘는다는 것이 아이러니. 전반적으로 팀 타자들에게 플라이볼을 많이 주문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결국 만루에서 이 BABIP을 뚫어내는 것이 관건인 셈이다. 팀 wRC+나 OPS, wRAA 등이 2위일 정도로 세부 지표가 리그 상위권인 것에 반해 득점권 타율 등의 수치가 안 나오는 것은 만루에서의 이 버림받은 운에 기인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14] 득점권 타율이나 타점 자체도 불규칙적인 누적이나 운에 기인한 요소가 많다는 점 때문에 세이버매트리션들에게 비판을 많이 받는 수치이며, WPA는 번트 하나만 대거나 혹은 희생 플라이, 땅볼을 쳐서 점수를 내더라도 떨어지는 수치이기도 하지만 타격뿐만 아니라 주루사나 도루자 등의 영향을 받지만 수비 능력은 아예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참고는 되어도 다른 스탯을 다 제치고 이 수치만으로 그 팀 타선을 절대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또한 타자의 경우 희생번트나 희생타 등 작전을 많이 거는 팀의 경우 이걸 쌓기 힘든 케이스가 많기도 하다는 점. 특히나 타선의 뎁스가 워낙 약해서 한 점이라도 더 짜내야 겨우 이길까 말까하는 팀의 경우 이게 더 두드러지는 편. 실제로 2023 시즌은 5월까지 팀 타자의 WPA가 양수인 팀이 단 3팀밖에 안 될 정도이며, 결정적으로 WPA 또한 운의 요소가 상당히 많이 반영되는 데다가 과거만을 반영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그 팀의 미래나 향후 성적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한 시즌의 WPA로는 다음 시즌이나 향후 경기의 WPA를 못 예측한다는 것.#[15] 이게 극명하게 드러난게 지난 4월에 2연속으로 영봉패를 당했던 KIA와의 원정 3연전이었다. 두 경기 연속 영봉패를 당한 것이 2023 시즌 5월까지는 이 두 경기가 전부였는데, 5월 27일의 한화전도 그러한 맥락이였지만 사실상 이러한 문제점이 가장 두드러진 경기는 메디나와 윤영철에게 모두 헛방망이로 물러난 이 두 경기였다.[16] 얄궃게도 5월 27일까지 리그 최다 2루타 또한 손아섭이 가지고 있을 정도다.[17] 이는 용병타자 복이 유독 없던 LG에 드디어 용병 구실을 제대로 하는 용병타자가 들어온 점이 매우 크다.[18] 실제로 팀 타격 지표를 비교해보면 LG는 홈런 정도를 제외한 대다수의 지표가 NC를 포함한 다른 팀들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높은데, 이호준 코치의 부임 시점에서는 작전을 최소화하면서 어느 정도의 게스 히팅(상대 투수의 구종을 예측해서 스윙하는 것)도 최대한 자유롭게 하도록 두는 식으로 타선의 폭발력을 최대한 살려주는 측면으로 코칭을 하면서 효율을 극한으로 뽑아내고 있는데 LG의 전임 타격코치들이 그 선수들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였기에 더 부각된 점도 컸다.[19] 다만 2023년 현재의 NC는 1군 경험이 부족한 저연차 선수들이 많다는 한계가 명확해서 게스 히팅은 최대한 하지 않는 쪽으로 주문을 하고 하드 히트가 되지 않을 법하다 판단되는 타구는 루킹 삼진을 먹는 일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골라내는 쪽으로 코칭을 하게 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볼넷을 좀 적게 먹고 공을 좀 덜 골라내더라도 과감하게 인플레이 타구를 만드는 방향으로 주문을 했던 이호준 타격코치 시절과는 괴리감이 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필 낮은 공에 대한 어퍼 스윙까지 적극적으로 가져갈 정도로 적은 볼넷에 비해 삼진이 많은 플라이볼 히터 성향을 가진 타자의 비율이 높아서 오히려 장타력이 필수였던 2021 시즌까지의 NC에서와는 다르게 LG에서는 부임 시점에서는 삼진도 많이 안 먹는 배드볼 히터 내지는 라인드라이브 히터형 타자의 비율이 높았던 편이어서 홈런은 좀 덜 나올지라도 팀내에서 몇 안되는 플라이볼 히터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박동원이나 오지환 정도에게는 자유롭게 스윙을 하도록 주문을 하면서 다른 라인드라이브 히터 유형의 타자들의 폭발력을 살리는 방향으로 코칭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러한 코칭과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 다만 NC의 경우에도 저연차 선수들의 타격 스탠스가 전체적으로 그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삼진의 갯수는 과거보다 확실히 줄어들긴 했다.[20] 리그 홈런 갯수가 2020년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꽤나 아이러니한 점인데, 이 시즌에도 2023년 5월이 지나도록 리그 홈런을 20개도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팀이 두 팀이나 될 정도로 리그 전체적으로 홈런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한 팀은 아웃라이어에 걸리면서 여전히 상위권의 순위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가 구장 자체가 홈런을 치기 힘들어져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다른 팀은 팀 득점까지도 제대로 뽑아내지 못하는 데다가 하위권을 맴돌고 있어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재미있게도 전 시즌에 이러한 아웃라이어에 걸렸던 팀이 바로 이 팀이다.[21] 사실 당시 LG 역시 타선의 기세가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아무리 강력한 타선이라도 결국은 사이클이라는게 있다는 걸 잘 알 수 있는 부분.[22] 그래도 8월 27일 경기에서는 비디오 판독 결과에 대해 강인권 감독이 항의할 때 다른 코치들과 함께 강경하게 화를 내는 보기 드문 장면이 나오기도 했으며, 준플레이오프 3차전 당시에는 더그아웃에서 득점권 위기를 맞이한 이재학을 보며 "애들이 도와준다, 스트라이크 넣어라~!" 라면서 흥을 돋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재학은 이 응원이 통한 것인지 병살을 이끌어내며 위기를 넘겼다.[23] 98년 16홈런 25도루를 기록했던 적도 있다.[24] 선수단에서는 아예 목사라는 별명도 있었다는 얘기가 있다. 한화에 있을 때 경기 전 식사를 1군 코치였던 유승안 전 감독과 같이 했는데 간절히 식사 전 기도를 바치려던 유 전 감독이 송지만에게 "어이, 송 목사! 내 기도도 부탁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유승안 전 감독도 개신교 신자다.[25] 독실한 개신교 신자답게 평소에 술과 담배를 멀리하기로 유명하다. 다만 팀 후배였던 조용훈에 의하면 현대가 해체되고 히어로즈로 재창단되면서 구단 상황이 어수선했을때는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평소 입에도 안 대던 술을 마셨다고 한다.[26] 개독교 관련 레퍼토리 중 하나인 '목사/장로 성추문 사건'에 빗댄 것. 송지만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별명이겠지만 2010년경까지만 해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고, 그 이후로도 여전히 잊을 만하면 튀어나온다.[27] 그리고 훗날 김성근은 본인이 누의 공과를 잡아낸 그 팀의 감독이 된다[28] 이상열이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멤버냐고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한국시리즈에 출장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99년에 한화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박정진이 가장 오래 뛰기는 했지만,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없었기 때문에 논외.[29]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일본/한국 모두 극악의 타고투저가 수 년간 계속되었다. 이 시절 수많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타자들이 약빨로 기록을 세웠다는 게 미첼 리포트에서 폭로되기도 했다. 과연 이게 메이저리그만의 문제였을까.[30] 당장 팀 선배였던 이숭용이 금지약물이 아니었다고는 해도 고농축 카페인 복용 사실을 방송에서 이야기했던 것만 봐도 프로야구계는 생각보다 약물에 대한 경각심이 낮다.[31] 또한 박찬호는 한양대를 2년만 다니고 바로 도미한 탓에 생각보다 선수들과 접점이 없다. 게다가 송지만과 국대에서 처음으로 함께했던 상황이었니 어색할 수 밖에.[32] 부진이라고 말하기는 좀 가혹한 잣대지만 2000년보다 못한 성적은 맞다. 물론 골절된 다리에 수술용 철심을 박은 다리로 거둔 성적임을 감안하면 그래도 다리부상이 있어도 원래의 실력이 녹이 슬지 않았음을 보였다는게 더 적절할 것이다. 다리에 철심이 박힌 상태로 타격 시 필수적인 하체를 사용한 무게중심 고정은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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